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히브리인들에게 기근(饑饉)은 단순히 자연적인 재해(災害)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즉 그들에게 기근은 칼(전쟁), 사나운 짐승, 온역 등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범죄한 백성들에게 벌을 내리시는 일종의 심판(審判)이었다(겔 14:21, 왕상 8:35). 특히 건조한 팔레스타인 땅에서 3년 동안 기근이 계속되었다는 것은 그들에게 치명적인 심판이었다(왕상 17:1-7, 왕하 25:1-7, 느 5:3, 애 4:4).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이는 기근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범죄한 사실이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그 진상을 알아보는 다윗의 신앙적 행동이다. 여기서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란 말을 직역하면, ‘여호와의 얼굴을 찾으매’란 뜻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심판의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갔다는 말이며, 이는 구체적으로 다윗이 대제사장에게 있는 ‘우림과 둠밈’(출 28:30)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Lange).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기브온 거민 학살 사건이 사울 시대에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다윗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징벌이 가해진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 행위는 다음과 같은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즉 (1)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시간과 인격을 초월한 단일 공동체이며, (2) 아비의 허물이 자손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는 율법의 성취인 동시에(출 34:7), (3) 징계를 통하여 당신 백성의 범죄를 방지하고 성숙한 신앙 인격을 갖추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약 1:2-4) 및 (4) 인간의 죄는 언젠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부르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전 12:14, 고후 5:10).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여기서 기브온 사람은 가나안 땅의 기브온 성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본래 진멸의 대상이었으나(신 7:1-5),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당시 이스라엘과 ‘여호와의 이름으로’(수 9:15, 18-20) 화친 조약을 맺고 이스라엘의 종, 곧 여호와의 단을 위해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자가 되었다(수 9:3-27). 그 약조의 내용은 이스라엘이 기브온 사람들을 해하지 않고 살릴 것이라는 언약이었다(수 9:15). 따라서 사울 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브온 거민과 맺은 약조를 무시하고, 이들을 죽인 행위는 하나님의 성호를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실추시킨 변명할 여지없는 살인죄였다.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 맹세하였거늘. 가나안 정복 시대 당시, 여호수아 군대의 승승 장구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기브온 거민들은 마치 먼 나라 족속인 것처럼 위장하고 사신(使臣)을 보내어 이스라엘과 화친 조약 맺기를 원하였다. 이때 이스라엘은 확인도 없이 섣불리 그들과 화친 조약을 맺었다. 이스라엘은 당시 그들을 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면서 약조를 맺었다. 이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수 9:3-27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사울 왕이 기브온 사람을 죽인 동기이다. 즉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라는 말은 사울이 자기 민족에 대한 애족심(愛族心)에서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음을 나타낸다. 곧 사울 왕은 순수한 단일 민족을 구축하고자 하는 열심으로 이방 족속 축출 정책을 시행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울의 열심은 원칙상 율법의 조항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신 7:2, 24, 출 34:11). 그러나 엄격히 말해서, 율법의 조항은 이방 민족과 약조를 맺기 이전에 관한 것이며, 사울의 학살 행위는 약조 이후의 일이기 때문에 사울의 행위는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율법 정신에서 벗어난 그릇되고 편협한 민족애의 한 예를 볼 수 있다.
그들을 죽이고자 하였더라. 기브온 거민 학살 사건이 언제 발생했는지는 기록이 없으므로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혹자는 사울이 놉의 제사장들을 살해할 때(삼상 22:18, 19) 기브온 사람들도 함께 살해하였다고 주장한다(Hertzberg, Abarbanel). 그리고 혹자는 사울이 그의 통치 초기에 율법에 근거하여(출 22:18, 레 20:6) 가나안 땅의 신접한 자와 박수를 쫓아낼 때, 기브온 거민들도 학살하였다고 본다(Smith, Fay). 그러나 확실한 근거는 미흡하다.
여호와의 기업. 열조와 맺은 언약에 따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해 주신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20:19).
사람을 죽이는 문제도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즉 사람을 처형시키는 것은 자신들의 권한 밖의 일이라는 뜻이다. 더구나 이스라엘 본토인도 아니며 거류민들인 기브온 거민들로서는 다윗 왕의 허락이 없이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여호와께서 택하신 사울. 실제로 사울은 기름 부음 받아 세워진 이스라엘의 선택된 왕이었다(10:1). 그러나 여기서 이 말은 풍자적인 의미를 띤다. 왜냐하면 사울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로서 마땅히 여호와의 뜻을 성실히 따랐어야 했으나, 그렇지 못하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화친 조약을 맺은 기브온 거민들을 대량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사울의 고을 기브아. 지난번 기브온 사람 학살 사건의 책임은 누구보다도 사울에게 있었다. 따라서 기브온 사람들은 사울 집에 속한 일곱 명의 자손들을 처형할 장소로 사울의 고향인 기브아(삼상 10:26)를 지정한 것이다.
여호와 앞에서 목 매어 달겠나이다. 여기서 ‘여호와 앞에서’란 말은 정확히 ‘여호와를 위하여’란 뜻이다. 즉, 이 말로써 기브온 사람들은 사울의 일곱 자손들을 처형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키기 위한 공의적 차원의 일임을 강조했다. 한편 ‘목 매어 달겠나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카’는 ‘매달다’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이 말은 목 매어 교수형(絞首刑)에 처하겠다는 의미 보다는, 죽이기 위해 매달거나 또는 죽인 후 시체를 매어 달겠다는 의미이다(Smith). 특히 이 말에 상응하는 헬라어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을 때 사용했던 어휘 ‘스타우로오’이다.
사울의 딸 메랍. 메랍은 사울의 장녀였으며, 사울이 다윗에게 주기로 하였다가 그 약속을 어기고 아드리엘에게 시집 보낸 여인이었다(삼상 18:17-19). 한편 히브리 본문과 흠정역(KJV)에는 ‘메랍’ 대신 ‘미갈’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필사자의 착오이다(Keil, Fay, Smith). 왜냐하면 ‘아드리엘’의 처는 분명 메랍일 뿐 아니라(삼상 18:19), 미갈에게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이다(6:23).
동시에 죽으니. 이는 사울의 일곱 자손들이 모두 ‘같은 날에 같은 방식으로’ 죽임을 당했다는 말이다.
보리를 베기 시작하는 때더라. 이 때는 히브리 종교력으로 니산(Nisan)월 중순이며, 오늘날의 태양력으로 말하자면 4월 경이다.
바위 위에 펴고. 시체에는 사나운 짐승과 새들이 모여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체가 매장되지 못하고 이러한 맹수나 맹조에 의하여 뜯기는 것을 최대의 수치요 모욕이라고 생각했다(삼상 17:44). 따라서 리스바는 시체에 이러한 짐승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굵은 베 옷을 바위에 깐 후, 시체 곁에 계속 머물면서 밤낮으로 시체를 지켰다.
비가 시체에 쏟아지기까지. 모세 율법에 따르면, 사람이 죽을 죄를 짓고 나무에 달려 죽더라도 그 시체를 당일에 내려 장사(葬事) 지내도록 규정하였다(신 21:22, 23). 그러나 이번에 나무 위에 달려 죽은 사울의 일곱 후손의 시체들은 사건의 성격상 예외에 해당되기 때문에 율법의 규정대로 당일에 장사되지 아니했다. 즉, 사울의 일곱 후손들은 3년 연속 기근을 내리신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리기 위한 속죄제물의 의미로 처형당한 것이다. 때문에 이들의 시체는 하나님의 진노가 풀려 기근이 끝나는 순간, 곧 비가 내리기까지 나무 위에 그대로 방치되었다(Lange). 한편, 혹자는 시체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때는 우기(雨期)인 10월 경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따라서 리스바는 4월부터 10월까지 곧 6개월 동안이나 시체를 보호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Smith, The Interpreter’s Bible).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무리한 주장이다. 왜냐하면 본 절에서 비가 시체에 쏟아졌다고 하는 표현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풀어졌다고 하는 표시였기 때문이다. 즉, 본 절의 비는 우기에 내린 자연스런 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악인의 형벌당함을 보시고 이제 당신의 진노를 풀었다는 표시(sign)로서 내리신 비인 것이다(Keil, Lange). 그러므로 우리는 이 비가 언제 시체 위에 쏟아졌는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이 이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스바가 얼마나 오랫동안 시체를 지켰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알 길이 없다. 그렇지만 비가 즉시로 시체에 쏟아지지 않은 것 만큼은 문맥상 확실한 것 같다(Josephus, Clericus, Ewald, Böttcher).
벧산 거리에 매단 것을. 삼상 31:10에 보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시체를 ‘벧산’(혹은 ‘벳산’) 성벽에 못박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양자의 기록은 서로 모순되지 아니한다. 왜냐하면 본 절의 ‘거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홉’은 ‘광장’(廣場)을 의미하는데, 이는 성의 중앙에 있는 광장 뿐 아니라 성문 앞 또는 옆에 있는 광장도 의미하기 때문이다(대하 32:6, 스 10:9, 느 8:1, 3, 16). 이렇게 볼 때, 블레셋 사람들은 수많은 백성들이 왕래하는 성문 앞 광장의 성벽에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못박았으며, 그리고 그 시체를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몰래 취하여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후에야 하나님이 … 들으시니라. 사울가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진정되었음을 보여 준다. 구체적으로는 3년 기근이 종식되고, 비가 그 땅에 내렸음을 가리킨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로막고 있는 방해물을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시 66:18, 사 59:2, 요일 3:21, 22).
내려가서. 이는 유다 산지에서 블레셋 평지로 내려갔음을 의미한다.
삼백 세겔 되는 놋 창. 1세겔이 11. 4g이므로, 삼백 세겔은 약 3.4 kg에 해당한다.
새 칼을 찬. 여기서 ‘새 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다샤’는 형용사형으로 ‘새 것’이란 의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스비브놉이 허리에 찬 무기가 칼(Vulgate, A. V.)인지 철퇴(LXX)인지 단정할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이 말은 ‘새 무기를 찬’으로 해석해야 한다(Böttcher, Philippson).
이스비브놉. ‘이스비브놉’은 ‘고지대의 거주자’란 의미를 갖는다(Keil, Gesenius). 따라서 ‘이스비브놉’은 본래의 이름이 아니라 후에 붙여진 별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에게 이러한 별명이 붙여진 까닭은, 아마도 그가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고지대의 성(城) 또는 바위 틈에서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Keil, Lange).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여기서 ‘등불’은 타오르는 ‘생명’과 ‘번영’ 및 ‘영광’을 상징한다. 따라서 다윗의 신하들의 이 말은 이스라엘의 번영과 안정 및 영광의 핵(核)이신 다윗 왕이 위험과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전쟁터에 참전하는 것을 막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욥 18:5, 6에서는 ‘등불의 꺼짐’이 곧 ‘죽음’과 ‘파멸’을 상징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다윗 왕이 이스라엘의 등불이 된 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등불이 되심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즉, 다윗은 본서 22:29과 시 18:28에서 여호와께서 나의 등불이시며 나의 흑암을 밝히시리라고 고백했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여호와께서 자신을 비천한 곳에서 존귀와 영광의 자리로 높여주셨음을 고백한 것이다.
후사 사람 십브개. ‘십브개’는 다윗의 30인 용사 중 한 사람이다(대상 20:4). 그는 23:27절에 등장하는 후사 사람 ‘므분내’와 동일 인물이다(Smith). 따라서 ‘므분내’는 ‘십브개’의 오기(誤記)임이 분명하다(Fay). 즉, 필사자의 착오로 십브개를 므분내로 잘못 기록한 것이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철자상 ‘십브개’와 ‘므분내’는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이다. 한편 ‘십브개’는 대상 27:11에 따르면, 이만 사천 명을 지휘하는 제8부대의 지휘관이었다. 또한, ‘후사 사람’이란 말은 유다의 족속인 후사의 자손이란 의미이다(대상 4:4).
거인족의 아들. 16절 주석 참조.
삽. ‘삽’은 ‘이스비브놉’과 마찬가지로 거인족인 르바임 족속의 용사로, 대상 20:4에는 ‘십배’라고 소개되어 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기 여섯 개씩 모두 스물 네 개. 이러한 육 손과 육 발은 일종의 유전적 성격을 띠는 기형인데, 플리니(Pliny)의 ‘자연의 역사’(Natural History)에도 이와 유사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는 아주 드문 기형(奇型)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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