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20:1 거기에.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솸’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1) 이 말은 장소적(場所的)인 의미로서 ‘거기서’를 뜻한다. 따라서 이 말은 세바라 하는 자가 지파 간의 다툼이 벌어지고 있던 길갈에 있었음을 보여 준다. (2) 또한 이 말은 시간적(時間的)인 의미로서 ‘그 후에’ 또는 ‘그 일로부터’를 뜻한다(왕상 17:13). 따라서 이 용어에서 우리는 결국 다윗 왕의 환궁(還宮)을 둘러싼 지파간의 다툼(19:41-43)이 원인이 되어 세바의 난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Lange).

불량배 하나가 있으니. 여기서 ‘불량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쉬 벨리야알’은 ‘무익한 사람, 무가치한 사람’, 또는 ‘파괴적인 사람’이란 뜻이다(16:7). 곧 부도덕하고 사악한 자로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무익하고 쓸모없는 자라는 뜻이다(고후 6:15).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 혹자는 여기서 ‘비그리의 아들’이란 말은 아마도 베냐민의 둘째 아들인 ‘베겔의 후손’(창 46:21)을 뜻하는 것 같다고 한다(Pulpit Commentary, The Interpreter’s Bible). 그리고 혹자는 베냐민의 둘째 아들인 베겔이 사울 왕의 조상인 ‘베고랏’(삼상 9:1)과 동일 인물이라고 가정하면서, 아마도 세바는 사울 왕의 친척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Hertzberg). 그러나 이에 대한 증거는 불충분하다. 아무튼 세바가 사울 왕의 친척이든 아니든, 그는 베냐민 지파의 족장급 인물로서 사울가를 지지하는 과격한 선동가적 인물임은 분명하다(Lange).

그가 나팔을 불며. 여기서 ‘나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쇼파르’는 숫양의 뿔로 만든 양각(羊角) 나팔을 가리킨다. 이 쇼파르는 2개의 음만을 내기 때문에 악기로 사용되지는 않았으며 다만 신호용(信號用)으로 사용되었다. 즉, 이것은 임박한 재앙을 경고하거나 파문(破門)을 알리기 위해 사용되었다(E. Werner). 이렇게 볼 때 세바가 쇼파르를 분 것은 다윗 왕의 파문과 자신의 반란의 시작을 선포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 여기서 ‘분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헬레크’는 ‘기업’ 또는 ‘분깃’을 의미하며(창 14:24, 민 18:20, 신 10:9, 12:12, 14:27), ‘유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할라’는 ‘유산, 소유물’ 등을 의미하는데(왕상 12:16, 대하 10:16, 사 58:14), 구체적으로는 공히 ‘토지’(수 18:5, 6, 7, 9, 22:25, 27, 왕하 9:36, 37)나 ‘백성’(신 32:9) 등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 구절은 이스라엘이 다윗으로부터 독립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움으로써, 그들의 토지나 백성들이 다윗의 간섭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세바의 반역적인 언사였다.

이새의 아들. 세바는 ‘다윗 왕’이라고 하는 명예로운 호칭 대신 ‘이새의 아들’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이러한 호칭은 다윗을 일개 필부(匹夫)의 아들로 격하(格下)시키는 호칭으로서, 곧 다윗을 모욕하는 것이었으며(삼상 20:27, 22:7, 25:10),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적인 표현이었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여기서 ‘장막’(히, 오혤)은 ‘집, 처소’란 의미인데, 이 용어는 출애굽 이후 광야 시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막 생활을 한 사실로부터 나온 용어이다(Fay, Wycliffe). 한편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집으로 되돌아가는 행위는 다윗 왕에게 등을 돌려 그의 통치를 거절한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R. Payme Smith). 그런데 이때 세바가 반란의 격문으로 외친 이 말은 후일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나누어질 때 여로보암에 의해 재주창된 말이라는 점에서 그 시사하는 바가 크다(왕상 12:16).

 

20:2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 올라가. 이는 세바의 반역적인 말에 동감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길갈’에서 길을 돌이켜 세바를 따라 ‘에브라임 산지’로 올라갔음을 보여 준다(Lange, The Interpreter’s Bible). 여기서 우리는 지파 간의 감정 때문에, 자기들이 기름 부어 세운 다윗 왕을 또 다시 배반하는 이스라엘 지파의 반역적 행위를 발견할 수 있다.

유다 사람들은 … 합하여 요단에서 예루살렘까지 따르니라. 세바의 반란이 시작된 길갈은 요단 강가에 위치해 있었다. 따라서 저자는 길갈을 넓은 의미에서 요단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한편, ‘합하여 … 따르니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바크’는 ‘들어붙다, 연합하다’는 뜻을 가진다(창 2:24, 신 28:60, 욥 19:20, 29:10, 시 102:5, 119:25, 31). 따라서 이 말은 유다 사람들이 다윗 왕을 철저하게 호위하는 가운데 길갈로부터 예루살렘 성까지 모시고 왔음을 의미한다.

 

20:3 후궁 열 명 … 생과부로 지내니라. 여기서 열 명의 후궁(後宮)은 예루살렘 성에 남겨졌던 후궁들로서(15:16),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백주에 강간했던 후궁들이었다(16:21, 22). 따라서 다윗 왕이 이들을 별실에다 가두어 격리시켜 놓은 것은 이들의 불결함 때문이었다(Grotius). 그러나 한편으로 다윗 왕은 수치를 범한 여인에 관한 하나님의 율법 조항(신 9:1-4)을 따라 이와 같이 조치한 것이었다. 즉, 모세 율법은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진 아내를 다시 받아들이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신 24:4). 더구나 아들과 동침한 여인과 다시 동침하는 행위는 가증한 근친상간죄에 해당되기 때문에(레 18:6-8), 다윗은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다. 따라서 다윗 왕은 이들을 성밖으로 내쫓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윗 왕은 이 일에 있어서 자기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고, 그들을 죽이거나 내쫓는 가혹한 형벌은 주지 않았다.

 

20:4 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 불러 모으고. 다윗 왕은 세바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아마사를 국민병 모집의 책임자로 임명한다. 이러한 조치는 지난번 아마사에게 제의한 약속(19:13)을 이행하기 위한 예비 조치였다. 즉 아마사의 등용 기회를 찾고 있던 다윗은 세바 반란 진압을 아마사에게 맡김으로써, 반란군을 진압하고 요압의 기(氣)를 꺾는 동시에 아마사와의 약속을 이행하는 3중 효과를 노렸다.

너도 여기 있으라. 이는 국민병을 소집하고 아마사도 그곳에 함께 있으라는 말이다. 다윗 왕이 이러한 명령을 내린 것은 세바의 난을 진압할 군대의 사령관으로 아마사를 임명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다윗의 이와 같은 조치는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다. 즉 (1) 다윗은 무엇보다도 아마사를 군대의 총사령관에 임명함으로써, 거칠고 반항적인 요압의 세력을 꺾으려 했으며, (2) 또한 압살롬 반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아마사를 내세움으로써, 압살롬의 난에 선봉장(先鋒長) 역할을 한 유다 지파의 사기를 북돋워 주려 했다(19:13). 그러나 이와 같은 다윗 왕의 의도는 군대 소집의 지체와 요압의 반발로 인하여 실패하고 만다.

 

20:5 아마사가 … 왕이 정한 기일에 지체된지라. 아마사가 군대의 소집을 기한내에 완료하지 못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아마사의 무능력 때문이었다(Payne). 즉, 다윗 왕은 요압에게 하듯이 아마사에게 명령을 내렸으나, 아마사는 경험 많고 노련한 요압에 비해 실무(實務) 능력이 현저하게 뒤떨어졌다. 그러기에 아마사는 마하나임 전투에서 압살롬의 대군을 이끌고도 요압의 소수 정예병력에 의해 격파당했던 것이다(17:25, 18:6-8). (2) 유다 사람들의 비협조 때문이었다(Keil, Lange). 다시 말해서 아마사는 반군의 지도자였다는 이유로 유다 백성들로부터 의혹과 불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유다 백성들은 아마사의 모병(募兵)에 응하지 아니한 것이다. 이것은 결국 다윗의 아마사 등용 정책(19:13)이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즉 다윗의 아마사 등용 정책을 탐탁치 않게 여겨왔던 유다 사람들은 반역자요 변절자인 아마사 휘하에 들어가기롤 꺼려함으로써, 아마사의 등용을 방해하였다. 이에 다윗은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하고 아비새에게 반란군 진압을 명함으로써 사태를 일단 수습하였다(6절). 그러나 다윗의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백성들과 측근을 무시한 행동으로, 특히 그의 측근들에게 깊은 마음의 상처를 안기는 일이었다. 결국 과격하고 정치욕이 강했던 요압은(3:27, 18:14) 질투심과 원한에 의해 반역자 아마사를 살해하였다(10절).

 

20:6 다윗이 이에 아비새에게 이르되. 아마사의 지체에 불안을 느낀 다윗 왕이 아비새에게 기습적인 군사 행동을 명한다. 여기서 다윗 왕이 아비새를 세바 진압의 지휘자로 임명한 것이 흥미롭다. 즉 평소 같으면 그동안 이스라엘의 군장(軍長)으로 계속 활약해 왔던 요압에게 명령했을 것이나 이례적으로 동생인 아비새에게 지휘권(指揮權)을 준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다윗 왕은 자신의 명을 어기고 압살롬을 죽인(18:14) 난폭한 성미의 요압을 상당히 못마땅해 했음을 알 수 있다(Wycliffe Bible Commentary, Lange).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세바의 난이 압살롬의 난보다 더욱 심각할 것이라는 다윗 왕의 예상이다. 그 근거로서 다윗 왕은 세바의 난과 압살롬의 난 사이의 근본적인 성격 차이를 생각한 듯 하다. 즉, 압살롬의 난은 압살롬 개인의 야욕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세바의 난은 오래 묵은 지파 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이번 세바의 난을 초기에 진압하지 못할 경우, 그 피해는 압살롬의 난 보다도 더욱 심각하게 온 나라에 미치게 될 것이라고 다윗은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다윗의 판단은 매우 정확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지파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결국 그 세(勢)가 약화된 르호보암 때에는 세바의 주창과 같은 구호를 내건 여로보암에 의해 나라가 둘로 나뉘어졌기 때문이다(왕상 12:16, 17).

네 주의 부하들을 데리고. 여기서 ‘네 주의 부하들’이란 예루살렘에 있는 다윗 왕의 시위병들과 정예 군사들을 가리킨다(7절). 한편 여기서 다윗 왕은 지난번 압살롬을 피하여 도망갔을 때 아히도벨이 베푼 모략과 똑같은 지시를 여기서 내리고 있다(17:1-3). 즉, 일단 반기의 기치를 든 세바가 자기의 세력을 키워 대항해 오지 못하도록 그에게 시간적인 여유를 전혀 주지 않고 즉각적인 공격을 가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우리들을 피할까.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히칠 에네누’를 직역하면, ‘우리의 눈을 빼앗을까’란 뜻이다. 즉, 여기서 ‘히칠’의 기본형 ‘나찰’은 ‘빼앗다, 찾다’는 뜻이며(창 31:16, 삼상 7:14, 삼상 30:8, 18, 호 2:9), 그리고 ‘눈’(히, 아인)은 신 32:10, 슥 2:10에 관련시켜 볼 때 ‘가장 가치있는 것’ 또는 ‘중요한 소유물’을 상징한다(Thenius, Böttcher, Keil). 따라서 본 구절은 다윗 왕국의 중요한 소유물들, 그것이 백성이든 아니면 토지이든 성읍이든, 그러한 것들을 세바가 빼앗아 가지 않을까 염려하는 다윗 왕의 말이라고 볼 수 있다.

 

20:7 요압을 따르는 자들. 그동안 요압의 통솔을 받아왔던 요압의 정예 군사들을 가리킨다.

그렛 사람들과 블렛 사람들. 이들은 왕의 근위병들이었다. 이들의 업무 분담에 대해서는 8:18을 참조하라. 다윗 왕이 이들을 파견할 경우 다윗 궁은 완전히 무방비(無防備) 상태가 될 것이었지만, 다윗은 사태의 긴박성을 깨닫고 이들까지 파송하였다.

모든 용사들. 여기서 ‘용사들’이란 히브리어로 ‘깁보림’인데, 이들은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유랑 생활을 하던 시절부터 다윗 왕을 추종한 다윗의 용사들을 의미한다(삼상 23:13, 27:2). 이들은 압살롬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도 한결 같이 다윗 왕을 보좌하였던 충성된 일꾼들이었다(15:18). 다윗 왕은 이들까지 파견함으로써, 성중에 있는 모든 병력을 세바의 반란 진압에 투입하게 되었다.

 

20:8 기브온 큰 바위 곁에 이르매. ‘기브온’은 베냐민 지파의 성읍으로서(수 18:25), 이곳은 예루살렘 북서쪽이며 에브라임 산지에 위치해 있다(수 9:17). 당시 세바는 에브라임 산지에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아비새는 다윗과 요압의 정예 부대를 이끌고 이곳으로 간 것이다.

아마사가 맞으러 오니. 이는 아마사가 아비새의 군대 앞에 당도하였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아마사가 아비새의 군대와 만나게 된 경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1) 혹자는 아마사가 베냐민 지파에서 군사들을 징병해 오던 중 아비새의 군대와 우연히 마주치게 된 것이라고 해석한다(Lange). 그러나 이 견해는 유다 사람들만을 소집하여 오라고 한 다윗의 명령(4절)과 일치하지 않는다. 즉 아마사가 다윗의 명령을 어기고 베냐민 지파의 땅으로 가서 징병을 했다고 보기 보기는 매우 어렵다. (2) 따라서 아마사가 유다 지파에서의 징병을 이제 막 완료하고, 다윗 왕의 재가를 얻어 출동한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Pulpit Commentary, The Interpreter’s Bible). 즉 아마사는 세바 진압 작전의 사령관으로 아비새의 군대와 합류하기 위해 이들 앞에 당도한 것 같다.

그 때에 요압이. 요압이 당시 아비새의 군대에 있었다는 사실은 다소 특이하다. 왜냐하면 본 세바 진압 작전에서 다윗 왕이 요압의 출전을 명령한 사실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1) 본 구절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다윗 왕은 요압의 출전을 명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Keil). 그러나 이러한 추측은 이번 세바 진압을 계기로 요압 대신 아마사를 군장으로 등용하고자 하는 다윗의 의도와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연스럽지 못하다. (2) 오히려 요압은 아마사가 아비새의 군대와 합류할 것을 예상하고, 왕의 명령과는 상관없이 동생 아비새와 함께 동행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더 자연스럽다. 즉 요압은 자기의 자리를 빼앗은 아마사를 살해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아비새의 군대와 동행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Hertzberg, Wycliffe Bible Commentary). 이런 추측은 요압의 치밀하고도 독단적인 성격과 잘 어울린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나아갈 때에 칼이 빠져 떨어졌더라. 문법상 이 구절은 요압이 우연히 칼을 떨어뜨린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음에 벌어지는 상황과 연결시켜 볼 때, 요압은 고의적으로 칼을 떨어뜨렸을 가능성이 높다(Maurer, Böttcher, Wycliffe Bible Commentary).

 

20:9 내 형은 평안하냐. 요압과 아마사는 실제로 외사촌간이었다(17:25).

오른손으로 … 수염을 잡고. 당시 히브리인들은 입을 맞추기 위한 예비 동작으로 상대의 수염을 잡았다(Keil, The Interpreter’s Bible). 즉 이는 서로 친한 관계에 있는 자들이 포옹하여 입을 맞추는 인사를 하는 데 방해가 되는 수염을 옆으로 치우기 위한 행동이었다.

 

20:10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주의하지 아니한지라. (1) 혹자는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요압이 떨어뜨렸다가 다시 주운 칼이라고 주장한다(Lange). 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아마사는 분명히 요압의 그 칼을 주의했을 것이다. (2) 이렇게 볼 때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요압이 자기의 품속 어디엔가에 숨겨놓은 ‘단검’(短劍)이었다고 볼 수 있다(Hertzberg, Wycliffe Bible Commentary). 즉 요압은 자기의 칼을 떨어뜨림으로써 아마사를 안심케 한 후,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입마추는 순간 왼손으로 품 속에 있는 단검을 꺼내어 찌른 것이다. 이처럼 요압은 정치적인 원한과 질투로 인해 세 번째의 살인(3:27, 18:14)을 하였다. 물론 아마사의 죽음이 하나님의 심판이었다는 점에서 요압의 살인은 변명될 수 있을지 모르나, 그의 살해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분노와 질투심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변명할 수 없는 죄악이었다(마 5:22). 요압이 진정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였다면, 그의 원통함을 자신이 해결하려 들지 않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손에 의탁하였을 것이다(롬 12:19). 결국 이러한 요압의 방자하고 난폭한 행동은 다윗의 분노를 더욱 사게 되고, 후일 요압을 제거하라는 다윗의 유언(왕상 2:5, 6)을 받은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반역에 가담한 요압을 마침내 죽인다(왕상 2:28-35).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 뒤쫓을새. 이는 요압이 아마사를 살해한 후 아비새와 더불어 스스로 군대의 지휘자로 나선 것올 보여준다.

 

20:11 요압의 청년. 요압을 따르는 자들(7절) 중의 하나로, 곧 요압의 정예 부대의 한 군사를 가리킨다.

요압을 … 다윗을 위하는 자는 누구냐. 이는 요압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해 준 말이다. 즉 요압이 다윗의 군장인 아마사를 살해함으로써, 아마사의 모병에 응한 다윗의 국민병들은 다윗에 대한 요압의 충성을 의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요압의 측근인 이 병사는 요압과 다윗은 결국 같은 편이라는 의도로서 이와 같은 말을 한 것이다.

 

20:12 아마사를 큰길에서부터 밭으로. 요압을 옹호하는 병사의 말은 별 효력이 없었다. 왜냐하면 피를 흘리며 길바닥에 비참하게 쓰러져 있는 아마사의 시체를 보기 위해 많은 병사들이 멈추어 섰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병사는 백성들이 더 이상 멈추어 서 있지 못하도록 아마서의 시체를 대로에서 밭으로 옮겨놓았다. 그래도 효과가 없자, 그 병사는 외투를 벗어 아마사의 시체를 덮음으로써 그 시체가 더 이상 주의를 끌지 못하게 하였다.

 

20:13 사람들이 … 뒤쫓아가니라. 요압의 병사가 자기의 옷으로 아마사의 시체를 덮자, 멈추어 섰던 아마사의 징병군들이 요압을 따라갔다. 왜냐하면 당시 반란군을 진압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서는 아마사의 죽음의 원인을 밝힐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Fay). 이렇게 되자 아마사의 시체를 보지 못한 병사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요압을 따라간 것이다(Pulpit Commentary).

 

20:14 아벨과 벧마아가와 베림 온 땅에 이르니. ‘아벨’과 ‘벧마아가’는 납달리 지파의 최북단에 위치한 요새지이다. 그리고 아벨과 벧마아가는 서로 인접한 마을이었기 때문에, 두 지명을 연결하여 ‘아벨 벧마아가’라고 불리기도 하였다(15절, 왕상 15:20, 왕하 15:29). 또한 ‘아벨’은 대하 16:4에서 ‘아벨마임’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아벨마임’이란 말은 ‘목장’이란 뜻의 ‘아벨’과 ‘물’이란 뜻의 ‘마임’이 합성된 것이다. 즉 이곳에는 풍부한 물이 있어 넓은 초원 지대를 형성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이곳은 오늘날 말라버린 훌레(Huleh) 호수 북쪽 19 km 지점이며, 현대의 텔 아빌(Tell Abil) 마을이다. 한편 ‘베림’이란 이름은 이곳 이외에 어떤 지명이나 인명으로도 나타나 있지 않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말을 지명이나 인명으로 보지 않고, 다른 의미의 단어를 필사자가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다(F. R. Fay, R. Payne Smith, the Vulgate, LXX). 즉 이 말이 본래 (1) ‘모든 무장한 사람’(Thenius, Winer), (2) ‘모든 뽑은 사람’(Clericus), (3) ‘모든 젊은 사람’(Ewald, Böttcher)이었다고 각각 추측한다.

 

20:15 벧마아가 아벨로 가서 세바를 에우고. 이 구절은 요압의 군대가 세바의 반란군을 완전히 포위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세바가 도피한 요새지 아벨은 강한 성과 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요압의 군대가 쉽게 공략할 수 없었다(Lange).

그 성읍을 향한 지역 언덕 위에 토성을 쌓고. 여기서 ‘지역 언덕’은 히브리어로 ‘헬’인데, 주변에 방어용으로 만들어 놓은 외호(外濠), 또는 참호(塹壕)를 의미한다(Keil). 요압은 이곳에다 성벽 높이만큼 토성(土城)을 쌓았다. 이 토성의 목적은 높은 곳에서 성내의 방어 공격을 저지하기 위함이었다.

성벽을 쳐서 헐고자 하더니. ‘쳐서’에 해당하는 원어 ‘샤하트’는 ‘훼파하다, 멸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요압의 군사들이 성벽 자체를 완전히 무너뜨리려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혹자는 이 동사가 본래 ‘홈을 파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요압의 군사들은 성벽의 땅 밑을 파헤침으로써 성을 무너뜨리려 했다고 주장한다(Ewald, Josephus).

 

20:16 지혜로운 여인. 재치 있고 분별력 있으며 대담한 여인을 의미한다(14:2)

 

20:17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지파 간의 갈등을 틈 타 반역을 꾀했던 세바는 납달리 지역의 아벨 벧마아가를 본거지로 삼아 다윗의 군대에 대항했다. 이에 군사적으로 월등한 다윗 군대는 반란자 세바뿐만 아니라, 세바가 머물고 있는 아벨 성 전체를 초토화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성 주민을 참으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를 확신했던(19절) 한 지혜로운 여인의 중재로 성은 구원받고 요압의 무모한 살해 계획은 중지되었으며 반란자는 죽임을 당하였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의로우며 백성을 사랑할 줄 아는 자는 성을 구원하지만 불의한 자는 성을 욕되게 하고(잠 11:11, 14:35), (2) 악인에게는 어떤 곳도 진정한 도피처가 되지 못하며(시 139:7-12), (3) 악은 파괴성과 전염성이 강하여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을 멸망시키는 반면(창 34:1-27, 수 7:1-15, 롬 5:12), (4) 참지혜는 허다한 생명을 구원하며 복을 제공한다(잠 3:18, 35, 23:19).

 

20:18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 이는 아벨의 지혜자들이 그동안 이스라엘 내에서 발생한 여러 분쟁과 불화를 슬기롭게 해결해 준 과거의 사실을 언급한 말이다. 즉 아벨 성에는 지혜로운 자들이 많이 살기로 유명했기 때문에, 그 사실이 예로부터 격언화 된 것이다. 따라서 이 여인은 요압이 아벨의 성을 공격하기 이전에 지혜로 유명한 자기들과 먼저 상의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Hertzberg, Lange).

 

20:19 이스라엘의 화평하고 충성된 자 중 하나이거늘. 신 20:10-15에 보면, 어떤 성읍을 공격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규례가 언급되어 있다. 그것은 그 성읍을 공격하기 전에 먼저 화해를 시도할 것이며, 만일 상대가 화해에 응하면, 공격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아벨 성의 지혜로운 여인은 이러한 규례에 기초하여 자기와 자기의 성읍은 다윗의 군대에 대항할 마음이 없음을 밝히면서, 무조건 성을 무너뜨리려는 요압 군사들의 행동이 잘못 된 것임을 지적한 것이다(Wycliffe Bible Commentary). 즉 요압은 성을 무너뜨리는 작전을 수행하기 전에, 아벨 성 사람들이 세바에게 동조할 것인지 아니면 요압에게 협조할 것인지부터 알아봤어야 했을 것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이스라엘 가운데 어머니 같은 성. 여기서 ‘어머니 같은 성’은 단순히 규모가 큰 성이란 뜻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에서 중요한 성, 필요한 성, 또는 가치 있는 성이란 뜻이다(Lange). 즉 이 말은 아벨이 이스라엘의 골치 아픈 문제들을 풀어주는 귀한 성읍이란 뜻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이다(18절). 이 지혜로운 여인은 이와 같이 자기의 성읍이 가지는 이스라엘 내에서의 귀중한 위치를 설명함으로써 요압의 공성(攻城)을 중단시킬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육체적 힘은 미약하지만, 온 성읍 백성들을 구하는 이 여인의 지혜의 위력을 볼 수 있다(전 9:13-16, 삼상 25:23-31).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고자 하시나이까. 여기서 ‘여호와의 기업’이란 아벨 성읍이 하나님의 소유이며, 그 가운데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이 거주하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시 68:9, 74:2, 78:71, 94:14, 106:40). 그리고 ‘삼키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발라’는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다, 완전히 소비하다, 꿀꺽 삼키다’란 뜻으로, 이는 곧 무조건 아벨 성을 초토화시키고자 시도하는 요압 군대의 저돌적인 행위를 빗대어 한 말이다.

 

20:20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명분과 조리를 갖춘 여인의 지혜로운 말은 거친 성미의 요압일지라도 납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요압은 오히려 당황한 기색으로 자신의 행위를 설명하고 정중히 협조를 구한다.

 

20:21 그 일이 그러한 것이 아니니라. 이 구절에서 보면, 아직 이 여인과 아벨 사람들이 세바의 난에 대하여 알지 못했던 것으로 추측된다(Smith, Fay). 이 때문에 이들은 세바의 일당이 입성하는 것에 대하여 무관심하였고, 또 요압 군대의 공격을 의아하게 여겼다. 따라서 요압은 이 여인의 말에 답변하면서 당시 세바가 다윗을 대적하는 난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에브라임 산지 사람 … 세바. 에브라임 산지는 베냐민 지파의 지경에까지 뻗쳐 있다(삼상 1:1). 따라서 이 말은 1절의 ‘베냐민 사람 … 세바’와 상충되지 않는다.

너희가 그만 내주면. 여인의 말에 감동을 받은 요압이 기존의 성 초토화 방침을 바꾸어, 이 여인에게 적절한 조건을 제시하고 협상을 한다.

그의 머리를 … 내어던지리이다. 여인은 세바의 반란군이 군대의 수효나 사기 면에서 압도적으로 열세에 놓였음을 간파하고, 아벨 벧마아가 거민들을 설득시킬 수 있음을 확신한 듯하다.

 

20:22 여인이 그의 지혜를 가지고. 사태의 진상을 파악한 여인은 특유의 슬기로움으로 요압이 제시한 안(案)을 백성들에게 설득하여 승낙하게 만들었다. 혹자(Smith)는 전 9:13-15의 내용이 바로 이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추측하기도 한다.

이에 요압이 나팔을 불매. 이 나팔은 철수(撤收)의 신호였다. 1절 주석 참조.

무리가 흩어져 성읍에서 물러나. ‘무리’는 세바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모집된 국민병들이다. 이들은 모든 사태가 수습되자, 각기 자기의 거주지로 돌아갔다.

요압은 … 왕에게 나아가니라. 요압은 사태의 수습 과정과 결과를 다윗 왕에게 보고하였다.

 

20:23 23-26절. 다윗은 왕권 회복 이후 행정을 재조직하고 국가의 발전을 꾀하였다. 그런데 등용된 인물과 직책들을 보면 8:16-18의 내용과 거의 흡사하다. 그러나 ‘감역관’ 제도를 신설하고, 다윗의 대신(大臣)을 바꾸는 등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요압은 이스라엘 온 군대의 지휘관이 되고. 다윗 왕은 이번 작전에서의 요압의 공을 인정하고 그를 이스라엘 총사령관의 직에 임명하였다. 그러나 요압에 대한 다윗 왕의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즉 다윗 왕은 요압의 과거의 죄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왕상 2:5, 31). 다만 시므이의 경우처럼(19:22), 나라의 안정을 위하여 요압을 군장으로 임명하였을 뿐이다(Hertzberg).

브나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왕의 경호를 책임진 근위 대장이 되었다. 그리고 브나야는 다윗 사후 솔로몬 왕 때에는 요압 대신 군장이 된다(왕하 2:35).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 이들은 근위 대장 브나야 휘하의 왕의 근위대였다. 8:18 주석 참조.

 

20:24 아도람은 감역관이 되고. ‘감역관(監役官)’이란 부역(賦役)에 종사하는 일꾼들의 감독이었다. 아도람은 대대적인 건축 사업이 벌어졌던 다윗 후기 때부터 르호보암 통치 때까지 감역관으로 종사하였다(왕상 4:6, 5:14, 12:18). 한편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 왕을 요구했을 때, 사무엘은 그 왕이 강제 노역과 무거운 세금 등으로 백성을 괴롭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적이 있었는데(삼상 8:10-18), 이 ‘감역관’(히, 마스) 제도가 그 예언의 한 성취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아도람은 백성의 원성을 사서 돌에 맞아 죽게 된다(왕상 12:18).

사관. 사관(史官)은 궁중 일지를 기록하고, 또한 중요한 약속이나 업무를 왕에게 알려주는 사람이다(8:16).

 

20:25 스와는 서기관이 되고. ‘스와’는 8:17과 대조해 볼 때, ‘스라야’의 별칭인 듯하다(Lange, Pulpit Commentary, The Interpreter’s Bible). 한편, 서기관(書記官)은 공문서를 관리하며 서신 연락 사무를 관장하는 자이다(8:17).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 되고. 8:17, 15:24 주석 참조.

 

20:26 야일 사람 이라는 다윗의 대신이 되니라. 여기서 대신(大臣)은 왕의 고문을 가리킨다. 즉 백성들의 여론을 수렴하여 왕에게 충성스럽게 직고하는 신하이다(8:18). 그리고 야일 사람 ‘이라’는 8:18과 대조하여 보면, 왕의 대신으로 새롭게 발탁된 사람이다(Lange). 8:18에 의하면, 그동안 왕의 대신의 역할은 다윗 왕의 아들들이 담당해 왔었다. 그러나 압살롬의 난 이후 이제는 대신의 자리에 등용될 만한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이 직책에 새롭게 ‘이라’가 등용된 듯하다(The Interpreter’s Bible).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공지 만나 주석에 대해
24 사무엘하 만나 주석, 사무엘하 01장
23 사무엘하 만나 주석, 사무엘하 02장
22 사무엘하 만나 주석, 사무엘하 03장
21 사무엘하 만나 주석, 사무엘하 04장
20 사무엘하 만나 주석, 사무엘하 05장
19 사무엘하 만나 주석, 사무엘하 06장
18 사무엘하 만나 주석, 사무엘하 07장
17 사무엘하 만나 주석, 사무엘하 08장
16 사무엘하 만나 주석, 사무엘하 09장
15 사무엘하 만나 주석, 사무엘하 10장
14 사무엘하 만나 주석, 사무엘하 11장
13 사무엘하 만나 주석, 사무엘하 12장
12 사무엘하 만나 주석, 사무엘하 13장
11 사무엘하 만나 주석, 사무엘하 14장
10 사무엘하 만나 주석, 사무엘하 15장
9 사무엘하 만나 주석, 사무엘하 16장
8 사무엘하 만나 주석, 사무엘하 17장
7 사무엘하 만나 주석, 사무엘하 18장
6 사무엘하 만나 주석, 사무엘하 19장
» 사무엘하 만나 주석, 사무엘하 20장
4 사무엘하 만나 주석, 사무엘하 21장
3 사무엘하 만나 주석, 사무엘하 22장
2 사무엘하 만나 주석, 사무엘하 23장
1 사무엘하 만나 주석, 사무엘하 24장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

All the Bibles, Commentaries and Dictionaries here have their own rights.
All rights are reserved for them, not for us. Thanks! Praise our great God, Christ Jesus!

HANGL Lingua Franca 한글 링구아 프랑카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