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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오늘 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추적하여. 여기서 ‘오늘 밤’은 다윗 왕이 예루살렘에서 급히 도망가고(15:14-16) 압살롬이 예루살렘에 입성한 바로 그날(15:37, 16:15) 밤을 가르킨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따라서 아히도벨의 이와 같은 모략(謀略)은 다윗에게 약간의 쉴 여유도 주지 않고 바로 뒤따라가 다윗을 처치하자는 계략이었다. 사실 이러한 아히도벨의 상황 판단은 아주 정확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다윗은 피곤한 몸으로 바후림(또는 아예핌) 부근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곳은 예루살에서 밤 사이에 충분히 도착하고도 남는 요단 강 근처였기 때문이다. 16:14 주석 참조. 그러므로 만일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모략대로 정예군을 급파하였더라면 다윗은 꼼짝 못하고 칼에 죽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Wycliffe).

 

17:2 힘이 빠졌을 때에.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르페 야딤’은 직역하면 ‘손들이 무력해질 때’란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손들’이란 말은 성경의 용례들을 살펴볼 때 대개 ‘힘’을 상징하는 말이다(레 12:8, 14:21, 32, 민 6:21, 신 3:24, 16:10, 시 89:48, 겔 8:1).

그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이와 같은 아히도벨의 예견(豫見) 또한 아주 정확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지금 다윗을 따르고 있는 무리들은 소수의 시위병들과 육백 명의 용사들(15:18)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무장하지 아니한 오합지졸(烏合之卒)이거나 선량한 백성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15:17 주석 참조. 따라서 압살롬의 정예부대가 엄습(掩襲)할 경우 아히도벨의 예견대로 이들은 모두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흩어질 것이 분명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아히도벨의 놀라운 통찰력을 보게 된다.

다윗 왕만 쳐죽이고. 다윗 왕만을 쳐죽이겠다는 아히도벨의 이같은 모략은 치밀한 계략에서 나온 것이었다. 즉, 아히도벨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의 대다수가 압살롬을 지지하고 있으며(15:12), 현실적으로 실제적인 왕위 계승권자였기 때문에(대상 3:1-9) 무의미한 살인을 감행할 필요가 없다고 계산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단지 다윗 왕만 처치하면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압살롬 아래로 몰려들게 될 것이라는 것이 아히도벨의 치밀한 계산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이사도벨의 무서울 정도로 치밀한 지략(智略)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실상 이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침해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자극하는 것이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아히도벨이 제거하려한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이스라엘의 왕이었기 때문이다(삼상 16:1-13).

 

17:3 모든 백성이 당신께 돌아오게 하리니. 여기서 ‘모든 백성’이란 온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당시 다윗 왕을 추종하던 세력들을 의미한다. 16:15 주석 참조. 따라서 본 절로 보아 아히도벨은 다윗이 사망한 이후에는 다윗 왕을 추종하던 자들일지라도 이미 사망한 왕을 더 이상 따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여기서 아히도벨은 ‘돌아오게 하다’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곧 그가 다윗의 추종자들을 국가의 반란자들로 그리고 압살롬의 정권(政權)을 정통성 있는 정권으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즉 아히도벨은 이같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압살롬에게 은연 중 아부하고 있었던 것이다(Keil, Lange). 한편, 70인역(LXX)에서는 본 절 다음에 ‘마치 신부가 자기 남편에게로 돌아옴과 같이 … ’란 구절을 첨가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말은 압살롬을 신랑에다, 국가 또는 백성들을 신부에다 비유한 것으로 곧 압살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아히도벨의 아첨이라고 볼 수 있다(Ewald, Thenius, Payne). 그러나 이 구절이 원문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정말로 아히도벨이 이러한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Keil, Lange).

왕이 찾는 이 사람에게 달렸음이라. 이는 다윗 추종자들이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느냐 오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순전히 다윗의 생사(生死) 여부에 달린 문제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다윗이 죽기만 하면 백성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압살롬에게로 오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Pulpit Commentary, Keil).

 

17:4 그 말을 옳게 여기더라. ‘옳게 여기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샤르’는 ‘좋아하다, 기뻐하다, 바르게 여기다’는 뜻(삿 14:3,7 민 23:27, 삼상 18:26, 시 119:128)인데, 이 단어의 형용사형 ‘요쉐르’는 ‘마땅히 행해야 하는’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욥 33:23, 잠 14:2). 따라서 본 절이 의미하는 바는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 모두가 아히도벨의 말을 기뻐하면서 마땅히 행해야 할 것으로 여겼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죄로 인해 부패해진 인간들의 이성적 판단이 얼마나 그릇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절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기의 친아버지 다윗을 죽이자는 제안에 스스럼 없이 ‘옳게 여긴’ 압살롬이나, 지금껏 섬겨오던 자신들의 왕 다윗을 쳐죽이자는 제안에 동조한 이스라엘 장로들이나 모두 다 건전한 이성(理性)을 지녔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17:5 아렉 사람 후새도 부르라. 압살롬이 후새를 불러 그의 견해를 경청코자 한 사실로 보아 이제 후새는 아히도벨 못지 않게 압살롬으로부터 대단한 신임을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Lange). 그런데 이와 같은 상황은 다윗을 구원하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였음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14절). 왜냐하면 아무것도 아닌 듯이 보이는 압살롬의 이 작은 조치 하나로 말미암아 이제 이스라엘의 역사가 뒤바뀌어지기 때문이다(17:14-26).

 

17:6 없음.

 

17:7 이번에는 아히도벨이 베푼 계략이 좋지 아니하니이다. 이는 아히도벨의 계략이 지금까지는 올바른 것이었지만 이번 만큼은 잘못된 것이라는 후새의 주장이다. 즉 후새는 다윗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15-26절) 아히도벨의 계략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17:8 왕의 아버지와 그의 추종자들은 … 격분하였고. 이와 같은 후새의 주장은 다윗이 지금 기진맥진해 있다고 한 아히도벨의 주장(2절)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즉 후새는 아히도벨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다윗과 그 추종자들은 용사(勇士)들이며 지금은 예루살렘 성을 빼앗긴 일로 인하여 격분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즉시 군사적인 행동을 개시하자고 주장한(1절) 아히도벨의 모략을 분쇄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의 위급한 상황을 최대한 호도(糊塗)하여 다윗을 위기에서 구하려는 후새의 절실한 노력을 볼 수 있다. 한편, 후새가 본 절에서 다윗과 그 추종자들을 ‘새끼를 빼앗긴 곰’에다 비유한 것은 의도적이었다. 여기서 곰은 팔레스타인에서 유일하게 발견되는 시리아의 갈색 곰을 가리키는데(Wycliffe), 이것은 매우 사나운 것으로 이름나 있다(잠 17:12, 호 13:8). 즉 후새는 다윗과 그 종자들을 사나운 시리아의 갈색 곰에다 비유함으로써 지금 심히 약화된 다윗의 실제 전력(戰力)을 압살롬이 직시하지 못하도록 꾀하였던 것이다(16:14).

왕의 부친은 전쟁에 익숙한 사람인즉. 이러한 후새의 주장 또한 기습 공격시 쉽게 승리롤 이끌어낼 것이라고 한 아히도벨의 낙관적인 주장(2절)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었다. 즉, 후새는 아히도벨이 아무리 기습 공격을 한다 하더라도 다윗은 병법(兵法)에 뛰어난 사람이므로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그리 용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과거 다윗이 사울 왕으로부터 도피할 때 실제로 많은 추격 부대를 여러 차례 따돌린 바 있고(삼상 24:1-22, 26:1-15), 또한 그가 뛰어난 지략가라는 사실은 이미 압살롬과 그 신하들이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후새의 주장은 그들에게 상당한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Matthew Henry’s Commentary).

 

17:9 혹 무리 중에 몇이 먼저 엎드러지면.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모략대로 정예 부대를 파견할 경우(1-4절) 압살롬과 다윗 진영은 사실상 최초의 전투를 벌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후새는 이 최초의 전투에서 기습 공격에 능한 다윗 군에게 압살롬의 군대가 패배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7:10 사자 같은 마음을 가진 용사의 아들일지라도 낙심하리니. 이는 최초의 전투에서의 패배가 몰고올 압살롬 군대의 심각한 사기저하(士氣低下)를 예상하는 후새의 말이다. 즉 ‘사자’는 성경에서 대개 두려움을 모르는 용맹스러운 자를 상징하는 바, 여기서는 압살롬의 용맹스런 군사를 의미한다(1:23, 창 49:9, 사 38:13, 벧전 5:8). 그리고 ‘낙심하리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히메스 이마스’는 ‘완전히 녹아버리다’ 또는 ‘완전히 낙담하다’는 뜻이다(시 22:14, 112:10, 사 34:3 겔 21:7, 나 2:10). 따라서 본 절을 해석하면 아무리 용맹스러운 압살롬의 군사라도 그 마음이 완전히 낙담해 버릴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같은 후새의 논리는 매우 그럴듯 하다. 왜냐하면 군사전략상 최초의 전투는 전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에 있을 전투는 압살롬 진영과 다윗 진영의 실세(實勢)를 판단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이같이 중요한 최초의 전투에서 압살롬의 군대가 그 일부라도 다윗 군의 기습 작전에 말려들어 패하게 된다면, 그 소문이 온 군대에 퍼져 그들의 사기가 크게 저하될 것은 당연했다. 특히 압살롬의 군대는 반란 동조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난이 실패할 경우 국가의 법에 따라 처벌 될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후새는 바로 이와 같은 논리로써, 만약 실패할 경우 너무나도 큰 손실을 보게 될 이번의 성급한 출전을 포기하도록 압살롬을 회유(懷柔)하고 있다.

 

17:11 온 이스라엘을 … 당신께로 모으고 친히 전장에 나가시고. 아히도벨의 모략(1-3절)을 대신하는 후새의 대안(代案)이다. 여기서 후새는 이스라엘의 국민병(國民兵)을 온 지파에서 모집할 것을 제안한다(Matthew Henry). 이러한 후새의 제안은 압살롬이 국민병을 모집하느라 시간을 지체하는 동안 다윗 왕으로 하여금 당시의 위급한 상황을 모면케 하기 위한 교묘한 방책이었다(15-26절). 그런데 이같은 후새의 제안은 자기들이 갖고 있던 모든 힘을 한 번 과시해 볼 수 있는 매혹적인 기회라는 점에서 압살롬과 그 신하들의 마음을 끌었다(Clericus). 또한 여기서 후새는 압살롬이 이스라엘의 총병력을 이끌고 전장에 나가 진두지휘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는 실상 압살롬을 전장(戰場)에 끌어들이기 위한 계략이다. 즉 반란의 주모자인 압살롬이 전장에 나가서 죽거나 포로가 된다면 반란은 끝이 나기 때문에 후새는 압살롬 자신이 친히 전장에 나가도록 부추겼던 것이다(18절). 그런데 이러한 후새의 제안은 압살롬의 영웅 의식을 자극하였다. 즉, 거대한 군대를 친히 지휘한다는 것은 새로운 통치자 압살롬에게 있어 매력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후새의 제안은 압살롬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였던 것(14절)이다(Payne). 우리는 여기서 압살롬과 그 신하들의 마음을 교묘히 움직여, 당시 상황에서 최선책이었던 아히도벨의 모략을 따르지 못하도록 하는 후새의 뛰어난 활동을 보게 된다. 그러나 사실 후새의 이러한 계략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배후에서 역사하셨기 때문이다(14절). 즉 하나님께서는 비록 다윗의 죄에 대하여서는 징계할지라도, 그의 생명과 나라는 끝까지 지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 바(7:14-16, 12:9-13) 이제 그에 따라 다윗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파하신 것이다.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단은 팔레스딘 최북단에 위치한 성읍으로 일명 ‘라이스’, ‘레센’으로도 불리운다(수 19:47). 그리고 브엘세바는 팔레스타인 최남단에 위치한 성읍으로, 과거 사무엘의 아들들이 사사가 된 곳이다(삼상 8:2). 따라서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는 말은 이스라엘 전국토를 의미하는데(24:2, 15, 삼상3 :20), 본 절 역시 그러한 의미이다. 삿 18:29 주석 참조.

 

17:12 이슬이 땅에 내림 같이 … 위에 덮여. 여기서 ‘덮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누아흐’는 ‘앉다’라는 뜻으로 이슬이 내려앉는 것 외에도 황충(蝗蟲)의 떼가 농작물을 갉아먹는 모습(출 10:14), 혹은 파리 떼나 꿀벌 떼가 먹이를 공격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사 7:19). 따라서 본 절은 엄청난 다수로써 소수를 몰아붙이는 인해전술(人海戰術)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임을 알 수 있다(Wycliffe). 그런데 후새가 제안한 이러한 전술은 많은 시간을 요하는 전술로서, 일찍이 제시됐던 소수의 민첩한 정예 부대를 파견하여 순식간에 다윗을 살해하자는 아히도벨의 모략(1, 2절)과는 정반대 되는 것이다.

 

17:13 그가 어느 성에 들었으면 … 그 곳에 작은 돌 하나도 보이지 아니하게 할 것이니이다. 다윗이 요행히도 성 안으로 도피할 경우 밧줄로 그 성과 시설물들을 묶어 모조리 강으로 끌어내리자는 뜻이다. 물론 이는 과장된 표현이다. 즉 여기서 후새는 이스라엘 대중의 힘을 과장하여 표현함으로써, 인해전술로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자신의 제안(11, 12절)을 더욱 그럴듯하게 보이려 한 것이다(Keil and Delitzsch Commentary).

 

17:14 압살롬과 온 이스리엘 사람들이 …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 하니. 압살롬과 그의 추종자들이 당시로서는 최고의 전략이었던 아히도벨의 계략(1-3절)을 거부하고, 그보다 못한 전략이었던 후새의 계략을 받아들이는 장면이다. 이는 압살롬 진영의 치명적인 실책(失策)이었다. 여기서 이러한 압살롬의 치명적인 실책의 원인을 분석해 보면 두어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압살롬이 앞으로의 정세를 지나치게 낙관하였기 때문이다. 즉, 압살롬은 앞으로도 다윗의 세력은 미미할 것이나 자기의 세력은 국민병의 모집으로 인해(11절) 크게 획장될 것이라고 낙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의 낙관과는 달리 다윗에게는 뜻하지 않은 군사적 원조가 들어왔으나(27-29절) 압살롬은 거국적인 국민병 모집에 실패한 듯하다(Keil, Lange). (2) 압살롬이 후새의 아첨에 우쭐하였기 때문이다. 즉, 그는 이스라엘 총병력의 지휘자가 되라는 후새의 아첨(11절)에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직관력(直觀力)을 상실하고 말았다(Payne). 이와 같은 사실에서 우리는 압살롬의 통치능력(統治能力)의 부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자만심에 빠지지 않은 다윗의 자세와는 현저히 비교된다(5:19, 23).

여호와께서 … 명령하셨음이더라. 아히도벨의 계략이 파기되는 대신 후새의 모략이 채택되는 것과 같은 결정적인 사태의 변화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였음을 보여준다. 즉 하나님께서는 모략과 술수가 팽배하던 압살롬의 군사 회의에 마치 친히 참석하셨던 것과도 같이 역사하사 악인들의 불의한 모략을 결국 파하신다. 이런 점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하심이 의인에게는 평안과 복을 뜻하지만 악인에게는 파멸과 심판을 의미할 뿐임을 확인할 수 있다(요 1:14, 14:16).

 

17:15 후새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이르되. 사독과 아비아달은 모두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으로서, 앞서 압살롬의 난을 피해 도피하는 다윗 왕과 함께 동행하려 했으나 다윗 왕이 압살롬의 정세를 캐내도록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낸 자들이다(15:24-29). 따라서 후새는 이제 이들을 통하여 중요한 정보를 다윗에게 전하기 위해 이들과 접촉하고 있다.

나도 이러이러하게 계략을 세웠으니. 후새는 두 제사장들에게 아히도벨의 모사(1-3절)는 물론 자신이 압살롬에게 베푼 모사의 내용(7-13절)까지도 전달해 준다. 이와 같이 후새가 자신의 모사를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알려준 것은 다윗으로 하여금 앞으로 압살롬의 전술에 맞설 적절한 작전을 세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18:1-5).

 

17:16 오늘밤에 … 건너가소서. 여기서 ‘오늘밤’은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피신해 나오고 압살롬이 예루살렘에 들이닥친 바로 그 날 밤을 의미한다. 1절 주석 참조. 그런데 후새가 여기서 그날 밤 다윗더러 요단 강을 건너라 일러준 것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즉, 후새는 압살롬으로 하여금 아히도벨의 계략을 따르지 못하도록 이미 그럴 듯한 모사를 베풀었고(7-13절) 또한 압살롬과 그 신하들이 자기의 모사에 동의한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14절), 아직 최후 결정이 내려진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불안감을 가지고 다윗에게 빨리 강 건너 요단 동쪽 땅으로 피신하라고 통보하였던 것이다(The Interpreter’s Bible, Keil, Payne).

 

17:17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 머물고.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는 대제사장 아비아달과 사독의 아들들이며 제사장들이었다(15:27). 이들은 현재 사독과 아비아달이 캐낸 예루살렘 성내의 정보를 받아 다윗에게 연락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15:36). 따라서 이들은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예루살렘 성 밖에서 정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에느로겔 가에 머물고’라고 기록되었는데 여기서 ‘머물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마드’는 ‘서있었다’는 뜻이다(창 19:27, 신 4:10, 19:17, 삼상 19:3, 왕하 5:11, 시 106:23, 사 61:5, 호 10:9). 따라서 여기서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는 연락원으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긴장한 가운데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이라는 위기 상황을 무사히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같이 그늘에서 말없이 그리고 충실하게 봉사한 헌신적인 일꾼들이 있었기 때문임은 재차 강조할 필요가 없다.

에느로겔. 에느로겔은 ‘방랑자의 샘’ 또는 ‘풍성한 샘’이라는 뜻이다. 이 샘은 예루살렘 남동쪽의 기드론 골짜기(15:23)에 위치하였는데, 수맥(水脈)이 골짜기의 지하수층에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강우량이 많은 겨울철에는 지하수가 분출하여 골짜기로 흘러넘치곤 하였다. 따라서 그 이름과 같이 오고가는 나그네들은 이곳에서 충분한 안식을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혹자는 에느로겔이 ‘욥의 우물’과 같은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는데(Keil, Pulpit Commentary), 오늘날의 ‘비르 아이읍’(Bir Ayyub)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떤 여종은 그들에게 나와서 말하고. 여기서 ‘여종’이란 말 앞에는 정관산 ‘하’가 붙어 있다. 히브리어 문법에서 정관사는 종종 특별한 임무를 위해 선택된 자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곤 하는데 본 절의 경우 역시 이에 해당한다. 즉 본 절에 등장하는 여종은 사독과 아비아달이 요나단과 아히마아스에게 중요한 정보(15, 16절)를 전달하기 위해 임무를 맡겨 보낸 특별한 종이다(Wycliffe, Lange).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여종은 가사(家事)를 돌보거나 물을 길어오는 일 등을 주로 하였다. 따라서 이 여종은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고 물을 길으러 나오는 척하면서 자연스럽게 에느로겔에 나올 수가 있었을 것이다.

 

17:18 한 청년이 그들을 보고 압살롬에게 알린지라. 여기서 ‘한 청년’은 압살롬이 다윗의 은밀한 첩보활동(諜報活動)을 차단하기 위해 풀어놓은 첩자(諜者)라고 볼 수 있다(Pulpit Commentary, Keil). 그것은 이 청년이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압살롬에게 알렸기 때문이다. 또한 ‘청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아르’가 성경에서 ‘부하’, 또는 ‘종자’(從者)라는 의미로도 많이 사용된 점이 이를 뒷받침 해준다(18:15, 삿 7:10,11, 8:14, 느 4:16, 22, 23, 5:10, 15, 16, 6:5). 한편 이러한 압살롬의 첩자의 눈에 비친 요나단과 아히마아스의 행동은 이 첩자의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제사장들인데도 불구하고 성막이 있는 예루살렘(6:12-19)을 떠나 성 밖에 에느로겔 가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남달리 긴장된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신분이 다른 하층 계급의 여종과 은밀히 내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첩자는 이들을 다윗의 연락원으로 단정하고 압살롬에게 즉각 이 사실을 알렸던 것이다.

바후림 어떤 사람의 … 우물 속으로 내려가니. 바후림은 예루살렘에서 감람 산을 넘어 요단 강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위치한 곳이다. 16:5 주석 참조. 일찍이 이곳은 다윗 왕이 압살롬으로부터 도피할 때 시므이로부터 혹독한 저주를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같은 장소에서 다윗의 연락원들이 한 여인으로부터 귀중한 도움을 받고 있다. 한편, 바후림의 여인이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를 숨겨 주었던 ‘우물’은 물을 저장해놓는 수조(水槽)를 의미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물이 귀한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집집마다 수조를 설치해 놓고 거기다 물을 길어 저장하던 것이 보통이었기 패문이다. 추측컨대 아마도 당시는 때마침 건기(乾期)여서 수조가 비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는 그곳에 안전하게 숨을 수 있었을 것이다(Pulpit Commentary, Keil). 아무튼 이들이 수조 속에 숨었다는 사실은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위급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Hertzberg).

 

17:19 덮을 것을 가져다가 … 그 위에 널매. 여기서 ‘덮을 것’이란 수조의 뚜껑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위에 널어놓은 ‘찧은 곡식’이란 아마도 ‘껍질깐 보리’(잠 27:22)를 의미하는 듯하다(Keil, Pulpit Commentary). 아무튼 여인의 이같은 행동은 마치 곡식을 햇볕에 말리기나 하는 듯이 뚜껑 위에 널어놓음으로써, 아무도 수조 속에 사람이 숨어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한 기만책(欺瞞策)이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여인의 행동은 자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감행한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이는 곧 가나안 정탐꾼들을 숨겨준 라합의 용기를 연상시킨다(수 2:4-6). 한편. 만일 이 여인의 이와 같은 도움이 없었더라면 요나단과 아히마아스 두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요단 강 나루터에 있던 다윗과 그 일행 또한 모조리 몰살당하는 위험에 처했을 것이다(21, 22절, 15:2).

 

17:20 그들이 시내를 건너가더라.. 여기서 ‘시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칼 하마임’은 ‘작은 시내’ 또는 ‘개울’을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는 기드론 시내(15:28)가 아닌 바후림 근처의 작은 시내를 가리키는 것 같다(Pulpit Commentary).

 

17:21 빨리 물을 건너가소서. 여기서 ‘물’은 요단 강을 가리킨다. 요나단과 아히마하스는 바후림에서 위기를 넘기고 요단 나루터(15:28)에 이른 후, 다윗 왕에게 압살롬의 추격을 피해 빨리 요단 강을 건너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라는 후새의 전갈(15, 16절)을 전해 준다.

 

17:22 새벽에 까지 … 건너지 못한 자가 없었더라. 이처럼 밤 사이에 다윗과 그의 온 일행이 요단 강을 건넜다는 사실은 군사 전략상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 이는 무엇보다 먼저 아히도벨의 모략이 실패로 돌아간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아히도벨의 모략은 다윗이 요단 강을 건너기 전에 그를 급습하여 살해하자는 것(1, 2절)이었기 때문이다. (2) 또한 다윗이 요단 강을 건넜다는 것은 일단 압살롬으로부터의 위기를 모면하였을 뿐만 아니라 군사력을 재정비할 시간적인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다윗의 요단 강 도하(渡河) 사건은 완전한 성공을 눈앞에 두었던 압살롬의 반역 일정(日程)을 완전히 바꾸어 버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7:23 아히도벨이 …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압살롬의 모사(謨士)인 아히도벨이 이처럼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 것은, 무엇보다도 앞으로의 사태를 예견하는 뛰어난 능력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아히도벨은 자신의 모략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제 압살롬 정권의 연한이 다하였음을 감지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모략이 선택되지 못한 것에 대한 서글픔과, 앞으로 다윗 왕에게 당하게 될 자신의 비참한 처지에 대한 공포심과 수치심에 못이겨 자살의 길을 택하였다(Lange). 한편, 이러한 아히도벨의 죽음은 무엇보다 다음과 같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큰 사건이었다. 즉 아히도벨의 죽음은 압살롬이 이제부터는 다윗 왕을 이길 만한 좋은 계략을 더 이상 얻을 수 없게 되었다는 불리한 상황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은 온갖 지혜를 동원하여야 할 반란군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치명적(致命的)인 손상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아히도벨의 죽음은 곧 압살롬의 죽음(18:9-15)을 예고하는 서막(prelude)이었다(Hertzberg). 이상과 같은 사실에 의거할 때 결국 아히도벨의 죽음은 다윗의 간절한 기도(15:31)가 최종적으로 응답된 것이며 불의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의의를 지닌다(Lange). 이처럼 아히도벨의 자살은 불의한 자의 비참한 말로를 보여주는 좋은 예로서, 우리는 이와 비슷한 유형을 훗날 가룟 유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마 27:5, 행 1:18).

고향으로 돌아가. 아히도벨의 고향은 유다 산지에 위치한 성읍 길로였다. 15:12 주석 참조.

 

17:24 마하나임. 한때 이스보셋 왕국의 수도였던 마하나임은 갓 지파와 므낫세 반(半) 지파의 기업 경계(基業境界)에 위치해 있었다(2:8 주석 참조). 따라서 이곳은 군사 모집에 유리한 이점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성벽과 성문이 있는 요새화된 성읍이었기 때문에(18:24) 다윗의 임시 정부의 거점(據點)으로서 안성마춤이었다. 한편, 이곳은 과거 야곱이 천사들을 만나 복을 받았던 유서깊은 성읍인데(창 32장), 이제 다윗도 이곳에서 야곱처럼 하나님이 보내신 세 사람의 도움(27-29)을 받게 된다(C. J. Goslinga).

압살롬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함께 요단을 건너니라. 이는 압살롬이 이스라엘의 국민병을 모집하여 인해전술을 사용하자는 후새의 제안(11절)을 따랐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압살롬이 대군을 이끌고 요단 강을 건너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을 터인데, 그동안에 다윗은 반격의 태세를 갖추었음이 분명하다(18:1-5). 한편 압살롬이 이처럼 친히 대군을 이끌고 요단 강을 건넜다는 것은 이제 그가 두 가지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되었음을 뜻한다. 그 중 하나는 다윗 진영이 요새화된 뒤 마하나임에 안전한 본부를 둔 반면에 압살롬 진영은 무방비 상태의 들에 진을 쳐야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다윗 왕이 마하나임 성읍에서 군사를 지휘한 반면(18:3) 압살롬은 직접 전쟁에 나섬으로써 다윗 왕보다 훨씬 더 죽음의 위험이 컸다는 점이다(Payne). 그런데 이는 바로 후새가 의도한 바였다. 즉 후새는 바로 이러한 상황을 유도해 내려고 압살롬에게 아히도벨의 것(1-3절)과는 반대되는 모사를 베풀었던 것이다(11절).

 

17:25 아마사. 다윗의 조카이자 요압의 사촌이다(대상 2:13-17). 따라서 그는 압살롬과는 고종 사촌간이다. 혹자는 아마사가 다윗의 30인 용사의 두목인 아마새(대상 12:17, 18)와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하나(Ewald, Bertheau, Pulpit Commentary), 확실치는 않다. 한편 아마사는 압살롬 사후에 다윗의 군장(軍長)이 되었으나 기회주의자인 요압에게 살해당하였다(20:10).

이스라엘 사람 이드라. 아마사의 아버지인 이스라엘 사람 이드라는 대상 2:17에서는 ‘이스마엘 사람 예델’ 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여기서 ‘예델’은 ‘이드라’의 축약형 이라고 볼 수 있다(Pulpit Commentary).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이드라가 과연 ‘이스마엘’ 사람인지 아니면 ‘이스라엘’ 사람인지 분명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대상 2:17의 기록대로 그는 이스마엘 사람인 것 같다. 왜냐하면 구약 성경에서는 외국인이 아닌 경우에는 그 사람의 국적을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The Interpreter’s Bible). 이렇게 볼 때 이드라는 이스마엘 사람인 것이 분명해지는데, 그렇다면 그를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한 본 절의 기록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대개의 학자들이 이드라가 이스마엘 사람이었으나 이스라엘 여인(아비갈)에게 장가들어 붙여진 명칭이라고 주장한다(Hertzberg). 즉. 이드라는 본래 이방인이었으나 아내와의 연고(緣故)로 이스라엘인으로 국적을 바꾼 외국인(히, 게르)이었다는 말이다.

나하스의 딸 아비갈. 아비갈은 일명 아비가일로도 불렸는데, 곧 다윗의 누이인 스루야와 자매지간이다(대상 2:16). 그러나 나하스가 누구인가에 대하여서는 분명히 알려진 바가 없다. 따라서 학자들은 여러 주장들을 내세우고 있는데 곧 다음과 같다. (1) 나하스는 아비갈의 첫 남편이었다는 견해이다(Hertzberg, Michaelis, Schultz). 그러나 이는 아비갈이 나하스의 딸이라고 분명히 못박고 있는 본 절과 상치된다(공동번역). (2) 나하스는 다윗의 아버지 이새의 둘째 부인이었다는 견해이다(Movers, Thenius). 그러나 히브리 사회에서 ‘나하스’란 이름은 남자의 이름이었다(Pulpit Commentary). (3) 나하스는 이새의 별명이었다는 견해이다(Kimchi, Pulpit Commentary). 그러나 본서 저자가 혼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이새의 별명을 사용한 까닭을 이해하기 어려우며, 또한 나하스가 이새의 별명이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없다(Keil). 이상에서처럼 기금껏 제시되고 있는 학자들의 견해 중 어느 정도라도 타당성을 지닌 견해는 아직 없다. 그러면 과연 나하스는 누구일까? 이에 대하여 우리는 본 절 자체에서 중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곧 본서 저자가 나하스의 딸 아비갈을 스루야의 동생으로 소개하고 있는 점이다. 즉, 여기서 저자는 왜 아비갈을 직접적으로 다윗의 누이라고 소개 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분명 아비갈이 다윗의 완전한 동생(full sister)이 아니기 때문이었음을 증거해 준다. 즉, 아비갈은 스루야와는 완전한 자매지간이었으나 다윗과는 아버지가 다르고 어머니만 같은 이부동복(異父同服)의 관계였다. 따라서 본서 저자는 아비갈을 다윗과의 관계에서 보다는 스루야와의 관계에서 소개한 것이다. 그렇다면 본 절의 문자 그대로 나하스는 아비갈의 아버지임이 분명하다. 때문에 공동번역도 나하스를 가리켜 아마사의 외조부(外祖父)로 언급하고 있다.

 

17:26 압살롬이 길르앗 땅에 진 치니라. 여기서 압살롬의 군대 장관 아마사(25절)의 이름이 빠져 있고 대신 압살롬의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길르앗 땅에 진 친 이스라엘 병력을 압살롬이 직접 진두 지휘하였음을 알 수 있다(Hertzberg). 따라서 이제 압살롬은 그를 위험에 처하게 하려 한 후새의 계략에 말려든 셈이다. 11절 주석 참조.

 

17:27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 소비는 암몬의 전왕(前王) 나하스의 아들이며 하눈의 동생이다(10:1 주석 참조). 그가 이제 다윗에게 와서 도움을 준 것으로 보아, 그는 자기의 형 하눈과는 달리 자기 아버지 나하스와 다윗 왕 간의 친분 관계를 기억하고 다윗과의 교제를 유지하려 한 듯하다(Ewald). 아니면 그는 랍바 성이 정벌당한 후(12:26-31) 다윗에 의해 어느 지역의 통치자로 임명받았을 가능성이 높다(The Interpreter’s Bible).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 마길은 일찍이 요나단의 아들 절뚝발이 므비보셋을 보호해 준 사람이다(9:4). 아마도 그는 지난 날 므비보셋에게 큰 사랑을 베풀었던 다윗의 호의를 기억하고 지금 다윗을 도우러 왔을 것이다(Pulpip Commentary, Payne). 즉 그는 다윗의 인격에 감명을 받은 한 사람으로서, 이제 위기에 빠진 다윗을 생각하고 그를 도왔다.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 로글림은 길르앗의 한 성읍인 바, 바르실래는 이 성의 거부였다(19:32). 이 사람이 다윗을 도우러 온 이유에 대하여서는 확실히 알 길이 없으나, 아마도 다윗 왕의 훌륭한 통치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을 가능성이 높다(Payne). 즉 길르앗(Gilead)은 요단 강 동편의, 북으로는 야르묵 강에서 남으로 아르논 강 사이에 있는 광활한 땅인 바아람 사람들의 침략이 용이한 지역이었다. 삿 5:17 주석 참조. 그러나 이제 다윗의 강력한 군사 행동으로 말미암아 이 지역은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8장). 따라서 이 지역의 부호들은 다윗 왕의 강력한 통치에 상당히 감사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다윗에게 나아온 사람들이 모두 다윗 왕의 인격이나 통치력에 감복(感服)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다윗이 평소에 얼마나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으로써 백성을 다스리려 힘썼는지를 충분히 짐작케 해준다(8:15).

 

17:28 28-29절. 이처럼 소비, 마길, 바르실래가 다윗 일행에게 제공한 물건들은 전쟁을 준비하는 병사들에게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필수품(必需品)들이었다. 그중 여기서 침상(히, 미쉐캅)은 담요 등의 침구를 가리킨다. 그리고 ‘대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폿트’는 본래 대접이란 뜻이나, 여기서는 야외용 가마솥을 의미하는 듯하다(Lange, Keil). 또한 ‘볶은 곡식’과 ‘볶은 녹두’는 히브리 원어에서는 모두 같은 단어인 ‘칼리’인 바, 추추컨대 이는 각기 다른 곡식들을 볶은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Lange, Pulpit Commentary). 아무튼 황급히 피신하느라 제대로 행장(行裝)을 갖추지 못했던 다윗 일행(15:13-18)에게 이처럼 풍성한 구호물이 제공된 것은, 다윗을 지켜 보호하리라 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7:8-16).

 

17:29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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