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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블레셋 …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여기서 ‘블레셋’은 가드 왕 아기스를 포함한 그들 모든 족속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전투는 블레셋의 다섯 부족들의 연합군에 의해 발발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5:8, 29:2, 3). 그 때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 전투(에벤에셀 전투, 4:1-11) 이후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번번히 패전한 것에 대하여 복수를 하기 위해 대규모의 군사력을 총동원하였을 것이다(14:52, 17:50-53, 18:6, 30).

너와 네 사람들이 … 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 이같은 아기스의 요구는 그에게는 당연하였다. 왜냐하면 바로 이같은 일을 위하여 아기스는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다윗을 자신의 수하에 두었기 때문이다(27:6, 12). 더구나 아기스는 이미 다윗이 자기의 동족을 침략함으로써 그들과 원수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점에서(27:10, 12) 더욱 그러하다. 아울러 이번 기회를 통하여 아기스는 다윗을 완전히 자신의 수하에 예속시키려 했을 것이다.

 

28:2 당신의 종이 행할 바를 아시리이다. 이 말은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지 못하는 다윗의 애매한 답변이다. 다윗이 이같이 애매한 답변을 한 까닭은, 그는 아기스의 요구대로 자신의 동족을 공격할 수도 없고, 또한 그 요구를 거절함으로써 자신의 본심을 들켜 사울의 추격으로부터 안전히 피할 수 있는 훌륭한 은신처를 잃을 수도 없는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본서의 저자는 이와 같은 애매한 표현을 기술함으로써, 다윗이 극도의 심리적 갈등을 느끼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그러면 내가 … 내 머리 지키는 자를 삼으리라. 이것은 아기스가 다윗의 애매 모호한 답변을 (1) 그가 전쟁에 참여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2) 그리고 그가 전쟁에 참여하는 일에 대한 어떤 대가를 요구한 것으로 받아들였음을 시사해 준다. 그리고 ‘머리지키는 자’는 ‘경호 대장’ 또는 ‘시위 대장’을 가리킨다. 한편 하나님 나라 왕국의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위대한 전사(戰士) 다윗이 한낱 이방 왕의 경호를 맡게 된 것은 다윗 스스로가 자초한 비극적 결과였다. 즉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의 손길을 전적으로 의뢰하여 조국 이스라엘 땅을 끝까지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 따라서 당장 코앞의 안전과 유익을 위해 다윗이 우상의 나라 블레셋 땅으로 스스로 들어간 것은, 기근을 피해 언약의 땅 가나안을 등지고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온 아브라함의 경우와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창 12:10-20).

 

28:3 사무엘이 죽었으므로 … 장사하였고. 이 사실은 이미 25:1에서 언급되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여기서 다시 언급하는 것은, 사울이 이미 죽은 사무엘의 혼(魂)을 불러내려는 시도를 한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8절).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 쫓아내었더라. 이같은 종교적 숙정(肅正) 행위는 분명히 사울의 집권 초기에 이뤄졌을 것이다(Smith). 이 같이 볼 수 있는 까닭은 (1) 사울은 왕위에 오르는 예식이 행해질 때에 선지자 사무엘로부터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히 따를 것을 명령 받았으며(12:14), (2) 무당과 박수를 쫓아내는 일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에게 강력히 요구되던 중요한 하나님의 계명(출 22:18, 레 19:31, 20:27, 신 18:10-14)인 바, 처음 사울은 율법 준수에 대한 열심으로 이러한 일을 시행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의 ‘신접한 자’(히, 오보트)에 대해서는 어원학상의 여러 이론(異論)에 따라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즉 (1) ‘오브’(‘오보트’의 단수)를 비히브리어계의 단어 ‘아브’에서 온 것으로 보고, 어떤 ‘제의적(祭儀的) 구멍’에서 유출되는 영혼 혹은 유령이라는 해석(Hoffner), (2) ‘오브’를 어원학적으로 ‘조상’ 및 ‘아버지’의 의미가 있는 ‘아브’에서 온 말로 보고, 죽은 조상들의 영혼을 불러내기 위하여 사용되는 ‘형상’ 및 ‘도구’라는 해석(Lust), (3) ‘오브’를 ‘가죽 부대’를 뜻하는 히브리 단어 ‘오브’에서 온 말로 보고, 죽은 귀신이 들어가서 볼록하게 튀어나온 ‘복화술사의 배’를 가리킨다는 해석(Smith), (4) ‘오브’를 ‘어리석은, 공허한’이란 의미를 갖는 히브리어 ‘우브’에서 온 말로 보고, ‘공허한 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해석(Lange) 등이 있다. 그런데 이같은 여러 견해 중 첫째, 본 절의 ‘쫓아내었더라’(히, 헤시르)란 말은 우상과 같은 유형적 형상의 제거를 가리킬 때 흔히 사용되는 단어이며(왕하 18:4, 23:19, 대하 17:6, 30:14, 사 3:23), 둘째, 7절의 ‘신접한 여인’은 문자적으로 ‘오브를 다스리는 여자’란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 등에서 볼 때, ‘오브’는 (2)의 견해처럼 죽은 사람의 혼(魂)을 불러내는 데 사용되는 어떤 ‘형상’이나 ‘도구’를 가리키는 듯하다. 그러나 보다 구체적으로는 그러한 미신적 도구를 사용하여 죽은 자의 혼을 불러내, 사후(死後) 세계와 교통하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레 19:31).

박수. [히, 이드오님] 이것은 ‘알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 ‘야다’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점(占) 또는 마술 등의 방법을 통하여 미래에 관한 지식을 알려주는 자, 곧 점장이나 마술사를 가리킨다(Lust, Fay).

 

28:4 블레셋 사람들이 … 수넴에 이르러. 여기서 ‘수넴’은 ‘두 개의 휴식처’란 의미이다(Gesenius). 그 위치는 침공해 오던 블레셋 군을 맞이하여 사울이 진을 쳤던 ‘이스르엘’(29:1, 수 19:17, 18)의 북쪽 약 5.6 km 지점으로, 바로 이 지점은 ‘모래 언덕’(창 12:6)의 남서쪽 기슭이었다. 즉 이스르엘 계곡에 의해 분리되는 길보아 산 맞은편의 소(小) 헬몬 산 서쪽 경사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Conder, Robinson). 아마도 이 때 블레셋 군대는 ‘아벡’(4:1, 29:1)에서 소집되어 수넴까지 약 60 km를 행군했을 것이다. 한편 ‘수넴’은 가나안 정복 후 잇사갈 지파에게 분배된 땅이며(수 19:18), 동녀(童女) 아비삭의 고향이고(왕상 1:3), 또한 엘리사를 영접한 귀한 여인의 고향이기도 하다(왕하 4:8-10). 그리고 현재의 지명은 ‘술렘’(Sulem)이다(Eusebius).

사울이 … 길보아에 진 쳤더니. ‘길보아’는 사마리와와 갈릴리 사이의 에스드렐론 평지 동쪽에 있는 길이 약 12.8 km, 그리고 폭 약 8 km 정도의 산악 지대이다. 그곳 중 가장 높은 지대는 해발 약 565 m 정도이다. 이 길보아 산악지대의 특징은, 서쪽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해발 약 10 m의 에스들렐론 평지에 다다르며, 반면 북쪽과 동쪽은 급격한 경사를 이루어 요단 강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한편 이때 사울은 바로 이 ‘길보아’ 산악 지대의 북쪽 기슭에 위치한 ‘이스르엘’에 진을 쳤다(29:1).

 

28:5 사울은 불과 수 마일 거리에서 진 치고 있는 블레셋의 많은 군대로 인하여 심히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보고. [히, 라아] 미세한 것을 들여다 보듯이 세심하게 탐색하는 행동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16:6, 23:23, 25:15, 왕하 7:13).

두려워서. [히, 야라] 이 말은 사울이 다윗에 대하여 점층적으로 더 큰 두려움을 갖게 되었던 사실을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이다(18:29). 본 저자는 바로 이같은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블레셋의 많은 군대를 보고 사울이 얼마나 극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는지를 강력히 시사한다.

떨린지라. [히, 하라드] 이 단어는 요나단과 그의 병기 든 자의 기습 공격으로 인하여, 모든 블레셋 사람들이 나타냈던 당혹스럽고 어쩔줄 모르는 심리적 반응을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이다(14:15). 바로 이같은 단어는 사울의 절망감을 잘 보여준다(13:7, 사 32:11). 아무튼 사울은 과거 대(對) 블레셋 전투에서 연승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14:21-23, 31, 47, 17:53), 금번 길보아 전투를 맞이하여 ‘두려워 크게 떨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사울은 엘라 골짜기 전투(17:1-3) 이후 가장 대규모의 전투인 이번 전투를 맞이하여, 힘의 원천이요 전쟁을 주관하시는 능력의 하나님께서 더 이상 자신과 함께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패배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Keil, Clericus).

 

28:6 사울이 … 묻자오되. 여기서 ‘묻자오되’(히, 샤알)는 ‘요구하다’ 혹은 ‘문의(問議)하다’란 의미로서, 사울은 이때 블레셋 군대를 물리칠 수 있는 방법에 관하여 하나님의 뜻을 물으려 하였다. 이미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지 않는다는 사실(15:26, 16:14)을 잘 알면서도, 이처럼 사울이 허둥지둥 여호와를 찾는 모습은 블레셋 군대로 인한 사울의 두려움과 공포심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 준다.

여호와께서 …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이같은 결과는 말할 나위없이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시의 희귀는 어느 인물 또는 어느 시대의 사악성에 대한 징벌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3:1).

꿈으로도. ‘꿈’(히, 할롬)은 사람이 자의식과 감정을 가라앉히고 잠을 잘 때, 외부의 변화없이 인간 내면(內面)의 사고 작용 및 감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시는 구약 시대의 계시(啓示) 방편이다(창 20:6, 민 12:6, 단 2:4). 그런데 여기에 언급된 꿈, 우림, 선지자 등 3가지 계시 방편은 낮은 단계에서 보다 높은 단계로 가는 순서인 것 같은데(Fay), 꿈은 그 전달 방법이 간접적이고 일방적이라는 점에서, 가장 낮은 등급의 계시 방편이라고 볼 수 있다(Erdman). 한편 여기서 사울은 자신이 직접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받으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분명히 자신의 주변 사람에게라도 계시적(啓示的) 성격의 현몽(現夢)이 내려지기를 간절히 소원하였을 것이다.

우림으로도. 여기의 ‘우림’은 말할 나위 없이 ‘우림과 둠밈’의 약칭이다(출 28:30 주석 참조, 민 27:21). 그런데 사울이 이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묻지 못한 것은 철저히 사울의 자업 자득이었다. 즉 사울은 우매한 판단으로 놉의 제사장들을 몰살시킴으로써, 당시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아비아달’로 하여금 ‘우림과 둠밈’이 들어있는 ‘에봇’을 갖고 다윗에게로 피신하도록 한 것이다(22:18-20, 23:6). 그러나 당시 사울에게 ‘우림과 둠밈’이 없었고, 또한 ‘우림과 둠밈’을 사용할 대제사장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추측컨대, 사울은 놉 제사장 대학살 사건(22:18, 19) 이후 성막을 기브온 자기 궁성(宮城)으로 옮긴 다음 엘르아살 계열의 아히둡의 아들 ‘사독’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했던 것 같다(대상 16:39). 그리고 이에 덧붙여 본래의 것을 본뜬 모조 ‘우림과 둠밈’도 만들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이러한 사실은 사울 사후 다윗 시대의 두 명의 대제사장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로써도 입증된다(삼하 8:17, 15:24, 29, 35, 대상 15:11, 18:16). 한편 사울의 이러한 시도는 (1) 놉 제사장 학살 사건 이후 민심(民心)을 수습하고, (2) 자신의 측근들로 제사직을 독점하고자 한 정치적 계산 또는 왜곡된 종교적 열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사울의 ‘우림을 통한 문의’에 여호와께서 대답하실리 없었다(Keil & Delitzsch, Vol. II-ii. pp. 260-261, Smith, Fay).

선지자로도. 하나님의 선지자 ‘사무엘’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3절, 25:1). 또한 그밖의 선지자들도 이미 하나님께서 버린(13:13, 14, 15:26, 16:14) 사울의 왕국을 떠나 망명객 다윗에게로 갔다(22:5). 바로 이같은 사실로 인하여 사울은 선지자를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뜻을 얻을 수 없었다. 아무튼 꿈과 우림과 선지자는 모든 구약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 받는 방편이었다(15:10, 11, 23:9-12). 하지만 사울은 그 어느 것으로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가 이미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다(15:1-23). 따라서 이러한 사실은 ‘만날 만한 때에’, 즉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기회가 지나가지 전에 하나님을 찾아야한다는 교훈을 절실히 암시해 준다(사 55:6, 고후 6:1, 2).

 

28:7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이같은 사울의 명령은 하나님께서 금하시고(레 19:31), 또한 사울 자신이 세워놓은 규범(3절)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아무튼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의 계시가 완전히 단절된 상황에서, 비신앙적 인물인 사울이 필연적으로 택할 수 밖에 없는 방법이었다. 한편 여기서 ‘신접한’(히, 바알라트 오브)은 문자적으로 ‘혼령을 다스리는’이란 의미로, 곧 ‘신접한 여인’이란 죽은 자의 혼령을 통해 미래의 일을 알아보는 자를 가리킨다(Keil, 레 19:31).

물으리라. [히, 다라쉬] ‘자세히 묻다’란 의미이다(신 13:14, 시 9:12, 111:2).

엔돌에 … 있나이다. ‘엔돌’은 ‘거주의 샘’이란 뜻이다. 그 위치는 다볼 산 남쪽 약 6.4 km, 소(小) 헬몬 산 북쪽 경사 지대이다. 그리고 ‘수넴’으로부터는 동북쪽으로 약 6-7 km 정도의 지점으로 추정된다. 오늘날에도 소 헬몬산 경사 지대에 ‘엔돌’이란 마을이 있는데(수 17:11), 무당들이 거처하기에 좋은 많은 동굴들이 있다고 한다(Robinson, Thompson, Stanley).

 

28:8 사울이 … 변장하고. 옷은 곧 그 사람의 신분을 상징한다는 점(18:4)에서, 사울은 왕의 표시가 되는 복장과 장식물을 제거하고 완전한 평민의 복장을 취했던 것 같다(Fay). 즉 아무도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 사울로 알아보지 못하도록 변장을 했다. 그런데 이때 사울이 위와 같이 철저히 변장을 한 까닭은 신접한 여인이 살던 엔돌의 지리적 위치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사울은, ‘엔돌’이 블레셋의 진영과 인접한 곳이었으므로, 혹 블레셋 사람들의 눈에 뜨일까 두려워한 것이다. 즉 만일 변장을 하지 않는다면, 블레셋 사람들의 눈에 뜨일 경우 그 의복에 의하여 그가 이스라엘 왕 사울임이 밝혀지고, 이에 따라 그들의 맹렬한 공격 목표가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왕상 22:30).

밤에 … 이르러. 사울은 변장한 것과 동일한 이유 때문에 일부러 밤 시간을 택해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다. 이렇듯 변장한 채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는 사울의 모습에서 그의 철저한 타락상을 볼 수 있다. 한편 미신적인 발상에서 무당이나 점쟁이를 찾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언급하신 바 있는 영적 간음 행위이다(레 19:31, 신 18:9-14). 그러므로 성도들은 급박한 상황이 닥칠 때일수록 더욱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고 성경 말씀에 근거한 상담과 기도에 힘쓰는 등 끝까지 신앙적인 자세를 지켜야만 할 것이다.

신접한 술법으로. 히브리 원문대로 번역한다면 ‘유령’ 혹은 ‘그것을 불러내기 위한 도구’를 의미한다(3절). 한편 ‘술법’(히, 카삼)은 ‘점을 치다’란 의미가 있는 동사에서 파생된 말로(겔 21:29, 미 3:6), 바로 이 동사에서 본서 6:2에서도 나타나는 ‘복술자’(卜術者)라는 단어가 나왔다(신 18:10, 사 3:2, 슥 10:2). 따라서 사울은 지금 신접한 여인에게 ‘복술’(卜術) 행위를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복술 행위는 하나님께 가증한 행위로서, 율법에서 철저히 금지시킨 행위였다(신 18:10-14, 레 19:31, 20:27).

사람을 불러 올리라. 즉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내는 행위를 가리킨다. 11절 주석 참조.

 

28:9 신접한 자와 박수. 3절, 레 19:31 주석 참조.

어찌하여 … 올무를 놓아 … 죽게 하려느냐. 이 말은 신접한 그 무녀(巫女)가 변장한 사울을 몰라봤음을 말해 준다. 즉 이때 그녀는 사울 일행을 자신과 같은 점치는 사람들을 적발하여 죽이기 위하여(출 22:18, 레 20:27, 신 18:11) 왕의 명을 받고 그곳으로 온 왕의 사신들로 알았을 것이다. 이같은 그녀의 판단은 (1) 이전에 사울이 복술 행위를 엄히 금지시켰으며(3절), (2) 사울 일행은 무녀의 눈에 매우 낯설었기 때문에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한편, 비록 밤늦게 방문한 낯설은 사울 일행에 대해서는 그 무녀가 이같은 반응을 보였을지라도, 그 당시 그녀는 주위 사람들에 대해서는 신통한 복술을 베풀어 유명한 무녀로 통했을 것이다.

 

28:10 본 절에서 사울은 자신이 복술 행위를 적발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이 결코 아님을 밝힘으로써 그 무녀를 안심시킨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사시는 것처럼, 또는 여호와께서 살아 존재하시는 한 맹세한 사항이 확실이 이행될 것이라는 사실을 다짐할 때 사용하는 히브리 맹세의 전형적인 형태이다(25:26). 한편, 여기서 사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가중히 여기시는 복술 행위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요청하는 등, 그의 완악해지고 굳은 심령의 타락 상태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28:11 내가 누구를 … 불러 올리랴. 이같은 무녀의 질문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내세관을 반영하고 있다. 즉 고대 히브리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일단 모두 ‘스올’ 즉 지하 세계로 들어간다고 보았다. 아마도 이러한 생각은 시체가 땅 속에 묻히는 것과 관련되어 파생된 단순한 개념인 듯하다(창 27:35, 반면 고대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이나 천사는 땅 위의 어느 공간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욥 26:5-14). 그러므로 죽은 자의 세계 또는 죽은 자의 혼과 교통할 수 있다고 믿는 접신녀(接神女)는 ‘스올’로부터 죽은 자의 혼(魂)을 불러 올릴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 사울이 많은 사람 중 사무엘의 혼을 요구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1) 사무엘은 자신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운 사람으로서, 계속적으로 자신의 조언자 역할을 담당했었으며(10:1, 15:1), (2) 또한 사무엘은 블레셋과의 전쟁에 직접 참여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7:10-12), 블레셋의 침공으로 인하여 고민하는 자신의 입장을 이해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사울은 그 때 이같이 사무엘을 부름으로써, 그로부터 블레셋과의 싸움과 관련해서 자신이 취할 행동에 대하여 조언을 받고자 하였다. 물론 사울은 다윗과 관련된 자신의 미래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한편 사울이 접신녀(接神女)를 찾아가서 문의한 이 사건은, 사울의 집권 초기에 그가 이스라엘 사회에서 모든 박수와 무당들을 쫓아낸 것(3절)이 그 자신의 확고한 신념에 따른 행동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준다. 즉 사울은 (1) 하나님의 계명(출 22:18, 레 19:31, 20:27, 신 18:10-14)을 충실히 지켜야 된다는 신념이나, (2) 또는 초혼술(超魂術)은 철저하게 미신적이어서 신뢰의 대상이 못된다는 신념 등에 따라 박수와 무당을 축출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울은 다만 이스라엘 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무엘과,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신앙으로 막 발돋음해 가던(7:2, 5-11) 이스라엘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인간적 목적에 따라 그같은 정책을 시행했다고 볼 수 있다.

 

28:12 여인이 사무엘을 보고. 이 접신녀(接神女)가 실제로 사무엘을 보았는지에 대한 해석은 구구하다. 그러나 그 해석은 크게 다음 몇 가지로 분류된다. 즉 (1) 실제로 사무엘의 혼이 임한 것을 무녀가 보았다는 견해(Josephus, Klein, Keil, Lange), (2) 거짓 영이 사무엘의 혼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나타난 것을 보았다는 견해(Luther, Calvin, M. Henry, Grotius, Patrick), (3) 본문의 ‘사무엘’ 앞에 ‘이름’(히, 쉠)이라는 단어가 필사자의 실수로 탈락됐을 것으로 간주하고, 그 무녀(巫女)는 사무엘의 어떤 형상을 본 것이 아니라 다만 사울의 입에서 나온 ‘사무엘’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뿐이라는 견해(Hertzberg), (4) 그냥 아무것도 본 것이 없으나 거짓으로 본 척했을 뿐이라는 견해(Smith)등 네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네가지의 견해 중 가장 성경적인 견해는 (2)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절에서 그 무녀가 본 것은, (2)의 견해대로 실제 사무엘의 혼이 아닌 사무엘을 가장한 마귀 또는 그의 천사의 어떤 형상을 봤음이 분명하다.

큰 소리로 외치며 … 당신이 사울이시니이다. 이같은 무녀(巫女)의 언급은, 그녀가 그 때까지는 자신에게 사무엘의 혼을 불러달라고 한 인물이 사울인 줄 몰랐음을 강력히 시사해 준다. 사울은 거구였기 때문에(10:23) 타인의 눈에 쉽게 발각될 수 있었으나, 그래도 당시 사울은 밤에 변장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8절), 무녀가 알아보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여기서 어떻게 자신에게 사무엘의 혼을 불러달라고 요청한 사람이 사울인 줄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 추측컨대, 그 때 그 무녀(巫女)는 사울이 사무엘의 혼을 불러달라고 요청할 때까지만 해도 그가 사울인줄 몰랐으나, 사무엘의 형상을 보는 순간 그가 사울인 줄 깨달았을 것이다. 즉 그 무녀는, 블레셋의 침공이 격렬했던 그 당시의 상황에서 사무엘의 혼을 부를 사람은 그 전쟁으로 인하여 최악의 곤궁에 빠져있을 사울 밖에는 달리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Keil, Lange, Klein). 더구나 그녀는 사울의 큰 키를 이미 본 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는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3, 9절) 두려움과 공포에 가득 차서 즉각 큰 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다.

 

28:13 왕이 …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사울은 이스라엘에서 무당과 박수를 축출시켰던 장본인이다(3절). 따라서 죽은 자의 혼을 불러내는 현장을 그 사울에게 목격당한 그 무당 여인으로서는 큰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9절).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에, 사울은 그 무녀(巫女)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말로 안심 시켰던 것이다. 이처럼 사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복술(卜術) 행위 조차도 서슴없이 독려하는 자아 모순적인 작태를 드러내고 있다.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이 질문은 그 때 사울이 아무 형상도 보지 못했음을 시사해 준다. 사실 그 무녀가 어떤 형상을 본 것은 초자연적 혹은 심리적 현상이었기 때문에, 사울이 아무것도 못 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여기 사울의 이 질문은 사울이 무당이 위치했던 곳과 어느 정도 격리되어 있었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울과 무당이 각기 다른 방에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Smith).

내가 영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여기의 ‘영’(히, 엘로힘)은 형태상으로는 복수이나 단수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그 무녀는 자기가 본 어떤 형상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을 반영하기 위하여 한 혼의 형상만을 보았으면서도, 그것을 복수 곧 ‘장엄 복수’로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 ‘영’이란 단어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 ‘영’은 항상 어떤 ‘신’(god) 자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즉 이말은 ‘신적인 존재’ 곧 ‘영’(靈)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점에서(Hertzberg, Klein), 어떤 ‘영적인 존재’ 곧 ‘유령’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Keil, Smith). 한편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는 사울의 요청(11절)으로 접신녀가 불러 올린 사무엘에 대한 해석은 매우 어려운 난제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접신녀와 초혼술(招魂術)의 정체를 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초혼술을 행사하는 접신자는 우선 강신(降神)이라고 하는 특수한 심령적 경험을 통과한 사람으로서, 죽은 자의 혼을 불러 일으켜 현실의 인간과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것이 소위 초혼술(招魂術)이라고 불리우는 일종의 이교적 사술(邪術)형태이다. 그러나 초혼술은 다음과 같은 성경적 근거에서 악령의 역사이며, 사탄의 속임수이다. (1) 초혼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즉 성경은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한다고 하였다. 또한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겔 18:4, 20)고 하였다. 따라서 초혼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결코 죽은 자의 혼이라 볼 수 없고, 다만 죽은 자의 혼을 가장한 사탄 혹은 귀신의 역사에 불과할 뿐이다. (2) 초혼자는 사탄의 역사를 위해 동원된 도구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초혼자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바른 교제를 방해하며 미혹하게 한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신 18:10, 11). 즉 성경은 신접자, 초혼자, 무당 등을 존재 자체부터 부정하고 있다(출 22:18, 레 19:31, 20:27, 신 18:10-14). 결국 이런 이유로 여기서 접신녀가 불러 올린 사무엘은 진짜 사무엘의 혼이 될 수 없다. 즉 ‘땅에서 올라온 그 영’은 루터(Luter)나 칼뱅(Calvin)이 말한대로 사무엘의 형체를 입고 나타난 사탄적 유령(곧 사탄의 부림을 받은 귀신)으로 보아야 한다.

 

28:14 그의 모양이 어떠하냐. 사울의 이같은 질문은, 무당이 실제로 사무엘의 형상을 보았는지의 여부를 확인흐가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이때 사울은 무당이 사무엘을 봤다는 언급에 대하여 의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사무엘이 83세에 죽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25:1 주석 참조), 사탄적 유령이 이같이 ‘노인’의 모습으로 무당에게 나타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여기서 ‘겉옷’(히, 메일)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망토식 가운으로서, 특수한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분을 구별하여 나타내기 위하여 입었던 옷이다(출 28:4, 레 8:7, 삼하 13:18, 대상 15:27), 사무엘도 생전에 선지자의 외투로서 이같은 겉옷을 입었었다(15:27). 결국 그 무당은 자기가 본 형상의 주인공이 ‘노인’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그가 이같은 ‘겉옷’을 입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그가 사무엘임을 넉넉히 느꼈을 것이다(Hertzberg).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 절하니라. 이것은, 그 때 사울이 사무엘의 형상을 직접 봤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울은, 그 접신녀가 ‘노인’과 ‘겉옷’을 언급한 사실로 인하여, 그녀가 실제로 사무엘을 본 것으로 믿었다. 따라서 사울은 무녀가 사무엘이 올라온 곳이라고 암시하는 곳을 바라보며 경외와 존경의 표시로 넙죽 절을 한 것이다.

이 기사에 대한 고찰. 이 기사는 사무엘이 죽은 후에 나타나 말했고, 따라서 모든 인간도 사후에 의식이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 영혼불멸설을 지지하는 자들에 의해 사용된다. 역사적으로 사무엘상 28장은 주로 두 가지 견해로 해석되어 왔다.

1. 선지자 사무엘이 진짜 나타남: 이 견해는 외경 시락(Sirach)의 책(46:16-20, B.C. 180년경)에 처음으로 나온다. 어떤 이들은 사무엘이 육체가 없는 영혼으로 나타났다고 본다. 그러나 육체가 없는 영혼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성경의 사상이 아니다. 아우구스투스(Augustine, A.D. 354-430년) 같은 사람들은 부활 후 예수의 모습이나 예수께서 변형하실 때 나타난 모세처럼 실제 육신을 가진 소생된 사람으로 나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무엘이 진짜 나타났다는 주장에는 심각한 문제들이 야기된다. 무당의 행위 같은 것으로 과연 하나님의 신실한 선지자가 살아서 돌아올 수 있는가? 특히 하나님께서 이미 공인된 방법으로 사울을 지도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도(삼상 28:6) 그분께서 성경에서 정죄하는 수단(신 18:10, 레 20:6)인 무당을 통해 예언적 기별을 보내시겠는가?

2. 귀신이 사무엘로 변장해 나타남: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 A.D. 155-220년) 같은 교부들은 귀신 혹은 사탄이 사울을 속이기 위해 변장하여 나타났다고 가르쳤다. 이 견해가 본문의 문맥과 성경의 사상에 가장 잘 맞는다. 성경에 나타난 것과 같이 사울은 귀신의 힘에 지배당하고 있었다(삼상 16:14-16, 23, 18:10, 19:9). 사무엘은 ‘사술의 죄’ 곧 마술(히, 케셈, 삼상 15:23)에 대해 사울에게 경고했으나, 그는 무당에게 ‘신접한 술법’(히, 카삼, 삼상 28:8)을 하라고 요청했다. 일반적으로 ‘카삼’이라는 말은 이방의 복술자와 연관되어 사용된다(민 27:7, 수 13:22, 삼상 6:2).

엔돌에서 있었던 이교적 행습들: 엔돌은 이스라엘의 거주지가 아니라 가나안 인들의 거주지였던 것 같으며(수 17:11-13), 근래의 고고학적 발견에 의하면 가나안 종교는 엔돌의 무당이 사울에게 행했던 것과 매우 유사한 의식을 사용한 조상숭배와 결부되었음이 드러났다. 한 우가릿어 토판은 최근에 죽은 왕을 포함한 죽은 조상들을 주술로 불러내 당시 살아있는 왕을 축복하도록 하였다. 이 조상들 곧 ‘우가릿의 신격화된 죽은 왕들’이 저승에서 신적인 존재가 되었다고 믿었고, 따라서 그들은 ‘엘로힘’이라 불렸는데, 그것은 사울이 만난 무당이 땅에서 올라온다고 말한 ‘영(신)’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한 말과 같은 말이다(삼상 28:13).

그 무당은 사울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그래서 그녀는 친절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무엘서의 기자는 그녀가 식사를 위해 짐승을 ‘잡은’(히, 타바흐, 삼상 25:11) 것이 아니라, 제사를 위해 ‘잡았다’(히, 자바흐, 삼상 28:24)고 묘사한다. 즉 그녀는 ‘제의적 도살’을 거행한 것이다. 과거 이스라엘의 배도 사건에도 죽은 자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것이 포함돼 있었다. 그들이 “먹고 그들의 신들(엘로힘)에게 절하므로”(민 25:2, 시 106:28) 비참한 결과가 이르러 왔다. 그녀의 외식적인 친절이 사실상 사울로 이교적 숭배에 빠지도록 한 것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사울이 처음엔 먹길 원치 않았을지도 모른다(28:23).

“하나님의 허용으로 마귀가 사무엘로 변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가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이 경우에도 그렇게 하도록 허용을 받아 사울이 마귀에 물음으로써 절망에 내몰리도록 한 것이 역시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가 위로들 얻기 위해 바른 방법으로 여호와께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Matthew Henry’s Bible Commentary on I Samuel 28:7-14).

정확하지 않은 예언: 무당을 통해 나타난 가짜 사무엘의 예언에는 부정확한 점이 포함돼 있다. 사울이 블레셋 사람에게 잡힌 것이 아니라 자살하였다. 그리고 그의 시신이 그들의 손에 넘어갔으나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에 의해 수습되었다(삼상 31:12-13). 또한 다음날 사울의 모든 아들이 죽진 않았다. 몇 장 더 넘어가서,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나타난다(삼하 2:8-10). 이와는 다르게, 진짜 사무엘은 여호와의 말씀을 정확하게 전달했다(삼상 3:19-21).

게다가, 이 가짜 사무엘은 사울과 그의 아들이 자기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삼상 28:19). 그렇다면 어디에서 함께 있을 것이라는 말인가? 과연 사후의 삶에 대한 어떤 견해가 불경한 왕과 경건한 선지자를 한 곳에 둔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늘과 지옥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도 아니고, 신약의 일관된 가르침도 아니다.

사울과 무당이 본 자는 진짜 사무엘이 아니었음: 어떤 이들은 “그가 사무엘인 줄 알”(삼상 28:14)았다고 본문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울은 얼굴을 땅바닥에 대고 아무것도 보지 못했으며, 무당이 하는 말만 듣고 그대로 믿었다는 것이다. ‘알고’(히, 야다)라는 말은 잘못된 인식이나 믿음을 가리키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

결론: 성경에 의하면, 창조주만이 죽은 자를 다시 살릴 수 있다(요 11:25).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신접한 자에게 해당하는 사형 선고(레 20:27) 아래 있던 엔돌의 무당의 호소에 응답하시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삼상 28장의 장면은 무당이 저승 세계에서 신을 올리겠다고 약속한 가나안 인들의 교령회(交靈會)를 극적으로 묘사하는데, 사실 귀신이 사무엘로 변장하여 나타나 사울을 속이고 죄책감으로 절망하게 하여 여호와 및 자신의 생명까지 포기하게 만들었다.

 

28:15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성경 기자는 여기서 마치 실제의 사무엘이 등장하여 말하는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에 있어서 성경 기자는, 사무엘을 흉내내어 나타났고 그 이름을 빙자하여 말하고 있는 악령을 편의상 간결하게 ‘사무엘’이라는말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이때 악령은 초혼술(招魂術)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영매(靈媒)인 접신녀(接神女)의 입을 통해서 말하고 있었다.

나를 성가시게 하느냐. ‘성가시게 하느냐’(히, 히르가즈타니)는 ‘격분하다, 진동하다’란 의미를 갖는 ‘라가즈’의 사역형으로서 ‘안식을 방해하다’(disquiet, KJV / disturb, NIV)란 뜻이다(렘 50:34). 특히 이 단어는 시돈의 왕 타브닛의 비문에서 무덤에 대한 모독 행위를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었다(Klein). 따라서 이 단어는 무덤을 평온하게 안식하는 장소로 인식하고 있는 고대 중근동의 내세관과 잘 부합된다(Klein, 욥 3:13-19, 사 14:9). 아울러 이 말은 사람이 죽으면 경건한 자나 불경건한 자를 막론하고 지하 세계인 스올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히브리인들의 고대 사상을 반영한다.

심히 다급하니이다. 여기서 ‘다급하다’(히, 차르)는 대적의 맹렬한 공격으로 인하여 당하는 커다란 고통을 가리키는 단어이다(삼하 24:13, 욥 6:23, 7:11). 따라서 영역본들(RSV, NIV)은 ‘커다란 재난에 처해 있다’(be in great distress)란 말로 번역했다.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사울은 하나님이 자신을 떠나 다윗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23:17).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 대답하지 아니하시기로. 이러한 계시(啓示)의 단절은 악한 인물 또는 악한 시대에 대한 징벌의 성격을 띠는 것으로서(6절, 3:1), 여기서는 곧 하나님께서 사울과 함께 하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을 확증해 주는 객관적 증거이다. 한편, 그런데 여기서 사울이 6절에는 언급되어 있는 계시 수단인 ‘우림과 둠밈’을 생략한 것은, ‘우림과 둠밈’(출 28:30 주석 참조)이라는 계시 수단을 자신의 극심한 잘못 때문에 상실하였기 때문일 것이다(Talmud, Berach, Xii. 2). 즉 사울은 제사장들을 대량 학살하는 사건(22:18, 19)으로 인하여 ‘우림과 둠밈’이라는 계시 수단을 자신의 경쟁자인 다윗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6절 참조.

행할 일을 알아보려고. ‘행할 일’은 블레셋을 물리칠 수 있는 방책(方策)을 가리킨다.

 

28:16 네 대적이 되셨거늘. 이 말은 칠십역(LXX)의 번역대로 ‘네 이웃의 편이 되셨거늘’이란 의미로 이해함이 좋을 듯하다. 그렇다면 이 말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말이다(15절).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만일 하나님께서 사울에게서 등을 돌리셨다면, 사울이 하나님의 선지자인 사무엘에게 묻는 행위는 가당치 않다는 뜻의 반문(反問)이다.

 

28:17 본 절의 언급에 대해서는 15:27, 28 주석을 참조하라.

 

28:18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이는 사울이 왕이 된 후 하나님께 불순종한 여러 사건 중 ‘아말렉 진멸 명령’(15:3)을 어긴 사실이 가장 치명적인 사울의 범죄 행위임을 시사해 준다. 아마도 출애굽 후 가나안으로 향하는 선민 이스라엘의 여정을 최초로 그리고 비겁하게 방해하고 적대한(신 25:17-19) 아말렉 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복수전을 사울이 그의 탐심으로 말미암아 망쳤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이 일을 … 행하셨고. 본 절은 이때 사울이 당한 어려운 상황을,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15:3)을 이행치 않음으로써(15:9) 나타난 결과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15장에서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은 사울에게 왕위 박탈 선언을 했다는 점(15:26)과 연결하여, 여기서 사울이 당한 어려운 상황은 사울을 왕의 자리에 더 이상 앉아 있지 못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시행하시는 작업 중의 한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8:19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 넘기시리니. 여기서 ‘넘기시리니’(히, 나탄)란 말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적인 의지로 어떤 당사자나 나라에게 확실한 승리를 부여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나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은 사무엘처럼 ‘죽은 자 가운데 있게 되리라’는 뜻으로, 곧 ‘죽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한편 ‘네 아들들’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울과 함께 죽을 사울의 세 아들, 곧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가리킨다(31:2, 대상 10:2).

 

28:20 사울이 … 땅에 완전히 엎드러지니. 사울은 자기 앞에 나타난 악령을 진짜 사무엘의 영으로 착각하고 그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14절). 그러다가 자기가 기대하던 해결책은 얻지 못하고 대신 악령으로부터 자신의 멸망에 대한 예언을 듣게 되자(16-19절), 그는 (1) 큰 두려움의 엄습과 (2) 육체적 탈진으로 땅바닥에 엎드러지고 말았다. 이것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자행 자지(自行自止)하던 타락자 사울 왕이 머지 않아 비참한 종말을 맞이할 것에 대한 하나의 전조(前兆)였다(31:1-6).

하루 밤낮을 … 먹지 못하였음이라. 사울은 전투에 앞서 금식을 하는 습관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14:24). 이와 유사하게 당시에도 (1) 사울은 엔돌의 이 접신녀에게 자신이 행할 바를 묻기 위하여 (2) 그리고 엔돌로 향하는 과정에서 블레셋의 수비망을 뚫고 가야 한다는 어려움을 예상하여(Klein) 일부러 금식을 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이 견해와는 달리, 먼거리를 오느라고 식사를 하지 못했으리라는 견해는 (1) 당시 이스라엘의 진지인 이스르엘(29:1)에서 무당이 거주하던 엔돌까지의 거리는 불과 8 km 정도(Aharoni), 즉 두 시간 거리밖에 안 되며 (2) 23절에서는 사울이 주위 사람들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먹기를 거부한다는 사실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설득력이 약하다.

 

28:21 그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러. 이같은 언급은, 그 접신녀가 사울과 어느 정도 떨어져 있었음을 시사한다. 바로 이같은 사실 때문에, 사울은 접신녀의 입을 통하여 나오는 말을(15절) 마치 사무엘의 입에서 직접 나오는 말로 속아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 접신녀는 자신과 사울 사이의 시계(視界)를 흐리게 할 목적으로 향을 피웠을 가능성도 있다(Smith).

그가 심히 고통 당함을 보고. 여기서 ‘고통 당함’(히, 바할)은 ‘두려워 떨다’란 뜻이다(창 45:3, 출 15:15, 삼하 4:1, 시 6:2). 그리고 ‘보고’(히, 라아)는 자세하게 관찰하는 행동을 뜻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이같은 행동 뒤에 취한 접신녀의 태도는 극도의 공포로 떨고 고통스러워 하며, 또한 육체적 탈진으로 기력이 쇠잔해 있는 사울에 대한 동정심에서 비롯된 것임이 분명하다(Hertzberg, Smith).

여종이 왕의 말씀을 듣고. ‘왕의 말씀’은 사무엘의 혼을 불러 달라는 사울의 명령을 가리킨다(11절).

내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사무엘을 불러내라는 사울의 명령(11절)은 초혼 행위가 엄격히 금지된 그 당시 상황으로 인하여(3절), 무녀에게는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계책으로 들렸을 것이다(9절). 그러므로 그 무녀가 그같은 사울의 명령을 이행한 것은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일종의 모험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상에 있어서는, (1) 사울로부터 목숨 보장에 대한 맹세를 이미 받았고(10절) (2) 또한 당시 사울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물을 통로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결국 사울이 자신을 찾을 수 밖에 없었음을 알고 있는 마당에서, 그 무녀(巫女)가 사울의 명령을 이행한 것은 결코 생명을 건 모험이라고 까지는 할 수 없었다. 따라서 여기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라는 무녀의 말은 자신의 공을 자찬(自讚)하는 거짓말임이 분명하다.

 

28:22 본 절에 언급된 무녀의 행동은 사울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접신녀의 이같은 동정도 사울로 하여금 고통을 당하게 하는 정신적이며 근본적인 원인을 결코 제거할 수 없었다.

 

28:23 내가 먹지 아니하겠노라. 이것은 당시 만사가 귀찮은, 그리고 거의 자포 자기의 상태에 있는 사울의 탈진한 심리 상태를 잘 반영해 준다.

땅에서 일어나 침상에 앉으니라. 이것은 사울이 자신의 낙담한 정신 상태를 어느 정도 수습했음을 보여 주는 행동이다. 따라서 사울은 지금까지 땅바닥에 엎드려져 있던 자신의 몸을 일으켜 침상에 앉았던 것이다. 한편 여기의 ‘침상’(히, 밋타)은 방의 벽을 따라 길게 배열된 푹신한 긴 의자를 가리킨다(Keil, Thenius, Smith).

 

28:24 살진 송아지 … 잡고. 이것은 사울에 대한 무녀의 정성이 극진했음을 잘 시사해 준다(창 18:7, 눅 15:23).

무교병. 이것은 누룩을 넣지 않고 구운 빵으로, 급히 장만할 수 있는 음식이다(출 12:8, 15-20). 이때 그 무녀는 보다 먹기 좋은 유교병은 시간이 없었던 관계로 준비하지 못한 듯하다.

 

28:25 그 밤에 가니라. 날이 밝을 경우 (1) 블레셋 군대에게 발각될 위험과, (2) 그리고 블레셋의 공세가 본격화될 것이기 때문에, 휴식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사울은 이같이 급히 서두렀을 것이다(Klein). “실로 사울은 자신과 아들들과 백성들의 죽음과 패배를 괴로워하고 슬퍼하기에는 그 양심이 죄로써 너무 둔감해져 있었다. 따라서 사울은 그의 완악한 심령을 이끌고 자신의 운명을 맞으러 갔다. 즉 한때 여호와의 영이 임했으며, 기름 부음을 받아 이스라엘 최초의 왕이 되는 축복을 누린 자 - 사울은 이처럼 절망감 속에서 자신의 비참한 최후를 맞으로 간 것이다”(O. V. Gerlach, Keil & Delitzsch. Vol. II-ii. pp. 269-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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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 열왕기상 만나 주석, 열왕기상 07장
631 열왕기상 만나 주석, 열왕기상 0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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