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단 …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사울과 다윗이 대화를 나눌 때 요나단도 거기에 함께 있었음이 분명하다. 한편 여기의 ‘마음’(히, 네페쉬)은 하나님이나 왕을 향한 순수하고 전인격적인 사랑과 충성의 정신을 가리킨다(Achnoyd). 그리고 이같은 정신은 요나단이나 다윗에게 공통적으로 있었다(14:6, 17:32-36, 45-47). 바로 이같은 정신적 공통점 때문데 다윗과 요나단은 특별한 우정을 맺을 수 있었고, 또한 그 우정을 변치 않고 오래도록 나눌 수 있었다. 한편 ‘하나가 되다’(히, 카샤르)란 말은 ‘매다(tie), 묶다(bind), 짜다(knit)’ 등의 의미로서, 곧 영원히 변하지 않는 마음의 띠로 단단히 동여 매는 것, 또는 결코 끊어지지 않는 정신적 쇠사슬로 굳게 묶는 것을 나타낸다다(창 38:28, 신 6:8, 잠 3:3). 그런데 여기서 이 단어는 수동형으로 사용되어, 이같은 일이 극히 자연스럽게 이뤄졌음을 시사하고 있다.
요나단이 …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 여기서 ‘생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페쉬’는 ‘영혼’(soul)으로도 번역될 수 있는 말로서, 곧 이것은 다윗에 대해 요나단이 품었던 정신적이고도 고상한 우정의 성격을 나타내주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20:17).
아버지의 집으로 … 허락하지 아니하였고. 이는 사울이 다윗으로 하여금 고향 아버지의 집으로 문안 인사차 방문하는 것조차 금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는 다윗이 전처럼(17:15) 아비의 집에서 양 떼를 돌보는 것과 같은 집안 일을 하기 위하여 돌아가는 것은 사울이 허락치 아니했다는 말이다.
그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이처럼 자신의 의복을 벗어 준다든지, 또는 자신의 무기를 상대방에게 선물로 주는 것 등의 행위는 고대에 용사들간에 상호 우정이나 혈맹 관계를 다지고 돈독히 하기 위한 목적으로 흔히 행해졌던 풍습이었다(Keil, Philippson). 한편, 여기서 다윗이 요나단으로부터 의복과 함께 이같은 무기를 넘겨받은 것은 (1) 당대의 정치적 실력자 사울에게서 무기를 일시 넘겨받은 것(17:38), (2) 당대의 군사적 영웅 골리앗으로부터 무기를 탈취한 사건(17:54) 등과 함게 다윗이 미구에 근동 지역을 장악할 정치 군사적 영웅으로 부상하게 될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일들임이 분명하다.
지혜롭게 행하매. [히, 사칼] 이것은 ‘깨닫다, 형통하다, 신중하다’ 등의 의미가 복합적으로 담겨져 있는 말이다(신 32:29, 수 1:8, 왕하 18:7). 따라서 본 문맥상 이 단어는, 다윗이 하나님의 지시대로 행함으로써 만사가 형통하는 결과를 얻었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군대의 장으로 삼았더니. 문자적으로는 ‘전쟁의 사람들 위에 세웠다’(set him over the men of war)란 뜻으로, 곧 ‘여러 군사들의 지휘관으로 삼았다’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여기의 ‘군대의 장’은 아브넬의 계급인 군사령관과는 전혀 다르다(17:55). 즉 13절에서야 다윗은 사울에 의해 천부장으로 세워진다는 점에서, 여기의 ‘군대의 장’은 백부장임이 분명하다. 아무튼 본 절은 다윗의 빠른 승진을 시사해 준다.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문자적으로 ‘모든 백성들의 눈에 선했다’(창 1:12, 31). 이같은 언급은 결국 다윗이 미래의 왕으로서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점차 닦여져가고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이것은 백성들의 경우와 더불어 다윗의 명성이 궁궐 안팎에서 점차 높아져가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아울러 이것은 다윗이 정치적 경쟁심과 질투 등을 초월하여 칭송을 받았다는 점에서, 다윗의 인격과 처신이 대단히 훌륭했음을 암시해 준다.
여인들이 … 노래하며 춤추며. 고대 근동 사회에서 여인들의 이러한 가무(歌舞) 행위는 절기나 승전(勝戰) 등의 사유로 매우 기쁠 때 축제적인 분위기 가운데서 행해졌다(출 15:20, 삿 11:34).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소고’(히, 토프)는 영어 성경들에서는 보통 ‘탬버린’(tambourine)으로 번역되어 있으며, 성경에서는 항상 즐거움 및 기쁨과 관련하여 언급된다(출 15:20, 삼하 6:5, 사 5:12). 그리고 ‘경쇠’(히, 샬로쉬)는 ‘삼중’ 또는’세 개’란 뜻으로서, 보통 ‘트라이앵글’(triangle) 또는 삼현(三鉉) 악기(three-stringed instrument)로 이해된다. 아무튼 소고와 경쇠는 춤이 수반되는 야외 행사에 알맞는 축제용 악기들이다(R. Payne Smith).
환영하는데. 엄밀히 말하여 히브리 원문에는 ‘환영하는데’라는 의미의 말은 없다. 따라서 틀림없이 여기의 ‘환영하는데’란 말은 원문에 원래 나와 있는 ‘만나기 위하여’(히, 리크라트)라는 단어와, 그리고 ‘소고’와 ‘경쇠’ 사이에 나타나 있으나 번역 중 생략된 ‘기쁨으로’(히, 메시므하)라는 단어가 합해져 의역된 결과인 것 같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의 분명한 이해를 위하여 위의 두 단어를 분리시켜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소고’와 ‘경쇠’처럼 마치 악기의 하나 같이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같은 관점에서 혹자는 그 단어를 ‘기쁜 소리로’라고 주석하기도 한다(Stoebe).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여기서 ‘천천’이나 ‘만만’은 원문상으로는 다만 ‘천’(히, 엘레프)과 ‘만’(히, 레바바)이지만, 우리말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이같이 번역되었다. 원문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사울은 그의 천을, 그리고 다윗은 그의 만을 죽였도다!”(Saul has slain his thousands, and David his ten thousands). 물론 고대 우가릿 문서나 중근동의 문서들을 통해 볼 때 ‘천’이나 ‘만’은 모두 ‘많음’을 상징하는 보편적 숫자라는 점에서 여기 여인들의 노래가 담고 있는 기본 의미는 ‘우리의 두 영웅 사울과 다윗은 많고 많은 원수들을 죽이셨도다’란 뜻으로 볼 수 있다(Klein). 그러나 또 한편 여인들이 ‘사울’과 ‘다윗’을, 그리고 ‘천’과 ‘만’을 분명히 상호 대구(對句)하여 노래했다는 점에서, 이 여인들의 노래 속에는 분명 당시의 인기도 또는 민심(民心)이 반영된 생생한 백성들의 노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이 노래는 민심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결국 이러한 백성들의 노래 속에는 하나님께서 사울로 하여금 그의 왕위를 후임자인 다윗에게 평화적으로 이양하게끔 촉구하는 의미가 들어 있었다. 한편, 이 여인들의 노래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널리 애송되었기 때문에, 이웃 블레셋 사람들도 익히 알고 있을 정도였다(21:11, 29:5).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결국에는 “왕의 자리마저 그에게 돌아가겠구나”(공동번역)란 뜻이다. 이렇나 사울의 우려와 불안의 근저에는, 아마도 일찍이 사무엘에 의해 선언되었던(13:14, 15:28) 자신의 폐위와 후임자의 등장이라는 현실적 문제 인식이 깔려있은 듯하다(R. Payne Smith). 실로 이방의 침입자(골리앗)가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위기적 상황 가운데서, 왕으로서 사울은 속수 무책인데, 한 목동이 나와서 그 침입자를 제거해 버렸다면, 그것은 곧 왕직의 이동을 의미하는 징표가 되는 것이다(O.V. Gerlach).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 힘 있게 내리매. 이 강신(降神) 현상은 차기 왕으로 예정되어 있던 다윗에 대해 사울이 가지고 있던(9절) 극심한 피해 의식의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는 점에서, 사울의 왕위 폐위가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 선언임을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하나님은 그 때 이같은 현상을 통해 사울로 하여금 왕권에 대한 미련을 더 이상 갖지 못하게 하시려 한 듯하다. 그리고 여기서 ‘힘있게 내리다’(히, 찰라흐)란 말은 ‘앞으로 세게 밀다, 터져나오다, 강력하게 다가오다’란 의미로서, 곧 돌진해오듯 힘 있게 닥쳐오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러한 현상은 악령의 적극적인 활동 상태를 시사하는데, 이는 사울에게 최초로 악령이 임했을 때의 상황보다 더 악화된 상태이다. 결국 악령의 이러한 적극적인 활동은 하나님의 묵인 하에서 이루어지는 일로서, 이는 사울의 종말이 가까왔음을 강력히 암시하는 징조이다. 한편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에 대해서는 16:14 주석을 참조하라.
집 안에서 정신 없이 떠들어대므로. 여기의 ‘집’(히, 바이트)은 말할 나위없이 사울 자신의 궁전을 가리킨다(삼하 16:21, 20:3). 한편 ‘정신 없이 떠들어대므로’(히, 이트나베)는 문자적으로는 ‘예언하다’(prophesy, KJV, NIV)란 의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말이 재귀적 사역형으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이교적(異敎的) 성격의 헛소리로 이해함이 타당하다(19:20-21, 23-24, 왕상 18:29, 렘 23:13). 즉 재귀적 사역형의 동사로 표현된 사울의 이같은 행위는 황홀경의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탈인격적 행위로서,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채 미친 자처럼 마구 말을 내뱉는 ‘헛소리’ 또는 ‘지껄임’(rave, RSV)을 가리킨다.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이것은 사울이 다윗을 일개 경쟁 상대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의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하였음을 가리킨다. 이같은 단정은 여기의 ‘두려워한지라’(히, 야레)는 말이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신적인 경외를 가리키는 단어라는 점에서 확실시 될 수 있을 것이다(창 22:12, 출 9:20, 왕상 18:3). 아무튼 사울이 다윗을 두려워하게 된 근본 원인은 ‘하나님이 자신을 떠나 다윗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즉 버림받고 거절당한(13:13-14, 15:26) 사울은 하나님과의 동행으로 만사 형통하는 다윗을 볼 때마다 큰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 출입하기 때문이었더라. ‘출입하다’(히, 요체 와바)란 말은 직역하면 ‘나가고 들어오다’(go out and come in, KJV)란 뜻인데, 이는 곧 자신이 맡은 고유한 직무의 수행을 위하여 공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성경의 관용어이다(12:2, 29:6, 민 27:17, 신 31:2, 수 14:11, 삼하 5:2, 왕상 3:7, 대하 1:10, 렘 37:4, 행 1:21). 이런 견지에서 여기의 이 말은 천부장으로서 다윗의 성공적인 군사 역할 수행을 의미한다(5, 14, 15절).
너는 나를 위하여. 이 말은 딸과 결혼하려는 자는 그 딸의 아버지에게 그에 합당한 예물을 제공해야 했던 고대 중근동의 결혼 풍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창 29:15-20, 25-27). 따라서 사울 왕은 그러한 결혼 예물 대신 전쟁터에서 이스라엘의 적들과 용맹히 싸워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사울 왕의 이러한 요구는 부당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사울은 이미 결혼 예물대신 골리앗을 이기는 것 자체로 자신의 딸을 주겠다고 공언한 바 있기 때문이다(17:25). 그러므로 사울은 또 다른 조건이나 요구없이 자신의 약속을 이행해야만 할 의무가 있었고, 반면 다윗은 당연히 사울 왕의 사위가 되는 명예를 누릴 권리가 있었다(F. R. Fay).
용기를 내어 … 싸우라. 여기의 ‘용기를 내어’는 문자적으로 ‘용사가 되어’란 뜻이다. 사실 다윗에 대한 사울의 이같은 주문은 그로 말미암아 큰 전과를 올리려는 것이 아니라 다윗이 전장(戰場)에서 죽게 하려는 음모에 따른 것이었다(13절, 삼하 11:14, 23-25).
여호와의 싸움.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적 심판을 위하여, 하나님의 전적 도우심을 의뢰하면서,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하나님의 원수들과 싸우는 거룩한 전쟁을 가리킨다(25:28, 삼하 5:19-23). 그러나 사울이 다윗에게 주문한 여기서의 전쟁은 다윗을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려는 사악하고 간교한 음모에 따른 전쟁이라는 점에서 결코 ‘여호와의 전쟁’이 아니었다.
생각하기를. ‘마음에 이르기를, 스스로 이르기를’ 등과 같은 표현으로, 곧 독백이나 심중의 의지를 나타내는 성경의 관용 표현이다.
블레셋 사람들의 손을 … 대게 하리라. 지난 번 사울은 악령에 사로잡혀 자신의 손으로 직접 다윗을 죽이려 시도하기도 했지만(10-11절), 이제 이성을 되찾자 다윗에 대한 시기와 질투심이 간교한 음모로 발전되어 여호와의 싸움을 빙자, 블레셋 사람의 손을 빌려 다윗을 살해코자 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이 떠나버린 사울의 마음 속에는 온갖 죄된 생각만이 넘치고 있었다.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에게 … 주었더라. 이같은 사울의 처사는 메랍이 다윗을 사랑하지 아니했기 때문(Keil, 20절)이라기 보다는 다윗에 대한 사울의 증오심과 그 자신의 변덕스러운 성격에 기인한 것임이 분명하다(Lange). 어쩌면 사울이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로부터 많은 재물을 제공받았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 결혼의 불합리성은 결국 이 결혼이 불행한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로써 확증된다(삼하 21:8). 한편 ‘므홀랏’은 갈릴리 호수 남방 약 37 km 지점의 요단 서쪽 강뚝 인근에 위치한 지역이다(Stoebe). 그리고 ‘아드리엘’은 아람어로는 ‘아스리엘’(대상 5:24, 27:19, 렘 36:26)이며, 그 의미는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다’란 뜻이다.
사울이 그 일을 좋게 여겨. 이것은 사울이 다윗을 궁지에 몰아 넣을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를 포착했음으로 인하여 기뻐했다는 뜻이다(17, 21절).
다윗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죽게 하리라. 사울의 요구대로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포피를 벨 경우, 그 행위는 곧 블레셋 족속을 할례 받지 못한 족속이라고 모욕하는 의미가 강하다. 따라서 다윗이 그 일을 행하게 되면 그는 블레셋 족속의 민족적 분노를 사게 될 것이며, 끝내는 군사적 보복을 당하게 될 것이었다. 더욱이 포피를 베는 행위는 대외적인 명분이 서는 공식 전쟁이 아니라 사적(私的)인 목적을 위해서 수행되는 전투이므로 그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는 생명을 건 모험을 감행해야만 했다. 결국 사울의 이 같은 제안은 자신의 정적 다윗을 블레셋 사람의 손을 빌려 죽이기 위한 주도 면밀한 계책이었다.
결혼할 날이 차기 전에. 폐백금으로 사울이 다윗에게 포피 백 개를 요구한 기한이 이르기 전에 다윗이 일어나 그 일을 수행하였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27절의 내용과 연결된다.
딸 미갈을 다윗에게 … 주었더라. 이같은 사울의 행위는, 후에 그가 미갈을 다른 사람에게 또 다시 주었다는 사실에서 볼 때(25:44), 마지 못해 취해졌던 것이 분명하다. 즉 블레셋 사람의 손에 다윗이 죽기를 바란 자신의 계책과는 달리, 오히려 다윗이 자신의 요구를 넘어서는 용맹을 떨침으로써, 어쩔수 없이 딸 미갈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하므로. 칠십인역(LXX)은 ‘딸 미갈’을 ‘온 이스라엘’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한 근거 없이 히브리 원문을 바꾼시킨 것에 불과하다(Bunsen).
평생에 … 대적이 되니라. 이같은 언급은 사울이 죽을 때까지 계속 다윗을 죽이려 했던 이후의 역사적 사실로써 증명된다.
더 지혜롭게 행하매. 이것은 형통하는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도록 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처럼 다윗이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지혜롭게 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사 그를 도와주셨기 때문이다. 5절 주석 참조.
그의 이름이 심히 귀하게 되니라. ‘이름’은 고대인들에게 한 사람의 인격 전체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귀하게 되니라’(히, 야카르)란 말은 ‘영광을 받다, 존경을 받다’란 뜻이다. 결국 본 절은 사울의 책략으로 다윗을 위험한 전장에 내보낼 때마다 오히려 다윗이 그 전쟁을 통해 혁혁한 공로를 세움으로써, 용장과 지장으로서 다윗의 명성이 이스라엘 뿐 아니라 주변의 적대국들에게조차 알려지고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는 어떠한 역경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전화위복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나 이처럼 다윗이 전공을 통해 백성들로부터 사랑과 신앙을 한 몸에 받으면 받을수록 사울은 더욱 더 두려움, 질투, 증오심에 사로잡혀 다윗을 죽이는데 혈안이 되었다. 이로써 다윗에 대한 사울의 계속되는 살해 음모와 다윗의 도피 생활의 역사가 이후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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