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이 말을 직역하면 ‘사울이 왕이 될 때에 한 살(일 년)이었다’(It was one year since Saul became king)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많은 문제점이 따르게 되므로, 여기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었다. (1) 이 말을 의역하여, ‘사울이 왕이 될 때에 한 살 난 어린이와 같았다’라는 해석이 있다(Targum, the Chaldee). 이것은 사울이 그만큼 순진했거나 또는 유치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너무 지나친 의역이다. (2) 원문의 ‘세’(year) 앞에 나이를 표시하는 알파벳 또는 단어가 필사자의 실수로 탈락되었다고 보고, 추측하여 ‘사울이 왕이 될 때에 30세이었더라’라고 해석하기도 한다(Origen의 hexapla). 그러나 당시 사울에게는 병력을 통솔하고(3절) 적군을 무찌를 만큼(14:4) 성숙한 아들 요나단이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이 해석 역시 적당치 않다. (3) 70인역(LXX)은 이것을 원문에 없는 말로 보고, 아예 여기서 이 문구를 빼버렸다. 그러나 이것은 히브리 본문을 너무 가볍게 취급한 것이다. (4) 이 말을 약간 의역하여, ‘사울이 일 년을 다스렸다’(Saul regned one year)라는 해석이 있다(KJV). 그러나 이것은 이어 나오는 ‘다스린 지’(말라크)라는 말과 중복된다는 점에서 타당치 않은 듯하다. (5) 이 말을 본문 그대로 충실히 번역하여 ‘사울이 왕이 된 지 일 년이었더라’라고 보는 해석이 있다(the Vulgate, Grotius). 그런데 우리는 이 다섯 번째의 해석이 가장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그같이 볼 수 있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성경은 우선 문자적 해석을 해야 한다는 해석 원리에 부합되며, 둘째, 본 절의 다음 문구인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라는 말이 있으므로, 그것은 사울이 실제적으로만 일 년 간 이스라엘의 왕 노릇을 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 이 말은 이스라엘의 독특한 왕의 통치 기간 계산 방법을 통해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그해 니산(Nisan, 혹은 아빕)월에서 다음 해 니산 월까지를 통치기간 1년으로 보지만, 실제 통치 1년 간의 중간에 니산 월이 걸리면 비록 만 1년이 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통치 기간을 2년으로 보았다. 따라서 여기의 ‘이 년’은 실제적으로는 1년이되, 그 중간에 니산 월이 낌으로 말미암아 이같이 계산되었던 것 같다(Grotius, Clericus).
이천 명은 … 믹마스와 벧엘 산에. 여기서 ‘믹마스’는 예루살렘 북쪽 약 15 km, 기브아에서 동북쪽으로 약 7 km 떨어졌으며, 해발 약 660m 정도의 고지에 위치하였다(Driver). 그러나 이같은 정도의 높이는 그 지역에서는 낮은 지역에 속한 편이었다(사 10:28-29). 그런데 이곳 믹마스의 남쪽은 ‘와디 수웨이닛’(Wadi Suweinit)이라는 협곡과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남동쪽으로는 가파른 고개들이 있어 군사적 요충지가 될 수 있었다. 특히 이곳은 보리의 산출이 많은 곳인데, 오늘날의 위치는 ‘묵마스’(Mukhmas)이다(Robinson). 한편 ‘벧엘 산’은 본서의 다른 곳에서는 그냥 ‘벧엘’로 나온다. 이곳은 믹마스 북서쪽 약 7 km 지점의 해발 약 960m의 고지에 위치했었다. 바로 이같은 이 지역의 표고(標高)때문에, 여기서는 ‘벧엘 산’으로 지칭된 것이다. 한편, 여기서 사울의 이같은 군사 행동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오랜 블레셋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Leon Wood).
일천 명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사울의 장자 ‘요나단’은 여기서 처음 등장한다.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주셨다’이다. 한편 ‘베냐민 기브아’는 사울의 고향 기브아를 가리키며, 또한 이곳은 이스라엘에 대한 사울의 통치 거점이였다(10:26).
남은 백성은 … 장막으로 보내니라. 이것은 사울이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소집했다가 다시 돌려보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이 그 때 소집되지 않았음을 강조할 뿐이다. 사울이 이같이 한 이유는, 그는 (1) 훈련 안 된 일반 백성들은 블레셋의 강한 군대를 이길 수 없다고 보았으며, (2) 또한 은밀한 가운데 블레셋 군대를 기습 공격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 이와 관련하여 카일(Keil)은, 당시 사울은 길갈에서 왕의 대관식을 마친 뒤(11:15) 이스라엘 백성 중 3,000명을 뽑고 나머지는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냈던 것이라고 추측하나, 13:1의 진술과 비교해 볼 때 시간상으로 의문이 많다.
치매. [히, 나카] 원래 ‘상하게 하다, 때리다, 죽이다’란 의미로서, 상대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군사적인 공격 행위를 가리킨다(삼하 13:28, 왕하 10:25, 13:19, 대상 18:9). 따라서 여기에 이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요나단의 군대에 의해 블레셋의 수비대가 거의 전멸되었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사울 휘하의 이천 명의 군사가 포진한 믹마스와 벧엘 산은 블레셋 수비대가 있던 게바 북쪽에, 그리고 요나단이 이끈 이천 명의 군사가 포진한 베냐민 기브아는 게바 남쪽에 가각 위치하고 있었다(2절). 따라서 그 포진 상태로 보아 사울과 요나단은 협공 기습 작전으로 게바의 블레셋 수비대를 공격하려 했던 것 같다. 즉, 요나단의 군대가 정면 공격을 감행한 것 같고, 사울은 후방에서 공격을 시도한 것 같다(R. Payne Smith).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 여기서 ‘블레셋 사람’은 블레셋의 본토 주민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 때 요나단에 의해 패배를 당한 ‘수비대’의 패잔병은 약 40 km 정도 떨어진 자신들의 블레셋 영토까지 패주하여 자신들이 당했던 사실을 보고했던 것이다.
사울이 온 땅에 나팔을 불어. 여기의 ‘나팔’(히, 쇼파르)은 ‘양의 뿔’(the ram’s horn)을 가리킨다. 한편 성경에서 ‘나팔’을 부는 행위는 ‘위험’을 경고하며, ‘성전’(聖戰, the Holy War)을 선포할 때 주로 언급된다(수 6:4, 삿6:34, 렘 4:19, 겔 33:3). 따라서 사울의 이같은 행동은 블레셋 수비대를 격파한 승리의 소식을 알림과 동시에, 블레셋과의 대규모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백성들을 소집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 ‘히브리 사람’이라는 명칭은 이스라엘 사람들 스스로에 의해서 자신들 상호간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명칭은 다른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을 경멸조로 부를 때 사용되었다(4:9, 창 14:13, 39:14). 한편, 사울은 여기서 이같은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블레셋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저항과 적개심을 불러 일으키려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70인역(LXX)은 ‘종들은 항거할지어다’라고 번역했으나, 그것은 너무 지나친 의역이다. 그리고 ‘들으라’(히, 샤마)는 명령법으로 사용될 경우 상대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사용되는 단어이다(신 6:3-4, 삼하 20:16, 대하 13:4). 따라서 여기서 그 구체적인 내용은 4절을 참조할 때, 아마도 사울과 요나단이 블레셋 수비대를 격파함으로 인해 격분한 블레셋이 대규모 반격을 시도하려고 한다는 내용일 것이다(F.R. Fay).
미움을 받게 되었다. 이 말(히, 니브아쉬)은 원래 ‘악취가 나다’란 의미지만, 여기서처럼 수동형으로 사용될 경우 ‘증오(혐오)의 대상이 되다’란 뜻이 된다(27:12, 출 8:14, 삼하 10:6). 한편, 블레셋이 이토록 격분한 이유는 물론 직접적으로는 사울과 요나단이 자신들의 수비대를 공격하여 격파한 사실이지만, 그 전에 먼저 이스라엘이 그들의 왕을 세우고, 그 왕을 중심으로 군사력을 확보하여 암몬 군대를 물리치는 등 전면적으로 블레셋에 항거하는 일련의 행동을 취하였기 때문이다(R. Payne Smith).
길갈. ‘길갈’은 요단 서편 약 6 km 지점에 위치한 지역이다(7:16, 11:14). 한편 사울이 이 지역을 백성들의 집결 장소로 선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요단 강 평야에 속한 들판이어서 병력 집결이 용이하였고, (2) 자신이 백성들에 의해 왕으로 세워진 곳이었으므로,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었으며, (3) 당시 정치적 수도라 할 수 잇는 사울의 고향 기브아는 그 지리적 위치상 블레셋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여 … 따르니라. [히, 차아크] 이 단어는 원래 ‘소리치다, 부르짓다’란 의미이나, 여기서처럼 수동형으로 사용될 경우 ‘군사적 목적의 대규모 집결 행위’를 가리킨다(삿 7:23-24, 10:17, 12:1, 왕하 3:21).
병거가 삼만 … 마병이 육천. 여기의 이 숫자들은 서로 잘 조화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근동 지방에 있었던 고대의 전쟁에서 ‘병거’(chariot)의 숫자가 ‘마병’(horseman)의 숫자보다 많은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삼하 10:18, 왕상 10:26, 대하 12:3). 이에 대해 혹자(Wordsworth)는 블레셋이 다른 동맥국들로부터 병거를 삯내어 빌려온 것이라고 주장하나, 당시 블레셋이 군사력이나 군사 장비에 있어 전혀 이스라엘에 뒤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추측은 무리이다. 따라서 여기에 나타난 ‘병거’의 숫자 ‘삼만’은 필사자의 실수로 과대하게 표기됐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러한 실수가 일어난 이유는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이다. 즉 (1) 원본은 1,000이었을 것이나, 필사자가 필사 중 1,000앞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끝자(‘라멧’-히브리 알파벳 수치상 ‘30’을 나타내는 단어)을 중복 기록함으로써 30,000이란 숫자로 잘못 전달되었을 가능성(Thenius, De Rossi, Bunsen), (2) 원본은 3,000이었을 것이나, 필사자가 필사중 3,000을 나타내는 숫자 ‘쉘로쉐느 엘레프’ 중 ‘쉰’(히브리 알파벳 수치상 300을 나타내는 단어)에 점을 두개 찍음으로써 30,000이란 숫자로 잘못 전달되었을 가능성(the Syriac, the Arabic, Bochart, Houbigant, Schulz)등이다(Pulpit Commentary, Keil & Delitzsch, Lange). 한편, 여기의 ‘병거’(히, 레케브)는 보통 6개의 살이 달린 바퀴 두개가 달렸으며, 두 필의 말이 끄는 전투용 수레였다. 이 수레의 대부분은 나무 및 가죽으로 이루어졌으나, 중요 부분은 청동이나 철로 장갑(裝甲)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병거의 뒷편은 열려 있으나 앞면은 전사(戰士)의 보호를 위하여 어느 정도 높이까지 가리워져 있었다. 대개의 경우 이 병거에는 두 사람 정도가 탔다. 그리고 ‘마병’(히, 파라쉼)은 B.C. 1200년 경에 처음 조직된 듯하며, 그 목적은 적군에게 내달리어 좌충 우돌하며 그들의 대오를 흐트리고, 그리하여 적군에게 공포심을 조장하기 위함이었다.
백성은 … 모래 같이 많더라. 블레셋 군대의 일반 ‘보병’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 ‘모래 같이’란 표현은 숫자의 많음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는 독특한 성경적 표현이다(창 13:16, 수 11:4, 삿 7:12, 삼하 17:11).
벧아웬 동편 믹마스에 진 치매. ‘벧아웬’은 ‘사악한 집’이란 의미이다.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믹마스 동쪽 약 1.2 km 지점으로 추정된다(Aharoni). 한편 호세아에서는 ‘하나님의 집’으로 알려진 ‘벧엘’이 우상 숭배의 장소로 타락하게 되자 경멸하는 뜻으로 ‘벧아웬’이라고 불려지게 됐음을 언급하고 있다(호 10:5). 수 7:2 주석 참조. 그리고 ‘믹마스’(Michmash, 2절 참조)는 후대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할 때, 앗수르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치러가면서 많은 병참 마차를 남겨두었던 곳이었다(사 10:28-29). 이같은 사실로 볼 때, 믹마스는 블레셋의 많은 군사들을 포용할 만한 넓은 곳이었음이 분명하다. 또한 여기서 ‘진 치매’는 문자적으로 ‘장막을 세우다’란 뜻이다.
굴과 수풀과 바위 틈. ‘굴’(cave)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흔히 발견되는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천연 동굴을 가리킨다. 후일 다윗도 사울로부터 추격을 받을 때, 이러한 굴 속에 피신한 적이 종종 있었다(24:3). 그리고 ‘수풀’(히, 호아흐)은 가시나무가 울창한 곳을 가리킨다(왕하 14:9, 대하 25:18, 아 2:2). 또한 ‘바위틈’(crags)은 커다란 바위들 사이를 뜻한다(민 24:21, 삿 15:8, 사 2:21).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여기서 ‘은밀한 곳’(히, 체리아흐)은 (1) 아랍어에서 온 단어로 보고,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무덤 속의 한 공간을 가리킨다는 해석(Klein), (2) 팔레스타인의 지형적 조건을 염두에 두고, 지하에 형성된 자연적인 공동(空洞)을 가리킨다는 해석(Driver), (3) 성경에 나타나는 이 단어의 다른 용례를 중시하여, 건물의 한 방을 가리킨다는 해석(삿 9:46, 49)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견해들 중, 여기의 전투 장소가 사람들이 살지 않는 산악지역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두 번째의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한편 ‘웅덩이’는 말라버린 우물의 구덩이, 또는 물을 저장할 목적으로 파놓은 구덩이 등 모두를 뜻한다(R. Payne Smith).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갓’은 갓 지파가 여호수아로부터 기업으로 분배 받았던 땅을 가리킨다. 당시 갓 지파의 기업은 요단 동편, 므낫세 반 지파와 르우벤 지파의 기업 가운데 위치했었다(민 32:1-7, 34-36, 수 13:24-28). 그리고 ‘길르앗 땅’은 (1) 넓게는 요단 동편 지역 전체를(수 22:9, 삿 5:17), (2) 일반적으로는 요단 강 동쪽의 땅 중 갈릴리 호수 남단에서 아르논 강까지를 가리킨다. 한편 이 지역은 서쪽으로는, 해면보다 약 230m나 낮은 요단 계곡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해발 약 1,100m 이상의 산등성이와 연결되어 있다. 또한 이 지역은 물이 많아 수목이 울창하며 목초지로도 훌륭하였다.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당시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를 위하여 백성들을 소집하면서 틀림업이 사무엘의 후원을 받았을 것이며, 따라서 이제 그는 블레셋과의 전투에 소집된 백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사무엘의 특별한 도움이 필요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사무엘을 기다리기 위하여 백성들이 소집될 장소로 지정된 길갈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분명 사울은 그 때 블레셋을 격파한 미스바 전투(7:7-11)를 생각하면서, 이번 전쟁에서도 사무엘의 도움이 자신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혹자(Edelkoort)는 여기서 사울이 사무엘과 약속한 이레를 기다렸기 때문에, 기다리지 못한 잘못은 없고 다만 사무엘의 제사장 기능을 침범한 잘못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사무엘이 약속된 이레의 마지막 날이 완전히 지나도록 길갈에 오지 않았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울이 사무엘과의 약속을 어긴 채 자신의 손으로 제사를 드린 그 시점을 기준으로 할 때 사무엘이 오지 않았음을 가리킨다(10절).
백성이 … 흩어지는지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스바 전투(7:7-11)에서 사무엘의 집전으로 번제를 드릴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블레셋 족속들에게 나타나 크게 승리할 수 있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7:10-11). 이러한 그들에게, 사무엘이 약속한 날이 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막강한 군사력을 소유한 블레셋(5절)으로 인한 두려움을 증가시키는 결정적 요인이 됐음이 분명하다.
사울이 … 문안하매. 여기서 ‘문안하다’(히, 바라크)란 말은 하나님께 적용될 때는 ‘찬송하다’(시 34:1, 106:48), 그리고 사람에게 적용될 때는 ‘축복하다’(2:20, 시 129:8)의 뜻으로 사용되는, 엄숙한 의식적(儀式的) 단어이다. 따라서 사울의 이같은 인사는 당시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사울이 하나님의 선지자 사무엘을 두렵게 생각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 준다.
왕이 … 여호와 …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여기서 ‘명령’은 성경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어떤 율법 규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왕 사울 자신이 지켜야 했던 직무의 한계를 가리킨다. 따라서 그 때 사울은 성전(Holy War)의 문제에 관한 한 하나님의 선지자 사무엘의 절대적 지도를 받아야 했다. 이것이 성전의 원리였다. 그러나 사울은 급박한 상황을 이유로 들어(11-12절) 이같은 원리를 지키지 않았고, 바로 그것이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고 무시한 사울의 망령된 범죄 행위였다.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이것은 사울 왕조가 조건적이었던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12:25). 즉 사울은 여호와를 향한 자신의 행동 여하에 따라 자신의 왕권을 자신의 후손들에게 계속 이양할 수 있었다.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 이것은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세워진 ‘열방과 같은 왕’(8:5)과는 날카롭게 대조된다. 또한 이것은 사울의 경우와는 달리, 그의 왕권이 신적 기원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한편 여기의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다윗을 가리킨다(16:12-13, 행13:22).
구하여. [히, 바카쉬] 이 단어는 ‘살피다, 찾다’의 뜻으로서, 자신에게 꼭 필요란 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 헤매는 것을 가리킨다(대하 15:15, 시 54:3, 전 12:10, 렘 5:1, 호 2:7, 9).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여기의 ‘지도자’(히, 나기드)는 ‘족장, 두령’의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로서 직접적으로 왕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울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졌다는 점에서 그를 대신하는 다윗에게도 이 단어가 역시 적용되었을 것이다. 한편, ‘삼으셨느니라’(히, 차와)는 ‘임명하다, 명령하다, 위탁하다’란 의미이다(Davidson). 그런데 여기서 이 단어가 과거 완료형의 의미로 기록된 것은, 하나님의 의중에는 이미 다윗을 왕으로 세우기로 작정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사실 다윗은 사울이 죽을 때 23세였으므로, 그는 이 당시에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혹은 갓 태어난 어린 아이였을 것이다.
함께 한 백성 … 육백 명. 여기의 ‘육백 명’은 원래 사울과 함께 했던 ‘이천 명’(2절)에 비하여 훨씬 적은 숫자이다. 이것은 결국 인본주의적 생각에 근거한 사울의 성급한 제사가 전혀 실효를 나타내지 못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8-9절).
세 대로 … 진영에서 나와서. 블레셋 사람들의 이같은 전법은 자신들의 막강한 군사력(5절)으로 이스라엘 전국토를 단시일 내에 유린하여 정복하고 말겠다는 그들의 강력한 의지를 반영한다.
오브라 길을 따라서 수알 땅에. ‘오브라’는 벧엘 동북쪽 약 7 km 지점에 위치했으며, 그 지명의 의미는 ‘엷은 황갈색’이란 뜻이다(수 18:23). 그리고 그곳은 원추 모양의 산지로 형성되었다. 한편 ‘수알 땅’의 ‘수알’은 ‘여우’라는 뜻이며, 그 땅은 오브리 약간 못미쳐에 있는 넒은 지경을 가리키는 듯하다(Aharoni). 그런데 보통 그곳은 사울이 부친의 암나귀를 찾기 위해 헤매던 지역 중의 하나인 ‘사알림’과 동일 지역으로 여겨진다(9:4). 결국 그 때 블레셋의 제1부대는 자신들의 진영이 있는 믹마스에서 북쪽으로 향해 진격했음이 분명하다.
한 대는 광야쪽으로. 블레셋의 제3부대는 믹마스에서 남쪽으로 향했는데, 이때 이들이 향한 여기의 ‘광야’는 예루살렘 동쪽에 위치한 유대 광야의 북부인 듯하다.
스보임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는 지역 길. ‘스보임 골짜기’는 베냐민 땅으로서, 예루살렘 동북쪽을 가리킨다(느 11:34).
히브리 사람. 여기서도 ‘히브리 사람’이란 명칭이 블레셋 사람들에 의하여 경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3절 주석 참조).
보습. [히, 마하레쉐트] 날이 있는 절단용 도구를 가리킨다.
벼리려면. ‘날카롭게 하다’란 의미이다(창 4:22, 욥 16:9, 시 7:12, 52:2). 한편 고고학적 발견에 따르면, 그 당시 농기구 하나를 날카롭게 벼리는 삯이 약 2/3세겔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Lane). 한편, 한 세겔은 약 은 11.4 g이다.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이것은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농기구로 무장했다는 암시를 준다. 이와 같은 까닭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철갑으로 자신을 두르고 또한 중무장을 한 블레셋 사람 골리앗을 더욱 크게 두려워했을 것이다(17:4-11). 뿐만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군대를 우습게 여겼을 것이다.
오직 사울과 …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 이 언급은 다음 장(14장)에서의 요나단의 기적적인 승리를 강조하기 위한 본서 저자의 신학적 의도가 많이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스라엘의 군대는 암몬과의 전투에서나, 블레셋 수비대와의 전투를 통해서 결코 적지 않은 무기를 노획했을 것이다(Keil).
믹마스 어귀에 이르렀더라. ‘어귀’(히, 마아바르)는 특정한 지역으로 통하는 길목을 뜻한다. 당시 블레셋 군대는 자기들의 본진이 있던 믹마스에서 요단 계곡으로 통하는 현재의 와디 에스 수웨이니트(Wadi es Suweinit)의 골짜기를 따라 약 1 km정도 내려와 보세스 강 근처에서 멈춘 후, 그들이 따라 내려온 골짜기의 왼편에 있는 ‘보세스’라는 산등성이로 올라간 듯하다(14:4). 블레셋 군대는 그같이 함으로써 사울의 군대와 접전할 경우 유리한 전략적 위치를 선점하려고 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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