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 여기서 ‘아비나답’은 레위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비록 이 성읍이 레위인에게 할당된 성읍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보아야 할 까닭은 다음과 같다. (1) 사사 시대에는 레위인들이 자신들의 성읍을 이탈하여 다른 지역에서 생활한 경우가 흔했으며(삿 17:12), (2) 후일 아비나답의 후손들이 언약궤를 옮기는 일에 공식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삼하 6: 3). 한편 ‘산에 사는’(히, 바기브아)이란 말은 직역하면 ‘산지에 있는’ 또는 ‘산지 위에’란 뜻인데, 이는 곧 아비나답의 집이 기럇여아림 성읍의 교외 산지에 위치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들여놓고. 아비나답의 집은 언약궤를 보관하기에 적당했던 것 같다. 그 까닭은 그의 집이 기럇여아림의 교외 고지에 위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아들 엘리아살. ‘엘리아살’(Eleazar)은 ‘하나님은 도우시는 자’란 뜻으로, 이 사람은 아론의 아들로서 아론의 뒤를 이어 차기 대제사장이 된 엘르아살(Eleazar, 출 6:23, 민 20:25-28)과는 동명 이인이다. 그런데 이런 이름의 소유자는 위의 두 사람 이외에는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사실은 아비나답의 아들 엘리아살이 레위 지파의 후예임을 암시한다.
거룩하게 구별하여. 이 말은 제사장을 임직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출 28:3, 41). 따라서 이러한 표현은 엘리아살이 혈통상 제사장 가문의 후예가 아니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당시의 특별한 상황은 제사장 직분을 감당할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였다. 따라서 그가 비록 제사장 가문의 후예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레위 지파였으므로 그곳 주민들은 그를 제사장으로 세운 듯하다. 한편 성경은 엘리아살이 어떤 권위에 의해, 또한 어떤 방식에 따라 제사장으로 구별되었는지에 대혜서는 침묵한다.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제사장 신분으로 거룩히 구별된 엘리아살이 구체적으로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지켰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런데 아벡 전투로 말미암은 실로 파괴 이후 공식적인 예배나 제사는 일단 중지된 듯하다. 따라서 엘리아살의 주임무는 예배나 제사 행위 보다도 법궤를 안전하고도 정결하게 잘 보관, 건사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헹스텐베르그(Hengstenberg)의 언급은 꽤 인상적이다. “장차 법궤가 그 영광스러운 모습을 다시 드러낼 때까지(마치 충실한 묘지기인 양) 지킨 것이다”(J. P. Lange, Commentary on the Holy Scripture).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여기서 ‘사모하다’(히, 나하)란 말은 본래 ‘크게 울다, 부르짖다’란 뜻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이 말은 흔히 신세를 몹시 한탄하거나 과거의 잘못을 깊히 뉘우쳐 크게 울면서 부르짖는 행위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렘 9:10, 31:15, 겔 32:18, 암 5:16, 미 2:4).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 활동을 이방 족속 블레셋에 의해 오랜 기간 동안 강제로 억압당했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 나타날 수 밖에 없었던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 깃들어 있는 사무엘의 투쟁적 노력과 활동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즉 일찍이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명망이 높았던(3:19-20) 사무엘이 이 오랜 시기 동안 잠자코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비록 성경은 이 점에 대해 침묵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러 일의 결과를 통해 다음과 같이 추측할 수 있다. (1) 아벡 전투의 결과로 말미암은 실로 성소 파괴 이후, 아마도 사무엘은 성막을 놉으로 이전하는 일에 깊이 관여했을 것이다(21:1-9). (2) 대제사장 엘리와 그의 두 아들 사망 이후, 사무엘은 실질적인 이스라엘의 정치, 종교 지도자로서 사회 질서를 바로 잡고 타락한 제사 예식의 기강을 수립하는 일에 매진하였을 것이다. (3) 블레셋의 위협을 무릅쓰고 사무엘은 이스라엘 곳곳을 돌며 여호와 신앙을 고취시키고 죄의 회개를 부르짖는 등 신앙각성 운동을 전개하였을 것이다. (4) 또한 사무엘은 종교 교육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제사장과 레위인을 모세 율법으로 바로 세우고, 아울러 선지자 학교를 창설하여 젊은 인재들을 육성했던 것 같다(Leon Wood, A Survey of Israel’s History, PulpitCommentary).
전심으로 … 돌아오려거든. 여기서 ‘돌아오다’(히, 슈브)란 말은 ‘회복하다, 돌아가다, 전향하다, 회개하다’란 뜻으로서 곧 성경에서 이 단어는 죄에서 돌이켜 회개함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 된다(왕상 8:33, 48, 대하 6:24, 느 1: 9, 렘3:10). 한편 ‘전심으로’(히, 베콜레바브켐)는 ‘너의 마음 송두리채’란 뜻으로서, 이는 회개의 순수하고 진정한 성격을 강력히 암시해 준다.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 제거하고. 우상을 제거하는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돌아와 여호와만을 섬기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출 20:3-6). 여기의 ‘이방 신’(히, 엘로헤 하네카르)은 문자적으로는 ‘낯선 신들’이란 의미이다. 그러나 4절의 언급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구체적으로는 ‘바알 신’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이 ‘바알’은 ‘주’(主)라는 의미인데, 가나안 땅에서 이 바알 신은 원래 ‘엘 신’의 아들로 비와 풍년을 가져다 주는 신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그는 죽음의 신인 ‘못(Mot) 신’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였는데, 그후 7년의 세월이 지난 후 그의 누이이자 아내인 전쟁의 여신 아낫(Anat)이 그의 시체를 찾아 그를 다시 살렸다고 한다. 한편 ‘아스다롯’은 예레미야서에서 ‘하늘의 여신’으로 언급되는 여신이다(렘 44:19). 이 여신은 가나안 사람들에 의하여 미(美) 와 유연성을 지닌 ‘성(性)의 여신’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그 당시 바알 신과 아스다롯 신은 보통 가나안 사람들에 의하여 함께 모셔졌고,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서도 그런 경우가 많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우상 신들에 대한 숭배 의식에는 위의 두 우상의 성격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필연적으로 성적 음란이 뒤따르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방의 우상 숭배는 하나님을 멀리 하도록 했다는 중요한 이유 외에 성적 음란을 조장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타락시키기에 충분하였다(민 25:1-2, 왕상 14: 24, 15:12, 22:46). 이에 따라 성경에서는 바알과 아스다롯을 함께 묶어 이스라엘 백성이 절대로 금해야 할 숭배의 대상으로 언급하였다(삿 2:11, 3:7, 왕하 23:4).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제거하고’(히, 하시루)는 ‘제껴두다, 뽑다, 떠나다’란 뜻의 ‘수르’에서 파생된 말로, 이 말은 구약 성경에서 특히 우상을 그 흔적까지도 없앤다는 뜻으로서 많이 사용된 단어이다(창 35:2, 수 24:14, 왕상 15:14, 왕하 12:3, 대하 15:17). 한편, 후일 유다의 두 현군 히스기야와 요시야는 우상을 제거하는 구체적 방법으로 ‘찍어버리는 것’(왕하 18: 4)과 ‘불살라 재로 만들어 평민의 묘지에 버리는 것’(왕하 23:4-6) 등의 두 가지 방법을 백성에게 지시하였다.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사무엘의 이 말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 족속에 의해 얼마나 오랫동안 심하게 유린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아울러 그러한 압제와 핍박의 원인이 무엇 때문인지도 분명히 알려 준다.
바알들과 아스다롯. 3절 주석 참조.
내가 너희를 위하여 … 기도하리라. 사무엘의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중보의 기도임이 분명하다(12:19, 시 99:6, 렘 15:1). 따라서 이 일은 마땅히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할 일이었지만, (1) 당시는 대제사장이 뚜렷이 없었고 또한 제사 의식마저 제대로 행해지지 않았으며 (2) 사무엘은 이스라엘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도록 하나님에 의하여 특별히 부름받은 인물이었다는 점에서(2:35, 3:19-21) 사무엘에 의해 수행될 수 밖에 없었다.
금식하고. ‘금식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춤’은 본래 ‘입을 덮다’란 뜻이다. 여기서는 여호와께 진정과 겸손으로 회개한다는 구체적인 표시로 ‘금식’이란 방법이 채택되고 있다(사 58: 6-9). 아울러 여기 ‘금식’은 애통과 회개와 기도 등을 모두 함축한다(삿 20:26, 삼하 12:16-23, 왕상 21:27).
우리가 … 범죄하였나이다. 이 말은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여러 가지 회개에 대한 묘사 중 가장 전형적인 형태이다(출 32:31, 신 1:41, 삿 10:10, 삼하 24:10, 왕상 8:47, 왕하 18:14). 여호와를 향한 이스라엘 백성의 이와 같은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는 그들이 블레셋의 압제에서 구원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삿 3:9, 15, 4:3, 6:6).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 다스리니라. 여기의 ‘다스리니라’(히, 이쉬포트)는 ‘재판하다’란 의미이다(출 18:16, 22, 사 2:4, 렘 5:28, 단 9:12). 즉 이스라엘의 종교 개혁을 주도한 사무엘은 이제 종교적인 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지도자로서 백성들의 생활 태도 전반을 교정시키고 감독하며 재판해야 하는 사사로서의 역할도 감당하게 된다.
이스라엘 자손이 … 두려워하여. 블레셋 족속에 의하여 많은 세월 동안 압제를 당해 왔던 이스라엘 사람들로서는 블레셋의 공격 소식에 이같이 반응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출 14:10, 13, 수 10:8). 더구나 당시 이스라엘은 싸울 무기나 조직 조차 변변치 못했지만, 블레셋 족속은 강력한 철병기로 무장한 군대였다.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것은 희생 의식 절차에 있어서의 완전성을 의미하기 보다는, 오히려 헌신하는 마음 자세의 완전성을 뜻한다. 또한 실제적으로 어린 양 한 마리 전체가 온전히 화제(火祭)로 불살라졌음을 뜻하기도 한다. 여기서 사무엘이 여러 가지 제사 형태 중에서 번제를 드린 이유는 ‘번제’가 전적 헌신의 제사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사무엘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같은 번제를 통하여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을 다짐함으로써 (1) 자신들의 회개의 진실성을 강조하며(6절), (2) 자신들이 구원 받아야 할 간절한 필요성을 호소하였다(8절).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이것은 진실하면서도 간절한 전적인 헌신의 기도가 얼마나 큰 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약 5:16).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헌신과 기도에 대하여 우레로써 응답하셨다. 여기서 ‘우레’는 블레셋 군대를 쳐부수는 하나님의 무기로 사용되었다(2:10, 삼하 22: 4). 하나님께서는 이외에도 번개(삼하 22:15, 왕상 18: 38), 우박(수 10:11), 흑암(수 24: 7), 심지어 별(삿 5:20)과 질병(5:6)까지도 당신을 대적하는 자들을 징벌하시는 무기로 사용하신다. 여기서도 하나님께서는 자연계를 당신의 의지에 따라 주장하셔서 ‘우레’라는 자연현상을 발생시키셨다. 사실 고대인들은 이 우레를 하나님의 목소리로 생각했다. 여하튼 때맞춰 하늘로부터 터져나온 이 ‘우레’ 소리로 인하여 블레셋 족속은 두려움에 떨게 되었고, 혼비백산하게 되었다.
벧갈. ‘어린 양의 집’ 혹은 ‘초원의 집’이란 뜻이다. 이 ‘벧갈’의 위치는 확실치는 않으나 미스바 서쪽 약 13 km 지점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측된다(Klein). 요세푸스는 오늘날 이 벧갈의 위치를 여리고와 벧스안 사이의 ‘코라이온’(Korraion)으로 보고 있다(Josephus, Antiquities, VI. 2, 2).
미스바와 센 사이. ‘미스바’(‘망대’ 또는 ‘파수대’란 뜻)는 예루살렘 북쪽 약 13 km 지점에 위치한 베냐민 지파의 땅이다. 7:5 주석 참조. ‘센’은 ‘치아’란 뜻으로서, 그 지역이 불쑥 불쑥 날카롭게 튀어 나온 바위들이 많은 험준한 곳이었음을 시사해 준다(Fay, Keil). 이곳은 미스바 동북쪽 약 13 km지점의 ‘여사나’(대하 13:19)와 동일한 지역으로 주장되기도 한다(Reed). 그러나 블레셋 족속들은 이스라엘의 반격을 받아 서쪽으로 도주하였을 것이므로, 위의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Klein). 사무엘과 이스라엘은 패주하는 블레셋을 추격하여 미스바의 서쪽으로 향했고, 그리고 그들이 진격해 간 곳 근처 어디에 돌을 세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돌이 세워진 곳은 ‘벧갈’(11절)과 가까운 곳으로 볼 수 있다.
여호와께서 … 우리를 도우셨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의미가 내포된 말이라 할 수 있다. 즉 (1)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에 대한 감사, (2) 계속적인 은혜 공급의 간절한 요청, (3) 하나님의 은혜 안에만 계속 머물겠다는 전적인 헌신의 각오 등이다.
여기까지. ‘여기’(히, 헨나)는 구체적으로 그 때 사무엘과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추격해 갔던 서쪽 한계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그런데 사실 근 40년간 블레셋의 압제에 시달리던(삿 13:1) 이스라엘이 싸움에서 이겼을 뿐만 아니라, 블레셋 족속의 영역인 가나안 서쪽까지 막강한 블레셋 군대를 공격하면서 쫓아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에벤에셀’(‘도움의 돌’)은 미스바 전투의 승리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미래 세대에 증거하기 위해 세운 기념석으로서, 이스라엘이 블레셋 군대를 추격해간 장소에 세워졌다. 그런데 여기 ‘에벤에셀’은 4:1의 에벤에셀과는 다르다. 그 이유는 (1) 그 위치에 있어서 다르며(4:1 주석 참조) (2) 4:1의 에벤에셀은 한 지역의 명칭인 반면, 여기의 에벤에셀은 다만 ‘돌’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여기의 ‘블레셋 사람들의 굴복’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완전한 항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블레셋 족속들은 이스라엘 영내 일부에 자신들의 총독부 및 수비대를 계속 두고 있을 정도로(10:5), 이스라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9:16). 따라서 여기 이 말은 미스바 패전 이후 블레셋은 더 이상 이전처럼 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그 세력이 약화되어 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많은 성읍을 회복할 수 었었다.
여호와의 손이 … 막으시매. 이것은 미스바 전투(10-11절) 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블레셋의 파상적 공격이 계속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친히 블레셋의 공격을 막아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도우심도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라는 단서가 붙음으로써, 사무엘 사후 이스라엘에 밀어닥칠 격랑을 예상하게 한다.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 말은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통치하고 있는 동안을 가리키는 말로, 이 기간은 사울이 왕이 된 후의 약 5년을 포함하는 기간이었다. 실제로 사울은 이 5년 동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많은 전공을 남길 수 있었다(14:23).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 회복되니. 이 말은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주요 성읍인 에그론과 가드까지 정복했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은 에그론과 가드를 잇는 블레셋 경계의 동쪽 성읍을 회복했다는 뜻이다(Keil, Fay, Smith). 사실 이 부근의 이스라엘 성읍들은 오랫동안 블레셋의 통치와 압제 하에 있었으나, 사무엘 시대에 다시 되찾은 것이다.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이 두 민족은 역사적으로 계속 앙숙 관계에 있었다. 특별히 ‘아모리 사람’은 가나안의 여러 족속 중 가장 강력한 족속으로서, 출애굽 이후 계속적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혀온 족속이었다. 그러나 사사 사무엘의 시대에는 이들 간에 평화가 유지되었는데, 이처럼 아모리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평화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블레셋의 강력한 군대가 이스라엘에 의하여 패퇴당하는 것을 아모리 족속이 분명 목도하고 그 위세에 눌렸기 때문일 것이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벧엘’은 예루살렘 북쪽 약 16 km 지점의 에브라임 지파에게 속한 지역으로, 이곳은 일찍이 아브라함과 야곱이 제단을 쌓는 등의 역사적 사실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의 성지(聖地)로 여겨 졌다(10:3, 창 12:8, 28:17-19, 수 7:2, 왕상 12:29). 한편 ‘미스바’는 예루살렘 북쪽 13 km 지점, 곧 예루살렘과 벧엘 사이의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다. 5절 주석 참조. 그리고 ‘길갈’은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넌 직후 집단적으로 할례를 받은 곳으로서(수 5:8), 요단 서쪽 약 6 km 지점이다(수 4:19). 이처럼 사무엘이 순회했던 지역들에 대한 언급을 통해서 우리는 사무엘의 사사직 수행이 온 이스라엘 지파들의 지역을 총망라하지 못하고 어느 정도 제한적인 범위 안에서 이뤄졌음을 볼 수 있다. 그같이 볼 수 있는 이유는 위에 언급된 지역들이 모두 팔레스타인의 중앙부에 위치한 곳들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여기서 ‘그 모든 곳’과 ‘이스라엘’은 동격이며, 이것들은 곧 위에 언급된 여러 지역들을 가리킨다.
제단을 쌓았더라. 이것은 지극히 타당한 행동이었다. 그 이유는 (1) 당시는 아직 중앙 성소가 확정되지 않았으며(신 12:11), (2) 또한 제사장의 무리들은 엘리 가문의 파멸 이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3) 실로의 성막은 심각한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처럼 영적 침체를 가속화시킬 수 있었던 여러 요인들이 두드러졌던 당시 상황에서 선지자요 사사인 사무엘이 또한 제사장 역할을 감당하여 하나님께 대한 제사 의식을 회복하는 것은 실로 시급한 일이었다. 따라서 사무엘은 고향 라마에 여호와의 제단을 쌓아 제사 의식을 수행했는데, 특히 ‘라마’는 이스라엘의 중심부에 위치하였으므로 모든 백성들이 그곳에 희생제사를 드리기 위해 오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Previou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