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주석, 사무엘상 0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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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사무엘의 말이 … 전파되니라. 이 말은 사무엘이 하나님의 대언자(선지자)로서 그 권위가 모든 사람들에게 미쳤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이스라엘을 새롭게 이끌어 나갈 사무엘의 모습을 부각시켜 주는 3장 하반부(19-21절)에 연결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실제로 불가타역(Vulgate)이나 수리아역(the Peshitta)에서는 이 말을 앞 장에 연결시키고 있다. 그러나 혹자들(Keil, Gerlach)은 이 말을 블레셋 전투를 다루고 있는 본 장(4장)과 연관시켜, 곧 사무엘이 블레셋 전투를 위해 이스라엘 군사를 소집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당시는 아직 이스라엘이 사사요 대제사장인 엘리의 주관하에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견해는 타당치 않다(Pulpit Commentary). 아울러, 만일 사무엘의 소집하에 출전했다면 이후 전쟁의 패배 책임도 분명 사무엘에게 돌아갔을 것이고, 따라서 사무엘의 권위도 추락되었을 터인데, 이후 전개되는 상황에서 그러한 점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엘리 사후 사무엘의 권위는 더욱 강화되었다. 따라서 이 모든 점은 위의 어구가 사무엘의 선지자 직의 권위를 요약 정리하는 말로서, 곧 3장의 결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 준다.

이스라엘은 …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여기의 ‘블레셋 사람’은 본래 해양 생활을 하던 민족으로서, B.C. 13세기 말에 헬라 본토인들의 압력에 의하여 자신들의 본거지 에게 해 지역을 떠나 애굽으로 침입해 들어갔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애굽 왕 라암세스 3세에게 쫓겨 다시 가나안 땅의 지중해 쪽 해안으로 건너와 거기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Burrows). 한편 아모스 9:7은 그들이 갑돌(그레데 섬) 지역에서 왔다고 말하는데, 이는 그들이 B.C. 2000년 경의 아브라함 시대에 성경의 무대에 처음 등장할 때에는(창 20:1-2, 26:1), 그레데 섬에 본거지를 두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무튼 그 이후 블레셋 족속은 특히 사사 시대에 들어와서는 가나안 땅의 남서쪽을 완전히 장악하여(삿 3:3)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였다(삿 13:1-16:31). 그런데 당시 이들은 높은 수준의 문명을 소유했었다. 즉 이들은 가나안 지역에서 유일하게 제철 기술을 보유하여(13:19-22, 17:7), 이 기술을 기반으로 잘 무장된 강력한 군대를 갖추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다른 금속에 대한 제련 기술 및 공예 기술도 뛰어났던 것 같다(6:4-5). 그러므로 이들은 이때 강력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이스라엘을 완전히 지배하려고 했는데, 그 때마다 이스라엘과 심한 마찰이 빚어진 듯하다. 한편, 엘리 당시에도 이스라엘은 B.C. 1095년 이후 40여년간 계속되는(삿 13:1) 블레셋 족속의 압제를 받고 있었다. 따라서 여기의 이 전투는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일으킨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때는 블레셋의 압제를 받기 시작한 지 약 20년이 경과한 B.C. 1075년 경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Leon Wood).

에벤에셀 곁에 진치고. 여기의 ‘에벤에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 족속과의 싸움에서 두 번씩이나 패했던 곳으로(2,11절),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전사한 곳이며, 또한 법궤를 빼앗긴 곳이다. 오늘날 그 위치는 분명치 않으나, 학자들은 야파(Jaffa) 동북쪽의 ‘마이델 야바’(Majdel Yaba)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 ‘에벤에셀’은 후일 이스라엘이 블레셋 군대를 쳐부수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돌에다 사무엘이 명명한 ‘미스바’와 ‘센’ 사이의 ‘에벤에셀’(7:12)과는 다른 곳인 것 같다.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여기서 ‘아벡’은 이스라엘이 진 쳤던 에벤에셀 서쪽 약 3.2 km 지점인 아르곤 강의 근원지 근처로서, 샤론 평야의 한 지점이었다(29:1). 그런데 이곳은 원래 가나안 족속들의 아성이었다는 사실에서 볼 때, 블레셋 족속들이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얼마나 맹위를 떨치고 있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블레셋 족속들이 이곳에 진을 친 이유는 자신들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사적 행동을 취한 이스라엘에 보복하기 위함이었다.

 

4:2 전열을 벌이니라.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라크’는 ‘줄을 맞추다, 정렬하다, 배열하다’란 의미이다. 이는 곧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군사를 배치하는 행동을 가리킨다. 아울러 이 말은 대치 상황에서의 일제 공격을 뜻하기도 한다. 이렇게 본다면, 이스라엘은 블레셋을 공격하기 위하여 그곳까지 왔지만, 오히려 블레셋 족속들로부터 선제 공격을 당한 것이다.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이같은 숫자는 당시의 인구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 한편, 개역 성경에는 번역이 안 되었지만, 히브리 원문을 참조할 때 이스라엘이 당시 블레셋과 접전을 벌인 곳은 ‘들판’(히, 사데)이었다. 따라서 이때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힘으로 블레셋을 능히 이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그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퇴각치 않았다가 큰 손실을 입은 듯 하다.

 

4:3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 표현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각각 본진을 중심으로, 그곳에서 얼마간 떨어진 넓은 들판을 전장으로 삼아 상호 접전을 벌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전쟁 방식은 당시의 일반적 형태였던 것 같다. 아무튼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크게 패한 후 자신들의 본 진영으로 귀환한 것이다. 한편 여기서 이스라엘 군인을 ‘백성’(히, 암)으로 표기한 것은 당시에는 오늘과 같은 개념의 정예 정규 군인이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백성들 중 일정한 나이에 달한 성인 남자들이 때를 따라 소집되어 전장에 나가 전쟁을 수행했기 때문이다(R. Payne Smith).

장로들이 이르되 … 어찌하여 … 패하게 하셨는고. 이것은 자신들의 패배가 전혀 뜻밖이었음을 암시해 주는 탄식조의 말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병력이나 군비의 측면에서 부족함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에서 크게 패배했다는 것은 또다른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으로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아무튼 구약 성경이 항상 패전을 범죄의 결과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수 7:11-12), 이 패배 또한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 및 징벌의 성격을 띄고 있음이 분명하다.

여호와께서. 여기서 ‘여호와께서’라는 말은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자신들의 패전 원인을 자신들에게서 찾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 탓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음을 보여 준다(Matthew Henry).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인지를 잘 모르고 있음을 암시해 준다. 즉 그들은 하나님께서도 이방 우상들처럼 당신을 섬기는 백성들에게는 무조건 복을 내려주시는 분으로 알았을 뿐, 죄악에 대해서는 공의를 베푸시는 살아계신 인격적인 하나님이심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패전 후 자신들의 모습을 뒤돌아보고 죄악을 회개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Grotius), 그들은 패전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았다. 따라서 이는 그들이 다음의 미신적인 행동을 하게 된 분명한 이유를 제시해준다.

언약궤를 … 가져다가 … 구원하게 하자. ‘언약궤’(출 25:10-22, 37:1-9)는 사실 하나님과 백성들이 언약 관계 하에 있음을 보증해 주는 상징물에 불과하였다(신 10:8). 그런데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전투에서 패배한 원인을 전투 장소에 언약궤가 없었다는 지극히 미신적인 사실에서 찾았다. 그러나, 비록 언약궤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독특한 관계를 언약적으로 보증하며(출 25:22, 34:28-29) 또한 그것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기는 하지만, 그 자체에 어떤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는 이스라엘 장로들의 생각은 당시대의 이방 우상 문화에 빠진 결과였다.

 

4:4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당시 ‘실로’는 하나님의 성소 곧 언약궤가 보존되어 있던 곳으로서, 에벤에셀로부터는 약 37 km 동쪽에 위치하였다. 1:3 주석 참조. 한편 이때 사자(使者)들은 완전한 하룻길 이상을 걸어서 실로에 도착하였을 것이다.

그룹 사이에 계신. ‘그룹들(출 25:18-19) 위의 보좌에 좌정하신’의 뜻으로, 이는 단순히 그 장소적 위치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왕으로서의 여호와의 신분적 지위를 가리키는 말이다(Smith).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을 친히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왕권을 상징하는 말이다(1:3 주석 참조). 이와 같은 사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임을 강력히 알려준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그와 같으신 하나님 그분을 신뢰하기 보다는, 다만 그분의 임재를 상징할 뿐인 상징물 곧 언약궤 자체를 신뢰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었다.

엘리의 두 아들 … 언약궤와 함께 거기 있었더라. 이 구절은 당시 언약궤를 관리하고 있는 자들이 어떤 인물인지를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지극히 타락했던 자들이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은 실로 역설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본 구절은 여호와의 언약궤에 어떠한 불길한 일이 닥칠 것을 의도적으로 미리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Keil).

 

4:5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큰 소리로 외치는 일’은 대부분 성경에서 성전(聖戰)과 관련하여 언급된다(17:20, 52, 수 6:5, 삿 7:20, 대하 20:21-22). 따라서 언약궤를 전장(戰場)에 가져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처럼 지금도 승리가 자신들에게 있을 것을 확신하여 이와 같은 행동을 하였다. 그러나 사실상 상징물만 남아 있고 하나님은 떠나버린 이 전쟁은 결코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이 될 수 없었다. 따라서 땅이 진동할 정도로 외친 이스라엘 백성들의 큰 기쁨과 환호의 소리도 아무런 능력을 나타내지 못할 수 밖에 없었다.

 

4:6 이스라엘 백성들의 ‘함성’에 대한 블레셋 족속들의 반응이 언급되고 있다.

히브리. [히, 이브리] 이 명칭은 이스라엘 자손들 스스로에 의해 생긴 명칭이 아니라, 다른 족속들이 이스라엘 자손을 가리킬 때 사용한 명칭이었다(창 14:13). 이것은 ‘강을 건너다’(히, 아바르)에서 파생된 명칭으로서 ‘강을 건너온 자’라는 뜻이다. 사실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은 소명 이후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이주해 들어왔기 때문에, 가나안 족속들에 의해 ‘이주자, 유랑자’란 뜻의 경멸조로 붙여진 명칭이 바로 ‘이브리’였다. 그런데 후일 이 명칭은 다른 족속들이 이스라엘을 특별히 구별하여 부를 때 사용한 명칭이 되었다(Keil, Lange, Smith).

 

4:7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당시 대개의 이방인들은 지역 수호신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타국의 신(우상)들에 대해서도 자신의 신들처럼 두려워했다. 그러한 당시의 정황에서 볼 때, 블레셋 족속의 이같은 반응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Keil). 물론 블레셋 족속은 ‘여호와의 궤’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몰랐을 것이다. 다만 그들은 자신들의 범신론적 신관에 따라 ‘여호와의 궤’에 이스라엘의 신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그렇게 두려워한 까닭은, 일찍이 자신들의 동족을 삼손이 몰살시켰던 것은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은 연고였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삿 16:23-31).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여기의 ‘신’(히, 엘로힘)은 이스라엘의 참하나님께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의 신들에 대해서도 사용되는 일반적인 호칭이었다. 따라서 여기 이 하나님의 칭호는 복수를 나타내는 어미를 갖고 있지만, 이것이 삼위일체적 특성을 갖고 있는 여호와의 속성을 암시하지는 않는다(창 1:1). 다만 이와 같은 복수 어미는 장엄 복수로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나타내 준다. 따라서 이 ‘엘로힘’이라는 단어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실제적으로 단수로 취급되어졌다. 한편 이방인들은 이 단어를 단수 및 복수 등으로 아울러 사용한다. 그런데 본 구절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이 이 단어를 단수로 사용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그들이 ‘이르렀도다’(히, 바)라는 3인칭 단수 동사를 사용했다는 사실로써 알 수 있다. 이처럼 그들이 다신론적 신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기서 ‘엘로힘’을 단수 취급한 이유는, 그들이 신(神) 자체로 생각하는 ‘언약궤’가 하나였기 때문일 것이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이 말은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의미한다. (1)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을 하면서 언약궤를 전장(戰場)에 가져온 것이 처음이라는 사실, (2) 블레셋 족속들이 전쟁 중 처음으로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는 사실 등이다.

 

4:8 이 능한 신들. 여기의 ‘신들’(히, 엘로힘)은 7절의 ‘신’과 동일한 단어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분명히 복수로 취급되고 있어서, 블레셋의 다신론적 신관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1) 여기의 ‘이’(히, 하엘레)가 복수 지시대명사이며, (2) ‘능한’(히, 하아디림)은 ‘신들’을 수식하는 복수형 형용사라는 사실로 입증된다.

그들은 광야에서 … 애굽인을 친. 블레셋 족속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 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이었다(출 15:14). 사실 블레셋 족속은 애굽과 가까운 곳에 살아왔으므로(출 13:17), 다른 어느 족속보다도 여호와께서 애굽인들에게 행하신 놀라운 심판을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수 2:9, 5:1, 왕하 5:15, 욘 4:14). 그리고 블레셋 족속은 애굽의 강력한 세력에 밀려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들어왔기 때문에(1절 주석 참조), 자신보다 강한 힘을 소유한 애굽을 징벌한 이스라엘의 신(히, 엘로힘)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4:9 대장부가 되라. 여기서 ‘대장부’(히, 아나쉼)는 인간의 강한 측면을 강조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창 6:4, 18:2). 이때 블레셋 방백들은 전쟁 상대국의 신인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강하다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오히려 자신의 족속들로 하여금 용기를 갖도록 만들었다. 그리하여 결국 블레셋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는데, 얼핏 보기에는 블레셋 족속들의 담대한 용기가 큰 작용을 한 것 같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 붙이신 결과 때문이었다.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 말고. 블레셋 족속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군사들에게 히브리인의 노예가 될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함으로써 그들 스스로를 분발케 하였다. 이처럼 블레셋 지도자들은 그 당시의 노예에 관한 관습, 즉 전쟁 포로가 되어 타민족의 지배하에 놓일 경우 극한의 학대를 받는다는 사실을 주지시킴으로써(왕하 25:2) 소기의 목적을 당설할 수 있었다.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말고. 이 말은 사사시대 말기 이래 이스라엘 백성이 근 40년간 블레셋 족속의 압제를 받았던 역사적 사실(삿 13:1)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1절 주석 참조). 그러므로 당시 블레셋 족속들은 자신들이 이스라엘을 압제해 본 경험이 있는 만큼, 자신들이 전쟁에 져서 노예가 될 경우 당하게 될 비참한 신세와 처참한 고통을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4:10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여기서 ‘쳤더니’(히, 라함)는 ‘싸우다, 삼키다’의 뜻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마음의 배수진을 치고 마치 삼킬듯이 결사적으로 싸웠음을 보여준다.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각기 장막으로 도망가다’라는 표현은 전쟁에서 처참하게 완전한 패배를 당하여 뿔뿔이 자신들의 집으로 흩어져 숨는 모습을 묘사할 때 성경에서 자주 사용된 표현이다(13:2, 삿 20:8, 삼하 18:17, 19:8, 20:1, 왕상 12:16). 따라서 이와 같은 양상은 들에서 마주쳐 싸웠던 첫 번째의 싸움(2절)보다 훨씬 처참한 패배였음을 시사한다.

이스라엘 보병. 당시 이스라엘 군대는 기병이나 전차병 없이 보병으로만 구성되어 있었다(R. Payne Smith).

엎드러진 자가 삼만. 이같은 전사자의 숫자는 이스라엘 한 지파의 장정 숫자와 거의 비슷하다(민 26장). 따라서 이 처참한 패전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온 백성이 받은 심리적 충격은 실로 대단했을 것이다. 한편 발굴 탐사에 따르면, 이때 블레셋 사람들은 이 아벡(Aphek) 전투에서의 승리의 여세를 몰아 이스라엘 본토로 쳐들어 갔고, 심지어 실로의 성소까지도 파괴한 듯하다(렘 7:12, 26:6). 뿐만 아니라 이때 그들은 이스라엘 땅에 처음으로 지역 수비대를 상주케 하였고(10:5, 13:3), 아울러 자신들의 제철 산업을 독점적으로 보호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이 소유했던 제철 공장을 파괴하여,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신들의 제철 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도록 만들었다(Leon Wood, A Survey of Israel’s History). 특히 20세기 초 덴마크 발굴 탐사대에 의하여 조사된 실로 유적지는 B.C. 11세기 어간에 심하게 파괴된 흔적이 드러났다고 한다(Albright).

 

4:11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하나님의 시내 산 계시에 따라 모세가 법궤를 제작한 이후로(출 25:10-22, 37:1-9), 그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생각케 하는 동시에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확인시켜 주는 지극히 거룩한 상징물이었다. 그러므로 아벡 전투에서 블레셋 족속들에게 법궤를 빼앗긴 사건은 이스라엘 성막사에 있어서 극히 이례적이고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여하튼 여호와의 법궤를 빼앗긴 일은 상징을 마치 본질인 양 생각했던 이스라엘 대한 하나님의 두려운 징계였다. 아울러 법궤 탈취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일깨워 주셨다. (1) 전능하사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여하한 상징물, 또는 공간적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다. (2) 하나님의 임재가 떠난 법궤는 아무 쓸모 없는 단순한 궤짝에 불과하다. (3) 범죄로 인해 언약이 파기된 곳에서는 그 어떠한 의식을 치른다 해도 하나님께서 전혀 방패와 도움이 되어 주시지 않는다.

엘리의 두 아들 … 죽임을 당하였더라. 이같은 사실은 영적으로 타락한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이자, 또한 엘리 가문에 대한 심판적 예언의 준엄한 실제적 성취였다(2:33-34).

 

4:12 당일에. 아벡 전투로 인해, 10, 11절의 사건이 일어난 때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진영이 있는 에벤에셀과 대제사장 엘리가 있는 실로 간의 거리는 약 37 km였으므로, 그 날에 그 사자(使者)가 뛴 거리는 매우 먼 거리라 할 수 있다. 한편 통신수단이 전혀 발달되지 못했던 그 당시 상황에서 이와 같은 사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였다(삼하 18:19-31).

어떤 베냐민 사람. 유대 랍비들은 여기 ‘어떤 베냐민 사람’을, 나중에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울로 보았다. 그러나 연대적으로 볼 때 그 타당성은 없다(Smith). 또한 이와는 별도로 어떤 주석가는, 사울이 속했던 베냐민 지파의 사람이 당시의 실권자 엘리에게 슬픈 소식을 전한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통치권이 실로의 제사장에게서 기브아의 사울에게로 넘어갈 것을 예시해 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Stoebe).

옷을 찢고 그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이것은 극히 비극적인 일을 당했을 때 취하게 되는 상징적 행동이었다(창 37:29, 34, 민 14:6, 수 7:6, 삼하 1:2, 15:32, 겔 27:30).

 

4:13 엘리가 길 옆 …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여기서 ‘길 옆’은 틀림없이 엘리가 전장에서 온 사자를 제일 먼저 만나볼 수 있는 성문 입구 근처의 장소일 것이다(Thenius, Smith). 따라서 본 구절은 엘리가 전투의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그의 마음이 여호와의 궤로 … 떨릴 즈음이라. 이것은 언약궤를 보관하는 데 있어 최고의 책임자였던 그가 언약궤를 전쟁터로 보낸 자신의 행동을 몹시 후회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엘리가 장로들과 백성들의 요청에 응해 언약궤를 보낸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1) 엘리가 그 아들들의 부정한 행동으로 인해 이미 백성들로부터 신임과 권위를 상실하였고, (2) 그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 길도 없었을 뿐 아니라(3:1), (3) 당시 엘리는 너무 늙어서 이미 판단력을 상실하였기 때문일 것이다(1:13, 2:22, 3:2).

그 사람이 … 알리매. ‘알리매’(히, 나가드)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특별한 견해나 어떤 소식을 의도적으로 알게 하는 행동을 가리킨다(신 4:13, 삼하 19:8).

온 성읍이 부르짖는지라. 여기서 ‘부르짖는지라’(히, 자아크)는 어떤 큰 불행을 당하였을 때에 거기서 구원받기 위하여 크게 소리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것은 여호와의 궤에 미신적인 기대를 걸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망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알려준다.

 

4:14 본 절은 엘리의 가련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때 늙은 제사장 엘리는 전장으로부터 오는 사자의 보고를 제일 먼저 받아야 할 신분이며, 또한 가장 먼저 그 보고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앉아 있었으면서도, 오히려 백성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은 후에야 비로소 불길한 소식이 있음을 감지했다. 이같은 사실은 엘리가 앞을 못볼 정도로 눈이 어두웠다는 본서의 언급과 깊은 관련이 있있는 것 같다(15절, 3:2).

 

4:15 본 절은 대제사장 엘리가 백성들 보다도 더 늦게 패전 소식을 접할 수 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13-14절).

그의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눈이 희미해져가던(3:2) 엘리는, 이제 그의 말년에 이르러서는 거의 앞을 보지 못했다. 이에 대해 카일(Keil)은 언급하기를 “엘리의 눈이 먼 것은 일반적으로 나이가 매우 많이 든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병으로 아마 시신경의 쇠약이나 마비로부터 야기되는 이른바 검은 백내장(black cataract, amaurosis)이라 할 수 있다”(Keil & Delitzsch, Vol. II-ii. p, 56). 한편 이처럼 나이로 인해 눈이 먼 경우는 여로보암 시대의 아히야 선지자에게서도 발견된다(왕상 14:4).

 

4:16 내 아들아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엘리가 ‘내 아들아’(히, 베니)라는 칭호를 사용하면서까지 이같은 질문을 한 것은 엘리가 이미 전투 상황이 불길하게 돌아갔고, 또한 법궤에 어떤 심각한 문제가 생겼음을 예측하고 있었음을 강력히 암시한다(3:6, 16).

 

4:17 소식을 전하는 자. [히, 하메바세르] 성경 용례상 이 단어는 주로 슬픈 소식을 가져오는 사자(使者)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욥 1:14). 본서 저자는 바로 이같은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이 비극적 분위기를 절정으로 몰아가고 있다.

도망하였고 … 죽임을 당하였고 … 빼앗겼나이다. 소식을 전하는 자의 보고는 3중의 비극적 보고였다. 즉 (1) 이스라엘의 패전 소식, (2) 엘리의 두 아들의 전사 소식, (3) 법궤가 탈취당한 소식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법궤가 이방 족속들에게 빼앗겼다는 소식은 지금껏 겪여보지 못한 두렵고 떨리는 최대의 비극적 사건이었다.

 

4:18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 넘어져. 본 절은 엘리가 여호와의 언약궤로 인하여 극심하게 고민했음을 잘 보여준다(13절). 오히려 엘리는 자기 아들들이 죽임을 당한 일에 대해서는, 그 일이 이미 경고 받은 바 하나님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2:33-34, 3:12-14).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린 사사요, 일평생을 성소에서 봉사해 온 제사장 엘리의 마지막은 비참하였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그의 잘못은 그 자신에게 있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자식들의 잘못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2:29, 3:13). 즉 두 아들의 범죄 행각을 방치한 미온적인 태도로 인해 엘리는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 받았고, 이제 그 경고대로 실현된 것이다. 한편 라이트풋(Dr. Lightfoot) 박사는 엘리의 죽음을 마치 대속받지 못한 나귀 새끼의 목이 꺾여지듯(출 13:13) 그렇게 죽은 것이라고 보았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메튜 헨리의 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혹자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되, 그 죽음이 영원한 죽음이 아닌 경우도 종종 있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II. p. 303).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여기서 저자는 엘리가 충격을 받아 죽게 된 제 일차적 원인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볼 때, 엘리의 이같은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임이 분명하다(2:32).

사사가 된 지 사십 년. 엘리는 58세 때인 B.C. 1115년에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98세 때인 B.C. 1075년에 죽은 듯하다(Leon Wood). 한편 여기 ‘사사’(히, 샤파트)는 제사적 분야 보다는 정치, 군사적 분야를 관장하던 직분이었다(삿 3:10). 따라서 엘리는 제사장이기도 하였지만, 또한 사사로서 자신의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여 당시의 강대국인 블레셋과 전쟁, 화해, 타협 등을 통해 계속적으로 이스라엘을 이끌어 온 듯하다.

 

4:19 19-22절. 여기서는 (1) 엘리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계속된 사실과 (2) 여호와의 궤를 빼앗긴 일이 얼마나 충격적인 사건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소식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 해산하고. 이것은 비느하스의 아내가 충격적인 소식에 의하여 조산(早產)하게 됐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여기서 ‘갑자기 아파서’는 문자적으로 ‘왜냐하면 그녀에게 고통이 왔기 때문이다’란 의미이다. 그런데 개역 성경에는 번역이 안된 여기의 ‘왔기’에 해당하는 기본 단어 ‘하파크’는 해산의 고통이 시작됨을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과 관계해서는 ‘몇 번이고 재차 뒹굴다’란 뜻으로도 사용되었다(창 19:25). 또한 ‘아파서’(히, 치레하)는 몸을 몹시 비틀 정도의 고통을 가리킨다. 한편 영적으로 볼 때 이같은 극심한 해산의 고통은 실로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 몸부림쳐야 하는, 하나님의 신부(新婦)로서의 이스라엘이 당하고 있는 급박한 상황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4:20 아들을 낳았다 하되 … 관념하지도 아니하고. 남편과 시부의 죽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일이 비느하스의 아내에게는 너무나도 충격적이었음을 암시한다. 특히 아들의 출산을 하나님의 큰 축복으로 여기던 그 당시의 상황(1:2, 5, 6)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그녀의 이같은 행동이 갖는 의미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여기서 ‘관념하지도’(히, 쉬타 리바흐)는 ‘관심을 기울이다’란 의미이다(출 7:23, 삼하 13:20, 잠 27:23). 결국 ‘관념하지도 아니하고’는 궤를 빼앗긴 엄청난 일을 당함에 따라 자신의 일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을 가리킨다.

 

4:21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여기서 ‘이가봇’은 다음 두 가지 의미 중 하나로 이해될 수 있다. (1) 어두 ‘이’를 페니키아어의 부정사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아 ‘영광스럽지 못한’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Josephus), (2) 어두 ‘이’를 우가릿어의 의문사에서 온 것으로 보아 ‘영광’(히, 카보드)이 어디 있느냐?’란 의미로 이해하는 것 등이다.

궤가 빼앗겼고 … 죽었기 때문이며. 본서의 저자는 여기서 엘리의 며느리가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라고 말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4:22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21절에서 본서의 저자는 엘리의 며느리가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라고 말한 이유를 (1) 엘리와 두 아들의 죽음, (2) 그리고 여호와의 궤를 빼앗긴 일 등의 두 가지로 말한다. 그러나 본 절에서 엘리의 며느리는 자신이 그렇게 말한 이유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일’ 한 가지로 말함으로써,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일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를 강력히 암시해 준다. 사실 신학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의 영광은 하나님의 임재로써 나타났고(출 24:17, 민 9:15, 왕상 8:11), 언약궤는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임재와 언약을 상징해 주는 가시적(可視的) 징표였다(Keil). 따라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3절)가 이방인의 손으로 넘어갔으므로, 여기서 엘리의 며느리가 한 말은 참된 것이다(시 78:6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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