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블레셋이 일시적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것은 이미 이전에도 있던 일이다(3:31, 10:7).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 넘겨 본격적으로 고통당하게 하신 것은 이때부터이다. 한편 블레셋족속(Philistines)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해적 활동과 중계 무역을 하던 사람들이다. 더욱이 이들은 사람을 잡아 애굽에 노예로 팔기도 했던 악한 집단이었다. 그러다가 점차 이들은 그레데(Crete)와 에게해의 섬들로부터 남부 팔레스타인 해안 지대로 이주해 와서는 ‘가나안의 후기 원주민’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러한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압제한 40년 동안 이스라엘은 다른 때보다 더 심한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한편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압제한 40년 기간은 정확히 언제부터 어느 때까지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삼손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이스라엘은 블레셋으로부터 괴롭힘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5절). 그리고 블레셋 치하에서 삼손이 사사로 활동한 기간은 불과 20년 밖에 안 되며(15:20), 삼손 이후에도 블레셋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혔기 때문이다(삼상 4장, 17:1-5 삼하 5:17-25). 그러나 사무엘의 통치 말엽에 블레셋의 압제가 일시 소강 상태를 이루었던 점으로 보아 이때까지의 기간을 대략 40년으로 볼 수 있다. 아무튼 이후 이스라엘의 왕정 시대에도 블레셋은 계속적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혔는데 다윗 왕이 저들을 정복함으로서(삼하 8:1) 마침내 블레셋의 압제는 끝이 난다(Pulpit Commentry).
단 지파의 가족. 다른 지파와는 달리 이 단 지파에는 여러 가문이 없고 ‘수함 가족’ 하나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민 26:42-43). 그래서 ‘지파의 가족’이란 말이 사용되었을 것이다(Keil, Goslinga, Hervey).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본문에는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늙었다는 언급은 없다. 다만 3절에 의할 때 마노아의 아내는 처음부터 불임 여성이었던 것 같다. 따라서 마노아 부부는 일찍부터 자녀를 생산하는 것에 대한 소망을 단념한 것 같다(Golinga). 또한 그들은 자식이 없었으므로 큰 수치와 슬픔 가운데 살았을 것이다(삼상 1:5-6). 그러나 그러한 때 하나님께서는 강권적,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사 마노아 아내의 태를 열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3절).
[ 마노아의 아내 ]
인류 역사에서 가장 힘센 사람, 그래서 청사(靑史)에 무적의 장사(壯士)와 최강의 역사(力士)로 이름을 남긴 남자는 삼손이다. 그런데 그런 그를 낳아서 키운 어머니의 이름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녀의 이름을 알려면 성경 외의 기록을 참고해야 한다.
바벨론 포로 기간에 랍비들에 의하여 저술되어 내려오는 ‘바벨론 탈무드’에서는 랍비들이 삼손의 어머니요 마노아의 아내인 그 여인의 이름을 ‘츨렐포니’(Zlelponi) 또는 ‘츨렐포니트’(Zlelponith)라고 일컬었으며(Baba Bathra 91a), 이로부터 후대의 문서들은 이것을 그녀의 이름으로 전승하였다. 이 이름은 역대상 4장의 족보에 나오는 것으로서 유다 지파에 속하는 에담의 자손들 중에 포함되어 있다(대상 4:1~4). 그런데 여기서 유다 지파의 자손들을 “소라 사람의 족속”(2절)이라고 하였고, 여호수아 15장에서 유다 자손에게 배당된 지역들에도 ‘소라’가 포함되어 있다(수 15:33). 다른 한편으로 여호수아 19장에서는 단 지파의 자손들에게 배당한 기업에도 ‘소라’(수 19:41)가 언급된 것을 보면, 이 ‘소라’(‘에스다올’과 함께) 지역에는 유다 지파와 단 지파의 사람들이 섞여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등장하는 사사기 13장은 그를 “소라 땅에 [사는] 단 지판의 가족 중 마노아”(삿 13:2)로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정황에 기초하여 랍비들은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는 ‘소라’에 사는 유다 지파의 남자였고, 그의 어머니 ‘하술렐보니’는 동일한 소라 지역에 사는 단 지파의 여자였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 한국어 성경의 ‘하술렐보니’(대상 4:3)는 히브리어 ‘הַצְלֶלְפֹּונִי 하츨렐포니’를 대충 음역한 것이고, 이 단어의 맨 앞에 붙은 ‘הַ 하’는 정관사 또는 접두어이므로 실제의 이름은 ‘탈무드’에 나오는 것처럼 ‘צְלֶלפּוֹנִי 츨렐포니’ 또는 한국어 성경의 음역대로 한다면, ‘술렐보니’였을 것으로 보인다. 랍비들의 전승에 의하면, 마노아와 ‘츨렐포니’ 사이에는 ‘니샨’(Nishyan) 또는 ‘나샨’(Nashyan)이라는 이름을 가진 딸도 있었다고 한다.
고대의 이스라엘에서 여성의 불임(不姙)은 안타깝고도 서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때때로 여자들의 잉태 불능은 더 큰 축복의 시발점이었고 전화위복의 계기였다. 이스라엘 역사에는 7명의 석녀(石女)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사라, 리브가, 라헬, 레아, 마노아의 아내, 한나, 그리고 시온이다. ‘시온’에 관해서는 시 113:9에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 이들은 모두 한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여 고통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고통에서 벗어난 여인들이다.
삼손의 어머니가 이와 같은 위대한 여인들의 반열에 든 것은 그녀가 그만큼 중요한 인물로 간주되었음을 의미한다. 사사기 13장의 이야기에서 그녀는 남편 마노아보다도 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여호와의 사자, 곧 천사는 마노아에게 나타나기 전에 먼저 그녀에게 나타났으며, 그녀를 통하여 삼손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이 알려졌고, 삼손의 양육에 관한 세부적인 지시사항들도 모두 그녀에게 먼저 통고되었다(삿 13:3~5, 9). 삼손의 어머니 ‘츨렐포니’는 천사가 시킨 대로 삼손을 나실인으로 키우느라 온갖 정성을 다 쏟았다.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러한 수태고지(受胎告知)는 삼손의 경우 외에 성경에서 4 번 더 있었다. 곧 그것은 아브라함과 사라(창 17:19, 18:10,14), 한나(삼상 1:17), 엘리사벳(눅 1:13),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눅 1:31)에게 주어졌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자를 통한 수태고지는 구속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건들과 연관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수태고지를 통해 당신이 몸소 장차 태어날 아이의 출생을 관장하시며, 특별히 그 아이를 하나님의 종으로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계시는 것이다.
포도주와 독주. 모든 ‘술’을 대표한 용어이다. 그러나 굳이 구별하자만 ‘포도주’에 해당하는 ‘야인’은 발효된 포도즙을 가리키는 상용어이다(레 10:9, 사 22:13). 그리고 ‘독주’에 해당하는 ‘쉐칼’은 과실주나 곡주(穀酒)는 물론사람을 취하게 하는 도수 높은 술을 의미한다.
부정한 것.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먹지도 만지지도 못하게 규정하신 부정한 짐승(레 11장)이나 시체 등을 가리킨다. 따라서 나실인 역시 이러한 부정한 것들을 접하지 못하도록 엄히 규제되는 것은 당연한 조치였다(민 6장).
나실인. 이에 해당하는 원어 ‘나지르’는 ‘바치다’, ‘거룩하게 하다’, ‘구별하다’는 뜻의 동사 ‘나자르’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거룩하게 구별된 자’를 의미한다. 이 ‘나실인’에 대한 규례는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을 출발하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셨다(민 9:12). 그리고 ‘나실인’은 포도 나무에서 나는 것과 독주를 먹을 수 없으며, 머리를 깎지 말아야 하고, 시체를 가까이하여 자기의 몸을 더럽혀서도 안 되었다(민 6:1-21). 이러한 나실인의 규례는 구속사적 의미에서 볼 때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제사로 자신을 드려 헌신, 봉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그가 …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을 완전히 물리친 것은 다윗 왕이 블레셋의 모성(母城) 메덱암마를 쳐서 빼앗았을 때에야 비로소 이루어졌다(삼하 8:1). 따라서 삼손의 등장은 이스라엘이 블레셋으로부터 완전히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서막에 불과했다(Wycliffe). 한편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압제한 기간인 40년의 마지막은 다윗 때가 아니라 사무엘 때였다(삼상 7:12-14). 1절 주석 참조.
심히 두려우므로. 여기서 ‘두려워하다’에 해당하는 ‘야레’는 어떤 공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경외심이나 도덕적인 숭배감 등을 의미한다(창 28:17).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그에게 임하였으나.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두 번씩이나 먼저 나타난 사실에 대해 혹자는 마노아보다 그의 아내가 진리를 깨닫는 지혜가 많은 것(22-23절)으로 추정하여 설명한다. 그러나 마노아가 그의 아내가 전해준 하나님의 사자의 메시지의 내용을 인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던 점(8절)으로 미루어보아 이러한 추정은 사실과 다름을 알 수 있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기르다’에 해당하는 ‘미쉬파트’는 ‘재판’, ‘관습’ 등을 의미한다. 그래서 본 절은 문자적으로 ‘그 아이의 관습(규례)은 무엇이 된 것입니까?’ 란 의미이다. 즉 마노아는 태어날 아이에게 독특하게 적용될 생활방식을 하나님의 사자에게 물은 것이다(Keil). 그는 아마 민 6:2-20에 언급된 나실인의 규례 외에 그 아이에게 적용될 자세한 내용을 더 알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까. 본 절은 문자적으로 ‘그의 할 일은 무엇입니까?’ 란 의미이다. 개역성경은 영역 성경 중 KJV의 번역에 따랐으나 원문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게 번역되었다. RSV와 NIV 그리고 공동번역 및 70인역(LXX) 등은 원문에 충실하게 ‘그의 일들이 무엇입니까?’로 번역하고 있다. 이 번역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 절의 의미는 아이의 부모가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것에 대하여 질문한 것이 아니라 아이가 태어나서 어떠한 하나님의 사역을 담당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질문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노아 부부가 행할 일에 관해서는 이미 방금 앞에서 질문되었다.
그가 다 삼가서. 이 것은 태어날 아기 곧 삼손의 어머니가 금지해야할 사항에 대한 말이다. 원문상으로도 본 절은 ‘그녀로 하여금 주의하게 하라’로 나와 있다. 때문에 모든 영어 성경들은 ‘그’를 ‘그녀’(She)로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자녀양육에 있어서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영향력을 많이 받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서 당시 어머니에 의해 주도된 이스라엘의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암시하고 있다.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혹자는 본 절을 근거로 마노아가 처음부터 마음속에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로 염소를 준비하려 의도했다고 주장한다(Augustine, Cundall). 그러나 사실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자를 알아보지 못한 채 다만 기쁜 소식을 전해준데 대하여 감사의 예물로 염소 새끼를 드리려 했다. 때문에 하나님의 사자는 그 소식으로 인해 자신이 감사 받기를 거절하면서 마노아에게 먼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림으로 그 감사를 나타내라는 의미로 본 절과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고 마노아가 미리 번제를 그 사람을 위해 준비하려고 의도했다면 그것은 경건한 그의 신앙과 모순된다.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이 말속에도 하나님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염소 새끼를 먼저 하나님께 바치라고 권면하고 있음이 잘 나타난다. 이로써 그는 자기가 전해준 기쁜 소식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귀히 여기리이다. 이 말 가운데 마노아가 자기를 방문한 사람의 이름을 물었던 것이 그 사람의 신분이나 정체를 알고자 의도했던 것이 아님이 분명히 드러난다. 즉 마노아는 그 사람의 예언이 성취될 때 그 사람의 뛰어난 영적 능력을 자신뿐 아니라 이스라엘 가운데 널리 알려 존경받도록 하기 위하여 그의 이름을 물었던 것이다.
이적이 일어난지라. 여기 사용된 ‘이적’이라는 용어는 역시 앞 절의 ‘기묘자’를 뜻하는 단어와 같은 어근을 지닌다. 따라서 본 절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사자의 행동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할만큼 놀라웠다’가 된다. 이 이적의 내용은 20절에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이적은 임신하지 못하던 마노아의 아내가 아들을 낳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24절).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또한 역사상의 이적에 그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다시 말해서 동정녀 탄생(마 1:23), 하나님의 성육신(요 1:14), 그리스도의 부활(마 28:7, 고전 15:13) 등 성경에 기록된 이적들은 문학적 비유 내지 신화가 아니라 엄연히 역사상으로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들인 것이다. 오늘날 합리주의를 숭배하는 신학자들 중에는 성경에서 초자연적 요소들을 제외시키고 다만 자유, 평화, 헌신 등과 같은 소위 ‘예수의 정신’만을 교훈으로 삼고자 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안목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코자 하는 지극히 불순한 행위이다(롬 10:6-7).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 이러한 표현은 성경에서 사람이 하나님 영광을 바라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엄위하심 앞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창 17:3, 수 5:14, 단 8:17, 겔 1:28, 3:23, 43:3, 44:4). 즉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이제서야 자기들과 대화한 사람이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난 하나님이심을 깨달았다.
이 모든 일. 여호와의 사자가 친히 현현(顯現)하신 것(3, 9절)과 번제단 불꽃 이적(20절)을 행해 보이신 것 등을 가리킨다.
이런 말씀. 삼손의 탄생을 예고해 주신 것(3절) 및 마노아의 아내가 지켜야 할 일(4, 14절), 삼손의 양육법(5절) 등에 대하여 일러주신 것을 가리킨다.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삼손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 가운데서 성장했다는 의미이다. 성경에는 사무엘이 성장할 때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히 받았으며(삼상 2:26)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역시 하나님과 사람들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서 성장하셨다는 기록이 나온다(눅 2:52).
에스다올. 예루살렘 북서쪽 약 23 km 지점에 위치한 단 지파의 성읍이다(수 19:41).
마하네단. 문자적으로 ‘단의 진’이란 뜻이다. 이곳은 삼손이 활동하며 생활 거점으로 삼은 곳으로 그가 태어난 이후 그의 부모들이 이곳으로 이주한 것 같다(16:31). 이곳의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의 부모들이 거주했던 ‘소라’(2절)와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며 조그마한 성읍일 것이다. 18:12에는 이곳이 기럇여아림 뒷편,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의 지역인 것으로 나와 있다.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성령께서 삼손에게 강하게 임한 것을 나타낸다(Goslinga). 삼손은 그 마음과 몸을 주장하시는 성령께 사로 잡힌 바 되어 이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역사할 수 있게 되었다. 대개 성령의 감동은 지혜, 예언 등 다양하게 나타나나 특히 삼손에게는 영웅적인 힘으로 나타났다(14:6, 19, 15: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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