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주석, 사사기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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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부아의 아들 돌라. ‘부아’는 ‘입’, ‘말’이란 뜻이다. 그리고 ‘돌라’는 ‘곤충’, ‘벌레’란 뜻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소사사(小士師)인 ‘돌라’와 그의 아비 ‘부아’의 행적에 대해서는 성경에 달리 언급된 것이 없다. 다만 알 수 있는 사항은 ‘부아’와 ‘돌라’라는 이름은 ‘잇사갈’이 낳은 두 아들의 이름과 같다는 점이다(창 46:13). 이와 같은 현상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기 자식들의 이름을 이미 족보에 실려 있는 선조의 이름을 따라 지어 주던 풍습에서 기인된 것이다(눅 1:61).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돌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어떤 대적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했는지 아무 언급이 없다. 아마 아비멜렉으로 인한 종족끼리의 분쟁이든지(Hervey) 아니면 사소한 국지전이었을 것이다(Goslinga).

에브라임 산지 사밀. 돌라는 잇사갈 지파에 속해 있으면서 에브라임 지파의 땅에 살았다. 돌라가 왜 자기의 기업을 떠났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혹자는 미디안인들의 압제로 인해 그와 그의 가족들이 에브라임 산지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하지만(Goslinga) 확실치 않다. 한편 ‘사밀’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알렉산드리아 사본에 ‘사마레이아’로 번역되어 잇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후대의 ‘사마리아’와 동일 지역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무튼 본 절에서 저자가 ‘에브라임 산지’란 말을 덧붙인 것은 ‘유다 산지 사밀’(수 15:48)과 구별하기 위함이며, 돌라가 자기 기업의 땅을 떠나 에브라임 지파의 땅에 거주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10:2 사사가 된 지 … 죽으매. 이처럼 돌라의 업적이 지극히 간략하게 소개된 후 곧바로 그의 죽음이 언급된 까닭은 본서 기자가 구속사의 흐름에 있어서 그다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 사건들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10:3 그 후에. 이에 해당하는 원어 ‘아하라이우’는 ‘그 사람 다음에’란 의미이다. 따라서 이는 ‘돌라를 이어서’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 한 단어만으로 돌라가 죽자 곧바로 야일이 사사가 되었는지의 여부를 파악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말이 시간적인 연속을 나타내기 보다는 계승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길르앗 사람 야일. ‘길르앗’은 요단 동쪽 지역의 영토, 혹은 거기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 지역은 이스라엘이 시혼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되었다(수 32:33-42). 5:17 주석 참조. 그러나 성경에서 ‘길르앗 사람’이라고 할 때는 대개 므낫세 지파에 속한 ‘길르앗 가족’(민 26:29)의 후손을 가리킨다. 따라서 돌라를 이은 사사 ‘야일’은 길르앗 원주민이 아니라 므낫세 지파 출신이다. 한편 야일(Jair) 역시 돌라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소사사’로 그의 행적에 대하여 별다른 기록이 없다. 다만 그의 이름의 뜻은 ‘비추는 자’, ‘깨우치는 자’이다.

 

10:4 어린 나귀 삼십. 고대 근동 지방에서 어떤 사람이 나귀를 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지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암시한다(5:10, 12:14). 따라서 야일의 아들 30명이 각기 자기 소유의 어린 나귀를 타고 다녔다는 사실은 당시 야일이 사사로서 이스라엘 가운데서 부와 명예를 얻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성읍 삼십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으로도 잘 입증된다.

봇야일. ‘야일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는 곧 과거 모세 당시 므낫세의 아들 ‘야일’이 길르앗의 촌락들을 점령한 뒤 그곳 성읍들에 붙인 새로운 이름이다(민 32:41, 신 3:14). 따라서 사사 야일은 자기 선조 ‘야일’이 취하여 ‘봇야일’이라 부른 그 성들을 소유하고 있었을 뿐, 결코 ‘봇야일’이라는 이름이 사사 야일 당시에 붙여진 새로운 지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0:5 가몬.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주장에 따르면 ‘가몬’은 길르앗의 한 성읍일 것이다(Hervey). 뿐만 아니라 이 성읍은 야일이 소유하고 있는 30성읍(4절)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Lange, Keil & Delitzsch). 그러나 이는 분명치 않다. 혹자는 갈릴리 호수 남동쪽의 ‘캄’(Qamm)이나 동북쪽의 ‘쿠메임’(Qumeim)이 바로 이 ‘가몬’일 것으로도 추정한다.

 

10:6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다시’에 해당하는 ‘야사프’는 ‘증가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이 죄의 악순환을 반복하면서 점점 더 패역해져 갔음을 의미한다. 아무튼 본 절은 사사 시대의 시대적 정황이 어떠하였는지를 분명히 증거해 준다. 그리고 사사 야일이 죽은 후 그의 뒤를 잇는 사사가 나오지 않으므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다시 종교적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음도 보여 준다(2:18-19).

바알들과 아스다롯. 가나안 지방의 대표적인 신들이다. 즉 ‘바알’들은 가나안 땅의 남성 신을 가리키며, ‘아스다롯’은 여성 신을 대표적으로 가리킨다. 혹자는 ‘아스다롯’을 ‘아세라’와 혼동하기도 하는데 엄연히 구분된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13과 3:7 주석을 참조하라.

아람의 신들. ‘아람’은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의 영토 전역에 걸쳐 살고 있었던 셈족의 한 부류인 아람족과 그들의 영토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대개는 좁은 의미로 시리아 지역과 그곳에 거주하던 주민들을 가리키는 바 대부분의 영역본들은 이를 ‘시리아’(Syria)로 번역하고 있다. 한편 이 아람 사람들은 대체로 가나안의 헷족속이 섬기던 신들을 섬겼다. 그 대표적인 신들로는 폭풍신 ‘아닷’과 ‘테슙’, 그리고 태양여신 ‘아린나’ 등이 있다.

시돈의 신들. ‘시돈’은 두로 북쪽 36 km 지점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의 항구 도시이다. 이곳 사람들은 주로 ‘아스다롯’과 ‘에쉬문’을 섬겼다. 그런데 이중 ‘에쉬문’은 두로의 ‘멜카르트’와 더불어 근동 지방에서 많이 숭배되던 ‘풍요의 신’이었다.

모압의 신들. 모압의 신으로는 전쟁의 신인 ‘그모스’가 유명하다(민 21:29, 왕상 11:7, 렘 48:7).

암몬 자손의 신들. 암몬의 국가 신은 ‘몰록’으로, 일명 ‘말감’ 또는 ‘밀곰’으로도 불려졌다(왕상 11:5, 7, 33, 습 1:5, 렘 49:1).

블레셋 사람의 신들. 블레셋의 국가 신으로 성경에 언급된 것은 ‘다곤’이다(16:23, 삼상 5:2-7).

 

10:7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그들을 파시매. 여기에서 ‘손에 팔다’는 말은 ‘손에 붙이다’는 표현과 더불어 하나님의 역사 개입을 통한 ‘심판의 형벌’을 나타내는 말이다. 2:14 주석 참조. 한편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사용하신 나라들은 주로 팔레스타인 북방 지역의 민족이었다. 때문에 지금까지는 주로 이스라엘 백성 중 북쪽 지역 사람들이, 곧 납달리, 아셀, 스불론, 잇사갈, 므낫세 지파가 고통을 당했다(3:8, 4:2, 6:33). 그러나 이제는 블레셋과 암몬 같은 팔레스타인 남방지역의 민족들을 사용하고 계시는데, 이로 인해 이제는 주로 남쪽 지역에 사는 지파 곧 유다와 베냐민 그리고 에브라임 지파가 압제를 당하게 되었다(9절). 특히 암몬 사람들은 이전에 모압 왕 에글론 및 아말렉 사람들과 더불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압제한 적이 있었다(3:13). 그리고 블레셋은 이제부터 지속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는 나라로 등장한다(13:1).

 

10:8 요단 강 저쪽 길르앗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땅. 이는 요단 강 동편에서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그 곳 거민을 쫓아내고 기업으로 취한 땅을 가리킨다. 3절 주석 참조. 한편 여기서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 족속들을 대표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창 15:16).

억압하였더라. 이 말에 해당하는 원문의 표현은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흩어 압제했다’ 라는 의미이다. 즉 블레셋과 암몬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을 분산시키기 위해 혹독한 압제를 가하였으며,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압제를 피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10:9 암몬 자손이 또 … 에브라임 족속과 싸우므로. 이처럼 암몬족이 아모리 사람의 땅에 거하던 이스라엘 지파들을 졈령한 후 다시 요단 강을 건너와 팔레스타인 남부를 점령한 것은 당시 저들의 세력이 한참 흥왕하던 때였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본래 이들 암몬족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자손들로서(창 19:38) 이스라엘과는 서로 화평할 수 있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나라는 역사상 계속적으로 심한 반목과 적대 관계를 이루었다.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들은 요단 서쪽에서는 블레셋에 의해, 동쪽에서는 암몬 자손에 의해 공격받아 압제를 당했으므로 더욱 심한 고통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한편 ‘곤고가 심하였더라’에 해당하는 ‘야차르’는 ‘짓누르다’, ‘쥐어 짜다’라는 의미로 적들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학대 받은 것을 가리킨다.

 

10:10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여기서 ‘바알들’은 단순히 가나안의 남성 신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이미 언급된 여러 나라의 신들을 모두 의미한다(6절). 한편 이전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호소할 때 단순히 ‘여호와께 부르짖었다’라는 표현만이 사용되었으나(3:9, 4:3, 6:6), 본 절에서는 이와 관련 그들의 죄목이 상세히 언급되어 있는 점이 독특하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이 다른 때보다 더 간절했음을 시사해 준다.

 

10:11 애굽 사람. 여기서 ‘애굽 사람’이 언급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신 사건(출 1-14장)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Matthew Henry).

아모리 사람. 이들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노정 가운데 정복한 족속 중 하나이다(민 21:21-26). 그들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노정을 방해하였는데 결국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이스라엘에 의해 격멸당했다.

암몬 자손. 모압 왕 에글론과 동맹을 하여 이스라엘을 압제했던 사람들이다(3:13). 그러나 이때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에홋을 보내사 그들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다(3:15-30).

블레셋 사람. 이들이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것은 아마 에훗의 뒤를 이은 사사 삼갈이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였던 사건과 관련된 듯하다(3:31).

 

10:12 시돈 사람. 이들은 사사 시대까지의 역사에 있어서 이스라엘을 공격한 적도, 이스라엘에 의해 공격당한 적도 없다. 그런데도 여기서 이들이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지리적으로 아셀과 납달리 북쪽에 거주했던 이들은 아마 하솔 왕 야빈이 이스라엘을 압제할 때(4:1-3) 그를 도왔던 것 같다(Keil, Goslinga, Hervey). 장차 이스라엘을 압제할 열국 가운데 이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까닭도 아마 이 때문인 듯하다(3:3).

아말렉 사람.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그들을 대적했던 족속으로(출 17:8-13) 사사 시대에도 미디안 족속과 함께 이스라엘을 압제한 적이 있다(6:3).

마온 사람. 70인역(LXX)에는 ‘마디암’, 즉 ‘미디안’ 사람으로 번역되어 있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그런데 수 15:55에서 ‘마온’은 유다 지파의 기업에 속해 있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삼상 23:24에서도 그와 같이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대하 26:7에서는 이곳이 사해 남쪽과 페트라 동쪽 지역으로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본 절의 ‘마온’ 역시 유다 지경에 속한 ‘마온’이 아니라 요단 동쪽 사해 남쪽에 있는 ‘마온’ 곧 미디안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하다. 대부분의 학자들도 ‘마온’과 ‘미디안’을 동일시한다(Keil,Goslinga, Hervey, Cundall). 물론 혹자는 이 ‘마온’을 미디안이 아니라 아말렉 족속과 같은 유목민 중 한 부족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Cassel) 그 근거는 희박하다.

 

10:13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이 표현은 문자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매우 컸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자 다시 사사 입다를 보내어 그들을 구원해 주셨기 때문이다(11장). 따라서 본 절의 말씀은 우상 숭배에 빠질 대로 빠진 당신의 백성들에 대한 강한 경고(히 6:4-6)로 이해될 수 있다.

 

10:14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본 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어리석은 우상 숭배를 지적하는 내용이다. 즉 본 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던 우상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환란 가운데서 구원할 수 없는 헛된 것들임을 강조한다(Wycliffe). 모세도 우상들은 헛되며, 인생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것들이라고 노래한 적이 있다(신 32:37-38).

 

10:15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이러한 고백은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악을 깊이 깨닫고 있음과 (2) 자기들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인지하였음을 보여 준다. 즉 이제 그들이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려 한 자세는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그들이 진정한 회개의 마음을 갖게 되었음을 증거해 준다.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지금 막 하나님의 어떠한 처벌이든지 달게 받겠다고 고백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적의 압제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한 것은 조금 모순되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선민인 자신들이 이방인들에게 압제를 당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당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본 절을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수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간구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대신 이는 자신들을 원수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하시어 자신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더럽혀진 하나님의 이름이 다시 영광받게 해달라는 간구인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10:16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지금까지의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음을 알 수 있다. (1) 그들은 하나님께 자기들의 죄를 고백했다(10절).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고백했다. (2)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15절). (3) 그리고 죄의 고백과 더불어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들이 고백한 그 죄로부터 떠났다. 따라서 이러한 과정을 거친 그들의 회개는 진정한 회개임을 알 수 있다.

여호와께서 …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이는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와, 원수의 압제를 당하는 그들의 곤고한 삶을 보시고서 그들을 구원하시려 마음 먹으신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근심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카차르’는 ‘견디지 못하다’란 뜻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와 그들의 곤고한 삶을 보시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른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Matthew Henry).

 

10:17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을 쳤으므로. 이처럼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땅으로 다시 와서 전쟁 준비를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18년 동안 암몬 사람들에게 복종하며 그들을 섬기다가(8-9절) 이제 반역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상으로도 피정복민들이 정복 군주에게 조공 바치기를 거부하면 그 군주는 군사를 이끌고 와서 피정복민들을 공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왕하 17:3-6, 24:1-3).

미스바. 성경에는 지명은 동일하나 전혀 다른 곳을 가리키는 ‘미스바’가 대여섯 군데나 있다(수 11:3, 8, 15:38, 18:26, 삼상 22:3). 그런데 본 절에 언급된 ‘미스바’는 사사 입다가 거주하던 곳이다(11:34).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분명치 않으나 얍복 강 북쪽에 있었던 듯하다. 그렇다면 이곳은 과거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과의 언약을 기념하여 ‘증거비’를 세웠던 곳인 ‘미스바’와 동일한 곳일 가능성이 크다(창 31:49).

 

10:18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하랴. 암몬 사람들과 대치 상태에 들어갔으나 길르앗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막상 선두에 서서 그들과 싸울 만한 인물이 없었다. 고대 전쟁에서는 선두에서 백성들에게 싸울 용기를 북돋아 주는 장군이 반드시 요청되었다. 그리고 그 장군이 전쟁 중 죽게 되면 병사들은 사기가 떨어져 도망하게 된다(삼상 17:50-52). 이러한 이유로 길르앗 백성들은 암몬 사람과 제일 먼저 나가서 싸움을 시작할 만한 인물을 찾았다.

그가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나아가 암몬 사람과 싸워 이기는 사람을 길르앗 땅의 우두머리로 삼겠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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