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여룹바알. 기드온이 바알 제단을 파괴한 일로 인하여 그에게 주어진 또 다른 이름이다. 6:32 주석 참조. 그런데 본 장에서는 ‘기드온’이란 본래의 이름 대신 이 이름만이 사용되고 있다(2, 5, 16, 19, 24, 28, 57절). 그래서 혹자는 이것을 설명함에 있어서 본 장이 다른 장의 자료와는 다른 문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문서설’을 주장한다(Hervey). 그러나 본 장에서 ‘여룹바알’ 이란 이름만이 사용된 것은 본 장의 사건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사건은 다름 아닌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바알을 극심히 섬기는 자기 친족들과 더불어(4절)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위하여 동족 상잔(同族相殘)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6절). 그리하여 본서의 저자는 일찍이 바알 제단을 파괴한 기드온의 행동과 정반대되는 그의 아들 아비멜렉의 소행, 즉 바알 추종 세력들과 결탁하여 악을 도모한 행위를 대조시키기 위해 ‘여룹바알’이란 이름만을 사용한 것이다.
아비멜렉. 기드온과 그의 첩 사이에서 난 아들이다. 그 이름의 뜻은 ‘아버지는 왕이시다’로 본 장의 왕위 찬탈 사건과 잘 부합된다. 8:31 주석 참조.
세겜. 예루살렘 북방 약 50 km 지점의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 위치한 성읍이다. 8:31 주석 참조. 이곳은 일찍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이스라엘 역사와 관련이 있었다(창 12:1-7). 이곳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후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으로 분배되었으나(수 17:7-9) 그 후 다시 도피성으로 구별되어 래위인의 성읍이 되었다(수 20:7, 21:20-2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총회를 이곳에서 개최한 점으로 미루어보아(수 24:1) 당시 세겜 성은 이스라엘 가운데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성읍이었을 것이다(Matthew Henry, Cassel).
그의 어머니의 형제 … 외조부의 집의 온 가족. 아비멜렉이 아버지 기드온의 가계와 그의 어미의 가계를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는 말이다.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의 아비에셀 가문 출신이다. 6:11 주석 참조. 그러나 아비멜렉의 어머니는 세겜 사람이다(8:31). (1) 세겜 성이 가나안 정복 후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으로 분배되었던 점에 의거할 때(수 17:7-9) 당시 세검 성에 거주하던 아비멜렉의 어머니와 그 외가(外家) 사람들은 에브라임 지파였을 가능성이 크다(Lange). (2)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들은 아직껏 그곳에 잔존하고 있던 히위 족속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왜냐하면 세겜 성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이전에 히위 족속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이 차지하고서 가꾸었던 성읍이기 때문이다(창 33:18-20, 34:2).
이중 (1)번의 견해를 취한다면 아비멜렉은 부계(父系)로든 모계(母系)로든 완전한 이스라엘인이니 그가 벌인 왕위 찬탈전은 동족간의 싸움이 된다. 그러나 (2)번의 견해를 취한다면 아비멜렉은 히브리인과 히위인 간의 혼혈아인 셈이니 그 싸움은 이스라엘과 가나안 원주민 간의 싸움이 된다.
아비멜렉. 기드온과 그의 첩 사이에서 난 아들이다. 그 이름의 뜻은 ‘아버지는 왕이시다’로 본 장의 왕위 찬탈 사건과 잘 부합된다. 8:31 주석 참조.
세겜. 예루살렘 북방 약 50 km 지점의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 위치한 성읍이다. 8:31 주석 참조. 이곳은 일찍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이스라엘 역사와 관련이 있었다(창 12:1-7). 이곳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후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으로 분배되었으나(수 17:7-9) 그 후 다시 도피성으로 구별되어 래위인의 성읍이 되었다(수 20:7, 21:20-2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총회를 이곳에서 개최한 점으로 미루어보아(수 24:1) 당시 세겜 성은 이스라엘 가운데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성읍이었을 것이다(Matthew Henry, Cassel).
그의 어머니의 형제 … 외조부의 집의 온 가족. 아비멜렉이 아버지 기드온의 가계와 그의 어미의 가계를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는 말이다.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의 아비에셀 가문 출신이다. 6:11 주석 참조. 그러나 아비멜렉의 어머니는 세겜 사람이다(8:31). (1) 세겜 성이 가나안 정복 후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으로 분배되었던 점에 의거할 때(수 17:7-9) 당시 세검 성에 거주하던 아비멜렉의 어머니와 그 외가(外家) 사람들은 에브라임 지파였을 가능성이 크다(Lange). (2)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들은 아직껏 그곳에 잔존하고 있던 히위 족속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왜냐하면 세겜 성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이전에 히위 족속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이 차지하고서 가꾸었던 성읍이기 때문이다(창 33:18-20, 34:2).
이중 (1)번의 견해를 취한다면 아비멜렉은 부계(父系)로든 모계(母系)로든 완전한 이스라엘인이니 그가 벌인 왕위 찬탈전은 동족간의 싸움이 된다. 그러나 (2)번의 견해를 취한다면 아비멜렉은 히브리인과 히위인 간의 혼혈아인 셈이니 그 싸움은 이스라엘과 가나안 원주민 간의 싸움이 된다.
9:2 여룹바알의 아들 …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아비멜렉은 자기의 형제들이 한결같이 왕권을 탐하고 있다고 전제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사실무근한 것이며 그의 지나친 피해 의식으로부터 나왔다고 여겨진다. 아비멜렉은 자신이 사악한 야욕에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형제들도 동일한 생각을 지녔을 것이라고 지레 판단하였다. 따라서 형제들로부터 당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침으로써 화근을 아예 제거하고자 결심하였다. 요컨대, 아비멜렉의 경우는 스스로의 탐욕에 취하여 무고한 형제를 의심하고 나아가서 살해까지 하였으나(5절) 결국 칼의 보응을 받는 전형적인 악인의 행로를 보여 주고 있다(54절). 반면에 그리스도의 제자된 성도들은 대립과 의혹과 투쟁으로 팽배해진 상황에서라도 오혀려 먼저 선을 베풀고 스스로 낮은 자리에 처하여 섬김으로써 화평의 삶을 사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롬 2:7, 살전 5:15, 벧전 3:13).
나는 너희와 골육임을 기억하라. 아비멜렉은 자신의 야심을 실현시키기 위해 세겜을 음모의 근거지로 확보하고자 하였으며, 세겜 주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혈연에 호소하였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혈연은 이성보다 강하다’는 속담이 있듯이, 결국 세겜인들의 마음은 아비멜렉에게로 기울어졌을 뿐만 아니라 바알브릿 신당의 수입금으로 아비멜렉을 지원하였다(4절). 그리고 아비멜렉은 그 지원금으로 불량배들을 고용하여 요담 외의 모든 형제들을 살해하고 세겜의 왕이 되었다(5-6절). 이렇게 아비멜렉은 그 아버지 기드온의 후광(後光)과 어미의 혈연 및 지연 관계를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의 발판을 구축한 것이다. 이같은 왕위 찬탈 음모와 살상은 이스라엘 왕국은 물론 이방 왕정의 역사에 두루 점철되어 있다(왕상 16:10).
나는 너희와 골육임을 기억하라. 아비멜렉은 자신의 야심을 실현시키기 위해 세겜을 음모의 근거지로 확보하고자 하였으며, 세겜 주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혈연에 호소하였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혈연은 이성보다 강하다’는 속담이 있듯이, 결국 세겜인들의 마음은 아비멜렉에게로 기울어졌을 뿐만 아니라 바알브릿 신당의 수입금으로 아비멜렉을 지원하였다(4절). 그리고 아비멜렉은 그 지원금으로 불량배들을 고용하여 요담 외의 모든 형제들을 살해하고 세겜의 왕이 되었다(5-6절). 이렇게 아비멜렉은 그 아버지 기드온의 후광(後光)과 어미의 혈연 및 지연 관계를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의 발판을 구축한 것이다. 이같은 왕위 찬탈 음모와 살상은 이스라엘 왕국은 물론 이방 왕정의 역사에 두루 점철되어 있다(왕상 16:10).
9:3 기울어서. 이에 해당하는 원어 ‘나타’는 (손을) ‘뻗다’, ‘돌아서다’ 또는 ‘기울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본 절에서는 ‘지지하다’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이는 세겜 사람들의 마음이 이제 기드온 가문에서부터 ‘돌아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는 일을 ‘지지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9:4 바알브릿 신전. 여기서 ‘신전’에 해당하는 ‘바이트’는 ‘집’, ‘지하 감옥’, ‘궁전’, ‘감옥’ 등을 뜻한다. 이를 KJV, RSV는 ‘집’(house)로 번역하였으며, NIV, Living Bible, 공동번역 등은 ‘신전’(temple)으로 번역하였다.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대신 언약을 맺은 바알브릿의 신당을 가리킨다. 8:33 주석 참조.
은 칠십 개. 일반적으로 은 70세겔을 가리킨다(NIV). 그러므로 이것을 무게로 따질 경우 약 800g 정도의 무게가 된다. 1세겔은 11.4g에 해당하는 무게이다.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들. ‘방탕한’에 해당하는 원어 ‘레크’는 ‘허무한’, ‘무가치한’이란 뜻이다. 그런데 본 절에서는 ‘무익한’ 것을 추구하는 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경박한’에 해당하는 원어 ‘파하즈’는 ‘자기 멋대로의’, ‘방탕한’, ‘억제할 수 없는’ 등의 뜻이다. 따라서 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하며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은 칠십 개. 일반적으로 은 70세겔을 가리킨다(NIV). 그러므로 이것을 무게로 따질 경우 약 800g 정도의 무게가 된다. 1세겔은 11.4g에 해당하는 무게이다.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들. ‘방탕한’에 해당하는 원어 ‘레크’는 ‘허무한’, ‘무가치한’이란 뜻이다. 그런데 본 절에서는 ‘무익한’ 것을 추구하는 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경박한’에 해당하는 원어 ‘파하즈’는 ‘자기 멋대로의’, ‘방탕한’, ‘억제할 수 없는’ 등의 뜻이다. 따라서 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하며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9:5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의 집. ‘오브라’는 에브라임 지파의 북쪽 경계에 가까운 므낫세 지파의 성읍이다. 요세푸스는 오늘날의 ‘에브란’(Ephran)일 것으로 추정하나 위치가 정확치 않다(Keil & Delitzsch). 6:11 주석 참조.
자기 형제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으되. 이와 같은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이유 중의 하나는 기드온이 많은 부인을 두었던 것이다(8:30-31). 다윗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윗은 많은 처와 첩을 거느렸다(삼하 5:13). 그 결과 왕위 계승권을 빼앗기 위해 집안 싸움이 두 번씩이나 있었다(삼하 15:7-18, 왕상 1:25). 한편 본 절은 사람이 욕심을 품으면 자기 형제조차도 잔인하게 살해하는 일을 서슴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아마도 야고보 사도는 이런 일을 두고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고 했는지 모른다.
자기 형제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으되. 이와 같은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이유 중의 하나는 기드온이 많은 부인을 두었던 것이다(8:30-31). 다윗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윗은 많은 처와 첩을 거느렸다(삼하 5:13). 그 결과 왕위 계승권을 빼앗기 위해 집안 싸움이 두 번씩이나 있었다(삼하 15:7-18, 왕상 1:25). 한편 본 절은 사람이 욕심을 품으면 자기 형제조차도 잔인하게 살해하는 일을 서슴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아마도 야고보 사도는 이런 일을 두고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고 했는지 모른다.
9:6 밀로 모든 족속. 일반적으로 ‘밀로’는 다윗이 여부스 사람으로부터 빼앗은 다윗 성에 속한 지역이다(삼하 5:7-9). 그러나 그곳은 세겜 성과 위치상으로 많이 떨어져 있는 곳이며 다윗 때까지 완전히 정복되지 않은 곳이므로 본 절의 ‘밀로’와 동일시 될 수 없다. 오히려 본 절에 해당하는 원어 ‘칼 벧 밀로’는 문자적으로 ‘밀로의 모든 집’이니 이는 ‘밀로’라는 어떤 가문을 총체적으로 암시하는 말인 듯하다. 그렇다면 아마 이는 아비멜렉의 외조부 전체 가문을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1절). 그렇지 않다면 세겜 사람과 함께 이 가문이 특별히 언급될 이유가 없다. 한편 이밖에도 혹자는 ‘밀로’가 세겜 근방에 있는 요새나 망대일 것으로 추정하여 46-47절의 망대와 동일시한다(Keil, Hervey, Cundall). 그러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분명 세겜족이니 ‘밀로 모든 족속’과는 구분된다.
상수리나무 기둥. ‘기둥’에 해당하는 ‘무찹’은 ‘어떤 것을 세우다’란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 ‘기념물’이나 ‘기념비’를 의미한다(Keil). 고대 근동 지방에서 나무는 우상 숭배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에서도 오래된 나무를 섬기는 무속 종교가 아직도 남아 있다. 아마 세겜의 이 상수리나무는 과거에 야곱이 자기 가족의 모든 우상을 그 밑에 파묻어 버렸던 상수리나무일지도 모른다(창 35:4). 아니면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베푼 것을 기념하여 그 아래에 기념비를 세웠던 여호와 성소 곁의 상수리나무일지도 모른다(수 24:25-26).
상수리나무 기둥. ‘기둥’에 해당하는 ‘무찹’은 ‘어떤 것을 세우다’란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 ‘기념물’이나 ‘기념비’를 의미한다(Keil). 고대 근동 지방에서 나무는 우상 숭배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에서도 오래된 나무를 섬기는 무속 종교가 아직도 남아 있다. 아마 세겜의 이 상수리나무는 과거에 야곱이 자기 가족의 모든 우상을 그 밑에 파묻어 버렸던 상수리나무일지도 모른다(창 35:4). 아니면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베푼 것을 기념하여 그 아래에 기념비를 세웠던 여호와 성소 곁의 상수리나무일지도 모른다(수 24:25-26).
9:7 그리심 산. 세겜 남서쪽에 인접해 있으면서 동북쪽에 있는 에발 산과 마주보고 있는 산으로 해발 854 m이다. 신 11:29 주석 참조. 이 산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을 향해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한 곳이기도 하다(수 8:33-35). 그러나 참화를 면한 기드온의 막내 아들 요담(5절)이 이곳에서 그의 형제 아비멜렉과 그를 추종하는 세겜 사람들을 향해 저주를 선포한 것이다.
세겜 사람들아 … 그리하여야 하나님이 너희의 말을 들으시리라. 요담은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는 태도를 취한다(롬 12:19). 그래서 아비멜렉의 선동적 언변은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었음이 드러난다(2절). 한편 요담은 매우 창의적인 우화를 사용하여 논지를 전개하였는데(8-15절) 이러한 우화는 일종의 비유 문학으로 다수 대중을 설득시키기에 좋은 방법이다. 즉 이후 전개되는 내용 중 8-13절은 왕이 되기를 거절한 나무들의 우화로서 기드온의 처신을 상기시킨다(8:22-23). 여기서 등장하는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그리고 포도나무 등은 나름대로의 귀한 재능을 이웃을 위해 사용하며, 분수를 넘어 과욕에 빠지지 않는 겸허한 인간상을 대변하고 있다(롬 12:3). 반면 14-15절에 등장하는 가시 나무는 아무런 자격이나 재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협박 공갈로 왕위를 서슴없이 가로챈 아비멜렉을 비유하고 있다(시 12:8, 전 10:6). 요담의 이러한 경고는 그대로 성취되었다(22절 이하).
세겜 사람들아 … 그리하여야 하나님이 너희의 말을 들으시리라. 요담은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는 태도를 취한다(롬 12:19). 그래서 아비멜렉의 선동적 언변은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었음이 드러난다(2절). 한편 요담은 매우 창의적인 우화를 사용하여 논지를 전개하였는데(8-15절) 이러한 우화는 일종의 비유 문학으로 다수 대중을 설득시키기에 좋은 방법이다. 즉 이후 전개되는 내용 중 8-13절은 왕이 되기를 거절한 나무들의 우화로서 기드온의 처신을 상기시킨다(8:22-23). 여기서 등장하는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그리고 포도나무 등은 나름대로의 귀한 재능을 이웃을 위해 사용하며, 분수를 넘어 과욕에 빠지지 않는 겸허한 인간상을 대변하고 있다(롬 12:3). 반면 14-15절에 등장하는 가시 나무는 아무런 자격이나 재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협박 공갈로 왕위를 서슴없이 가로챈 아비멜렉을 비유하고 있다(시 12:8, 전 10:6). 요담의 이러한 경고는 그대로 성취되었다(22절 이하).
9:8 감람나무. 즉 ‘올리브나무’(olive)를 가리킨다(공동번역). 그 열매는 식료품, 연료, 목공품, 의약품 등 일상 생활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특히 이 나무에서 나오는 기름은 왕과 제사장의 위임식 때 그들의 머리에 부어졌고 성막의 등잔에도 사용되었다(민 4:16, 왕하 9:6). 그리고 하나님의 귀한 축복이 감람나무에 비유되기도 하였다(호 14:6). 이처럼 감람나무는 매우 귀하고 유용하였기 때문에, 나무들 중 왕이 될 만한 자질을 충분히 구비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굳이 왕을 뽑을진대 감람나무를 먼저 천거하는 것이 순리라 할 수 있었다.
9:9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감람 나무에서 나는 올리브 기름은 하나님께 제사할 때 드려졌으며 (레 2:1-16), 왕과 제사장의 위임식때 그들의 머리에 부어졌고, 성막의 등잔을 밝히는 데에도 사용되었다(출 27:20, 레 24:2, 민 35:25, 삼상 10:1). 그러니 감람나무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영화롭게 될 만한 일에 사용되었다.
내가 …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우쭐대다’의 원어 ‘누아’는 ‘떨다’, ‘요동하다’라는 뜻 외에 ‘휘두르다’란 뜻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누아’는 ‘지배권’을 보여 주는 용어이다. 즉 감람 나무는 본 절에서 자기가 모든 나무의 왕이 되어 지배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내가 …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우쭐대다’의 원어 ‘누아’는 ‘떨다’, ‘요동하다’라는 뜻 외에 ‘휘두르다’란 뜻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누아’는 ‘지배권’을 보여 주는 용어이다. 즉 감람 나무는 본 절에서 자기가 모든 나무의 왕이 되어 지배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9:10 무화과나무. 오늘날에도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중의 하나이다. 그 열매는 흔히 식용으로 사용되나 일부는 약재로도 사용된다. 팔레스타인에서는 1년에 9개월 내지 10개월 이상 계속해서 그 열매를 딸 수 있다. 더구나 무화과나무의 잎사귀는 넓고 무성해서 더운 지방에서는 고마운 그늘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신약 시대 예수의 비유에도 이 무화과나무가 등장한다(마 24:32-33).
9:12 포도나무.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와 함께 가장 많이 재배되는 나무이다. 이곳에서 수확되는 포도는 품질도 아주 좋아 주변 여러 나라로 수출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포도로 만든 포도즙이나 포도주는 식수 사정이 좋지 못한 팔레스타인에선 중요한 음료수 역할을 하였다.
9:13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 포도주. 고대로부터 팔레스타인 및 시리아 지방은 포도주의 질이 좋고 소출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헤브론 일대는 손꼽히는 포도주 산지이다. 예수께서 당신의 새로운 가르침을 ‘새 포도주’에 비유할 정도로(마 9:17) 이 포도주는 팔레스타인 지방민들의 일상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잔치 때는 물론(요 2:1-11) 평상시의 식사 때에도 음료수 삼아 포도주를 마신다. 이와 관련 시편 기자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시 104:15)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이 포도주는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주(祭酒)로도 바쳐졌다(삼상 1:24, 10:3). 그밖에도 포도주는 곤비한 자들에게 활력을 주며(삼하 16:2) ‘위장과 자주 나는 병’(딤전 5:23)에 약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상처 부위를 소독하는 소독약 대용으로도 쓰였다(눅 10:34). 그러므로 포도주는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라 칭할 수 있다.
9:14 가시나무. ‘들 가시’뿐 아니라(8:16) 가시 있는 관목을 총칭한다. 이 나무는 저주를 상징하는 나무로서(창 3:18) 무화과나무나 포도나무처럼 식용으로 사용될 열매도 없고, 감람나무와 같이 여러 용도로 소용되는 기름도 없다. 오히려 이 가시는 사람을 찌르며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요담은 이 가시나무를, 스스로 왕이 되기 위하여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들을 사서 형제 70인을 죽인 아비멜렉(4-5절)에 비유하고 있다.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이처럼 모든 나무들이 가시나무의 무익성과 그 해악에도 블구하고 굳이 가시나무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요청한 것은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는 행위였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을 배제하고 인간적 취향과 욕구에 따라 스스로 절대적 보호망을 만들고자 하는 부단한 인본주의적 노력을 상징한다. 역사상으로 그러한 보호망은 이념, 체제, 국가, 이방 종교, 재물 그리고 심지어는 예술 등의 영역에서 다양하게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러한 무모한 요청에 대해 가시나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선뜻 나섰으며 심지어 위협하는 자세를 보이기까지 했다(15절). 이처럼 지극히 우매하고 무모한 대중들의 여망은 자기 분수도 모르는 파렴치한 지도자의 허세와 결탁하여 피차의 멸망을 초래한다.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이처럼 모든 나무들이 가시나무의 무익성과 그 해악에도 블구하고 굳이 가시나무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요청한 것은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는 행위였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을 배제하고 인간적 취향과 욕구에 따라 스스로 절대적 보호망을 만들고자 하는 부단한 인본주의적 노력을 상징한다. 역사상으로 그러한 보호망은 이념, 체제, 국가, 이방 종교, 재물 그리고 심지어는 예술 등의 영역에서 다양하게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러한 무모한 요청에 대해 가시나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선뜻 나섰으며 심지어 위협하는 자세를 보이기까지 했다(15절). 이처럼 지극히 우매하고 무모한 대중들의 여망은 자기 분수도 모르는 파렴치한 지도자의 허세와 결탁하여 피차의 멸망을 초래한다.
9:15 내 그늘에 피하라. 가시나무는 본래 그늘이 거의 없다. 따라서 그 가시나무 밑 그늘에 피한다는 것은 오히려 그 가시에 찔리는 것과 같다. 이처럼 요담은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으로 하여금 왕 삼은 것이 그들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행위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Moore).
레바논의 백향목. 근동 지방에서 가장 값진 나무로 최고급의 건축 재료이다. 레 14:4 주석 참조. 본 절에서 이것은 특별히 세겜 성읍의 지도자들을 상징한다.
레바논의 백향목. 근동 지방에서 가장 값진 나무로 최고급의 건축 재료이다. 레 14:4 주석 참조. 본 절에서 이것은 특별히 세겜 성읍의 지도자들을 상징한다.
9:16 너희가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이스라엘 백성이 기드온에게 왕이 되어달라고 부탁했을 때 기드온은 그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에는 왕이 하나님 한 분 밖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8:22-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으로 하여금 왕을 삼은 것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함이었다(2-3절). 따라서 이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결코 진실되거나 의로운 행동이 될 수 없다. 요담은 그들에게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것이 그의 손이 행한 대로 그에게 보답함이냐. 여기서 ‘보답’의 원어 ‘그물’은 선악에 대한 보상, 답례 등을 의미한다. 구약시대에는 개인이나 민족의 선악 행위가 현실적으로 그대로 보응받는다고 하는 보응관념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수 23:9-16). 이는 신정국(神政國) 이스라엘의 독특한 면모를 반영하는 것이다. 신약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성도들은 현세적으로 부당하게 대우를 받기도 하지만, 종국적으로 모든 것을 합당하게 갚아 주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소망을 지니고 있다(롬 12:19). 한편 세겜 사람들은 이러한 사상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의 은공을 악행으로 갚았다(1-6절). 때문에 요담은 본 절에서 이러한 잘못된 보응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현실적 징책이 따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것이 그의 손이 행한 대로 그에게 보답함이냐. 여기서 ‘보답’의 원어 ‘그물’은 선악에 대한 보상, 답례 등을 의미한다. 구약시대에는 개인이나 민족의 선악 행위가 현실적으로 그대로 보응받는다고 하는 보응관념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수 23:9-16). 이는 신정국(神政國) 이스라엘의 독특한 면모를 반영하는 것이다. 신약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성도들은 현세적으로 부당하게 대우를 받기도 하지만, 종국적으로 모든 것을 합당하게 갚아 주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소망을 지니고 있다(롬 12:19). 한편 세겜 사람들은 이러한 사상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의 은공을 악행으로 갚았다(1-6절). 때문에 요담은 본 절에서 이러한 잘못된 보응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현실적 징책이 따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9:17 미디안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냈거늘. 이는 곧 기드온이 7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미디안(6:1)과 그 연합군들(6:3, 7:12)을 격멸하고 백성들을 구원한 것(7:19-21)을 가리킨다. 이처럼 요담은 자기 아버지 기드온의 공적을 언급함으로써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은 것이 기드온의 공로를 무시한 처사임을 지적하고 있다. 즉 세겜 사람들은 기드온의 가족들에게 은혜를 갚기는 커녕 그의 가족을 파멸시켰으니(4-5절) 배은 망덕한 죄를 범한 것이다.
9:18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이고. 기드온의 70 아들 중 막내인 요담만 유일하게 피신하였다(5절). 따라서 실제로 살해된 수는 69명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살인 미수죄 또한 살인죄나 다름없다. 따라서 70인을 죽였다는 말은 의미상 틀린 말이 아니다.
세겜 사람들 위에 왕. 이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동의하여 세운 왕이 아니라 세겜 사람들이 임의로 세운 왕이란 사실을 비꼬아 한 말이다. 또한 이는 아비멜렉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세겜 지역의 왕 노릇밖에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저주의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세겜 사람들 위에 왕. 이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동의하여 세운 왕이 아니라 세겜 사람들이 임의로 세운 왕이란 사실을 비꼬아 한 말이다. 또한 이는 아비멜렉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세겜 지역의 왕 노릇밖에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저주의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9:19 19-20절. 여기서는 세겜 사람들의 행위가 자신들이 행한 대로 보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요담의 예언이 언급되어 있다. 즉 이 예언은 진실과 의로움 없이 아비멜렉을 왕으로 추대한 세겜 사람들 사이에 반드시 분쟁이 발생하여 자멸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대접한 것이 진실하고 의로운 일이면. 즉 세겜 사람들이 기드온의 아들들을 몰살시킨 아비멜렉을 왕으로 추대한 것이 전혀 사심없이 하나님의 뜻을 따른 행위였다면 하나님께서 세겜 족은 물론 아비멜렉도 형통케 하사 서로 기쁨을 누리게 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정작 세겜 사람들의 소위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한 이기적 행위였다. 16절 주석 참조.
대접한 것이 진실하고 의로운 일이면. 즉 세겜 사람들이 기드온의 아들들을 몰살시킨 아비멜렉을 왕으로 추대한 것이 전혀 사심없이 하나님의 뜻을 따른 행위였다면 하나님께서 세겜 족은 물론 아비멜렉도 형통케 하사 서로 기쁨을 누리게 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정작 세겜 사람들의 소위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한 이기적 행위였다. 16절 주석 참조.
9:20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이는 이미 아비멜렉 스스로가 세겜 사람들에게 협박한 내용이다(15절). 즉 아비멜렉은 세겜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지 않을 경우 오히려 자신이 그들을 괴롭히리라고 위협했었다.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에서도 불이 나와. 즉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이 아비멜렉에 대항하여 오히려 그들 군박하게 만들 것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요담의 예언은 삼 년 후 그대로 성취된다(22-27절).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에서도 불이 나와. 즉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이 아비멜렉에 대항하여 오히려 그들 군박하게 만들 것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요담의 예언은 삼 년 후 그대로 성취된다(22-27절).
9:21 브엘. ‘우물’이란 뜻이다. 민 21:16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물을 주시기로 약속한 후 말씀대로 물을 주신 우물이 있었던 곳으로 ‘브엘’이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그곳은 요단 동쪽의 모압 족속 지역이다. 따라서 요담이 아비멜렉을 두려워하여 도망한 곳인 이곳 ‘브엘’과 동일한 곳인지는 분명치 않다. 왜냐하면 요담이 그리심 산(7절)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진 요단 동쪽 모압 지경에 까지 도망쳤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벧엘 남쪽 ‘엘비레’(El-Bireh)와 동일시하지만(Hervey, Goslinga), 이 역시 확실한 근거가 없다.
9:22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에. 본 절에서 ‘다스리다’의 원어 ‘야사르’는 사사들의 재판을 의미하는 ‘샤파트’나 왕의 통치를 의미하는 ‘말라크’와 다르다. 이는 방백들이 백성을 다스리며 지도하는 것과 같은 경우에 사용된 용어이다(Keil & Delitzsch). 따라서 본서의 저자가 ‘야사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3년 동안 밖에 다스리지 못했음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적 목적에서였을 것이다.
9:23 하나님이 … 악한 영을 보내시매. 하나님께서는 악한 성품이 없으신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절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속한 악한 영을 보내신 것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문자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악의 근원이 되지 아니하시며 다만 당신의 주권적 섭리하에서만 악한 세력의 활동을 용인하고 계실 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는 악이 조금도 있을 수 없다(요일 1:5). 다만 본 절은 욥기에서와 같이(욥 1:12), 그리고 예수께서 시험당하신 장면에서와 같이(마 4:1) 악령이 하나님의 허락하에 활동하고 있음을 가르쳐 준다(Matthew Henry, Lange, Pulpit Commentary).
세겜 사람들. 여기서부터는 ‘세겜 사람과 밀로 족속’을 모두 일컫는 말이다(1절).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요담의 예언대로(19-20절) 마침내 아비멜렉과 세겜 주민들 간에 깊은 반목이 조성되었음을 보여 준다. 아비멜렉은 왕의 자리에 오른 후에 아루마(41절)를 수도로 삼고서 점차 세력을 확충시키기에 여념이 없었을 것이다. 한편 세겜 주민들은 아비멜렉으로부터 특별한 배려를 받지 못함은 물론 오히려 억압만 당하게 되었을 뿐이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비멜렉의 비열하고 포악한 성격으로 미루어 그가 세겜인들을 이익의 도구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징책하시는 섭리로 말미암아 그들간에 싸움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세겜 사람들. 여기서부터는 ‘세겜 사람과 밀로 족속’을 모두 일컫는 말이다(1절).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요담의 예언대로(19-20절) 마침내 아비멜렉과 세겜 주민들 간에 깊은 반목이 조성되었음을 보여 준다. 아비멜렉은 왕의 자리에 오른 후에 아루마(41절)를 수도로 삼고서 점차 세력을 확충시키기에 여념이 없었을 것이다. 한편 세겜 주민들은 아비멜렉으로부터 특별한 배려를 받지 못함은 물론 오히려 억압만 당하게 되었을 뿐이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비멜렉의 비열하고 포악한 성격으로 미루어 그가 세겜인들을 이익의 도구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징책하시는 섭리로 말미암아 그들간에 싸움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9:24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에게 저지른 포악한 일을 갚되.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으로 율법적인 심판을 위해 행해진 것이다(신 32:35). 따라서 본 절은 요담의 저주(19-20절)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피 흘린 죄를 그들의 형제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은 역심(逆心)을 품고서 아버지 집으로부터 등을 돌려 형제 70 명을 살해한 장본인으로서의 죄를 면할 수 없었다(1-5절).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 … 세겜 사람. 세겜인은 아비멜렉의 역모에 동조하여 거사 자금을 빌려 주었으며(4절) 또한 그를 왕으로 추대한 죄(6절)를 면할 수 없었다.
피 흘린 죄를 그들의 형제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은 역심(逆心)을 품고서 아버지 집으로부터 등을 돌려 형제 70 명을 살해한 장본인으로서의 죄를 면할 수 없었다(1-5절).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 … 세겜 사람. 세겜인은 아비멜렉의 역모에 동조하여 거사 자금을 빌려 주었으며(4절) 또한 그를 왕으로 추대한 죄(6절)를 면할 수 없었다.
9:25 산들의 꼭대기. 그리심 산과 에발 산 및 세겜을 둘러싼 기타 산들을 가리킨다. 이는 다른 지역에서 세겜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는 산들이다. 7절 주석 참조.
그 길로 지나는 자를 다 강탈하게 하니. 아비멜렉에 대항한 세겜 사람들은 산적생활과 같이 산에 매복하여 있다가 아비멜렉의 세력에 비공식적으로 도전했다. 이로 보아 아비멜렉이 세겜 성을 다스리는 동안 결코 훌륭한 통치를 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산적 떼는 과거의 역사에서 정치와 종교가 부패되어 공의가 시행되지 않는 나라에서 매우 많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길로 지나는 자를 다 강탈하게 하니. 아비멜렉에 대항한 세겜 사람들은 산적생활과 같이 산에 매복하여 있다가 아비멜렉의 세력에 비공식적으로 도전했다. 이로 보아 아비멜렉이 세겜 성을 다스리는 동안 결코 훌륭한 통치를 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산적 떼는 과거의 역사에서 정치와 종교가 부패되어 공의가 시행되지 않는 나라에서 매우 많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9:26 에벳의 아들 가알. 본 장에서 분열되어 가는 세겜 성의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의 정권욕을 채워 보려한 인물로만 언급되어 있을 뿐 그 외에 그에 대해서는 성경상에 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 단지 그의 아버지 이름인 ‘에벳’이 ‘종’ 또는 ‘노예’라는 뜻인 점에 비추어 볼 때 그가 천민 출신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세겜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니라. 다시 말해 세겜 사람들이 가알을 아비멜렉에 대항하기 위한 대표로 생각했다는 의미이다.
세겜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니라. 다시 말해 세겜 사람들이 가알을 아비멜렉에 대항하기 위한 대표로 생각했다는 의미이다.
9:27 그들의 신당. ‘바알브릿’(4절) 또는 ‘엘브릿’(46절) 신당을 의미한다. 고대 제사 의식에서는 신당에서 제사를 지낸 후 그곳에서 먹고 마시며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보편적인 일이었다. 특히 포도 수확기는 가장 즐거운 계절 중 하나였으므로(사 16:9-10, 렘 25:30) 신당에서 배설(排說)된 연회는 축제 분위기였음에 틀림없다.
9:28 아비멜렉은 누구며 세겜은 누구기에. 이 표현은 아비멜렉과 세겜 성이 아무 관련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가 여룹바알의 아들이 아니냐. 가알은 기드온의 이름을 ‘여룹바알’로 부름으로써 우상 숭배에 빠진 세겜 사람들로 하여금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을 더욱 적대시하도록 유도했다. 즉 ‘여룹바알’은 기드온이 바알 제단을 파괴한 데서 비롯된 이름이니(6:25-32) 이 사실을 기억한 세겜인들은 기드온의 아들인 아비멜렉에 대하여 더욱 반감을 가졌을 것이다.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후손을 섬길 것이라. ‘하몰’은 히위 족속의 사람으로 그의 아들 세겜은 아브라함 당시 세겜 성의 추장이었다(창 34:2). 따라서 본 절의 표현은 이방인의 후손을 섬기는 것이 차라리 아비멜렉을 섬기는 것보다 낫다는 의미이다. 즉 가알이 한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몰락하여 타족속들 사이에 흡수되어 버린 하몰의 후예와 아비멜렉을 비교하여 아비멜렉의 지위를 실추시키고 있는 말이다. 한편 공동번역과 RSV는 본 절을 ‘그 여룹바알의 아들과 그의 심복 스불이 도리어 세겜의 조상인 하몰 집안 사람들을 섬겨야 할 것 아닙니까’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곧 세겜 성 거민들을 히위족 하몰의 후예들로서 당시까지도 그곳에 잔존하고 있던 무리로 본 데서 비롯된 번역이다. 1절 주석 참조. 그렇다면 이는 곧 세겜 성은 어디까지나 세겜 원주민이 다스려야 한다는 정통성을 강조한 말로 볼 수 있다.
그가 여룹바알의 아들이 아니냐. 가알은 기드온의 이름을 ‘여룹바알’로 부름으로써 우상 숭배에 빠진 세겜 사람들로 하여금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을 더욱 적대시하도록 유도했다. 즉 ‘여룹바알’은 기드온이 바알 제단을 파괴한 데서 비롯된 이름이니(6:25-32) 이 사실을 기억한 세겜인들은 기드온의 아들인 아비멜렉에 대하여 더욱 반감을 가졌을 것이다.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후손을 섬길 것이라. ‘하몰’은 히위 족속의 사람으로 그의 아들 세겜은 아브라함 당시 세겜 성의 추장이었다(창 34:2). 따라서 본 절의 표현은 이방인의 후손을 섬기는 것이 차라리 아비멜렉을 섬기는 것보다 낫다는 의미이다. 즉 가알이 한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몰락하여 타족속들 사이에 흡수되어 버린 하몰의 후예와 아비멜렉을 비교하여 아비멜렉의 지위를 실추시키고 있는 말이다. 한편 공동번역과 RSV는 본 절을 ‘그 여룹바알의 아들과 그의 심복 스불이 도리어 세겜의 조상인 하몰 집안 사람들을 섬겨야 할 것 아닙니까’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곧 세겜 성 거민들을 히위족 하몰의 후예들로서 당시까지도 그곳에 잔존하고 있던 무리로 본 데서 비롯된 번역이다. 1절 주석 참조. 그렇다면 이는 곧 세겜 성은 어디까지나 세겜 원주민이 다스려야 한다는 정통성을 강조한 말로 볼 수 있다.
9:29 군대를 증원해서 나오라. 가알이 아비멜렉에게 선전 포고 하는 장면이다(Keil & Delitzsch). 이 말은 가알의 추종자가 아비멜렉의 추종자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은연 중에 암시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알은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반역하는 일에 용기를 가지도록 했다(Goslinga).
9:30 그 성읍의 방백. ‘방백’에 해당하는 원어 ‘사르’는 일반적으로 ‘방백’ 또는 ‘통치자’로 번역되는 말이다. 그런데 28절에서 ‘신복’으로 번역된 원어는 ‘파키드’로서 ‘대리인’(deputy) 또는 ‘감독자’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두 단어가 아비멜렉을 추종하는 스불에게 적용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스불’은 아비멜렉을 대신해서 세겜 성을 다스린 관리였던 것 같다.
9:31 사자들을 … 가만히 보내어. 스불은 아비멜렉 휘하에서 그 성읍의 방백이었기 때문에 세겜의 정황을 그에게 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스불의 세력이 가알의 영향력을 꺾기에는 다소 부족하였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은밀하게 밀사를 보내어 아비멜렉에게 세겜의 상황을 알렸다.
성읍이 당신을 대적하게 하니. 가알이 세겜 사람이 베푼 연회석에 참석하여(26-27절) 반역을 도모했지만 아직 그들의 세력이 완전히 규합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스불은 그들의 세력이 더 커지기 전에 아비멜렉에게 가알과 그의 형제들에 의한 반역의 소식을 전했다.
성읍이 당신을 대적하게 하니. 가알이 세겜 사람이 베푼 연회석에 참석하여(26-27절) 반역을 도모했지만 아직 그들의 세력이 완전히 규합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스불은 그들의 세력이 더 커지기 전에 아비멜렉에게 가알과 그의 형제들에 의한 반역의 소식을 전했다.
9:32 밭에 매복하였다가. 본래 매복은 적의 공격을 기습적으로 반격하기 위한 전술이다(수 8:10-17). 그러나 여기서는 아침 일찍 세겜 성을 공격하기 위해 밤에 미리 세겜 성 앞에 있는 밭에 숨어 있는 것을 가리킨다(33절). 이러한 매복 작전은 구약에 자주 등장하는 전술 중의 하나이다. 일찍이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 당시, 아이 성 전투에서 이 전술로 크게 성공을 거둔 바 있다(수 8:1-23). 한편 ‘밭’은 세겜 성읍 백성들이 농사짓는 곳으로, 그 성 밖에 있었다(42절).
9:33 아침 해 뜰 때에 … 엄습하면. ‘엄습하다’에 해당하는 ‘파샤트’는 본래 ‘돌진하다’, ‘가죽을 벗기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순간적으로 기습하여 닥치는 대로 살육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스불이 아비멜렉에게 이른 아침 동틀 무렵에 이러한 기습 작전을 펴도록 충고한 것은 그 때가 잠에 취했던 적들이 이제 막 깨어날 무렵인 바 미처 아무런 전투 태세를 갖추지 못한 적들을 쉽게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40절).
9:34 밤에 일어나. 아비멜렉은 스불의 말에 따라 군대를 비밀리 이동하기 위해 밤을 이용했다. 밤에 이동함으로써 아비멜렉과 그의 추종자들은 손쉽게 세겜 성과 인접한 곳에 이를 수 있었다.
네 떼로 나누어. 이처럼 많은 수의 군대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면 다음과 같은 전술상의 이점이 있다. (1) 지휘하는 자가 그 대원을 통솔하기 쉽다. (2) 각각의 소단위 부대는 전투시 기동력을 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3) 적에게 포위당할 위험이 적다. (4) 그리고 매복 공격을 쉽게 할 수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아비멜렉은 기동력을 살려 군사의 이동을 신속하게 하고자 자기 부대를 네 떼로 나눈 것 같다.
네 떼로 나누어. 이처럼 많은 수의 군대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면 다음과 같은 전술상의 이점이 있다. (1) 지휘하는 자가 그 대원을 통솔하기 쉽다. (2) 각각의 소단위 부대는 전투시 기동력을 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3) 적에게 포위당할 위험이 적다. (4) 그리고 매복 공격을 쉽게 할 수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아비멜렉은 기동력을 살려 군사의 이동을 신속하게 하고자 자기 부대를 네 떼로 나눈 것 같다.
9:35 가알이 나와서 성읍 문 입구에 설 때에. 본문에는 가알이 무슨 이유로 아침 일찍부터 성읍 문 앞으로 나왔는지에 대하여 언급이 없다. 그러나 그 행차에는 스불 뿐 아니라 일부 병사들도 동행하였을 것이다(36, 39절). 추정컨대 아마도 앞서 아비멜렉에게 선전 포고를 하였던 가알(29절)은 적의 동태을 살펴보려고 성읍 문 앞으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으니 도리어 아비멜렉이 가알을 치려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9:36 가알이 … 스불에게 이르되. 가알은 세겜 성읍의 방백인 스불을 따라 성읍 문 앞으로 나간 것 같다. 이로 보아 가알은 스불이 아비멜렉 편인 것을 눈치채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만일 스불이 아비멜렉의 대리권을 행사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면 가알은 그와 함께 아침부터 행동을 같이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백성이 산 꼭대기에서부터 내려오는도다. 산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은 아비멜렉을 따른 무리 중 한 떼에 불과하다(34절). 이 무리들은 세겜 성에서 볼 때 가장 눈에 잘 띄는 산꼭대기에서 내려왔으므로 가장 먼저 언급되었다.
백성이 산 꼭대기에서부터 내려오는도다. 산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은 아비멜렉을 따른 무리 중 한 떼에 불과하다(34절). 이 무리들은 세겜 성에서 볼 때 가장 눈에 잘 띄는 산꼭대기에서 내려왔으므로 가장 먼저 언급되었다.
9:37 밭 가운데를 따라. 이 말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달리 해석하고 있다. (1) ‘그 땅 가운데로’ 또는 ‘그 땅의 중앙에’란 의미로 해석하는 견해이다(KJV, RSV, NIV). 그 이유는 ‘가운데’에 해당하는 원어 ‘타부르’가 ‘중앙으로’란 뜻이기 때문이다(겔 38:12). (2) ‘밭 가운데를 따라’에 해당하는 ‘타부르 하아레츠’를 ‘그 땅의 중심’(Navel of the Land)이라는 의미를 지닌 지명으로 보는 견해이다(Goslinga, Hervey, Cundall). 그래서 혹자는 이곳을 ‘그리심 산’으로 주장하며(Goslinga), 또 어떤 사람은 세겜 앞의 특별한 언덕 지대의 지명이라고 주장한다(Hervey, Cundall). 그러나 이 두 번째 견해는 첫 번째 견해에 비해 그리 타당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타부르 하아레츠’란 말은 가알이 세겜 성문 입구에서 보았을 때 한 떼가 산꼭대기에서 내려오고 있었으머(36절), 그 산 중앙으로 또 한 떼가 내려왔던 것과 연관되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므오느님 상수리나무. 문자적으로 ‘점장이의 상수리나무’란 뜻이다. 아마 이곳은 점장이가 그 상수리 나무에 앉아 점을 쳤기 대문에 이런 식의 이름으로 특별히 알려진 장소인 듯하다. 그러나 ‘므오느님’은 세겜 성 인접지였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므오느님 상수리나무. 문자적으로 ‘점장이의 상수리나무’란 뜻이다. 아마 이곳은 점장이가 그 상수리 나무에 앉아 점을 쳤기 대문에 이런 식의 이름으로 특별히 알려진 장소인 듯하다. 그러나 ‘므오느님’은 세겜 성 인접지였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9:38 그 입이 이제 어디 있느냐. 다시 말해 아비멜렉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했던 그 용기(29절)가 어디 있느냐란 의미이다. 스불은 가알에게 이렇게 말함으로써 가알의 자존심을 자극시켰다.
이제 나가서 그들과 싸우라. 만일 가알이 성문을 굳게 잠근 채 수비만 하였다면, 아비멜렉의 세겜 성 공략은 몇 배나 힘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잘 알았던 스불은 의도적으로 가알의 자존심을 부추겨 정면 대결로 유도하였다.
이제 나가서 그들과 싸우라. 만일 가알이 성문을 굳게 잠근 채 수비만 하였다면, 아비멜렉의 세겜 성 공략은 몇 배나 힘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잘 알았던 스불은 의도적으로 가알의 자존심을 부추겨 정면 대결로 유도하였다.
9:39 세겜 사람들보다 앞에 서서 나가. 공동번역은 이를 ‘세겜의 어른들을 거느리고 앞장서 나가’로 번역하였다. 이는 곧 가알이 진퇴양난의 사태에 빠진 세겜 사람들을 추스리며 몸소 그들의 선두에 서서 싸움을 지휘하는 것을 가리킨다(Pulpit Commentary).
9:40 부상하여 엎드러진 자가 많아 성문 입구까지 이르렀더라. 가알은 아비멜렉군과 맞서 싸우기 위해 자신의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나갔을 것이다(39절). 그러나 이른 아침에 불시의 습격을 받은 그들은 전투를 위해 사전에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출전했으므로 아비멜렉이 이끄는 네 떼의 사람들을 당해 낼 수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들은 많은 인명 손실을 내고 세겜 성문 입구까지 아비멜렉군에 의해 쫓겨 왔다.
9:41 아비멜렉은 아루마에 거주하고. 아비멜렉이 이번 기회에 세겜 성 내부에까지 공격해 들어가지 않고 자기가 거주하던 곳으로 되돌아간 것은 잘 이해되지 않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는 돌아간 후 다시 세겜 성을 칠 기회를 엿보고 있었기 때문이다(42-45절). 아마 이번에는 성내로 들어가서 싸우게 되면 자신의 군대가 승리할 가능성이 희박할 것으로 판단했기에 되돌아 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아루마’는 ‘높이’, ‘높다’란 뜻이다. 이 역시 세겜 부근인 것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어쩌면 여호야김의 모친의 출신지인 ‘루마’와 같은 곳일지도 모른다(왕하 23:26).
9:42 백성이 밭으로 나오매. 세겜 성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 이처럼 밭으로 나온 것은 아비멜렉과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곳에서 일하기 위해서였다(Keil). 이것은 아비멜렉이 더 이상 그 성을 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세겜 성 사람들이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그들의 성읍 방어는 허술했을 것이다.
9:43 아비멜렉이 … 그들을 치되. 아비멜렉은 일단 반역의 주동자를 제거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아루마로 퇴각하였다(41절). 그런데 이튿날 세겜의 백성들이 밭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42절) 그들 모두를 제거하여 후한을 없애버리기로 결의한 듯하다. 아비멜렉은 이번에는 전술을 달리하여 군사를 세 떼로 나누어 매복시켰다. 그리고 세겜 사람들이 모두 성에서 나온 후 한 떼는 성문을 차단하고 나머지 두 떼는 성밖의 세겜 사람들을 무참하게 도륙하게 하였다(44절).
9:44 아비멜렉과 그 떼는 … 성문 입구에 서고. 아비멜렉이 이와 같은 행동을 취한 목적은 그 성에서 나오는 자들을 칠 태세를 취한 것 뿐 아니라 밖에서 그의 군대에게 쫓긴 자들이 성으로 되돌아갈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사실상 밖으로 나온 성읍 백성들을 제외하고 성내에 있는 자들은 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인원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밖에 있는 자들만 치면 성을 점령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비멜렉은 바로 이 점을 이용했다.
9:45 그 날 종일토록 그 성을 쳐서. 아비멜렉이 이렇게 힘든 싸움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지자인 세겜의 방백 스불(31-33절)은 미처 그를 돕지 못한 듯하다. 만일 성내에 거하던 스불이 아비멜렉을 도왔다면 아비멜렉은 성읍을 쉽게 점령할 수 있었을텐데, 오히려 그는 끈질기게 저항하는 성읍 주민들로 인해 고전을 했다.
그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리니라. 소금은 식물의 결실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아비멜렉의 이러한 행위는 그 성읍에 대해 영원한 멸망의 저주(신 29:23)를 선고하는 것을 상징한다(Pulpit Commentary).
그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리니라. 소금은 식물의 결실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아비멜렉의 이러한 행위는 그 성읍에 대해 영원한 멸망의 저주(신 29:23)를 선고하는 것을 상징한다(Pulpit Commentary).
9:46 세겜 망대의 모든 사람들. 많은 학자들은 이들을 밀로 족속(6, 20절)과 동일시한다(Keil, Goslinga, Hervey). 그러나 꼭 그렇게 볼 이유는 없다. 한편 여기에 언급된 ‘망대’는 세겜 사람들이 포도밭에 세워 둔 망대를 의미하는 것 같다(사 5:2). 망대는 그 성읍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외적의 침입을 막는 파수대 역할을 하였다. 세겜 망대는 세겜 성읍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했고 천 여 명도 거뜬히 운신할 수 있는 견고한 요새였던 것 같다(49절). 그래서 쉽게 점령할 수 없었던 아비멜렉은 화공법(火攻法)을 사용하여 공격하였다(49절).
엘브릿 신전의 보루. ‘엘브릿’은 ‘계약의 신’이라는 뜻으로 ‘바알브릿’(4절, 8:33)과 같은 의미이다. 8:33 주석 참조. 그리고 ‘보루’에 해당하는 원어 ‘체리아흐’는 ‘동굴’이나 ‘지하 방’과 같은 은밀한 장소를 가리킨다. 공동번역은 이를 ‘밀실’로, RSV와 NIV는 ‘요새’(stronghold), Living Bible은 ‘은신처’(refuge)로 각기 번역하고 있다.
들어갔더니. 이처럼 세겜 성으로부터 세겜 망대로 피한 사람들은 다시 위기를 느끼고 엘브릿 신전의 은밀한 곳을 도피처로 삼았다. 즉 거기에는 바알의 도움이 있어 안전할 줄로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도피처로 삼은 보루도 결국 그들의 무덤이 되고 말았다(47-49절). 악인의 종국은 이처럼 처참하고 가련하다(잠 3:25). 정녕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에 그들의 신 바알은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다. 반면에 주 여호와께서는 재앙의 날에 피난처가 되시며(렘 17:17), 구원의 산성이 되신다(시 28:8).
엘브릿 신전의 보루. ‘엘브릿’은 ‘계약의 신’이라는 뜻으로 ‘바알브릿’(4절, 8:33)과 같은 의미이다. 8:33 주석 참조. 그리고 ‘보루’에 해당하는 원어 ‘체리아흐’는 ‘동굴’이나 ‘지하 방’과 같은 은밀한 장소를 가리킨다. 공동번역은 이를 ‘밀실’로, RSV와 NIV는 ‘요새’(stronghold), Living Bible은 ‘은신처’(refuge)로 각기 번역하고 있다.
들어갔더니. 이처럼 세겜 성으로부터 세겜 망대로 피한 사람들은 다시 위기를 느끼고 엘브릿 신전의 은밀한 곳을 도피처로 삼았다. 즉 거기에는 바알의 도움이 있어 안전할 줄로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도피처로 삼은 보루도 결국 그들의 무덤이 되고 말았다(47-49절). 악인의 종국은 이처럼 처참하고 가련하다(잠 3:25). 정녕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에 그들의 신 바알은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다. 반면에 주 여호와께서는 재앙의 날에 피난처가 되시며(렘 17:17), 구원의 산성이 되신다(시 28:8).
9:47 모든 사람들이 모인 것이 … 알려지매. 본래 유능한 전술가는 적들을 한 곳으로 유인, 그곳에 모인 적들을 대량으로 살상하는 작전을 편다. 그런데 세겜 사람들은 스스로 한 곳에 모였으니 이를 전해 들은 아비멜렉은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9:48 살몬 산. 지명의 뜻이 ‘그늘’인 점으로 보아 울창한 숲으로 덮힌 산인 듯하다(Luther, Keil, Hervey). 혹자는 에발 산에 대한 다른 이름이라고 하며, 또 다른 사람은 그리심 산과 관련된 산 꼭대기로 오늘날의 셀만(Selman)이라고도 한다(Goslinga). 그러나 성경에 달리 언급된 사항이 없으므로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9:49 보루에 불을 놓으매. 아비멜렉과 그의 추종자들은 자기들이 꺾어 온 나무 가지로(48절) 신전 보루 앞에 불을 놓았다. 이것은 보루에 불을 붙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태워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불타는 나무의 연기로 질식시켜 죽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연기로 견디다 못해 밖으로 뛰쳐나오는 사람도 손쉽게 죽이기 위함이기도 하다. 반면에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그들이 굴로 들어가게 되면 도리어 자기들이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좁은 굴 입구를 통해 굴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제한되어 있으므로 굴 속에 있는 자들은 방어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남녀가 약 천 명이었더라. 이로 보아 그 보루는 비록 지하이지만 매우 넓은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곳에서 그들은 항상 종교 의식을 거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곳에서는 우상숭배에 따른 음란한 행위도 벌어졌을 것이다.
남녀가 약 천 명이었더라. 이로 보아 그 보루는 비록 지하이지만 매우 넓은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곳에서 그들은 항상 종교 의식을 거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곳에서는 우상숭배에 따른 음란한 행위도 벌어졌을 것이다.
9:50 데베스. 세겜 동북쪽에서 약 18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성읍이다. 혹자는 이곳을 오늘날의 ‘투바스’(Tubas)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Wycliffe, Robinson). 이곳 사람들도 세겜 사람들과 함께 아비멜렉에 대항하여 반역을 도모했음에 틀림었다.
9:51 성읍 중에 견고한 망대. ‘성 안에 있는 견고한 요새’란 뜻으로 데베스 성의 최후의 보루를 가리킨다.
그 성읍 백성의 남녀. 단순히 ‘그 성읍 백성들’이라 하지 않고 ‘남녀’란 말이 첨가되어 있는 점에 유의하여 혹자는 이들이 그 성에서 구별된 사람들 곧 그 성의 지도자들이라고 추정한다(Goslinga). 그러나 본 절에서 특별히 남녀가 구별되어 언급된 것은 아비멜렉이 여인의 손에 죽게 된 사실과 깊은 연관이 있다. 즉 성중의 모든 백성이 그 견고한 망대로 피했는데 그 중에는 여자들도 있었다는 사실은 후에 아비멜렉이 여인의 손에 죽게 되는 것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53절).
그 성읍 백성의 남녀. 단순히 ‘그 성읍 백성들’이라 하지 않고 ‘남녀’란 말이 첨가되어 있는 점에 유의하여 혹자는 이들이 그 성에서 구별된 사람들 곧 그 성의 지도자들이라고 추정한다(Goslinga). 그러나 본 절에서 특별히 남녀가 구별되어 언급된 것은 아비멜렉이 여인의 손에 죽게 된 사실과 깊은 연관이 있다. 즉 성중의 모든 백성이 그 견고한 망대로 피했는데 그 중에는 여자들도 있었다는 사실은 후에 아비멜렉이 여인의 손에 죽게 되는 것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53절).
9:53 한 여인이. 남자들이 활과 창과 칼로써 항쟁하는 동안에 여인들도 그 성을 수호하기 위하여 접근하는 적에게 돌을 떨어뜨림으로써 그 투쟁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맷돌 위짝. 맷돌은 고대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가정 필수품이었다. 여인들은 이것을 사용하여 곡식을 빻아 음식을 만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여인들은 그 망대로 피할 때에 이 맷돌을 가지고 갔던 것 같다.
그의 두개골을 깨뜨리니. 그러나 아비멜렉은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머리에 치명상을 입었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다(54절).
맷돌 위짝. 맷돌은 고대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가정 필수품이었다. 여인들은 이것을 사용하여 곡식을 빻아 음식을 만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여인들은 그 망대로 피할 때에 이 맷돌을 가지고 갔던 것 같다.
그의 두개골을 깨뜨리니. 그러나 아비멜렉은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머리에 치명상을 입었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다(54절).
9:54 무기를 든 청년. 좀더 정확히 말해서 ‘무기 잡은 신복’이다. ‘청년’에 해당하는 ‘나아르’는 ‘아이’, ‘청년’, ‘사환’ 등을 의미하지만, 본 절에서는 전쟁에 참가할 만큼 나이가 들었고 주인을 따르는 자이므로 ‘사환’ 또는 ‘종’의 의미로 번역되어야 한다. 다윗도 사울의 무기 잡은 자로 그를 따라 다닌 적이 있다(삼상 16:21).
여자가 그를 죽였다 할까 하노라. 용사가 힘 없는 여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매우 명예롭지 못한 일이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명예로운 죽음을 원했다(Wycliffe, Pulpit Commentary). 이와 유사하게 블레셋과 싸움을 하던 사울은 치명상을 입은 후 이방인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자기의 무기 든 자로 하여금 자기를 죽이게 한 일이 있다(삼상 31:4).
여자가 그를 죽였다 할까 하노라. 용사가 힘 없는 여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매우 명예롭지 못한 일이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명예로운 죽음을 원했다(Wycliffe, Pulpit Commentary). 이와 유사하게 블레셋과 싸움을 하던 사울은 치명상을 입은 후 이방인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자기의 무기 든 자로 하여금 자기를 죽이게 한 일이 있다(삼상 31:4).
9:55 아비멜렉을 추종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의 죽음을 목격한 후 더 이상 싸워야할 명분이 없으므로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이러한 그들의 행동은 아비멜렉의 죽음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 자기 처소로 떠나갔더라. 지도자를 잃은 아비멜렉의 군대는 뿔뿔이 흩어졌다. 이처럼 명분이 정당하지 못한 집단은 한때 흥왕하는 듯하여도 쉬 와해되기 마련이다. 반면에 진리 안에서 모인 무리들의 결속력은 영구적이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인 무리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바뀌기도 하고 심지어 핍박을 당하여 소멸되기도 하지만, 진리는 영원하므로 언제 어디서든지 또 다시 일어난다. 한편 아비멜렉의 죽음으로 인하여 그동안 세겜인과 아비멜렉 간에 진행되었던 내분은 끝이 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 자기 처소로 떠나갔더라. 지도자를 잃은 아비멜렉의 군대는 뿔뿔이 흩어졌다. 이처럼 명분이 정당하지 못한 집단은 한때 흥왕하는 듯하여도 쉬 와해되기 마련이다. 반면에 진리 안에서 모인 무리들의 결속력은 영구적이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인 무리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바뀌기도 하고 심지어 핍박을 당하여 소멸되기도 하지만, 진리는 영원하므로 언제 어디서든지 또 다시 일어난다. 한편 아비멜렉의 죽음으로 인하여 그동안 세겜인과 아비멜렉 간에 진행되었던 내분은 끝이 난다.
9:56 여기에서 저자는 결론적으로 아비멜렉의 악행과 그를 추종한 세겜 사람들의 악행에 대하여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임하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
자기 아버지에게 행한 악행.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가문에 대한 세겜 사람들의 반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여룹바알’로 부르는 악을 범했다(9:2). 또한 그는 자기 형제들을 죽이고 자기 아버지 기드온이 거절한 왕위를 차지하므로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더럽히는 죄악을 저질렀다(9:2-6).
자기 아버지에게 행한 악행.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가문에 대한 세겜 사람들의 반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여룹바알’로 부르는 악을 범했다(9:2). 또한 그는 자기 형제들을 죽이고 자기 아버지 기드온이 거절한 왕위를 차지하므로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더럽히는 죄악을 저질렀다(9:2-6).
9:57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