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하려 하시며. 전쟁의 경험이 없는 여호수아 이후 세대들에게 전쟁을 친히 겪게 하여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경험하게 하려는 것을 가리킨다(Pulpit Commentary).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 곧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당시 미처 완전히 진멸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호수아 사후에도 가나안에 존속하고 있던 원주민들을 가리킨다(3, 5절). 그런데 본 절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열국을 남겨 두신 데에도 깊은 경륜이 담겨 있었음을 보여준다. 즉 당시 이스라엘은 분명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을 것이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다. 이같은 사실 역시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인간의 지혜로운 것보다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증거해주는 일례이다(사 55:8-9).
다섯 군주들. 블레셋의 5대 성읍인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 가드, 가사의 군주들을 의미한다(수 13:3). 여기서 ‘군주’(히, 사레네이)란 호칭은 그리스의 군주를 가리키는 명칭인 ‘코이라노스’, 또는 ‘타이라노스’ 등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곧 블레셋인들이 그리스 지방으로부터 이주해 온 족속임을 간접적으로 증거해 준다. 성경에서 ‘사레네이’ 또는 이에 준하는 ‘세렌’이란 호칭은 오직 블레셋 족속에게만 사용되어졌다(16:5, 수 13:3, 삼상 5:8, 6:4, 7:7, 29:3, 9, 대상 12:19). 한편 아브라함 시대에 이미 가나안 땅에 이주해 와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블레셋인들의 초기 중심지는 그랄이었다(창 20:1-2, 21:32, 34). 그러나 이후에는 아스돗 등 다섯 도시의 방백들이 중심이 되어 블레셋을 이끌었다.
모든 가나안 족속. 여호수아가 미처 다 정복하지 못했던 가나안 후기 원주민들을 가리킨다. 1:1 주석 참조. 당시 이들이 차지하고 있었던 땅의 경계에 대해서는 수 13:1-7에 상세히 언급되어 있다. 자세한 내용은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시돈 족속. 시돈은 두로의 북쪽 32 km, 베이루트(Beirut)의 남쪽 32 km 지점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서, B.C. 2750 년경 함의 아들 가나안이 낳은 장남 ‘시돈’(창 10:15)에 의해 건립된 도시라 알려지고 있다. 예수 당시에는 주로 이웃 도시인 두로(Tyre)와 함께 언급되고 있다(마 11:21, 눅 10:13). 이 당시 두로와 시돈은 지중해 해상 무역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가장 번성했던 도시였다. 이후에 이들은 베니게인이라고 불려졌으며, 이들이 거하던 베니게는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행 11:19, 15:3). 1:31 주석 참조.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입구까지. ‘바알 헤르몬’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수 11:17, 13:5에 근거해 팔레스타인 최북방 헤르몬 산 아래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 일 것으로 추정한다(Lange, Keil & Delitzsch). 다음으로 ‘하맛 입구’ 역시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 혹자는 다메섹 북부 약 200 km 지점의 오론테스 강을 끼고 있는 수리아 성읍 ‘하맛’ 부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Rawlinson). 그러나 대개는 ‘하맛에 들어가는 곳’(수 13:5). 즉 레바논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바알갓의 맞은편 동북쪽에 위치한 ‘르보(어구)-하맛’일 것으로 추정한다(Pulpit Commentary).
히위 족속. 히위 족속은 가나안의 후손으로서 일반적으로(창 10:17, 대상 1:15) ‘가나안 후기 원주민’으로 분류되어 진다. 그런데 이들 히위 족속은 대체적으로 호리 족속과 동일시된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히위’의 ‘와우’와 ‘호리’의 ‘레쉬’가 혼동되어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에서의 아내 오흘리바마가 창 36:2에서는 히위 족속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조금 뒤에 가서는(창 36:20, 25) 호리 족속으로 기록되어 있는 점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아무튼 이들은 아마르나 시대(Amarna Age, B.C. 15세기-14세기) 동안에 북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미탄니(Mitanni)라는 매우 중요한 왕국을 건설하였다. 미탄니 왕국은 당시 이집트의 가장 강력한 대적이 되었고, 레바논 산지와 하맛 어구(수 11:3, 삼하 24:7). 그리고 기브온과 그 주변 도성에까지 이주해 살면서 가나안 문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이 끼친 그러한 영향력은 예루살렘에 거하는 여부스인 중 한 지도자의 이름에도 잘 나타나 있다. 즉 삼하 24:16에 ‘아라우나’라고 하는 어떤 여부스인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때의 ‘아라우나’는 ‘지도자’란 뜻을 가진 히위인들의 호칭이었다(IDB).
모세를 통하여 … 이르신 명령들. 2:22에 나오는 ‘여호와의 도’와 같은 말이다. 즉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신 모든 율법을 가리킨다. 2:22 주석 참조.
가나안 족속과 … 여브스 족속. ‘기르가스 족속’(신 7:1)을 포함하여 소위 ‘가나안의 일곱 족속’이라 불리던 자들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점령할 때 그곳에 거주하던 자들로서 ‘가나안 후기 원주민’으로도 불리웠다.
그들의 신들. 이스라엘에 커다란 영향을 준 가나안 종교는 1929년 발굴된 우가리트 문서, 즉 라스 샤마라(Ras Shamra) 서판을 통해 보다 자세히 알려지게 되었다. 여기에 소개되고 있는 여러 신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신들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엘’(El) 신, 그의 아들인 ‘바알’(Baal) 신, 바알의 누이이며 아내인 ‘아낫’(Anath) 신이 있다. 그리고 일명 ‘호론’(Horon)으로도 불린 바알의 원수인 ‘못’(Mot)과 바다를 주관하는 ‘얌’(Yam) 일명 ‘리워야단’(Lotan) 신이 있다. 또한 아낫과 함께 가나안의 3대 여신이라 불리우는 ‘아세라’(Asherah)와 ‘아스다롯’(Astaroth) 신 등도 언급되어 있다(F. M. Cross). 그 외에도 그곳에 기록되어 있는 다른 중요한 가나안 신으로서는 블레셋인들이 섬기던 ‘다곤’(Dagon) 신이 있다. 이는 곡물의 신으로서 바알 신과 그 성격이 비슷하여 바알과 이명 동신(異名同神)이 아닌가 추측된다. 라스 샤마라 지방에서 바알신을 ‘다곤신의 아들’(The Son of Dagon)로 부르기도 했던 점은 이 사실을 뒷받침 해준다(IDB). 또한 라스 샤마라 서판에는 ‘그모스’(Chemosh, 삿 11:24) 혹은 ‘몰렉’(Molech, 레 18:21), ‘밀곰’(Milcom, 왕상 11:5) 등으로도 불리운 암몬 신이 언급되어 있다. 이처럼 다양한 이방 신들이 숭배되던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순수한 여호와 종교를 보존할 수 있기 위해서는 가나안인과의 통혼을 엄격히 금지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다.
섬겼더라. 이에 해당하는 원어 ‘아바드’는 단지 생각이나 말로만 섬기는 것이 아니고, 몸과 인격 전체를 바쳐 섬기는 종교적인 섬김(Service)을 의미한다(Lange). 그러므로 70인역(LXX)은 이 말을 종교적인 의미에서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인 ‘레이투르게인’ 즉 ‘예배하다’로 번역하였다.
바알들과 아세라들. 여기서 ‘바알’은 ‘풍요’와 ‘다산’(多産)을 관장하던 가나안의 고위 신이다. 그리고 ‘아세라’는 엘(El)의 아내이자 바알을 포함한 70명의 신의 어머니이다. 그런데 이들의 이름이 이처럼 복수형으로 쓰여지고 있는 이유에 대하여서는 다음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첫째, 이것은 장엄 복수형으로서 신의 이름에 흔히 사용되던 히브리어법의 한 형태이다. 즉 신의 존엄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복수형으로서 모양은 복수지만 그 뜻은 단수로 쓰인 경우이다. 그 한 예로 ‘하나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엘로힘’을 들 수 있다. 이는 복수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러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둘째, 이것은 여러 모양, 그리고 여러 지역에서 섬겨지던 바알과 아세라 우상들을 나타내기 위해 쓰여진 복수형이다. 본문의 문맥상 위의 두 가지 이유 가운데 후자의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이스라엘은 당시 지역에 따라 여러 모앙, 여러 이름으로 섬겨지던 바알과 아세라를 자기의 이웃들과 더불어 섬겼다. 2:11 주석을 참조하라.
구산 리사다임. 이 왕에 대한 기록을 성경 다른 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다만 ‘리사다임’에 해당하는 원어 ‘리쉬아타임’은 ‘두 배나 악하다’는 뜻인데, 아마도 이스라엘이 그에게 붙여 준 칭호인 듯하다. 그리고 ‘구산’이란 이름은 바벨론 왕 ‘니므롯’의 부친인 ‘구스’(창 10:8)란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Pulpit Commentary, Keil & Delitzsch Commenary).
손에 파셨으므로. ‘팔다’에 해당하는 원어는 ‘마카르’로서 사람을 노예로 파는 것(신 21:14, 28:68)을 가리킨다. 2:14 주석 참조. 그런데 이 말은 간혹 사람이 죄의 노예가 될 때에도 사용되었다(사 50:1).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상과 달리 ‘항복하게 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산 리사다임의 지배하에 놓이게 하신 것을 의미한다.
한 구원자를 세워. 여기서 구원자라 함은 사사(Judge)를 의미한다. 그런데 본서에서 사사들에 대해 구원자란 명칭이 사용된 것은 사사들이 문자 그대로 단순히 재판만을 수행하는 재판관(4:5)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려움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을 주위의 적들로부터 구해 주는 구원자의 직무를 수행했다(15절, 5:14, 8:22). 2:16 주석을 참조하라.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 옷니엘이 정확히 갈렙의 아우인지 아니면 조카인지 하는 학자들간의 이견에 대해서는 이미 1:13 주석을 참조하라.
여호와께서 …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이 구산 리사다임에게서 거둔 승리는 오직 하나님의 주관적인 능력과 역사로 말미암았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회개하자 즉각적으로 구원의 손길을 뻗치신 하나님의 사랑의 한 표현이기도 하다(9절).
모압. ‘모압 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롯의 딸 간의 근친 상간에 의해 태어난 ‘모압’의 후손이다(창 19:30-38). 그들의 거주 지역은 사해 동쪽에 위치한 고원 지대로서 해발 약 1,300m에 이른다. 한편 과거 그들은 출애굽 과정에 있던 이스라엘이 그 지경을 통과하고자 요청할 때 이를 거절했었다(11:17). 그리고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이스라엘을 저주케 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유혹하여 우상 앞에서 음란히 행하도록 만들었다(민 23:11, 24:10, 25:1-3).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암몬과 모압 사람을 영원히 이스라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라고 명령하신 적이 있다(신 23:3-6).
에글론. 이름의 뜻은 ‘젊은 황소’이다. 이스라엘의 사사 시대 초기 당시 모압의 왕이었던 자로서 여리고 부근의 요단 강 서부 지역을 한 때 강점하였다(13절).
강성하게 하사 … 대적하게 하시매. 여기서 ‘강성하게 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하자크’는 ‘돕다’, ‘붙잡다’는 뜻이다. 이는 곧 강한 손으로 이스라엘을 붙들어 주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도리어 이스라엘의 죄악을 징계하시려고 잡은 손을 놓으시고 대신 모압을 권능의 손으로 붙드신 것을 의미한다.
아말렉 자손. 에서의 손자인 ‘아말렉’을 조상으로 하는 족속이다(창 36:15-16). 이들의 거주지는 팔레스타인 남방에서 시내 반도에까지 이르는 광야지대였다. 이들은 사사 시대 동안 미디안과 화합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히다가 기드온에게 격멸당하고 만 역사도 지니고 있다(6:1-7:25).
종려나무 성읍. 여리고 성을 의미한다(신 34:3, 대하 28:15). 1:16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모압과 암몬, 그리고 아말렉 연합군이 여리고 성을 쉽게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성읍이 여호수아 이후 얼마동안 강력한 요새로 재건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 이후 그곳을 재건치 못하도록 저주를 선언했다(수 6:26). 때문에 이후 여리고는 외적의 침입을 방비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히 재건되지 못하였고 그래서 에글론의 연합군에게 쉽게 점령당하였을 것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아무튼 이들이 이처럼 여리고 성을 점령했다는 것은 그들이 이미 모압 북쪽에 인접해 있던 르우벤 지파를 쳤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그 결과 그들은 이스라엘이 거주하던 요단 서쪽도 점령할 수 있는 발판을 구축한 셈이 된다.
왼손잡이. 원어의 문자적 뜻은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자’란 뜻이다. 때문에 혹자는 이를 오른손을 전혀 쓰지 못하는 불구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70인역(LXX)을 이를 ‘암포테로덱씨오스’, 즉 ‘양손잡이’로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이는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비해 왼손이 발달된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같은 사실은 베냐민 지파 중에 왼손잡이가 700명이나 있었던 점(20:16)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Lange, Matthew Henry, Keil & Delitzsch Commentary).
그를 통하여 … 공물을 바칠 때에. 여기서 ‘그를 통하여’란 말은 ‘그의 감독하에’ 또는 ‘그를 통하여’란 뜻이다. 이는 곧 이스라엘이 모압에게 공물 바치는 일을 에홋이 관리, 감독하였음을 의미한다(Keil & Delitzsch Commantary).
공물. 이에 해당하는 원어 ‘미느하’의 원뜻은 ‘예물’, ‘선물’이다(KJV). 그러나 여기서는 속국의 백성들이 종주국에게 바치는 ‘조공’(朝貢)을 가리킨다(RSV, NIV).
좌우에 날선 칼. ‘칼’에 해당하는 ‘헤레브’는 장검(sword) 뿐 아니라 단검(dagger)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예리한 도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에훗이 준비한 칼도 예리하게 양날을 세운 일종의 단검이었다.
돌 뜨는 곳. 이 말에 해당하는 원어 ‘페실림’의 기본 뜻은 ‘새기다’이다. 그러나 정작 이 말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르다. 이를 크게 분류하면 3가지로 집약되는데 다음과 같다. (1) 채석장 : KJV와 Living Bible은 이 해석을 취한다. 이것은 ‘돌을 뜨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동사 ‘파살’에 따른 번역이다(Keil). (2) 기념 비석 :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올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강을 건넜으므로 이를 기념키 위해 여호수아는 길갈에 돌을 세운 적이 있다(수 4:19-24). 그래서 이곳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잘 알려진 곳이 되었는데 ‘페실림’은 바로 그곳에 세워진 기념비석들을 가리킨다는 견해이다(A. E. Cundall). (3) RSV, NIV, 공동번역에는 ‘페실림’이 ‘새겨진 돌’ 또는 ‘우상들’로 번역되어 있다. 그리고 실제로 성경에서도 ‘페실림’이 ‘우상’의 의미로 사용된 곳이 있다(신 7:25, 사 21:9, 렘 8:19). 이 세 가지 해석 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세 번째 견해이다. 그 이유는 ‘페실림’이란 단어가 성경 다른 곳에서 대개 ‘우상’의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단어의 단수형 ‘페셀’ 역시 ‘새겨진 형상’을 의미한다(Lange, Pulipit Commentary).
은밀한 일. 공동번역은 이를 ‘은밀히 드릴 말’로 번역하고 있다. 즉 다른 사람이 들어서는 안 되는 ‘비밀 정보’ 곧 보안을 필요로 하는 중대사를 가리킨다.
내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 아뢸 일이 있나이다. 에훗이 실제로 에글론에게 전달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본문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에홋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구원자로 세우실 때, 이미 그에게 에글론을 죽이고 그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라는 명령을 주셨을 것이다(15절). 따라서 여기서 ‘하나님의 명’이란 바로 그러한 명령을 가리킨다고 본다면 에홋은 단순히 에글론을 암살키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Matthew Henry). 에훗이 모압과의 전투 직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수들인 모압을 너희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28절)고 말할 수 있었던 것도 그 같은 소명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왕이 그의 좌석에서 일어나니. 혹자(Bertheau)는 에글론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일어났다고 해석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그러나 본문에는 그러한 의미가 나타나 있지 않다. 아마 그는 에글론이 말한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하여 일어났을 수 있다. 또한 에훗의 말이 매우 비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추측하여 더욱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에홋과의 거리를 좁히려고 좌석에서 일어났을 수도 있다.
칼을 … 빼내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역시 하나님께서 에글론에게 내리신 심판을 거두지 아니하시므로 죽음의 저주가 끝까지 에글론과 함께 하였음을 강조한다. 혹자는 이상과 같은 에훗의 암살 행위에 대하여 그 정당성을 의문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에홋의 행위는 성경에 나오는 다른 암살 행위(삼하 2:27, 4:6)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즉 일반적으로 암살 행위는 사적 원한과 야비한 정치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에홋은 엄연한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에글론을 응징한 것이다.
나팔을 불매. 에훗이 나팔을 분 것은 백성들을 소집할 뿐 아니라(6:34, 삼상 13:3) 동시에 전쟁과 같은 비상 사태를 선포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요단 강 나루를 … 건너지 못하게 하였고. 여기서 말하는 ‘요단 강 나루’는 모압 땅 맞은 편, 여리고 앞의 요단 강 어느 한 지점일 것이다. 한편 에훗이 이처럼 요단 강 나루를 지킨 데에는 이중 목적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 있던 모압군(13절)이 강을 건너 모압 땅으로 도망치는 것을 봉쇄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모압 본토에서부터 소식을 들은 모압인들이 원군(援軍)을 형성, 요단 강을 넘어오는 것을 방비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에훗의 봉쇄 작전은 주효하였는데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침입하였던 모압군을 격파하고 마침내 그들로부터 항복을 받아낸다(29-30절).
소 모는 막대기. 당시 팔레스타인이나 수리아에서는 밭을 갈 때 길이 약 2.5m 정도 되는 둥글고 두꺼운 막대기를 사용하였다 한다. 그 막대기의 한쪽 끝은 뾰족해서 소를 몰 때 찌를 수 있도록 되어 있었으며 다른 쪽 끝에는 조그마한 삽이 달려 있어서 밭을 손질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었다 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그런데 삼갈이 이처럼 무기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빈약한 막대기를 가지고 600명의 블레셋인들을 물리쳤다는 것은 배후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큰 능력을 증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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