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주석, 여호수아 2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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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본서 19장까지는 가나안 정복 및 기업 분배에 대하여 설명되었는데,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 대업을 무사히 끝마친 여호수아에게 새로운 지시를 주신다. 그것은 곧 기업의 땅 중에서 도피성을 선정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도피성 제도는 지금 처음으로 지시된 것이 아니라, 이미 모세때부터 지시된 것이었다. 즉 하나님께서는 민 35:9-34에서 도피성 제도에 관해 상세히 설명하셨고, 신 19:1-13에서 모세는 다시 이 도피성 제도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설명하였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본 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도피성 제도에 관한 지시를 받기 전에 이미 이 제도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20:2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모세가 도피성 제도에 관한 지시를 이미 받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하신 것은 도피성 제도가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모세에게 지시한 것임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도피성. 민 35:11 주석 참조.

 

20:3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 이는 살해할 의사 없이 실수로 살인한 사람을 뜻한다. 이런 자들만이 도피성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한편 여기서 ‘부지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비쉬가가’는 직역하면 ‘과실로’, ‘실수로’, ‘알지못한 채’를 뜻한다. 민 35:16-23에는 고의적인 살인과 우발적인 살인에 관하여 잘 규정하고 있다. 즉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 죽이는 것,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이나 나무 연장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 죽이는 것, 미워하는 것 때문에 밀쳐 죽이거나 기회를 엿보아 무엇을 던져 죽이는 것, 원한으로 인하여 손으로 쳐 죽이는 것 등이 고의적인 살인에 해당하며, 원한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기회를 엿보지 않고 무엇을 잘못 던져 사람을 죽인 경우 등은 부지중 실수로 죽인 자에 해당한다.

피의 보복자. 민 35:12, 신 19:6 주석 참조.

 

20:4 이 성읍들 중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 부지중 살인한 자가 어떻게 도피성에 들어갈 것인가 하는 절차 문제가 언급되어 있는데, 이러한 하나님의 지시는 민수기와 신명기에 나타난 규례보다 좀더 발전된 것이다. 즉 실수로 살인한 자는 먼저 도피성의 성문 어귀에 서서 성읍 장로들에게 공개적으로 자신이 저지른 사고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야 했다. 그러면 성읍의 장로들은 도망온 자가 실수로 살인을 했다고 판단되면 그를 받아들이고 그에게 거주지를 주어야 했다. 그러나 고의로 사람을 죽인 자가 도피성으로 피하여 왔을 경우에는 그를 보복자의 손에 넘겨 응당 보응을 받게 해야 했다(신 19:11-12). 한편 여기서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란 당시 성읍의 장로들이 재판을 하던 공적인 장소로서(룻 4:1, 삼하 15:2), 장로들은 이곳에서 성읍에 도망온 살인자의 고의성 여부를 판정하여 성읍에 거하게 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였다.

 

20:5 없음.

 

20:6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민 35:12, 24 주석 참조.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고의성이 없이 우발적으로 살인을 하여 도피성으로 도망한 사람은 자신의 살인이 결코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재판을 받을 때까지 그 성읍 안에 도피처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만일 그의 비고의성이 밝혀지면 그 살인자는 도피성에 거하는 것이 허락되어 그곳에서 당시의 대제사장이 죽는 날까지 지내다가 그 후에는 자유의 몸으로서 자기의 고향 성읍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만일 재판 결과 고의로 죽인 사실이 발견되면 그는 그 도피성에 더 이상 머무르지 못하고 피의 보복자에 의해 죽임을 당하도록 추방되었다(신 19:12 주석 참조). 한편 민 35:32에 보면 비록 실수로 살일한 자라고 할지라도 속전에 의해서는 결코 성읍을 떠날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대제사장의 죽음이 곧 속전을 대신하였음을 암시해 준다. 즉 대제사장의 죽음이 속전으로 간주되어 살인죄를 상쇄시켰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궁극적으로 피 흘린 자에 대한 진정한 보복자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으로서(창 9:5-7),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보복자요 심판자로서 대제사장의 죽음을 살인죄의 속전으로 받아들이셨다는 것을 암시한다. 결국 이와 같은 점에서 볼 때 대제사장의 죽음은 인류의 영원한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한 모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민 35:25 주석 참조.

 

20:7 본 절에는 요단 서편의 가나안에 지정된 세 도피성 곧 납달리 지파의 ‘갈릴리 게데스’, 에브라임 지파의 ‘세겜’, 유다 지파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이 언급되어 있다.

게데스. 12:22 주석 참조. 북부 갈릴리의 산악 지대에 위치해 있는데, 처음에는 납달리 지파에게 분배되었다가(19:32, 37) 후일 도피성으로 지정되었다. ‘갈릴리 게데스’, ‘납달리 게데스’(삿 4:6)라고도 불린다.

세겜. 17:7 주석 참조. 에브라임 산지에 위치한 성읍으로, 기업 분배시 에브라임 지파에게 분배되었다가 후일 도피성으로 지정되었다. 여호수아는 이곳에서 그의 마지막 고별사를 하였다(24:1, 25).

헤브론. 10:3 주석 참조. 처음에는 유다 지파에게 분배되었다가(21:11) 후일 도피성으로 지정되었다. 한편 이곳은 갈렙이 정복한 적이 있으며, 원래는 ‘기럇 아르바’로 불렸다(14:13-15).

 

20:8 본 절에는 요단 강 동쪽에서 지정된 세 도피성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들은 전에 모세가 지시한대로(신 4:41-43) 이루어졌다.

베셀. 신 4:43 주석 참조. 기업 분배시 처음에는 르우벤 지파에게 분배되었다가(21:34, 36) 후일 도피성으로 지정되었다.

길르앗 라못. 신 4:43 주석 참조. 갓 지파에게 분배되었다가(20:8) 후일 도피성으로 지정되었다.

바산 골란. 신 4:43 주석 참조. 므낫세 지파에게 주어졌다가(21:27) 후일 도피성으로 지정되었다. 신 19:1-3 주석 참조. 한편, 메튜 헨리(Matthew Henry)는 여섯 도피성들의 이름이 지니는 뜻을 그리스도와 연관시켜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즉 ‘거룩한 곳’을 뜻하는 ‘게데스’는 성전되신 그리스도를(요 2:19), ‘어깨’를 뜻하는 ‘세겜’은 정사(政事)를 어깨에 멘 그리스도를(사 9:6), ‘교제’를 뜻하는 ‘헤브론’은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과 교제케 하시는 그리스도를(고후 5:18-19), ‘성채’를 뜻하는 ‘베셀’은 성도들이 피할 성채 되시는 그리스도를(시 91:2), ‘높은 곳’을 뜻하는 ‘라못’은 성도들로 하여금 높은 하늘에 앉게 하시는 그리스도를(엡 2:6), ‘기쁨’을 뜻하는 ‘골란’은 성도들에게 기쁨을 주시는 그리스도를(요 15:11) 각각 상징한다는 것이다(Matthew Henry’s Commentary).

 

20:9 거류하는 거류민. 레 19:33-34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 중에 거류하고 있는 거류민을 학대하지 말고 자신 같이 사랑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시 애굽에서 객(나그네)이었던 점을 상기시키면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은 그 사랑을 똑같이 베풀 것을 명하신 것이다. 따라서 이 명령에 근거하여 도피성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거류하는 거류민들도 위한 것이어야 했다.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 도피성을 세운 기본 목적은 무죄한 사람이 억울하게 피를 흘리지 않도록 보복에 제한을 두게 한 것으로, 더 이상의 불필요한 살인을 방지코자 하는 데 있었다. 이는 구약의 엄한 율법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좋은 증거가 되는 제도이다. 이와 같이 형벌에 있어서 일괄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정상을 참작한 것은 당시로서는 뛰어난 형벌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도피성 규례’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민 35:9-34, 신 19:4-13 주석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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