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낫세의 장자 마길은 길르앗의 아버지라. 여기서 ‘마길’은 므낫세 지파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대상 7:14-19에 기록된 족보에 의하면, 마길의 모친 곧 므낫세의 처는 아람 여인이었다. 후일 가나안 정복시 이들 마길의 후손들은 바산과 길르앗 지역을 할당받았다(민 32:40). 그리고 ‘길르앗’은 므낫세의 손자이자 마길의 아들로서, 부친 마길의 가계와 더불어 길르앗 가계를 이룸으로써 므낫세 지파를 형성한 자이다. 그런데 본래 ‘길르앗’이 아람 지역과 가나안 지역의 경계를 이루는 지역 이름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아마 그의 이름은 아람 여인인 조모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그는 용사였기 때문에 길르앗과 바산을 받았으므로. 여기서 마길은 마길의 후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길르앗과 바산을 차지한 자는 마길 혼자가 아니라 그의 후손들이었다. 한편, 여기서 용사는 히브리어로 ‘이쉬 밀하마’로서, 직역하면 ‘전쟁의 사람’(a man of war, KJV, RSV)이다. 모세 오경에는 마길 자손이 용사라고 한 구절이 없지만, 민 32:39에 그들이 길르앗을 쳐서 아모리 족속을 정벌할 정도로 용맹했음이 기록되어 있음을 볼 때 여호수아서 저자가 이 말을 한 것은 민 32:39에 근거한 것 같다.
길르앗과 바산을 받았으므로. 므낫세 지파 중 마길의 후손들이 길르앗과 바산을 쳐서 그곳에 살던 거민들을 쫓아내고 그곳을 자신들의 기업으로 얻은 사실에 대해서는 13:29-31, 민 32:39-40, 신 3:13-15에 보다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즉 마길 가족과 길르앗 가족으로 형성된 므낫세 반(半) 지파는 이미 요단 동편 땅을 기업으로 분배 받았던 것이다(13:29-31).
제비를 뽑았는데. 제비 뽑는 방식에 대해서는 14:2 주석을 참조하라.
그들은 곧 아비에셀의 자손과 … 스미다의 자손이니. 므낫세의 남은 자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는데, 이들 자손은 길르앗의 여섯 아들 곧 아비에셀, 헬렉, 아스리엘, 세겜, 헤벨, 스미다의 자손인 6 가족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므낫세 지파는 도합 3대(代)에 걸친 8 가족으로 구성되었다. 즉 1대는 므낫세의 아들인 마길 가족이며, 2대는 마길의 아들인 길르앗 가족이고, 3대는 길르앗의 여섯 아들들의 가족이다. 이중 마길 가족과 길르앗 가족은 요단 동편의 바산과 길르앗 지역을 이미 기업으로 얻었다(13:29-31). 따라서 이제 6 가족만이 남았던 것이다(민 26:29-34).
아들이 없고 딸뿐이요. 길르앗의 6 아들 중 5번째 아들인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었고 딸만 5명 있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관례대로 한다면 슬로브핫은 므낫세 지파 중에서 그 이름이 끊김은 물론 기업도 받지 못할 형편이었다. 그러나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의 적극적인 요구로 여성 상속법이라는 새로운 법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민 27:1-11에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 기업을 주므로. 여기에는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여호수아와 지도자들 앞에 나아가 과거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민 27:6-11의 내용을 근거로 하여 그들의 기업을 요구했고, 또한 엘르아살과 여호수아와 족장들은 그들의 요구에 따라 기업을 주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기업 상속권은 딸에게는 없고 아들에게만 있었다. 즉 딸은 시집을 가면 다른 지파, 다른 가계에 속하게 되므로 기업을 상속받을 수 없었다. 따라서 슬로브핫의 딸들은 그의 가계에 아들이 없기 때문에 기업을 얻지 못하게 될 형편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아비의 이름을 지파 내에서 보존코자 하는 충정에서 적극적으로 자신들에게도 기업을 줄 것을 요구하게 되었고(민 27:1-4), 결국 허락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기업을 분배받는 대신 한가지 조건이 부여되었다. 그 조건은 그들이 반드시 자기 지파 내에서만 결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민 36:6-9). 그 이유는 분배받은 기업의 땅을 같은 지파 내에서 계속 보존시키기 위함이었다.
므낫세에게 열 분깃이 돌아갔으니. 이를 직역하면 ‘므낫세에게 할당된 몫이 열 분깃으로 나뉘었으니’이다. 즉 헤벨을 제외한 므낫세의 남자 자손은 다섯이고(2절), 또 헤벨의 아들인 슬로브핫의 딸들이 다섯이기 때문에 합치면 모두 열 분깃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메튜 헨리(Matthew Henry)는 슬로브핫의 다섯 딸은 슬로브핫이 얻을 한 기업을 잇는 것이기 때문에, 다섯 딸의 기업 전체는 다른 남자 자손들 중의 하나의 기업과 동일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세겜. 팔레스타인의 주산맥인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 있는 한 성읍으로 예루살렘 북쪽 약 58 km 지점 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일찍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하란을 떠나 이곳에 도착했을 때 단을 쌓았고(창 12:1-7), 야곱의 딸 디나가 욕을 당한 결과 ‘디나 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며(창 34장), 또한 요셉의 뼈가 이곳에 장사되었다(수 24:32). 그리고 가나안 땅 분배시에는 처음에 에브라임 지파에게 분배되었으나(수 17:7-9), 나중에 레위 지파에게 할당되어 도피성으로 지정되었다(수 20:7). 또한 그 후에 이스라엘 열 지파가 유다에게서 분리하여 여로보암을 이곳에서 왕으로 삼았으며(왕상 12:1-25), 후에 사마리아 지역의 수도가 되었다(요 4:5). 오늘날의 지명은 ‘나불루스’(Nabulus)이다.
믹므닷. ‘믹므다’로도 표기된다. 16:6 주석을 참조하라.
엔답부아. ‘답부아’(능금, 사과)로도 표기되는데, 특별히 ‘엔답부아’는 므낫세 지파에게 속한 곳임을 암시한다. 16:8 주석 참조.
벧 스안. ‘조용한 장소’, ‘안전한 집’이라는 뜻으로 야룻(Jalud) 계곡에 있는 성읍이며 중요한 요새이다. 이곳은 이스르엘 골짜기 계곡과 요단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성읍은 잇사갈 지파의 경내에 있었으나 므낫세 지파에게 분배된 곳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곳 거민들이 철 병거를 소유하고 있었으므로(16절), 이 성읍 서민들을 쫓아내지 못하였다. 이곳은 특히 길보아 전투에서 패한 후 사울의 시체가 이곳 성읍의 벽에 매어달린 곳으로 유명하다(삼상 31:10, 삼하 21:12). 그렇지만 훗날 정복되어 솔로몬의 12관장 가운데 한 사람인 바아나에 의해 관할받았다(왕상 4:12). 구약 시대에는 ‘벧산’, 또는 ‘벱산’으로 표기되기도 했으며(삼상 31:10-13, 삼하 21:12-14), 신약 시대에는 ‘스키토폴리스’(Scythopolis)라고 명명되었다. 오늘날의 지명은 ‘베이산’(Beisan)이다.
이블르암. 벧 스안, 다아낙, 돌, 므깃도 등의 도시와 함께 에스드렐론 평야와 이스르엘 계곡을 통과하는 지역에 위치해 있었는데, 가나안의 동과 서를 잇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지리적으로는 잇사갈과 아셀 지파의 경내에 속하지만 므낫세 지파에게 분배되었다. 그러나 이곳의 원주민들은 정복당하지 않고 계속 남아 있었다. 한편 이곳은 ‘빌르암’으로 불리기도 한다(대상 6:70). 이블르암에 있어서 특기할 만한 사건은 유다 왕 아하시야가 예후에 의해 부상을 입은 사건이다(왕하 9:27). 이곳은 현재의 ‘길벳 벨라메’(Khirbet Belameh) 지역으로 추정된다(Keil).
돌. 가이사랴에서 북쪽으로 약 12.8 km 지점의 갈멜 산 남쪽에 위치해 있다. 팔레스타인 해안을 따라 자주빛 물감의 원료가 되는 조개가 많았기 때문에 아주 고대로부터 페니키아인들이 이곳에 정착해 있었다. 오늘날 ‘톨투라’(Tortura)로 추정된다. 11:2주석을 참조하라.
엔돌. 시 83:9-10에 따르면 기손 시내 부근으로 다볼 산 남쪽 약 6.5 km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므깃도 전투지의 일부분이 되었으며, 또한 이곳에서 바락은 시스라와 야빈을 패퇴시켰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투가 일어나기 전에 사울 왕의 군대가 이곳 부근에 진을 치고 있었다(삼상 29:1). 당시 사울은 최후의 전황이 어찌될지 몰라 이곳 엔돌의 신접한 여인에게 도움을 구하기도 하였다(삼상 28:7). 오늘날 이곳은 ‘엔돌’(Endor)이란 곳으로, 여전히 그 이름이 남아 있다.
다아낙. 이스르엘 계곡 남쪽에 있으며 샤론 평야에서 내륙을 이어주는 해안 길인 ‘비아 마리스’(Via Maris)가 여기에 있다. 오늘날의 지명은 ‘타아낙’(Taanak)이다. 12:21 주석 참조.
므깃도. 애굽으로부터 다메섹으로 이어지는 주요 대상로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레윤’(Lejun)으로 추정된다. 12:21 주석 참조.
세 언덕 지역. 산지에 위치하고 있는 세 성읍 곧 엔돌, 다아낙, 므깃도를 가리킨다. 이에 비해 벧 스안, 이블르암, 돌은 평지에 위치하고 있었다(Fay, Lias).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 거주하였더니. 여기서 ‘결심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알’은 ‘적극적으로 일에 착수하다’, ‘감히 … 하다’의 뜻으로, 가나안인들이 필사적으로 그들의 땅을 빼앗기지 않고 지키려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므낫세 지파가 안일과 나태에 빠져있을 때 그들은 더욱 더 그들의 삶의 터전을 사수하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향후 올무와 덫에 걸릴 수 밖에 없었다(23:13).
큰 민족이 되었거늘. 여기서 ‘큰’은 수적인 많음 뿐만 아니라, 능력의 탁월함도 포함된 말이다. 따라서 요셉 자손, 곧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는 이스라엘 지파들 중 그 자부심이 컸음을 보여 준다. 이것은 후일 사사 시대에 기드온과 입다의 행동에 에브라임 지파가 당당히 항의하는 그 위세를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삿 8:1-3, 12:1-6). 결국 이러한 의식은 솔로몬 사후 남북 분열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에브라임 지파는 북 왕국 이스라엘 10지파의 주도 지파가 되었다(삼하 2:1-11, 19:41-43). 따라서 왕국 분열 시대에 여러 선지자들은 에브라임 지파를 북 왕국 이스라엘의 10지파와 종종 동일시하여 명명하기도 했다(사 7:2, 11:13, 렘 7:15, 31:9, 겔 37:16, 호 7:8 등).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여기서 요셉 자손이 기업 분배를 놓고 여호수아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불만의 내용은 자신들은 두 지파인데도(16:1 주석 참조) 왜 다른 한 지파와 동일하게 한 제비, 한 분깃의 기업만을 받게 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일견 그들의 이러한 불만은 그럴듯한 근거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불만은 지나친 욕심에서 기인하고 있음이 곧 드러나게 된다. 즉 모세 시대에 모압 평지에서 행한 제2차 인구 조사에 따르면, 므낫세 지파의 인구는 52,700명이었고, 에브라임 지파의 인구는 32,500명에 불과했다. 그중 므낫세 지파의 반은 요단 동편 땅에서 이미 넓은 기업을 분배받았으므로(13:29-31), 실제 요단 서편에서 분배받을 요셉 자손의 인구 수는 도합 60,0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이 숫자는 유다 지파의 76,500명, 단 지파의 64,400명, 잇사갈 지파의 64,300명, 심지어 스불론 지파의 60,500명에 비교해도 결코 많지 않은 숫자였다. 그러나 요셉 자손이 분배받은 땅의 넓이는 그들 지파들 보다도 훨씬 넓었다. 더구나 요셉 지파가 분배받은 땅은 요단 서편의 중심부로서 비록 산지가 있다 하나 그리 높지 않았으며, 땅은 가장 비옥한 양질의 옥토였다. 따라서 산술적 논리에 근거한 요셉 자손의 이러한 불만은 지나친 욕심에서 나온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Keil & Delitzsch, Vol. 2. p. 182-183). 한편 여기서 한 제비 한 분깃이라는 말은 ‘제비’(히, 고랄)를 한번 뽑아, 그 결과 측정되어 분배된 기업 곧 ‘분깃’(히, 헤벨)을 가리킨다.
에브라임 산지. 11:16, 21에 기록되어 있는 ‘이스라엘 산지’와 동일한 산지이다. 11:16 주석을 참조하라.
르바임 족속. 12:4 주석 참조.
개척하라. 18절에서 다시 한번 반복되는 이 말은 히브리어로 ‘베레타’인데, 그 뜻은 ‘나무를 자르다’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삼림을 개간하여 초지로 만들라’ 또는, ‘황무지를 개간하여 옥토를 만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벧 스안과 그 마을들. ‘벧 스안’에 대해서는 11절 주석을 참조하라. 그리고 ‘마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노트’는 직역하면 ‘딸들’(daughters)이란 뜻인데, 즉 이는 주요 성읍 주변에 형성된 요새화되지 않은 촌락을 가리킨다.
이스르엘 골짜기. 에스드렐론 평야로 알려지고 있는 이 골짜기는 오늘날에는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지만 당시에는 그곳 전체가 비옥하였다(Von Raumer). 위치상 동쪽으로는 길보아 산, 서쪽으로는 갈릴리 고지대, 남쪽으로는 갈멜 산지와 에브라임 산지로 이어지고 북쪽으로는 갈릴리에 미친다(Keil & Delitzsch).
철 병거가 있나이다. 당시 벧 스안에서 므깃도에 이르는 가나안 북부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가나안 족속들은 이미 철 병거를 갖고 있었다(11:4). 따라서 아직 청동기 문화권 속에서 살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위세에 눌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가나안 정복 전쟁을 통해 나타나신 바,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신앙으로 무장하였다면, 조금도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한편 여기서의 ‘철 병거’(iron chariots)는 바퀴에 날이 선 철제 제품의 철 병거는 아니다. 그러한 본격적인 철 병거는 고레스 시대 이후에 근동 지역에 도입되었기 때문이다(Wilkinson). 여기서는 단지 목재로 짜여진 전쟁용 병거에다 철을 몇 군데 덧입혀 씌운 것을 가리킨다.
Previou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