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브온. 9:3, 17 주석 참조.
예루살렘. 지중해에서 동쪽으로 약 53 km, 사해에서 서쪽으로 약 23 km 떨어진 서팔레스타인의 주요한 도로 교차점에 위치한 성읍으로, 구약시대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곳이다. 오래 전 아브라함이 살던 당시에는 ‘살렘’으로 불려졌으며(창 14:18), 사사 시대에는 ‘여부스’라고 불려졌다가(삿 19:10-11), 다윗 시대에 이르러 ‘다윗 성’으로 명명되면서(삼하 5:6-10)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었다. 그후 이 성읍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점령당했다가(B.C. 586년) 다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에 의해 재건되었다.
아도니세덱. ‘의(義)의 주(主)’라는 뜻으로, 이 명칭은 예루살렘 왕들에게 부여된 공식 칭호였다. 아브라함 당시에는 ‘의(義)의 왕(王)’이란 뜻의 ‘멜기세덱’으로 명명되기도 했다(창 14:18). 따라서 혹자는 여호수아 시대의 예루살렘 왕을 아브라함 시대의 왕인 멜기세덱의 후손으로 보기도 한다(Matthew Henry). 한편, 여부스 족속에 속하는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은 당시 남부 팔레스타인의 여러 왕들 중 가장 큰 세력으로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 이 말은 기브온이 강력한 왕정 체제를 갖춘 성이란 뜻이 아니다. 추측컨대 기브온은 장로 중심의 정치 체제를 갖춘 성읍인 듯하다(9:11). 그럼에도 본 절과 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은 기브온이 주변의 여러 성읍들 곧 그비라, 브에롯, 기럇여아림 등과 같은 성읍들에 대해 정치적 종주권을 행사한 왕 같은 성읍이었기 때문인 듯하다(9:17).
야르뭇. 현재의 엘류데로폴리스(Eleutheropolis)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약 15 km 지점에 있다. 가나안 정복 후에는 유다 지파에 할당되었으며(15:20-62), 바벨론 포로 후에는 유대인들이 이 성읍으로 돌아왔다(느 11:29). 오늘날의 명칭은 ‘얄무크’(Jarmuk)이다.
라기스.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남서쪽 약 48 km 지점에 있는 가사(Gaza)와의 중간 지점인 세렐라(Shephelah) 지방의 기슭 저지대에 위치한 성읍으로, 가나안 정복 후 유다 지파에게 분배된 곳이다(15:39). 솔로몬이 죽은 후 라기스는 르호보암에 의해 요새화 되었으며(대하 11:9). 유다 왕 아마샤는 음모자들이 그의 목숨을 노릴 때 이곳에 은신처를 구했으나 결국 추격을 받아 이 성읍에서 살해되었다(왕하 14:19, 대하 25:27). 그리고 B.C. 701년 히스기야 시대에는 앗수르 왕 산헤립에 의해 포위되기도 했다가(왕하 18:13-14), 마침내 B.C. 589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함락되었다(렘 34:7). 그러나 바벨론 포로 시대 이후에는 유대인들이 귀환하여 계속 거주하였다(느 11:30). 한편 고고학적 발굴 결과, 오늘날의 ‘움 라기스’(Um Lakis) 지역과 동일시된다(Robinson).
에글론. 라기스 동쪽 약 40분 거리의 위치에 있는 성읍이자, 가사로부터 예루살렘으로 통하는 요로 약 25 km 지점에 있는 성읍이다. 오늘날의 명칭은 ‘아월란’(Ajlan)으로 추정되는데(Keil, Lias). 가나안 정복 후에는 유다 지파에게 분배되었다(15:39).
우리가 기브온을 치자.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이스라엘보다 먼저 기브온을 공격하자고 제안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같은 가나안 족속으로서 동맹 관계를 맺어 공동의 적 이스라엘을 함께 격퇴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스라엘과 화친 조약을 맺은 데 대한 강한 배신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2) 기브온을 멸절시킴으로써 직접적으로는 제2의 기브온과 같은 성읍이 나오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 간접적으로는 이스라엘에게 타격을 주기 위함이다.
여러 주석가들은 이처럼 기브온이 다른 가나안의 여러 국가들에 의해 공격을 받는 사실을 두고 다음과 같이 영적 교훈을이끌어낸다. 즉 “사탄은 자기 수하에 있던 자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을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한다. 따라서 사탄은 예전처럼 예속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그를 방해하고 핍박한다”(Pulpit Commentary, Matthew Henry’s Commentary).
기브온이 … 화친하였음이니라. 아도니세덱이 주변 성읍들에게 원조 요청을 한 이유이다. 기브온 족속은 비록 속임수는 사용했을지라도 어쨌든 이스라엘 백성과 화친 조약을 공식 체결했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9장(특히 15절)에 기록되어 있다.
기브온에 대진하고 싸우니라. 여기서 ‘대진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나’는 ‘기울이다’, ‘야영하다’, ‘포위하다’, ‘방어하다’ 등의 뜻인데, 여기서는 ‘야영하다’(encamp)란 의미로 사용되었다(KJV, RSV). 그리고 ‘싸우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함은 크게 (1) 먹다, 탐식하다, (2) 싸우다, 전투하다 등 2가지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물론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당신의 종들. 기브온 족속들은 이스라엘과 화친 조약을 맺어 그들의 종이 되었다(9:23, 25). 따라서 그들은 바로 이 사실을 내세워 이스라엘에게 구원 요청을 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은 그들과 여호와의 이름으로 화친 조약을 맺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을 구원하여야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즉각 가나안 동맹국들을 치러 나선 것은 기브온 족속과의 화친 조약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차피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모든 족속들을 멸절시켜야 하는 지상 명령을 받고 있었다. 따라서 차제에 가나안 연합 세력을 격파함으로써, 가나안 남부 지역을 장악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급히 출격한 것이다.
돕기를 더디게 하지 마시고 속히 … 구하소서. 기브온 족속들의 이 구원 요청 속에는 사태의 긴박성이 잘 나타나 있다. 왕도(王都)와 같은 큰 성이요, 매우 강한 기브온 족속(2절)이 이와 같이 급하게 원조를 청한 것은 다섯 동맹국의 세력을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막아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산지에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왕들. 곧 3절과 5절에 기록되어 있는 예루살렘 왕을 비롯한 다섯 왕을 가리킨다. 실제 여부스 족속인 예루살렘 왕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왕들은 아모리 족속으로서, 그들의 주요 거주지는 가나안 산악 지대였다. 이는 해안 또는 평지에 사는 여타 가나안 족속들과는 뚜렷이 구분된다.
우리를 치나이다. 먼저 원군의 파병을 강력하게 호소했던 기브온 족속들은 이어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즉 그 이유는 가나안의 다섯 동맹국들이 그들을 침공하러 온다는 것이다. 이 말은 4절에 나타나 있는 아도니세덱의 말, 곧 ‘우리가 기브온을 치자’라는 말과 상응하고 있다.
길갈. 4:19, 9:6 주석 참조.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이 약속은 모든 전쟁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약속이다. 실로 이 약속을 받은 군대가 전쟁에서 패배한 적은 없다(창 14:20, 민 21:3, 34, 신 2:31, 36, 3:3, 수 6:2, 8:7).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니. 아이 성 전투에서는 매복 작전을 구사한 반면(8:3-9), 기브온 전투에서는 여호수아가 기습 작전을 감행하여 성공하였다. 가나안 동맹국들은 요단 강 부군의 길갈(9:6)에 진 치고 있는 여호수아의 군대가 그토록 빨리 습격해 올 줄은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바로 이 점을 역이용하여 그들을 초기에 제압하였다. 한편 여기서 ‘갑자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페타’는 원래 ‘눈을 깜박이다’라는 뜻으로, 여호수아의 기습 작전이 매우 신속하고 빈틈없이 진행되었음을 강조해 준다.
벧호론에 올라가는 비탈에서. ‘벧호론’은 예루살렘 북서쪽 약 16 km와 19.2 km에 위치해 있는 두 성읍의 이름으로, 이들 두 벧호론을 각각 ‘상(上) 벧호론’(Upper Beth-Horon)과 ‘하(下) 벧호론’(Lower Beth-Horon)이라고 구별하여 부른다. 그리고 상 하 벧호론 사이에는 약 3 km 걸친 가파른 바위 투성이의 비탈길이있다(Robinson). 지금도 이들 두 벧호론을 연결하는 로마 시대의 도로가 남아 있는데, 이것은 이들 두 성읍이 동쪽 기브온과 서쪽 아얄론 골짜기, 그리고 해안 평지로 이어지는 주요 간선 도로 상에 위치해 있었던 사실을 말해 준다. 한편 가나안 정복 후 이들 상 하 벧호론 성읍들은 베냐민 지파 지경과 에브라임 지파 지경의 경계상에 위치해 있었다. 그후 통일 왕국이 남북으로 분열되었을 때는 모두 북 왕국의 관할 하에 들어갔다. 오늘날에는 ‘상 벧호론’이 ‘베이트 우르 엘 포카’(Beit ur el Forka)로, ‘하 벧호론’이 ‘베이트 우르 엘 타하타’(Beit ur el Tachta)로 각각 불린다.
아세가. 아얄론 골짜기 남부의 견고한 성읍으로서, 지금의 텔 에즈 자카리에(Tell ez Zakariyer)를 가리킨다. 베들레헴 서쪽 27 km 지점에 위치한 이곳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곳으로, 블레셋과 이스라엘 간의 접전 지역이었다(삼상 17:1). 그리고 북 왕국에 반란이 일어나자 르호보암은 방책 성벽을 쌓아 이 성읍을 견고케 하였다(대하 11:9). 바벨론 군대의 공격 당시에는 최후까지 버티다가 결국 느부갓네살에 의해 함락당했다(렘 34:7).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은 이곳이 매우 중요한 군사 요충지였음을 시사한다. 한편, 바벨론 포로 귀환 후에는 다시 이곳에 사람들이 거주하였다(느 11:30).
막게다. ‘목자의 숙소’란 뜻을 지닌 ‘막게다’는 가나안 남부 평지에 위치한 주요 성읍이다. 욥바 남쪽 23 km 지점, 아세가 동북쪽 3.2 km 지점에 위치한 이곳은 오늘날의 ‘길벳엘 케이슘’(Khirbet el-Kheishum) 지역으로 추정되는데(Leon Wood), 성서 고고학자들은 이곳의 낡은 옛 성터 주변에서 큰 동굴을 발견하였다. 한편 가나안 정복 후 이곳은 유다 지파에게 할당되었다(15:41).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 주시던. 기브온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섯 동맹국을 기습 공격, 격퇴시키고 계속 추격하던 중 벧호론 비탈에서 하나님께서 도망치는 패잔병들을 우박으로 죽이시던 10-11절의 내용을 뜻한다.
태양아 … 머무르라. 이 말은 기브온 전투 중 낮이 연장되기를 바란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내용이다. 그 기도의 응답으로 태양이 머물렀는데, 이 사실을 두고 학자들은 다양한 해석을 시도하였다. 즉 (1) 단순히 여호수아가 자신의 군대에게 힘을 더해 달라고 호소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군대에게 힘을 주셔서 하루 온종일 싸워 이길 것을 반나절만에 승리케 하셨다는 사실을 시적(詩的)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2) 단순히 여호수아가 태양의 뜨거운 열기를 멈추게 해달하고 호소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잠시 구름으로 덮으셔서 여호수아 군대가 싸움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도와주셨을 뿐이다. (3) 이 기적은 실제 해는 졌지만 단순히 빛의 굴절 현상으로 인해 마치 해가 머문 것처럼 낮이 길어져 전쟁터를 환하게 비춘 사실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견해들은 성경의 이적을 단순히 이성으로 이해하려는 인본주의적 견해에 불과하다. 14절에 분명히 기록된 바 이 이적 사건의 ‘전무 후무성’(前無後無性)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전통적 견해를 따라 본 사건을 실제 해가 중천에 머문 초자연적 이적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Leon Wood, A Survey of Israel’s History).
달아 너도 … 그리할지어다. 본 절의 표현은 당시 태양과 달이 동시에 하늘에 떠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따라서 혹자는 ‘태양은 거의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달은 동편 하늘에서 막 떠오를 때’ 곧 석양 무렵으로 보기도 하나, 13절의 표현(‘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으로 미루어 볼 때 오히려 때는 아침 무렵으로 보인다. 실제 기브온은 동쪽이요, 아얄론 골짜기는 서쪽에 위치했는데, 대략 기브온에서 서쪽으로 북위 17도 가량 되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레온 우드(Leon Wood) 박사는 ‘때는 7월 경이요, 태양과 달의 위치는 달이 3/4 공전 때로, 곧 반달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A Survey of Israel’s History).
아얄론. 여리고와 지중해 사이에 있는 아얄론 평야를 굽어보고 있는 산위의 한 성읍으로서, 오늘날 얄로(Yalo)와 동일 지역으로 추정된다(Robinson, Van de Velde, Conder). 기브온 서쪽 약 4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 성읍은 주로 전쟁사의 무대로 등장하고 있으며, 가나안 토지 분배에서 단 지파에게 할당되었으나(19:42), 나중에 레위 지팡의 성읍으로 지정되었다(21:24). 후일 사울과 요나단이 이 성읍 근처에서 큰 승리를 거둔 적이 있으며(삼상 14:31), 분열 왕국시에는 유다에 속했다.
야살의 책. [히, 세펠 하야샬] ‘의로운 자의 책’이란 뜻으로, 이곳과 삼하 1:18에 언급되어 있으나 오늘날에는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이책의 기원은 알 수 없고 다만 정경 외에 이스라엘 역사에 관한 여러가지 민족적 자료들이 연대기를 따라 수록된 고대 수집 문서라고 볼 수 있다(Keil). 즉 성경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이 책은 이스라엘의 역사 초기로부터 시작된 구전이 아닌 기록된 수집물로서, 이스라엘 민족 역사상 위대한 인물이나 큰 사건을 노래한 시가를 모은 옛 민족적 시편이라고 할 수 있다(Goldschmidt). 민 21:14에 나오는 ‘여호와의 전쟁기’와 비교, 참조하라.
태양이 … 중천에 머물러서 … 아니하였느냐. 여기서 ‘중천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하치’는 ‘둘로 쪼개다’, ‘반으로 만들다’란 뜻의 ‘하아’에서 유래한 말로, 여기서는 태양이 하늘의 한 가운데 위치해 있었음을 뜻한다(KJV, RSV, NIV). 그리고 ‘종일토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욤 타밈’은 ‘완전한 하루 동안’을 뜻하는데, 영역본 KJV와 RSV는 ‘a whole day’, NIV는 ‘a full day’, LIving Bible은 ‘for almost twenty four hours’, 공동번역은 ‘하루를 꼬박’ 등으로 번역하였다.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여기서 ‘속히’(히, 아츠)란 말은 움직임의 동작을 뜻하는 말이고, ‘내려가다’(히, 보)란 말은 흔히 태양의 기울어짐과 관련해서 쓰이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태양이 머물렀다’란 말과 일견 모순되는 듯이 보인다. 왜냐하면 ‘머무름’은 곧 정지의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절의 표현은 상호 모순되지 아니한다. 즉 본 절의 표현은 과학적 서술이 아니라, 시적 묘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양자는 충분히 조화 가능하다. 곧 중천에 떠 있는 태양이 평소와는 달리 그 진행 속도가 반이나 느려져 12시간 이상 하늘에 더 지체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곧 머물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요, 아울러 속히 내려가지 아니한 것이다(Keil, L. Wood, Lias).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태양이 멈춘 일은 전무후무한 사건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카일(Keil)은 히스기야 왕 때에도 이 사건과 유사하게 해 그림자가 일영표 상에서 10도 물러간 사건(왕하 20:9-11)이 있었음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표현은 문자 그대로 이 사건의 기적과 유사한 기적이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 위대한 기적적 사건을 강조하는 표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왕하 18:5, 23:22, 25).
견고한 성. 곧 ‘요새화된 성’으로 (1) 높은 망대가 세워졌고 두꺼운 성벽으로 둘러싸였을뿐 아니라, (2) 전쟁을 치를 물자가 비치된 성읍을 지칭한다(Pulpit Commentary).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 일종의 격언적 표현으로, 출 11:7에 나타나 있는 ‘이스라엘에게는 개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않았다’라는 말과 유사한 표현이다. 곧 이는 ‘완전한 침묵’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명예롭게 하심으로 가나안 족속 중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비난이나 조소를 할 수 없었고, 또한 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가까이 와서 이 왕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 여호수아는 가나안 다섯 동맹군들을 거의 진멸한 후 다시 막게다 진영으로 돌아와 그들의 다섯 왕을 처형하도록 명령했다. 그런데 여기서 그들의 목을 발로 밟은 것은 그들에 대해서 ‘완전히 승리’했음을 상징하는 행위로서, 곧 땅의 모든 왕들을 두렵게 하사(시 76:12) 진흙을 밟듯이 밟으시는(사 41:25)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을 대행하는 것이다. 또한 이 사실은 종말론적으로는 사탄의 권세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와, 그분 안에서의 성도들의 승리를 미리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대적하는 땅의 모든 왕들을(2:2) 마침내 그의 발등상이 되게 하실 것이며(시 110:1, 빌 2:10, 히 2:8), 성도들 역시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탄의 세력을 발로 밟게 될 것이다(롬 16:20, Matthew Henry’s Commentary).
그들의 숨었던 굴 안에 … 던지고. 이처럼 가나안 다섯 왕들이 자신들의 피난처로 삼아 은신했던 동굴은 자신들의 무덤이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세상에 속한 것들을 자신의 안식처로 삼아 그곳에 안주하고 의지하는 자들은 결국 그 세상의 것들과 더불어 멸망당하고 만다는 사실이다. 한편 팔레스타인의 지표는 대개 석회암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자연 동굴이 많았다. 그리고 이 동굴들은 피난처(창 19:30, 삼상 13:6, 왕상 18:4)나 무덤(창 23:19, 요 11:38)으로 사용 되었다.
막게다. 10절 주석 참조.
칼날로 그 성읍과 왕을 쳐서. 신 13:15의 규례에 따른 것으로, 아이 성에서도 이와 같이 하였고(8:24-25), 남은 가나안의 여러 성에서도 이와 같이 시행하게 된다(30, 32, 35절).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이러한 표현은 립나(30절), 라기스(32절), 게셀(33절), 에글론(35절), 헤브론(37절), 드빌(39절) 등 가나안 남부의 모든 성읍의 점령 사건에 동일하게 나타나는데, 곧 여호수아는 가나안 거민들을 진멸하되, 철저하게 진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가나안 정복 전쟁시, 이스라엘 군대가 가나안의 왕들을 칼날로 쳐죽여 나무에 단다든지, 거민들을 남녀 노소 구별없이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다 죽이는 사실 자체를 두고 혹자들은 매우 잔인한 행위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행위는 단순한 침략 전쟁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을 참아왔던(창 15:16) 패역한 땅, 패역한 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대행하는 거룩한 전쟁이요, 이스라엘 군대는 그 심판을 차질없이 수행해야 하는 집행관들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가나안 정복 전쟁은 신약 시대의 성도들에게 사탄과 죄악을 이기되 철저히 이기고, 그 세력을 진멸하되 뿌리째 진멸해야 한다는 영적 교훈을 준다고 하겠다.
호람이 라기스를 도우려고. 라기스 정복과 관련하여 특징적인 사실은 게셀 왕 호람에 관한 기사이다. 본래 게셀은 여호수아 군대의 진행로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기스로부터 멀리 떨어진 게셀 왕 호람이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군대를 이끌고 라기스를 도우러 왔다가 도리어 멸망당한 기사가 본 절에 기록되어 있다. 아무튼 이 사건은 불의의 끈으로 맺어진 결과 악한 일에 동조하는 자는 결국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Matthew Henry).
그 속한 성읍들과 그 중의 모든 사람. 헤브론도 기브온과 마찬가지로 왕도(王都)였으므로(1절), 휘하에 여러 소성(小城)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분명 이들은 헤브론과 운명을 같이 하기 위해 연합했을 것이므로, 함께 진멸당했다.
네겝. 네겝(Negeb)지역을 위시하여 팔레스타인 남부를 형성하는 건조하고 광활한 사막 지대를 가리킨다.
평지. 네겝 지역보다 훨씬 비옥한고 아름다운 지대로서, 욥바로부터 가사까지 해안을 따라 길게 형성된 세펠라(Shephelah) 평원 지대를 가리킨다.
경사지. 유다의 여러 산들로부터 사해 쪽으로 시내, 언덕 등을 형성하면서 길게 기울어진 산록 지대를 가리킨다. 한편, ‘산지와 네겝과 평지와 경사지’는 이스라엘이 정복한 가나안 남부 지역의 지리적 특성을 모두 포괄하는 말이다.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 진멸하여. 가나안 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 명령을 그대로 실행한 결과이다(신 7:2, 20:16). 28절 주석 참조.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사까지. ‘가데스 바네아’는 시내 반도의 북쪽에 있는 오아시스 지역으로, 출애굽 후 정탐꾼 파송지로 유명하다(민 13:2, 26). 자세한 내용은 신 1:2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가사’(Gaza)는 예루살렘 남서 쪽 약 80 km, 지중해로부터는 약 5 km 지점에 위치한 고대 성읍으로서(창 10:19), 팔레스타인에서 애굽에 이르는 대로상에 위치한 주요 성읍이다. 분만 아니라 지중해로부터 아라비아에 이르는 대상로에 위치한 주요 무역 군사 도시이기도 하다. 가나안 정복당시 유다 지파에게 할당되었으나(수 11:22), 블레셋 족속으로 인해 완전히 점령치 못했다가 후일 솔로몬 시대에 가서야 정복되었다(왕상 4:24).
온 고센 땅을 기브온에 이르기까지. 여기서의 ‘고센’은 이스라엘 민족들이 거주했던 애굽의 고센(창 46:28, 47:6, 출 8:22, 9:26)이 아니라 여호수아에 의해 점령된 가나안 남부의 고센을 가리킨다. 오늘날 그 위치는 헤브론 남서쪽 19.2 km지점의 텔 엘 다히리에(Tell el-Dhahiryeh)로 추정된다.
기브온. 9:3, 17 주석 참조. 한편 본 절 중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사까지’는 가나안 남방으로부터 북서쪽 방면을, 그리고 ‘고센 땅에서 기브온에 이르기까지’는 가나안 남방으로부터 동북쪽 방면을 각각 언급한 것이다(K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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