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주석, 여호수아 0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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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 문구는 2절부터 전개되는 아이 성 공격이 실패한 원인에 대한 설명으로서, 곧 그 원인이 하나님께 ‘바친 물건’(히, 헤렘)으로 인한 범죄임을 밝혀주고 있다. 여리고 성은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가나안의 첫 열매로서(6:17), 그 바친 물건을 취하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화를 당하게 된다는 경고도 이미 주어져 있었다(6: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하나님의 엄한 경고를 무시한 것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한 패역한 범죄 행위였다. 여기서 ‘범죄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알’은 대체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반하는 범죄 행위를 뜻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Hamilton, Keil). 따라서 이 문구에서 ‘하나님’이란 말이 나오지 않아도 아간의 범죄가 곧 하나님께 대한 대신(對神) 범죄였음을 알게 해 준다(11, 20절, Woudstra).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기서는 아간의 범죄에 대해 일반적으로 언급되어 있으나, 구체적인 범죄 내용은 21절에 나타나 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은 그의 범죄를 보지 못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똑똑히 보셨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사람을 속일 수는 있지만 하나님은 결코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기억해야 한다(Matthew Henry).

바친 물건. [히, 헤렘] 6:17, 레 27:28 주석 참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여기서 ‘여호와의 진노’는 범죄한 아간 한 사람만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한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그 결과 아간의 범죄는 아이 성 정복에 실패를 가져오게 했고, 이스라엘 온 백성을 큰 비탄에 빠지게 하였다(4-5절). 한 사람 아간의 범죄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지만,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이 유기적 통일체임을 알면 쉽게 이해된다(Lias). 즉 이스라엘 민족은 순수한 ‘혈연 공동체’였을 뿐만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을 모시는 ‘언약 공동체’였고, 아간은 이 공동체의 일원이었다(11절, Maxwell, Goslinga). 따라서 아간 한 사람의 범죄는 곧 이스라엘 전체의 범죄인 것이다. 이는 마치 한 지체의 고통으로 온 몸 전체가 고통 받는 것과 같다(Keil). 이러한 예는 삼하 21:1-10에도 나타나있는데, 여기에는 다윗 시대에 있었던 삼 년 동안의 기근이 사울과 그의 집 때문이라고 설명되어 있다(Maxwell). 한편 여기서 ‘진노’라는 말은 ‘불붙는듯한 분노’를 뜻하는 말로(Luther), 사람에게도 적용되었지만(창 4:5, 삼하 12:5), 특별히 하나님께 적용되는 단어이다(민 11:1, 10, 22:22, 욥 19:11, 42:7, 슥 10:3, 합3:8). 하나님의 불타는 듯한 진노는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난다(롬 1:18, Fay, Woudstra).

 

7:2 여리고. 6:1 주석 참조.

벧엘. 예루살렘 북쪽 약 19 km 지점에 위치한 ‘벧엘’(‘하나님의 집’이란 뜻)은 팔레스타인 남북(南北) 대로의 경계를 이룸과 동시에 요단 건너편 서쪽에서 여리고를 지나 지중해에 이르는 동서 교통의 요충지였다. 따라서 이 성읍은 구약 성경에 65번이나 언급될 정도로 중요한 곳인데, 족장 시대 때에는 ‘루스’란 명칭으로 불리웠다(창 28:19). 가나안 정복 후 이곳은 베냐민 지파의 기업이 되었는데, 사사 시대에는 오랫동안 법궤가 안치되기도 했다(삿 20:26, 삼상 10:3). 사무엘의 활동 중심지이기도 했던 이곳은(삼상 7:16), 여로보암 당시에는 금송아지 제단이 세워져 우상 숭배를 한 곳으로 유명하기도 했다(왕상 12:28-13:5). 그후 바벨론 군대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고 후일 포로 귀환 후 베냐민 자손에 의해 재건되기도 했다. 오늘날 이곳은 ‘베이틴’(Beitin)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Robinson, Nablus).

벧아웬. ‘사악한 집’이란 뜻을 지닌 ‘벧아웬’은 ‘벧엘’ 동쪽 가까이에 위치한 성읍으로, 유명한 ‘벧엘’이 우상 숭배의 장소로 전락하자 이를 모멸하는 의미에서 반어적으로 주어진 명칭이다(호 4:15, 5:8, 10:5). 한편 삼상 13:5, 14:23의 내용을 살펴 보면, ‘벧아웬’은 ‘믹마스’ 동쪽 내지는 북쪽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Keil).

아이. ‘벧엘’ 남동쪽 약 3 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아이’는 전통적으로 현재의 ‘엣 텔’(et-Tell)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것은 ‘아이’의 뜻이 ‘돌 무더기’(heap of stones) 또는 ‘파괴의 무더기’(heap of ruins)란 뜻인데(8:28), 오늘날 ‘엣 텔’(et-Tell)의 뜻도 이와 같기 때문이다.

그 땅을 정탐하라. 가데스에서 모세가 처음 가나안에 정탐꾼을 파견했을 때, 여호수아는 자신이 직접 정탐꾼으로서 활약했었다. 그런데 모세와 마찬가지로 여호수아도 처음 여리고 성을 점령 할 때 먼저 정탐을 하였고(2장), 지금의 아이 성 점령을 위해서도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7:3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 치게 하소서. 아이 성의 주민은 12,000명이었다(8:25, Fay, Keil). 따라서 싸움에 출전할 수 있는 장정은 대략 3,500 - 4,000명 가량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탐꾼들이 아이 성이 여리고 성과는 달리 해발 800 m 가량의 산지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과 인근 벧엘의 군사들과 합동 작전을 펼 가능성이 있다는 점(8:17) 등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스라엘 군사 2,000 - 3,000 명 만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한 것은 분명 상대를 얕잡아 보고 이스라엘 군대의 힘만을 믿은 교만심의 발로였다(Matthew Henry, Calvin). 즉 최근의 요단 동편 아모리 두 왕의 진멸 사건(2:10), 요단 강 도하 사건(3장), 여리고 성 정복 사건(6장) 등 지금까지의 연전연승만을 믿은 지나친 자만심에서 나온 잘못된 보고였다. 물론 아이 성 전쟁 실패의 근본적 요인이 아간의 범죄 때문인 것은 사실이지만(1절), 이들의 자만심 또한 실패의 한 요인으로 분명 작용했을 것이다. 한편, 여기서 ‘치게 하소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카’는 ‘때리다’, ‘죽이다’란 뜻으로서, 종종 한번의 치명적인 타격으로 어떤 대상을 치거나 죽일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Wilson).

그들은 소수. 8:25에 따르면 아이 성 주민은 12,000명이었다. 그런데도 단순히 ‘소수’라고 평가한 것은 정탐을 성실하게 하지 않았거나 그 정도의 주민이 있음을 알고도 그들을 깔보고 보고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7:4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아간의 범죄(1절)와 백성들의 자만심(3절) 등으로 인해 아이 성의 1차 전투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군대와 함께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이스라엘 군대는 전사자만 남긴 채 비참하게 도망해야만 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삼상 17:47)임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했다.

 

7:5 삼십육 명쯤 쳐죽이고 … 쳤으므로. ‘쳐죽이고’와 ‘쳤으므로’의 기본형은 둘 다 ‘나카’인데, 이는 ‘치명적 타격’을 가리키는 말이다(3절). 이들 36 명의 이스라엘 용사는 지금까지의 모든 전쟁에서 기록된 이스라엘의 유일한 사상자로서 이들이 죽게된 것은 이스라엘의 자만심에 정당한 응보였지만(Calvin), 그 근본적 원인은 하나님께 ‘바친 물건’(6:17)을 범한 아간의 죄 때문이었다(1절, Dake).

스바림. ‘깨드리다’(break), ‘부수다’(crush)란 뜻을 지닌 ‘샤바르’에서 파생된 지명으로, 아마 아이 근처 산록의 채석장인 듯하다(Lias, Keil).

내려가는 비탈에서. 이 말은 아이 성이 높은 산지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실제로 고고학적 발굴 결과 아이 성은 해발 약 800 m 가량의 고산지에 건축된 견고한 성읍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한때는 이스라엘의 요단 강 도하 사건으로 가나안 모든 족속들의 마음이 녹았었는데(5:1), 이제는 그 반대로 아이 성 전쟁 실패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녹게 되었다. 사실 지금까지 승리만을 계속해 온 그들에게 이러한 비참한 패배는 큰 두려움과 당혹감을 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즉 실패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이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쉽게 당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더욱 두렵게 한 것은 36명의 죽음과 3,000 명의 패주가 아니라, 지금까지 도와주시던 하나님의 힘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그 두려운 사실이었다(Calvin).

 

7:6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유대인의 의복은 흔히 통으로 짠 것이어서 가슴 부분의 옷깃을 잡고 좌우로 당기면 찢어지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자신의 옷을 찢는 행위는 극도의 고통이나 번뇌 또는 슬픔에 사로잡혔을 때 취해지는 행동이었다(창 37:34, 민 14:6, 삼하 1:11, Knobel). 한편 여기서 여호수아는 전쟁의 패인을 숫적 열세라든가 작전 미숙 등 다른 곳에서 쉽게 찾을 수도 있었고, 아니면 이번 전투의 패배를 거울 삼아 더욱 병력을 증강하여 아이 성 군대에 곧장 반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이토록 고통스러워 하고 큰 슬픔에 빠진 이유는 전쟁의 승패를 떠나 하나님의 손길이 이제 이스라엘을 떠났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즉, 항상 승리하게 함으로써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실 것이라고 하셨던 하나님의 거듭된 약속(1:3-6)과는 달리 전쟁의 결과는 참담한 패배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약속과 결과가 일치하지 않을 때,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이제 이스라엘을 싫어하사 당신의 약속을 철회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전쟁에 실패하였다고 결론지을 수 밖에 없었다(Calvin).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땅에 엎드리는’ 행위는 5:14과 똑같이 겸손과 자기 비하의 행위이지만, 여기서는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어려움을 해결해 보려는 결단성까지 내포하고 있다(민 14:5, 20:6). 또한 ‘티끌을 뒤집어쓰고’는 직역하면 ‘머리에 흙을 올려 놓고’인데, 이는 자신의 가장 고귀한 부위인 모리에 가장 천한 땅의 티끌을 뒤집어 씀으로써 극도의 비천과 수모 및 굴욕 상태를 나타내는 행위였다(Lias). 따라서 이러한 행위는 주로 근친의 죽음이나 국가적 재난을 당했을 때 그 사실을 애도, 통곡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편 이런 뜻을 나타내는 행위에는 이밖에도 (1) 베옷을 입고 (2) 가슴을 치며 (3) 금식하며 (4) 머리를 밀거나 몸을베는 것 등이 있었는데(삼하 12:15-16, 렘 16:6-7, 욜 1:8-14, Maxwell), 이러한 풍습이 나중에는 외형적 격식으로 흐르게 되자, 선지자 요엘은 진정한 마음으로 애통하며 회개하라고 외치기도 했다(욜 2:13).

 

7:7 슬프도소이다 … 좋을 뻔하였나이다. 이 말은 마치 광야에서 애굽의 고기 가마를 그리워 했던 이스라엘 선조들의 탄식(출 14:11-12, 민 14:2-3)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여기 여호수아의 원망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거역하여 터뜨린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는 전혀 다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의 원망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린 패역과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아이 성 전투 패배 후 여호와의 궤 앞에서 털어놓은 여호수아의 원망은 기도로써 하나님과 영적 씨름을 하는 지도자의 고뇌와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Keil & Delitzsch, Vol. II. p. 77).

아모리 사람.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족속이었다. 따라서 흔히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 족속 전체를 대표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요단 저쪽. 즉 요단 동쪽, 트랜스요르단(Trans-jordan) 지역을 가리킨다. 민 32:19주석 참조.

 

7:8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이 질문은 이어 나오는 9절과 연결시켜 이해하여야 한다. 즉 여호와의 군대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대적들에게 패주한 것은 결국 여호와의 거룩하신 성호가 더럽혀진 결과 밖에는 되지 않는데, 그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라는 의미이다. 달리 말하면, 이스라엘이 대적 가나안 족속에게 패배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거나 다름없지 않느냐는 호소이다. 이처럼 여호수아는 지금 자신의 평판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대적 가나안 족속에게 멸시당하지는 않을까라는 바로 그 사실을 염려하고 있었던 것이다(Keil, Calvin). 한편 이러한 기도의 예는 일찍이 모세의 중보 기도 속에서도 잘 나타난 바 있었다(출 32:12, 민 14:15-16).

 

7:9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전능한 신 여호와게서 함께하심으로 연전 연승을 계속해 오고 있는 이스라엘 군대로 인하여 잔뜩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었던 가나안 족속들이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작은 아이 성의 군대에게 조차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고 심기일전하여 상호 동맹을 맺고 공격해 오면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은 커녕 자신들의 생명조차 보존할 수 없을 것임을 뜻하는 말이다(Calvin).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하나님께서는 노예 민족 이스라엘을 택하사 당신의 언약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 민족을 통해 열방 중에서 영광 받으시길 원하셨다. 그리고 실제로 출애굽 사건, 홍해 도하 사건, 아모리 족속 정벌 사건, 요단 도하 사건 및 최근의 여리고 성 정복 사건 등을 통해 그 거룩하신 이름이 열방 중에 널리 퍼져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아이 성 패전 사건은 이 모든 영광스런 사건에 찬물을 끼얹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으로, 그동안 열방 중에 널리 퍼진 여호와의 거룩하신 이름의 위엄이 일순간에 무너질 위기의 사건이었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현시점에서 모세의 노래(신 32:1-47) 속에서도 나타난 바, “내가 원수를 자극하여 그들의 원수가 잘못 생각할까 걱정하였으니 원수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수단이 높으며 여호와가 이 모든 것을 행함이 아니라 할까 염려함이라”(신 32:27)는 그 염려를 지적하면서 아이 성 패전 사건을 바로 여호와의 영광과 결부시켰다(Calvin).

 

7:10 일어나라. 히브리어 ‘쿰’은 ‘힘을 내라’, ‘담대하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삿 4:14, 사 60:1). 따라서 본 절은 여호와의 언약이나 신실성을 절대 의심치 말고, 아이 성 패배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여 다시는 그러한 일이 없도록 노력하라는 의미이다(Knobel, Keil).

 

7:11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본 절은 이스라엘이 하나의 유기적인 언약 공동체라는 차원에서 1절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범죄를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 다음 문구에서 1절에서는 설명되지 않은 범죄의 구체적인 내용이 지적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의 뜻을 거스르는 죄를 범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후 곧장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한 실패의 생활을 한 것도 바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죄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갈렙과 더불어 출애굽과 광야 생활을 경험한 유일한 생존자로서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아이 성 전쟁 실패의 원인도 바로 당신의 뜻을 거스른 죄에 있음을 깨우치고 있다.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하나님께 바친 물건을 취하면 화를 당할 것(신 7:26)이라는 금지 규정을 어긴 것을 말한다. 이것은 단순한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킬만한 신성 모독죄였다(Calvin).

바친 물건. 6:17, 레 27:28 주석 참조.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 두었느니라. 위 문구에 언급된 ‘범죄하다’, ‘언약을 어기다’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다. 한편 여기서 ‘가져가다’, ‘도둑질하다’, ‘속이다’, ‘두다’ 등의 동사가 히브리 성경 원어에서는 4개의 ‘뿐만 아니라’(히, 감)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는 그 범죄 행위가 얼마나 큰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심으로써 자칫 가볍게 생각할지도 모를 그러한 죄악의 극악성을 극명하게 나타내고자 하셨다(Calvin).

 

7:12 그들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여기 ‘바친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렘’은 ‘저주받은 것’을 뜻한다(6:17, 레 27:28). 따라서 본 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저주받아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었음을 의미한다(1절, 6:18).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은 반드시 파멸을 당해야 하는데도, 이스라엘이 이 진노의 대상이 된 것(바친 물건)을 훔쳤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또한 진노의 대상, 즉 바친 것이 될 수 밖에 없었다.

 

7:13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 이스라엘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었다(출 19:6).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기대할 때 그들은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거룩하게 하여야 했다. 따라서 그들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고자 했을 때(출 19:10), 요단 강 도하를 목전에 두었을 때(3:5) 등에서도 먼저 거룩하게 될 것을 지시 받았다. 그러므로 지금 아이 성 패전의 원인인 ‘바친 물건’을 범한 자를 가려내고자 하는 여기서도 성결케 될 것을 명령받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께 율법의 심판을 받을 때이기 때문이다(Matthew Henry). 동시에 이 명령은, 범죄자는 빨리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자복하라는 촉구 명령이기도 했다(Calvin).

바친 물건. 6:17, 레 27:28 주석 참조.

 

7:14 지파 … 족속 … 가족 … 남자대로. ‘지파’, ‘족속’, ‘가족’, ‘남자’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성하고 있는 네 가지 기본 단위이다(Keil). 그런데 여기서 ‘지파 ‘(히, 쉐베트)는 이스라엘 12 지파를 가리킨다. 그리고 ‘족속’(히, 미쉬파하)은 여러 가족들이 모인 혈연 집단을 가리키며, ‘가족’(히, 바이트)은 아버지와 아들을 주요 구성원으로 하는 제1세대의 집안을 가리킨다. 그리고 ‘남자’(히, 게베르)는 ‘강한’(strong)이란 뜻의 ‘가바르’에서 파생된 말로, 직역하면 ‘용사’란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싸움에 출전할 만한 나이인 20세 이상의 성인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다(민 1:3).

가까이 나아오라. 하나님 앞으로, 다시 말하면 ‘여호와의 성소 앞에 나아오라’ 는 뜻이다(Keil).

여호와께 뽑히는. 여기서 ‘뽑히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카드’에는 ‘잡다’, ‘선택하다’란 뜻이 있는데, 삼상 14:41-42에 따르면 이 낱말은 제비를 뽑아 사람을 선택할 때 사용되었다. 특히 이 제비뽑기는 목격자가 없어 범죄자가 누군지 모를 경우에 흔히 사용되었다(욘 1:7, 잠 18:18). 선지자가 활발히 활동하기 이전 시대에 이 제비뽑기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나타내는 일종의 계시도구로 사용하셨고, 또한 당시 백성들은 그 결과가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을 확신하였다(잠 16:33). 한편 제비가 어떠한 방법으로 뽑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추측컨데(18:6, 10-11, 19:1), 작은 판(tablet)이나 그릇을 사용하여 그 속에 이름이 적혀 있는 제비(lot)를 뽑은 것 같다(Keil & Delizsch, Vol. II. p. 80). 그리고 ‘제비’(히, 고랄)란 말이 ‘작은 돌’ 또는 ‘자갈’을 지칭하는 단어인 만큼, 그 모양은 매끄러운 작은 돌처럼 생겼던 듯하다(Lange).

 

7:15 바친 물건. 히브리어로 ‘헤렘’인데, 이는 곧 하나님께 ‘저주 받은 물건’으로서 결코 인간이 소유할 수 없었고, 온전히 죽이거나 불태워 하나님께 바쳐져야만 했다(6:17, 레 27:28).

뽑힌 자를 불사르되. 25절에 따르면 산 채로 불사르지 않고 먼저 돌로 쳐 죽인 후에, 그 시체를 불로 태우는 것을 가리킨다(Fay). 특히 시신을 매우 중히 여겼던 고대 사회에서 범죄자에 대한 이와 같은 화형은 극한적인 형벌로 간주되었다(Keil). 모세 율법은 아내와 장모를 함께 취한 자는 그들과 함께 불사르라고 하였고(레 20:14), 제사장의 딸이 행음을 하면 불에 태워 죽이라고 하였다(레 21:9). 한편 바친 물건을 훔친 자에게 이처럼 중한 형벌이 가해진 것은 ‘바친 물건’, 곧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어 저주받아야 할 물건을 자신이 소유함으로써 물건과 더불어그 물건을 훔친 자 역시 하나님의 불타는 진노를 면할 길 없었기 때문이다. 이울러 그 범죄 행위가 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 전체를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와 그의 모든 소유를 그리하라. 24절을 통해 볼 때 여기서 ‘그의 모든 소유’는 ‘은과 외투와 금덩이와 그 아들들과 딸들과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장막과 무릇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가리키며, ‘그리하라’는 말은 ‘불태우라’는 뜻이다.

망령된 일. [히, 네발라] 이는 ‘멍청한’(stupid), ‘사악한’(wicked)이란 뜻의 ‘나발’에서 파생된 말로, 곧 ‘매우 어리석고도 사악한 범죄 행위’를 가리킨다. 특히 성경적 의미로는 언약 백성으로서의 영광과 명예 및 자부심을 짓밟는 범죄 행위를 가리킨다. 한편, 같은 단어가 창 34:7에서는 ‘부끄러운 일’로 번역되었다.

 

7:16 16-18절. 여기에는 제비뽑기를 통해 범죄자가 색출되는 장면이 나타나 있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지파: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유다 지파가 뽑힘.
족속: 유다 지파 중에서 세라 족속이 뽑힘.
가족: 세라 족속 중에서 삽디 가족이 뽑힘.
남자: 삽디 가족 중에서 아간이 뽑힘.

유다 지파. 유다 지파는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서도 지도적 위치에 있었던 지파로, 그 수효도 많았을 뿐 아니라(민 1:27) 세력도 강하여 항상 선봉에서 활약하던 지파였다(민 2:9). 그런데 바로 이 유다 지파가 첫 번째 제비뽑기에 뽑혔다. 그러므로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유다 지파의 모든 용사들이 분노의 칼을 뽑아든 채 유다 지파를 더럽힌 그 범죄자를 자신들의 손으로 처단함으로써 유다 지파의 명예를 회복할 때까지는 결코 칼을 칼집에 꽃지 않겠노라고 맹세하였다고 한다(Matthew Henry’s Commentary).

 

7:17 세라 족속의 각 남자. 여기서 ‘각 남자’는 각 ‘족속’(히, 미쉬파하)을 대표하여 제비뽑은 각 족속의 족장(族長)들을 가리킨다(Keil).

 

7:18 아간이 뽑혔더라.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성결케 하도록 하루의 여유를 주고(13절), 그 다음날 지파 → 족속 → 가족 → 남자에 이르는 제비뽑기를 순서대로 한 것은 달리 생각하면 범죄자에게 자발적인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아간의 무서운 무감각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가 깨닫는 바는 범죄자가 멸망당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긍휼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패역무도함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7:19 내 아들아 청하노니. 여호수아가 아간을 ‘내 아들아’라고 부른 것은 유대 랍비 및 몇몇 학자들의 상상처럼 비웃거나 간사하게 위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Fay), 긍휼을 내포한 진실된 부성애의 입장에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Calvin, Keil).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실시된 제비 뽑기에 의해 색출된 아간이 자신의 모든 범죄 사실을 솔직히 자백할 경우, 나머지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전지 전능성에 영광을 돌릴 것이었다. 그러나 아간이 자신의 범죄 사실을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할 경우 아간은 아간대로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몰아 세우는 참람한 죄악을 더할 뿐더러,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비뽑기의 결과에 의혹을 품게 됨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당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었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아간에게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공의와 전지성에 순복할 것을 종용한 것이다.

자복하고.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기본 동사 ‘야다’는 ‘고백하다’란 뜻으로, 개인적으로든지 국가적으로든지 하나님께 대한 죄의 시인 혹은 고백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시 32:5, Alexander). 여기서는 뒤따라 나오는 동사 ‘알게 하다’와 ‘숨기지 말라’가 그 의미를 더욱 강조해 주고 있다.

 

7:20 이러이러하게 행하였나이다. ‘이러이러하게’(히, 카조트 웨 카조트)라는 말은 ‘이처럼 이처럼’(thus and thus)을 뜻하는 말로서, 곧 21절의 내용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 아간의 이러한 죄의 자복은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가 아니라 제비가 뽑히자 어쩔 수 없이 죄를 시인한 것에 불과하다(Calvin).

 

7:21 노략한 물건. ‘강제로 빼앗다’, ‘상대방을 속이다’, ‘이익을 얻다’란 뜻의 동사 ‘샬랄’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여기서는 여리고 성에서 탈취한 전리품을 뜻한다.

시날 산의 … 외투 한 벌. 여기서 ‘시날’은 ‘두 강 사이의 땅’이란 뜻인데, 두 강은 곧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말한다. 따라서 ‘시날’ 땅은, 일찍이 니므롯 왕국이 세워지기도 했으며(창 10:10), 바벨 탑이 건축되었던(창 11:2) ‘바벨론’ 지역을 가리킨다. 따라서 여기 ‘외투’(히, 아데레트)는 갖가지 무늬가 아름답게 수놓아진 값지고 귀할 뿐 아니라 예술적인 베벨론산 외투를 가리킨다(Keil, Lias, Lange). 당시 이 바벨론산 외투는 왕족이나 방백들, 또는 부자들만이 입을 수 있었던 귀한 것으로 매우 값진 교역 품목이었다.

세겔. ‘세겔’은 무게를 축정하는 히브리인들의 기본 단위로 1세겔은 약 11.4 g이었다.

보고 탐내어 가졌나이다. ‘보다’, ‘탐내다’, ‘가지다’란 말에 각각 ‘라아’, ‘하마드’, ‘라카’라는 동사가 사용되었는 데, 이는 창 3:6에 나오는 ‘인간의 타락’ 기사와 흡사하다. 즉 하와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았을 때에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 탐스럽기도’ 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 열매를 따먹었다. 이러한 사실은, 모든 죄는 먼저 보는 것에서 시작되어 보이지 않는 탐심이 생기게 되고, 결국은 사망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교훈을 준다(약 1:15, 요일 2:16).

 

7:22 이에 … 보내매 … 달려가 본즉. 여호수아는 사신을 급히 아간의 장막으로 보냈고, 또한 사신은 급히 달려가 그 ‘바친 물건’을 찾았다. 이처럼 그들이 모두 신속히 행동한 이유는 빨리 그 바친 물건들을 찾아 하나님 앞에서 제거함으로써 이스라엘 공동체 위에 드리워진 하나님의 저주가 거두어 지기를 간절히 바랬기 때문이다(Calvin, Matthew Henry).

 

7:23 여호와 앞에 쏟아 놓으니라. 보다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성막 앞에’ 가져다 놓은 것을 뜻한다(Keil). 그러므로 이는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할 물건들이 이제 하나님께 다시 돌아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Goslinga, Bright).

 

7:24 아간을 잡고 … 그의 아들들과 딸들과 … 그에게 속한 모든 것. 아간의 범죄 때문에 ‘그에게 속한 모든 것’(가축, 장막, 재산 등), 특히 ‘아간의 자녀들’까지 함께 처형을 당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다. 왜냐하면 모세 율법 신 24:16의 규정에 의하면, 아비의 죄를 그 자식들에게까지 전가시켜서는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혹자들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제시한다. 즉 (1) 당시 극도로 흥분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분별한 군중 심리에 의해 그의 자녀들이 억울하게 희생되었다는 견해, (2) 아간의 자녀들은 실제 처형을 당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아비에게 가해지는 형벌을 보고 심각한 경고를 받도록 골짜기까지 함께 끌려갔다는 견해(Grotius) 등이다. 그러나 위의 두 견해는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특히 두 번째 견해는 문법적으로도 지지를 받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견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3) 아간의 범죄에 그의 가족이 동참했거나 아니면 묵인했을 것이라는 견해(Keil, Matthew Henry)로서, 즉 아간이 ‘바친 물건’을 장막 안에 감추는 과정에서, 그 무서운 범죄 사실을 알고도 동조, 묵인 또는 방조한 그의 가족 또한 아간 못지 않은 범법자였다는 견해이다. 또한 (4) 신 24:16의 규정을 초월하여, 아간의 가족에게는 여리고 거민들에게 적용된 ‘헤렘’(‘바친 것’이란 뜻)의 원리가 적용되었다는 견해이다(Calvin). 다시 말하면 우상 숭배에 빠진 성읍(신 13:15-17)이나 가나안 족속들의 경우처럼, 아간 및 그 가족은 그 가증한 죄악으로 말미암아 ‘오직 모두 진멸함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바친 것’이 되었다는 견해이다(12절). 즉 아간은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취함으로써 아간 자신 및 그 가족이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 되었다는 견해이다.

아골 골짜기. 여리고 근방에 있는 골짜기로 후일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지경이 되었다(15:7). 한편 여기서 ‘아골’은 ‘괴롭다’, ‘슬프다’란 뜻의 동사 ‘아칼’에서 파생된 명사로, 곧 ‘괴로움’, ‘슬픔’, ‘고통’이란 뜻이다. 따라서 ‘아골 골짜기’란 ‘괴로움의 골짜기’ 또는 ‘고통의 골짜기’란 뜻으로, 이는 25절로부터 유래되었는 바,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간의 죄와 그에 해당하는 무서운 형벌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후세에 경고로 삼기 위해 명명한 명칭이다. 이처럼 본래 아골 골짜기는 ‘심판’과 ‘고통’ 및 ‘저주’를 상징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후일 선지자들의 시대에는 종말론쪽으로 이스라엘의 ‘치유’와 ‘회복’을 상징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사 65:10, 호 2:15). 한편 아간의 처형 장소로 이처럼 이스라엘 진영 바깥을 택한 이유는 가증한 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피로 인해 이스라엘 진영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Calvin, Matthew Henry). 즉 이스라엘 언약 공동체를 부패시킨 암적 요인을 ‘멀리 그리고 단호히’ 제거시켜 이스라엘 진영을 거룩히 보존하기 위함이었다.

 

7:25 괴롭게 하였느냐 … 괴롭게 하시리라. 여호수아가 절망에 빠진 아간에게 이런 말을 한 것은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잔인한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를 타락시키고 어지럽히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보여주려고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향해 말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시작될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그 전쟁의 언약적 의의보다는 전쟁의 노획물에 더 마음을 쓰고, 급기야는 아간처럼 탐욕으로 기울어질 우려가 나머지 군사들에게도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돌로 치고 … 불사르고. 돌로 쳐죽이는 처형법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극악한 죄에 대해 시행하던 일종의 공개 처형법으로서, 우상 숭배자(레 20:2-5), 신성 모독자(레 24:15, 16), 부모에게 대적하는 패륜아(신 21:18-21), 안식일을 범한 자(민 15:32-36) 등에 적용되었다. 이 처형법의 시행 목적은 (1) 그 범죄에 대하여 경각심을 일깨워 주고 (2) 공동체의 연대 책임 의식을 강화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또한 ‘불사르고’에 해당하는 ‘사라프’는 ‘시체를 태워 없애다’란 강렬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모세 율법의 규정상 이러한 화형은 아내와 장모를 아울러 취하는 자(레20:14)와 제사장의 딸로서 행음한 자(레 21:9)에게 적용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아간 및 그의 가족들도 이러한 끔찍한 형벌을 당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단순한 탐욕의 죄를 넘어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범하는 신성 모독죄를 범했기 때문이요, 그 범죄의 결과로 이스라엘 전체를 비탄 속에 빠뜨린 공동체 파괴죄를 범했기 때문이다. 한편 신약에서도 이 아간의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행 5:1-11에 기록되어 있다. 즉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께 바쳐야 할 땅을 판 값의 일부를 감추었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Cake). 이렇듯 신구약에 각기 기록된 이 두 사건은 새로운 국가 또는 새로운 교회의 시작에 있어서 언약 백성의 성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7:26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미래 세대에 교훈 및 경고를 주기 위하여 처형당한 시체 위에 돌을 던져 돌 무더기를 쌓은 것을 의미한다(8:29, 삼하 18:17, Keil). 즉 이와 같이 한 것은 이스라엘 후손들에게 아간의 형벌 및 수치를 기념으로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이러한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하려는 교육적 목적 때문이었다(Campbell).

오늘까지. 곧 여호수아서에 본 장면이 기록될 당시까지를 의미한다.

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여기서 ‘맹렬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진노하다의 기본형과 같은 ‘하라’이다(1절). 그리고 ‘분노’에 해당하는 ‘아프’는 ‘그 코로 숨쉬다’라는 뜻의 ‘아나프’에서 파생한 명사인데, 성경에서 ‘콧김’은 종종 하나님의 능력이나 진노 등을 의미한다(출 15:8, 삼하 22:16, 욥 4:9). 한편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것은 아간의 죄 때문이었다(1절). 그런데 이제 아간이 정죄를 당해 죽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결케 되었고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가 충족되었으니 그 진노가 그친 것은 당연하다(Dake).

아골 골짜기. 24절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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