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기서는 아간의 범죄에 대해 일반적으로 언급되어 있으나, 구체적인 범죄 내용은 21절에 나타나 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은 그의 범죄를 보지 못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똑똑히 보셨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사람을 속일 수는 있지만 하나님은 결코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기억해야 한다(Matthew Henry).
바친 물건. [히, 헤렘] 6:17, 레 27:28 주석 참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여기서 ‘여호와의 진노’는 범죄한 아간 한 사람만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한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그 결과 아간의 범죄는 아이 성 정복에 실패를 가져오게 했고, 이스라엘 온 백성을 큰 비탄에 빠지게 하였다(4-5절). 한 사람 아간의 범죄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지만,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이 유기적 통일체임을 알면 쉽게 이해된다(Lias). 즉 이스라엘 민족은 순수한 ‘혈연 공동체’였을 뿐만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을 모시는 ‘언약 공동체’였고, 아간은 이 공동체의 일원이었다(11절, Maxwell, Goslinga). 따라서 아간 한 사람의 범죄는 곧 이스라엘 전체의 범죄인 것이다. 이는 마치 한 지체의 고통으로 온 몸 전체가 고통 받는 것과 같다(Keil). 이러한 예는 삼하 21:1-10에도 나타나있는데, 여기에는 다윗 시대에 있었던 삼 년 동안의 기근이 사울과 그의 집 때문이라고 설명되어 있다(Maxwell). 한편 여기서 ‘진노’라는 말은 ‘불붙는듯한 분노’를 뜻하는 말로(Luther), 사람에게도 적용되었지만(창 4:5, 삼하 12:5), 특별히 하나님께 적용되는 단어이다(민 11:1, 10, 22:22, 욥 19:11, 42:7, 슥 10:3, 합3:8). 하나님의 불타는 듯한 진노는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난다(롬 1:18, Fay, Woudstra).
벧엘. 예루살렘 북쪽 약 19 km 지점에 위치한 ‘벧엘’(‘하나님의 집’이란 뜻)은 팔레스타인 남북(南北) 대로의 경계를 이룸과 동시에 요단 건너편 서쪽에서 여리고를 지나 지중해에 이르는 동서 교통의 요충지였다. 따라서 이 성읍은 구약 성경에 65번이나 언급될 정도로 중요한 곳인데, 족장 시대 때에는 ‘루스’란 명칭으로 불리웠다(창 28:19). 가나안 정복 후 이곳은 베냐민 지파의 기업이 되었는데, 사사 시대에는 오랫동안 법궤가 안치되기도 했다(삿 20:26, 삼상 10:3). 사무엘의 활동 중심지이기도 했던 이곳은(삼상 7:16), 여로보암 당시에는 금송아지 제단이 세워져 우상 숭배를 한 곳으로 유명하기도 했다(왕상 12:28-13:5). 그후 바벨론 군대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고 후일 포로 귀환 후 베냐민 자손에 의해 재건되기도 했다. 오늘날 이곳은 ‘베이틴’(Beitin)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Robinson, Nablus).
벧아웬. ‘사악한 집’이란 뜻을 지닌 ‘벧아웬’은 ‘벧엘’ 동쪽 가까이에 위치한 성읍으로, 유명한 ‘벧엘’이 우상 숭배의 장소로 전락하자 이를 모멸하는 의미에서 반어적으로 주어진 명칭이다(호 4:15, 5:8, 10:5). 한편 삼상 13:5, 14:23의 내용을 살펴 보면, ‘벧아웬’은 ‘믹마스’ 동쪽 내지는 북쪽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Keil).
아이. ‘벧엘’ 남동쪽 약 3 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아이’는 전통적으로 현재의 ‘엣 텔’(et-Tell)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것은 ‘아이’의 뜻이 ‘돌 무더기’(heap of stones) 또는 ‘파괴의 무더기’(heap of ruins)란 뜻인데(8:28), 오늘날 ‘엣 텔’(et-Tell)의 뜻도 이와 같기 때문이다.
그 땅을 정탐하라. 가데스에서 모세가 처음 가나안에 정탐꾼을 파견했을 때, 여호수아는 자신이 직접 정탐꾼으로서 활약했었다. 그런데 모세와 마찬가지로 여호수아도 처음 여리고 성을 점령 할 때 먼저 정탐을 하였고(2장), 지금의 아이 성 점령을 위해서도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소수. 8:25에 따르면 아이 성 주민은 12,000명이었다. 그런데도 단순히 ‘소수’라고 평가한 것은 정탐을 성실하게 하지 않았거나 그 정도의 주민이 있음을 알고도 그들을 깔보고 보고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스바림. ‘깨드리다’(break), ‘부수다’(crush)란 뜻을 지닌 ‘샤바르’에서 파생된 지명으로, 아마 아이 근처 산록의 채석장인 듯하다(Lias, Keil).
내려가는 비탈에서. 이 말은 아이 성이 높은 산지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실제로 고고학적 발굴 결과 아이 성은 해발 약 800 m 가량의 고산지에 건축된 견고한 성읍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한때는 이스라엘의 요단 강 도하 사건으로 가나안 모든 족속들의 마음이 녹았었는데(5:1), 이제는 그 반대로 아이 성 전쟁 실패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녹게 되었다. 사실 지금까지 승리만을 계속해 온 그들에게 이러한 비참한 패배는 큰 두려움과 당혹감을 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즉 실패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이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쉽게 당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더욱 두렵게 한 것은 36명의 죽음과 3,000 명의 패주가 아니라, 지금까지 도와주시던 하나님의 힘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그 두려운 사실이었다(Calvin).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땅에 엎드리는’ 행위는 5:14과 똑같이 겸손과 자기 비하의 행위이지만, 여기서는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어려움을 해결해 보려는 결단성까지 내포하고 있다(민 14:5, 20:6). 또한 ‘티끌을 뒤집어쓰고’는 직역하면 ‘머리에 흙을 올려 놓고’인데, 이는 자신의 가장 고귀한 부위인 모리에 가장 천한 땅의 티끌을 뒤집어 씀으로써 극도의 비천과 수모 및 굴욕 상태를 나타내는 행위였다(Lias). 따라서 이러한 행위는 주로 근친의 죽음이나 국가적 재난을 당했을 때 그 사실을 애도, 통곡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편 이런 뜻을 나타내는 행위에는 이밖에도 (1) 베옷을 입고 (2) 가슴을 치며 (3) 금식하며 (4) 머리를 밀거나 몸을베는 것 등이 있었는데(삼하 12:15-16, 렘 16:6-7, 욜 1:8-14, Maxwell), 이러한 풍습이 나중에는 외형적 격식으로 흐르게 되자, 선지자 요엘은 진정한 마음으로 애통하며 회개하라고 외치기도 했다(욜 2:13).
아모리 사람.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족속이었다. 따라서 흔히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 족속 전체를 대표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요단 저쪽. 즉 요단 동쪽, 트랜스요르단(Trans-jordan) 지역을 가리킨다. 민 32:19주석 참조.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하나님께서는 노예 민족 이스라엘을 택하사 당신의 언약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 민족을 통해 열방 중에서 영광 받으시길 원하셨다. 그리고 실제로 출애굽 사건, 홍해 도하 사건, 아모리 족속 정벌 사건, 요단 도하 사건 및 최근의 여리고 성 정복 사건 등을 통해 그 거룩하신 이름이 열방 중에 널리 퍼져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아이 성 패전 사건은 이 모든 영광스런 사건에 찬물을 끼얹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으로, 그동안 열방 중에 널리 퍼진 여호와의 거룩하신 이름의 위엄이 일순간에 무너질 위기의 사건이었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현시점에서 모세의 노래(신 32:1-47) 속에서도 나타난 바, “내가 원수를 자극하여 그들의 원수가 잘못 생각할까 걱정하였으니 원수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수단이 높으며 여호와가 이 모든 것을 행함이 아니라 할까 염려함이라”(신 32:27)는 그 염려를 지적하면서 아이 성 패전 사건을 바로 여호와의 영광과 결부시켰다(Calvin).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하나님께 바친 물건을 취하면 화를 당할 것(신 7:26)이라는 금지 규정을 어긴 것을 말한다. 이것은 단순한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킬만한 신성 모독죄였다(Calvin).
바친 물건. 6:17, 레 27:28 주석 참조.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 두었느니라. 위 문구에 언급된 ‘범죄하다’, ‘언약을 어기다’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다. 한편 여기서 ‘가져가다’, ‘도둑질하다’, ‘속이다’, ‘두다’ 등의 동사가 히브리 성경 원어에서는 4개의 ‘뿐만 아니라’(히, 감)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는 그 범죄 행위가 얼마나 큰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심으로써 자칫 가볍게 생각할지도 모를 그러한 죄악의 극악성을 극명하게 나타내고자 하셨다(Calvin).
바친 물건. 6:17, 레 27:28 주석 참조.
가까이 나아오라. 하나님 앞으로, 다시 말하면 ‘여호와의 성소 앞에 나아오라’ 는 뜻이다(Keil).
여호와께 뽑히는. 여기서 ‘뽑히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카드’에는 ‘잡다’, ‘선택하다’란 뜻이 있는데, 삼상 14:41-42에 따르면 이 낱말은 제비를 뽑아 사람을 선택할 때 사용되었다. 특히 이 제비뽑기는 목격자가 없어 범죄자가 누군지 모를 경우에 흔히 사용되었다(욘 1:7, 잠 18:18). 선지자가 활발히 활동하기 이전 시대에 이 제비뽑기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나타내는 일종의 계시도구로 사용하셨고, 또한 당시 백성들은 그 결과가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을 확신하였다(잠 16:33). 한편 제비가 어떠한 방법으로 뽑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추측컨데(18:6, 10-11, 19:1), 작은 판(tablet)이나 그릇을 사용하여 그 속에 이름이 적혀 있는 제비(lot)를 뽑은 것 같다(Keil & Delizsch, Vol. II. p. 80). 그리고 ‘제비’(히, 고랄)란 말이 ‘작은 돌’ 또는 ‘자갈’을 지칭하는 단어인 만큼, 그 모양은 매끄러운 작은 돌처럼 생겼던 듯하다(Lange).
뽑힌 자를 불사르되. 25절에 따르면 산 채로 불사르지 않고 먼저 돌로 쳐 죽인 후에, 그 시체를 불로 태우는 것을 가리킨다(Fay). 특히 시신을 매우 중히 여겼던 고대 사회에서 범죄자에 대한 이와 같은 화형은 극한적인 형벌로 간주되었다(Keil). 모세 율법은 아내와 장모를 함께 취한 자는 그들과 함께 불사르라고 하였고(레 20:14), 제사장의 딸이 행음을 하면 불에 태워 죽이라고 하였다(레 21:9). 한편 바친 물건을 훔친 자에게 이처럼 중한 형벌이 가해진 것은 ‘바친 물건’, 곧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어 저주받아야 할 물건을 자신이 소유함으로써 물건과 더불어그 물건을 훔친 자 역시 하나님의 불타는 진노를 면할 길 없었기 때문이다. 이울러 그 범죄 행위가 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 전체를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와 그의 모든 소유를 그리하라. 24절을 통해 볼 때 여기서 ‘그의 모든 소유’는 ‘은과 외투와 금덩이와 그 아들들과 딸들과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장막과 무릇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가리키며, ‘그리하라’는 말은 ‘불태우라’는 뜻이다.
망령된 일. [히, 네발라] 이는 ‘멍청한’(stupid), ‘사악한’(wicked)이란 뜻의 ‘나발’에서 파생된 말로, 곧 ‘매우 어리석고도 사악한 범죄 행위’를 가리킨다. 특히 성경적 의미로는 언약 백성으로서의 영광과 명예 및 자부심을 짓밟는 범죄 행위를 가리킨다. 한편, 같은 단어가 창 34:7에서는 ‘부끄러운 일’로 번역되었다.
지파: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유다 지파가 뽑힘.
족속: 유다 지파 중에서 세라 족속이 뽑힘.
가족: 세라 족속 중에서 삽디 가족이 뽑힘.
남자: 삽디 가족 중에서 아간이 뽑힘.
유다 지파. 유다 지파는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서도 지도적 위치에 있었던 지파로, 그 수효도 많았을 뿐 아니라(민 1:27) 세력도 강하여 항상 선봉에서 활약하던 지파였다(민 2:9). 그런데 바로 이 유다 지파가 첫 번째 제비뽑기에 뽑혔다. 그러므로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유다 지파의 모든 용사들이 분노의 칼을 뽑아든 채 유다 지파를 더럽힌 그 범죄자를 자신들의 손으로 처단함으로써 유다 지파의 명예를 회복할 때까지는 결코 칼을 칼집에 꽃지 않겠노라고 맹세하였다고 한다(Matthew Henry’s Commentary).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실시된 제비 뽑기에 의해 색출된 아간이 자신의 모든 범죄 사실을 솔직히 자백할 경우, 나머지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전지 전능성에 영광을 돌릴 것이었다. 그러나 아간이 자신의 범죄 사실을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할 경우 아간은 아간대로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몰아 세우는 참람한 죄악을 더할 뿐더러,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비뽑기의 결과에 의혹을 품게 됨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당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었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아간에게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공의와 전지성에 순복할 것을 종용한 것이다.
자복하고.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기본 동사 ‘야다’는 ‘고백하다’란 뜻으로, 개인적으로든지 국가적으로든지 하나님께 대한 죄의 시인 혹은 고백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시 32:5, Alexander). 여기서는 뒤따라 나오는 동사 ‘알게 하다’와 ‘숨기지 말라’가 그 의미를 더욱 강조해 주고 있다.
시날 산의 … 외투 한 벌. 여기서 ‘시날’은 ‘두 강 사이의 땅’이란 뜻인데, 두 강은 곧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말한다. 따라서 ‘시날’ 땅은, 일찍이 니므롯 왕국이 세워지기도 했으며(창 10:10), 바벨 탑이 건축되었던(창 11:2) ‘바벨론’ 지역을 가리킨다. 따라서 여기 ‘외투’(히, 아데레트)는 갖가지 무늬가 아름답게 수놓아진 값지고 귀할 뿐 아니라 예술적인 베벨론산 외투를 가리킨다(Keil, Lias, Lange). 당시 이 바벨론산 외투는 왕족이나 방백들, 또는 부자들만이 입을 수 있었던 귀한 것으로 매우 값진 교역 품목이었다.
세겔. ‘세겔’은 무게를 축정하는 히브리인들의 기본 단위로 1세겔은 약 11.4 g이었다.
보고 탐내어 가졌나이다. ‘보다’, ‘탐내다’, ‘가지다’란 말에 각각 ‘라아’, ‘하마드’, ‘라카’라는 동사가 사용되었는 데, 이는 창 3:6에 나오는 ‘인간의 타락’ 기사와 흡사하다. 즉 하와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았을 때에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 탐스럽기도’ 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 열매를 따먹었다. 이러한 사실은, 모든 죄는 먼저 보는 것에서 시작되어 보이지 않는 탐심이 생기게 되고, 결국은 사망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교훈을 준다(약 1:15, 요일 2:16).
아골 골짜기. 여리고 근방에 있는 골짜기로 후일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지경이 되었다(15:7). 한편 여기서 ‘아골’은 ‘괴롭다’, ‘슬프다’란 뜻의 동사 ‘아칼’에서 파생된 명사로, 곧 ‘괴로움’, ‘슬픔’, ‘고통’이란 뜻이다. 따라서 ‘아골 골짜기’란 ‘괴로움의 골짜기’ 또는 ‘고통의 골짜기’란 뜻으로, 이는 25절로부터 유래되었는 바,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간의 죄와 그에 해당하는 무서운 형벌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후세에 경고로 삼기 위해 명명한 명칭이다. 이처럼 본래 아골 골짜기는 ‘심판’과 ‘고통’ 및 ‘저주’를 상징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후일 선지자들의 시대에는 종말론쪽으로 이스라엘의 ‘치유’와 ‘회복’을 상징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사 65:10, 호 2:15). 한편 아간의 처형 장소로 이처럼 이스라엘 진영 바깥을 택한 이유는 가증한 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피로 인해 이스라엘 진영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Calvin, Matthew Henry). 즉 이스라엘 언약 공동체를 부패시킨 암적 요인을 ‘멀리 그리고 단호히’ 제거시켜 이스라엘 진영을 거룩히 보존하기 위함이었다.
돌로 치고 … 불사르고. 돌로 쳐죽이는 처형법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극악한 죄에 대해 시행하던 일종의 공개 처형법으로서, 우상 숭배자(레 20:2-5), 신성 모독자(레 24:15, 16), 부모에게 대적하는 패륜아(신 21:18-21), 안식일을 범한 자(민 15:32-36) 등에 적용되었다. 이 처형법의 시행 목적은 (1) 그 범죄에 대하여 경각심을 일깨워 주고 (2) 공동체의 연대 책임 의식을 강화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또한 ‘불사르고’에 해당하는 ‘사라프’는 ‘시체를 태워 없애다’란 강렬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모세 율법의 규정상 이러한 화형은 아내와 장모를 아울러 취하는 자(레20:14)와 제사장의 딸로서 행음한 자(레 21:9)에게 적용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아간 및 그의 가족들도 이러한 끔찍한 형벌을 당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단순한 탐욕의 죄를 넘어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범하는 신성 모독죄를 범했기 때문이요, 그 범죄의 결과로 이스라엘 전체를 비탄 속에 빠뜨린 공동체 파괴죄를 범했기 때문이다. 한편 신약에서도 이 아간의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행 5:1-11에 기록되어 있다. 즉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께 바쳐야 할 땅을 판 값의 일부를 감추었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Cake). 이렇듯 신구약에 각기 기록된 이 두 사건은 새로운 국가 또는 새로운 교회의 시작에 있어서 언약 백성의 성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오늘까지. 곧 여호수아서에 본 장면이 기록될 당시까지를 의미한다.
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여기서 ‘맹렬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진노하다의 기본형과 같은 ‘하라’이다(1절). 그리고 ‘분노’에 해당하는 ‘아프’는 ‘그 코로 숨쉬다’라는 뜻의 ‘아나프’에서 파생한 명사인데, 성경에서 ‘콧김’은 종종 하나님의 능력이나 진노 등을 의미한다(출 15:8, 삼하 22:16, 욥 4:9). 한편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것은 아간의 죄 때문이었다(1절). 그런데 이제 아간이 정죄를 당해 죽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결케 되었고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가 충족되었으니 그 진노가 그친 것은 당연하다(Dake).
아골 골짜기. 24절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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