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이 건널 때까지 … 말리시고”이다. 그러므로 개역 성경의 ‘우리들’이라는 번역은 ‘그들을’로 고쳐 생각함이 좋다.
마음이 녹았고 … 정신을 잃었더라. 가나안의 모든 거민들은 과거 출애굽 사건과 요단 동쪽 아모리 족속의 두 왕 전멸 사건에 관한 소식을 듣고 이미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은 적이 있는데(2:9-11), 이에 덧붙여 요단 강 도하 사건은 심적으로 비틀거리고 있는 그들에게 더 큰 충격을 가하는 치명적 사건이었다. 한편 ‘마음이 녹다’, ‘정신을 잃다’에 관한 내용은 2:11 주석을 참조하라.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부싯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추르’는 ‘단단한 돌’, ‘반석’, ‘바위’를 뜻한다. B.C. 13-15세기 당시에는 청동 제품들이 돌로 만든 기구들을 대신하여 널리 퍼져갔고, 그후 곧 철이 청동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 할례 의식에 청동이나 철 대신 돌을 사용한 것은 고대 관습을 따르기 위한 것이다(출 4:25, Blair, Clarke, Keil).
다시 할례를 행하라. 여기서 ‘행하라’의 히브리어 ‘슈브’는 ‘돌아가다’, ‘돌이키다’란 뜻으로, 이 명령은 이미 받았던 할례를 한번 더 반복해서 받으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다(Blair, Clarke). 40년 전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모든 남자들은 할례를 받았으나 그들은 광야에서 모두 죽었고, 그 후에 태어난 이스라엘 자손들은 아직 할례를 받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4-5절). 따라서 이 명령은 가나안에 도착한 새 세대에서 주어진 것으로, 곧 ‘이전에 조상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할례를 받은 것 같이 너희 후손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다시 할례를 받으라’(Keil). 또는 ‘이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할례 받은 백성으로서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 가라’(Blair)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광야 생활 40년 동안 시행하지 않았던 할례 의식을 이제 재시행하라는 뜻이다. 한편 ‘할례’(circumcision)는 사내아이가 태어난지 8일 만에 생식기의 포피 맨 끝 부분을 잘라내는 포경 제거 의식으로, 이것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 대한 증거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표지였다(창 17:9-14).
할례를 행하니라. 약 40년 동안 유보되었던 할례 의식이 재시행됨으로써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관계는 새로이 회복되었다.
애굽에서 나온 … 남자 곧 모든 군사. ‘나오다’의 히브리어 ‘야차’는 구약 성경에서 신학적 주요 관심인 출애굽 사건과 관련하여 자주 사용되었다(출 3:10, 6:13, 26, 13:3, 9, 14, 16, 20:2, 신 4:37). 그리고 여기서 ‘남자’는 군사와 동격어로서, 20세 이상된 남자로 싸움(전쟁)에 나갈 만한 자를 가리킨다(민 1:2-3, 14:29).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즉 출애굽 제2년째 해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꾼들의 불신앙적 보고(민 13:31-33)로 말미암아 낙담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지도자를 세워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다 결국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38년 동안 광야에서 모두 죽은 사실을 가리킨다(민 14:29-35, 신 2:14-16).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조상’은 ‘조상’, ‘선조’, ‘아버지’의 뜻을 가진 ‘아브’의 복수형으로 곧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가리킨다(민 11:12, 신 1:8).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가리키는 별칭이다(출 3:8, 17, 레 20:24, 민 13:27, 14:8, 신 6:3). 실제로 가나안 지방은 목축하기에 적합했고 야생 꿀도 많았다(삿 14:8, 삼상 14:26, 마 3:4). 신 11:9 주석 참조.
다 멸절하기까지. ‘멸절하다’의 히브리어 ‘타맘’은 ‘완성하다’, ‘끝내다’, ‘완전히 멸망시키다’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1세대(가데스 바네아 사건 당시 20세 이상 된 자들)가 모두 죽게 되기까지를 뜻한다.
길에서는 …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40년(보다 정확히는 38년, 민 14:34 주석 참조) 동안의 광야 생활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를 받지 못난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 광야 40년 동안 왜 할례를 행치 못했을까? 그 이유로 다음과 같은 견해가 제시된다. 즉 (1) 광야 생활 동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다른 민족과 구별된 상태였기 때문에 구태여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2) 시내 산 언약에서 할례에 대한 언급이 없을 뿐 아니라, 할례는 본래 가나안 언약에 대한 표징이므로(창 17:10) 광야기간 동안에는 할례의 의무가 주어지지 않았다. (3) 광야 생활 동안에는 자주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일정한 휴식을 요하는 할례가 시행될 수 없었다는 견해 등이다(Matthew Henry’s Commentary). 그러나 우리는 광야 기간 동안 할례가 금지된 이유를 성경 본문(4-7절)의 맥락속에서 충실히 찾아야 한다. 즉 그 이유는 ‘가데스 바네아 사건’(민 14:26-35) 때문이었다. 곧 가데스 바네아 사건은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이스라엘이 정면 거부하고 배척한 패역한 사건으로서, 그 결과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그 패역한 세대로부터 거두어 들인 사건이다. 아울러 그 불순종에 대한 책임을 그들의 자손들에게까지 짊어지운 사건이다(민 14:33). 그러나 동시에 그 시한을 ‘출애굽 제1세대(당시 20세 이상된 세대)가 광야에서 모두 소멸되기까지’로 한정하신 사건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광야 생활 동안’에는 가나안 언약의 징표인 할례를 행치 못했던 것이다(Keil, Matthew Henry, Hengstenberg, Calvin). 5절 주석 참조.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여기서 ‘진’의 히브리어 ‘마하네’는 ‘진을 치다’를 뜻하는 ‘하나’에서 유래한 말로, 구약 성경에서 이 말은 지파나 군대를 일시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친 울타리를 뜻한다(민 1:47-2:34, 10:11-28).
낫기를 기다릴 때에. 직역하면 ‘나을 때까지’이다. 여기서 ‘낫다’의 히브리어 ‘하야’는 ‘소생할’(창 45:27, 욥 14:14), ‘회복하다’(왕하 1:2, 8:8)란 듯으로(Keil), 이 문구는 할례의 상처가 치유될 때까지 며칠동안 장막에 머물러 있었음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할례를 받고 나면 베어 낸 상처가 아물 때까지 활동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창 34:25).
떠나가게 하였다. 애굽의 속박 생활로 인한 모멸, 혹은 출애굽을 하고서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조롱하던 애굽인들의 비난을 멀리 떠나가게 했다는 뜻이다. 즉 요단 강을 건너가 가나안 땅 길갈에서 언약의 징표인 할례를 받음으로써 그러한 모든 모멸, 수치, 비난, 힐책 등을 멀리 내어버렸다는 뜻이다(Calvin, Keil, Lange).
길갈. 4:19 주석 참조.
여리고 평지. 요단 강 서쪽의 대초원 지대를 가리킨다(Woudstra).
유월절을 지켰으며. 성경 기록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 길갈에서 지킨 유월절은 세 번째로 시켜진 셈이 된다. 즉 첫 번째는 애굽에서 출애굽 직전에 지켰고(출 12:3-28), 두 번째는 시내 광야에서 시내 산을 떠나기 직전에 지켰다(민 9:1-5). 그후 가데스 바네아 사건(민 14:26-35)이 일어났고, 그 후로는 유월절을 지켰다는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 그 저주의 38년 기간 동안에는 할례 없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에 유월절 역시 지켜지지 않은 듯하다(L. Wood, Keil). 왜냐하면 할례는 유월절 예식의 참여를 위한 전제 예식이었기 때문이다(출 12:48, Woudstra). 그러나 저주의 기간이 지나고, 요단 도하 후 길갈에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할례를 받아 하나님과의 언약을 다시 회복함으로써, 이제 그들은 언약 백성으로서 근 40년간 유보되었던 유월절을 지킬 수 있었다.
그 땅의 소산물. 성경 전체를 통틀어 이곳과 12절 두 곳에만 나오는 말로서, 곧 ‘가나안 땅에서 나온 식물’을 뜻한다(Keil).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도하할 당시는 보리 추수기였다(3:15). 그리고 여호수아서 저자는 그것이 ‘무교병’과 ‘볶은 곡식’임을 뒤이어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무교병과 볶은 곡식. 가나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으로 먹은 식물인데, ‘무교병’은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뜻하는 말로서 유월절 규례와 관련되어 사용된 것이며 (출 12:8), ‘볶은 곡식’은 ‘볶다’, ‘굽다’를 뜻하는 ‘칼라’에서 유래된 말로서, 원문에는 ‘곡식’이란 말이 생략되어 있다. 레 2:14 주석 참조.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종교 의식을 끝내고 여리고로 향해 가던 여호수아 앞에 칼을 빼든 한 사람이 나타났다. 여기서 ‘한 사람’은 14절에서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명시되어 있다. 한편, 이와 같이 길에서 여호와의 사자를 만난 것은 발람의 경우에도 있었다(민 22:23). 그러나 발람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는 발람의 잘못된 행동을 시정토록 하기 위함이었지만 여호수아의 경우에는 여리고 전투를 앞둔 그를 더욱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여호수아의 군대를 돕기 위하여 당당하게 칼을 빼들고 무장한 채 나타났다는 사실이 충분히 입증해 준다. 한편 여기서 카일(Keil)은 이와 같이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칼을 손에 들고 나타난 현상은 결코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어떤 비현실적 환상이 아니라, 실지로 있었던 객관적이고 외적인 현상이었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군대 장관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면하며 말을 하고 있는 사실을 들었다(Keil & Delitzsch, Vol. II. p.63).
우리를 위하느냐 … 적들을 위하느냐. 여리고 전투를 앞둔 긴박한 상황에서 갑자기 나타난 이 위풍당당한 장관에 대하여, 이스라엘의 군대 지휘자로서의 여호수아가 물을 수 있는 당연한 질문이다(Knobel).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여호수아는 전 이스라엘을 지휘하는 군대 대장이었지만, 그러나 하늘 만군의 군대 대장 앞에서 그는 땅에 엎드려 그를 경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본격적인 가나안 정복 전쟁을 앞두고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나타난 것은 여호수아에게 실로 큰 힘과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나안 정복 전쟁은 성전(聖戰)으로서, 이 전쟁의 승패는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 앞에 스스럼 없이 경배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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