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 유숙하니라. ‘싯딤’과 ‘요단’에 관해서는 각각 1:2과 2:1주석을 참조하라. ‘떠나다’의 히브리어 ‘나사’는 ‘천막 말뚝을 뽑다’, ‘출발하다’, ‘여행하다’를 뜻하는 말로서, 천막 생활을 하며 유랑하였던 초기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 생활 무대와 잘 어울리는 말이다. 즉 그들은 다음 여행지로 갈 때 천막 말뚝을 뽑아 천막을 걷은 다음 출발하였다. 그리고 ‘유숙하다’의 히브리어 ‘룬’은 대개 어떤 장소에서 밤을 보내려고 숙박하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된다.
관리. 1:10 주석 참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법궤’(레 16:2), ‘증거궤’(출 30:6), ‘여호와의 궤’(수 4:11), ‘하나님의 궤’(삼상 3:3), ‘주의 능력의 궤’(대하 6:41) 등으로 불리워지기도 하는 언약궤는 출 25:10-22에 그 규모가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 궤 속에는 십계명 두 돌판과 만나 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담겨져 있었다(히 9:4, 왕상 8:9). 한편 이 언약궤를 운반할 경우, 규정상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어 운반하도록 되어 있었지만(민 4:4-15), 특별한 경우에는 제사장들이 직접 운반하기도 했다(신 31:9, 왕상 8:3, 6).
그 뒤를 따르라. 광야 생활 동안에도 줄곧 언약궤가 앞서 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뒤를 따라 행진하였다(민 10:33-36). 여기서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바, 이를 뒤따르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따르는 것을 뜻한다(Matthew Henry).
가까이 하지는 말라. ‘가까이 하다’의 히브리어 ‘카라브’는 ‘끌어당기다’, ‘접근하다’를 뜻한다. 후일 법궤 운반시 웃사가 무분별하게 법궤에 손을 댔다가 죽임을 당한 사건(삼하 6:6-7)으로 미루어 볼 때, 이 명령은 언약궤의 거룩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기이한 일들. 하나님의 권능이 역사 속에 개입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출 34:10에서도 가나안 정복과 관련하여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오늘부터 시작하여. 기적적인 요단 강 도하 사건은 장차 여호수아를 영화롭게 할 일련의 기적적인 사건들의 시작에 불과함을 시사한다.
그들이 알게 하리라. 홍해 도하의 기적이 모세를 주의 종으로 확실히 인정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듯이(출 14:31), 요단 강 도하 사건의 기적은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신뢰할만한 지도자로 확실히 인정받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Keil & Delitzsch, Vol. II. 42).
요단에 들어서라. ‘들어서다’의 히브리어 ‘아마다’는 ‘서다’, ‘머무르다’란 의미이다. 따라서 요단 강에 들어가 계속 서 있음을 뜻한다.
계시사. [히, 카라브] ‘가까이 오다’, ‘접근하다’란 의미로서, 9절의 ‘고슈’와 동의어이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 요구되었지만,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까이 접근하심이 묘사되어 있다.
가나안 족속 … 여부스 족속. 소위 가나안의 후기 일곱 족속이다. 이들 족속에 대해서는 신 7:1 주석을 참조하라.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 알리라. 가나안 일곱 족속의 진멸의 필연성이 강조되어 있다. 여기서 ‘쫓아내다’의 히브리어 ‘야라쉬’는 ‘어느 특정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을 쫓아내고, 그 지역을 점유하는 것’을 뜻하는 이중적 의미의 낱말로서, 구약 성경, 특히 신명기에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과 관련하여 많이 사용되었다(Hartley).
온 땅의. 당시대의 사람들은 모든 신을 민족신 내지는 지역신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어느 한 지역(민족)에서 다른 지역(민족)으로 들어갈 경우에 그 지역(민족)의 신을 따라 섬기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여기서 분명 지역과 민족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불변성 및 무소부재성(無所不在性)을 강조함으로써 하나님을 어느 폐쇄적 공간이나 특정한 대상에게만 국한시키려는 시도들을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왕상 8:27, 사 66:1, 행 7:48-49). 특히 이 표현이 요단 강 도하와 관련하여 사용된 것은 세상의 전 영역 즉, 바다와 강들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나타내기 위함이었다(Calvin, Keil).
끊어지고 … 쌓여 서리라. 출 15:8에 나타나 있는 홍해의 기적을 연상시키는 표현이다. 여기서 ‘끊어지다’의 히브리어 ‘카라트’는 ‘자르다’, ‘분리하다’의 뜻으로서, 흘러내리던 요단 물이 분리되어 그 아래의 물과 합쳐지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그리고 ‘쌓이다’의 히브리어 ‘나다드’는 멈춘 물이 점차 산처럼 쌓여갔음을 보여주고, ‘서다’의 히브리어 ‘아마드’는 마치 사람이 자기의 몸을 일으켜 세우듯 물이 자기 자리에서 일어서 계속 불어났음을 나타낸다.
언약궤. 3절 주석 참조.
언덕에 넘치더라. 여기서 ‘언덕’(히, 가다)은 퇴적 작용으로 생긴 강의 양쪽 자연 제방을 가리킨다. 또한 ‘넘치다’(히, 말라 알)는 단순히 물이 제방에 가득 차는 것을 뜻하지 않고 가득 차 범람하는 것을 뜻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Pulpit Commentary). 실제로 곡식 거두는 시기 쯤에는 북쪽 헬몬 산의 눈이 녹을 뿐 아니라 또한 봄비가 내리기 때문에 갈릴리 호수는 최고 수위에 오르게 되고 요단 강물은 크게 불어 그 깊이는 3-4m, 그 너비는 30m 이상이 된다고 한다(J. P. Free, Archaeology and Bible History). 이처럼 전체 요단 강물이 만수가 되어 염해(사해)로 흘러가는 이 때에는 요단 강의 가장 좁은 나루터라 할지라도 일반적인 방법으로 도강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Rovinson). 더구나 처자식을 거느린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엄두조차 못낼 일이었다(Keil). 그러나 이러한 완전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널 수 있었던 것은 그 도강이 오직 하나님의 기적임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Calvin).
발이 물가에 잠기자. 강둑을 넘칠 정도의 거센 물결은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궤를 메고 물 속으로 담대히 들어간 제사장들의 용기는 매우 크다고 하겠다(Calvin). 그들의 이러한 용기는 오로지 가나안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여호와 신앙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사르단 … 아담 성읍 변두리에. ‘사르단’은 여리고 북방 약 20 km 지점의 요단 강 기슭에 있는 성읍인데, 후일 솔로몬이 성전을 만들 때 이곳에서 놋을 부어 기구를 만들었다(왕상 4:12, 7:46). 일명 ‘스레다’라고도 불리며(대하 4:17), ‘스레라’(삿 7:22)와도 동일한 지역으로 추정된다. ‘아담’은 오늘날 여리고 북방 약 25km 지점의 ‘다미에’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넌 지점으로부터 상류 쪽으로 약 24km 떨어진 곳이다. 즉 아담은 사해로부터 약 33km 떨어진 곳이었고, 이스라엘은 사해로부터 약 9km 떨어진 여리고 앞으로 요단 강을 건넜으므로, 백성들은 아담으로부터 약 24km 떨어진 지점에 있었다(L. Wood). 따라서 본 절에 나오는 ‘매우 멀리’라는 말과도 잘 어울린다. 그러므로 혹자는 요단 강물이 최소한 30km는 갈라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J. P. Free).
아라바의 바다 염해. 여기서 ‘아라바’는 갈릴리 호수에서 사해를 지나 홍해 동북의 아카바 만까지 팔레스타인을 남북으로 세로 지른 지역의 저지대 일대를 가리키는 지리적 명칭이다. 이 지대는 세계의 모든 계곡 중 제일 낮은 평원 지대로 요단 강이 바로 이 평원 가운데로 흘러내린다. 오늘날까지도 사해 남방의 긴 골짜기를 ‘아라바’라 칭하는데, 통칭 ‘염해’(사해)를 ‘아라바 바다’라 명명하기도 한다. 신 3:17 주석 참조.
온전히. [히, 탐무] ‘완전히’, ‘철저히’를 뜻하는 이 말은 엄청난 양의 물의 흐름이 100% 중지되었음을 알게 해준다(시 114:3). 또한 물의 흐름이 그친 강바닥이 건너기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완전히 말라 버렸음을 시사한다(17절).
요단 가운데. 이 말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단지 ‘강 가’에 서 있었다는 말이 아니라, ‘강 바닥’에 서 있었다는 뜻이다(Keil).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여기서 ‘마른 땅’은 ‘물기 없는 땅’(창 7:22, 출 14:21)을 뜻한다. 그리고 ‘굳게’라는 말은 ‘서다’(히, 아마드)와 대등한 의미를 지닌 동사 ‘쿤’에서 파생했는데, 이는 ‘확정짓다’, ‘고정시키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강을 다 건널 때까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자기가 선 자리를 확고 부동하게 지켰다는 말이다.
요단을 … 건너갔더라. 원문에는 ‘완전히’(히, 탐무)라는 단어의 수식을 받고 있다. 멈추었던 물이 다시 흐르게 되면 죽음을 면치 못할 상황에서 오직 믿음으로 요단 강을 온전히 건너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볼 수 있다. 한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효를 도합 200만으로 추산할 때(민 26:51), 그들이 그 행군의 폭을 1-2 km 정도로 했다면 요단 강을 건너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반일(half a day) 정도 걸렸으리라 추정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Vol. II.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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