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히] 보내며. ‘은밀히’는 개역개정판에는 없는 말이다. 개역한글판에는 ‘가만히’로 번역하였다. 이 말의 히브리어 ‘헤레쉬’는 ‘둔하게 되다’, ‘조용히 하다’란 뜻의 ‘하라쉬’에서 파생된 부사어이다. 일찍이 가데스에서 열두 정탐꾼 중의 한 사람으로 활약했던(민 13:8) 여호수아는 정탐군이 처하는 위험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두 정탐꾼을 ‘은밀히’ 보낸 것이다. 따라서 이 임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조차 모르게 조심히 행해졌는데, 그것은 만일 좋지 못한 보고로 인해 모세 때처럼 백성들을 낙담시키지나 않을까(민 13:28-14:4)하는 염려 때문이었다(Keil).
여리고를 엿보라. ‘엿보다’에 해당하는 ‘라아’는 ‘주의깊게 보다’, ‘조심스럽게 관찰하다’란 의미이다.
라합이라 하는 기생. 라합을 미화하기 위하여 요세푸스(Josephus)와 탈굼(Targum), 그리고 유대 랍비들은 ‘기생’(히, 조나)을 ‘여관 주인’으로 해석하기도 한다(Kroeze). 그러나 히 11:31, 약 2:25은 라합을 분명히 ‘기생’(헬, 포르네)이라고 표기하고 있기 때문에 ‘여관 주인’으로 볼 수는 없다(Calvin, Keil, Lange, Matthew Henry). 더구나 개역개정 성경의 ‘기생’은 공동번역처럼 ‘창녀’로 번역되는 것이 더 원어의 뜻에 가깝다. 히브리어 ‘조나’는 ‘간음하다’, ‘매춘하다’를 뜻하는 ‘자나’에서 파생했기 때문이다. 한편 ‘기생의 집’은 각양 각색의 사람이 모여 사담을 나누는 곳이었으므로, 가나안 거민의 민심이나 정치 군사적 동태 따위를 간파하기에는 적절한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기생 라합의 집은 성벽 위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15절) 여리고 성을 조망하기에도 매우 좋은 장소였다.
유숙하더니. [히, 샤카브] 기본 뜻은 ‘눕다’인데, 이 동사는 때로 동침을 위해 눕는 것을 뜻하기도 하기 때문에, 노쓰(Noth)와 같은 학자는 여기서 두 정탐꾼과 라합이 동침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8절을 통해 볼 때, 여기서 눕는 것은 동침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잠을 자기 위해서였다.
말하여 이르되. 정탐꾼이 들어가자마자 여리고 왕이 이 소식을 보고 받은 것을 볼 때 여리고의 병사들이 그 성을 매우 철저하게 경비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당시 요단 강 가까이에 위치한 성읍으로서의 여리고 군대가 이스라엘이 조만간 요단 강을 건너 진격해 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비상 경계를 폈기 때문일 것이다(Calvin).
이 밤에. 1, 5, 7절과 관련시켜 볼 때, 이 때는 정탐꾼들이 들어온 때가 아니라 왕에게 알린 보고자의 시점에 근거하여 한 말이다(Keil).
온 땅을 정탐하러. 2절에서도 나타난 바 있는 ‘정탐하다’의 히브리어 ‘하파르’는 ‘깊이 파다’, ‘구석구석 수색하다’를 뜻한다. 따라서 녹스(Knox)는 이 부분을 ‘땅의 모든 구석구석을 정탐하기 위하여’로 번역하였다(Woudstra).
나는 알지 못하였고. 이 말은 분명 ‘라합의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이 거짓말이 소위 말하는 악의 없는 ‘백색 거짓말’(white lie) 또는 ‘직무상의 거짓말’(Mendacium officiosum)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평가는 학자들마다 각기 다르다. 이를 크게 양분하면 라합의 거짓말은 신앙과 믿음에 근거한 의로운 거짓말로서 죄로 볼 수 없다는 견해(Lange, Woudstra, Holwerda)와 라합의 거짓말은 분명 그 방법상에 있어서는 죄이지만, 그 동기상 신앙적이었으므로 용서될 수 있다는 견해(Augustine, Calvin, Keil)가 있다. 이에 대하여 신약 기자들의 평가를 살펴보면, 그들은 분명 라합의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믿음의 행위’로 규정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히 11:31, 약 2:25). 그러나 동시에 그녀가 사용한 방법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이로 볼 때 우리는 라합이 사용한 방법, 곧 그 거짓말까지 의로운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사실은 히브리 산파의 경우(출 1:15-21)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급히 따라가라 … 따라잡으리라. 이 말 속에서는 라합의 기지와 용기가 드러난다. 만일 그녀가 정탐군들을 결코 보지 못했노라고 딱잡아 뗐더라면, 아마도 가택 수색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삼대에 숨겼더라. 여기서 ‘삼대’는 ‘목화 깍지’(cotton pods, Michaelis)도 아니고, ‘나무 아마’(tree flax, Thenius)도 아니다. 그것은 곧 ‘삼 줄기’(the stalks of flax, KJV, NIV, RSV)를 가리킨다. 한편 ‘삼’은 물속에서 자라는 식물로, 보통 그 줄기의 길이가 0.9-1.2m이다. 따라서 햇볕에 말리기 위해 지붕위에 널어 놓은 삼대는 정탐꾼의 은닉처로서는 매우 좋았을 것이다(Keil & Delitzsch, Vol. II. p. 34).
나루턱까지. ‘나루터’ 앞에 관사 ‘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나루터는 그 당시에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었던 여리고 근처의 나루터로 이해해야 한다(Keil & Delitzsch, Vol. II. p. 35).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더라. 성문을 이렇게 민첩하게 닫은 이유는 혹시라도 정탐꾼들이 성내에 남아 있을 경우, 그들이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였다(Keil).
너희 … 우리. 두 대명사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여기서 ‘너희’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며 ‘우리’는 모든 가나안 거민을 의미한다(Keil).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도하 후에 부른 찬양(출 15:13-18, 신 2:25, 11:25)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가나안 거민이 대조되어 나타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 라합의 고백은 ‘가나안 모든 거민이 낙담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생생히 대변해 주고 있다(Woudstra, Goslinga).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과거 이스라엘이 가나안 거민을 두려워했던 것(민 13:33)과는 정반대로 이제는 가나안 거민이 이스라엘에 대한 소식을 듣고 심히 두려워하고 있다. 그 때, 모세 당시 가나안 거민에게 겁을 집어먹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지 못했듯, 이제 여호수아 당시 이스라엘에게 겁을 집어먹은 가나안 거민들은 그 땅에서 쫓겨나지 않을 수 없었다.
간담이 녹나니. ‘녹다’의 히브리어 ‘무구’는 ‘녹아(물갈이) 흘러 내리다’(7:5)를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개역 성경의 ‘간담이’라는 말은 그 의미를 살리기 위하여 원문에 추가된 것이다.
전멸시킨 일. [히, 헤헤람템] 이것은 ‘저주하다’, ‘완전히 파괴시키다’를 뜻하는 동사 ‘하람’에서 파생되었다. 이 동사는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의 속성과 관련하여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철저히 파괴하여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 때 사용되는 개념으로(Lange), 여호수아의 군대가 진멸한 거의 모든 도시들에 대해 사용되었다(여리고, 6:21 / 아이, 8:26 / 막게다, 10:28 / 하솔, 11:11 등).
정신을 잃었나니. 직역하면 ‘영혼이 남아 있지 않으니’로, 곧 대항하거나 싸울 용기를 상실하는 것을 뜻한다(NIV).
내 아버지의 집. 라합은 단순히 자기의 목숨만을 구하려는 생각을 갖지 않고, 믿음에 근거하여 자기의 가족 및 친척까지 구원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한편 이처럼 ‘아버지의 집’과 ‘자신’을 분리시키지 않고 동일시하는 사고는 고대 근동 지방의 사고 방식이기도 하다(Woudstra).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이렇게 신의 이름으로 서약을 요구한 것은 이스라엘 군대가 성읍을 공격하다 보면 전쟁의 혼란 때문에 혹시라도 약속한 것을 잊고 지키지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신의 이름으로 맹세할 경우, 신을 맹세의 보증인으로 삼는 결과가 되어 그 맹세의 신빙성과 성결성이 인침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만일 그 맹세를 어겼을 경우, 신이 친히 그 위증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기 때문이었다(Calvin). 그러한 의미에서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어떤 중요한 일을 서약하거나 확증할 때 그들이 믿는 신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습성이 사람들의 몸에 배어 있었다(암 8:14).
증표. [히, 오트 에메트] 문자적으로는 ‘진리의 증표’이다. 구체적으로 이 증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행하는 맹세 자체를 가리킨다(Woudstra, Keil).
우리의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할 것이요. 13절에서 라합이 요구한 맹세는 이 말로 이루어졌다. 구약 성경에서는 맹세를 할 때 흔히 “만일 네가 … 하면(아니하면), 내가 … 하리라(아니하리라)” 등의 조건식 표현으로 이루어졌고, 그 맹세의 보증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사용했다. 따라서 맹세자가 맹세시 내건 조건을 만일 상대방이 어겼을 경우, 그 맹세자는 그 맹세를 준수할 의무에서 해방되었고, 반대로 상대방의 조건 준수에도 불구하고 맹세자가 자신의 맹세를 어겼을 경우에는 여호와의 징벌을 면치 못했다. 그러한 맥락에서 여기 정탐꾼들은 ‘누설하지 않을 경우’를 조건으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여호와 앞에 맹세하고 있는 것이다.
인자하고 진실하게. [히, 헤세드 웨에메트] 앞 절(13절)에 이미 나타난 ‘선대’, ‘진실한’이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이다. 따라서 라합은 라합대로, 정탐꾼은 정탐꾼대로 ‘인자와 진실’이라는 개념 아래서 서로 믿는 마음으로 약속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성경에서 이 ‘인자와 진실’은 언약 관계와 관련하여 나타나는 대표적 표현이다(창 24:27, 49, 32:10).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성서 고고학자 가스탕(J. Garstang)의 여리고 성 발굴(1930-1936) 결과에 의하면, 여호수아 당시의 여리고 성은 4.5m 간격의 두 성벽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두 성벽 사이에 큰 대들보를 올려 놓고 그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라합의 집도 분명 이러한 집들 중의 하나로서, 아마 그 집 들창이 외곽 성벽 쪽으로 나 있었던 것 같다. 따라서 바깥 벽쪽으로 나있는 집의 창문을 통해 정탐꾼들이 여리고 성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J. P. Free, Archaeology and Bible History).
마주칠까 하노니. [히, 펜 이프게우] ‘만나다’의 히브리어 ‘파가’는 ‘마주치다’, ‘습격하다’의 뜻도 내포하고 있다. 또한 ‘펜’은 ‘ … 하지 않도록’(lest)의 뜻이므로, 이 말을 직역하면 ‘마주치지 않도록’(lest … meet, KJV)이다.
산으로 가서 … 숨어 있다가. 랑게(Lange)는 이곳을 동굴이 많은 여리고 북쪽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여리고 성의 남과 북 및 동쪽은 산이 없는 평원 지대로 밝혀졌다. 그런데 북서쪽 지역에는 해발 450m 가량의 산이 있을 뿐 아니라, 그곳에는 또한 많은 바위 및 동굴이 있어 은신처로서는 적격이었다(Woudstra, J.P. Free). 따라서 라합은 정탐꾼들을 이곳으로 도피시킨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오늘날 이 일대 지역은 ‘예벨 콰란탈’(Jebel Qarantal)이라고 불리는데, 흔히 예수께서 시험받으신 장소로 추정되기도 한다.
네 집에 모으라. 초기 교회의 교부 오리겐(Origen)은 라합의 가족들이 오직 집 안에 있을 때에만 구원이 약속된 사실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구원은 오직 교회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고 해석하기도 하였다.
길에서 두루 찾다가. 직역하면 ‘모든 길을 수색하다’이다. 여리고 성에서 요단 강까지의 거리는 불과 13 km이며, 도보로는 3시간 남짓 소요되는 거리이다. 뒤쫓는 자들이 이 일대를 삼 일 동안이나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그들의 큰 실수는 정탐꾼들이 숨어 있는 ‘산’이 아닌 ‘길’만 뒤졌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사흘 동안 산 속에서 꼼짝 말고 숨어 있으라는 라합의 충고(16절)가 주효했음을 알게 해 준다.
간담이 녹더이다. 두 정탐꾼이 이처럼 여호수아에게 자신있게 보고할 수 있었던 데에는 분명 라합의 정보(9, 11절)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한편 이러한 표현은 매우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 자포자기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히브리 특유의 표현 방법이다. 이처럼 히브리인들은 어떤 상황을 묘사함에 있어 추상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대신, 심지어 심적(心的) 상황까지도 구체적인 신체 부위를 예로 들어 마치 눈에 보이듯이 생생하게 표현하는 수사학적 특징을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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