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주석, 신명기 3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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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 느보 산에 올라 … 비스가 산 꼭대기에 이르매. 느보 산이나 비스가 산은 모두 아바림 산맥(32:49)에 있는 고봉들이다. 한편 이 비스가 산 정상은 가나안 땅을 조망하는데 최적의 장소였다(32:49).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길르앗 땅’은 사해 위, 얍복 강 유역에 위치한 지역으로서 유향의 산지로 유명하다(렘 8:22). 이곳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되었다(3:12-17, 수 13:24-31). 그런데 여기서 ‘단’은 정확히 어느 곳을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 만일 이곳이 단 지파가 차지한 가나안 최북단 헤르몬산 기슭의 단(수 19:47, 삿 20:1)을 가리킨다면, 본 절은 다음과 같이 이해되어야 한다. 즉 비스가 산에서 헤르몬 부근의 단까지는 거리가 무려 160 km 정도나 된다. 따라서 모세가 아무리 시력이 좋고, 또 서 있는 곳이 높다고 할지라도 정상적으로는 그곳까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일은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모세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셈이 된다(Matthew Henry).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여기서 가리키는 ‘단’을 헤르몬 부근의 단으로 보지 아니한다. 대신 길르앗 부근에 위치하였던 어느 한 성읍이나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Lange, Keil, Pulpit Commentary). 만일 본 절이 모세가 일반적인 눈으로 볼 수 있었던 지역을 가리킨다고 할 것 같으면, 이들의 견해는 상당히 타당성이 있는 셈이 된다. 그러나 모세의 임종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당신의 약속에 근거한 가나안 전경을 보이시고자 하셨다면, 전자의 견해 역시 상당한 설득력이 있게 된다.

 

34:2 또 온 납달리와 …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 이제 모세는 그의 시선을 서서히 서쪽으로 돌리고 있다. 그리하여 요단 서편 땅을 찬찬히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그가 바라보고 있는 땅들의 순서는 아브라함의 가나안 초기 여정과 일치한다(창 12:1-9). 한편 여기서 ‘서해’란 가나안 서편에 위치한 바다인 ‘지중해’를 가리킨다.

 

34:3 네겝. 가나안의 남쪽 사막 지역인 ‘네겝’(Negeb)을 가리킨다(창 12:9).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 소알까지 보이시고. 여리고는 예루살렘 동편, 요단 골짜기 남단에 있던 큰 성읍이다(수 18:21). 그런데 이곳을 ‘종려나무의 성읍’이라고 부른 까닭은 그곳이 종려나무의 산지로 유명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알은 ‘벨라’(창 14:2)로도 불리웠던 사해 남단, 요단 평지에 위치한 고대 가나안 성읍을 가리킨다(창 13:10, 19:20-23). 따라서 본 절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사해 서부의 연안 지대’를 보이셨다는 뜻이 된다.

 

34:4 이는 …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창 12:7, 13:15, 17:8, 29:13, 35:12)은 아브라함 때로부터 지금까지 약 600년간 약속으로만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약속이 바로 눈앞에서 성취되려는 순간에 와 있다.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출애굽의 영웅이자 이스라엘의 위대한 영도자인 모세는 누구보다도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모세는 그의 간절한 간구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입성이 끝내 허락되지 않았다(3:23-29). 그 일차적 이유는 물론 므리바 물 사건(민 20:12) 때 모세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온전히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31:2, 32:51). 그러나 이 사건은 우리들에게 보다 깊은 교훈을 던져 준다. (1) 모세는 율법을 상징하는 자였던 바, 이는 율법이 결코 인간을 하늘 가나안으로 인도해 들이지 못함을 보여 준다. (2) 천국은 결코 인간의 공로로 말미암아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님을 보여 준다.

 

34:5 여호와의 종. [히, 에베드 야훼] 이 말은 모세의 신실성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즉 그는 애굽의 왕자로서 세상의 부귀 영화를 누릴 수 있었으나, 오히려 하나님의 종이 되어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더 좋아하였다(히 11:24-25).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여호와의 말씀대로’에 해당하는 ‘알 피 야훼’는 직역하면 ‘여호와의 입을 따라’란 뜻이다. 이 말은 모세가 ‘여호와의 종’이라는 사실에 매우 걸맞는 표현이다. 즉 그는 죽음에 있어서도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거룩한 땅의 경계 밖인 ‘모압 땅’에서 죽었다.

그럼 모세가 자기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기록할 수 있었을까? 오경 같은 문학적인 작품이 지도적인 인물의 죽음으로 결론을 맺는 것은 특이한 일은 아니지만(수 24:29-30에도 비슷한 언급이 있음), 바로 이런 특징 때문에 저자에 관한 문제가 야기된다. 수세기 동안,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모세가 성경의 첫 다섯 책(오경)을 기록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어떻게 모세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기록할 수 있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답할 때 몇 가지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째, 모세가 오경의 저자라는 입장 때문에 그가 자기의 죽음에 대한 기사를 미리 기록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요세푸스는 이런 견해를 지지했는데 모세가 “자신이 죽음을 거룩한 책들에 기록해 둔 것은 그들이 자신의 특별한 덕행 덕분에 자기가 하나님께로 갔다고 말할까 염려했기 때문이었다.”(Flavius Josephus, Antiquities of the Jews, 8.48)고 진술했다. 그러나 성경의 다른 부분에 있는 증거에 의하면, 어떤 선지자나 사도가 어떤 기록된 성경 문서의 저자라고 하여 그 문서의 모든 부분이 낱낱이 직접 그들의 손에 의해서 기록되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예레미야 51장은 “예레미야의 말이 이에 끝나니라”(64절)는 말로 끝맺는데, 그렇다면 52장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기록되었을 것이다. 요한복음의 끝부분에 믿음의 공동체가 남긴 간단한 기록(요 21:24에 사용된 ‘우리’라는 표현을 주목하라)이 있는데, 그것은 복음서 기록의 진실성을 뒷받침한다. 마치 저자가 죽은 후에 그의 자서전에 편집자에 의해 추가된 후기가 그가 저자임을 부정하지 않는 것처럼, 위의 경우에서도 역사적인 부록이나 결론부의 성경 구절들이 다른 사람에 의해 포함되었다고 그것이 해당 문서의 원래 저자의 신분을 바꾸진 않는다.

둘째, 모세의 기록 활동을 언급하는 다수의 구절이 오경에 산재하여 있다는 사실이다. 출 24:4은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였다고 진술한다. 신 31:9도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라고 말한다. 민 33:2은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 노정을 따라 그들이 행진한 것을 기록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오경을 저술할 수 있도록 해 준 자료들을 기록하는 일에 모세가 밀접하게 관여했음을 가리키는 광범위한 증거들이 있다.

셋째, 예수께서 모세를 오경의 저자로 간주하셨다는 것이다. 요 5:46에서 예수께서는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다고 말씀하셨다.

넷째, 모세가 오경을 기록했다는 입장을 지지하는 여러 가지 내적 증거가 있다는 것이다. 오경에 묘사된 사건들에 실제로 참여했던 사람에게서나 기대할 수 있는 목격담(출 15:27 참조), 애굽을 친숙하게 아는 면이 나타나 있는 것, 상당히 많은 애굽어 단어들이 구약의 다른 곳에서보다 오경에 많이 사용되었다는 사실, 오경에 언급된 동물과 식물의 다수가 애굽과 시내 반도에서 발견된다는 사실 등이 모세를 오경의 저자로 지지하는 증거들에 포함된다. 이것들은 애굽에서 양육과 교육을 받고 많은 세월을 광야에서 보낸 모세에게서나 기대할 수 있는 특징들이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것은 근래에 오경에 나타난 통일성과 세심한 문학적 기법 등에 대한 이해가 증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근자에 보수적인 학자들뿐 아니라 심지어는 자유주의 학자들도 오경의 대부분의 자료에는 오직 한 명의 저자만 존재함을 지지하는 설득력 있는 논증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논증들에 비추어 볼 때, 전통적인 입장을 지지하여 모세를 단일 저자로 보지만, 신 34장에 있는 그의 죽음의 기사를 쓴 자를 여호수아나 다른 지도자로 볼 수 있는 타당성 있는 근거가 있다.

 

34:6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 ‘벧브올’은 모압의 신 브올을 예배하던 산인데 정확한 위치는 분명치 않다. 한때 이스라엘도 이곳에 거한 적이 있었으며(3:29, 4:46), 후에는 르우벤 지파의 소유가 되었다(수 13:20). 많은 학자들은 모세가 장사된 모압 땅의 골짜기가 느보 산(비스가 산) 근처의 어느 한 골짜기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Hengstenberg, Keil, Lange, Pulpit Commentary).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 없으니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모세를 장사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유 1:9은 이러한 사실의 근거가 된다. 즉 하나님께서는 천사장 미가엘을 보내어 모세의 시신을 인간이 알지 못하는 곳에 장사하도록 명하셨던 것 같다. 그 이유는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무덤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을지도 모를 위험성 때문이었을 것이다(Calvin, Stanley). 한편 모세가 엘리야와 더불어 변화 산상에 나타난 사실(마 17:3, 막 9:4, 눅 9:30)을 볼 때, 모세가 부활하여, 에녹과 엘리야처럼 승천한 것으로 보인다(Matthew Henry).

 

34:7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 이때는 B.C. 1407년 11월 말경으로 추정된다(1:3). 그런데 그가 120세를 살았다고 하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이다. 왜냐하면 모세 자신의 관찰에 의하면, 당시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70세였고 강건해야 80세였기 때문이다(시 90:10). 따라서 모세는 보통 사람들이 흙으로 돌아갈 나이인 80세에 하나님께 부름받아 40년 동안 여호와의 신실한 종으로서 봉사하였다(행 7:23, 30, 36).

눈이 …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이삭은 말년에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였고(창 27:1), 야곱 또한 마찬가지였다(창 48:10). 그러나 모세가 다른 사람에 비하여 노쇠하지 않았던 까닭은 그가 막중한 책임을 떠맡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항상 하나님의 도우심을 앙망함으로 새 힘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사 40:31).

 

34:8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히브리인들의 장례 풍습에 의하면, 대개 죽은 자를 위한 애도 기간은 7일이었다(삼상 31:13). 그러나 아론과 모세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30일간을 애곡하였는데(민 20:29), 이는 초대 이스라엘 대제사장과 위대한 지도자에 대한 예우로서 그랬을 것이다.

 

34:9 모세가 …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자신의 죽음을 고지한 후 모세는 후계자를 세워줄 것을 하나님께 간구한 결과 ‘여호수아’가 선택되었다. 그 때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에게 안수함으로써 자신의 공식적인 후계자로 삼았다(31:14-15, 민 27:15-23). 따라서 모압 평지에서 베푼 모세의 안수 예식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지금까지 모세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지도자적 권한을 여호수아에게 모두 넘긴다는 의미를 지닌 공식적인 위임식이었다. 따라서 이제 이러한 여호수아의 등장은 신명기와 여호수아서를 자연스럽게 이어 줄 뿐 아니라, 가나안 정복 전쟁에 임할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시사한다.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지혜의 영’이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덧입혀 주신 ‘참된 지혜’ 곧 ‘호크마’를 가리킨다(32:29). 따라서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할 때 그에게 이러한 지혜가 충만히 임하였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친히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인정하셨음을 의미한다.

 

34:10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면에 있어서 특별한 선지자이자, 이스라엘 모든 선지자 중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다. (1) 하나님과 가까이 지냄에 있어서: 이것은 미리암의 나병 사건(민 12장)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분명하게 보여 주셨다. 즉 다른 선지자들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모세에게는 ‘마치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하듯’ 가까이 대면하여 말씀하셨으며(출 33:11), 자신의 영광스런 임재도 목격하게 하셨다(출 33:18-23). 또한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서 모세와 단 둘이서 오랜시간 지내셨다. 따라서 모세는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을 많이 보았고 직접 체험한 자였다. (2)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을 나타냄에 있어서(11-12절): 하늘의 비상 대권을 위임 받은 자 모세는 출애굽시 바로와의 대결에서 여호와의 10대 재앙을 이스라엘 목전에서 애굽에 베푼 자였다(출 7:14-11:10). “실로 모세는 위대한 선지자로서 율법의 창시자요 중재자였다. 이 율법이 지속되는 한 이스라엘 중에서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오직 한 사람 모세보다 더 큰 영광과 명예를 누릴 자가 있으니 곧 모세를 그 충실한 종으로 두고 있는 하나님 집의 장자(長子)로서(히 3:2-6), 우리의 대사도요 대제사장이시며 영원한 새 언약의 창시자 및 중보자가 되시는 분,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Keil & Delitzsch, Vol. I-iii. the Pentateuch, p. 517).

대면하여 아시던. 여기서 ‘알다’에 해당하는 ‘야다’는 단지 지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닌, 깊고 오랜 교제를 통해 인격적, 경험적, 영적으로 아는 것을 가리킨다(고전 8:3). 따라서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주 친밀하게 지내신 것을 의미한다.

 

34:11 모든 이적와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하나님께서 바로와 온 애굽에 베푸셨던 각종 재앙과 이적, 그리고 놀라운 역사를 가리키는 중언법적 표현이다(29:3).

 

34:12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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