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히, 옐레크] 이 말은 마음에 먹은 생각을 의지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것을 뜻한다(창 35:22, 출 2:1). 따라서 이 말 속에는 행동에 옮기기 전 그 일을 준비하고 계획했던 일련의 시간적 간격이 내포되어 있다(Schroeder, Keil).
더이상 출입하지 못하겠고. 여기서 ‘출입하다’라는 말은 ‘정상적으로 사역을 감당하다’ 또는 ‘왕성하게 일하다’란 의미의 히브리적 관용어이다(Schultz, 수 14:11, 삼상 12:2). 이는 곧 모세가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솔하여 목전에 닥친 가나안 정복 전쟁을 수행할 힘이 없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 절은 34:7의 서술과 모순되지 아니하는데, 그곳에서는 단지 제3자의 입장에서 볼 때, 모세가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했다는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Keil, Pulpit Commentary).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리라. 직접적인 이유는 신(Zin)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반석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스라엘 백성 중에 나타내지 않았었기 때문이다(민 20:10-13, 신 32:51). 그러나 모세가 그같은 잘못을 저지르게 된 데에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다(민 20:2-5). 따라서 모세가 그의 나이와 함께 이같은 불행한 사건을 말할 때 분명 백성들은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민 20:12, 신 3:27 주석을 참조하라.
여호수아는 네 앞에서 건너갈지라. 건장하고도 전투에 능한 여호수아(출 17:8-16)가 앞으로 이스라엘을 인솔하게 될 것이라는 말은 지도자를 잃고서 실의에 빠지게 될 백성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의도적으로 표명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계속되는 언급을 보면, 이스라엘의 실제적인 인도자는 역시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 그분은 이스라엘을 위해 가나안 땅을 예비해 놓으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자(창 22:14), 그들 모든 대적을 파하시고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시는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이시다(출 17:15).
이 민족들. 당시 (B.C. 1400년경) 가나안 땅에 이미 살고 있던 헷, 기르가스,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 등과 같은 가나안의 후기 7족속을 가리킨다(7:1).
그들에게도 행하실 것이라. 즉 요단 서편 가나안 족속의 운명도 아모리 족속의 운명과 같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그 어떠한 세력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을 감히 대적할 수 없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한편 이 말은 오늘날 하늘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는 여로에서 온갖 사탄의 세력과 부단히 싸워야 하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같은 위로와 영기를 북돋워 준다(요 16:33).
담대하라. 이에 해당하는 ‘아마츠’의 원뜻은 ‘방심하지 않다’이다. 영어 성경 Living Bible은 전자와 후자를 묶어 ‘강하여라! 용감하여라!’(Be strong! Be courageous!)로 번역하고 있다. 한글 개역개정 성경의 번역은 심리적인 분발만을 요구하는 구절인 듯이 번역해 놓았으나, 심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힘을 내고 분발하라는 의미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 떨지 말라. 이스라엘 구세대가 그토록 겁을 먹고 떨었던(민 13:31-14:4, 신 1:26-28) 가나안 본토 족속과의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신세대에게 혹시라도 같은 전철을 밟을까 염려하여 이처럼 중언법(重言法)적 표현을 사용하여 단단히 정신 무장을 시키고 있다.
너를 떠나지 …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여기서 ‘떠나다’에 해당하는 ‘라파’는 ‘실패하다’, ‘게으름을 피우다’란 뜻이다. 그리고 ‘버리다’에 해당하는 ‘아자브’는 ‘늦추다’, ‘낙오된 채로 방치하다’란 뜻이다. 따라서 본 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저버리지도 아니하며 포기하지도 않으시겠다는 의미이다(Lange).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특별히 아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조성(造成)하신 민족이기 때문이다(사 43:1). 둘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귀하고 보배로운 소유이자(출 19:5, 신 26:18), 또한 그분의 영광을 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사 43:7). 물론 이상과 같은 사실은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 자손이 된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고후 1:20).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결코 가나안 족속을 겁내거나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지 않을까 두려워할 필요가 조금도 없음을 강조한 중언법적 표현이다. 그러나 굳이 세분하자면 ‘두려워하다’에 해당하는 ‘야레’는 상대방을 경외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위압감을 받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놀라다’에 해당하는 ‘하타트’는 파괴나 패망 따위(사 8:9, 렘 48:1)를 두려워하여 ‘낙담하는 상태’를 가리킨다(왕하 19:26, 사 30:31). 그러나 여호수아는 40여 년 전 그의 정탐꾼 시절에 갈렙과 더불어 가나안 정복을 주장했던 믿음의 용사였다(민 14:6-9).
1. 도덕법(Moral Law): 10계명을 가리킨다. 이것은 시대를 통하여 영원불변한 것으로서, 크게 대신(對神) 계명과 대인(對人) 계명으로 구분할 수 있다(신 5:7-21).
2. 시민법(Civil Law): 당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올바른 사회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했던 구체적인 법조문들이다. 십계명에 기초를 두고 있는 이 시민법의 근본 정신은 사랑과 공의의 정신이다. 이 법은 물론 시대와 지리적 제한을 받기 때문에 문자적으로 영원성을 띤 것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이 오늘날 그 법 정신을 따라 재해석을 필요로 한다(고전 9:9-10).
3. 의식법(Ceremonial Law): 특별히 레위기에서 많이 취급된 제사 및 성결 그리고 절기에 관련된 법이다. 이 법들은 모두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적 의식들이었는데 마침내 그리스도의 성육신 및 대속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성취되었기 때문에 문자적 구속력은 오늘날 폐기 되었다. 그러나 그 법속에 담긴 근본 정신만은 계속 살려나가야 한다.
제사장들과 … 장로에게 주고. 율법책을 안전하게 언약궤 곁에 보관할 뿐 아니라(26절),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쳐(10-13절)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 신앙’을 준수할 수 있도록 하게 하기 위함이다(J. H. Michaelis).
초막절. 히브리 종교력으로 7월(티슈리 월) 15일부터 7일간 지키는 절기로서, 일명 ‘장막절’ 또는 ‘수장절’(출 23:16, 34:22)이라고도 한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후 광야에서 방황할 때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 것을 기념하며, 또한 1년간의 모든 수확을 감사하는 절기이다(16:13-15).
이 율법을 낭독하여 … 듣게 할지니. 이처럼 안식년의 초막절에 온 백성들에게 율법을 낭독하여 들려 주라고 한 이유는 단순히 그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기 위함만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항상 가정에서도 율법을 교육하였을 뿐 아니라(6:7) 제사장, 장로, 선지자, 랍비 등에 의하여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처럼 온 회중 앞에서 엄숙히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라고 명령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 이스라엘이 지난 40년간 광야에서 고생하였던 것을 다시 깊이 회상케 하기 위함이다.
(2) 그로써 현재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누리고 있는 복된 생활에 대하여 하나님께 충심으로 감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3) 또한 그들이 그동안 얼마나 충실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왔는지를 철저히 점검케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식이 역사상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지켜졌는지 아니면 얼마나 오랫동안 지켜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요단을 건너자마자 계속 전쟁을 치뤄야 했으므로, 여호수아 시대에는 면제년을 지킨다는 것이 매우 힘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후 사사 시대에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이민족(異民族)의 침략을 받았기 때문이다.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 ‘타국인’에 해당하는 ‘게르’는 이스라엘 사회에 동화(同化)되어 함께 살고 있는 이방인을 가리킨다(28:43).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에게 듣고 … 배우게. 하나님의 말씀을 영속적으로 가르쳐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6:7). 출애굽 이후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목도한 백성들조차도 하나님 앞에서 완악했다면, 그분의 전능성을 직접 목격하지 못한 자손들은 더욱 완악해질 우려가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여호와 신앙에 입각한 철저한 종교 교육은 그 같은 불행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므로, 모세는 거듭 자녀들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4:9, 6:7).
내가 그에게 명령을 내리리라. ‘명령을 내리다’에 해당하는 ‘차와’는 ‘지정하다’, ‘짐을 맡기다’란 의미이다. 즉 이는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특별한 임무와 직책(직분)을 위임하는 것을 가리킨다(Delitzsch, Pulpit Commentary). 그러므로 영역본 NIV와 RSV는 이를 ‘내가 그에게 위임할 것이다’로 번역하였다. 즉 하나님께서 모세와 여호수아를 회막으로 부르신 이유는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 곧 이스라엘의 새 지도자로 정식 위임하기 위함이었다.
구름 기둥은 장막 문 위에 머물러 있더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광 중에 회막에 임재하셨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출 40:34-35).
음란히 … 이방 신들을 따르며. 이 말은 가나안 땅의 부도덕한 우상 숭배 행위를 지적하여 한 말이다(12:31, 출 34:15). 동시에 우상 숭배 행위는 여호와와 맺은 사랑의 언약을 배신하는 행위로서 곧 여호와 신앙의 순결성을 상실하는 ‘영적 음란’(호 5:4) 행위임을 암시하는 말이다(Wycliffe).
언약을 어길 것이라. 이처럼 모세가 죽고나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고 죄악 가운데 살아갈 것이라는 예고는 모세와 함께 서 있는 여호수아를 향한 하나님의 애절한 호소라고도 볼 수 있다.
내 얼굴을 숨겨.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을 외면하사 그들로부터 모든 구원과 보호의 손길을 거둘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이스라엘이 먼저 하나님을 외면한 결과이다. 이에 대하여 후일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이 결코 구원의 손이 짧아 이스라엘로부터 은총의 얼굴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이스라엘의 죄악이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우고 있다고 분명히 지적했다(사 59:1-2). 즉 선지자 이사야는 이스라엘 위에 임한 모든 재앙과 환란의 원인이 오직 그들이 스스로 저지른 죄악 때문임을 똑똑히 일깨워 주었다.
하나님이 …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냐.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해진 인간은 자신들이 재앙을 당하게 될 때 이처럼 그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한다. 즉 스스로 축복을 거절하고 저주를, 은혜를 저버리고 재앙을 자초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자신들이 당하게 된 환란과 고통은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원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는 것 역시 그들의 부패 못지 않게 큰 죄악이다.
이 노래. 이스라엘의 타락과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한 내용(16-18절)을 주제로 하여 지은 ‘모세의 노래’(32:1-43)를 가리킨다.
이 노래로 … 증거가 되게 하라. 훗날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환란과 재앙을 당하면, 그들은 분명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외면하고 도와 주지 않는다고 원망할 것이다. 그러한 때 이 노래는 이스라엘이 당하는 모든 환란과 재앙의 원인이 오직 그들의 관영한 죄악 때문임을 깨우쳐 주는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27:3 주석 참조.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 언약을 어기리니.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참으로 간사하고 패역하기 짝이 없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를 양육하듯(사 1:2) 그들을 먹이사 배부르게 하셨으나, 그들은 도리어 마음을 완악케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욕된 것으로 여기고 그 말씀에 불순종하였다(렘 6:10). 그와 같이 끝내 하나님을 배반하고 목을 곧게 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 이미 예고되었던 재앙과 저주(17절, 28:15-68)를 받게 되었다.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증인’(히, 에드)은 고발된 어떤 범죄 사실을 확인할 때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다. 이스라엘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그 누군가에 의해 불리워질 이 모세의 노래(32:1-43)가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범죄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증인의 역할을 할 것이다.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 생전에 이스라엘의 갖은 완악함을 수없이 경험한 모세가 당연히 가질 수 밖에 없는 우려이다(출 14:12, 16:1-3, 17:1-7, 민 11:1-9, 14:1-3, 16:1-3, 21:4-5, 25:1-2).
이 말씀.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메시지가 함축성 있게 담겨진 ‘모세의 노래’(32:1-43)를 가리킨다.
하늘과 땅을 증거로 삼으리라. 항상 변함 없는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채택한 이유는 증거하고자 하는 내용의 불변성과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30:19 주석 참조.
후일에. [히, 베아하리트 하야밈] 직역하면 ‘그날들의 말미에’이다. 이는 역사의 종말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단순한 ‘장래’를 가리키는 관용어이다. 성경 다른 곳에서는 ‘후일에’(민 24:14), ‘끝날에’(4:30)로도 번역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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