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리. 이에 해당하는 ‘테네’는 본서에만 나오는 고대 광주리(4절, 28:5, 17)로서, 버들과에 속하는 낙엽 관목을 꼬아 짠 듬성한 바구니를 가리킨다.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 이스라엘의 유일 중앙 성소를 가리킨다(12:5). 당시 이방인들은 그들의 다신교적(多神敎的) 사상과 예배 양식에 따라 예배 처소를 도처에 두었고, 또한 자주 바꾸었다.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들의 기호(嗜好)에 따라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다(요 4:20-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방 풍습을 완전 배제하기 위하여 특별히 한 곳을 지정하시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곳에서만 제사드리도록 규정하셨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12:5 주석을 참조하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 ‘나의 하나님 여호와’ 또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가 아니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라 칭한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는 곧 당시의 이스라엘이 아직 하나님과 개인적인 온전한 교제관계를 이루지 못했음을 시사해 준다. 즉 당시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과 교제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중재자인 제사장을 통해야만 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직접적인 교제 관계를 누릴 수 있다.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창 12:7, 13:15, 15:18-21, 17:8)과 이삭(창 26:2-3)과 야곱(창 28:13-15, 35:12)에게 하셨던 언약의 성취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은혜를 찬양하며, 그분께 가나안 땅에서 거둔 첫 열매를 드려 감사할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
소수로 거류 … 번성한 민족이 되었는데. 야곱의 집 사람으로서 애굽에 이른 자는 모두 70명에 불과했었다(창 46:27). 그러나 그들이 모세의 인도하에 애굽을 떠날 때에는 어린 아이와 여자, 레위 지파를 빼고도 60만 명이 넘었다(출 12:37, 민 1:46-47). 이스라엘이 애굽에 체류하는 400여년 동안 유아 살해 등과 같은 각종 박해가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그 와중에서도 70명의 인구가 60만명으로 불어났다는 것은 실로 큰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같은 열조들에게 약속한 자손 번성의 축복이 온전히 성취된 결과이다(창 12:2, 15:5, 22:17, 26:4, 28:14).
고통과 신고와 압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생활하는 동안 애굽인들로부터 받은 갖가지 고난과 학대를 3중적으로 강조한 말이다. 그러나 이를 보다 세분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고통’에 해당하는 ‘오니’는 주로 정신적인 고통, 고뇌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영역본 KJV, RSV 등은 이를 ‘affliction’으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신고’에 해당하는 ‘아말’은 ‘심하게 일하다’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 대개 혹독한 ‘육체적 노고’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압제’에 해당하는 ‘라하츠’는 ‘누르다’, ‘강제하다’는 말에서 유래된 단어로, 인간의 자유로운 권리를 박탈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이를 ‘oppression’으로 번역하였다(KJV, RSV, NIV, Living Bible).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돌아보사 애굽에서 건져 내셨다.
큰 위엄. ‘위엄’에 해당하는 ‘모라’는 ‘두려운 것’ 또는 ‘공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4:34에는 ‘두려운 일’로 번역되어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렸던 10대 재앙을 의미한다.
이적과 기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연 법칙과 인간의 상식을 초월하여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가리킨다. 상세한 내용은 4:33-34 주석을 참조하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땅이 풍요롭고 축복된 땅임을 강조하는 수사학적 표현이다(Wycliffe). 그러나 이 표현은 어디까지나 천지 만물의 주인이시고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애 3:38)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 언약적 측면에서 이해해야 하며, 단지 물질적인 측면에서만 이해하여서는 곤란하다. 11:9 주석 참조.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가나안 땅의 토지 소산의 ‘맏물’을 여호와의 단에 바칠 때, 그 헌물과 더불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 신앙 고백(5-10절)을 하도록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비록 그들이 허락하신 땅 가나안에서 기름진 열매를 풍성히 맛보며 평안하게 살아간다 할지라도, 결코 자신들의 과거 비참했던 처지와 또한 그 처지를 돌보아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즉 출애굽의 감동을 생생히 재현시키며 계속 보존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한편 이 신앙 고백의 내용에는 (1) 과거 비참했던 애굽 생활에 대한 겸손한 회고(5-6절), (2) 바로의 권세를 꺾으시고 이스라엘을 그 손에서 인도해 내신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찬양(7-8절), 그리고 (3)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9절) 등이 담겨 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여기서 ‘여호와 앞’이란 구체적으로 제물을 놓는 제단 위를 가리킨다(4절). 그런데 하나님을 경배하기에 앞서 이처럼 예물을 바치는 것은 예배드리는 자가 먼저 갖추어야 할 기본 자세가 곧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임을 교훈해 준다(시 50:14, 골 3:16-17).
레위인과 …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하나님께 바쳐진 첫 열매들(4절)이 레 2:1-3의 규정에 따라 소제물(素祭物)로 사용되지 않고, 레위인 및 객과 더불어 감사 잔치를 여는 데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즉 하나님께서는 감사의 표시로 당신께 봉헌된 자기 백성의 소출이 모든 사람에게, 특히 가난한 이웃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나눠 주는 용도로 사용되기를 원하셨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 여기서 ‘모든 소산’이란 논밭의 식물 뿐 아니라 집에서 기르는 가축(生畜)까지 의미한다(14:23). 이스라엘은 이러한 모든 것들의 한 해 총수입 중 1/10을 ‘제1의 십일조’로 레위인들에게 내야 했으며, 그 나머지 9/10에서 다시 1/10을 ‘제2의 십일조’로 구별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 여기서 ‘객과 고아와 과부’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소외된 이른바 이스라엘의 3대 약자 계층이다(14:29, 16:11, 14, 24:17, 19-21 등). 그런데 여기에 또한 레위인들이 포함된 것은, 이들 역시 이스라엘 12지파 중 기업이나 분깃이 없는 자들로 오직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십일조에 의지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14:27).
먹고 배부르게 하라. 이미 14:28-29에서 언급된 바 있는 규례이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3의 십일조’로 이스라엘의 예배 생활을 돕는 레위인들을 공궤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객과 고아와 과부 역시 돕도록 명령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객’(히, 게르)은 귀화한 이방인을 가리킨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스라엘의 일원으로 인정은 받았어도 기업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곤궁하고 빈한한 자의 위치에 머물렀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도 전에 애굽에서 이방인으로 생활하였음을 들어 귀화한 이방인들을 선대하도록 명하셨던 것이다(출 22:21, 레 19:33-34). 다음으로 ‘고아와 과부’(히, 야툼 웨 알마나)는 뒤에서 그들을 돌보아 주는 자들이 없는 약자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고아의 아버지로, 과부의 재판장으로 자처하시고 그들을 돌보신다(시 68:5).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그분의 뜻을 받들어 그러한 불우 이웃들을 돕는 것은 마땅하다(고후 9:8-9, 약 1:27).
내가 성물을 내 집에서 내어. ‘성물’(聖物)에 해당하는 ‘코데쉬’는 ‘바쳐진 분깃’(RSV, NIV, the sacred portion)으로도 번역되는 단어이다. 그런데 여기서 ‘십일조’를 십일조라 하지 아니하고 이처럼 ‘성물’로 칭하는 까닭은 고백자가 자신의 힘으로 이웃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구제하는 것 뿐임을 인식시키기 위해서이다.
주의 명령을 범하지도 …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 여기서 ‘범하다’에 해당하는 ‘아바르’는 단순히 법률 따위를 ‘어기다’는 뜻 뿐 아니라, 정도를 넘어서 ‘지나쳐 달리다’란 뜻도 있다. 이는 곧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적으로 거역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과도하게 만용을 부리는 것도 역시 잘못임을 깨우쳐 준다. 그런데 이런 것들보다 더한 잘못은 아예 하나님의 명령을 망각해 버리는 일이다. 이러한 자는 단순히 이웃에 대한 관심이 없는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자이다.
부정한 몸으로 …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시체나 기타 이유로 의식상(儀式上) 몸이 부정해진 중에는 성물(聖物)을 하나님께 드리지 아니하였다는 뜻이다(민 19:11-19). 그 까닭은 몸이 부정(不淨)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바치는 성물에 가까이 하는 것은 율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레 22:3).
죽은 자를 위하여 … 쓰지 아니하였고. 공동번역은 “그것을 … 죽은 혼령에게 바친 일도 없습니다”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곧 죽은 자(故人)의 기일(忌日)을 맞이하여 제사 음식을 장만하는 데 여호와께 구별된 십일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명령하신대로 다 행하였사오니. 이는 고백자가 하나님께 ‘온전한 십일조’를 드렸다는 뜻이다. 한편 선지자 말라기는 이러한 십일조와 관련하여 과부와 고아 및 나그네 등을 돌보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의 소유를 도적질하는 행위라고 언급하였다(말 3:5-10). 이는 가난한 이웃에게 긍휼을 베푸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는 십일조 정신이며(호 6:6), 형식적으로 바치는 십일조는 무의미함을 교훈해 준다.
보시고. [히, 샤카프] 7절의 ‘보시고’(히, 라아)와는 어감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라아’는 의도적으로 ‘보다’, ‘주시하다’는 뜻이지만, ‘샤카프’는 은밀하게 ‘지켜 보다’는 뜻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시사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은밀히 지켜보시고 그 행위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시다(마 6:3-4).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기도의 제목이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 전체를 위한 것임에 유의해야 한다. 본래 개인의 번영이란 그 개인이 속해 있는 집단 전체의 번영과 병행될 때 참된 의의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도드림에 있어서도 개인의 유익을 구하기에 앞서 먼저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이다(고전 10:23-24, 33).
규례와 법도. 4:1 주석 참조.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기서 ‘그런즉’이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말씀에 순종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밝혀 준다. 그것은 곧 천하 만물의 주권자이자 이스라엘의 구속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규례와 법도를 친히 주사 그것을 지킬 것을 명령하셨다는 사실이다. 즉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는 ‘아니오’란 있을 수 없고 오직 순종만이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명령을 지키되 ‘마음과 성품을 다한다’는 것은 곧 인간의 전인격과 모든 정성을 다한다는 뜻이다. 보다 상세한 내용은 6:5 주석을 참조하라.
그 도를 행하고. ‘그의 길 또는 그의 뜻을 따르고’로 의역할 수도 있는데, 이는 곧 하나님을 자신의 인도자로 전적으로 의뢰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이는 곧 하나님이 자신의 주권자이심을 행동으로 입증해 보이는 것이다. 누구든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일을, 마귀에게 속한 자는 마귀의 일을 하기 마련이다(요일 3:8-10).
그의 소리를 들으리라. 자신의 온 마음과 의식이 온전히 하나님께로 향해 있음을 뜻한다. 사랑하는 연인끼리는 마음과 정신이 온통 상대방에게로만 쏠려 있어, 단 한 마디의 말도 놓쳐 버리지 아니하고 단순한 동작 하나조차도 예사롭게 보지 않기 마련이다.
성민. [히, 암 카도쉬] ‘구별하다’(카도쉬)와 ‘백성’(암)이 합쳐진 말로서, 곧 ‘보배로운 백성’(18절)과 같은 의미이다(출 19:5-6). 7:6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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