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주석, 신명기 2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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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고환이 상한 자나 음경이 잘린 자. 성기(性器)는 남녀를 구별하는 중요한 상징(symbol)이니, 그것이 거세되었거나 있더라도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남자는 더 이상 남자라고 할 수 없다. 이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실제로는 남자의 구실을 전혀 할 수 없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나 죄와 타락으로 인하여 본래의 영화로운 모습을 상실한 인류에 비유될 수 있다(창 1:27, 3:19, 시 8:4-5). 따라서 성기가 거세된 남자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곧, 범죄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자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음을 교훈해 준다(히 10:22). 이러한 규례는 마치 몸에 흠이 있는 자가 제사장이 될 수 없었던 것과 같이(레 21:16-24),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지니는 제사장적 성격(출 19:6)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Pulpit Commentary).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여호와의 총회’란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제사 의식이나 큰 행사로서의 공식적인 예배 의식을 가리킨다(9:10). 그러나 본 절에서 가리키는 바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1) ‘여호와의 총회’를 이스라엘 공동체로 이해하여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섞여 살 수 없다는 뜻이라는 견해이다. 그러나 비록 생식기에 이상이 있는 자라 할지라도 이스라엘 백성임엔 틀림 없으니(사 56:3-4), 이는 전적으로 잘못된 주장이다. (2) 이스라엘 백성과 결혼할 수 없다는 뜻으로 보는 견해이다(Patrick). 그러나 이는 8절 내용에 비추어 볼 때 타당치 않다. (3) 이스라엘 백성으로 귀화(歸化)할 수 없다는 뜻으로 보는 견해이다(Turner). 그러나 이 역시 첫 번째 경우와 같은 이유로 받아들일 수 없다. (4) 이스라엘 공동체나 회합에서 어떠한 직책도 맡을 수 없다는 뜻으로 보는 견해이다(Mattew Henry, Dake). 그러나 이 역시 8절에 의거하면, 이방 족속도 3-4대가 지나면 직책을 맡을 수 있다는 뜻이 되므로 부자연스럽다. (5) 앞서의 일반 개념에 의거한 것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리는 거국적인 공식 집회나 예배에 참여할 수 없다는 뜻으로 보는 견해이다(Calvin, Wycliffe). 즉 생식기에 이상이 있는 자나, 사생자, 암몬과 모압 족속 등은 개인적으로는 여호와 신앙에 귀의했다 할지라도 이스라엘만의 거국적인 공식 예배나 제사 의식에 참여하는 것은 일정 기간, 또는 영원토록 금지되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견해는 8절의 내용과도 상충되지 않기 때문에 가장 무난한 것 같다. 이처럼 신정 국가 이스라엘의 여호와 총회는 스스로 제사장직의 성격에 미달한 자들을 제외시킴으로써 그 제사장적 거룩성을 보존해야 했다. 한편 자격 미달자의 성격으로는 신체적 조건(1절), 윤리적 조건(2절) 및 역사적 조건(3-8절) 등이 고려되었다(Wycliffe).

 

23:2 사생자. [히, 맘제르] 원래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슥 9:6에는 이 말이 ‘잡족’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런데 유대학자들은 이를 ‘근친 상간에 의해 태어난 자식’으로 보고 있다(Mishna). 그리고 70인역(LXX)과 불가타(Vulgate)역은 ‘음행의 자식’으로 번역하였다. 반면 혹자는 ‘간음으로 인해 태어난 모든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Calvin). 따라서 여기서 ‘사생자’란 비합법적인 결혼이나 불법적인 성(性)관계로 인하여 태어나는 모든 자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십 대에 이르기까지. 이는 문자 그대로 ‘10대 후손까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영원히’, ‘언제까지라도’라는 뜻이다(Keil, Dake, Lange).

 

23: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과 그의 두 딸 간의 근친 상간으로 인해 태어난 족속(창 19:36-38)으로서 원래는 이스라엘과 화친할 대상이었다(2:9,19). 그러나 이 두 족속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 광야에서 방랑할 때 호의는 커녕 이스라엘의 화친 제의에도 불구하고 이방 선지자 발람(Balaam)을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었다(민 22:1-24:25).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행군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적극적으로 대적하고 방해함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한 죄를 범했다. 그러므로 이들은 ‘여호와의 총회’에 참여하는 것이 영원토록 금지되었다.

 

23:4 메소포타미아의 브돌. 갈그미스(Carchemish)에서 남쪽으로 약 20 km 정도 떨어져 있는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 위치한 성읍이다. 오늘날 이곳은 ‘텔 아마르’(Tell-Ahmar)로 불리는데 이라크 영토에 속한다.

브올의 아들 발람. ‘발람’의 이름 뜻은 ‘백성을 멸망시키는 자’, ‘탐닉자’이다. 그는 여러 차례 하나님의 제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물질의 탐욕에 못이겨 모압 왕 발락의 요청을 받고 결국 이스라엘을 음행의 꾀로 파멸시킨 자이다. 따라서 이러한 그의 행동은 그의 이름 뜻과 어울린다. 한편 ‘발람’(Balaam)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민 22:5 주석을 참조하라.

 

23:5 그 저주를 … 복이 되게 하셨나니.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에 근거한 행위이다(창 12:2).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큰 민족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그들에게 닥치는 어떠한 해(害)도 마침내 유익한 것으로 바꾸어 주셨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善)을 이루게 된다(롬 8:28).

 

23:6 그들의 평안함과 형통함을 … 구하지 말지니라. 이것은 단순한 악감정(惡感情)에 의한 보복이 아니다. 이 역시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고,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리라는 여호와의 변치 않는 약속(창 12:3)에 근거한 행위이다.

 

23:7 에돔 사람. 이삭의 아들인 에서의 혈통을 이어받은 후예들로서 야곱의 혈통을 이어받은 이스라엘과는 형제국이다(창 36:9). 그러나 이들도 암몬이나 모압 족속과 같이 여행 중의 이스라엘을 박대하였다(민 20:14-21). 그 결과 두 민족간에 반목과 질시가 싹트게 되었다.

미워하지 말라. ‘미워하다’에 해당하는 ‘타아브’는 도덕적 또는 종교적인 이질감을 이유로 상대방을 지독히 혐오하며 가증스럽게 여기는 행위를 가리킨다(7:26).

그는 네 형제임이니라. 이처럼 에돔 족속이 이스라엘과 밀접한 혈연 관계였던 만큼 이스라엘에게 행한 잘못의 책임은 다른 족속에 비해 더 엄중하게 다루어져야 마땅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다른 족속(3-6절)과는 달리 그들에게 관용을 베푸셨다. 이는 그래도 그 족속이 열방 중 이스라엘과는 가장 가까운 친형제 족속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결국 이것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명령이며, 동시에 최소한의 선을 베풀만한 이유가 있거든 최대한 호의를 베풀라는 명령이다.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물론 이스라엘은 애굽 땅에서 애굽인들이 자신들에게 가했던 400년간의 압제를 쉽게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출 1:8-22, 2:23).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미워하지 말라고 명하신 까닭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1) 이스라엘은 강제로 애굽으로 끌려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려간 것이다(출 1:1-7). 따라서 애굽인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지배권을 행사한 것은 어느 정도 정당한 측면이 있다. (2) 당시 가나안 전역에 몰아 닥쳤던 대기근을 고려할 때 애굽은 한때 이스라엘의 따뜻한 안식처였다(Calvin). 여기서도 우리는 증오보다는 사랑을, 분쟁보다는 화평을 더 원하시는 하나님의 기본 속성을 엿볼 수 있다.

 

23:8 삼 대 후 자손은 … 들어올 수 있느니라. 단 이때 준수되어야 할 전제 조건은 먼저 할례를 받고 여호와 신앙으로 개종하는 것이었다(창 17:9-14).

 

23:9 적군을 치러 출진할 때. 이때는 평상시라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행위들이 곧잘 저질러지기 쉬운 때이다. 즉 평상시에는 법과 질서가 잘 준수되던 사회에서도 전시에는 폭력과 무질서가 난무하기 십상이다.

모든 악한 일을 스스로 삼갈지니. 특별히 여기서 ‘악한 것’이란 10-13절에 나타난 바 의식적 불결을 가리킨다. 성도가 성결의 의무를 태만히 하는 것은 어떠한 구실이나 핑계로도 용서될 수 없다(Calvin). 이는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이니 이에 하나님은 본 절과 같은 경고를 주고 계시는 것이다(약 1:27).

 

23:10 밤에 몽설함으로. 이에 해당하는 원어 ‘믹케레 라옐라’는 ‘밤중에 우연히 일어난 일 때문에’라는 뜻이다. 그런데 70인역(LXX)은 이를 ‘밤 동안 정액의 유출로 인하여’로 번역하였다. 결국 본 절은 남자들이 밤에 성적(性的)인 꿈을 꾼다거나 기타 다른 사유로 무의식 가운데 발생하는 정액(精液)의 유출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이러한 일은 의학적으로 인체에 아무런 해도 없으며 오히려 남성의 생리상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까닭은 어디까지나 구약 시대의 정결례법적인 차원에서일 것이다(레 15:16-18).

진영 밖으로 나가고. 한 사람의 의식적(儀式的) 부정이 진영 전체의 병사들에게 오염되는 것을 금하는 상징적 행위이다.

 

23:11 해 질 때에 목욕하고 … 들어올 것이요. 정액의 유출로 인하여 부정해진 자는 반드시 물로 온 몸을 씻어야 하며, 그러고도 저녁까지 부정하다는 모세 율법에 근거한 규례이다(레 15:16). 그런데 이처럼 전쟁에 임하는 병사들이 몸을 성결케 하고 성적 관계를 멀리하는 것은 당시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보편화된 현상이었다. 특히 이스라엘 군대는 거룩하신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여호와의 군대였으므로 더욱 삼가 성결 규례를 지켜야 했다.

 

23:12 진영 밖에 변소를 마련하고. 이스라엘 진영은 거룩하신 여호와께서 함께 거하시는 곳이므로, 항상 성결을 유지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 군대는 생리적인 문제를 진 밖에서 해결해야 했다. 이처럼 야영생활에 있어서의 생리적인 배설 문제까지도 세심하게 신경쓰는 것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군대의 모습을 지녀야 했다. 또한 그로써 자신들의 의식적인 성결을 유지할 뿐 아니라, 진영 중에 임재하여 계시는 하나님(14절, 민 9:15-23)께 대하여 충분한 경의도 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울러 본 규례는 여러 사람들이 합숙하는 진영(陳營)에서 공중위생을 유지키 위한 규례이기도 했다.

 

23:13 기구에 작은 삽을 더하여. 여기서 ‘기구’에 해당하는 ‘아젠’은 무기나 혹은 삽, 곡괭이 같은 장비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70인역과 불가타역은 이를 ‘허리띠’로 번역하고 있다. 만일 이 번역을 따른다면, 본 절은 대변을 보러 밖으로 나갈 때 ‘허리띠에 작은 삽을 매달고’ 나가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전후 문맥 상 부자연스럽다. 당시 상황이 전쟁을 앞두거나 전쟁 중인 상태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이는 (1) 대변을 보러 밖으로 나갈 때 자신의 ‘무기’ 외에도 작은 삽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거나(KJV, RSV), (2) 군인으로서 갖추고 있는 ‘장비’ 중에서 삽으로 쓸 수 있는 것을 가지고 나가서 대변을 보라는 의미일 것이다(NIV, Living Bible).

몸을 돌려 … 덮을지니. 이처럼 하는 이유는 부정한 배설물을 눈으로 봄으로 인하여, 의식적 혹은 정신적 부정(不淨)을 입지 않기 위함이다.

 

23:14 여호와께서 … 네 진영 중에 행하심이라. 이스라엘이 대적과 싸울 때마다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셔서 친히 대적을 치고 구원해 주시리라는 언약(20:1-4)에 근거한 행위이다.

그러므로 네 진영을 거룩히 하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 11:45)는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성격의 명령이다. 그런데 이처럼 진중영의 성결을 명령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이 전쟁을 하기에 앞서 먼저 싸워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를 시사해 준다. 즉 이스라엘은 눈앞에 보이는 적군과 싸우기에 앞서 먼저 그들 자신의 부정 및 죄와 싸워야 했다(막 7:20-23).

불결한 것. ‘발가벗다’ 또는 ‘발가벗기다’는 뜻의 ‘아라’에서 유래한 말로 곧 ‘수치스러운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공동번역에는 ‘더러운 것’, KJV에는 ‘부정한 것’(unclean thing), 그리고 RSV와 NIV, Living Bible에는 ‘추잡한 것’(anything indecent)으로 각기 번역되어 있다. 한편 율법이 이처럼 정액, 대변, 월경 등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생리적 현상까지 부정(不淨)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의식상(儀式上) 부정한 것으로 간주된 모든 것들로부터 분리된 삶을 살게 함으로써, 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에 의해 성별(聖別)된 공동체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일상 생활 속에서 늘 하나님의 거룩성을 인식케 하여, 그들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거룩하고 정결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23:15 종이 그 주인을 피하여 … 도망하거든. 여기서 의미하는 종은 모든 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혹독한 학대를 못 이기거나 기타 정당한 사유로 인하여 이스라엘 사회로 도망쳐 온 이방 족속 노예를 가리킨다(Onkelos, Calvin, Dake, Keil, Matthew Henry).

그 주인에게 돌려주지 말고. 고대 사회에서는 일단 도망쳤다가 도로 주인에게 붙잡혀 온 노예는 대부분 사형에 처하거나 두 발이 잘리는 등 중벌에 처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the Hammurabi Code). 따라서 주인의 부당한 압제를 견디다 못해 도망쳐온 노예를 다시 그 주인에게 인계한다는 것은 그를 죽음 속으로 몰아넣는 비인도적인 행위가 된다. 따라서 모세 율법은 하나님의 긍휼에 근거하여 이를 금지시키고 있다.

 

23:16 네 가운데에 거주하게 하고. 도망쳐 온 이방 족속 노예에 대하여 이스라엘은 도피성(수 20:1-6)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여 그들에게 신변 안전과 안식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정당한 사유로 인해 도망쳐 나온 종들에게 해당되는 규례일 뿐(15절), 도둑질이나 간음, 살인 따위를 저지르고 도망쳐 나온 이방 노예들에게까지 해당되는 규례는 아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그러한 도망자들까지 보호해준다면 그것은 사랑의 행위가 아니라 도리어 법과 공의를 파괴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Calvin). 이 점은 마치 이스라엘의 도피성 제도가 무죄한 오살자(誤殺者)들에게만 그 혜택을 부여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민 35:16-25).

 

23:17 창기. [히, 케데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직업적으로 몸을 파는 여자인 ‘조나’와는 달리(22:21), 주로 우상의 신전에 소속되어 우상 숭배의 한 행위로써 종교적인 매춘 행위를 하는 창녀를 가리킨다(창 38:21). 그러므로 공동번역은 이를 분명하게 ‘성소에서 몸을 파는 여자’로 번역하였다.

남창. [히, 카데쉬] ‘케데샤’(창기)와 마찬가지로 ‘카다쉬’(바치다, 봉헌하다)에서 유래한 말로 성소에서 몸을 파는 남자를 가리킨다. 다른 곳에서는 ‘남색(男色)하는 자’로 번역되어 있는데(왕상 14:24, 15:12, 22:46), 성경 기록으로 보아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성(性)의 여신 ‘아스다롯’(Astarte)을 섬기는 예배의식에서 창기와 남창을 통한 매음 행위가 널리 성행하고 있었다고 한다(Keil, Pulpit Commentary).

 

23:18 개 같은 자의 소득. 이것은 두 가지 다른 해석이 있다. (1) 문자적 의미로 ‘개를 판 돈과 같이 부정하고 추잡한 거래에서 생긴 소득’(계 22:15)으로 보는 견해이다(Calvin, Matthew Henry). (2) ‘개’를 남창으로 이해하여 ‘남창의 소득’으로 보는 견해이다(Dake, Lange). 그런데 17절에 근거해 볼 때 일단은 후자의 견해가 더 타당한 듯하다. 그러나 이는 포괄적으로 ‘음란하고 사악한 짓을 통해 얻어지는 모든 수입’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은 결코 부도덕한 행위나 부정한 방법으로 벌어 들인 돈이어서는 안 된다. 그 같은 헌금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각종 부정이나 죄악을 허용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선한 목적이라 할지라도 그릇되고 부정한 수단은 결코 합리화될 수 없다.

가증한 것. 이에 해당되는 원어 ‘토에바’는 ‘심히 꺼리다’, ‘구역질나다’, ‘강력히 거부하다’란 의미를 지닌 ‘타아브’에서 파생된 말로, 곧 ‘지독히 싫어하는 것’, ‘혐오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성경에서 이 말은 하나님의 ‘거룩성’(히, 코데쉬)과 정면 배치되는 것을 가리킬 때 종종 사용되고 있는데(7:26, 13:14), 주로 우상 숭배 행위나 성적(性的) 문란 행위 등이다.

 

23:19 형제에게 … 이자를 받지 말지니. 일종의 고리 대금업을 금지하고 있는 규정으로, 이미 출 22:25과 레 25:35-38에서 언급된 바 있다. 즉 동족 중 가난한 이웃이 생계 유지를 위해 돈이든 양식이든 빌려갔을 때 그에게 이자까지 요구하는 것은 그들의 생계를 더욱 압박하는 결과가 된다. 따라 약자 보호 및 이웃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는 차원에서 모세 율법은 그들에게는 이자를 받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다.

 

23:20 타국인에게 … 이자를 받아도 되거니와. 출 23:25과 레 25:35-38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규례이다. 이와같은 차이점은 본 신명기의 규례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정착생활을 하게 될 때를 대비하여 주어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즉 아무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생활을 하게 되면 주변의 다른 민족들과 무역을 할 수 밖에 없으며, 그럴 경우 상거래에 있어서 그들과의 금전 대여에 따른 이자 소득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1) 먼저 ‘타국인’(히, 노크리)들은 율법 밖에 있는 자들로서 율법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고 (2) 또한 그들은 생계를 위한 가난한 동족들의 차용과는 달리, 더 많은 이윤을 남기려고 상업상의 목적으로 돈을 빌린 자들이기 때문이다.

 

23:21 서원하거든. [히, 나다르] 원뜻은 ‘약속하다’이다. 그러나 성경상에서 이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약속을 뜻하는 경우가 전혀 없고, 단지 인간이 하나님께 대하여 무엇을 드리거나 어떠한 일을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만을 가리킨다(12:11, 창 31:13, 민 6:2, 삿 11:30, 삼상 1:11, 사 19:21). 레 27:2, 민 30:2 주석 참조.

 

23:22 22-23절 인간이 하나님께 대하여 무엇을 맹세로 약속하는 것, 곧 서원하는 것은 자신의 신앙에서 비롯된 자발적 행위이지 결코 억지로 강요당하며 행하는 약속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그 서원한 것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조롱하는 행위가 되어 죄가 된다. 따라서 지키지 못할 서원 같으면 애초부터 서원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것이고, 일단 서원했으면 비록 자신에게 해로울지라도 ‘여호와 경외 사상’에 의거하여 충실히 지키는 것이 신실한 자의 태도이다.

 

23:23 입으로 언약한대로 행할지니라. 이에 대하여 시편 기자는 언급하기를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라고 하였다(시 15:4).

 

23:24 24-25절.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 대하여 관심과 사랑을 베푸는 것을 잊지 않도록 촉구하고 있는 규례이다(15:1-5, 7-10, 16:11, 14, 24:6, 10-22, 26:12-15). 즉 본문은 굶주린 이웃이나 길가던 배고픈 나그네가 비록 남의 포도원이나 곡식 밭에 들어가서 주린 배를 채운다 할지라도 ‘관용과 긍휼의 정신으로’ 그것을 용납하라는 규정이다. 이 규정은 후일 시장한 예수의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먹은 사실에서도 나타난다(마 12:1, 눅 6:1).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아랍권에서는 이러한 규정이 인정되고 있다고 한다(Robinson, Thomson).

그릇에 담지는 말 것이요. 만일 다른 사람의 과일이나 곡식을 따 그릇에 담거나 혹은 여타 기구를 사용하여 거두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이미 주린 배를 채우는 단계를 넘어서 남의 소유를 제멋대로 반출해 내는 행위가 된다. 따라서 그러한 행위는 분명 공의의 정신에 위배되니, 이에 율법은 이를 엄금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율법은 사랑과 공의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이 없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울러 그것은 곧 행위 완전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속성이 그대로 반증된 좋은 예이다(사 30:18, 요일 4:7).

 

23:25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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