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주석, 신명기 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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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네 형제. 여기서 이 말은 혈연적인 형제나 친척 또는 자기 이웃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사실은 “네가 그를 알지 못하거든”(2절)이란 구절에 의해 뒷받침된다.

길 잃은 것을 보거든. ‘길 잃다’에 해당하는 ‘나다호’는 본래 ‘미혹되다’는 뜻으로, 특히 외부의 힘이 작용할 때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방황을 가리킨다. 아무튼 이스라엘은 많은 가축들을 기르는 유목민족이었고, 그들이 기르는 가축은 대개 방목(放牧)을 했기 때문에, 가축들 중에는 무리를 이탈하여 길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삼상 9:3). 본 절은 바로 이러한 경우를 우연히 목격한 때를 의미한다.

못 본 체하지 말고. 이웃의 곤경이나 손해를 무관심하게 지나쳐 버리지 말라는 말이다. 역으로 말하면 이는 적극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그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라는 뜻이다. 이와 관련하여 후일 야고보는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고 하였다(약 4:17).

너는 반드시 … 돌릴 것이요. 모세 율법의 특징은 이처럼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차원의 문제까지도 성문법(成文法)으로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으로 볼 때에도 모세 율법은 도덕적 최저 수준만을 법으로 명기한 이방 법전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결과 성화(聖化)를 위해 부여하신 하나님의 말씀임이 분명하다.

 

22:2 네 집으로 끌고 가서 … 네게 두었다가. 여기서 끌고 가는 행위는 자신의 소유로 삼기 위함이 아니라, 이웃의 가축을 보살펴 주기 위한 행동이다. 결국 이는 그 가축의 주인이 멀리 떨어진 곳에 살거나 혹 그 가축이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 모를지라도 원주인의 소유권을 철저히 존중해 주는 행동이다.

그에게 돌려 줄지니. 형제의 잃어버린 물건을 보유한 습득자는 그 물건을 원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말아야 했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습득자는 대중이 모여드는 공공 장소에서 그 물건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너 차례 큰 소리로 외쳐야 했다고 한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I. p. 814). 그 결과 만일 원주인이 나타났을 경우 그에게 습득물을 돌려주어야 함은 기정 사실이다. 그러나 백방으로 노력해도 원주인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원칙상 습득자가 그 물건을 소유할 수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 물건을 가난한 자에게 주었다고 한다(상게서).

 

22:3 나귀라도 … 의복이라도. 여기서 ‘나귀’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대표하고, ‘의복’은 생명이 없는 모든 물건을 대표한다. 따라서 이것들은 ‘이웃이 잃어버린 모든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22:4 나귀나 소. 사람이나 짐을 실어 나르며 수레를 끌고 기타 농사 일에 사용되는 모든 가축을 대표한다.

형제를 도와 … 일으킬지니라. 물론 형제에 대한 동정으로도 그를 도와야 하지만(Metthew Henry),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구체적인 행위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것이 본 규례의 강조점이다(Wycliffe). 한편 출 23:4-5에서 모세는 원수나 미워하는 자의 어려움까지도 돌보아 주라고 가르쳤다. 결국 이 모든 말은 ‘하나님 사랑’과 더불어 십계명의 2대 정신(마 22:37-40)중 하나인 ‘이웃 사랑’의 정신을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공동체답게 매일매일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하였다(요일 4:20). 이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명쾌하게 지적한 말이다.

 

22:5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남녀의 옷이 비슷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 절의 근본 의미를 옷 입는 방법이나 옷의 모양에 관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다만 이는 남녀가 서로 구별된 옷차림을 통하여 경건한 삶을 살도록 교훈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남녀를 각기 구별되게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질서(창 2:7, 21-22)에 순응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Keil). 그러므로 이러한 남녀의 성(性) 구별을 무시하고 남녀가 의도적으로 의복을 바꿔 입는 등 하나님의 신성한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은 곧 삼위 하나님의 질서와 단순성에 위배되는 가증스런 일로서, 실로 방종과 타락에로 향하는 첩경이다. 한편 혹자는 주장하기를, 이처럼 남녀가 의복을 바꿔 입는 풍습은 본래 이스라엘 사회에는 없던 것으로 후대 가나안인들의 풍습에서 영향받은 것이라 한다(Spencer).

의복. [히, 켈리] ‘준비하다’는 뜻의 ‘카라’에서 파생된 말로 곧 ‘준비된 어떤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단순히 옷 뿐만 아니라 각종 장신구나 기구, 그릇 따위 등의 모든 기물을 일컫는 단어이다.

여호와께 가증한 자니라. ‘가증하다’에 해당하는 ‘토에바’는 특히 우상 숭배 행위와 관련하여 몹시 혐오스러운 것, 구역질나는 것 등을 의미한다(7:26, 18:9). 남녀가 서로를 구별하지 않는 모든 행위는 하나님께서 우상숭배 만큼이나 싫어하고 역겨워하는 것이다.

 

22:6 어미 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비록 자연계를 정복하고 주관할 수 있는 특권이 인간에게 부여되었지만(창 1:28), 인간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 근거하여 자연계를 관리하고 보전해야 한다(출 23:19, 레 22:18). 그러므로 본 규례는 다음 두 가지 교훈을 준다. 첫쩨,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 인간은 그 은혜를 또한 자연계에 돌릴 줄 알아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창조 질서로 인하여 동물계에까지 형성되어 있는 어미와 자식간의 사랑어린 애정 관계는 신성하게 존중되어야 한다.

 

22:7 그리하면 … 장수하리라. 부모 공경에 따른 장수의 축복(5:16, 출 20:12)이 자연을 보호할 때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 중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간과하지 않는 자야말로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자로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마 5:19).

 

22:8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팔레스타인의 가옥은 대개 지붕이 슬라브 형식으로 평평하게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지붕은 종종 휴식이나 취침, 기도의 장소 등으로 사용되었으므로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다(삼하 11:2, 느 8:16, 행 10:9). 따라서 자칫 실수할 경우 사람들이 지붕 위에서 아래로 떨어질 위험성이 있었는데, 본 규례는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난간을 설치하도록 명하고 있다. 결국 이 규례는 자신의 사소한 부주의나 태만, 실수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사소한 것에까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한편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난간의 높이는 대략 1m 정도는 되어야 했다고 한다(Mattew Henry’s Commentary, Vol. I. p. 815).

그 피가 네 집에 돌아갈까. 벌목(伐木)을 하던 중 ‘부지중’에 살인한 경우와는 대조를 이룬다. 왜냐하면 그 때는 도피성에 피함으로써 피흘린 허물을 사함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19:5). 아무튼 본 절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태만과 게으름으로 그 책무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이웃에게 해를 입혔을 경우에는 그 피의 책임이 자신에게로 돌아감을 보여 준다.

 

22:9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본 규례는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창조하신 ‘순수한 상태’를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심오한 영적 교훈을 주고자 의도한 규례이다. 즉 성별(聖別)된 공동체 이스라엘만이 가지고 있는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생활 속에서 원형(原型) 그대로 유지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규례이다. 그런 점에서 아마 여기서는 일상 생활에 있어서 가나안의 이교(異敎)적 풍습과 타협하기 쉬운 인간의 본성을 경계하려는 데 근본 의미가 있는 것 같다(레 19:19).

다 빼앗길까 하노라. ‘빼앗기다’에 해당하는 ‘펜 카다쉬’의 원뜻은 ‘성결하지 않다’, ‘깨끗하지 못하다’이다. 따라서 본 절은 이스라엘이 이방인과 혼합하면 영적으로 성결을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22:10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혹자는 증거하기를, 이러한 풍습은 고대 가나안인들 사이에서 행해졌던 것이라 한다(Lange). 어떻든 이 두 짐승은 보폭과 힘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두 짐승을 한 멍에에 묶는다면 상당한 부조화를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이는 영적으로 성도가 세속인들과 타협하거나 동화하는 것을 금하는 규례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후일 사도 바울은 신자가 불신자와 함께 멍에를 메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다(고전 7:14-16).

 

22:11 양 털과 베 실로 섞어 짠 것. 이 역시 위의 두 규례(9-10절)와 마찬가지로 거룩한 여호와 신앙과 세속적인 이방 신앙, 그리고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혼합시키지 말고 이스라엘의 순수성과 순결성을 유지하라고 촉구하는 규례이다(Calvin). 레 19:19 주석 참조.

 

22:12 겉옷의 네 귀에 술을 만들지니라. 히브리인들의 겉옷은 대개 통으로 되어 있고, 그 앞뒷면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히 네 개의 모서리(귀)가 있게 마련이다. 바로 이 네 모서리(귀)에 ‘술’(fringes, KJV / tassels, NIV)을 달도록 하였는데, 이처럼 겉옷 네 귀에 술을 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그 앞에서 거룩하게 살 것을 다짐하는 일종의 의식(儀式) 행위이다. 왜냐하면 겉옷에 다는 이 ‘술’은 한 눈에 자신이 선민 이스라엘 백성임을 나타내 주며 또한 이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계명을 기억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민 15:38-40). 한편 후대 유대인들은 8가닥의 실을 5개의 매듭으로 묶어 이 술을 만들었는데, 곧 13이라는 숫자를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각 문자마다 고유 숫자를 갖고 있는 히브리어에 있어서,이 ‘술’을 뜻하는 ‘치치트’는 그 합계 수치가 600이다. 그러므로 ‘술’의 모양과 ‘술’이란 문자가 지닌 상징적 숫자를 합한 수는 모세 율법의 총 조항수인 613과 일치하는데, 이것은 분명 그 옷술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계명을 기억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그렇게 맞춘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훗날 바리새인들은 이와 같은 ‘술 의식’의 근본 정신을 망각한 채 자신들이 율법을 잘 지키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하여 옷술을 크게 만들어 달고 다님으로 예수의 책망을 받았다(마 23:5). 따라서 무슨 일이든 그 형식도 중요하지만, 우선적으로 존중되어야 할 것은 그 속에 담겨 있는 참된 정신임을 늘 명심해야 한다.

 

22:13 그에게 들어간 후에 그를 미워하며. 사람이 만일 정욕에 따라 비천한 사랑의 감정으로 아내를 얻는다면, 그 사랑은 이처럼 정욕이 채워진 후에는 곧 미움이나 또는 싫증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말에 대한 암논의 경우는 좋은 예이다(삼하 13:14-15).

 

22:14 처녀임. [히, 베툴림] 결혼 첫날 밤 처녀가 최초의 성(性) 관계를 가짐으로 인해 생기는 혈흔, 곧 ‘피 묻은 자리옷’를 가리킨다. 고대의 유대 풍습상 이것은 신부가 자신의 처녀성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물이었으므로, 신부 가족들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이것을 잘 간직해 두어야 했다.

 

22:15 성문 장로들에게로 가서. 즉 공개 재판을 열어 공정한 판결을 내려 주도록 요청하기 위해서이다.

 

22:16 딸을 … 아내로 주었더니.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여자가 시집가기 전에는 아버지에게, 시집간 후에는 남편에게 종속되었다(창 31:15, 출 21:3). 아버지는 출가 전의 딸에 대해서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할 수 있었는데, 혼처를 정하여 시집보내는 것도 그 중 한 예에 속했다. 한편 이때 남편 될 자는 장인에게 일종의 결혼 지참금을 주어야 했는데(출 22:16), 이는 신부의 부모에 대한 답례품의 성격을 지닌다(창 24:53).

 

22:17 처녀의 표적. 14절 주석 참조.

자리옷. [히, 시믈라] ‘덮개’, ‘외투’라는 뜻으로, 일반적인 의복과 구별되지는 않으나 특별히 입는 의복을 가리킨다.

 

22:18 잡아 때리고.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남편이 아내의 부정(不貞)을 알았을 경우, 이혼 증서를 주어 아내를 내보낼 수 있었다(24:1). 그러나 이처럼 무고하게 아내의 부정을 비방한 자에게는 태형이 가해졌는데, 죄질에 따라 최고 40대까지의 매질이 가해질 수 있었다(25:3).

 

22:19 은 일백 세겔을 벌금으로. 1세겔은 11.4 g이므로 일백 세겔은 1.14 kg이다. 이 벌금은 무고(誣告)로 인하여 실추된 아내와 처가(妻家)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의미의 벌금이다. 이 금액은 처녀를 유혹하여 욕보인 자가 그 수치의 대가로 처녀의 아비에게 지불해야만 했던 액수의 두 배이다(28-29절).

평생에 버릴 수 없는 아내. 무죄한 아내를 부정(不貞)한 여자로 주장한 남자는 이제 평생 동안 그녀와 이혼할 수 있는 권리가 박탈되었다(18절). 남성 우위적인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는 특별히 여성의 지위를 보장해 준 규례이긴 하나, 신구약 전체에 의할 때 지극히 당연하고도 성경적이며 인도적인 규례라 할 것이다(고전 11:12, 엡 5:33).

 

22:20 처녀의 표적이 없거든. 당시 성적(性的) 범죄가 이처럼 엄중하게 취급된 까닭은 가나안 족속들의 성도덕이 매우 문란했기 때문이다(레 18:1-30).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이방의 문란한 성 풍속에 물들지 않도록 이와 같은 엄한 규례를 세우셨는데, 특히 ‘돌 처형법’을 사용한 까닭은 그들로 하여금 경각심과 공동체의 연대 의식을 갖게 하기 위함이었다(레 20:17, 민 15:35-36, 13:10, 17:5).

 

22:21 아버지 집에서. 그 여자가 ‘아버지 집에 있을 때’, 즉 ‘처녀 시절에’를 의미한다. 공동번역과 NIV가 이같이 번역하고 있다.

창기의 행동을 하여. 이에 해당하는 원어 ‘자나’는 원래 여자의 간음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나, 점차 돈을 벌기 위해 직업적으로 하는 매춘 행위를 가리키게 되었고, 결국 영적 간음 행위 곧 우상 숭배 행위까지도 가리키게 되었다. 모세의 율법은 이처럼 다른 남자와 불법적인 성(性) 관계를 가진 여자는 반드시 죽이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 규례는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신앙의 순결을 지키지 못한 자마다 영적 죽음을 당하게 될 것임을 교훈해 준다(엡 5:5).

악을 제할지니라. 육체의 순결을 중요시하지 않는 사회가 결코 정신적, 영적 순결을 유지할 수 없다. 따라서 모세 율법은 육체의 순결을 강조함으로써 영적 영혼의 순결을 보존코자 했다. 즉 하나님께서는 남녀간의 혼인 및 부부간의 순결을 중요시함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적 순결을 요구하셨다. 이런 맥락에서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그러한 순결한 공동체에 결코 어떠한 악(부정)이라도 개입해서는 안 되었고, 만일 악의 요소가 있다면 과감히 제거해야 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 각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시 신랑되신 그리스도를 기쁘게 맞이할 신부될 조건, 곧 순결한 신앙의 정조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22:22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 … 둘 다 죽여. 남자는 여자에게 남편이 있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녀를 범했기 때문이고, 여자는 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간 남자와 성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혼인의 순결을 잃은 자로 간주되어 죽임에 처해졌다.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이스라엘은 열방 중에서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히 택함 받은 거룩한 공동체였기 때문에 열방과는 구별되는 순수성, 즉 순결성을 보존해야 했다. 따라서 만일 이스라엘 중에 이러한 공동체의 순결성을 깨뜨리는 자가 있다면, 이스라엘 사회는 하나님의 공의에 입각해서 가차없이 그들을 제거함으로써 공동체의 순결성을 계속 유지시켜야 했다. 여기서 유부녀 및 그녀와 통간한 남자를 둘 다 사형에 처하는 까닭도 그 때문인데, 그들은 기본 인륜(人律)을 저버렸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결혼 제도의 순수성을 파괴한 자들이란 점에서 더욱 그러하였다(레 18:20, 20:10).

 

22:23 처녀인 여자가 … 약혼한 후.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처녀가 약혼하면 결혼한 여자와 동일하게 간주되었다(20:7). 따라서 약혼하기 전에 행한 불미스러운 일(28-29절)보다 약혼 이후의 범죄가 더 큰 중벌로 다스려졌다(Keil).

성읍 중에서 만나 동침하면. 이는 남녀 둘 다 자의적(自意的)으로 간음 행위를 한 것을 가리킨다.

 

22:24 돌로 쳐죽일 것이니. 13:10, 17:5, 레 20:27, 24:23, 민 15:35-36 주석 참조.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충분히 요청할 수 있는 상황 중에서도 여자가 침묵하였다는 것은 곧 상대방의 행위에 대하여 소극적이나마 승낙한 것을 뜻한다. 따라서 그녀는 이미 약혼한 여자이면서도 혼인의 순결을 스스로 저버렸으니 죽임당할 수밖에 없었다(레 20:20).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히브리 사회에서 약혼한 여자는 결혼한 여자나 다름없이 취급되었다(23절). 따라서 그러한 여자를 범하는 것은 십계명 중 제7계명(간음죄, 5:18, 출 20:14)과 제10계명(이웃의 아내를 탐한 죄, 5:21, 출 20:17)을 동시에 어긴 행위이니 가중 처벌되어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다.

 

22:25 들에서 … 강간하였거든. ‘들’은 여자가 아무리 소리쳐도 구원해 줄 사람이 없는 장소이다. 따라서 이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나 혹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모든 상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 여자가 강간당한 것은 자의(自意)가 아니라 순전히 타의(他意)에 의한 강제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22:26 처녀에게는 죽일 죄가 없음이라. 본 규례는 모든 법의 적용에 있어서 단순히 나타난 결과만을 볼 것이 아니라, 동기까지 고려해야 함을 일깨워 준다. 즉 본 절은 여자가 들에서 강간을 당한 경우, 그것이 불가항력적 상황이었는지를 조사하여 사실로 판명되면 연약한 여자의 한계를 인정해 주는 것이 근본 법 정신임을 보여준다.

이 일은 … 이웃을 쳐죽인 것과 일반이라. 인간의 순결이 생명 만큼이나 소중함을 시사해 준다. 이처럼 택함 받은 백성들에게 있어서 순결이 중요시되는 이유는 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그들의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전이기 때문이다(고전 3:16-17). 그러므로 성경은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고전 6:18)고 엄히 경고하고 있다.

 

22:27 소리질러도 … 없었음이니라. 이는 강간당한 처녀의 불가항력적 상황을 대변한다. 따라서 비단 들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 여자의 한계상 강제적으로 강간을 당했을 경우, 그 처녀에게는 책임을 물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처럼 모세 율법은 모든 범죄의 단호한 척결과 아울러 인간 생명의 존중이라는 두 가지 목적이 서로 상치되지 않도록 기계적인 법적용을 지양하고 처벌에 신중을 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2:28 28-19절. 본문은 한 남자가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욕보인 경우, 두 사람이 법적 처벌은 받지 아니하였으나 남자는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만 한다는 규례이다. 즉 남자는 결혼 지불금으로 은 50세겔을 처가에 지불한 후 그 처녀를 합법적인 아내로 맞이해야 했다. 이때 남자는 그 여자가 부정(不貞)한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한 평생 그녀를 내보낼 수 없었다.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 동침하는 중에. 이 규례는 결코 혼전 성 행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는 당시대의 저급한 성 윤리를 충분히 감안한 상태에서 여자에 대한 남자의 책임의식을 강조하고, 또한 두 남녀를 긍휼히 여겨 적극적으로 그들의 앞날을 위한 해결책을 모색해 주려는 규례이다. 그 해결책이란 곧 죽음이 면제된 두 남녀로 하여금 합법적인 결혼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둘 다 성적 순결을 지키며 살도록 지켜봐 주는 것이다.

 

22:29 처녀의 아버지에게 은 오십 세겔을 주고. 여기서 ‘은 오십 세겔’은 처녀를 범한 남자가 그 처녀의 아버지에게 주는 결혼 지참금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때 처녀의 아버지가 자기 딸을 주기를 거절하면, 그 남자는 배상금 조로 ‘은 오십 세겔’을 지불한 후 결혼은 포기해야 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평행 구절인 출 22:16-17 주석을 보라.

평생에 그를 버리지 못하리라. 이미 19절에 언급된 바 있는 여자 보호 규례이다. 그런데 여기서 평생 동안 그녀를 내보낼 수 없다는 것은, 결혼 후 그 여자가 부정(不貞)을 저지르지 않았을 경우를 전제한 말이다.

 

22:30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내지 말지니라. 계모(繼母)와의 성 관계 및 혼인을 금한 규례이다. 이런 근친상간의 범죄는 인간의 모든 위계질서를 파괴하는 동물적인 행위이므로, 이스라엘 중에서 철저히 제거되어야 했다(레 18:6-18, 20:11-21). 한편 성경에 나타난 바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낸 예는 야곱의 아들 르우벤의 경우(창 35:22)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경우(삼하 16:2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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