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에 엎드러진 것. 모세 율법은 들에서 죽임당한 시체를 아주 부정한 것으로 간주, 그 시체에 접촉된 자는 의식상(儀式上) 7일 동안 부정하다고 규정하였다(민 19:16).
쳐죽인 자 … 알지 못하거든. 이처럼 누군가가 범죄하였어도 끝까지 범인이 밝혀지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일반 이방 국가에서는 영구 미제(未濟) 사건이 되어 흐지부지 끝나고 말지만, 선민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반드시 그 사건을 해결해야 했다. 즉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중심의 신정국가(神政國家)이니 만큼 그 피흘림에 대한 사건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처리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한편 본 절의 상황은 하나님께서 살인자에 대한 실제적인 심판을 유보하신 탓일뿐 결코 의식상의 절차로 마무리 지으려 한 것은 아니다. 결국 살인자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은 반드시 실현되고야 만다. 왜냐하면 그분은 결코 악을 간과하지 않으시며, 이미 지나간 일도 다시 찾아서 끝까지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전 3:15, 사 26:21).
성읍의 원근을 잴 것이요. 물론 이는 주검과 제일 가까운 성읍에 살인자가 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 성읍이 피살된 시체로 인하여 가장 많이 부정함을 입었음과 또한 피흘린 죄에 동참했을 가능성이 가장 큼을 의미할 뿐이다(Keil). 그러므로 그 성읍은 살인자의 죄책(罪責)을 대신 책임지고 제거해야 할 대속(代贖)의 의무가 있었다.
갈지도 않고 씨를 부린 일도 없는 골짜기. 인간의 손으로 경작할 수 없는 험한 골짜기를 가리킨다. 이러한 곳에서 송아지를 잡아 피흘리게 한 이유는, 땅에 뿌리워져 땅속으로 스며든 대속(代贖)의 피가 인간이 그 땅을 경작하므로 말미암아 다시 밖으로 노출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Keil, Pulpit Commentary).
송아지의 목을 꺾을 것이요. 대속의 제물인 송아지의 피를 흘리게 하기 위함이다. 이 ‘피흘림’은 죄를 속하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이다(히 9:2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땅 가나안을 피로써 더럽힌 살인죄에 대하여서도 역시 그 살인자의 피를 흘려야만 성결을 회복할 수 있었다(창 9:5). 따라서 송아지의 목을 꺾어 피흘려 죽임은, 곧 알려지지 않은 그 살인자에 대한 처형의 상징이었다(Keil). 이와 관련하여 혹자는 “이 의식은 만약 살인자가 잡힐 경우 송아지에게 행한 대로 그를 취급하겠다는 하나의 엄숙한 선언이다” 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Mathew Henry).
그리로 갈지니. 제사장은 백성들과 하나님 간의 언약 관계를 중재하며, 또한 이스라엘의 성결을 보존하는 일을 위해 특별히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들이다(출 28:38, 레 10:7, 민 18:1). 따라서그들이 살인 사건을 해결짓는 장소에 배석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친히 지켜 보시는 가운데 그 사건이 하나님의 뜻대로 해결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택하사. 민 3:12 주석 참조.
축복하게 하신 자. 민 6:22-27 주석 참조.
모든 소송과 모든 투쟁. ‘소송’에 해당하는 원어 ‘리브’는 ‘논쟁하다’, ‘다투다’는 말로서, 법적 소송 뿐만 아니라 사소한 말다툼이나 논쟁까지도 의미한다. 그리고 ‘투쟁’에 해당하는 ‘나가’는 ‘타격하다’, ‘일을 일으키다’는 말로서, ‘폭행’ 또는 ‘폭력 사건’을 가리킨다. 따라서 ‘모든 소송과 모든 투쟁’이란 제3자의 중재하에 법적 해결을 요하는 모든 사건들을 가리킨다.
그들의 말대로 판결될 것이니라. 레위 제사장들이 이처럼 사법적인 문제에까지도 관여한 것은 신정 사회인 이스라엘에서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신적 권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결정한 모든 판결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것으로 간주되었다. 한편 오늘날 그와 같은 지위와 기능은 성경 말씀이 대신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완성된 오늘날에는 성도의 모든 행위를 판결해 주는 최종 권위가 바로 성경이다(딤후 3:16-17).
우리의 손이 … 우리의 눈이. 의역하면 “저희들은 살인을 하지 않았고 살인한 자를 알지도 못합니다”인데, 이는 장로들이 성읍을 대표하여 살인 사건에 대한 무죄(無罪)와 결백을 하나님께 증언하는 내용이다.
이 피. 혹자(Lange)는 암송아지의 피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타당치 않다. 이는 불의하게 살해당한 자의 피를 가리킨다(1절).
사함을 받으리니. [히, 카파르] 원뜻은 ‘덮다’이다. 이는 암송아지의 피가 무죄한 자의 피흘린 허물을 덮어 가리워 줌으로써, 살인자의 죄책을 진 성읍 거민들이 마치 죄 없는 것처럼 인정되는 ‘대속의 원리’를 잘 나타내 준다. 우리가 예수의 보혈로 인하여 하나님께 죄 없다 인정함을 받는 것도 바로 이러한 원리 때문이다(엡 1:7).
피 흘린 죄를 … 제할지니라. 살인자가 누구인지 도무지 모를 경우, 이스라엘 공동체는 ‘순결한 암송아지 의식’(2-8절)을 통하여 무죄한 자를 피 흘리게 한 죄를 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으로 비록 죄사함 받았다고 하여 실제 살인자의 죄책마저 면제되는 것은 아니었다. 만일 이러한 의식을 치른 후에라도, 살인자가 잡혔을 경우 그는 살인죄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Talmud, Keil, Herxheimer, Knobel).
그들을 사로잡은 후. 여기서 ‘그들’에는 성인 남자가 포함되지 아니한다. 이스라엘은 이방 족속과 전쟁할 경우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은 포로로 사로잡을 수 있지만, 성인 남자는 다 진멸하도록 되어 있었다(20:13-14).
그 머리를 밀고. 성경에서 머리털을 미는 행위는 대개 회개와 속죄를 상징한다(레 14:9, 욥 1:20). 따라서 이는 종종 성결(聖潔) 예식으로도 이용되었다(민 6:18-19). 여기서도 포로 된 여인의 머리를 미는 것은 자신의 옛 이방 모습을 벗어버리고, 이스라엘 사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의식적 행위로 볼 수 있다(Keil, Pulpit Commentary).
손톱을 베고. 고대인들이 머리털 다음으로 소중히 여겨 함부로 베지 않던 것이 곧 손톱이다. 그런데 이러한 손톱을 깎는다는 것은 머리털을 미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면적 변화를 통해 이방인으로서의 이전 생활을 청산한다는 것을 뜻한다(Matthew Henry).
부모를 위하여 … 애곡한 후에. 이처럼 여인에게 자신의 부모를 위해 한 달 동안 애곡할 수 있는 기간이 주어진 것은 아마도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 일 것이다. (1) 이 기간을 통하여 그 여인이 자신의 고향이나 가족을 떠난 슬픔을 정돈하고 자신의 앞날을 준비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2) 특히 한 달이란 기간은 그 여인이 남편 될 자의 사랑이나 신실성 및 순수성 등을 알아보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였을 것이다(Lange).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기뻐하다’에 해당하는 ‘하페츠’의 정확한 의미는 ‘마음에 들다’, ‘좋아하다’, ‘원하다’이다. 그러므로 공동번역은 본 절을 ‘더 이상 마음에 들지 않거든’으로 번역하였다.
돈을 받고 팔지 말지라. 주인의 의사대로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는 노예 중의 하나로 취급하지 말라는 뜻이다. 일단 그녀를 아내로 취하려 한 이상, 어떠한 경우에든 그녀에게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는 것이 기본 윤리이기 때문이다.
욕보였은즉. 이에 해당하는 ‘아나’는 ‘모독하다’, ‘괴롭히다’, ‘강탈하다’ 등의 뜻이다. KJV는 이를 ‘비천하게 다루다’(humble)로, RSV는 ‘창피를 주다’(humiliate), 그리고 NIV는 ‘치욕을 주다’(dishonor)로 각기 번역하였다. 그런데 공동번역은 보다 강경한 말인 ‘몸을 버려 놓다’로 번역하였는데, 이는 결국 그녀에게 입힌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가리키는 것이다. 즉 그 여자를 아내로 취하거나 취하려 해 놓고도 버리므로 그녀에게 이중적인 상처를 입힌 것을 의미한다.
하나는 사랑을 … 하나는 미움을. 당연한 결과이다. 유한한 인간은 그 마음을 두 곳에 동시에 균등하게 줄 수 없다.
장자. ‘태를 열다’는 뜻의 ‘바카르’에서 온 말로 맏이를 가리킨다(출 13:2, 민 8:16). 고대 사회에서 이러한 맏아들은 한 집안의 중추적인 역할자이자(창 27:29) 그 아비의 으뜸가는 영광으로서(창 49:3) 그 지위상 많은 혜택을 받았다. 예를 들면 다른 아들들보다 두 배의 상속을 받는 특권(17절), 아비의 축복을 받는 특권(창 27:36), 동생들에 대한 감독권(창 37:22) 등이 있다.
두 몫을 줄 것이니. 유대 전승에 의하면, 장자에 대한 두 몫의 상속은 그 장자가 죽었더라도 장자의 가족들에게 돌아갔으며, 결코 살아 있는 아들 중 최연장자에게 돌아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기력의 시작이라. 부모에게 있어 장자는 그의 후손을 세상에 퍼뜨리는 첫 번째 계기가 됨을 의미한다(창 49:3).
장자의 권리. 창 25:31 주석 참조.
순종하지 아니하고 … 듣지 아니하거든. 자식에 대한 부모의 권위는 어느 시대, 어느 곳을 막론하고 부정되어질 수 없는 신성한 것이다. 더욱이 신정(神政) 국가인 이스라엘 사회에서 부모의 권위는 십계명 속에서도 보장된(출 20:12) 인륜의 제1법칙으로서, 곧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5:16). 따라서 부모에 대한 불순종은 인륜을 저버리는 배은망덕한 짓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법 질서를 파괴하는 신성 모독 행위였다.
성읍 장로. 한 성읍의 주민을 대표하는 자로서 백성들간에 분쟁이나 문제가 발생하였을시, 재판을 관장하는 권한이 있었다.
술에 잠긴 자. 이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기본형 ‘사바’는 ‘들이키다’, ‘비틀거리다’란 뜻으로서, 곧 술에 취하여 추태를 부리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는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술의 폐해가 심했으며, 술이 도덕적인 타락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음을 보여 준다(창 9:21, 잠 31:5).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러한 처형이 있은 후 그 성읍 장로는 ‘어느 날, 어느 법정에서, 어떠한 이유로 누구의 아들을 돌로 쳐죽였다’는 글을 써서 전국에 회람(回覽)시키도록 되어 있었다고 한다(Mattew Henry’s Commentary, Vol. I. p. 813).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하늘과 땅 가운데 매달려 있는 시체는 인간의 저주는 물론 하나님의 저주하에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도 바로 이러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그 죽음이 얼마나 치욕스러운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 치욕스런 사건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묘하고 은혜스런 십자가의 비밀을 밝히 드러내었다(갈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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