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꾸는 자. 이 역시 거짓 선지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꾼 꿈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특별 계시인 양 주장하면서, 미래에 대한 거짓 예언을 일삼는 자를 가리킨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꿈을 인간에게 당신의 뜻을 나타내시는 특별 계시의 한 방편으로 사용하기도 하셨지만(민 12:6, 왕상 3:5, 마 2:12), 거짓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은 지나치게 꿈에 의존하는 오류에 빠졌었다(렘 23:32, 수 10:2).
이적과 기사. 본래 ‘이적’(히, 오트)과 ‘기사’(히, 모페트)는 어떤 표징(sign)과 전조(portent)를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의 존재와 그 말씀을 의심하는 자들에게 강한 믿음과 확신을 심어 주기위한 계시 전달의 한 방편이었다(출 3:20, 4:21). 그러나 만일 그 이적과 기사가 그러한 목적에서 빗나간다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사탄의 권세에서 나온 사악한 술수에 불과하다(Keil).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어떤 선지자나 예언자의 말이 성취되지 않거나 또는 그 말을 뒷받침할 만한 표적이 나타나 보이지 않는다면, 그는 분명 거짓 선지자나 예언자에 틀림없다(18:21-22, 렘 28:9). 그러나 때로는 어떤 사람의 예언이 적중하고 또한 그가 초자연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하더라도, 참선지자가 아닐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배후에서 역사하는 사탄은 할 수만 있다면 성도들을 미혹하려고 빈번히 이적과 기사를 행하기 때문이다(마 24:24). 따라서 오늘날에 있어서도 참선지자와 거짓 선지자의 구별은 그들의 능력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입각해서 확실히 판별되어야 한다(요일 4:1).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 이 말은 스스로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 받지 아니한 거짓 선지자임을 입증하는 행위이다. 왜냐하면 참선지자는 자신에게 직무를 주어 파견하신 분인 여호와 하나님을 거역하는 가르침을 결코 펼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요 7:16-18).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하나님은 …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니라”(약 1:13)는 구절과 모순되는 듯한 구절이다. 그러나 거기서의 ‘시험’(temptation)은 인간의 마음속에 범죄 충동을 불러 일으켜 결국 올무에 빠뜨리고 마는 사탄의 시험을 가리키지만, 여기서의 ‘시험’(test)은 어디까지나 당신 백성을 연단하시는 사랑의 훈육과정의 일환으로 결국은 신앙을 돈독케 해주는 하나님의 시험을 의미한다(8:2). 창 22:1 주석 참조.
종 되었던 집. 출 13:3 주석 참조.
악을 제할지니라. 여기서 ‘제하다’에 해당하는 ‘바아르’는 ‘불을 붙이다’란 뜻으로, 마치 불태워 깨끗하게 없애 버리듯이 철저히 제거하는 것을 가리킨다(왕상 14:10, 사 10:17).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 직역하면 ‘네 자신의 영혼과 같은 친구’이다. 이는 곧 자신의 생명처럼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는 절친한 친구를 의미한다(삼상 20:17).
가만히 너를 꾀어. 사탄의 간교한 궤계이다. 왜냐하면 가장 사랑스럽고 소중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은밀히 찾아와서 무엇인가를 속삭일 때 거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사람의 요청을 거부했을 때 올지 모르는 절연(絶緣) 사태를 생각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므로 사탄은 종종 우리 주위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가장 효과적인 유혹의 도구로 이용하곤 한다(마 16:22-23, 눅 12:52-53, 22:3-6). 즉 “사탄은 아담을 유혹할 때는 하와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유혹할 때는 베드로를 통하여 각각 시험하였다”(Richter).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 즉 여호와 하나님 이외의 모든 이방 우상들을 가리킨다(6:14, 11:27-28). 일찍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계시를 통해 알았고 또한 언약을 맺었던 신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고 있는 신도 역시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따라 당신을 계시해 주시고(출 3:15),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셨을 뿐 아니라 시내 산에 친히 강림하사 율법을 수여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 뿐이었다.
따르지 말며. ‘따르다’에 해당하는 ‘아바’의 원뜻은 ‘호흡을 맞추다’이다.이는 곧 묵인 내지는 동조, 찬동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KJV는 ‘승낙하다’(consent)로, NIV는 ‘굴복하다’(yield)로 각기 번역하였다.
긍휼히 여기지 말며. 직역하면 ‘네 눈이 그를 불쌍히 여기지 말라’이다. 곧 우상 숭배를 부추기는 유혹자에 대해서는 그가 누구든 일말(一抹)의 동정도 갖지 말라는 뜻이다.
네가 먼저 …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 이스라엘 사회에 있어서 재판 제도는 반드시 2인 이상의 증인이 요구되었다(19:15). 그리고 심의 결과 이들 증인의 증언이 사건과 일치되어 기소된 피고인이 사형에 해당하는 유죄자로 판정되면, 먼저 그 증인이 그 죄인을 돌로 치고 그 후에 백성들이 일제히 돌로 그를 쳐죽였다(17:6-7). 본 절은 바로 이와 같은 재판 절차와 형(刑)의 집행 방법을 언급한 것으로 사랑하는 혈육이나 아내, 친구라 할지라도 우상 숭배를 꾀하면 덮어 숨기지 말고 반드시 친히 고발하여 처벌을 받게 하라는 명령이다. 이는 인륜지정(人倫之情)마저 허용치 않는 너무 가혹한 명령인 듯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이러한 명령 속에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발견해야 한다. (1) 피 흘려 사신 구속주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짓된 우상을 섬기는 행위가 얼마나 중대한 가증한 범죄인지를 보여 준다. (2) 여호와 신앙과 우상 숭배 행위 사이에는 어떠한 접촉점도 없으며 오직 삶과 죽음만이 있을 뿐임을 시사해 준다.
떠나게 하려 한 자이니. 여호와께 반역을 꾀하는 자가 죽어 마땅한 이유이다. 그것은 곧 끊임없이 은총과 보호의 손길을 펼쳐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대하여 도리어 악으로 갚는 배은 망덕한 행위이다.
돌로 쳐죽이라. 여호와의 신앙 공동체를 파괴하려고 한 자, 곧 신성 모독자나 우상 숭배자 등에 대해서는 ‘돌로 쳐죽이는 처형법’이 채택되었다(레 20:2, 24:14). 이 처형법은 히브리 사회에서 가장 극악한 죄에 대한 일종의 공개적이며 사회 공동적인 처형법인데, 이러한 사형 집행을 통해 나머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 같은 악의 재발을 방지코자 하였다(11절). 또한 이는 공동체의 순수성 보존을 위해서 그것을 저해하는 악의 요소는 그 공동체로부터 단호히 제거되어야 함을 가르쳐 주는 처형법이기도 하다.
유혹하여. 원어 ‘나다흐’의 원뜻은 ‘밀어내다’이다. 여기서 의도적, 강제적으로 ‘잘못 인도하는 것’ 또는 ‘해를 가하는 것’ 을 의미한다.
다른 신들. 11:27-28 주석 참조.
가증한 일. 7:26, 레 18:22 주석 참조.
진멸하고. 2:34, 레 27:28 주석 참조.
그리하면 … 번성하게 하실 것이라. 큰 손해를 감수해 가면서까지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할 경우, 그분께선 도리어 영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보다 풍성한 은혜와 넘치는 축복으로 갚아 주신다(삼하 16:12, 마 5:3-12). 왜냐하면 고대 사회에 있어서 인구는 곧 국력의 상징인데, 이에 개의치 않고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죄에 빠진 한 성읍 전체를 몰살시키면서까지 여호와 신앙을 준수할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처음보다 수십 배, 수백 배 더 번성한 나라가 되도록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참으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며 그 계명을 신설히 지키는 자에게는 한량없이 인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심 같이.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시조(始祖) 아브라함에게 후손의 축복을 하시면서 ‘땅의 티끌’(창 13:16), ‘하늘의 뭇별’(창 15:5),’바닷가의 모래’(창 22:17)와 같이 번창하도록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지금 모세는 백성들에게 그 사실을 깨우치면서, ‘후손 번성’ 의 축복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 순종할 때에만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Previou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