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과 같은 두 돌판을 다듬어 가지고. 첫 번째 십계명의 두 돌판은 돌판 자체도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해 주신 것이었다(출 31:18). 그러나 두 번째 돌판은 모세가 준비하고 하나님은 다만 그것에 십계명만 새겨 주셨는데(2절), 이는 인간이 범죄한 후 회개하면 비록 죄사함을 받아 회복은 되지만 그 흉터는 남는다는 사실을 교훈해 준다(출 34:1).
궤를 만들고. 상당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구절이다. 왜냐하면 본 절은 출 34:1-5에 대한 회고인데, 실제 궤를 만든 때는 출 37:1이하이며, 더구나 그 궤 속에 십계명 두 돌판을 넣어 두게 된 때는 출애굽 제2년 1월 1일 이후이기 때문이다(출 40:17, 20). 즉 모세가 두 번째 십계명 판을 받기 위하여 시내 산에 오른 때와 실제로 언약궤를 만들어 돌판을 보관하게 된 때 사이에는 약 6개월 가량의 시간적 격차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출애굽기와는 달리 모세가 시간적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단지 언약이 회복되어 십계명 두 돌판을 하나님께로 부터 다시 수여받았다는 점과 그 두 돌판을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만든 언약궤 속에 보관 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그 두 사건을 하나로 묶어 동시에 회고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Keil).
모세라. ‘징벌’이란 뜻이다. 호르 산 부근인데 민 33:30에는 복수형인 ‘모세롯’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는 이곳 ‘모세라’에서의 아론의 죽음이 므리바에서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었음을 시사해주는 지명이다(민 20:24). 한편 이스라엘이 브네야아간에서 출발하여 모세라에 도착했다는 본 절은, 모세라에서 출발하여 브네야아간에 도착했다는 민 33:30-31과는 모순되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선, 이스라엘이 40년동안 광야를 방황하는 중 적어도 동일 지역을 두 번 이상 거듭 지나갔기 때문에 관점에 따라 여정의 순서가 약간 다르게 기록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론이 … 죽어. 민 20:28 주석 참조.
엘르아살이 … 제사장의 직임을 행하였으며. 아론의 범죄(9:20, 출 32:1-5, 21, 민 12:1)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제사장직이그의 후손에게 계승되었음을 주지시켜 준다. 한편 이러한 대제사장직의 계승은 모세가 아론의 옷을 엘르아살에게 입히는 상징적 의식으로 이루어졌다(민 20:25-28). 한편 패역한 금송아지 숭배 사건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간절한 기도로 언약이 다시 회복되었다는 사실은, 먼저 십계명 두 돌판의 회복(4절)에서 드러났고, 이어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중보자로 활동 할 제사장직의 계승(6절)에서 분명히 확증되었다(Clericus, Hengstenberg).
욧바다. ‘상쾌함’이란 뜻이다. 에시온게벨 북방 21 km 지점인 것으로 추정된다. 본 절에 언급된 것처럼 그곳에는 시내가 많아 사람들에게 상쾌감을 안겨다 주었으므로 붙여진 지명인 듯하다.
시내가 많았으며. 십계명 두 돌판 회복(4절)과 제사장직 회복(6절)이라는 영적 축복에 이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풍부한 시내로 인도하심으로써 당신의 사랑을 영육간에 나타내셨다(J. Gerhard).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이스라엘 12지파 중 특별히 레위 지파가 성막 봉사의 직임에 선택되어 구별된 이유와 근거에 대해서는, 민 1:48-49, 3:12, 8:14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 가운데서도 그들을 각기 고핫, 게르손, 므라리 후손들로 구분하여 성막 봉사 직무를 분담시켜 줌으로써 일의 능률과 질서를 도모하셨다(민 4:1-49).
언약궤를 메게 하며. 이 일은 레위 지파 중에서도 특별히 고핫 자손이 맡았던 직무이다(민 3:31). 그런데 언악궤를 반드시 어깨에 메고 운반하도록 규정한 까닭은, 하나님의 말씀이 보관되어 있는 언약궤에 대하여 백성들이 경외감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민 4:15). 그런데 훗날 다윗은 이를 무시하고 언약궤를 수레에 실어 운반하다 하나님의 진노를 산 일이 있다(삼하 6:1-11).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은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와의 이름으로’(민 6:27) 축복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그 축복의 구체적인 내용이 민 6:24-26 부분에 나오는데, 그 내용은 이스라엘에게 큰 용기와 위로를 주는 내용이며, 동시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언약 백성이자 그분의 사랑과 관심의 대상임을 명백히 보여 주는 내용이다. 그러나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이 그러한 신적 축복을 선언할 권한을 가짐은, 결코 제사장 스스로의 권위에 기초하지 않은, 오직 복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축복의 내용을 선언하고 간구할 때마다 반드시 ‘여호와’란 이름을 전제해야 했다. 자세한 내용은 민 6:24-26 주석을 참조하라.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시니라. 즉 여호와의 거룩한 일을 하도록 구별된 레위인들이 비록 할당된 기업은 없으나 여호와를 섬기는 봉사의 직임에 충실할 때, 바로 여호와께서 친히 그들의 모든 생계를 책임져 주시는 분이 될 것이다(민 18:20).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 모세의 설교 강조점은 이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민(選民)으로 택정된 것이 결코 그들의 공로나 의로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자신의 기쁘신 뜻과 무조건적인 사랑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울 수 없으며 다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할 따름이었다. 이점은 오늘날 하나님의 예정하심(엡 1:11)과 예수의 대속 사역(롬 3:23-26)에 의해 구원받은 성도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목을 곧게 하지 말라. ‘목이 곧다’(목을 뻣뻣하게 치켜들다)란 말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 전혀 굽힐 줄 모르는 인간의 패역한 고집이나 어리석은 거만 등을 나타낼 때 종종 쓰이는 성경의 관용적인 표현이다. 따라서 본 절은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그분의 말씀에 불순종하지 말라는 뜻이다(9:6).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이 말씀은 히브리어에서 비유적으로 쓰는 표현을 번역한 것이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하나님께서는 ‘얼굴을 들어올리지 않으신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 표현은 법정의 상황을 묘사한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재판관 또는 왕이 재판에 나온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신분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이 구절이 암시하는 바는 하나님께서는 그런 방법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신분에 상관없이 모두를 공평하게 대하신다. 이와 같은 진리는 사회에서 가장 무시당하던 사람들까지도 사랑으로 대하신 예수의 삶을 통해 확실하게 드러났다.
이것은 이방 종교의 형식주의와 외식주의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이다. 또한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내면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경외, 곧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는 전인격적인 헌신만을 기쁘게 받으시는 분임을 강조해 준다(6:5, 요 4:24).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도덕적, 윤리적으로 부패하기 이를 데 없는 이방신과 달리 절대적으로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품성을 증거해 준다(욥 34:12, 사 30:18). 즉 고대 근동의 신들은 마음으로부터 돌이킴이 없어도 바치는 재물을 그대로 가납하는 탐욕자들이었으나, 하나님은 참된 회개나 믿음이 없이 바치는 제사나 재물에 대하여선 절대 수납치 않으시는 신이시다(삼상 15:22, 대하 19:7).
나그네. 원어 ‘게르’는 단순한 여행객이 아니라 자기 혈족을 떠나 히브리인들 가운데 섞여 사는 이방인 우거객(寓居客)을 의미한다. 이들은 이주민(移住民)으로서 자기 몫의 땅도, 법적 권리도 없던 약자들이었다. 한편, 모세가 이처럼 여기서 하나님의 여러 속성(유일성, 전능성, 불편부당성, 공의성, 자비성 등)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그러한 여러 속성을 바로 깨달아 알 때, 그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뜻을 바로 실행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이와는 완전히 대비되는 이방 모든 잡신들의 무능함과 헛됨도 깨달아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이름으로 맹세하라. 6:13 주석 참조.
네 눈으로 본 … 크고 두려운 일. 이 일은 구체적으로 애굽에 내려진 10대 재앙을 가리킨다(출 12:29-36). 나아가 이 일은 홍해를 건넌 사건을 비롯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거쳐 여리고 맞은 편 모압 평지에 무사히 이르기까지 그 백성들의 목전에서, 그 백성들을 위하여 행사된 모든 하나님의 사역(work)을 가리킨다.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셨느니라.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의 성취이다(창 15:5, 22:17). 약 430년전 애굽으로 이주할 때 당시의 이스라엘 조상은 70명에 불과하였으나(창 46:26-27),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의 수는 장정만 60만 가량이었으니(출 12:37), 이 사실이야말로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친히 목도하는 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크고 놀라운 일들 중의 대표적인 예가 아닐 수 없으며, 따라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송할 가장 큰 이유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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