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원어 ‘하욤’은 ‘오늘 당장’이 아닌 ‘바로 지금’ 또는 ‘이때에’란 뜻으로 곧 임박한 시점을 가리킨다. 즉 이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뜻하는데, 실제로 그들이 요단을 건넌 것은 이때로부터 불과 두어달 후의 일이었다(수 3:14-17).
너보다 강대한 나라들. 이미 앞에서 언급된 가나안의 후기 7족속을 뜻한다(7:1, 수 9:1)
성벽은 하늘에 닿았으며. 38년전 ‘가데스 바네아’에서 있었던 가나안 정탐꾼들의 불신앙적 보고를 의도적으로 인용한 것이다(1:28, 민 13:28). 즉 아직도 일부 백성들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는 가나안 원주민들에 대한 두려움을 감지한 모세는 일부러 이같은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백성들의 불신앙을 깨우치고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을 강조하고 있다.
속히 멸할 것이라. 외견상으로는 7:22, 출 23:29-30과 모순되는 듯한 구절이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하나님이 1년이라는 유예기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실 것이므로 급히 멸하지 말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모순점을 해결하기 위해 랑게(Lange)는 본 절의 ‘속히’(히, 마헤르)란 말을 ‘허락되는 한도내에서 가능한 한 빨리’로 해석하였으며, 또한 혹자는 7:22, 출 23:29-30절은 가나안 족속 전체에 관계된 말이나 본 절은 아낙 자손에게만 관계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Wordsworth). 그러나 전체 문맥상 위의 주장들은 타당성이 희박하다. 그러므로 아마 이는 다음과 같이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1) 본 절은 맹렬한 불로 비유된 하나님의 권능과 진노 앞에서 가나안 족속이 쉽게 사라지는 초개(草芥)같이 마침내는 멸망당하고 말 것을 강조한 표현이다. (2) 그리고 7:22, 출 23:29-30에 언급된 점진적 멸망의 대상은 가나안 거민들이지만, 본 절에 언급된 급진적 멸망의 대상은 그들의 사회나 국가 체제일 것이다.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 하지 말라. 크고 튼튼한 성곽을 구비한 채 외부의 침입에 대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강력한 가나안 거민에 비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400년 노예생활과 40년 광야 방랑 생활을 거치는 동안 지칠대로 지친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이처럼 군사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될 때 그들은 자칫 자만심에 빠져 하나님을 떠나 교만해질 우려가 있었다. 모세는 바로 이점을 예리하게 지적하면서 적보다 더 무서운 스스로의 자만심과 교만을 주의하라고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이미 아브라함 때부터 계시되어 온 가나안 족속들의 멸망 원인이다(창 15:16). 즉 소돔과 고모라가 스스로 쌓아올린 죄악으로 인해 심판을 당한 것처럼(창 18:20-21), 가나안 족속들도 아브라함 이후 근 700여 년 동안이나 계속 쌓아올린, 용서받지 못할 추악한 죄악들 때문에 그 심판의 날을 자초했다(7:4, 5, 25-26).
정직함. 이에 해당하는 ‘요쉐르’는 ‘곧다’, ‘똑바로 보다’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 그 동기에 있어서 올바르고 정직한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체다카’와 엄격히 구별되어 사용되기 보다는 서로 교호(交互)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9:5, 왕상 9:4, 욥 37:23, 잠 2:13, 사 5:7), 여기서도 두 단어는 중언법적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일찍이 선민(選民)을 대표하여 삼위일체(三位一體)되신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의 3대 족장들이다. 그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들 족장들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여 긍휼을 호소했으며(출 32:13, 신 9:27, 왕상 18:36, 대상 29:18), 또한 하나님은 이들 조상과 맺은 언약 때문에 그 백성들을 보호하셨다(레 26:42, 왕하 13:23).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는 가나안 정복에 대하여 이스라엘이 자신의 공로를 내세울 수 없고,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더욱 겸손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7:8).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들을 대신 해서 그 땅을 차지하게 된 이유는 결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족속들보다 더 의롭거나 정직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그 기쁘신 뜻대로 선택하신 그들 조상들과 맺은 ‘사랑의 언약’에 근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7:6-8). 따라서 이 사랑을 기억할 때 절대로 자신의 공로를 내세울 수 없고,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욱 겸손해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본 절의 핵심 내용이다.
거역하였으되. 기본 원어 ‘마라’의 본래 뜻은 ‘쓰다’(bitter)로,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거나 반역하는 행위는 곧 그분의 마음을 매우 쓰라리게 하는 행위임을 의미한다.
여호와께서 … 멸하려 하셨느니라. 모세가 출애굽 제2세대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는 까닭은, 지은 죄악으로 인해 마땅히 멸망시켰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끝내 멸망시키지 않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들이시는 이 사실이야말로 순전히 그분의 크고 자비로운 은총에 의한 것임을 깨우쳐 주기 위함이다.
사십 주 사십야. 성경에서 40이란 수는 대략 한 세대의 기간을 의미하기도 하며, 그리고 시험과 연단, 심판과 회개의 기간을 상징하기도 한다(창 7:4, 12, 17, 삼하 5:4, 마 4:2, 행 1:3). 따라서 모세가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언약판을 받기 위하여 호렙(시내) 산에서 40일간 금식하며 기도한 것은,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사역을 위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 기도하신 예수의 행위를 예표해 준다.
손으로 기록하신 것. ‘손’에 해당하는 ‘에츠바’는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권능으로 친히 기록하셨다는 신인 동형 동성론적 표현일 뿐이지 실제 손가락으로 직접 기록 하셨다는 뜻은 아니다(출 15:16, 시 34:16, 애 3:56, 슥 14:4).
너희 총회 날. 출애굽 제1년 3월 초, 하나님의 십계명을 듣기 위해 모든 백성들이 시내 산 기슭에 모인 날을 가리킨다(출 19:1, 9-18). 이때 백성들은 2일동안 몸을 성결케 하며 옷을 빤 후 제3일에 성회(聖會)로 모였었다. 따라서 십계명은 두 돌판에 기록되기 전 이미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백성들에게 전달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여기서 ‘총회’(히, 카할)란 말은 헬라어 70인역(LXX)에는 ‘교회’란뜻의 ‘에클레시아’로 번역되었다. 민 16:2 주석 참조.
목이 곧은 백성. 6절의 주석 참조.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요고.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공의(公義)에 입각하여 단호히 조치하겠다는 뜻이다. 이때 모세는 차라리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는 한이 있어라도 백성들의 죄만은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곡히 탄원하였다(출 32:31-32). 후일 복음을 배척하는 동족을 위한 바울의 중보 기도 역시 이와 동일한 것이었다(롬 9:3). 이러한 중보 기도는 죄인을 위한 예수그리스도의 간구(요 17:9, 12, 20)에서 그 정점을 이루는 바, 성도는 바로 이 때문에 끝내 멸망치 않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
너를 …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리라. 출 32:10 주석 참조.
도를 빨리 떠났기로. 금송아지 숭배 사건은 특별히 우상 숭배를 금한 2계명(출 20:4-6)을 어긴 것이다. 따라서 금송아지 사건(출 32:1-35)은 참으로 이스라엘이 그토록 장엄한 광경(출 19:16-19) 가운데서 하나님께로부터 십계명을 받은지 40여 일도 지나지 않은 때에 발생된 ‘급속한’ 타락의 사건이었다.
그 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 범죄한 이스라엘을 위한 모세의 간절한 중보 기도는 마침내 하나님께 상납되었다. 그 결과 모세는 두 번째로 하나님께 상납되었다. 그 결과 모세는 두 번째로 하나님께 십계명 두 돌판을 받아 시내 산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출 34:28-29).
불살라 찧고 티끌 같이 가늘게 갈아. 우상의 헛됨과 무력함을 똑똑히 입증시키고, 아울러 백성들의 어리석은 우상 숭배 행위를 완전히 근절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그 가루를 … 시내에 뿌렸었느니라. 출 32:20에 의하면, 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백성들로 하여금 그 물을 마시도록 하였음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우상 숭배와 언약 파기(破棄)에 대한 죄값을 백성들 스스로가 져야 한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교훈하기 위함이었다(겔 18:20). 출 32:20 주석 참조.
다베라. 바란 광야에 위치한 한 장소로 ‘불사름’이란 뜻. 출애굽 제2년 2월에 백성들이 이곳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악한 말로 원망하다 하나님의 진노의 불을 받았는데, 이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민 11:1-3).
맛사. 르비딤 근처의 한 장소로 ‘시험’이란 뜻. 출애굽 제1년 2월 말, 이곳에서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다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함으로 하나님을 시험한 데서 비롯된 지명이다(출 17:1-7).
기브롯 핫다아와. 시내 산 동북쪽 30 km 지점에 위치한 장소로 ‘탐욕의 무덤’이란 뜻. 다베라 사건 직후, 만나에 싫증이 난 백성들이 모세에게 고기를 달라고 불평하였는데, 이에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1개월간 메추라기를 내려 주셨지만 주동자들은 모두 죽여 그곳에 장사(葬事)지내게 한 데서 비롯된 지명이다(민 11:4-35).
여호와의 명령. 직역하면 ‘여호와의 입’이다. 그런데 이는 그분의 입을 통해 나온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말씀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한 것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명령임을 시사해 준다.
강한 손. 성경에서 ‘손’은 흔히 ‘힘’이나 ‘능력’, 또는 ‘수단’을 상징하는 환유법(metonymy)적 표현으로 자주 사용되었다(창 32:11, 출 3:19, 15:17, 사 59:1). 반면 ‘손가락’은 공교한 재주를 나타내는 데 관용적으로 자주 사용되었다(시 8:3, 사 2:8, 17:8).
보지 마옵소서. ‘보다’에 해당하는 원어 ‘파나’는 본래 ‘향하다’는 뜻으로, ‘주의 깊게 보는 것’, ‘중히 여기는 것’을 가리킨다.
여호와께서 … 능력도 없고. 사죄(赦罪)의 명분으로 모세는 일찍이 족장들과 맺으신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에 근거, 중보 기도를 드린데 이어(27절) 두 번째로 모세는 이방인들로부터 절대 비방받을 수 없는 하나님의 권능과 거룩하신 이름에 근거, 이스라엘의 사유(赦宥)를 간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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