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주석, 신명기 0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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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헷 족속 … 여부스 족속. 소위 가나안의 후기 7족속으로, 이들 족속은 개인의 영웅적인 힘에 의존했던 가나안의 초기 원주민(르바, 엡, 호리, 수스, 아낙, 겐, 그니스, 갓몬 족속)과는 전혀 다른 조직적이고도 막강한 힘을 가진 족속들이다. 즉 이들은 가나안 원주민들을 정복한 후 그곳에 정착한 강력한 족속들이었다(수 3:10).

헷 족속. B.C. 2000-1800년경 소아시아의 수리아 지방에 정착, 철기 문화를 사용하여 강력한 제국을 세우고 발전하다가 B.C. 1200년경에 멸망한 힛타이트족(Hittites)이다.

기르가스 족속. 요단 서편에 살다 이스라엘에 의해 쫓겨난 족속인데, 그후 주변 여러 족속들에게 흡수된 듯하다.

아모리 족속. 1:7 주석 참조.

가나안 족속. 주로 베니게 지역의 해변과 요단 계곡에 거주하였는데, 가나안 정복 전쟁 후 점차 히브리인들에게 흡수되었다.

브리스 족속. 팔레스타인 외곽 지대나 산간 지역에 흩어져 살았는데, 이들은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귀환시까지 종족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했다(스 9:1).

히위 족속. 본래 함의 후손인데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시 여호수아를 속여 화친을 맺은 후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살면서 나무 패고 물긷는 자들이 되었다(수 9:3-21). 주로 팔레스타인 북부 산간 지대와 기브온에 거주하던 족속이다.

여부스 족속. 이들은 예루살렘과 그 주변 산지에 살았는데, 가나안의 아들 여부스의 후손이다(창 10:16). 보다 자세한 내용은 창 15:19-21 주석을 참조하라.

너보다 많고 힘이 센. 모세의 이 말은 가나안 족속들이 강대하다는 정탐꾼들의 불신앙적 보고를 듣고 백성들이 낙심하여 하나님을 원망하다 지금까지 40년간을 광야에서 방황하게 된 역사적 사실(민 13:31-14:35)을 염두에 둔 말이다. 동시에 이 말은 장차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을 정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결코 그 족속들보다 막강한 군사력이나 수적 우세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약속(창 15:18-21)과 그분의 능력 때문임을 시사해 준다.

 

7:2 넘겨. 원어 ‘나탄’의 기본 뜻은 ‘배당하다’, ‘주다’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7족속의 처분권을 이스라엘에게 양도한다는 뜻이다.

진멸할 것이라. 2:34 주석 참조.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이 말은 가나안 족속들의 죄에 대하여 단호한 조치와 철저한 징벌을 명령한 것이다.

 

7:3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자니. 통혼(通婚)으로 야기될 문화적 혼합과 우상 숭배 감염 현상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의 여호와 신앙과 가나안 민족의 바알 신앙이 결코 혼합될 수 없는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다(고전 6:14-16). 그러나 후대 이스라엘인들은 이방인들과 결혼하여 그들의 우상 숭배 행위를 받아들였는데(왕상 11:1-8). 그 결과 이스라엘 통일 왕국은 분열되고 급기야는 멸망당하고 말았다(왕상 11:26, 렘 52:3-6). 따라서 본 절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상, 인간은 누구나 선(善)을 따라 행하기 보다는 악(惡)으로 쉽게 빠져들 위험이 더욱 많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적 권면이다.

 

7:4 다른 신들. 가난안의 여러 신들(바알, 아스다롯, 하늘 황후 등)은 대개 타락한 형태의 주신제(酒神祭) 의식이나 음란한 성(性) 의식을 통해 예배되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이들 가나안 땅의 신들을 섬기다 보면 자연히 각종 방탕과 음란, 도덕성 부패 등과 같은 심각한 죄악에 빠질 것은 뻔한 이치였다.

갑자기. 원어 ‘마헤르’는 ‘서두르다’, ‘속도를 내다’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 이 말은 예기치 못한 일이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뜻하지 않고 어떤 일이 생각했던 것보다 속히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4:26). 여기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과 결혼, 결국 우상 수배에 빠지게 되면 아무리 자비하신 하나님일지라도 지체없이 벌하실 것이란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7:5 주상. [히, 맛체바] ‘세우다’(erect)란 뜻의 ‘나차브’에서 온 단어로, 문자적으로는 ‘고정적인 위치에 세워진 어떤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주상’(柱像, Pillars)이란 비단 세워진 우상(images)뿐만이 아니라, 종교적인 목적으로 세운 기념 비석(memorial stone)까지 의미한다(창 28:18).

아세라 목상. ‘아세라’(Ashera)는 본래 두로(Tyre)의 신이었으나 후에 고대 근동의 여러 족속들, 특히 아모리족과 가나안족이 숭배하게 된 여신(女神)이다. 가나안 최고의 신 ‘엘’(El)의 아내이자 풍요와 다산(多産)의 신 ‘바알’(Baal)의 모신(母神)이기도 한 아세라는 성교(性交)와 전쟁의 신인데, 아낫(Anath), 아스다롯(Ashtaroth)과 더불어 가나안의 3대 여신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아세라는 주로 나무에 그 상(像)을 새겼으므로 단순히 ‘목상’으로만 불리우기도 하였다(레 26:1, 왕하 10:26).

 

7:6 성민. ‘바치다’, ‘구별하다’란 뜻의 ‘카도쉬’와 ‘무리’, ‘백성’이란 뜻의 ‘암’이 합쳐진 말로, 곧 ‘구별된 백성’이란 뜻이다. 즉 이스라엘은 천하 만민 가운데서 특별히 구별되어 거룩하신 하나님의 소유로 바쳐진 거룩한 백성이다. 한편 이 말은 신약 시대에 이르러 예수를 믿는 신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따라 그분께 ‘구별되어 바쳐진 자들’ 역시 ‘거룩한 무리’란 뜻의 ‘성도’(하기오스)라 불리웠다(롬 1:7).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기업’에 해당하는 ‘세굴라’는 ‘특별한 보석’ 또는 ‘재산’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를 직역하면 ‘자기 재산의 백성으로’가 되는데,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이를 ‘자신의 특별한 민족으로’(special people unto himself)로 번역하였다.

 

7:7 기뻐하시고. 원어 ‘하샤크’는 ‘열렬히 사랑하다’, ‘갈망하다’, ‘매달리다’는 뜻으로 뜨거운 사랑과 애착심을 가리킨다. 창 34:8에서는 ‘연연(戀戀)하다’, 즉 ‘반하여 사모하다’로 번역되었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고대 국가에 있어서 일차적으로 인구가 많은 것은 강력한 국력을 의미하었다. 따라서 이는 이스라엘의 국력이 타민족에 비해 결코 강력하지 못했음을 가리킨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실제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민(選民)으로 택정하시고 불러 주신 때는, 이스라엘의 수효가 많고 강성했을 때가 아니라, 오직 갈대아 우르를 떠나 이방의 나그네 된 아브라함 한 사람 뿐이었을 때였다(창 12:1-4). 그리고 당시에는 이미 곳곳에 국가, 민족, 부족들이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고 나름대로 위세를 떨치고 있었을 때였다(Baumgarten).

 

7:8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본 절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제로부터 구속시켜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신 진정한 이유가 제시되어 있다. 그 이유는 첫째, 보잘것 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때문이며, 둘째, 아브라함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여러 열조와 맺으신 언약을 지키시려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이다.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 아브라함을 비롯한 여러 족장들에게 주신 언약(창 12:2, 17:1-8, 26:3-5, 28:13-15)을 가리킨다.

종 되었던 집. 출 13:3 주석 참조.

속량하셨나니. 원어 ‘파다’의 기본 뜻은 ‘몸 값을 받고 석방하다’이다. 이는 고대 사회에서 몸값을 지불받고 노예를 자유인으로 해방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말이 종교적 의미로 사용되어, 죄인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드려지는 희생물의 죽음으로써 죄인이 그 죽음으로부터 면케 되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실 때 양의 피를 집 문설주에 바르게 함으로써 죽음을 면케 한 것을 가리키는데(출 12:7), 결국 이것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대속적 죽음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하는 것이다(요 1:29).

 

7:9 천 대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성(信實性)에 근거한 바, 곧 언약 이행(履行)의 확실성과 불변성 그리고 지속성을 강조하는 표현이다(출 20:6).

인애. 원어 ‘헤세드’는 ‘인자’, ‘은혜’, ‘은총’, ‘긍휼’, ‘자비’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말이다. 곧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언약에 근거하여 자기 백성에게 베풀어 주시는 온갖 긍휼과 친절 그리고 풍성한 은혜를 가리킨다.

 

7:10 당장에. 원어 ‘엘 파나우’는 ‘엘’(- 에 관하여)과 ‘파네’(앞쪽에)가 합쳐진 말로, 곧 ‘그들의 면전에서’(LXX)라는 뜻이다. 그러나 불가타(Vulgate)역은 이를 ‘즉석에서’로, 탈굽(Targum)역은 ‘생전(生前)에’로 각기 번역하고 있다. 또한 학자들 간에도 견해를 달리하여 랑게(Lange)는 ‘저희 각자에게’로, 칼뱅(Calvin)은 ‘공공연하게’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엘 파나우’의 문자적 뜻과 성경 용례(출 23:17, 레 9:5) 등으로 미루어 볼 때 70인역(LXX)의 번역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Pulpit Commentary). 따라서 본 절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들도 분명히 깨달아 알 수 있게끔 ‘그들의 면전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뜻이다(Rosenmüller).

 

7:11 명령과 규례와 법도. 하나님의 온 율법을 가리키는 삼중적 표현이다(6:1).

 

7:12 듣고 지켜 행하면. 여기서 ‘- 하면’에 해당하는 ‘에케브’는 ‘발꿈치’라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곧 어떤 일의 마지막에 뒤따르는 ‘보수’나 ‘보답’을 의미한다(Pulpit Commentary). 그렇다고 해서 계명에 대한 순종을 축복의 전제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말씀에 대한 순종은 속량받은 인간의 당연한 의무이고, 그 결과 받는 축복은 순전히 하나님께서 덤으로 주시는 은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절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촉구하는 강조법적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인애. [히, 헤세드] ‘인자’(창 19:19), ‘은혜’(출 20:6), ‘은총’(창 32:10, 삼하 9:3), ‘선대’(수 2:12), ‘후대’(삿 8:35), ‘긍휼’(시 85:10), ‘자비’(사 63:7) 등으로도 번역되는 단어로, 이 말은 이러한 모든 의미에 ‘사랑’이란 의미가 결부된 하나님의 특별한 언약적 용어이다.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온갖 사랑의 행위를 의미하는데,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구속함 받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되는 이유와 근거도 바로 이 하나님의 ‘헤세드’에 근거한 것이다(출 15:13).

 

7:13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사 그것을 지켜 행하게 하신 참목적이다(6:1-3).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직역하면 ‘네 태(胎)의 열매를 축복하시며’란 의미이다. 이는 자손 번성의 축복과 아울러 그들이 부모의 경건한 신앙과 생활에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영적 축복도 받게 될 것을 뜻한다.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 정확히 번역하면 ‘네 땅의 열매, 즉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이다. 여기서 ‘곡식’에 해당하는 ‘다간’은 일반적인 곡물을 가리키긴 하나 그 중에서도 특히 ‘밀’을 가리킬 때가 많다. 그리고 ‘포도주’에 해당하는 ‘티로쉬’는 가끔 ‘잘 익은 포도 열매’를 뜻하기도 하나, 대개는 ‘방금 짜낸 포도즙’이나 ‘잘 발효시킨 새 포도주’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기름’에 해당하는 ‘이츠하르’는 감람 열매(olive)에서 추출한 기름을 뜻하는데, 성소에 불을 밝히거나(출 27:20) 기름 부음 의식(출 30:23-30). 그리고 취사용 연료 등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이상과 같은 곡식과 포도주 및 기름은 팔레스타인의 가장 중요한 3대 소산물인데, 히브리인들은 이를 하나님의 특별 선물로 여겼다(렘 31:12, 욜 2:19).

양. 직역하면 ‘네 떼의 어린 것들’(the young ones of your flock, RSV)이란 의미이다. 학자들은 여기서 ‘어린 것들’(히, 아쉬테롯)을 ‘양의 암컷’ 혹은 ‘암양’이란 의미로 보고 있다(Kimchi, Gesenius). 그런데 이 말은 ‘쌓다’(accumulate), ‘성장하다’(grow), ‘증가하다’(increase), ‘부유하게 되다’(rich)란 뜻을 지닌 기본 동사 ‘아샤르’에서 파생된 말이다. 그러므로 ‘양의 암컷’에 ‘아쉬테롯’이란 명칭을 부여한 것은 그것들이 떼를 ‘증식시키는 ‘요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가난안 사람들(페니키아인들)은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여신(Venus)으로 ‘아스타르테’(Astarte)를 섬겼다(Keil, Lange, Pulpit Commentary).

 

7:14 생육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며. 비단 히브리인들 뿐 아니라 고대 근동 사회에서도 여인이 잉태치 못하는 것은 큰 수치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다산(多産)을 일종의 미덕으로 장려하기까지 하였는데, 이는 당시 종족을 보존, 확장하고 국력을 좌우하던 주요 요인이 백성의 수(數)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7절). 아무튼 자손 번성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풀어 주시는 큰 축복 중의 하나인데(시 127:3), 인간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근본 뜻이다(창 1:28).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때부터 당신의 백성을 축복하실 때 반드시 자손 번성을 거듭 약속하여 주셨다(창 12:2, 13:16, 22:17, 출 23:26).

 

7:15 애굽의 악질. 애굽의 풍토병(風土病)인 여러 가지 악성 피부병과 옴, 장티푸스, 이질, 천연두, 안질, 흑사병 등을 가리킨다(Hengstenberg, Wycliffe). 이러한 각종 질병은 애굽의 고온 다습한 기후와 사막의 먼지 등에 의해 빈발했는데, 근래까지도 어떤 사람(Pliny)은 애굽을 가리켜 ‘모든 질병의 본산지’라고 일컬을 정도였다.

 

7:16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고. 가나안 족속들의 온갖 부패한 우상 숭배 죄와 각종 관영한 죄악을 엄격히 징치하기 위함이다(2절).

진멸하며. 원어 ‘아칼’은 ‘삼키다’(렘 2:30), ‘잡아먹다’(창 37:20)는 뜻으로, 마치 굶주린 맹수가 먹이를 삼켜 버리듯 하나도 남겨둠이 없이 철저히 멸절시키는 것을 가리킨다(2:34).

올무가 되리라. 여기서 ‘올무’에 해당하는 원어 ‘모케쉬’는 ‘유혹하다’(ensnare)란 뜻의 ‘야코쉬’에서 파생된 말로, 곧 (짐승을 잡는) ‘밧줄’, (코를 꿰는) ‘갈고리’ 등의 의미이다. 이것은 가나안 족속과의 교제 및 통혼 등은 곧바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덫’(trap)이 됨을 시사한다(3절).

 

7:17 17-18절. 가나안 정복을 눈앞에 둔 백성들이 가나안 거민들의 외형적 우세함 때문에 지례 겁먹고 다시 약 38년 전에 저질렀던 것과 같은 구세대의 잘못(민 13:25 - 14:35)을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한 모세의 권면이다. 즉 모세는 이스라엘 신세대에게 가나안 땅에서의 복된 삶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고취시킨 후 이제 그 가나안 땅을 담대히 정복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즉 가나안 족속의 군사력이나 수효의 많음에 결코 겁먹지 말고, 애굽과 광야에서 묵도한 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기억하고, 당당히 여호와의 군대로서 전쟁을 치르라고 훈계하고 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으로서(삼상 17:47), 전쟁의 승패 또한 여호와의 손에 달려있다. 따라서 본문의 말씀은 오늘날 사탄과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는 그리스도의 군사된 우리 성도들에게도 적용되는 살아 있는 메시지이다(엡 6:10-20).

 

7:18 없음.

 

7:19 큰 시험과 이적과 … 편 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기 위하여 애굽의 바로와 그 백성에게 행하셨던 큰 권능 역사를 가리킨다(4:33-34).

 

7:20 왕벌을 … 보내어. 이미 출 23:28에서 약속된 내용이다. 여기서 ‘왕벌’에 해당하는 원어 ‘치르아’는 ‘고통을 주다’, ‘채찍질하다’란 뜻의 어근 ‘차라’에서 파생된 말인데, 주로 사해 주변의 사막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는 ‘말벌’(hornet)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 이것이 뜻하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관하여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1) 실제로 팔레스타인에 자생(自生)했던 독한 말벌을 가리킨다. (2) 자연적인 재해를 가리킨다. (3) 하나님의 특별 섭리로 인한 초자연적 재해를 가리킨다. (4) 이스라엘의 광야 체재시 팔레스타인을 침공하여 가나안 족속을 약화시켰던 애굽 군대를 가리킨다. (5) 과거 출애굽 사건 및 최근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의 정복 사건으로 말미암아 가나안 족속들에게 심겨진 심한 공포심을 가리킨다. 우리는 여기서 ‘왕벌’을 이스라엘의 성공적인 가나안 정복 전쟁에 직접 혹은 간접으로 영향을 끼쳤던 ‘하나님의 모든 도움’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무난할 것 같다.

 

7:21 크고 두려운 하나님. 가나안 여러 족속들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며 그 민족을 위해 역사하시는 권능의 하나님에 대하여 갖는 두려움과 공포를 나타낸다(출 34:10). 물론 타락 이후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 대하여 본연적인 두려움을 갖게 되기 마련이나, 특히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 자들은 그분의 크고 놀라운 권능과 위엄으로 인해 주체할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떨기 마련이다(사 33:14).

 

7:22 조금씩 쫓아내시리니. 이미 출 23:29-30에서 자세히 언급된 사항으로, 급진적인 정복으로 인해 야기될지도 모를 국토의 폐허와 맹수들의 번성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 속에는 남아 있는 가나안 족속들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여호와 유일 신앙을 시험하려는 목적도 내포되어 있다(삿 2:22-23).

 

7:23 크게 혼란하게 하여. 정확히 번역하면 ‘심하게 파괴하다’ 또는 ‘심히 혼란스럽게 하다’란 의미이다. 그러므로 KJV는 이를 ‘그들을 완전히 멸망시키다’(destroy them with a mighty destruction)로 번역하였다.

진멸하시고. 원어 ‘샤마드’는 16절의 ‘아칼’과는 달리 ‘황폐케 되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는 철저한 파멸을 뜻하는데, 곧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 주는 외적 사건이다.

 

7:24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제하여 버리라. 고대 세계에 있어서 왕은 곧 국가였으며 왕의 이름은 그 종족과 시대를 대표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전쟁에 있어서 왕의 전사(戰死)는 바로 그 나라 전체의 패배를 의미하였는데, 여기서도 가나안 왕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제거하라는 것은 곧 가나안 족속 전체를 철저히 멸망시키라는 뜻이다. 이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가나안 족속들의 죄악을 따르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기억조차도 하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훗날 여호수아는 이 명령을 따라 가나안 족속의 31명의 왕들을 죽였다(수 12:7-24).

 

7:25 취하지 말라. 우상 숭배 금지 명령(6:14)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우상 소유 금지 명령이다. 이러한 명령은 비록 백성들이 가나안의 신이나 우상들을 직접 섬기지는 않더라도, 가나안 정복 전쟁의 전리품으로 그것들을 취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 즉 만일 그들이 가나안이 우상을 취한다면, 그 우상에 대하여 점점 관심을 가지고 결국에는 우상 숭배에 빠져들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가나안의 어떤 우상은 공교(工巧)할 뿐 아니라 값비싼 금이나 은으로 도금되어 있었기 때문에 불태워 버리기에는 매우 아까웠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들에게 모든 악한 것에 대하여는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교훈하고 있다(살전 5:22). 실로 타락 이후 죄악된 심성(心性)을 가진 인간에게 있어서 ‘죄악의 모양’ 그 자체는 하나의 올무가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7:26 가증한 것. 원어 ‘토에바’는 ‘몹시 싫어하다’, ‘지독하게 미워하다’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혐오스러운 것’ 또는 ‘구역질 나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가나안의 각종 우상들을 가리키는데, 모세는 여기서 이러한 우상, 곧 가증한 것에 대해 백성들이 취할 태도를 다음 세가지로 명령했다. (1) 절대 탐하여 취하지 말라. (2) 결코 집안에 들여놓지 말라. (3) 극히 꺼리며 심히 미워하라. 따라서 백성들은 가나안의 모든 우상을 철저히 부수고 파괴하여 완전히 소각하여 없애버려야 했다(출 32:20, 왕하 23:4, 대하 15:16). 이는 오늘날 성도들이 온갖 유형, 무형의 우상에 대하여 가져야 할 마땅한 태도가 어떠한 것인지를 생생히 일깨워 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보상을 바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며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심정에서 당신을 섬기는 것을 기뻐하신다. 따라서 지극히 계산적인 자세에서 섬기는 것은 결코 원치 않으신다(삼상 15:17-23).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하여 사람의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행 17:25), 도리어 인간에게 다함 없는 축복과 은혜 베푸시기 위하여 경배를 명하신 분이기 때문이다(28: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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