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주석, 신명기 0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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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너희에게 가르치라 명하신. 호렙 산 언약 사건시(출 19:1-20:21) 십계명이 선포된 후, 백성들은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고 산에 홀로 남은 모세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전달된, 곧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할 모든 율법의 세부 내용을 가리킨다(5:30-31). 모세는 이를 받아 당시 이스라엘 구세대에게 가르쳤는데, 이제 가나안 입성의 주역으로 성장한 새 세대들에게도 다시 새롭게 가르쳐야 했다.

명령과 규례와 법도. 성경 여러 곳에서 서로 혼용되고 있는 병치어(倂置語)로 의식법과 시민법, 그리고 기타 제반 규례들을 포함한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가리키는 강조적 표현이다(4:1, 5:31).

건너가서 차지할 땅. 즉 요단 강을 건너가서 정복하게 될 가나안 본토의 땅을 의미한다(1:7).

 

6:2 경외하며. 원어 ‘야례’는 ‘두려워하다’란 말에서 온 단어로, 삼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마음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오직 그분만 섬기는 것을 가리킨다(10:12). 바로 이것이 모든 율법의 근본이자 핵심이다(5절, 마 22:36-38). 모세가 거듭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강론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 이 장구(長久)의 축복은 삼중적(三重的)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잇는 말이다. (1) 개인적 차원. 단순히 시간적인 명(命)이 길 것이라는 양(量)적 의미 외에도 개인이 누리는 생명의 질(質)이 평화롭고 행복스런 것이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호 2:18). (2) 민족적 차원.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으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이 흥왕하고 번성할 것이라는 의미이다(창 17:6). (3) 인류적 차원. 구속사상(救贖史上)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백성들이 영적 가나안, 즉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토록 새 생명을 누릴 것이라는 의미이다(계 21:10-22:5).

 

6:3 삼가. [히, 샤마르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성도의 마땅한 자세를 가리키는 말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자신을 지켜 보호하면서 ‘조심스럽고도 신중하게’(carefully and heedfully) 말씀을 준수하라는 뜻이다(5:32).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목축과 농업을 겸하여 할 수 있는 풍요롭고 기름진 땅이라는 뜻으로, 가나안 땅을 아름답게 묘사한 관용적 표현이다(출 3:8, 17, 레 20:24, 민 13:27). 또한 이는 천국의 아름다움을 예표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11:9). 출 3:8 주석 참조.

 

6:4 오직 유일한 여호와. ‘오직 유일’에 해당하는 원어 ‘에하드’는 ‘아하드’(통일시키다, 모으다)에서 유래된 말로, 곧 ‘통일된 하나’를 의미한다(출 26:6, 겔 37:19). 특히 여기서 이 말은 상대적인 단일성(單一性)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절대적인 유일성(唯一性)을 가리키는 말이다(AbenEzra, J.H. Michaelis). 실로 인간 본래의 원초적인 두려움이나 또는 종교적인 심성(心性)에 기인하여 다신론(多神論)적이고 범신론(凡神論)적인 자연 숭배 사상이 보편적이었던 고대 세계에서 이러한 고차원적인 유일신론(唯一神論, Monothesim, MonoYahwism) 사상을 견지한 히브리인들의 신관(神觀)은 진정 놀라운 것이다. 한편 그런 점에서 본 절은 모든 율법의 근원이자 신앙의 대상인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屬性)에 대한 서술로서, 곧 하나님의 불가분적인 단수성(單數性, Unitas Singularitatis)과 단순성(單純性, Unitas Simplicitatis)을 시사하는 중요한 구절이다. 그러므로 본 절은 그 자체 속에 다신론(Polytheism)과 범신론(panthrism), 그리고 단일신론(henotheism, Monarchianism)까지 단호히 배격하고 있는 구절이다. 그렇기에 유대인들은 이를 자신들의 신앙의 근본으로 삼아 매일 조석(朝夕)으로 읽거나 암송할 만큼 중요시 여겼다. 이러한 맥락에서 히브리어 성경에는 본 절의 첫 단어 ‘쉐마’의 끝자 ‘아인’과 마지막 단어 ‘에하드’의 끝자 ‘달렛’이 보통 문자보다 더 크게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두 문자의 합, 즉 ‘에드’는 ‘증거’, ‘증인’이란 뜻을 지니는데, 유대 랍비들은 설명하기를, 본 절을 고백할 때 그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 ‘증인’이 되시므로 누구든지 성심 성의껏 본 고백을 해야할 것이라 하였다(R. Bechai, J.H. Michaelis).

 

6:5 마음 … 뜻 … 힘을 다하여. 여기서 ‘마음’에 해당하는 원어 ‘레밥’은 지정의(知情意)를 포함하는 인간의 내적, 정신적 본질을 가리킨다. 그리고 ‘뜻’에 해당하는 ‘네페쉬’는 ‘영혼’, ‘생명’, ‘호흡’ 등으로 번역되는데(창 1:30, 욥 41:21). 여기서는 육체와 정신 전체를 포괄한 전인격(全人格)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힘’에 해당하는 ‘메오드’는 육체적, 정신적 활동력 및 모든 능력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구분은 순전히 여자적(如字的)인 것일 뿐, 사실이 세 단어는 인간의 전인격과 모든 노력을 강조하는 중언법적(重言法的) 표현이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전적인 헌신과 사랑을 의미한다(마 22:37, 눅 10:27, 롬 12:1).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인간은 그 마음에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왜냐하면 한편을 사랑하면 자연히 다른 편은 소홀히 대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 능력의 한계이기 때문이다(마 6:24). 마음을 분산시키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마음 중심에 모셔 그분만을 경외하라는 의미이다(마 10:37).

 

6:6 마음에 새기고. 자신의 모든 의지를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전념시키라는 뜻이다. 그리할 때 우리는 곁길로 흐르지 않고 정도(正道)를 걸을 수 있는데, 이는 그분의 말씀이 우리의 앞길을 밝혀주는 등(lamp)과 빛이 되기 때문이다(시 119:105).

 

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부지런히 가르치다’에 해당하는 원어 ‘샤난’의 본래 뜻은 ‘찌르다’, ‘뾰족하게 하다’이다. 따라서 이 말은 생명력 있는하나님의 말씀(히 4:12)으로 자녀들의 마음과 영혼을 예리하게 찌르듯 감동시키고 교훈하라는 뜻이다. 이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신앙 교육의 책임과 의무를 일깨워 주는데, 후일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특별히 권면한 점이기도 하다(엡 6:4).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 강론할 것이며. 자신 및 자신의 가족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듭 주지시켜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일상 삶과 사고(思考) 가운데서 늘 말씀에 유의하며, 또한 이를 준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6:8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손은 마음속의 생각을 행동으로 실행하는 지체(肢體)이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행동의 지침으로 삼으라는 의미이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미간(眉間)은 대개 인간의 지성과 사고를 상징한다.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사고와 판단의 기준으로 삼으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본 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생활 곳곳에 깊이 스며들도록 삼가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즉 본 절의 말씀은 단순히 여자적(如字的)으로 그렇게 실행하라는 뜻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행동으로든지 마음으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잊지 말고 기억하여 지키라는 의미를 비유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를 여자적(如字的)으로 받아들여 본 절과 같은 명령이 들어있는 율법의 4구절들(6:4-9, 11:13-21, 출 13:2-10, 11-16)을 양피지에 그대로 베껴서 그것을 경문갑(經文匣, Phylactery)이라고 하는 성구함에 담아 손목과 이마에 무착하고 다니는 경문(經文)의 풍습으로 발전시켰다. 그렇지만 이 풍습이 점차 외식(外飾)의 수단으로 전락되어졌기 때문에, 예수 시대에는 그러한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호된 책망을 받기도 했다(마 24:5). 출 13:9 주석 참조.

 

6:9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이 역시 하나님의 말씀만이 가정을 온전히 주관토록 하라는 뜻이다. 한편, 고대 근동의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는 종교적, 도덕적 황금률(golden rule)을 적은 쪽지를 몸에 휴대하거나 또는 집에 붙여 두는 일종의 부적(符籍)풍습이 일찍부터 성행하였다(Russell, Wilkinson). 따라서 히브리인들도 이러한 풍습에 영항을 받았었는데, 모세는 이를 이용, 백성들에게 여호와 신앙을 고취시키는 계기로 삼았다(Pulpit Commentary).

 

6:10 10-11절. 이스라엘이 미구(未久)에 가나안 땅에서 누릴 풍성한 축복을 묘사한 부분이다. 그러나 본문은 그러한 축복이 결코 그들의 노력이나 능력에 의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열조와 맺은 언약을 기억하사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임을 분명히 강조하고 있다(창 17:8).

 

6:11 없음.

 

6:12 애굽 땅 …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 출애굽 사건은 호렙 산 언약 사건(4:10-14)과 더불어 이스라엘이 결코 잊어서는 안될 중요한 2대 사건이다. 왜냐하면 이 두 사건은 이스라엘이란 국가를 태동시킨 사건이자,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구속주 및 통치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가장 명백히 선포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본서 전체를 통하여 이 사건을 거듭 회고하고 있다(4:20, 34, 7:18-19, 8:14, 11:2-7, 20:1, 24:18). 따라서 만일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은혜로 풍족한 생활을 하게 될 때, 이 사실을 잊어버린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께 대한 패역한 배신 행위가 되는 것이다.

종 되었던 집. 출 13:3 주석 참조.

 

6:13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본 절은 십계명 중 제3계명(출 20:7)인 ‘성호(聖號)경외 사상’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말로서, 곧 무엇이든지 맹세할 일이 있을 경우 최고의 권위를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맹세함으로써 반드시 그 맹세한 바를 이루라는 뜻이다. 만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도 그것을 이루지 아니한다면, 그것은 곧 그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행위가 되니 결코 하나님 앞에서 죄 없다고 하지 못할 것이다(5:11).

 

6:14 다른 신들 … 따르지 말라. 인간이 자신의 종교성에 따라 무엇을 섬긴다는 것은 단순히 그것을 신(神)으로 알고 절한다는 외적 행동 뿐 아니라, 전적으로 그 신이 제시하는 인생관과 우주관 및 역사관 등을 청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헛된 신과 우상을 섬길 경우, 자연히 그것들이 제시하는 헛되고 탐욕적인 사상에 물들어 하나님과 그분의 바른 교훈까지도 저버리게 될 터이니, 이에 모세는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를 엄격히 금하고 있는 것이다.

 

6:15 질투하시는 하나님. 4:24, 5:9에 이어 거듭 반복되는 표현으로, 곧 하나님을 의읜화(擬人化) 시킨 신인 동감 동정론(神人同感同情論, anthropopathism)적 표현이다. 특히 하나님은 다른 무엇보다 우상 숭배자들에 대하여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것은 당신 백성들이 당신 외의 대상에게 헌신과 애정을 바치는 것을 하나님이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는 강조적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같은 질투는 고대 근동 및 그리스, 로마 등의 여타 신들처럼 인간의 배반이나 성공, 그리고 용맹이나 번영 등에 대해 시기하고 암투(暗鬪)하는 그러한 질투가 아니라, 당신에게만 돌아올 고유한 찬양이나 영광 등이 한낱 당신의 피조물인 다른 대상에게 엉뚱하게 돌아갈 때 하나님의 속성상 우러나오는 거룩한 분노이다. 즉 하나님은 사랑하는 당신 백성들이 헛된 우상에게 그 마음과 영혼을 빼앗기는 것을 그 속성상 차마 볼 수 없기에 이를 질투하시는 것이다(출 34:14, 수 24:19). 한편 하나님의 이러한 품성은 우상 숭배하는 행위를 ‘음행’(淫行, adultery)이라는 말로 정죄한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렘 13:27, 겔 16:20, 호 9:1).

 

6:16 맛사에서 시험한 것. 약 39년 전, 즉 출애굽 제1년 2월 말경 호렙 산 근처 르비딤에서 마실 물이 없자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시험한 사건을 가리킨다(출17:1-7). 그리고 ‘맛사’(Massah)는 이 사건에서 유래된 르비딤의 이명(異名)인데, 곧 ‘시험’이란 뜻이다. 출 17:1-7 주석을 참조하라.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고 하면서도 그분에 대해 원망하거나 그분의 선하신 뜻과 섭리에 대하여 의심하는 것과 같은 불경죄를 짓지 말라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연약한 자가 저지르기 쉬운 행동인데, 성도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를 힘써야 한다(엡 4:13).

 

6:17 명령과 증거와 규례. 하나님의 제반 명령과 규례, 법도를 가리키는 삼중(三重) 표현이다(1절).

 

6:18 정직하고. 원어 ‘야샤르’의 문자적 뜻은 ‘곧다’인데, 여기서는 사리에 합당하며(왕상 11:38) 의로운 일(12:25)을 의미한다.

선량한. 원어 ‘토브’는 ‘좋은’ 또는 ‘아름다운’이란 뜻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이나 호의적인 평가를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일을 가리킨다(창 1:4).

 

6:19 대적을 .. 쫓아내시겠다. 이스라엘 앞에서 쫓겨날 운명에 처한 가나안 족속들이 결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편애 때문에 억울하게 쫓겨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관영한 죄악 때문에 쫓겨날 수 밖에 없었다( 창 15:16). 왜냐하면 죄악 중에 빠진 백성들이 천국을 상징하는 거룩한 땅 가나안에서 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후일 그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우상 숭배의 죄악에 빠지자, 그들 역시 그 약속의 땅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에서 확실히 입증된다.

 

6:20 규례와 법도. 4:1 주석 참조.

무슨. [히, 마] 어떤 일의 근거나 목적(민 23:8) 또는 중요성(창 4:10)을 강조하는 단어이다.

 

6:21 네 아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신앙이 반드시 후손들에게 전해져야 함을 강조한다.

인도하여 내셨나니.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 노릇하던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낸 구원자이시듯, 그의 계명과 규례 및 법도 역시 인간을 얽매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진정으로 자유케 하기 위한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사건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후대의 자손들에게 구속주 여호와 신앙을 전수(傳授)시켜, 그 후손들 역시 여호와의 구원의 규례와 법도를 잘 알고 지켜 길이 복을 누릴 수 있도록 신앙 교육을 게을리 말아야 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비록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교육의 방법과 도구는 변할 수 있을지라도, 교육의 중심 내용과 사상은 신앙의 부모들이 계속 유지시켜, 자신의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6:22 이적과 기사. 하나님께서 당신 백성을 보호하시거나 구원하기 위해 자연 법칙을 뛰어넘어 역사하신 초자연적 권능 및 사역을 가리킨다(4:33-34).

 

6:23 없음.

 

6:24 우리가 … 복을 누리게. 직역하면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for our good)란 뜻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규례와 법도와 계명과 증거를 제정하사 이스라엘에게 선포하심에 있어서, 당신의 영광과 위엄을 고려했을 뿐 아니라, 동시에 백성들의 유익을 깊이 고려하셨음을 뜻한다.

 

6:25 지키면 …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본 절은 율법의 행위로는 결코 의롭다 인정받을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리라는 바울의 이신득의(以信得義)의 가르침과 모순되는 듯한 구절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1) 여기서 모세가 언급하고 있는 의로움의 동기는 외적 율법의 준수만이 아니라 내적으로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Lange). (2) 또한 인간 육체 중 진정 율법을 온전히 지켜 의로움에 이를 수 있는 자는 사실상 아무도 없다(롬 3:10, 7:15-25). (3) 그뿐 아니라 선한 행위의 열매가 없는 믿음은 있을 수 없으며(약 2:14-17), 또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지 못하는 자가 율법을 다 준수했다고 공언하는 것 역시 어불성설(語不成說)이 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원리’는 신구약을 통해 그 내용상 동일하게 강조되고 있는 중요 사상임을 알 수 있다(합 2:4, 롬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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