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주석, 신명기 0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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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1-6절. 십계명을 설명하기 위한 도입 부분이다. 십계명은 모든 율법의 근간이 되는 최고법이다. 본문은 그 십계명이 이스라엘에게 왜, 그리고 무슨 근거로 주어졌는지를 설명한다.

온 이스라엘을 불러 … 이르되. 이스라엘 새 세대 중 20세 이상되는 남자의 수만도 601,730 명이었으니(민 26:51), 모세가 이들을 한 곳에 다 소집해 놓고 이야기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아마도 모세가 백성들의 대표인 장로들에게 이야기하고, 장로들이 백성들에게 대언하는 방식을 취하였을 것이다.

규례와 법도. 하나님의 ‘온 율법’을 강조하여 지칭한 중언법적 표현이다. 4:1 주석 참조.

 

5:2 호렙 산에서 … 언약을 세우셨나니. 약 39년 전 모세가 호렙 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언약을 뜻한다(출 19:3). 그 언약의 주된 내용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면 여호와의 소유, 여호와의 백성, 여호와의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이었다(출 19:5-6).

 

5:3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호렙 산 언약은 과거 그것을 체결했던 구 세대에게만 해당되는 낡은 법조문이 아니라, 지금 모압 평지에서 모세의 설교를 듣고 있는 새 세대와 또한 미래의 이스라엘 모든 세대에게 적용될 영원한 약속이다. 이런 점에서 호렙 산 언약은 열조 곧 과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위시한 여러 족장들과 맺은 언약(창 17:1-8, 26:2-5, 28:10-15)과는 구분된다. 왜냐하면 이전의 언약들은 하나님께서 각 개인과 맺은 언약이었으나, 호렙(시내) 산 언약은 후손을 포함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전체와 맺은 언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언약의 내용과 본질에 있어서는 항상 변함이 없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모든 언약은 하나님의 신실성과 불변성에 근거하였기 때문이다(삼상 15:29).

 

5:4 대면하여 말씀하시매. 이 말은 모세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았다는 뜻은 아니다(4:12). 이는 단지 사람이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친밀하게 직접 율법을 전해 주셨다는 뜻이다.

 

5:5 불을 두려워하여. 이때의 불은 호렙산 떨기나무에 붙었던 것과 같은 초자연적 불로서(출 3:1-3), 하나님의 현현(顯現)을 상징하는 영광과 거룩의 불이었다(출 19:18). 따라서 죄성(罪性)에 젖어 살던 백성들은 그 초자연적인 영광과 거룩의 불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였다(4:11).

내가 여호와와 너희 중간에 서서. 호렙 산 언약체결시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모세가 중개자 역할을 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장엄한 강림 현상을 목도한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며 모세에게 중재 역할을 요청했기 때문이다(출 20:18-21). 이처럼 구약 시대에 필수 불가결했던 이 중재자의 원리는 신약 시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하신 중보자(仲保者)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해 준다(딤전 2:5, 히 8:5-6). 이는 죄인인 인간은 죄 없으시고 거룩하신 분인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를 통하지 않고서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음을 시사해 준다.

 

5:6 나는 …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나님께서는 백성들과 언약을 맺거나 율법을 선포하실 때 반드시 당신의 호칭을 먼저 언급하셨다(창 17:1-2, 출 3:6, 20:1-2). 이것은 당시 고대 근동의 종주권 맹약(宗主權盟約)의 전형적인 형태인데, 입법자의 권위를 먼저 내세움으로써 뒤에 이어지는 언약이나 율법에 확고한 권위와 가치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전적으로 여호와의 이름 위에 근거하고 있다(Baumgarten).

너를 애굽 땅 …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기서 십계명의 수여자이신 하나님은 당신을 심판주로서가 아니라, 구속주로 선포하고 있다. 이는 십계명이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사랑의 언약’임을 시사해준다(Geerhardus Vos). 자세한 내용은 출 20:2 주석을 참조하라.

 

5:7 나 외에는 … 두지 말지니라. 직역하면 ‘나와 대립하여 … 두지 말라’ 또는 ‘나와 병립하여 … 두지 말라’란 뜻이다. 이 첫 계명은 하나님만이 인간의 유일한 신이며, 그분만을 섬기는 것이 인간에게 요구되는 가장 크고 첫째되는 의무(마 22:37-38)임을 밝혀 주며, 이것이 참종교의 기초와 출발점이 된다. 출 20:3 주석 참조.

 

5:8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영(靈)이신 하나님을 형상화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같은 행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하여는 만족과 위안을 얻지 못하는 인간의 부패한 종교적 심성에서 비롯된 이기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고 교훈하고 있다. 출 20:4 주석 참조.

 

5:9 절하지 말며 … 섬기지 말라. ‘절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샤하’는 ‘복종하다’란 뜻을 지니며, ‘섬기다’에 해당하는 ‘아바드’는 ‘예속시키다’, ‘노예가 되다’란 뜻을 지닌다. 따라서 이는 단순한 외적(外的) 행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내적(內的) 정신상태까지를 말하는 것이다.

질투하는 하나님. 언약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과 죄에 대하여 불같이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동시에 적절히 표현된 구절이다(4:24).

삼사 대까지 이르게. 이 말의 의미는 부모의 죄악이 그 후손들에게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이 말은 후손들이 조상의 죄 때문에 멸망당하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출 20:5 주석 참조.

 

5:10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나님의 진노에 비하여 그 은혜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크다는 사실을 강조한 수사학적 표현이다. 출 20:6 주석 참조.

 

5:11 망령되이. 기본 원어 ‘샤웨’는 ‘무익하게’, ‘거짓되이’, ‘헛되이’라는 뜻으로 곧 인간의 거짓 맹세나 저주 등에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침해하며 그분을 모독하는 행위이므로 마땅히 금지되어야 한다(레 18:21, 시 29:2, 마 6:9).

일컫지 말라. 언어를 통하여 모든 사물과 사건의 개념을 인식하는 인간에게 있어 이름은 그 이름으로 대표되는 대상(對象)의 실체(實體, substance)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 이름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문제는 본질적으로 그 대상에 대하여 어떠한 자세를 갖고 있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면서도, 그분의 성호(聖號)를 가볍게 취급하거나 외람되게 사용하는 것과 같은 잘못은 결단코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출 20:7 주석 참조.

 

5:12 네게 명령한 대로.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안식일 제도는 전혀 낯선 것이 아님을 시사해 준다. 실제로 그것은 천지창조 사건 이후 그 사실을 근거로 에덴 동산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온 제도로(창 2:1-3), 이미 호렙 산에서 입법화된 것이다(출 20:8).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출 20:8 주석 참조.

 

5:13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출 20:9 주석 참조.

 

5:14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안식일을 지키는일에 주인과 종,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있을 수 없음을 보여 주는데, 이는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동등하게 지음받은 대등한 인격체이기 때문이다(고전 11:11-12). 아울러 이는 주인이 지키는 안식일이 단순한 육체적 휴식만이 아니라 영혼의 안식에 관계된 묵상과 예배를 위한 것이었듯이, 안식일 만큼은 종들에게도 영혼의 일에 힘쓸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을 보장해 주어야함을 의미한다. 출 20:10 주석 참조.

 

5:15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 안식일을 지키라. 이 구절은 평행 구절인 출 20:11과 차이가 난다. 출애굽기에서는 안식일 준수의 근거가 하나님의 천지 창조 사역인 반면, 여기서는 이스라엘이 애굽으로부서 해방된 역사적 구속(救贖)사건이기 때문이다. 즉 전자는 안식일의 창조적 의미를 말하고 있는데, 본 절은 안식일의 구속사적 의미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안식일 계명의 대립이나 변질이 아니라 계시(啓示)의 심화,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모세는 안식일 계명을 반복하면서 영감을 받아 몇 가지 추가 사항을 덧붙였는데, 구체적인 방식으로 안식일 계명과 십계명의 나머지 계명들을 연관시킴으로써 십계명이 안식일 계명에서 정점을 이루도록 하였다. 다수의 비 재림교회 학자들도 이 같은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예컨대, 넬슨(R. D. Nelson)은 “신명기는 십계명을 독특한 방식으로 기술하여 안식일의 중요성을 상승시킨다.”라고 말하였다(Richard D. Nelson, Deuteronomy: A Commentary, The Old Testament Library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2), 81, 82).

 

5:16 공경하라. 원어 ‘카베드’의 기본 뜻은 ‘무겁다’로, 곧 상대방을 무게 있게 대우하라는 뜻이다. 출 20:12 주석 참조.

복을 누리리라. 출 20:12에서 약속된 장수의 축복에다 유복(有福)한 삶의 축복까지 덧붙여 말하고 있다. 사실 인간이 장수할지라도 그 삶이 복된 것이 되지 못하면 오히려 장수 자체가 저주스런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 공경자에게 주어진 이 약속은 매우 적절하고 중요한 약속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그렇다고 해서 복을 물질적인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성도의 가장 본질적인 축복은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 자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성도가 누릴 궁극적인 복은 장차 하늘 나라에서 주어질 것이다.

 

5:17 살인하지 말지니라. 사람의 생명을 존중히 여기는 행위를 통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증언해 주고 있는 계명이다. 신약 시대의 예수께서는 직접적 살인 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증오나 내면적 분노 등과 같은 간접 살인도 금하셨는데(마 5:21-22), 이로 보아 본 계명에는 궁극적으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수 있는 자세를 함양시키려는 그 진정한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출 20:13 주석 참조.

 

5:18 간음하지 말지니라. 구약 시대 당시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은 다산(多産) 종교에 물들어 성적(性的) 방종이 널리 횡행하였으며, 심지어 제사 의식을 통해 이를 장려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누구든지 간음하는 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명하고 있는데(22:22-24), 그 까닭은 간음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신성한 창조 질서인 일부 일처제(一夫一妻制)를 깨뜨리는 행위로서, 입법자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창 2:24-25). 한편 그리스도께서는 이 계명의 근본 정신을 더욱더 고양시켜 심지어 마음에 품는 음욕조차도 간음이라고 해석하였다(마 5:28). 출 20:14 주석 참조.

 

5:19 도둑질하지도 말지니라. ‘도둑질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가나브’는 ‘속이다’란 뜻도 있다. 따라서 본 계명은 이웃의 재물을 빼앗거나 몰래 훔치는 것 뿐 아니라 이웃의 권익을 사기 혹은 협박 따위로 침해하는 것까지 금하는 것이다. 출 20:15 주석 참조.

 

5:20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법정에서 위증(僞證)하는 것은 물론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모든 경우의 거짓말은 일체 용납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제8계명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는데, 거짓은 사람을 속이는 것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속이는 행위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출 20:16 주석 참조.

 

5:21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 ‘탐내다’에 해당하는 원어 ‘아와’는 ‘사모하다’, ‘바라다’(desire)는 뜻이다. 이는 남의 아내에 대하여 욕정에 사로잡히는 상태를 가리키는데, 이는 간음죄와 동일시될 수 있다.

그의 밭이나. 이 말은 평행 구절인 출 20:17에는 없는 내용으로서 여기서 새롭게 추가되었다. 이러한 차이점은 처음으로 십계명을 받을 때인 출애굽 제1년 3월(출 19:1)과는 달리, 현재는(출애굽 제40년 11월) 아모리 족속의 두 왕들로부터 요단 동편 땅을 탈취하여 밭이 생긴 때이므로 생겼을 것이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여기서 ‘탐내다’에 해당하는 원어 ‘하마드’는 ‘몹시 열망하다’, ‘심히 사랑하다’는 뜻이다. 이는 타인의 소유에 대하여 미련을 못버리고 계속적으로 욕심을 품는 상태를 가리키는데, 결국 그러한 상태는 마침내 그 대상을 소유하기 위한 구체적인 범죄 행위를 낳기 마련이다(약 1:15). 아무튼 이러한 탐심(貪心)은 이웃 사랑에 반대되는 사악한 욕망이니, 성도들은 이를 마땅히 제어할 뿐 아니라 보다 더 적극적으로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롬 12:15) 우는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출 20:17 주석 참조.

 

5:22 불 … 구름 … 흑암 가운데서. 하나님의 호렙 산 현현(顯現)시 수반된 세 가지 가시적(可視的) 현상이다(4:11).

총회. 민 16:2 주석 참조.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모든 율법의 기초가 되는 십계명만을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직접 음성으로 전달하셨고, 그 외 다른 율법들은 당시 하나님과 백성간의 중보자였던 모세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하신 것을 의미한다(Wordsworth, Herxheimer).

두 돌판에 써서. 하나님께서 친히 써 주신 십계명의 내용이 두 돌비에 각각 어떻게 나뉘어 기록되었는지에 대하여서는 여러 견해들이 있다. (1) 5-5 구분법 : 종교적 계명(1-5계명)과 도덕적 계명(6-10계명)으로 나뉘어 각각의 돌판에 기록되었다는 주장이다. 요세푸스(Josephus)가 제시한 견해로 4세기까지 많은 교부(敎父)들의 지시를 받았다. (2) 3-7 구분법 : 어거스틴(Augustine) 이후 로마교와 루터교에서 지지받은 견해인데, 이는 3과 7이 삼위 일체와 안식을 상징하는 완전 성수(聖數)란 점에 근거한 것이다. (3) 10-10 구분법 : 당시 고대 근동의 종주권(宗主權) 계약 체결 양식이 동일한 계약서를 중복하여 만들었다는 데 근거한 구분법이다(M.G. Kline). (4) 4-6 구분법 : 하나님에 관한 계명(1-4계명)과 인간에 대한 계명(5-10계명)으로 나뉘어 기록되었다는 주장이다. 오리겐(Origen)과 칼뱅(Calvin) 그리고 대부분의 개혁주의자들이 지지하는 견해인데, 모든 계명(율법)을 대신법(對神法)과 대인법(對人法)으로 요약한 예수의 증거 곧 마 22:37-40에 기초하고 있다.

 

5:23 산이 불에 타며. 이 말은 실제로 산의 초목이 타고 있었다는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서의 불은 다른 것을 태우는 자연적인 불이 아니라, 호렙 산 가시 떨기 나무에 붙었던 불처럼(출 3:2-3) 그 형상만 있는 초자연적인 불이었기 때문이다.

수령과 장로들. ‘수령’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각 1명씩 있던 지파의 우두머리이다. 그러나 ‘장로’는 나이가 많고 덕이 높아 백성들의 신망을 받았던 유력 인사들을 가리키는데 그 수가 꽤 많았다(출 24:9, 민 11:16). 따라서 이들은 백성들의 실질적인 대표자들로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대표한다.

 

5:24 위엄. 원어 ‘고델’은 3:24에서는 주의 ‘크심’으로 번역되었는데 곧 ‘광대함’, ‘위대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영어 성경은 이를 ‘greatness’(KJV, RSV)로 번역하고 있다.

 

5:25 다시 들으면 죽을 것이라.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이 주어질 때 나타난 하나님의 극히 크고 놀라운 위엄과 영광 및 그 음성에 대해 느낀 엄청난 두려움을 토로한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 거룩하신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는 반드시 중재자가 필요했다. 모세는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하나님과 백성들로부터 위임받았다. 그리고 그러한 중재자로서의 모세는 장차 영원한 중재자가 되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한 것이었다.

 

5:26 육신을 가진 자. 아담 타락 이후 죄로 말미암아 부패한 심령과 인성(人性)을 지니게 된 전인류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그러한 부패한 ‘육신’(히, 바사르)을 가진 자에게 있어서 절대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곧 죽음과도 같은 두려움을 의미하였다(출 19:16).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이 같은 두려움과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고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있음을 또한 역설하고 있다. 그것은 곧 성도들의 영원한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는 것이다(요 14:6, 엡 3:12, 히 10:19).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 인간의 죄를 완전히 소멸시키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더 이상 무서워 떨지 말고 자신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오라고 하신다.

 

5:27 당신은 … 우리에게 전하소서. 모세의 중보(仲保) 사역이 백성들의 합의(合意)와 요청에 의한 것임을 보여 준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될 사실은 근본적으로 이 일에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앞서 작용하였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중보자 모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참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딤전 2:5)의 모형인데, 예수의 중보 사역은 어디까지나 영원 전 삼위(三位)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엡 1:3-5, 살후 2:13). 출 20:19 주석 참조.

 

5:28 그 말이 다 옳도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요청을 수락하셨음을 뜻한다. 그 결과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신적 권위가 부여되었고, 그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중보자가 되었다. 따라서 백성들은 이후 모세의 입을 통하여 나오는 모든 말은 하나님이 친히 하신 말씀임을 인정하고 그에 전적으로 순종하여야 했다.

 

5:29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즉 십계명을 받을 때 처럼 하나님 앞에서 늘 두렵고 떨리는 자세를 가지라는 뜻이다. 즉 모세를 통하여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겠다고 약속한 그 마음(27절, 출 20:19)을 계속 유지하라는 뜻이다.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까닭은 결코 그들을 각종 규례로 옭아매려 함이 아니라, 더 큰 축복을 베풀어 주시기 위함임을 증거해 준다.

 

5:30 각기 장막으로. 십계명을 수여받기 위해 시내 산 기슭에 운집했던 백성들은 차마 그 놀라운 하나님의 현현 광경을 더 이상 계속 목도할 수 없어 자신들의 중재자로 모세를 세운 후 하나님의 명을 받아 각기 자기들의 거처로 돌아갔다. 따라서 그들은 모세의 중재자적 사역을 의심할 나위 없이 받아들인 세대였으나, 불행히도 이 세대는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다. 그러므로 모세는 지금 새롭게 구성된 이스라엘 새 세대들에게, 마치 바울이 복음 사역을 위해 자신의 사도직(使徒職)을 강력히 변호했듯이 모세도 자신의 중보자의 직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의 말이 단순히 이스라엘의 정치적 지도자 모세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는 중보자의 말이라는 사실을 인식시키기 위함이었다. 즉 하나님과 백성들로부터 공식 인정된 이스라엘의 유일한 중보자로서, 자신이 전하고 있는 교훈이 곧 하나님의 뜻이요 율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이 가르친 율법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듣고 순종하여 길이 축복 받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5:31 명령. 원어 ‘미츠와’는 ‘계명’(10절, 출 20:6, 대상 28:8), ‘금령’(레 4:2, 5:17) 등으로도 번역되는데, 여기서는 직접적 명령에 의하여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가리킨다.

규례와 법도. 4:1 주석 참조.

 

5:32 삼가 행하여. 기본 원어 ‘샤마르’의 본래 의미는 ‘둘레에 가시 울타리를 치다’이다. 여기서부터 ‘신중하게 행동하다’, ‘조심스럽게 처신하다’는 뜻으로 발전되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모든 인간 삶의 유일한 정도(正道)임을 시사해 주는 구절로, 오직 그분께서 명하신 율법을 따라 생각하며 판단하고 행동하라는 분부이다(잠 4:27).

 

5:33 행하라 그리하면 … 복이 … 있을 것이며 … 길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도 그것을 믿고 그 공로를 힘 입는 자에게만 구원의 원리가 되듯(요 6:54), 하나님의 계명도 그것을 듣고 지키는 자에게만 인간 삶을 윤택케 해주는 축복의 원리가 됨을 증거해 준다. 그런고로 우리가 깊이 깨달아야 할 사실은 결코 율법이 인간의 삶을 율법 조문으로 얽어매는 구속의 사슬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것은 택한 백성이 모든 죄의 늪으로부터 벗어나 길이 복받고 장수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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