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주석, 민수기 3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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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본 장에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먼저 ‘바알브올 사건’으로 그들을 타락시켜 여호와의 징계를 받게 했던(25:1-9) 미디안인들을 전멸시킴으로써, 가나안 정복의 전주곡(前奏曲)을 삼은 일과 그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본 장에는 미디안 공략에 관한 기록만 있으나, 이 때를 전후하여 모세의 주도로 요단 동편의 땅도 함락시켜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서 이스라엘을 타락시켰던 미디안 정복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은 가나안 정복 전쟁의 성격이 단순한 영토확장과 노획물 수탈이 아닌, 우상 세력 축출과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31:2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 이스라엘에게 우상을 숭배하도록 유혹하고, 그 결과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했던 미디안인들을 가리킨다(25:1-9). 그러므로 결국 미디안인들은 이스라엘의 원수이기 이전에 선민(選民) 이스라엘을 배교케 했던 하나님의 원수였다(3절).

미디안에게 갚으라. ‘원수를 갚으라’는 명령은 레 19:18의 ‘원수를 갚지 말라’는 말씀과 상반되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의 원수란 개인적 차원에서의 원수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과 그 백성을 욕되게 한 공동체 차원의 원수이기 때문에 두 명령에 모순이 없다. 따라서 본 명령은 결코 감정적 보복 명령이 아니라, 악인에 대한 합당한 공의의 시행 명령인 것이다(Webster). 사실 성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므로 그분의 영광과 권위를 훼손하는 자에게 적극적으로 대처함이 마땅하다. 한편 미디안을 전멸시키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그들이 단순히 이스라엘을 유혹했다는 측면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의 영육간 부패로부터 이스라엘을 거룩히 보존하시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 이 어구에 대한 자세한 해석은 창 25:8의 ‘열조에게로 돌아가매’의 주석을 참조하라.

 

31:3 여호와의 원수.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시고 당신의 백성 삼으신 이스라엘을 적극적으로 타락시킨 미디안의 악행은 곧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은 대적 행위로 간주되었음을 시사한다. 즉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당신과 동일시(identify)하신 다.

 

31:4 4-6절. 이 부분은 일찍이 주어졌고(25:16-18), 지금 다시 반복된 미디안 정벌 명령에 따라 실제로 이스라엘이 미디안과의 전투를 위해 출전(出戰) 준비를 하는 장면이다. 이때 모세는 승전에 필요한 두 가지를 준비시켰다. (1) 매 지파에서 공평하게 1,000명씩을 소집하여 12지파에서 도합 12,000명의 군대를 이루게 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면 누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싸울 의무와 권리가 주어짐을 시사하고 있다. (2) 제사장 비느하스에게 성소의 기구와 신호나팔을 가지고 참전하게 했다. 이는 이 전쟁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으로서 오직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의뢰해야 할 것을 시사하는 명령이다(10:9). 아울러 이 전쟁이 바로 ‘여호와의 전쟁’임을 암시하는 명령이다.

 

31:5 백만 명 중에서. ‘백만 경’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알르페’는 ‘1000’을 나타내는 ‘엘레프’의 복수형으로서 직역하면 ‘1천들’(thousands)이란 뜻이 된다. 따라서 ‘백만 명’이란 문자적으로 꼭 ‘백만 명’이 아니라 막연히 대단히 많은 숫자의 사람들을 가리킨다(1:16). 즉 모세는 전쟁에 출정할 수 있는 매우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약 60만명, 26:51) 중 특별히 12,000명을 선발하여 출전시킨 것이다. 이는 미디안의 군사력이 별로 강하지 않다는 점도 고려됐겠지만, 나아가 이는 인간의 군사적 능력을 의지하기 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신앙적 조치였다(시 2:12, 146:5).

 

31:6 제사장 … 비느하스. 여기서 비느하스는 칼을 쓰는 장수로 참전한 것이 아니라, 성물(聖物)을 가진 제사장으로 참전하였다(10:9). 그러므로 이러한 제사장으로서의 그의 참전은 결국 이 전쟁의 목적이 단순히 영토 확장이 아니라, 우상숭배자들을 척결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한 거룩한 목적이었음을 시사한다. 한편 제사장 비느하스는 바알브올 사건 때 잘 보여진 바(25:7-13) 결코 불의를 용납치 않는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로서(25:7) 거룩한 전쟁에 함께 출전할 수 있는 최적격자였다.

성소의 기구와 신호 나팔. 히브리 원문에 따라 직역하면 ‘성소의 기구들과 소리낼 수 있는 나팔들’이다. 그러나 한글 개역개정 성경에는 단 복수 구별없이 모두 단수로 번역하였다. 그럼 ‘성소의 기구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나타내는가? 여기에 대해 Living Bible은 ‘법궤와 나팔들’(the Ark with trumpets)로 번역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흔적이 보인다. 이러한 견해에 동조하는 몇몇 학자들은 전쟁시 법궤가 종종 함께 나갔다는 후대의 사실에 근거하여(수 6:4-16) 여기 ‘성소의 기구들’을 ‘법궤’로 해석하여 전쟁터에 법궤를 옮긴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법궤는 하나이므로 복수로 언급된 원문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카일(Keil)은 ‘그리고’(and)를 뜻하는 원문의 히브리어 접속사 ‘와우’를 설명적 접속사로서 이해하여 본문을 ‘성소의 기구들 곧 소리낼 수 있는 나팔들’이라 번역하였다(Keil & Delitzsch). 이 견해를 따른다면 비느하스가 전쟁터에 들고 나간 것은 ‘나팔들’이라는 결론에 이른다(10:9). 사실 접속사 ‘와우’는 ‘그리고, 그러나, 즉, 곧, 왜냐하면’ 등의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이에 반하여 혹자는 이를 ‘우림과 둠밈’(27:21 주석 참조)으로 보기도 하나(Wycliffe, the Targum of Palestine), 이것은 합당치 않다. 왜냐하면 ‘우림과 둠밈’은 대제사장의 복장에 부착된 것이기 때문이다(출 28:30). 한편 전쟁에 대제사장이 출전치 않은 것은 대제사장은 시체에 의해 결코 더럽혀져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레 21:10-12).

 

31:7 남자를 다 죽였고. 본문에 기록된 바 살해된 ‘남자’들은 미디안의 모든 남자들이라기 보다 성인 남자이거나(Keil) 혹은 전쟁에 참여한 남자만을 가리킨다. 그리고 17절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사로잡힌 모든 남자(나이 불문)들도 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후대에 나타나는 미디안 남자들은 이 당시 사로잡히지 않은 남자들과 그 후손들로 보아야 한다(삿 7:14). 실제 미디안 족속들은 일정하게 한 곳에만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널리 퍼져 살았다는 사실은(창 25:4, 출 2:15) 위의 견해를 뒷받침해 준다. 그런데 여기서 놓쳐선 안 될 사실은 이스라엘이 위와 같이 미디안을 패퇴시키기는 했으나 철저히 멸절시키지 못함으로써(15절), 훗날 다시 세력을 규합한 미디안 족속에 의해 엄청난 시련을 당해야만 했다는 점이다(삿 6-8장). 이처럼 죄악된 존재를 철저히 근절하지 않으면 언젠가 그로 인해 큰 화(禍)를 당하게 된다(히 12:15).

 

31:8 미디안의 다섯 왕. 여기서 미디안의 ‘왕’들은 본래 미디안 족속 중 막강한 세력을 가졌었으나 아모리 왕 시혼에게 정복당함으로써 그 세력이 약화되어 결국 시혼의 봉신(封臣)이 된 자들을 말한다(수 13:21-22). 그러므로 이들에 대해 수 13:21에서는 시혼의 ‘군주들’로 언급하였다. 이같은 점으로 미뤄볼 때 여기서 살해된 미디안의 다섯왕들은 시혼의 지배 아래 있었으나, 독립된 행정 체계로 각각의 도시들을 다스리는 도시 국가의 군주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왕’을 뜻하는 히브리어 ‘멜레크’가 ‘다스리다, 통치하다’는 뜻의 ‘말라크’에서 나온 말로서, 일국의 왕 뿐 아니라 단순히 한 지역을 다스리는 방백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에서 확실시 된다. 그런데 여기서 미디안의 다섯 왕의 이름이 낱낱이 기록된 것은 미디안을 섬멸한 것이 역사적 사실이란 점과 그들을 섬멸한 이스라엘의 기쁨이 얼마나 컸는가를 시사한다. 한편 미디안 왕들 중 ‘수르’(고스비의 아비, 25:15)와 ‘후르’는 수 13:21에서 ‘술’과 ‘훌’로 각각 나타난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 물질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의 백성을 타락시켰던(25:1-3) 발람의 최후는 비참하게 끝났다(약 1:15). 즉 그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하고도(23, 24장) 물욕에 눈이 어두워(유 1:11)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사악한 꾀를 제공함으로써(16절, 계 2:14) 끝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게 되었다. 한편 발람이 당시 미디안 족속들 중에 거하게 된 사실에 대해서는 24:25 주석을 참조하라.

 

31:9 미디안의 부녀들과 … 아이들을 사로잡고. 미디안에 대한 이스라엘의 완전한 승리를 보여준다. 그런데 모세는 미디안의 부녀들과 아이들을 단순히 사로잡은 데 대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크게 노를 발하였다(14절). 결국 포로 중 남자와 동침한 경험이 있는 여자 및 사내 아이들을 모두 죽이게 했다(17절). 거듭 말하거니와 이러한 조치는 단순한 의미의 잔인한 살육이 아니라, 우상(사탄)의 세력에 대한 단호한 척결 의지를 생생히 구체화 시킨 공의의 실현이다.

 

31:10 성읍들과 촌락을 다 불사르고. 당시 이스라엘은 미디안을 초토화 시켰다. 그 까닭은 미디안이 전날 우상 숭배로 이스라엘을 타락시킨 허물때문이기도 했으나, 무엇보다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죄악(우상)의 오염으로부터 자신들을 철저히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미디안인들이 살고 있던 ‘성읍들과 촌락’(NIV, towns and tent camps) 중 ‘성읍들’은 원래 모압 족속의 성읍이었으나 후에 이곳을 점령한 아모리 족속의 수중에 들어갔다(Keil).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이곳을 점령할 당시에는 미디안인들이 아모리 시혼에게 조공을 바치고 있었던 때였다(수 13:21-22).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에 앞서 이곳을 강점함으로써 가나안 정복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후에 이곳은 르우벤 지파에게 할당되었다(32:37).

 

31:11 탈취한 것. 이는 상대를 억압하고 강제로 빼앗은 재물들을 가리킨다.

노략한 것. 전리품 중 주로 가축 종류를 지칭한다.

 

31:12 사로잡은 자. 원문의 뜻은 ‘포로로 잡혀 이송된 자’인데 여기서는 이스라엘 군대가 사로 잡아 온 미디안 여자들과 아이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상은 미디안에 대한 이스라엘의 확실한 승리를 생생히 보여 주는 물적 증거들이다.

 

31:13 회중의 지도자들. 여기서 ‘지도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시’는 ‘존경하다, 떠받치다’는 뜻의 ‘나사’에서 파생된 말로서 각 지파에서 존경받는 관리나 지도자를 가리킨다.

 

31:14 모세가 … 노하니라. 여기서 ‘노하다’의 원어 ‘콰차프’는 ‘짝 갈라지다, 분노로 격동하다’란 뜻으로, 모세가 몹시 격노한 상태를 묘사한다. 그런데 이처럼 모세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자들을 향하여 심하게 분노했던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미디안은 사사로운 적대국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 백성의 명예를 짓밟은 자들인 만큼 철저하게 괴멸되어야 했으나, 이스라엘 전사들이 관용 정책을 베풀어 그 족속의 혈통을 이을 자들을 남겨 두었던 것이다(15절). 이처럼 큰 승리로 인한 인간적 만족감과 약자에 대한 저급한 동정심보다, 하나님의 뜻에 불응한 죄악을 더욱 크게 생각하고 분노했던 모세의 태도는 진정 하나님의 분노심으로 분노한 거룩한 분노로서(25:11),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자세이다(행 4:19-20).

군대의 지휘관. ‘군대의 장교들’을 가리킨다. 여기서 ‘장교들’을 뜻하는 히브리어 ‘페쿠데’는 원래 ‘지명을 받은 자들’이란 의미를 지니는데, 구체적으로 이들은 곧이어 나오는 ‘천부장들과 백부장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전쟁에 나가기 전 이미 각기 일정 규모의 지휘관으로 지명되어 임명받았다.

천부장들과 백부장들. 출 18:21 및 신 1:15 주석 참조.

 

31:15 여자들을 다 살려두었느냐. 군대 장관들에 대한 모세의 책망 이유다. 즉 바알브올 사건을 ‘고스비 사건’(25:18)이라 칭한 사실에서도 보여지듯(고스비는 미디안 수령의 딸, 25:15), 미디안 여인들은 모압 여인들과 합작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여 우상 숭배의 죄를 짓도록 유도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군사들은 마땅히 과거의 쓰라린 죄악에 대한 단절 의지로써 과감히 ‘미디안인들을 (남김없이) 치라’(25:17)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했어야 마땅했다.

 

31:16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이 싯딤에서 저지른 음행과 우상숭배(25:1-3)는 전적으로 발람의 꾀에 따른 결과였으며, 아울러 발람의 그러한 사악한 계획이 성취될 수 있었던 것은 미디안 여자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국 본 절은 미디안인들이 모두 멸절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 것이다.

범죄하게 하여. 원래 의미는 ‘은밀하게 행동하다, 배반하다’는 뜻으로 곧 믿음이 없고 마음이 약한 자들을 은밀히 꾀어 배도(背道)하게 하고 타락시킨 것을 가리킨다. 이는 미디안 여인들이 이스라엘 남자들을 육체적으로 유혹한 뒤 자연스럽게 바알 숭배로 인도한 사실을 가리킨다(25:1-3).

 

31:17 아이들 중에서 남자는 다 죽이고. 사리를 분별할 줄 모르는 젖먹이일지라도 사내 아이면 모두 죽이도록 한 것은 미디안 족속을 완전히 말살시키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죄악(우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하다.

사내를 아는 여자도 다 죽이고. 이는 음란한 우상숭배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여자들을 모두 멸절시킴으로써 더 이상의 죄악이 결코 이스라엘에 침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또 혹시 그들 중에 미디안 혈통을 이을 사내를 임신한 여자가 있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31:18 너희를 위하여 살려둘 것. 모세는 음란한 우상 숭배 의식에 참여하지 않은 정결한 미디안 처녀들은 살려 두어 이스라엘 중에 더불어 살게 했다. 그것은 처녀들만으로는 결코 한 민족을 구성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Keil). 한편 그 처녀들은 주로 몸종이나 하인 또는 주인의 첩으로서 이스라엘 내에 거주했을 것이다(신 21:10-14, 삿 21:10-14). 이같은 조치는 진노 중에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성품을 또한 반영한다(합 3:2).

 

31:19 이레 동안 진영 밖에. 악성 질병에 걸렸거나 시체와의 접촉으로 인해 정결 의식법상 부정케 되었을 경우 그는 그 부패성으로 인해 7일간 부정했으며, 따라서 그 기간동안 백성들이 사는 진영에서 격리되어야 했다(12:15, 19:11).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시체와 접촉한 자들에게 지시된 참회와 구원을 상징하는 두 번의 정결 의식 기간이다. 자세한 내용은 19:12 주석을 참조하라.

 

31:20 전투에 참전한 사람 뿐 아니라 전장(戰場)에 참여함으로써 살인과 시체의 부패에 오염된 모든 기구들도 정결케 해야 했다(19:1-9, 14-19).

 

31:21 여호와께서 … 명령하신 율법. 이것은 모세가 이미 19장에서 정결케 하는 의식(儀式)으로 받은 법(law)을 가리킨다. 특히 여기서 ‘율법’을 뜻하는 히브리어 ‘후카트 하토라’는 ‘하나님의 법이 성문화(成文化) 되어 기록된 법으로서 영원히 존재하는 규례’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는 모세에게 주어진 성문화된 규례가 여기서는 단지 적용되고 있을 뿐이었다. 이것으로 보아 그 당시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를 그 즉시 문자로 기록해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본서를 비롯한 모세 오경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완성되었다.

 

31:22 없음.

 

31:23 불을 지나게 하라. 불은 소멸시키는 성질이 있으므로, 불에 녹지 않는 금(gold), 은(silver), 동(bronze), 철(iron), 주석(tin), 납(lead) 등과 같은 물건을 불에 통과시키도록 한 것은 곧 죄로 더러워진 물건을 의식적으로 정결케 하는 상징적 행위라 할 수 있다(겔 22:20, 슥 13:9, 말 3:2).

다만 정결하게 하는 물로. 여기서 ‘다만’을 뜻하는 히브리어 ‘아크’는 ‘그러나, 오직, 확실히, 외에’ 등 다양한 의미가 있다. 본문에서는 ‘그 방법 외에’, 또는 공동번역에서처럼 ‘그렇지만 다시’ 등으로 번역하는 것이 훨씬 문맥에 부합된다. 그러므로 불 속을 통과해도 상하지 않는 모든 금속은 일단 불에 의해 정결케 한 다음 그와 더불어 반드시 붉은 암송아지를 태워 만든 재를 섞은 물인 ‘정결하게 하는 물’(19:9)로 깨끗케 해야만 했다. 이는 피 흘림이 없이는(붉은 암송아지의 재 속에는 이미 피를 포함함) 사함이 없다는 속죄의 대원칙에 따른 것이다(히 9:22). 한편 불을 통과할 수 없는 것들은 단지 정결케 하는 물을 뿌려 깨끗케 할 수 있었다(19:18). ‘정결하게 하는 물’에 대해서는 19:9 주석을 참조하라.

 

31:24 일곱째 날에 옷을 빨아서. 진영 밖에 머무르는 마지막 날 곧 일곱째 날에 옷을 빠는 것은 의식상 부정함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깨끗한 존재가 되었음을 공식 선언하는 행위로 간주되었다(19:19). 그러므로 이 의식(儀式)을 치른 후에야 비로소 정결한 자로 간주되어 이스라엘 진영 내로 들어올 수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레 11:25, 13:6, 14:9 주석을 참조하라.

 

31:25 25-47절. 여기에는 미디안 족속을 무찌르고 노획한 전리품을 계수하여 각자의 공헌에 따라 크게 두 부분으로 분배하는 내용과 분배된 전리품에서 얼마를 떼어 여호와께 헌납하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31:26 사로잡은 사람들과 짐승들. 여기서 ‘사람’은 남자를 알지 못하는 순수한 처녀들(18절)을 말하는데, 이들은 당시 몸종으로써의 상당한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짐승’(히, 베헤마)은 주로 네 발 달린 큰 짐승, 곧 가축을 말하는데, 이것들 역시 젖과 고기의 공급, 농경 일, 운송 수단 등으로 매우 유용한 것들이었다.

 

31:27 절반은 회중에게. 노획한 전리품은 참전 군인들에게 뿐 아니라, 참전하지 않은 회중들에게도 분배되었다. 이는 이스라엘이 선민으로서 하나의 공동 운명체임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는 이 사건 이후에도 전투자와 비전투자 사이에 적용되었다(수 22:8, 삼상 30:24-25). 사실 이번 전쟁은 단지 12,000명의 군사들만 수행한 것이 아니라, 후방에서 그들을 물심 양면으로 도운 일반 백성들도 함께 참전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이번 전쟁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수행하는 것이었으므로 전민족의 일체감이 필요했다. 노획물을 백성 모두에게 돌아가게 한 것은 또한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끄신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을 함께 찬양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실로 하나님이 베푸신 승리와 은혜를 더불어 나눌 때 그 기쁨은 배가된다.

 

31:28 오백분의 일. 전리품 중 절반은 참전 군인들에게 돌아갔는데, 그 군인들의 몫 가운데 1/500을 모두 한꺼번에 취하여 여호와께 감사의 예물로 드리게 했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이는 (1) 이번 승리의 영광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돌리고 그 은혜를 감사하는 것이며, (2) 승리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음을 행동으로 신앙 고백하는 행위였다. 특별히 이것을 하나님께 드릴 때 ‘거제’로 드리게 한 것은(거제에 대해서는 레 7:32 주석 참조), 거제로 드려진 모든 예물은 다시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가는 규례 때문이었다(18:28-30). 한편 여기서 ‘포로’(사람)를 ‘거제’로 드릴 때는 아마도 그 포로의 가치에 상응하는 거제물을 바쳤던 것 같다(8:11, 13).

 

31:29 없음.

 

31:30 오십분의 일을 … 레위인에게.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도 전리품을 나눠받은 일반 회중들은 자신들의 몫 중 1/50(2%)을 우선 떼어서 자신들을 대표하여 성막 봉사를 하던 레위인에게(1:53-54) 주어야 했다. 이는 승리의 주체자이신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규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와 좋은 것을 함께 나누도록 한 아름다운 친교에의 명령이었다(갈 6:6).

 

31:31 없음.

 

31:32 군인들의 다른 탈취물. 이는 32-47절에 소개된 양, 소, 나귀, 정결한 여자 등의 전리품 외에 군인들이 각자 자신들을 위해 노략한 보석이나 금 패물 등을 가리킨다(53절). 한편 그들이 획득한 전리품은 양 67만 5천, 소 7만 2천, 나귀 6만 1천 마리로서 도합 80만 8천 마리의 각종 가축들이며, 또 3만 2천 명의 정결한 여자들이었다. 사실 당시 미디안 족속이 가축떼를 많이 보유하고 있었던 유목 민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노획물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Keil). 그리고 이와 더불어 50절에 언급된 군인 각각의 금 패물을 합치면 전리품은 실로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이 많은 노획물 및 그 구체적인 목록은 곧 이번 전쟁이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사 이스라엘에게 확실한 승리를 허락하셨던 기념비적이며, 사실적인 사건임을 강조한다.

 

31:33 없음.

 

31:34 없음.

 

31:35 없음.

 

31:36 36-47절. 여기서는 전리품이 각각에게 배당된 내용과 그 분배된 물량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었다. 이와 같이 상세한 부분까지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구체적으로 반복 기록한 것은 이 전리품 획득이 역사성을 지닌 실제 사건임을 알리고, 또 그 물품들을 통해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낱낱이 기억하고자 함이다.

 

31:37 공물. [히, 메케스] ‘낱낱이 세다’란 의미에서 나온 말로 곧 인구 조사에 근거한 과세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말 속에는 합리적이며 공평하고 정확한 전리품 헌상(獻上)이 이루어졌음을 암시한다.

 

31:38 없음.

 

31:39 없음.

 

31:40 없음.

 

31:41 거제의 공물. 거제로 드린 예물을 가리킨다(29절). 이는 이미 계시된 제사장의 몫, 곧 참전한 군인들이 취한 전리품 중 1/500에 해당되는 몫을 가리킨다. 이 예물은 하나님께 거제로 헌상되었다가 다시 제사장 엘르아살의 몫이 되었다(출 29:27-28, 레 7:14, 32).

 

31:42 없음.

 

31:43 없음.

 

31:44 없음.

 

31:45 없음.

 

31:46 없음.

 

31:47 장막을 맡은. 여기서 ‘맡은’에 해당하는 원어 ‘쇼메레’는 ‘둘레에 울타리를 치다, 지키다, 수종들다’는 뜻의 ‘샤마르’에서 유래한 말이다. 따라서 ‘장막을 맡다’란 말은 장막을 보호하며 장막 안팎에서 진행되는 각종 일에 수종드는 것을 가리킨다(1:53, 3:6-7).

 

31:48 48-54절. 이 부분은 금번 미디안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 군사는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발생치 않았던 기적적인 사실을 확인하고, 군대 장관(14절)들과 참전한 군인들 각자가 하나님께 감사 제물로 바치는 장면이 기록되었다.

 

31:49 당신의 종들이 … 계수한즉. 원문에 따라 직역하면 ‘당신의 종들(천부장과 백부장들)이 우리와 함께 전장(戰場)에 있었던 자들의 머리들을 들었다(세었다)’가 된다. 즉 지휘관들이 휘하의 참전 군사들의 수효를 일일이, 정확하게 계산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축나지. [히, 니프카드] 이는 ‘놓치다, 모자라다’ 등의 뜻인 ‘파카드’에서 유래한 말로서, 여기서는 전장에서 전사한 사람들을 두고 한 말이다. 적군이 전멸한 전투 중에 이스라엘 병사가 한 명도 전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셨으며, 그들의 방패가 되어 주셨다는 확실한 증거이다(시 33:20, 62:107). 사실 대대로 유목민족인 미디안의 전투력은 별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여호와의 전투 명령(25:16-18)과 모세의 시행(31:6) 사이에는 얼마 동안의 시간차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번 미디안 공략은 분명 불의의 습격일 가능성이 높다. 카일(Keil)은 포로로 잡힌 미디안 부족의 인원을 13만 - 15만 명으로 보고, 그 중 전투 능력이 있는 남자를 대략 35,000명 정도로 추정했다(Keil & Delitzsch).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바알브올 사건에 대한 이스라엘 군사들의 보복 심리 및 불의의 기습 공격,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크게 작용하여 이스라엘이 전사자가 한 명 없는 완벽한 승리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31:50 금 패물. [히, 켈리 자하브] 이는 ‘금으로 만든 그릇 및 세공품들’을 가리킨다.

발목 고리, 손목 고리. 발 장식품, 팔찌(삼하 1:10)라 할 수 있다.

인장 반지. 손가락에 끼는 반지(ring)인데, 그 반지에는 독특한 문양이 새겨져 있어 도장의 기능까지 한다.

생명을 위하여 … 속죄하려고. 직역하면 ‘여호와 앞에서 우리 자신들을 속(贖)하기 위하여’가 된다. 한편 ‘속죄하다’는 뜻의 원어 ‘카파르’는 원래 ‘죄를 덮다, 용서하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어떤 특별한 죄에 대한 사유(赦宥)가 아니라, 생명을 보호해 주신 하나님께 속전(贖錢)을 드려 그 은혜를 감사하는 것이다. 즉 속전으로 드리는 금 패물을 전장(戰場)에서 죽지 않고 살아온 생명 대신 바치는 제물이었다.

 

31:51 없음.

 

31:52 거제의 금. 여기서 ‘거제’로 번역된 원어 ‘테루마’는 41절의 ‘거제’와 동일한 단어이다. 그러나 KJV는 41절을 ‘거제’(heave offering)로 번역한 반면, 본 절은 ‘하나님께 들어 바친 제물’(the offering that they offering up to the Lord)이라 번역하였다. 즉 41절은 제사의 한 양식(樣式)으로서의 거제인 반면, 본 절의 거제란 천부장과 백부장이 하나님께 제물을 바친 과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본 절은 여호와께 들어 바쳤다는 의미로서, 바친 사실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거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레 7:32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드린 금은 도합 ‘1만 6천7백5십 세겔’(약 191Kg)이나 되는 엄청난 분량이었다. 이러한 많은 분량의 노획 가능성은 당시 고대 근동의 민족, 특히 미디안 족속들은 그 기호(嗜好)상 은 금 패물과 같은 각종 장신구로 몸을 치장하기를 즐겨하는 습관이 있었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 된다(Keil).

 

31:53 자기를 위하여 탈취한 것. 공적인 전리품(사람 및 가축) 외에 군인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물건을 탈취한 사실이 처음 언급되었다. 아마 이러한 물건들은 위험을 무릅쓴 자들에 대한 응분의 보상으로 간주되어, 전리품 분배에 있어서 제외시킨 것으로 보인다.

 

31:54 금을 … 회막에 드려. 본래 모든 속전(贖錢)은 회막 봉사를 위해서만 사용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속전은 성전 보물 창고에 보관시켰다(출 30:15-16>.

기념을 삼았더라. 즉 ‘이스라엘에게 항상 긍휼과 사랑을 베풀어 주십시요’라는 기원을 담은 물건으로 바쳐졌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기념물에 담긴 이스라엘의 정성어린 마음을 보시고 지속적으로 그들을 사랑할 것이며, 이스라엘은 그 헌상한 물건들을 통해 자신들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로 살아가는 존재들임을 늘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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