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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1-10절. 나팔 신호 규정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지휘, 통솔하는 방법에 대한 여호와의 명령이다. 한편 나팔 소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 또는 당신의 명령을 상징했다(출 19:16). 나팔을 통한 통솔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나팔 소리를 듣는 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자이심을 인식해야 했으며, 아울러 그 명령에 따라 자신들의 행동을 결정해야 했다.

 

10:2 은 나팔 둘. 은(銀)나팔 모형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 없다. 그러나 로마에 있는 디도(Titus)의 개선문(triumphal arch)과 고대 이집트의 기념비 등에 새겨진 형상, 그리고 유대 사가(史家) 요세푸스(Josephus)의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이때의 은 나팔은 희년(禧年) 때 사용된 곡선형의 구부러진 뿔나팔(레 25:9 주석 참조)과는 달리 관은 가늘고 기나 주둥이는 넓은, 곧은 모양의 나팔일 것으로 추정된다(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그리고 이때 제작된 나팔은 단지 ‘두 개’에 불과했는데 그 이유는 당시 대제사장 아론을 제외한 제사장이 두 명(엘르아살, 이다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3:4). 그러나 솔로몬 시대에는 120명의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었다고 전한다(대하 5:12, Matthew Henry’s Commentary).

두들겨 만들어서. 여기서 ‘두들겨’(히, 미크샤)란 말은 ‘망치질 하여’라는 뜻으로, 얇은 은판을 망치로 두들겨서 은나팔을 만들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결국 이 나팔은 정교하지 않고 투박한 형태였을 것이다(R. Winterbotham).

그것으로 … 소집하며 … 출발하게. 은 나팔의 기능에 대해 언급되었다. 이것은 불기둥, 구름 기둥과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뜻을 백성에게 전달하는 도구이자 하나님의 통치의 한 방편으로서 이스라엘 광야 여정을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 즉 하나님께서 성막 위에 머문 구름을 떠오르게 하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행 신호를 보여 주시면 백성들은 곧 떠날 채비를 갖추었으며, 이어 제사장들에 의해 불려진 나팔 소리에 의해 모든 백성은 일제히 이동을 시작하였다. 아울러 은 나팔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기 위하여 백성들 혹은 족장들을 소집할 때도 사용되었다. 따라서 은 나팔의 두 가지 큰 기능은 소집과 출발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10:3 나팔 두 개를 불 때. 즉 ‘모든 나팔(2개)을 동시에 불 때’를 가리킨다. 이때는 이스라엘 전체 백성이 회막문 앞으로 집결해야 했다. 그리고 이때의 나팔 소리는 급박하지 않고 차분했다(7절).

 

10:4 이스라엘의 천부장 된 지휘관들. 여기서 ‘천부장’(히, 라쉐 알레페)으로 번역된 말은 성경 다른 곳에서는 ‘천만인’으로 번역되었다(1:16, 수 22:14). 곧 각 지파의 ‘두령’(leader)들을 가리킨다(1:16).

 

10:5 크게 불 때에는. ‘크게 분다’(히, 테카에템 테루아)는 말은 매우 힘차게 떨리는 소리로 불되 간격을 두고 부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므로 영역 성경 KJV에서는 ‘경보를 불다’(blow an alarm)로, NIV에서는 ‘폭발음을 내다’(trumpet blast)로 각각 의역하고 있다. 한편 이렇게 나팔이 울려 펴지면 그것은 곧 출발 신호가 되어 ‘동편 진영들’, 즉 유다 지파와 잇사갈 지파 및 스불론 지파가 출발하게 된다.

 

10:6 두 번째로 크게 불 때에는. 처음 울려펴지는 나팔 소리에 이어 두 번째 소리가 크게 울리면 제2진영인 남쪽 진들(르우벤, 시므온, 갓)이 출발하게 된다. 그리고 본문에는 언급이 없지만 세 번째와 네 번째의 나팔이 울리면 계속해서 2장에 배치된 진의 순서대로 서편 진들(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에 이어 북편 진들(단, 아셀, 납달리)이 출발하였음이 분명하다(Keil, LXX). 이처럼 하나님은 나팔 신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질서와 순종 의식을 주입시키셨다. 수많은 백성이 한꺼번에 이동하기 위해서는 질서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런데 이 질서는 ‘나팔 소리’ 곧 권위 있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응할 때 비로소 갖춰질 수 있었다. 이처럼 진정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고 그분의 말씀이 최고의 권의를 지니는 공동체에는 결코 어지러움이나 분쟁이 있을 수 없다(고전 14:33).

 

10:7 소리를 크게 내지 말며. 백성들을 소집할 때는 전쟁 수행시나 진의 이동시처럼 크게 불어서는 안 되며 평탄하게 같은 높이의 소리로 불어야 했다. 따라서 여기 ‘불다’란 의미의 히브리어 ‘타카’는 본래 순간적이고 예리한 소리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그런 소리를 내지 말라는 것이다. 이처럼 회중 소집시 나팔 소리가 평탄하게 조절된 것은 전체 백성들이 모이는 이유가 대체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거나, 특별한 절기를 지킨다거나, 거룩한 회합을 위함이므로 경건함과 평온한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10:8 제사장들이 불지니. 나팔은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전하는 도구로서 오직 거룩한 일에만 사용되어야 하는 성물(聖物)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을 관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자는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모시며 백성의 종교, 도덕적 생활을 개도해가야 할 사명이 있는 제사장들이었다. 물론 그들은 자의(自意)에 의하거나, 계시된 명령에 어긋나게 나팔을 불어서는 안 되었다. 오직 그들은 하나님의 대변자(spokesman)로서 항상 깨어 있어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정확, 신속하게 전달해야 했다. 그러므로 이는 오늘날 복음 전파자들에게도 요구되는 바이다. 즉 오늘날 주(主)의 뜻을 전할 특권과 책임이 있는 복음 전파자들은 자신의 욕망과 견해를 접어두고, 오직 그분의 뜻을 바로 분별하고 그것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거룩한 입술을 지녀야 한다(행 15:7, 엡 6:19).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거룩한 관례와 제도의 영구한 실천을 강조할 때에 자주 사용되는 관용적 표현이다(출 12:24). 여기서는 오직 제사장들만이 나팔을 관리하고 사용하며, 소집과 행진, 전쟁, 절기 등에 정해진 규정에 따라 나팔을 불어야 한다는 나팔 사용 규정 전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제사장들은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에도 나팔을 불어야 했다. 그러나 나팔이 언제까지 보관,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오늘날 이 나팔 규정은 실제적으로 중단되었으나 영적으로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계속되며, 신앙 공동체가 각종 모임을 거듭하고, 교회가 사탄과의 영적 교전을 계속하는 한 ‘대대에 영원한 율례’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한편 제사 제도와 관련된 종교적 행사, 전쟁, 왕의 취임식 등에 나팔이 사용된 예는 성경에 가끔 언급되었다(삼하 2:28, 왕상 1:39).

 

10:9 너희 땅에서. 달리 표현하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이다. 이것은 나팔 규정이 광야 여행 중 뿐만 아니라 후일 가나안 정착시에도 필요한 규정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 여기서 ‘압박하다’(히, 차라르)란 원래 ‘꺾쇠로 죄다’는 의미로써 포위하여 몹시 심한 고통을 주는 상태를 가리킨다. 사실 하나님은 가나안 정복, 정착시 가나안 7족속(신 7:1)을 제외하고는 주변국과 평화할 것을 명하셨다(신 20:10-11).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압박하는’ 무리가 아니면 평화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참왕으로 모신 이스라엘을 압제하고 이방의 우상 문화를 주입시키는 외세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과 자신들의 거룩한 삶을 보존해야 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대적들을 치러 나갈 때에 그들은 여호와의 명을 따라 나팔 경보에 의해 행동해야 했다. 이때의 경보는 군대의 사기를 북돋우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굳은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며, 또한 여호와의 도움을 통한 승리를 기원하는 역할도 했다.

여호와가 … 기억하고 … 구원하시리라.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명을 따라 나팔을 부는 행위는 곧 여호와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을 신실히 의뢰하는 표시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전쟁과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나팔을 불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소리를 들으시고 당신의 약속을 기억하사 그 전쟁에 친히 개입하셔서 그들을 승리케 하실 것이라 약속하셨다(시 98:3). 한편 나팔을 불 때에 ‘기억하리라’는 말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평상시 이스라엘을 잊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오게 된다. 따라서 혹자는 본 절과 시편 44:23-24을 예로 들어 하나님의 신실성을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한계나 무관심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당신을 찾고 부르는 자들에게 확신과 소망을 제공하기 위해 사용한 수사학적 표현으로서, 곧 하나님의 은혜로운 약속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여야 한다(시 50:15, 렘 33:3). 실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당신을 의뢰하고 부지런히 찾으며 간절히 기도하는 자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으로 그들을 채워주신다(요 14:13-14).

 

10:10 희락의 날. 특정한 날의 고유명사가 아니라, 단지 기쁜 일로 기념될 만한 모든 날들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법궤 운반시(대상 15:24, 16:6), 성전 봉헌시(대하 5:12), 성전 신축시(스 3:10, 느 12:35, 41), 부림절(에 9:17-19)과 같은 민족적, 종교적 기념일(대하 29:27) 또는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등이다(Keil & Delitzsch).

정한 절기.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율례로 명하신 날들 곧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나팔절 등의 절기이다(28, 29장, 레 23:24-25).

초하루. 매 달이 시작되는 첫날을 가리킨다(28:11, 14, 삼상 20:24-34).

번제물 …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이는 그 제물을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기 원하는 간절함을 내포한 행동이다. 특히 이처럼 ‘속죄’와 관련되지 않은 제물 위에만 나팔을 분 것은 이스라엘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바친 제물과 그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것이 될 수 있었다(대하 29:27, 시 81:3).

그로 말미암아 … 기억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기쁨과 감사가 깃든 정성스런 헌물과, 그리고 이것이 열납되기를 원하여 부는 백성들의 나팔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기억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9절). 특별히 여기서 ‘기억하다’(히, 자카르)란 말은 ‘마음에 품다’는 의미로써, 당신의 백성과 교제하시며 아울러 그들의 형편과 처지를 낱낱이 감찰하시고 필요를 따라 채워주신다는 포괄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10:11 둘째 해 둘째 달 스무날. 이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난 때로부터는 만 1년 1개월 5일이 지난 때였고, 시내 산에 도착한 때로부터는 만 11개월 5일이 지난 때였다. 그런데 바로 이때를 시내 산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아마도 사고자(事故者)들을 위한 제2차 유월절(9:11) 준수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은 이때 시내 산을 출발하여 얼마 후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했으나, 그곳에서 하나님을 반역함으로 말미암아 이후 약 38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다가 출애굽 제40년 5월 1일 이후에야 비로소 요단 강 도하 직전의 땅 모압에 도착하였다(33:38, 신 2:14).

 

10:12 자기 길을 행하더니. [히, 레마세에헴] 이는 히브리어 기본 동사 ‘나사’에서 유래한 말로써, 원뜻은 ‘장막 말뚝을 뽑아내다’이다. 결국 위의 말은 ‘각각 자기가 맡은 소임을 따라 진을 거두고 떠날 채비를 하더니’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성막을 거두어(1:51) 조직적으로 진을 이동하는 모습(2장)을 말한다.

바란 광야에 구름이 머무니라. 이스라엘은 시내 광야를 출발하여 3일 길을 행하고(33절), 다시 하세롯(11:35)을 거쳐간 후 가데스 바네아가 있는 바란 광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들이 이곳에 도착하기까지는 그 사이에 두 군데의 휴게지를 더 거쳐 온 것 같다(11:34-35, 12:16, 33:16-17). 그러므로 본 절은 가데스 바네아까지의 여정을 축약한 것으로써 11절에서 출발을, 12절에서는 도착을 기록하고, 그 사이에 발생한 일은 나중에 12:16까지 자세히 기록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바란 광야. 시내 반도에 위치한 큰 사막이다. 이 곳은 피신하기 적당한 몇몇 산과 우기(雨期)에 형성되는 많은 시내, 곧 와디(Wady)가 있었다(삼상 25:1).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 지역에서 가나안으로 이르는 지름길로 이곳을 자주 이용하였다. 한편 이곳은 동(東)으로 험준한 아라바 골자기에 접해 있고, 서(西)로는 술 광야에 맞닿아 있으며, 남(南)으로는 호렙 산과 연결되었고, 북(北)으로는 남쪽 가나안 경계선에 맞붙어 있다(Keil & Delitzsch). 결국 이곳은 척박한 사면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죽음의 위협이 늘 도사리고 있는 버려진 땅이었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이 바란 광야에서 머문 것은 시내 산을 출발한 다음 3일 후였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정착할 때까지 계속적으로 이 광야에서 저 광야로 옮겨다니는 나그네 생활을 해야 했다. 이는 마치 영원한 천국을 목적하고 광야 같은 이 세상을 하루 하루 전전(轉轉)해야 하는 성도의 현실을 보여 주는 듯하다(히 11:13). 그런데 이러한 나그네 생활에서 가장 요구되는 바는 안내자 되신 하나님의 인도를 날마다 따르는 일이다(고후 1:4).

 

10:13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따라. 즉 2:1-31에 지시된 바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란 뜻이다.

 

10:14 선두로. 행군의 제일 선두는 유다 진영의 군기에 속한 자들(유다, 잇사갈, 스불론 지파)이었다(1:26-31, 2:3-9). 그런데 실질적으로 행군 대열에 선봉을 이룬 것은 ‘여호와의 언약궤’였다(33절). 즉 이스라엘은 인도자 되신 하나님을 앞세우고 미지(未知)의 땅 가나안에로의 행군을 한 것이다.

군대는 … 이끌었고. [히, 알 체바] 직역하면 ‘군대 위에(있었다)’란 뜻이다. 각 지파 대표들은 총 지휘관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자기 지파를 통솔하였다.

 

10:15 없음.

 

10:16 없음.

 

10:17 성막을 걷으매. 이는 계속 이동해야 하는 광야 여행에 용이하도록 설계된 성막의 특성을 반영한다. 즉 성막은 고정된 구조물이 아니라 걷고 세울 수 있는 조립식 천막으로 되어 있었다(출 25:1-9). 한편 또한 이는 이 땅에 영원한 처소를 마련치 않고,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걷고 세우기에 편리한 임시 처소에서 생활하는(고후 5:1) 우리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성도는 비록 육체적으로는 임시적이고 불완전한 존재이지만(사 2:22),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기에 영원한 처소가 예비되어 있는 것이다(요 14:3, 고후 4:7, 16-18).

 

10:18 18-20절. 유다 진영의 군기에 이어 제2대로 발행해야 하는 르우벤 진영(르우벤, 시므온, 갓) 및 그 군대 영솔자들에 관한 기록이다. 자세한 내용은 2:10-16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행군시에는 이들 앞에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이 성막 물품을 메고 진행하였고, 이들 뒤에는 고핫 자손이 성막의 성물들을 메고 뒤따라 왔다.

 

10:19 없음.

 

10:20 없음.

 

10:21 성물을 메고. 고핫 자손들은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과 달리 자신들이 맡은 물건을 반드시 어깨로 메고 운반해야 했다(4:5-20, 7:6-9). 한편 여기서 ‘성물’로 번역된 히브리어 ‘미크다쉬’는 어떤 ‘물건’을 뜻한다기 보다 ‘장소’ 곧 거룩한 처소(sanctuary, KJV)를 의미한다. 그러나 ‘성소’(holy place)를 메고 갈 수 없다는 사실로 미뤄볼 때 문맥상 성소에 배치된 ‘거룩한 물건’(the holy things, NIV)로 이해함이 옳을 것이다(18:29).

그들이 이르기 전에 … 세웠으며. 이 말은 고핫 자손들의 직무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고핫 자손에 앞서 출발했던(17절)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의 직무를 언급한 것이다.

 

10:22 22-24절. 제3대로 발행한 진영은 에브라임 진영 군기에 소속된 지파(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였다. 광야 행군시 이들 지파의 바로 앞에는 고핫 자손들이 성물을 메고 진행하고 있었고, 뒤에는 단 진영 군기에 소속된 지파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10:23 없음.

 

10:24 없음.

 

10:25 25-27절. 제4대로 발행한 진영은 단 진영 군기에 소속된 지파(단, 아셀, 납달리)였다. 광야 행군시 이들은 행렬의 맨 후미에서 뒤따라 갔다.

마지막 진영. 여기서 ‘마지막 진영’(히, 메야세프)이란 원래 ‘뒤에 남다’, ‘뒤에서 모으다’는 뜻을 가진 말로써 이는 ‘단 자손 진영 군기에 속한 자들’의 고유 임무를 잘 드러내준다. 즉 그들은 행군 순서상 단순히 맨 뒤에 처진 것이 아니라, 맨 나중에 진행하면서 후방을 경계하고 또한 행진 중 뒤처진 무리들을 모아서 건사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교회에서 볼 때 ‘숨은 봉사자들’에 비유될 수 있다. 이처럼 형제들의 평안을 위해 알게 모르게 헌신하는 자들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확장될 것 이며, 공동체는 더욱 풍성한 은혜를 체험케 될 것이다(빌 4:15-19).

 

10:26 없음.

 

10:27 없음.

 

10:28 그들의 군대를 따라. 직역하면 ‘그들의 군대대로’이다. 이는 각 지파가 질서 정연하게 지체함이나 게으름 없이 행진했음을 묘사한 말이다(14, 18, 22, 25절). 특별히 여기서 ‘군대’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노예 민족이 아니라, 그리고 또한 애굽을 도망쳐 나온 오합지졸이 아니라, 애굽의 모든 우상 신들을 당당히 꺾고 가나안 정복을 위해 행진해가는 여호와의 군대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10:29 미디안 사람 르우엘. 르우엘은 모세의 장인으로서 미디안 출신 족장이다(출 2:26, 3:1). 그런데 사사기에서는 그를 ‘겐 사람’이라 호칭하였다(삿 1:16, 4:11). 이는 적어도 ‘미디안’ 족속과 ‘겐’ 족속이 상호 친밀한 유대 관계를 이루었거나, 아니면 통폐합되어 한 민족을 이루었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미디안 제사장(출 20:16-18)이었던 ‘르우엘’은 성경 다른 곳에서 ‘이드로’(출 3:1, 4:18, 18:1) 혹은 ‘호밥’(삿 4:11)으로도 표기되었다. 여기서 ‘이드로’란 이름은 제사장으로 받은 새 이름이거나 그의 신분을 지칭하는 특별 호칭인 듯하다. 그러나 사사기 4:11에서 모세의 ‘장인’으로 표기된 ‘호밥’이란 인물은 본 절에서 표기된 대로 르우엘의 아들, 곧 모세의 처남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장인’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호텐’은 결혼으로 인해 생긴 처가(妻家) 쪽의 관계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인’이란 의미 외에 ‘처남’이란 의미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그렇게 볼 때 문맥상 여기서 ‘호밥’은 르우엘(혹은 이드로)의 아들로서, 곧 ‘모세의 처남’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Keil, Matthew Henry). 그러나 그가 언제 매형되는 모세에게로 왔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렇지만 그의 아버지 이드로가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그의 두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을 데리고 모세를 방문했을 때(출 18:1-5) 같이 동행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마 하신 곳으로 … 행진하나니. 모세의 이 말은 이스라엘이 지금 목적(가나안 땅) 있는 여행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그들은 비록 현재 광야를 통과하는 방랑객에 불과하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또한 반드시 들어가게 하실 가나안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는 신앙과 소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성도는 이 세상에서 비록 나그네에 지나지 않지만(히 11:13, 벧전 2:11), 달려가야 할 확실한 ‘푯대’(빌 3:14)와 들어가야 할 영원한 ‘처소’(요 14:3)가 있기에 하루 하루를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다.

선대하리라. [히, 헤타베누] 이는 ‘좋게 만들다’, ‘유익을 끼치다’, ‘은총을 입다’는 뜻의 히브리어 ‘야타브’의 사역형 능동태로써 곧 생활과 지위를 보장하며 각종 혜택을 제공할 것이라는 강한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이는 단지 인간 모세의 약속이 아니라 뒤이어 나오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여호와의 축복에 근거한 약속이었다.

여호와께서 … 복을 내리리라. 이를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해 친히 말씀하셨다’(KJV, Jehovah has spoken good concerning Israel)이다. 즉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지키시며 복주시고 은혜와 평강 주시기를 약속하셨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6:24-26). 따라서 모세는 이 약속을 근거로 호밥에게 동행을 요구했으며 ‘선대’를 약속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1) 하나님의 복은 한 개인이나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개방되어 있다(창 12:1-3). (2) 하나님 나라 건설에 동참한 자에게는 풍족한 은혜가 주어진다(마 25:34). (3) 인간의 동역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성취하기도 하신다.

 

10:30 나는 가지 아니하고. 호밥은 불확실한 미래 보다는 모든 것이 갖추어진 안락한 현실을 택하였다. 그러나 신앙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믿음과 소망으로 확신하는 것이다(히 11:1). 한편 호밥은 한번 거절했으나, 모세의 강권에 못이겨 끝내 가나안 행에 동행한 것으로 보인다(Knobel). 그것은 후일 사사 시대에 그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에 거주했다는 사실에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삿 1:16, 4:11, 삼상 15:6, 27:10).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 나라 건설에 유익한 일이라면 전력을 다해 매달릴 수 있어야 하며, 하나님을 모른 자들을 강권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토록 할 수 있어야 한다(눅 14:23).

 

10:31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 이는 길 안내자로서의 호밥의 필요성을 강변한 말이다. 그런데 구름의 인도로 말미암는 여호와의 절대적인 보호와 인도의 약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인간의 도움이 필요하였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일에 인간의 지혜와 재능을 최대로 활용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어릴 적부터 이곳 신 광야 주변에서 자라온 호밥은 그곳 광야의 사정과 변화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가나안으로 향하는 행군 노정과 구름이 머무는 곳에서 보다 지형적으로 안전하고 편안하게 진 칠 곳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200만 인구 중에 노약자나 유아 및 병자 그리고 가축까지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꼭 요청되는 도움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을 가나안까지 무사히 이끌 책임이 있는 지도자 모세는 지금 처남에게 강청하고 있는 것이다.

 

10:32 복을 내리시는대로 … 행하리이다. 즉 여호와 앞에서 대등한 관계를 맺겠다는 약속이다. 29절 주석 참조.

 

10:33 여호와의 산.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출애굽 후 약 11개월 간 머물렀던 시내 산을 가리킨다(출 19:1-2). 자세한 내용은 출 3:1 주석을 참조하라.

여호와의 언약궤. 이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상징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언약의 증표인 거룩한 십계명 두 돌판이 보관된 궤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언약의 산 ‘시내’를 떠날 때 이것을 메고 떠난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계속 지키고, 그분과 친교를 나누며, 그분의 명령에 따라 생활할 것을 나타내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이스라엘의 행군 순서상(13-28절)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언약궤의 위치가 여기에 비로소 나타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앞서의 언급이 행군의 보편적인 순서를 총괄적으로 언급한 것인 반면에, 여기서는 실제 행군 출발 시점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를 가장 명확히 드러내는 언약궤(법궤)의 위치를 분명히 명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삼 일 길에 앞서 가며. 이는 언약궤가 도보로 3일 정도의 거리 앞에서 이스라엘의 행군을 주도했다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시내 산에서 출발하여 도착지 기브롯 핫다아와(11:34)까지의 3일 여정동안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영의 선두에 있었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광야 40년 동안 언약궤는 계속적으로 이스라엘의 행군을 주도해 갔다(14절).

 

10:34 진영을 떠날 때에 … 구름이 … 덮였었더라.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의 표인 구름은 진영이 머무를 때에만(9:16) 이스라엘 곁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 구름은 작열하는 정오의 태양을 내내 막음으로써(시 105:39), 이스라엘의 걸음을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 아마 법궤 위에 높이 떠 있는 거대한 구름 덩어리의 그늘이 이스라엘의 행군 대열 위에 드리워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하신다는 감격과 평온을 늘 맛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큰 감격과 기쁨은 대대로 전해져 후일 시인과 선자자의 입을 통해 고백되어졌던 것이다(시 91:1, 사 25:4).

 

10:35 여호와여 일어나사. 여기서 사용된 ‘일어나다’(히, 쿰)는 말은 신인동형동성론(Anthropomorphism)적 표현으로, 단순히 앉았던(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나는 상태가 아니라 다음 동작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 모세가 여호와로 하여금 일어나시도록 간구한 목적은 (1) 대적들을 진멸하도록 하기 위함이며(시 33:10, 사 14:20), (2) 그로 인해 이스라엘을 돕고(시 35:2, 44:26) 구원토록 하기 위함이다(렘 2:27).

주의 대적 … 주를 미워하는 자. 하나님의 선민(選民)인 이스라엘을 적대시 하고 증오하는 자는 곧 하나님을 대적하고 미워하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보여준다. 즉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나타낸다. 사실 고대 근동 지방에는 각 나라에 국가신(國家神)이 있었는데, 전쟁의 승리는 곧 승리국의 국가신이 패전국의 신을 누른 것으로 간주하였다(삼상 5:1, 왕하 24:13, 25:14-15). 이런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이스라엘과 하나님과는 존망(存亡)을 같이하는 운명 공동체임을 확신했다.

흩으시고 … 도망하게. 여기서 ‘흩다’는 말은 원래 ‘산산히 깨뜨리다’는 의미로써 흔적도 없이 무너뜨림을, 그리고 ‘도망하다’는 말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짐을 뜻한다. 결국 이말은 대적에 대한 완벽한 승리를 의미한다.

 

10:36 여호와여 … 돌아오소서. 여기서 ‘돌아오소서’(히, 슈바)란 말은 그 해석상 다양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이 말은 ‘구원하소서’, ‘회복하소서’, ‘새롭게 하소서’, ‘축복하소서’ 등으로도 번역된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임재해 계시지(돌아오지) 않으시면, 구원과 회복은 물론이요 변화 및 축복도 불가능하지만, 그분이 함께 하실 때는 그 모든 것이 확보될 수 있다(사 63:11-14).

이스라엘 종족들.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뜻이다(1:16). 사실 이들이 군대 편제상으로 조직은 되었지만, 모세가 보기에 무기도 변변찮고 전투 경험도 없을 뿐 아니라 수많은 노약자 및 유아와 여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명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들이 막강한 토착 세력인 가나안 족을 정복하러가는 것은 전적으로 여호와의 도우심을 믿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를 누구보다도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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