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출증. [히, 조브] 물같이 자연스럽게 ‘흐르다’는 뜻의 ‘주브’에서 파생된 말로서, 곧 몸 밖으로 피가 계속해서 유출되는 일종의 혈루(血漏)증세의 병을 가리킨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유출증은 (1) 여인의 정규 월경(레 15:19-24)과 자궁 출혈(레 15:25-30)을 의미하기도 했으며, (2) 성병에 의한 비정상적인 분비물(레 15:1-15)과 또한 정액(精液)을 배출하는 남자의 병(레 15:16-18)을 가리키기도 했다. 여하튼 이스라엘 공동체 사회에 있어서 이 모든 것들은 종교 의식 성결법상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 이유는 피를 생명으로 취급했던 그들로서는 피와 그리고 그와 비슷한 정액의 유출은 곧 죄의 결과로서 생명을 파괴시키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다(신 12:23).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 즉 ‘죽은 사람에 의해 더럽혀진 모든 자’이다. 주로 ‘영혼’으로 번역된 ‘네페쉬’가 여기서는 반의(反意逆語)로 사용되어 ‘주검’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처럼 ‘네페쉬’가 ‘주검’이란 의미로 사용된 이유를 다음 몇가지로 상정(想定)해 볼 수있다. (1) 신 12:23-24에 보면 ‘네페쉬’는 피속에 흐르는 생명의 원천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출 21:23, 잠 12:10). 그러므로 주검은 이 ‘네페쉬’의 활동 중지로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2) 시체에 한동안 영혼이 머물러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 말이 혼용되었을 것이다. (3) ‘죽은 영혼(사람)’(네페쉬 메트)이라는 시체에 대한 관용어(6:6)가 축약되어 이러한 혼용을 초래했을 것이다. 여하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체에 접촉된 자가 부정하다고 하는 개념이다. 나병 환자(혹은 악성 피부병 환자)나 유출증 있는 자는 모두 전염성 질환의 보균자로서 부정하다고 인정되어 격리되는 것이 적절했다. 그렇지만 단순히 시체를 가까이 한 이유로 부정하게 취급된 것은 과도하다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주검 및 주검에 접촉된 자를 부정하다고 간주한 때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1) 종교 의식상 주검 곧 시체는 죄의 삯으로 초래된 죽음(롬 6:23)의 현상적 결과였기 때문이다. (2) 위생상 시체는 시간이 경과할수록 부패해져서 위생적으로 해를 끼쳤기 때문이다(레 21:1).
진영 밖으로 내보내되. 여기서 ‘진영 밖’이란 회막 주위의 각 지파(2:1-34)의 진영의 외곽, 또는 이스라엘 본 진영(2:34)의 후미였을 것이다. 그런데 부정한 자로 간주된 모든 사람들을 이스라엘 진영 밖으로 내보낸 것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1) ‘분리’를 통하여 위생적, 도덕적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2) 부정한 자로 하여금 격리 기간 동안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였다(레 13:45-46). (3) 이스라엘 공동체의 종교적 성결을 위해서였다. 즉 이스라엘 진영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는 곳이었기 때문에 부정한 자들이 결코 거주할 수 없었다. 한편 종교적 의미에서 ‘분리’란 하나님께 대한 모든 제사에서와 이스라엘 내에서의 각종 행사 및 율법에서 배려된 선민(選民)으로서의 모든 혜택으로부터 제외되는 것을 가리킨다. 이같은 사실은 신약 교회의 성도들 중 범죄자들이 신앙 공동체에서 치리(治理)되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는 것을 상징한다(마 18:15-20, 고전 5:4, 5, 13, 살후 3:14-15). 이처럼 죄는 개인의 양심을 멍들게 할 뿐 아니라 대인(對人)과 대신(對神) 관계에 대해서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다(엡 2:1).
더럽히게 하지 말라. ‘더럽히게’(히, 에타메우)란 종교 의식상, 혹은 도덕적으로 ‘더러워지다’(히, 타메)의 미완료 피엘(Piel)형으로서 계속적으로 더러워지게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죄의 가장 무서운 특성 중 하나인 ‘전염성’을 강조한 표현으로, 한 사람의 범죄자(부정한 자)가 거룩한 공동체 내에 존재하게 되면 미구에 전 공동체가 죄로 오염될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수 7:2-26). 그러므로 부정한 자에 대한 단호한 조치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내가 그 진영 가운데에 거하느니라. 이 말은 이스라엘 진이 성결해야 할 가장 큰 이유를 제공한다. 즉 거룩하신 하나님은 결코 부정한 것과 함께 하실 수 없기 때문에, 부패로 오염된 자들을 그분이 왕으로 통치하시는 거룩한 공동체로부터 격리되어야 했다. 인간에 의해 이 명령이 준행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친히 공의의 심판을 통해 당신의 성소(聖所)를 깨끗하게 하신다. 한편 하나님이 ‘거하시며’, ‘통치하시는’ 성전된 우리 각자의 내적 상태에도 이러한 성결이 또한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고전 3:16-17).
죄를 지으면. 직역하면 ‘그 온 인격(영혼)이 범죄하다’(RSV, that person is guilty)이다. 이는 인간의 죄가 단순히 사고나 양심에만 손상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전 인격에 그 영향력를 미침을 암시한다.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여기서 ‘자복하고’(히, 히테와두)란 말은 ‘손을 펴서 경배하다’, ‘손을 꽉 잡고 슬퍼하다’는 뜻의 ‘야다’에서 유래하였다. 이 말은 공개적이고 의지적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신의 죄를 놓고 애타게 통회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처럼 타인에게 손해를 입혔을 경우 먼저 범죄자는 자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회개(자복)를 해야만 했다. 따라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치 않거나 뉘우침 없이 물질적 손해 배상만을 하는 것은 참된 의미에서 회개라 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을 동시에 기만하는 행위일 뿐이다. 그런고로 죄에 대한 ‘자복’은 자신의 죄에 대한 뼈저린 인식과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을 인정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진다(눅 19:1-10). 결국 ‘자복’이란 자신의 죄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내려놓고 간절히 뉘우치는 상태라 할 수 있다. 한편 이 자복의 과정 중에는 ‘속죄제’(8절)가 포함되어 있다. 속죄제와 관련된 자복에 대한 설명은 레 5:5의 주석을 참고하라.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여기서 ‘죄 값’(히, 아샴)이란 하나님께 대해서가 아니라 피해를 입은 자에게 대해 물어야 할 배상을 가리킨다. 그리고 ‘온전히’(히, 베로쇼)란 ‘최상으로’, ‘원금(본전)대로’라는 의미로 자신이 손해를 입힌 것에 대해 조금도 남김없이 갚으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쓰였다. 이처럼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자는 그 잘못에 응당한 대가를 상대에게 제공해야 한다. 그러므로 행동이 따르지 않는 회개는 거짓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예수를 영접했던 세리장 삭개오의 신앙은 진실했다고 할 수 있다(눅 19:8).
오분의 일을 더하여. 잘못을 뉘우친 자는 손해 원금 뿐 아니라 그 원금의 1/5(20%)을 덧붙여 주어야 했다. 이것은 피해 보상에 있어서, 물질적인 것 뿐 아니라 정신적인 배려도 생각한 완전하고도 합리적인 보상 원칙이었다. 한편, 이러한 원칙은 속건제 규례와 연결된 것으로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레 5:16, 6:5 주석을 참조하라.
여호와께 드려 제사장에게로 돌릴 것. 이 말은 누군가 사람들에게 범하는 죄(6절)를 지은 후 피해 보상 과정에서 피해 당사자나 그 당사자의 친척도 없어 누구에게 배상해야 할 지 불확실한 경우에 해당된다. 즉 이 경우에라도 범죄자는 배상의 책임이 면제되지 않았다. 그럴 때 그는 7절에 언급된 보상금을 하나님께 드려 그것을 제사장의 몫이 되게 해야 했다. 이러한 규례는 반드시 피해를 보상해야만 지은 죄를 속(贖)함 받을 수 있다는 준엄한 ‘속죄 원리’를 가르치고 있다(레 5:11-12, 6:2-7).
속죄의 숫양.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각자가 자기 죄를 깨달았을 때 그 죄를 속함 받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제시하셨다. (1) 먼저 피해를 입힌 이웃에게 성실히 재산상의 보상을 규례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고, (2) 그 후에 또한 하나님께 속죄를 위한 제물로 속건제 숫양을 바치는 것이다(레 5:15-16, 6:6-7). 이는 모든 죄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의 것이 될 것이라. 피해자가 죽고 그 피해자의 친척마저 없을 때 그 ‘죄 값’(7절)은 하나님께 드려져 실제적으로는 제사장의 소유가 되었다. 이는 오직 여호와를 기업 곧 생계의 근원으로 삼아야 했던 제사장들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였다(레 10:12-15).
탈선하여. [히, 티세테] 의무에서 ‘벗어나다’, ‘그릇 행하다’란 뜻의 히브리어 ‘사타’의 단순 미래형이다. 이것은 아내로서 남편에 대한 (도덕적) 의무를 다하지 못할 경우의 상황을 예상한 것으로서, 여기서는 간음과 같은 부도덕한 범죄를 지칭한다. 이처럼 정도(正道)를 벗어나는(사 30:21) 탈선은 ‘사탄’을 따르는 짓이다.
숨겨 드러나지 아니하였고. 이는 ‘숨기고 비밀로 하다’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 히브리어의 두 단어는 모두 미래 재귀형(Niphal)으로서, 부정한 아내가 비밀 유지를 위해 스스로 애쓰고 있는 상황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증인. ‘이중으로 하다’, ‘반복하다’, ‘중언하다’란 뜻의 히브리어 ‘우드’에서 유래한 말로써, 그 목격한 상황을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데 모세 율법에서는 위증(僞證)을 피하고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 최소한 2인 이상의 ‘증인’이 요구되었다(신 19:15, 마 18:16).
잡히지도 아니하였어도. 즉 ‘현행범(現行犯)이 아니었을 경우도’라는 뜻이다(요 8:4). 그러나 만일 현행범일 경우, 그리고 분명히 목격한 증인들이 있을 경우, 그 여인은 모세 율법에 따라 돌로 치는 형벌에 처해졌다(레 20:10).
의심. [히, 루아흐 키느아] 직역하면 ‘질투의 신(영)’이다. 따라서 본래 의심이란 질투심을 자극하는 사탄의 영향력 아래 있는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이는 단순히 머리를 갸우뚱할 정도의 의혹이 아니라, 전인격을 불사를 정도로 심히 의심하는 것를 가리킨다. 그러나 한편 여기 제시된 ‘의심의 규례’를 따라 그 당시 남편이 가정의 평안을 사수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일으키는 ‘의심’은 정죄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이것은 가정의 건전한 도덕적 윤리 및 공동체의 기풍 확립을 위해서 필요하기까지 했다. 그런고로 이 의심은 오늘날 소위 의처증(疑妻症)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의심 받는 여인은 실족하거나 불평치 말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 하나님의 공의의 대변자인 제사장에게로 가야 한다. 이렇게 하여 만일 여자가 순결하다고 밝혀지면 그녀는 더 큰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28절).
그를 위하여. 즉 ‘그 아내를 위하여’이다. 구약 시대의 규례상 여호와 앞에 나아가는 자는 빈손으로 나갈 수 없었다(출 23:15, 24:20). 그러므로 남편은 의심받은 아내를 위해 소제의 예물을 준비해야 했다.
보리 가루. 보통 소제는 고운 밀가루에 기름과 유향과 소금을 섞어 드려졌으며, 가끔 첫 이삭을 볶아 기름과 유향과 함께 드려지기도 했던 일종의 기쁨과 감사와 헌신의 제사였다(레 2:1-16, 6:14-23). 그러나 여기 ‘의심의 소제’ 예물로는 거칠고 질이 떨어지는 가난한 자들의 음식인 ‘보리 가루’가 사용되었다. 이는 의심하는 자나 의심받는 자의 상황이 매우 곤혹스럽고 애매한 처지였음을 대변해 준다. 사실 의심받는 자나 의심하는 자는 피차 영육의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런고로 유대 랍비들은, 남편이 그 아내를 의심의 법으로 고발하기 전에, 그 심증(心證)이 얼마나 객관적인가를 거듭 생각하라고 가르치고 있다(Matthew Henry).
십분의 일 에바. 여기서 ‘에바’(Ephah)는 구약 시대에 부피를 재는 고체량의 단위로서, 1에바는 약 23리터 가량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십분의 일은 약 2.3리터 가량 되는 고체 부피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1오멜(Omer)의 부피에 해당되는 것이었다(출 16:16, 36).
기름도 붓지 말고 유향도 두지 말라. 여기서 ‘의심의 소제’일 경우, 기름과 유향 없이 소제가 드려졌다. 그 이유는 이 의심의 소제는 여자의 행실과 관련하여 그 죄의 유무를 판별하기 위해 드리는 소제였기 때문에 다른 희생물과 더불어 드리는 일반 소제 때와는 달리 죄의 부정을 제하는 ‘기름’을 부을 수 없었고, 기도를 상징하는 ‘유향’를 곁들일 수 없었다(레 2:1-16). 한편 곡식 제사에서 기름과 유향이 사용되지 않는 또 다른 경우는 극빈한 자가 드리는 속죄제에서였다(레 5:11). 결국 이 두 제사는 드리는 자의 어려운 물질적 정신적 처지를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의심의 소제요 기억나게 하는 소제. 이 소제는 감격과 헌신과 봉사의 다짐이 있는 일반 소제와는 그 성격이 달랐다. 이 소제는 그 제물의 내역에서 볼 수 있듯이 여인의 순결이 의심받는 ‘의심의 소제’였다. 특히 여기 ‘기억’(히, 지카론)이란 말은 ‘지난 일을 기억하다’, ‘알아보기 위해 표시해 두다’에서 파생된 말로, 곧 이 소제의 취지를 분명히 해주고 있다. 즉 이 소제는 (1) ‘의심’의 근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진실인지의 여부를 알아보려는데 그 목적이 있으며, (2)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행실에 대해 옳고 그름을 돌아보고 기억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3)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판단의 근거를 하나님의 전지하신 지혜에 맡기고 그 분의 판단에 겸손히 따르겠다는 데 그 가치가 있었다.
거룩한 물. 이 물은 성소 입구에 위치한 물두멍의 물인 듯하다(출 30:18). 제사장들은 이 물로 성막 봉사 전후에 손발을 씻었다(출 30:19-21, 40:31-32). 한편 유대 전승은, 이때 토기 그릇에 담긴 물의 양은 약 0.5리터 정도의 용량이었다고 전한다(Matthew Henry).
성막 바닥의 티끌을 … 물에 넣고. 본래 물두멍의 물은 성막 바닥의 티끌과 각종 오물을 씻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성막 티끌을 그 물에 집어 넣은 것은 이 물의 효과를 역(逆)으로 이용한 것이다. 즉 이때 이 물두멍의 물은 생명과 성결을 제공하기 보다 죽음과 심판의 효과를 자아내게 되었음을 상징화한 것이다. 한편 ‘티끌’은 최초 범죄 이후 저주 받은 뱀의 음식으로 규정된 것으로서(창 3:14), 결국 거룩한 물에 ‘티끌’을 첨가한 것은 저주와 수치 등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Keil).
기억나게 하는 소제물 곧 의심의 소제물. 이것은 일반 소제 예물(레 2:1-16)과는 다른 특별한 목적의 소제물로서, 곧 기름과 유향 및 소금이 첨가되지 않은 조악한 보리 가루 1/10 에바로 구성되었다. 15절 주석을 참조하라.
소제물을 그의 두 손에 두고. 이것은 의심받는 여인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러내 놓고 그분의 정당한 판결을 받을 준비가 되었음을 나타낸다.
저주가 되게 할 쓴 물. 이는 성막의 티끌을 첨가한 이 물 자체가 저주의 효능을 가진 쓴 물이란 뜻이 아니다. 이는 의심받는 여자가 불륜의 사실이 있을 경우 그 쓴 물이 그 부정한 여인에게 하나님의 공의롭고도 고통스러운 형벌를 전달하는 매체가 될 것이라는 뜻에서 사용된 표현이다. 한편 여기서 ‘쓰다’(히, 마라르)란 말은 ‘괴롭히다’, ‘격동시키다’란 뜻으로서 영육간에 매우 고통스러운 지경에 이른 상태를 일컫는다. 그리고 이 ‘쓴 물’을 특별히 제사장에게 맡긴 것은 그가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네 남편을 두고. 직역하면 ‘네 남편 아래 있으면서’이다. 이는 곧 아내는 그 남편의 권위와 보호와 사랑 안에 거해야 한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해독. ‘심한 저주’라는 뜻의 히브리어 ‘아라르’에서 유래한 말로써 곧 ‘매우 쓰라린 고통’, ‘찌르는 듯한 아픔’을 의미한다. 여기서 20, 21절에 언급된 바와 같은 고통을 가리킨다. 한편이 해독의 정확한 병명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으나, 유대 학자들은 대개 수종증(水腫症)으로 본다. 즉 요세푸스(Josephus)는 일반 수종증(ordinary dropsy, hydrops ascites)으로 보고, 미카엘리스(Michaelis)는 난소 수종증(dropsy of the ovary, hydrops ovarii)으로 본다(Keil & Delitzsch). 여하튼 이 해독은 ‘간음’이라는 범죄의 행위와 결부되어 하나님께서 여자의 생식기에 내리신 치명적인 병임에는 틀림없다(Pulpit Commentary).
면하리라. 이 말의 원뜻은 ‘깨끗하다’, ‘완진히 일소하다’, ‘무흠하다’이다. 따라서 이는 의심받았던 사실에 대해 완전히 자유롭게(무죄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더럽혀서. 기본 동사 ‘타메’는 종교 의식상 ‘부정’하게 되다’, 혹은 도덕적으로 ‘오염되다’, ‘때묻다’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도덕적인 불륜을 의미하는데 곧 통정(通情)으로 인한 ‘간음’을 가리킨다.
여호와께서. 저주의 주권자를 밝히고 있다. 즉 공의로우신 심판자로서의 하나님께서 모든 선악을 다스리신다는 ‘하나님의 주권’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넓적다리가 마르고. 여기서 ‘넓적다리’(히, 야레크)란 본래 ‘부드럽다’는 의미에서 파생된 말로서, 대체적으로 ‘출산하는 부분’, ‘정강이’, ‘옆구리’, ‘허리’ 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는 말이다. 여기서는 성적(性的) 범죄에 대한 징벌이라는 점에서 여자의 생식기를 지칭하는 완곡한 표현인 것 같다(Keil, Pulpit commentary). 한편 그리고 이것이 ‘마른다’는 말은 ‘쓴 물’에 의한 치명적인 악질(惡疾)로 인해 여자의 생식기가 파손되어 더 이상 여성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할수 없는 상태가 될 것임을 나타낸다.
배가 부어서.이는 생식기에 발생한 수종(水腫)에 의해 임파액이나 장액(漿液)이 괴어 몸이 엄청나게 부어오르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Keil).
저줏거리, 맹셋거리가 되게 하실지라. 남편으로부터 의심받은 여자가 결국 간음한 것으로 판명되면 그녀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모욕을 당하며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끊어지게 될 것(신 23:2)이다. 이같은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것이 요 8:1-11 에 나오는 간음하다 잡힌 여인의 사건이다. 한편 율법에 의하면 통간한 남녀는 모두 ‘돌’로 쳐 죽여야 했다(레 20:10, 신 22:22). 이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에는 결코 악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생히 교훈한다. 사실 하나님 나라의 건설은 악을 징벌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마 3:2).
아멘 아멘. ‘아멘’은 어떤 사실이나 대상을 ‘지지하다’, ‘확신한다’는 뜻의 히브리어 ‘아만’에서 유래한 말로서, 곧 ‘참되다’, ‘그대로 되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의심받는 여인이 제사장의 저주 선언에 대하여 ‘아멘’이라고 대답하는 것은 만일 자신에게 죄가 있다면 제사장의 저주 선언을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적 표현이다. 즉 이 말은 인간 앞에서의 맹세가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맹세이다. 한편, 여기서 ‘아멘’을 두 번 말한 것에 대해 혹자는 추정하기를, 여기 본문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제사장은 그 여인에게 유죄일 경우의 저주 선언과 더불어 무죄일 경우의 축복 선언도 했다고 본다(28절). 그러므로 그 여인은 이 두 가지 경우에 대하여 각각 아멘 아멘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Matthew Henry).
두루마리. [히, 세페르] ‘기록하다’, ‘열거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사파르’에서 유래한 말로, 곧 ‘책’, ‘조서’, ‘두루마리’ 등을 가리킨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문서 보관용 책자로 동물의 가죽, 또는 파피루스(Papyrus), 토판(土版) 등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본문에서처럼 기록된 글자를 물에 빨아 넣는다는 말에서 추축해 보면, 여기서의 두루마리는 동물 가죽(특히 양피지)으로 제조된 두루마리(NIV, scroll)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굴림 막대가 있는 긴 것이 아니라(렘 36:2) 낱장의 문서로 봄이 타당하다.
저주가 되게 하는 물. 18절 주석 참조.
의심의 소제물. 15절 주석 참조.
여호와 앞에 흔들고. 이는 제물을 요제(히, 테누파)로 드리는 장면이다. ‘요제’(搖祭)란 화목제의 희생제물 중 가슴 부위를 드릴 때와 땅의 소산물을 드릴 때 제사장이 제물을 높이 들어 흔들다 내림으로써 진행되는 제사이다(출 29:24, 레 7:30). 이는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다는 의미와 더불어 그 드린 것을 다시 제사장이 하나님께로부터 받는다는 상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기억나게 하는. ‘표시하다’, ‘기억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자카르’에서 파생된 말이다. 여기서는 하나님께 모두 드리는 ‘증표로’라는 의미이다. 즉 비록 ‘한 움큼’만을 취해 단에서 불사른다 할지라도 그것은 곧 드리고자 한 예물 전체를 바친 한 ‘증표’가 된다는 뜻이다.
그 후에 … 그 물을 마시게 할지라. 의심의 판결 절차 가운데 제일 마지막으로 여인의 순결 여부를 가려주는 ‘쓴 물’을 마시게 했다. 즉 최종 판결에 앞서 의심받는 여인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점검하고, 하나님과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 자신이 거룩한 백성의 일원이지만 지금은 의심받고 있는 비천한 처지임을 깊이 자각해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준비가 끝난 후 의심받는 여인은 오직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판단에 모든 것을 맡기는 표로 이 ‘쓴 물’을 마셔야만 했다.
그 저주가 되게 하는 물. 18절 주석 참조.
배가 부으며 그의 넓적다리가 마르리니. 21절 주석 참조.
저줏거리가 될 것이니라. 즉 간음한 여인이 받게 될 저주의 본보기가 되어 두고두고 그 백성 가운데서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비단 죽은 그 여인 뿐만 아니라, 그 여인이 소속된 가정과 가문에도 크나큰 수치가 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자가 서로 강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자기 가족, 자기 가문, 자기 지파, 그리고 자기 나라 가운데서 그러한 저줏거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했다.
1. 먼저 의심의 법으로 그 아내를 고발한 남편은 의심의 소제물을 준비한 후 제사장에게 나아간다(11-15절).
2. 제사장은 그 여인으로 하여금 머리를 풀게 한 후 회막 문에 세운다. 그리고 그 여인의 두 손에 의심의 소제물을 둔다. 그런 후 제사장은 토기 그릇에 물두멍의 물을 담고, 성막 뜰의 티끌을 취해 그 물에 넣은 후 자신이 들고 그 여인 앞에 선다(16-18절).
3. 제사장은 ‘여호와께서 … 네 넓적다리로 마르게 하리라’는 내용으로 구성된 저주의 맹세를 그 여인으로 하여금 하게 하고, 또한 자신이 회중 앞에서 공식 선포한다. 이때 여인은 아멘 아멘으로 화답해야 한다(19-22절).
4. 저주의 맹세가 끝나면 제사장은 그 글귀가 기록된 두루마리를 자신이 들고 있던 토기 그릇의 물에다 뺀다(23절).
5. 그 후 제사장은 여인의 손에서 의심의 소제물을 취하여 요제로 드린 후 그 중 한 움큼을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르는 의식을 치른다(25-26절).
6. 소제물 의식을 치른 후 제사장은 이제 끝으로 그 여인으로 하여금 두루마리를 빤 그 토기 그릇의 물을 마시게 한다. 이로써 재판의 절차는 모두 마쳐진다(24절).
7. 한편 재판의 결과는 죄의 유무에 따라 다음 두가지 경우로 나타난다. 즉 유죄일 경우, 그 여인은 저주의 맹세대로 치명적인 해독을 입게 된다. 그러나 무죄일 경우, 그 여인에게는 아무런 해도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조만간 임신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27-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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