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한 기름. 여기서 ‘순결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자크’는 ‘투명한’(transparent) 혹은 ‘빛나는’(bright)이란 뜻이다. 곧 이것은 다른 이물질(異物質)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하고 깨끗한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일상 생활에서 흔히 사용되는 기름은, 감람 나무의 열매, 잎, 가지 등을 함께 으깨서 만든 반면, 하나님을 섬기는데 사용된 순수한 기름은 오직 감람 열매만을 부수어서 짜낸 순결한 기름이었다(출 27:20).
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둘지며. 이것은 일차적으로 제사장이 성소 안에서 제사 활동을 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고 또한 하나님의 성소를 빛 가운데 보존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계속해서 불을 켜라는 명령은 하루 24시간 계속 불을 켜 두라는 뜻이 아니라, 매일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 불을 켠 후 다음날 아침까지 그 불을 꺼뜨리지 말고 잘 관리하라는 의미이다(출 27:20-21). 한편 빛은 영적으로 복음을 상징하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행동이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내며, 성도들이 복음의 진리를 밝히는 등잔대 구실을 하여야 함을 암시해 준다(마 5:14-16).
저녁부터 아침까지. 이것은 성소에 등잔불을 밝혀두어야 할 시간을 규정한 것으로, 대략 히브리 사회에서 하루가 시작되는 시각인 오후 6시부터 이튿날 아침 6시까지를 의미한다. 한편 이 어두운 시간에 등잔불을 밝힌 것은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두운 이땅에 오셔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음의 빛을 비추신 것을 상징한다(요 1:9).
등잔들을 … 정리할지니라. 여기서 ‘정리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라크’는 ‘질서대로 놓다’, ‘간검(看檢)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것은 매일 저녁 등잔불을 켜기 위해 등잔에 기름을 채우고, 또한 불이 적당히 잘 타오르도록 심지를 조절하는 등 등잔불을 켜고 끄는 일을 잘 보살펴 전혀 하자가 없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떡 열두 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가리킨다. 나아가 이것은 하나님의 영적 이스라엘, 곧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후손된 성도들을 상징한다(갈 3:7).
십분의 이 에바. 에바(Ephah)는 히브리 사회에서 통용되던 고체의 부피 단위로, 한 에바는 23리터이다. 따라서 십분의 이 에바는 4.6리터에 해당한다.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이것은 마치 대제사장의 견대 둘에 각각 여섯 지파의 이름을 각기 새겨 넣었던 것과 같다(출 28:10). 이때 그 배열은 각 지파의 나이 순서대로 나열했을 것이다.
기념물로 … 화제를 삼을 것이며. ‘기념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즈카라’는 기념제(記念祭, memorial offering)란 뜻으로 곧 여호와께서 기억하시도록 드리는 제물을 의미한다(2:9). 따라서 유향을 기념물로 취해 화제를 삼는다는 말은 실제 예물인 진설병 대신 유향을 한 줌 취하여 단 위에서 불태워 드림으로써, 그 진설병이 여호와께 향기나는 제물이 되게 한다는 의미이다.
영원한 언약. 이스라엘 백성이 끊임없이 진설병을 떡상 위에 올려 놓는 행위는 성소 규례가 지속되는 한 영원히 지켜야 할 규례로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영원한 언약 관계를 나타내는 표(sign)가 되었다. 한편 본 규례는 가장 일반적이고 구하기 쉬운 제물을 통하여 언약의 백성을 향한 당신의 구속 계획을 확증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잘 보여준다.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2:3 주석 참조.
진영 중에서 싸우다가. 싸움의 원인에 대하여는 성경이 침묵하고 있으므로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전승을 빌어 추측해 보면 다음과 같다. 즉 당시 타국인의 장막터는 순수 이스라엘 혈통을 가진 자들의 장막터와는 약간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Keil). 따라서 당시 부계(父系)를 따라야 하는 관례상 이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도 타국인의 장막터에다 자기 장막을 쳐야 했는데, 그는 자기 어머니의 권한을 억지 주장하면서 단 지파 영역에다 장막을 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단 지파 사람들에 의해 거부되었고, 이에 그는 단 지파 사람의 어떤 자와 격렬하게 싸우던 중 마침내 여호와의 이름까지 모독했다는 것이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I. p.543).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며 저주하므로. ‘여호와’는 ‘지존자’ 혹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란 뜻으로서 이 이름의 진정한 의미는 출애굽 상황에서 모세를 통하여 계시되었다(출 3:14-15). 특별히 원문에는 ‘여호와의 이름’ 대신 ‘그 이름’(히, 하솸)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것은 인간이 감히 여호와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을 불경스러운 일로 여겨 삼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여호와란 성호 대신 ‘주’(主, Lord)란 뜻의 ‘아도나이’란 명칭을 사용하였다(출 3:14).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대표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한 것은 하나님 자신을 모독한 행위이며 마귀적인 소행으로서 당시 사회에서는 죽음의 형벌에 해당했다. 한편, 여기서 ‘모독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카브’는 ‘찌르다’, ‘꿰뚫다’란 뜻인데 이것은 어떤 것을 형편없이 망가뜨리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슬로밋. 이름의 뜻은 ‘평화로움’, 평화가 충만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여인은 애굽에 있을 때 애굽인과 결혼함으로써 동족들보다는 이방인과 연합하는 잘못을 범했다. 또한 이 여인은 자녀에게 신앙 교육을 잘못 시킴으로써 아들의 비극을 불러 일으켰다.
손을 그의 머리에 얹게 하고 . 증인들 모두가 훼방자의 머리에 안수한 것은 증언 자체가 진실임을 증거하고, 또한 증인들이 들었던 여호와에 대한 모독과 저주의 말을 자신들로부터 모독자 자신에게 전가시키기 위함이었다.
손을 얹는 것의 의미를 좀더 자세하게 설명한다. 히브리어 ‘야드사막 알’은 희생제물 위에 ‘손을 세게 누름’을 의미한다. 그 표현은 제의(祭儀)에 주로 사용되었고, 제의와 무관한 표현으로도 사용되었다. 손을 얹는 행위가 소유권을 의미한다는 사상은 실제로 아무 연관이 없다. 의식을 행할 때 죄인은 다름 아닌 자기 소유의 동물을 끌고 오기 때문이다. 의식은 그것을 포함하는 더 큰 의식의 배경과 목적에 따라 전달하는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1. 희생제물이 아닌 사례. 첫 번째 사례가 레위기 24장 14절에 나타난다. 누군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은 그를 돌로 치기 전에 그 사람 위에 손을 얹는다. 그 의식의 의미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증인인 그들이 형을 집행하기에 앞서 죄를 규명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레위기 5장 1절에 따르면 신성 모독을 들은 사람은 자신의 목숨이 위험에 처하는 죄 된 행위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신성모독적인 발언을 한 사람에 맞서 증언하지 않는다면 그들도 죄를 짓는 것이다(레 24:15).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가만히 있을 경우 그들에게 임할 죄책을 상징적으로 그 사람에게 전가하는 셈이다. 여호수아의 취임식 때, 모세는 “[모세의] 권위를 그에게 돌리기 위해”(민 27:20, NIV) 그에게 손을 얹었다. 이런 경우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모세를 대신할 것이기 때문에 ‘대신’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민수기 8장 10절에서는 레위인이 성소 직무를 위해 구별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에게 손을 얹는다. 성막에서 그들은 이스라엘 장자들 대신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 그분에 의해 선택되었다(민 3:12). 우리는 여기서 ‘책임의 전가’와 ‘대신’이라는 개념을 발견한다. 결론적으로 몇 가지 사상이 의식에 표현된다. 즉 주체와 객체 사이에 관계가 형성된다(증인과 고소당한 자 사이, 지도자·후계자와 그 대리자 사이, 장자와 그 대리자 사이). 한쪽에서 다른쪽으로 무언가가 전가된다. 그리고 몇 경우에 ‘대신’의 개념이 나타난다.
2. 제의적 사례. 손을 얹는 일은 번제(레 1:4), 화목제(3:2), 속죄제(4:4, 15, 33) 그리고 가장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속건제를 실시할 때 요구되었다(7:7). 그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위한 안수식의 일부였다(8:14, 18, 22). 두 손이 항상 사용되었는지는 논란이 있다. 주체가 복수일 때, 복수의 손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주체가 단수일 때 한 손이 사용되었다. 여기서 그 의미를 알 수는 없지만, 대속죄일에 광야로 보내는 염소에 대해서는 그 의미가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16:21). 아론은 두 손을 사용했고 이스라엘의 죄를 고백하여 그 살아 있는 염소에게 그것들을 전가하였다. 이 경우에 전가의 사상이 분명하게 표현되지만 대속은 아니다. 또 그 의미가 희생제물에 손을 얹는 일에 적용되는지도 분명하지는 않다.
3. 의식의 의미. 한 가지 의미 즉 전가가 압도적인 듯하다. 이것이 희생제물의 경우에도 해당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논리적인 것 같다. 몇 가지 논증이 이 제안을 지지한다. 첫째, 모든 희생제물은 그것을 통해 죄가 제거되는 것을 함축하는 속죄의 기능을 가진다. 둘째, 죄인들은 자기의 죄/부정을 진 채 성소에 오지만(5:1) 이것은 용서(10절)와 정결(12:8, 14:19)을 이룬다. 그렇게 함으로 죄/부정은 죄인들을 그 짐에서 구원해 주는(사 53:6, 11, 12) 속죄 희생을 통해 제거된다. 우리는 심지어 하나님(출 34:7) 혹은 제사장이 백성의 죄를 담당한다(레 10:17, 출 28:38)는 말을 듣는다. 셋째, 죄/부정은 성소에서 매년 한 차례 제거되었으며, 이것은 어떤 형태로든지 백성들의 죄/부정이 그곳으로 전가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죄가 죄인에게서 희생제물을 거쳐 성소로 전가된 것은 손을 얹는 행위를 통해서였다. 대속의 사상 또한 손을 얹는 행위에서 나타나는 듯하다. 의식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제물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제물을 가져온 사람도 받아들이는 것으로 볼 수 있다(1:4, 7:18). 한 사람의 경험이 다른 사람의 경험이 된다
죄를 담당할 것이요. 단순히 범죄자로 낙인 찍히는 차원을 넘어, 그 죄로 말미암아 형벌을 받아 죽음에 이르는 것을 뜻한다.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이처럼 공개적인 처형법을 택한 것은 신성 모독죄가 얼마나 큰 범죄인가를 보여 주고,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죄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며, 나아가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의 연대 책임성을 일깨우기 위함이었다.
거류민. [히, 게르] 순수 이스라엘 혈통은 아니지만 이스라엘 사회에 거주하면서 그 공동체의 종교와 문화에 동화된 외국인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들은 여행객이나 외국의 거래인들과 같은 순수 외국인과는 구별되는 존재로, 율법은 이들에게도 본토 이스라엘인과 동등한 권리 및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모독하면. 기본 동사 ‘나카브’는 ‘찌르다’(puncture), ‘구멍을 뚫다’(perforate), ‘세게 치다’(strike) 등의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모독한다는 것은 어떤 고귀한 것을 망가뜨린다는 뜻이다.
상해를 입혔으면. 이 말은 ‘주다’(give), ‘두다’(put)란 뜻의 ‘나탄’과 ‘흠집’(blemish), ‘얼룩’(stain)이란 뜻의 ‘뭄’이 합성된 말로, 곧 상대방에게 어떤 타격을 주어 상처를 입히는 행위를 말한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동해 보복법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자세한 내용은 출 21:24-25 주석을 참조하라.
그 법을 동일하게 할 것. 하나님의 심판 원칙을 잘 보여 준다. 즉 하나님은 절대 공의로우신 분으로 그분의 심판은 이스라엘인이든 이방인이든 관계없이 절대 공의(公義) 하에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것은 훗날 불의에는 불의에 상응하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과 의에는 의에 해당하는 하나님의 생명의 심판이 있을 것임을 암시해 준다.
Previou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