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단순히 성소(the Holy Place)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하신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성소 안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속죄일 규례를 언급하기 전에 이 나답과 아비후 사건을 먼저 기록한 이유는, 첫째, 제사장이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일이 얼마나 두렵고 거룩한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하고, 둘째, 하나님을 섬길 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와 법도대로 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법궤 위 속죄소. 속죄소(히, 카포레트)는 ‘덮다’, ‘용서하다’, ‘속하다’란 뜻의 히브리어 동사 ‘카파르’에서 파생된 단어로 법궤를 덮는 뚜껑을 가리킨다. 그리고 법궤(언약궤)는 사면을 금으로 둘러싼 상자로, 그 속에는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 및 십계명 두 돌판 등이 들어 있었다(히 9:4). 보다 자세한 내용은 출 25:10 및 25:17을 참조하라.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하나님의 지상 임재의 상징적 거처인 지성소는 지극히 거룩한 곳으로 일 년에 오직 한번 속죄일, 대제사장이 속죄제를 드리기 위해 들어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장소였다. 따라서 일반인은 두 말할 필요도 없고, 비록 거룩한 관유로 기름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정한 기일, 정한 규례를 벗어나 이곳에 들어가면 그 역시 죽임을 면치 못했다. 구약 시대에 이처럼 지성소의 출입이 철저히 금지된 것은 하나님과 범죄한 인간 간의 철저한 분리 관계를 나타내는 동시에, 역으로는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영적 교제의 귀중성을 깊이 교훈하기 위함이었다.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곧 법궤 위 속죄소가 하나님의 지상 거처임을 암시한다. 이때 지성소 안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로 인해 구름이 충만하였다. 그러므로 이때의 충만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암시하는 가견적인 상징물이다(Keil, Matthew Henry, Lange). 어떤 학자들은(Bähr, Vitringa, theSadducees) 이 구름을 장(帳) 안에 들어간 아론이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우기 위해 피운 향의 연기(13절)로 보지만, 다른 학자들은(Keil & Delitzsch)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특별한 현상으로 보았다.
수송아지를 속죄제물 … 숫양을 번제물. 이 제물은 대제사장 자신과 그 권속들의 속죄를 위한 희생제물이다. 이처럼 대제사장이 먼저 자신과 더불어 제사 직무를 맡은 여타 제사장들을 위해 속죄제와 번제를 드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제사장의 직무 수행 도중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질렀을지도 모를 모든 죄를 용서받고, 둘째, 용서받은 것에 감사하여 앞으로 더욱 헌신할 것을 다짐하기 위함이다. 한편 속죄일의 속죄를 위해 대제사장이 미리 준비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물로 몸을 씻은 후 흰 세마포 옷을 입어야 했다(4절). (2) 자신과 권속의 속죄를 위해 속죄제용 수송아지와 번제용 숫양 각 한 마리를 준비해야 했다. (3) 이스라엘 전 회중의 속죄를 위해 속죄제용 숫염소들과 번제용 숫양 하나를 준비해야 했다(5절).
속옷. [히, 케토네프] 겉옷 안에 입는 긴 옷을 가리키는데, 겉옷을 입고 난후에도 이 속옷의 소매와 치마 하단 부분이 겉으로 노출되었다(출 28:4).
속바지. [히, 미크나스] ‘모으다’, ‘회집하다’란 뜻의 히브리어 동사 ‘카마스’에서 파생된 단어로, 제사장이 성전 봉사시 입는 속옷 바지를 가리킨다. 속옷이 치마 형태로 되어 있었으므로 치부(恥部)를 가리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바지가 필요했다(출 28:42). 이것은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수치스러움을 가리는 것을 상징한다.
띠 … 관. 출 28:4 주석을 참조하라.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제사장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기 전 이처럼 물로 몸을 씻는 행위는 범죄로 말미암은 오염을 씻어낸다는 뜻을 가진 상징적 행위였다. 따라서 이것은 후일 신약의 세례 의식을 예표적으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집안. [히, 바이트] 문자적인 의미는 ‘집’, ‘가족’을 뜻한다. 여기서는 대제사장 아론의 가족 뿐만 아니라, 일반 제사장들 및 그들의 가족 전체를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선택 받은 자와 그 가족들은 남들에 앞서 먼저 성결해야 함을 보여 준다.
속죄하고.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아론은 자신과 자신의 모든 직, 방계(傍系)가족의 죄를 엄숙히 고백해야 했다고 한다(Lange, Matthew Henry). 한편 ‘속죄하다’란 말의 어의(語義)에 대해서는 1:4 주석을 참조하라.
회막문 여호와 앞. 즉 희생제물을 잡는 장소는 번제단 북편에 위치했다(1:11). 이곳은 제물이 도살되는 장소일 뿐 아니라 잠시 보관되는 장소이기도 했다.
이 이론들은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아사셀’의 정체를 밝히는 단서는 한 염소는 여호와께 속하고 다른 염소는 아사셀에게 속했다고 말하는 본문(레 16:8-10)이다. 아사셀은 여호와와 대조되는 독립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고유명사인 것이 분명하다. 또한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아사셀에게 바쳐지는 제물이 아니라 죄를 운반하는 역할, 즉 이스라엘의 죄를 광야에 있는 아사셀의 영토로 실어다 버리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예식을 명하신 여호와께서는 아사셀을 죄의 창시자로 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 죄들은 그것들의 근원으로 되돌려진다. 아사셀의 영역인 광야로 산 채로 추방된 염소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에서 그의 몫을 담당하게 된다. 결국 아사셀은 그런 죄들을 배후에서 조종한 자로서 그 책임을 짊어질 자 곧 사탄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다. 죄는 그것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에게 되돌려지고, 그는 자기가 속한 곳으로 보내진다. 이로써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일종의 속죄가 이루어지는데(레 16:10), 이는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가로막아 온 죄의 장본인을 그들 가운데서 깨끗이 제거함으로써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속죄의 국면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제공하신 속죄의 희생과는 달리 대속이 없다. 사탄은 우리의 죄와 관련하여 그 자신의 몫 때문에 죽을 것이며,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는 분이시다.
“속죄제물은 희생제물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가리켰고, 대제사장은 중보자 되시는 그리스도를 대표하였고, 아사셀은 참으로 회개한 자들의 죄를 마침내 지게 될 죄의 창시자, 사탄을 나타냈다. 대제사장이 속죄제물의 피의 공로를 통하여 성소에서 죄를 도말했을 때, 그는 그것을 아사셀에게 씌워 주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봉사를 마치실 때에 당신의 보혈의 공로로 하나님의 백성의 죄를 하늘 성소에서 도말해 버리실 때 그분께서는 그 죄를 최후의 형벌을 마땅히 받아야 할 사탄 위에 두실 것이다. 또한 아사셀에 해당되는 염소가 무인지경으로 쫓겨나서 다시 이스라엘 회중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처럼 사탄도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앞에서 영원히 쫓겨나고 죄와 죄인들이 최후에 멸망할 때 그 존재가 사라질 것이다”(E. G. White, 각 시대의 대쟁투, 422).
광야로 보낼지니라.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대제사장은 광야로 보낼 그 염소의 머리 위에 양손을 얹고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고 한다. “오, 주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 집이 잘못을 범하고, 배반함으로 당신 앞에 죄를 지었나이다! 오, 주여! 간절히 비노니, 이제 주께서 당신의 종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에 기록된 바, ‘속죄의 날에 너희가 내 앞에 지은 모든 죄를 깨끗이 사하리라’ 하신 그 말씀대로 이제 주의 백성이 당신께 지은 모든 허물과 죄악을 이 시간 용서하소서!” (The Preacher’s Homiletic Commentary, p.201).
여호와 앞 제단. 곧 번제단을 가리킨다. 이 번제단 위에는 항상 희생제물이 불타고 있었는데, 여기서 취한 숯으로 향을 살라 여호와께 드렸다. 한편 번제단에 드려지는 속죄제사가 하나님을 위한 전적 희생을 상징하고, 하나님께 바쳐지는 향(香)이 기도를 상징한다면, 희생적인 봉사와 기도는 그 근원이 동일함을 알 수 있다.
향기로운 향. 향의 재료와 그 제조법에 대해서는 출 30:34-38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휘장 안에 들어가서. ‘휘장 안’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curtain) 안, 곧 지성소를 가리킨다. 한편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세 번 들어간다. 즉 (1) 분향을 위해서 (2) 자신과 권속의 속죄를 위한 제물의 피를 속죄소에 뿌리기 위해서 (3) 이스라엘 전 회중의 속죄를 위한 제물의 피를 뿌리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 같은 지성소 출입 절차는 죄사함은 오직 피흘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17:11, 히 9:22) 진리와, 완전한 사죄와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서만 성취 가능하다는 점을 교훈해 준다(히 6:19, 20, 9:11-14). 이런 맥락에서 구약의 대제사장 아론과 신약의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간략하게 비교해 보자.
아론. 짐승을 피흘려서 바침(13, 14, 18, 19절), 희생제사가 계속 반복됨(히 7:27, 9:25, 10:11), 하늘 성소의 모형에 들어감(히 9:23, 24), 율법에 따라서 제사를 드림(히 8:4, 9:22).
그리스도. 자신의 몸을 피흘려서 바침(히 9:12, 10:19),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룸(히 7:27, 9:12, 26), 참하늘에 들어감(히 9:24),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발적 순종으로 자신을 바침(히 10:9).
증거궤. 여기서 ‘증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두트’는 ‘새기다’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직접적으로는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두 돌판 곧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가리킨다. 따라서 ‘증거궤’는 십계명 돌판을 넣어둔 상자, 곧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리킨다. 한편, 이 언약궤는 지성소 안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그 누구도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오직 일년에 단 한번, 대속죄일 때 대제사장이 희생제물의 피를 가지고 이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에도 대제사장은 향연이 충만히 피어 올라 언약궤를 덮을 때까지 옆 걸음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나올 때는 언약궤에 등 쪽이 노출되지 않도록 뒷걸음질로 나왔다고 한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I, p.506).
속죄소 앞에. 곧 속죄소에서 성소 쪽으로 향한 지성소 바닥을 말한다. 결국 속죄소 위와 앞쪽에 피를 뿌린 것은 (1) 하나님의 공의는 인간의 죄에 대하여 반드시 피를 요구하신다는 사실과 (2) 따라서 오직 피로써만 죄인의 속죄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히 9:22).
일곱 번 뿌릴 것이며. 피를 일곱 번 뿌린 것은 피로 인한 속죄의 완전성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장차 ‘단 한번 모든 것을 위하여 완전히’ 뿌려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예표한다(히 7:26, 9:12).
속죄소 앞. 속죄소와 휘장사이의 지성소 바닥을 의미한다. 이처럼 지성소 바닥에 피를 뿌리는 것은 지성소 전체가 성결의 장소임을 보여 준다.
살아 있는 염소. 이스라엘 모든 회중의 속죄를 위해 준비한 두 마리의 염소 중 아사셀을 위해 제비 뽑아 남겨둔 그 염소(scapegoat)를 가리킨다(8-10절).
모든 불의와 … 모든 죄를 아뢰고. 16:10 주석 하반부를 참조하라. 또한 속죄제와 관련된 자복에 대한 설명은 레 5:5의 주석을 참고하라.
미리 정한 사람.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이 사람은 생리적으로 이스라엘인 된 자가 아니라, 본래는 이방인이었던 자라야 했다고 한다.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 놓을지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불의와 죄를 담당한 염소가 다시 장막에 돌아오거나 혹은 인간에게 잡혀 살아나는 일이 없도록 조치한 것이다. 성경 기록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후대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염소를 끌고간 그 사람이 그 염소를 절벽 아래로 밀어뜨렸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유대인의 경전인 탈무드의 미쉬나(Mishnah, Jomavi. 6)에는 그 염소가 광야의 바위에 거꾸로 떨어져 처참하게 죽은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Keil & Delitzsch). 여기에는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렘 50:20)라는 ‘죄의 도말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 입었던 세마포 옷.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이때 벗어놓은 이 옷은 그 후 아론이나 다른 어느 제사장에 의해서도 결코 다시 입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대신 매년 속죄일(7월 10일)에 쓰여질 이 세마포 옷은 그 때마다 새로 지어 입었다고 한다(Matthew Henry).
자기 옷을 입고. 속죄일 날 지성소 안으로 들어갈 때 입었던 세마포 옷을 벗고, 대제사장이 평소 성전에서 봉사할 때 입던 에봇 옷으로 갈아 입으라는 의미이다.
번제. [히, 올라] 자원해서 드리는 제사로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온전한 헌신과 희생을 상징하는 제사이다. 따라서 이 번제는 이제 속죄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드렸다.
속죄하고. 16:11 주석 참조.
불사를 것이요. [히, 사르푸] 이 말은 제물을 태워 그 냄새 나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콰타르’와는(25절) 달리, 고기를 완전히 태워 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는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는 달리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사용되는 말이다(13:52).
스스로 괴롭게 하고. 후일 반복되는 속죄일 규례(23:26-32)에 의하면, 구체적으로 그 달 9일 저녁부터 다음날 10일 저녁까지 만 하루를 금식해야 했다(23:32).
본토인. ‘이방인’과 상호 대치되는 개념으로 민족적, 종교적, 혈통적으로 본래부터 이스라엘에 속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한다.
거류민. [히, 게르]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외국인 중에서 이스라엘의 관습 및 종교를 받아 들일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활에 동화된 자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들은 완전한 ‘이방인’을 뜻하는 히브리어 ‘노크리’와는 다르다.
모든 죄에서 … 정결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지 중이나 무의식 중에 허물을 범하고 미처 속죄하지 못한 모든 죄악을 이 속죄일 날 속죄일 규례를 통해 사하신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편, 구약의 속죄 제도는 그 자체로는 불완전하여 실제로 죄를 제거하거나 없앨 수 없었다(히 10:1-4).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히 이루실 구속 사역을 미리 바라보시고(히 9:12), 그 보혈의 피에 근거하여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결하다고 여겨 주시는 것이다(히 11:1, 4, 계 13:8).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구체적으로는 금식하면서 회개하라는 뜻이다(23:32). 그러나 이 말은 단순히 육체적으로만 금욕과 고행을 실천하라는 말이 하니라, 죄에 대한 각성과 회개하는 일에 전심 전력을 기울여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힘쓰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괴롭게 할지니’의 기본 동사 ‘아나’는 ‘억누르다’(depress), ‘비천하게 되다’(humble), ‘복종하다’(submit) 등의 뜻을 갖고 있다.
위임. [히, 예말레 에트-야도] 원뜻은 ‘손을 가득 채우다’이다. 따라서 제사장으로 기름 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곧 손에 예물을 가득 들고 하나님께 나갈 자로 구별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론이 … 행하니라. 아론은 모세를 통해 간접적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순종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이처럼 다른 사람을 통하여 전달될 수 있으니 이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속죄일 규례가 비록 복잡하고 까다롭다 할지라도 아론이 그대로 모두 행한 것은 제사장된 자의 행할 마땅한 의무요 도리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된 성도들도(벧전 2:9) 생활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주의 뜻을 바로 실행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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