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주석, 레위기 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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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아론의 두 아들. 곧 나답과 아비후를 가리킨다(10:1). 이들은 하나님에 의해 임명받은 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지정하지 않으신 다른 불로 제단에 분향하려다가 회막문 앞에서 죽임을 당하였다(10:1, 2).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단순히 성소(the Holy Place)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하신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성소 안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속죄일 규례를 언급하기 전에 이 나답과 아비후 사건을 먼저 기록한 이유는, 첫째, 제사장이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일이 얼마나 두렵고 거룩한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하고, 둘째, 하나님을 섬길 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와 법도대로 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16:2 성소의 휘장. 즉 성소(the Holy Place)와 지성소(the Holy of Holies)를 분리시키는 휘장(curtain)을 가리킨다. 구속사적으로 이 휘장은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분리된 것을 상징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사 운명하셨을 때, 이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짐으로(마 27:51)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진정한 화해의 길이 열리게 되었으며, 그 결과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여호와의 법궤가 안치된 성소의 장 안, 즉 지성소는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는 장소로 일반인은 물론 제사장들의 출입도 금지되었으며 오직 일년에 한 번, 속죄일(유대 종교력 7월 10일)에만 대제사장이 희생 짐승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서 속죄제를 드릴 수 있었다.

법궤 위 속죄소. 속죄소(히, 카포레트)는 ‘덮다’, ‘용서하다’, ‘속하다’란 뜻의 히브리어 동사 ‘카파르’에서 파생된 단어로 법궤를 덮는 뚜껑을 가리킨다. 그리고 법궤(언약궤)는 사면을 금으로 둘러싼 상자로, 그 속에는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 및 십계명 두 돌판 등이 들어 있었다(히 9:4). 보다 자세한 내용은 출 25:10 및 25:17을 참조하라.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하나님의 지상 임재의 상징적 거처인 지성소는 지극히 거룩한 곳으로 일 년에 오직 한번 속죄일, 대제사장이 속죄제를 드리기 위해 들어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장소였다. 따라서 일반인은 두 말할 필요도 없고, 비록 거룩한 관유로 기름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정한 기일, 정한 규례를 벗어나 이곳에 들어가면 그 역시 죽임을 면치 못했다. 구약 시대에 이처럼 지성소의 출입이 철저히 금지된 것은 하나님과 범죄한 인간 간의 철저한 분리 관계를 나타내는 동시에, 역으로는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영적 교제의 귀중성을 깊이 교훈하기 위함이었다.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곧 법궤 위 속죄소가 하나님의 지상 거처임을 암시한다. 이때 지성소 안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로 인해 구름이 충만하였다. 그러므로 이때의 충만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암시하는 가견적인 상징물이다(Keil, Matthew Henry, Lange). 어떤 학자들은(Bähr, Vitringa, theSadducees) 이 구름을 장(帳) 안에 들어간 아론이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우기 위해 피운 향의 연기(13절)로 보지만, 다른 학자들은(Keil & Delitzsch)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특별한 현상으로 보았다.

 

16:3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속죄일의 속죄제사를 드리기 위해 비단 아론 뿐만 아니라 이후의 모든 대제사장이 성소를 거쳐 ‘지성소’에 들어가게 될 때를 가리킨다. 이는 평소 일반적인 제사를 위해 ‘제사장들’이 ‘성소’까지만 들어가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수송아지를 속죄제물 … 숫양을 번제물. 이 제물은 대제사장 자신과 그 권속들의 속죄를 위한 희생제물이다. 이처럼 대제사장이 먼저 자신과 더불어 제사 직무를 맡은 여타 제사장들을 위해 속죄제와 번제를 드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제사장의 직무 수행 도중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질렀을지도 모를 모든 죄를 용서받고, 둘째, 용서받은 것에 감사하여 앞으로 더욱 헌신할 것을 다짐하기 위함이다. 한편 속죄일의 속죄를 위해 대제사장이 미리 준비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물로 몸을 씻은 후 흰 세마포 옷을 입어야 했다(4절). (2) 자신과 권속의 속죄를 위해 속죄제용 수송아지와 번제용 숫양 각 한 마리를 준비해야 했다. (3) 이스라엘 전 회중의 속죄를 위해 속죄제용 숫염소들과 번제용 숫양 하나를 준비해야 했다(5절).

 

16:4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속죄일에는 평소 대제사장이 성전 봉사 때 입던 화려한 에봇(8:7-9) 대신 흰 세마포 옷을 입어야 했다. 이것은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은혜로 의(義)를 덧입는 것을 상징하는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순결한 자세로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후일 인류의 속죄를 위해 대제사장으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영광스러운 형체를 벗으시고, 사람의 형체를 입으사(빌 2:6-8) 한 점 흠 없이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신 사실을 예표한다(Matthew Henry, The Preacher’s Homiletic Commentary).

속옷. [히, 케토네프] 겉옷 안에 입는 긴 옷을 가리키는데, 겉옷을 입고 난후에도 이 속옷의 소매와 치마 하단 부분이 겉으로 노출되었다(출 28:4).

속바지. [히, 미크나스] ‘모으다’, ‘회집하다’란 뜻의 히브리어 동사 ‘카마스’에서 파생된 단어로, 제사장이 성전 봉사시 입는 속옷 바지를 가리킨다. 속옷이 치마 형태로 되어 있었으므로 치부(恥部)를 가리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바지가 필요했다(출 28:42). 이것은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수치스러움을 가리는 것을 상징한다.

띠 … 관. 출 28:4 주석을 참조하라.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제사장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기 전 이처럼 물로 몸을 씻는 행위는 범죄로 말미암은 오염을 씻어낸다는 뜻을 가진 상징적 행위였다. 따라서 이것은 후일 신약의 세례 의식을 예표적으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16:5 숫염소 두 마리와 … 숫양 한 마리. 이스라엘 전 회중의 속죄를 위해 드려지는 속죄제물과 번제물의 수효를 구체적으로 지적한 것이다(4:23). 이처럼 속죄제물이 세밀히 기록된 것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규례대로 한치의 소홀함 없이 모든 면에 치밀해야 함을 보여준다.

 

16:6 본 절은 속죄일 속죄제사의 한 과정으로 대제사장 자신과 자신의 권속을 위한 속죄제사 명령이 언급되어 있다.

집안. [히, 바이트] 문자적인 의미는 ‘집’, ‘가족’을 뜻한다. 여기서는 대제사장 아론의 가족 뿐만 아니라, 일반 제사장들 및 그들의 가족 전체를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선택 받은 자와 그 가족들은 남들에 앞서 먼저 성결해야 함을 보여 준다.

속죄하고.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아론은 자신과 자신의 모든 직, 방계(傍系)가족의 죄를 엄숙히 고백해야 했다고 한다(Lange, Matthew Henry). 한편 ‘속죄하다’란 말의 어의(語義)에 대해서는 1:4 주석을 참조하라.

 

16:7 두 염소. 이것은 대속죄일에 전 이스라엘 회중의 속죄를 위해 드려질 속죄제물이다. 일반적으로 드려지는 속죄제물은 한 마리인데 비해, 여기서는 특이하게도 염소가 두 마리이다.

회막문 여호와 앞. 즉 희생제물을 잡는 장소는 번제단 북편에 위치했다(1:11). 이곳은 제물이 도살되는 장소일 뿐 아니라 잠시 보관되는 장소이기도 했다.

 

16:8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여기서 제비(lot)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고랄’은 ‘돌처럼 거칠다’(be rough as stone)란 기본 개념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의 제비 도구가 작은 자갈(pebble)이었음을 암시한다. 한편, 대제사장 아론은 두 염소를 성막 안 북편 번제 희생을 잡는 곳에 둔 후(1:11, 16:7), 항아리 속에서 제비를 뽑았다. ‘칼피’(Calphi)라 불리우는 이 항아리(urn) 속에는 똑같은 크기나 모양를 가진 두 개의 제비가 들어 있었는데, 각각의 제비에는 ‘여호와를 위하여’(라 야훼)라는 글과 ‘아사셀을 위하여’(라 아자젤)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대제사장은 백성들 앞에서 항아리를 흔든 뒤, 두 손을 넣고 한 손에 하나씩 제비를 집어 두 마리의 염소들 각각의 머리 위에 그 제비를 놓았다. 이때 그 머리 위에 ‘여호와를 위하여’라는 제비가 얹힌 염소는 그 목에 붉은 천을 두른 후 여호와께 속죄제로 드렸고, ‘아사셀을 위하여’라는 제비가 얹힌 염소는 그 뿔에 붉은 천을 맨 후 광야로 내보냈다고 한다(The Preacher’s Homiletic Commentary, vol. III, p. 200-201).

 

16:9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여호와께 속했고, 따라서 여호와께 드려졌으며, 그것은 또한 인간의 죄를 위해 죽으신 분 곧 여호와(요 8:58, 10:30)이신 그리스도(히 13:11-13)를 상징했다” (Roy E. Gane, Leviticus, Number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2004], 290).

 

16:10 아사셀을 위하여. 여기서 ‘아사셀’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해서는 다음 몇 가지 견해가 있다. (1) 아사셀은 히브리어 ‘아자젤’의 음역인데 이것은 ‘염소’란 뜻의 ‘에즈’와 ‘가버리다’, ‘사라지다’란 뜻의 ‘아잘’의 합성어로써 곧 ‘속죄의 염소’ 또는 ‘내보냄을 받은 염소’를 뜻한다(Luther, Cyril of Alexandria, Symmachus, Theodotion, Vulgate, Septuagint). (2) 아사셀은 ‘쫓겨난 악령’, ‘귀신’이란 뜻의 히브리어 ‘아잘젤’이 유음화(流音化)된 것으로 ‘타락한 천사의 우두머리’ 곧 ‘사탄’을 가리킨다. 따라서 ‘아사셀을 위하여’란 말은 이스라엘의 모든 죄의 책임을 죄의 장본인인 사탄에게 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Gesenius, Ewald, Rosenmüller, Wette, Knobel, Origen, Hengstenberg, Keil). (3) 아사셀은 히브리어 ‘아자젤’의 음역이다. 따라서 히브리어 ‘아자젤’은 ‘제거하다’, ‘없애다’란 뜻의 아랍어 동사 ‘아잘’의 강세형으로 그 의미는 ‘완전한 제거’인데, 그러므로 아사셀 염소가 광야로 나가는 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죄악이 멀리 제거되는 것을 의미한다(시 103:12, 사 38:17, 렘 31:34, 히 9:26)(Tholuck, Thompson, Bähr, Winer). 그러므로 이처럼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홀로 담당하고 광야로 멀리 떠난 이 아사셀의 염소는, 인류의 죄악을 도말하시기 위해 그 죄짐을 지고 성문 밖 골고다로 향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예표한다(The Preacher’s Homiletic Commmentary, Vol.III. pp. 200-202, Keil & Delitzsch, vol. I. Pentateuch, p .398). (4) 쫓겨난 염소가 거하게 될 광야의 어느 장소를 가리킨다(Vatlabus, Deyling, Kimchi, Abenezra, Bochart, Carpvoz).

이 이론들은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아사셀’의 정체를 밝히는 단서는 한 염소는 여호와께 속하고 다른 염소는 아사셀에게 속했다고 말하는 본문(레 16:8-10)이다. 아사셀은 여호와와 대조되는 독립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고유명사인 것이 분명하다. 또한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아사셀에게 바쳐지는 제물이 아니라 죄를 운반하는 역할, 즉 이스라엘의 죄를 광야에 있는 아사셀의 영토로 실어다 버리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예식을 명하신 여호와께서는 아사셀을 죄의 창시자로 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 죄들은 그것들의 근원으로 되돌려진다. 아사셀의 영역인 광야로 산 채로 추방된 염소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에서 그의 몫을 담당하게 된다. 결국 아사셀은 그런 죄들을 배후에서 조종한 자로서 그 책임을 짊어질 자 곧 사탄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다. 죄는 그것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에게 되돌려지고, 그는 자기가 속한 곳으로 보내진다. 이로써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일종의 속죄가 이루어지는데(레 16:10), 이는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가로막아 온 죄의 장본인을 그들 가운데서 깨끗이 제거함으로써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속죄의 국면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제공하신 속죄의 희생과는 달리 대속이 없다. 사탄은 우리의 죄와 관련하여 그 자신의 몫 때문에 죽을 것이며,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는 분이시다.

“속죄제물은 희생제물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가리켰고, 대제사장은 중보자 되시는 그리스도를 대표하였고, 아사셀은 참으로 회개한 자들의 죄를 마침내 지게 될 죄의 창시자, 사탄을 나타냈다. 대제사장이 속죄제물의 피의 공로를 통하여 성소에서 죄를 도말했을 때, 그는 그것을 아사셀에게 씌워 주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봉사를 마치실 때에 당신의 보혈의 공로로 하나님의 백성의 죄를 하늘 성소에서 도말해 버리실 때 그분께서는 그 죄를 최후의 형벌을 마땅히 받아야 할 사탄 위에 두실 것이다. 또한 아사셀에 해당되는 염소가 무인지경으로 쫓겨나서 다시 이스라엘 회중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처럼 사탄도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앞에서 영원히 쫓겨나고 죄와 죄인들이 최후에 멸망할 때 그 존재가 사라질 것이다”(E. G. White, 각 시대의 대쟁투, 422).

광야로 보낼지니라.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대제사장은 광야로 보낼 그 염소의 머리 위에 양손을 얹고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고 한다. “오, 주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 집이 잘못을 범하고, 배반함으로 당신 앞에 죄를 지었나이다! 오, 주여! 간절히 비노니, 이제 주께서 당신의 종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에 기록된 바, ‘속죄의 날에 너희가 내 앞에 지은 모든 죄를 깨끗이 사하리라’ 하신 그 말씀대로 이제 주의 백성이 당신께 지은 모든 허물과 죄악을 이 시간 용서하소서!” (The Preacher’s Homiletic Commentary, p.201).

 

16:11 속죄하고. [히, 키페르] ‘덮다’, ‘가리다’란 뜻의 히브리어 동사 ‘카파르’에서 유래한 것으로 ‘죄를 사하다’, ‘용서하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속죄의 성격은 단순히 지은 죄를 짓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처절한 죽음이 동반되는 피의 제사로써 죄의 값을 치름으로써 지은 죄를 가린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진리는 변함없으나 속죄받은 자는 그 사망이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지고, 속죄받지 못한 자는 그 사망이 자기에게 임한다는 차이를 지닌다.

 

16:12 향로. [히, 마흐타] 불을 담아 피우거나 혹은 운반할 수 있도록 쇠, 혹은 청동으로 만들어진 조그마한 그릇이다(10:1). 동일한 말이 등잔대와 관련되어 쓰여질 때는 ‘불 똥 그릇’(출 25:38)으로도 번역되었다.

여호와 앞 제단. 곧 번제단을 가리킨다. 이 번제단 위에는 항상 희생제물이 불타고 있었는데, 여기서 취한 숯으로 향을 살라 여호와께 드렸다. 한편 번제단에 드려지는 속죄제사가 하나님을 위한 전적 희생을 상징하고, 하나님께 바쳐지는 향(香)이 기도를 상징한다면, 희생적인 봉사와 기도는 그 근원이 동일함을 알 수 있다.

향기로운 향. 향의 재료와 그 제조법에 대해서는 출 30:34-38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휘장 안에 들어가서. ‘휘장 안’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curtain) 안, 곧 지성소를 가리킨다. 한편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세 번 들어간다. 즉 (1) 분향을 위해서 (2) 자신과 권속의 속죄를 위한 제물의 피를 속죄소에 뿌리기 위해서 (3) 이스라엘 전 회중의 속죄를 위한 제물의 피를 뿌리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 같은 지성소 출입 절차는 죄사함은 오직 피흘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17:11, 히 9:22) 진리와, 완전한 사죄와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서만 성취 가능하다는 점을 교훈해 준다(히 6:19, 20, 9:11-14). 이런 맥락에서 구약의 대제사장 아론과 신약의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간략하게 비교해 보자.

아론. 짐승을 피흘려서 바침(13, 14, 18, 19절), 희생제사가 계속 반복됨(히 7:27, 9:25, 10:11), 하늘 성소의 모형에 들어감(히 9:23, 24), 율법에 따라서 제사를 드림(히 8:4, 9:22).
그리스도. 자신의 몸을 피흘려서 바침(히 9:12, 10:19),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룸(히 7:27, 9:12, 26), 참하늘에 들어감(히 9:24),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발적 순종으로 자신을 바침(히 10:9).

 

16:13 향연으로 … 가리게 할지니. 즉 향이 탈 때 발생하는 연기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 위 속죄소를 가리라는 뜻이다. 이것은 죄인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런고로 여기서 죽임 당함 없이 인간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해주는 이 ‘향연’은, 오늘날 죄인에게 마땅히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주고 있는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증거궤. 여기서 ‘증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두트’는 ‘새기다’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직접적으로는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두 돌판 곧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가리킨다. 따라서 ‘증거궤’는 십계명 돌판을 넣어둔 상자, 곧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리킨다. 한편, 이 언약궤는 지성소 안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그 누구도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오직 일년에 단 한번, 대속죄일 때 대제사장이 희생제물의 피를 가지고 이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에도 대제사장은 향연이 충만히 피어 올라 언약궤를 덮을 때까지 옆 걸음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나올 때는 언약궤에 등 쪽이 노출되지 않도록 뒷걸음질로 나왔다고 한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I, p.506).

 

16:14 속죄소 동쪽. 성막의 입구가 동쪽에 있으므로, 속죄소 동쪽은 곧 속죄소 전면을 가리킨다(Keil). 그러나 15절에 ‘속죄소 위’란 말이 이곳과 동일한 곳으로 볼 때 보다 정확하게는 ‘속죄소 정면 위쪽’(RSV, on the front of the mercy seat)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속죄소 앞에. 곧 속죄소에서 성소 쪽으로 향한 지성소 바닥을 말한다. 결국 속죄소 위와 앞쪽에 피를 뿌린 것은 (1) 하나님의 공의는 인간의 죄에 대하여 반드시 피를 요구하신다는 사실과 (2) 따라서 오직 피로써만 죄인의 속죄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히 9:22).

일곱 번 뿌릴 것이며. 피를 일곱 번 뿌린 것은 피로 인한 속죄의 완전성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장차 ‘단 한번 모든 것을 위하여 완전히’ 뿌려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예표한다(히 7:26, 9:12).

 

16:15 속죄소 위. 14절 주석 참조. 한편 이처럼 법궤의 정면 위에 피를 뿌리는 것은 곧 하나님의 절대 공의는 반드시 피로써 만족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속죄소 앞. 속죄소와 휘장사이의 지성소 바닥을 의미한다. 이처럼 지성소 바닥에 피를 뿌리는 것은 지성소 전체가 성결의 장소임을 보여 준다.

 

16:16 회막을 위하여. 이는 단지 문자적으로 회막만이 아니라 지성소와 성소로 되어있는 성막 본체 및 성막 제사에 사용되는 모든 기구들을 1년에 한번 피로써 정결케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하는 이유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장소와 기구인 성막과 성물들이 이스라엘 진영 안에 거하는 백성들이 알고 지은 죄 혹은 모르고 지은 죄 등으로 인해 부정해졌기 때문이다.

 

16:17 누구든지 회막에 있지 못할 것이며. 대제사장이 지성소에서 속죄일 행사를 거행할 때 성소 뜰에 조차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였다. 이는 죄를 속하는 의식이 오직 중보자만을 통하여 거룩하게 이루어져야 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 세상에서 오직 한 분, 참된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참중보자가 되어 인류의 죄악을 온전히 속죄하실 수 있음을 예표한다.

 

16:18 제단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 대제사장이 지성소에서 제사를 마치고 나와서 성막뜰에 있는 번제단의 네 귀퉁이 뿔에 피를 바르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는 지성소 안에 있는 것으로부터 성막 뜰에 있는 것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 구별된 모든 것들은 죄로부터 구별된 성결한 것이어야 함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모든 삶의 근거와 목적으로 삼는 성도의 일상 생활 역시 죄로부터 구별되어 거룩해야 함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이다(롬 12:1, 2).

 

16:19 없음.

 

16:20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 이 표현은 성막 전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곧 법궤가 있는 지성소(the Holy of Holies)와 떡상, 분향단, 등잔대가 있는 성소(the Holy Place), 그리고 제일 바깥의 물두멍과 번제단이 있는 성막 뜰(the court of tabernacle)을 가리킨다.

살아 있는 염소. 이스라엘 모든 회중의 속죄를 위해 준비한 두 마리의 염소 중 아사셀을 위해 제비 뽑아 남겨둔 그 염소(scapegoat)를 가리킨다(8-10절).

 

16:21 두 손으로 … 머리에 안수하여. 이것은 구약 시대 시행된 일반적 양식의 안수이다. 안수는 축복을 빌기 위해(창 48:14), 또는 병을 고치기 위한 목적(막 1:41)으로, 그리고 성별의 표시(민 8:10)로 시행되었다(출 29:1-37). 여기서는 제물의 안수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데, 이러한 제물의 안수는 일반적으로 죄의 고백과 병행되어 행해졌다. 여기서는 곧 대제사장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스라엘 회중의 범죄를 염소에게 전가시킨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한편 특별히 여기서 ‘두 손으로’ 안수한 것이 강조된 것은 일반적인 속죄제와는 달리(4:4) 전 민족을 대상으로 하였기 때문인 듯하다. 안수에 대한 추가적 설명은 레 24:14의 ‘손을 그의 머리에 얹게 하고’ 주석을 참고하라.

모든 불의와 … 모든 죄를 아뢰고. 16:10 주석 하반부를 참조하라. 또한 속죄제와 관련된 자복에 대한 설명은 레 5:5의 주석을 참고하라.

미리 정한 사람.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이 사람은 생리적으로 이스라엘인 된 자가 아니라, 본래는 이방인이었던 자라야 했다고 한다.

 

16:22 염소가 … 불의를 지고. 여기서 불의(히, 아온)는 ‘구부러진’, ‘빗나간’이란 동사 ‘아와’에서 파생된 말로 곧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분리시키는 모든 범죄를 총칭한 것이다.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 놓을지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불의와 죄를 담당한 염소가 다시 장막에 돌아오거나 혹은 인간에게 잡혀 살아나는 일이 없도록 조치한 것이다. 성경 기록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후대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염소를 끌고간 그 사람이 그 염소를 절벽 아래로 밀어뜨렸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유대인의 경전인 탈무드의 미쉬나(Mishnah, Jomavi. 6)에는 그 염소가 광야의 바위에 거꾸로 떨어져 처참하게 죽은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Keil & Delitzsch). 여기에는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렘 50:20)라는 ‘죄의 도말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16:23 아론은 회막에 들어가서. 즉 아사셀 염소를 광야로 보내는 일을 주관한 후 다시 성소뜰로 들어온 것을 가리킨다. 이때 이곳에는 일반 백성은 물론 제사장들도 없었다(17절).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 입었던 세마포 옷.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이때 벗어놓은 이 옷은 그 후 아론이나 다른 어느 제사장에 의해서도 결코 다시 입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대신 매년 속죄일(7월 10일)에 쓰여질 이 세마포 옷은 그 때마다 새로 지어 입었다고 한다(Matthew Henry).

 

16:24 거룩한 곳. 즉 회막 뜰을 가리키는데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번제단과 성소 중간에 위치한 물두멍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

자기 옷을 입고. 속죄일 날 지성소 안으로 들어갈 때 입었던 세마포 옷을 벗고, 대제사장이 평소 성전에서 봉사할 때 입던 에봇 옷으로 갈아 입으라는 의미이다.

번제. [히, 올라] 자원해서 드리는 제사로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온전한 헌신과 희생을 상징하는 제사이다. 따라서 이 번제는 이제 속죄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드렸다.

속죄하고. 16:11 주석 참조.

 

16:25 기름을 … 불사를 것이요. ‘속죄제 희생물의 기름’은 제사장의 속죄 희생물인 수송아지(6절)와 백성들의 속죄 희생물인 숫염소(15절)에게서 취한 기름(fat) 부분을 가리킨다(4:8, 9). 대제사장 아론은 일반 희생제물을 드리는 바와 같이 제물의 가장 좋은 부분인 이 기름(3:3, 4)을 이미 번제물이 타고 있는 단 위에 올려 불살랐다.

 

16:26 26-28절. 죄악과 접함으로써 부정을 당한 자들에 대한 정결 규례이다. 즉 속죄제로 바쳐진 염소 고기와 광야로 보내진 이사셀을 위한 염소, 이 둘과 가까이 한 자들은 그들 역시 모두 죄악의 오염으로 인해 더럽혀졌다. 그러므로 이들은 옷을 빨고 몸을 씻는 정결 의식을 행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 거룩한 이스라엘 진(陣) 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11:25).

 

16:27 피를 성소로 들여다가 속죄하였은즉. 속죄제를 드릴 때, 그 희생제물의 피가 성소 혹은 지성소 안으로 들여진 그 제물의 고기는 그 누구도 먹을 수 없었고, 기름기 부분은 번제단 위에서, 나머지는 오직 진밖 정결한 곳(4:12)에서 온전히 불살라야 했다(6:30).

불사를 것이요. [히, 사르푸] 이 말은 제물을 태워 그 냄새 나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콰타르’와는(25절) 달리, 고기를 완전히 태워 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는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는 달리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사용되는 말이다(13:52).

 

16:28 없음.

 

16:29 일곱째 달 곧 그 달 십일. 7월은 히브리 종교 월력으로 ‘에다님 월’이며 바벨론 포로 이후에는 ‘티스리 월’로 불려졌다. 한편 히브리 민간 월력으로는 이 달이 정월(1월)에 해당되는데, 그런 만큼 이 달에는 각종 절기가 많았다. 곧 1일에는 ‘나팔절’이 있었고, 10일에는 ‘속죄일’이, 그리고 15-21에는 ‘장막절’(초막절)이 있었다.

스스로 괴롭게 하고. 후일 반복되는 속죄일 규례(23:26-32)에 의하면, 구체적으로 그 달 9일 저녁부터 다음날 10일 저녁까지 만 하루를 금식해야 했다(23:32).

본토인. ‘이방인’과 상호 대치되는 개념으로 민족적, 종교적, 혈통적으로 본래부터 이스라엘에 속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한다.

거류민. [히, 게르]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외국인 중에서 이스라엘의 관습 및 종교를 받아 들일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활에 동화된 자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들은 완전한 ‘이방인’을 뜻하는 히브리어 ‘노크리’와는 다르다.

 

16:30 이 날에 … 속죄하여. 라이트풋(Lightfoot)박사는, 바로 이 날(7월 10일)이 모세가 금송아지 사건으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그 확약의 증거로 새로운 십계명 두 돌판을 수여받은 후 빛나는 얼굴로 시내 산을 마지막 내려온 바로 그날(출 34:29)이라고 추정한다(Matthew Henry’s Commentary).

모든 죄에서 … 정결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지 중이나 무의식 중에 허물을 범하고 미처 속죄하지 못한 모든 죄악을 이 속죄일 날 속죄일 규례를 통해 사하신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편, 구약의 속죄 제도는 그 자체로는 불완전하여 실제로 죄를 제거하거나 없앨 수 없었다(히 10:1-4).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히 이루실 구속 사역을 미리 바라보시고(히 9:12), 그 보혈의 피에 근거하여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결하다고 여겨 주시는 것이다(히 11:1, 4, 계 13:8).

 

16:31 안식일 중의 안식일.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샤바트 샤바톤’은 ‘안식의 안식일’이란 뜻인데, 23:32에는 ‘쉴 안식일’로 번역되어 있다. 이것은 안식일을 보다 강조한 표현인데 곧 죄를 속죄하는 속죄일에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쉬면서 자기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며 스스로 괴롭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날은 ‘특별한 안식일’로서 육체적 휴식이 강조되는 일반 안식일과는 달리 죄의 각성과 영적 회개에 전심 전력해야 하는 날이다.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구체적으로는 금식하면서 회개하라는 뜻이다(23:32). 그러나 이 말은 단순히 육체적으로만 금욕과 고행을 실천하라는 말이 하니라, 죄에 대한 각성과 회개하는 일에 전심 전력을 기울여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힘쓰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괴롭게 할지니’의 기본 동사 ‘아나’는 ‘억누르다’(depress), ‘비천하게 되다’(humble), ‘복종하다’(submit) 등의 뜻을 갖고 있다.

 

16:32 32-33절.이 부분은 아론의 뒤를 이어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모든 자들 역시 속죄일 규례를 그 법도대로 반드시 지킬 것을 명령한 부분이다.

위임. [히, 예말레 에트-야도] 원뜻은 ‘손을 가득 채우다’이다. 따라서 제사장으로 기름 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곧 손에 예물을 가득 들고 하나님께 나갈 자로 구별되는 것을 의미한다.

 

16:33 없음.

 

16:34 일 년에 한 번 속죄할 것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죄를 속하기 위해 일반 속죄제(4:1-5:13) 외에도 대제사장은 일 년 일 차, 곧 유대 종교력 7월 10일에 거국적으로 속죄제를 치러야 했다. 이것은 ‘속죄일’(the Day of Atonement) 규례의 귀중한 의미를 부각시키는 일인 동시에, 반면 매년 이처럼 ‘속죄일’ 규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은 그 규례의 불완전성을 시사한다(Keil). 그러므로 구약 시대 이 속죄일 규례는 신약 시대 ‘십자가 규례’에 대한 모형이요 그림자였다(히 9:7-12, 23-26).

아론이 … 행하니라. 아론은 모세를 통해 간접적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순종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이처럼 다른 사람을 통하여 전달될 수 있으니 이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속죄일 규례가 비록 복잡하고 까다롭다 할지라도 아론이 그대로 모두 행한 것은 제사장된 자의 행할 마땅한 의무요 도리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된 성도들도(벧전 2:9) 생활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주의 뜻을 바로 실행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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