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주석, 레위기 0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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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1-7절. 속건제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드려졌다. (1)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부지중에 범죄한 경우(5:15-16), (2) 이웃과 관련하여 여호와의 계명을 어겼을 경우(5:17-19), (3) 인간 상호간에 범죄했을 경우(6:1-7) 등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세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속건제에 관한 규례이다.

 

6:2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하여. 이 말은 속건제의 대상 중 하나인 이웃에 대한 모든 범죄(1-7절)가 궁극적으로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한 데서 생기고 있음을 밝혀주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이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을 때 그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에게도 신실하지 못하여 쉽게 범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범죄는 곧 하나님께 대한 범죄와 일맥상통한다(Matthew Henry, The Preacher’s Complete Homiletic Commentary).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은 결코 별개의 계명이 아니라, 밀접히 연관된 계명으로서 모든 율법의 핵심을 이루는 2대 정신이다(마 22:36-40).

맡긴 물건이나. 은행이나 보험 제도를 갖추고 있지 못했던 고대사회에서는 장기간 출타시 귀중한 물품을 이웃에게 위탁하는 관습이 있었다. 이때 남의 물건을 맡은 자는 성실히 그 책임을 다해야했다. 그런데 만일 남의 물건을 맡은 자가 나중에 거짓말로 그 사실을 부인할 경우, 그것은 그에게 죄가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만일 맡은 물건이 도적을 당했을 경우, 위탁자는 그 정황 여하에 따라 자신의 책임유무를 재판장 앞에서 엄격히 따져, 면제가 되기도 하고 혹은 배상의 책임을 지기도 했다(출 22:7-13).

전당물. 이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수멧야드’는 곧 ‘서약이나 맹세의 증거로 준 담보물’을 뜻한다. 따라서 이러한 남의 담보물을 마치 자기 소유인 양 타인에게 마음대로 처분하는 행위는 죄가 된다는 의미이다. 제임스왕역(KJV)은 ‘친분이나 우정을 속여 물건을 횡령하는 것’이란 뜻으로 번역하고 있다.

착취하고도. ‘착취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솩’은 ‘압제하다’, ‘사기치다’, ‘협박하다’란 뜻이다. 즉 폭력과 사기 등으로 이웃을 협박하여 소유물을 빼앗는 행위를 가리킨다(신 24:14, 호 12:7, 욥 24:2).

 

6:3 남의 잃은 물건을 줍고도. 즉 가축이나 의복 등 이웃이 잃어버린 물건을 얻게 된 자는 반드시 그것을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했다(신 22:1-3). 만일 주인이 멀리 있거나 혹은 주인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에는 주인을 찾을 때까지 그 물건을 소중히 보관해야했다. 심지어 잃은 물건을 얻은 자는 그 얻은 물건이 비록 원수의 것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에게 돌려주어야 할 책임이 있었다(출 23:4). 이처럼 모세 율법이 이러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까지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곧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법을 따라 한 점 흠 없이 거룩하게 살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거짓 맹세. 구약 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최종 맹세시에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곧 모든 맹세의 증인이었다.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사실을 거짓으로 바꾸어 맹세할 경우, 그것은 곧 하나님을 거짓 증인으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욕되게 하는 행위로써 여호와께 범죄가 되었다.

이 모든 일. 곧 앞서 열거되었던 다섯 가지의 범죄를 가리킨다. 그것은 (1) 남의 물건을 맡고도 그 위탁(委託) 사실을 부인하는 행위, (2) 친구나 이웃의 담보물을 횡령하고도 그 사실을 부인하는 행위, (3) 강도질 하고도 그러한 사실을 부인하는 행위, (4) 남의 물건을 사취 혹은 강탈하고도 그 사실을 부인하는 행위, (5) 이웃의 잃어버린 물건을 얻고서도 그 사실을 부정하는 행위 등이다. 여기서 볼 때 모세 율법은 남의 물건을 횡령하거나 사취하는 행위 그 자체에 범죄의 비중을 크게 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그 사실을 부인하는 죄, 곧 하나님께 거짓말 하는 죄에 더 큰 범죄의 비중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잘못을 회개치 않는 간사하고 완고한 마음을 미워하고 정죄하는 것이지, 결코 자기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자복하는 심령을 멸시하시지는 않으신다(시 34:18, 51:17, 사 57:15).

 

6:4 이는 죄를 범하였고. 앞서 열거된 다섯 가지 죄는 이웃의 권리나 재산을 침해한 죄에 거짓 맹세를 한 죄가 첨가되어 이웃과 하나님께 이중 범죄한 죄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범죄는 먼저 이웃에게 물질적인 보상을 해야 했고, 그런 후에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려 죄 용서함을 받아야 했다. 물론 여기서 이러한 죄들이 손해 배상과 속건제를 통해 용서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신실치 못한 죄가 믿음이나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저질러진 범죄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6:5 그 거짓 맹세한 모든 물건. 이는 이웃의 물건을 횡령하거나 탈취하고서도 결코 그러한 일이 없다고 거짓 맹세함으로써, 그것을 자신의 소유물로 삼고 있는 부당한 물건을 가리킨다.

본래 물건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이웃의 물건을 거짓 맹세로 부당하게 취한 자가 죄 용서함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그 물건을 주인에게 성실히 돌려주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이때 이웃의 물건을 횡령, 탈취 등으로 취한 자는 자신이 취한 물건, 즉 본래 물건 뿐만 아니라 그동안 피해자가 겪었을 손실이나 어려움 등을 고려하여 물건의 가치에 덧붙여 손해 배상격으로 1/5(20%)을 더 가산하여 갚아야 했다. 이러한 규정을 통하여 우리가 깨닫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진정한 회개는 단지 말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써 그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마 3:8). 이런 의미에서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누구든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려는 자는 먼저 형제와 화해한 후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가르치셨다(마 5:23, 24). (2) 본래 물건에 오분의 일을 덧붙여 갚는 행위는, 진정한 회개가 단지 죄 짓기 이전 상태로의 환원이 아니라 그 이상의 신실한 생활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삭개오의 경우, 그는 예수와의 만남을 통해 진정으로 회개한 후에 그 회개의 표시로 만일 자신이 속여 빼앗은 물건이 있을때는 배로 갚겠다고 고백했음을 볼 수 있다(눅 19:8).

죄가 드러나는 날에. 즉 남의 물건을 횡령하거나 약탈한 자가 자신의 범죄를 사함받기 위해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리는 날에.

 

6:6 또 그 속건제물을 여호와께 가져갈지니. 범죄자는 먼저 피해를 당한 이웃에게 본래 물건과 더불어 1/5의 벌과금을 되돌려 주면서 잘못을 빌고 용서를 구하는 등 성실히 사람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했다. 그 후에 비로소 그는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릴 자격을 회복했다. 왜냐하면 남의 물건을 횡령 혹은 약탈한 자가 이웃에 대해 용서함 받지 않고 그 물건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범죄자의 부당한 예물을 받는 분으로 간주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한편 이웃에게 용서함 받은 범죄자는 이어 반드시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려야 했다. 이는 사람에 대한 범죄는 그 사람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께 동시에 죄를 범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거짓 맹세할 때, 하나님을 그 거짓 맹세의 증인으로 채택한 죄를 하나님께 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죄 용서는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림으로써 완성되었다. 물론 여기서 속건제물이 된 흠 없는 숫양은 장차 우리 죄인들의 영원한 속죄제물이 되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요 예표이다(사 53:10, 골 2:13).

지정한 가치대로. 속건제물로 합당하게 쓰여질 수 있었던 숫양은 최소한 두서너 세겔 이상 나가는 숫양이어야 했다(5:15). 따라서 제사장은 시세에 따라 이러한 가치를 잘 판별해야 했다. 제사장 위임식 전에 이 일은 모세가 했지만, 위임식 후 이것은 제사장들의 고유 임무가 되었다.

흠 없는 숫양을 속건제물을 위하여. 속죄제물의 경우에는 지위나 빈부의 차이에 따라 최고 흠 없는 수송아지로부터 최저 고운 가루까지도 제물로 허락되었으나, 속건제물의 경우에는 오직 ‘흠 없는 숫양’만이 희생제물로 허락되었다.

 

6:7 속죄한즉. 4:20 주석 참조.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받으리라. 물론 이 말 속에는 속건제물을 드리는 범죄자가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닫고 이웃과 하나님께 충심으로 회개한다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만일 범죄자가 절차를 따라 이웃과 하나님께 자신의 책임 이행을 다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마음에 없는 형식에 불과할 때 그는 진정 용서 받을 수 없었다. 결코 구약의 제사 규례가 외형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 내적이고 영적인 면에 그 근본 정신을 두고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모세의 가르침이자, 선지자들의 경고였다(사 1:10-20, 호 6:6, 암 5:22). 한편 이 말은 또한 장차 인류의 속건제물이 되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온전성’을 암시한다. 즉 속건제물로서 그리스도는 그 어떠한 범죄의 양이나 질보다 오히려 뛰어나며, 그 모든 죄악을 온전히 속하기에 결코 부족함이 없다는 사설을 암시한다. 죄인들을 위해 이처럼 크신 제물이 있기에, 오늘날 우리 같은 죄인들도 그 제물에 의지하여 능히 속죄함 받을수 있게 된 것이다(히 9:12-14).

 

6:8 8-13절. 이 부분은 번제에 대한 반복된 규정이다. 앞서 번제에 대하여 언급한 1:1-17은 제사의 원칙을 말한 것이었으나 여기서는 제사의 절차로서 방법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전자는 모세에게 계시된 것이기 때문이고, 후자는 아론이 행할 것을 강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부분은 매일 드리는 상번제(常燔祭)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6:9 아론과 그 자손에게 명하여 이르라. 이 말은 하나님께서 앞서 같은 제사 규례에 대해 모세에게 지시할 때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1:2, 4:2)는 말과 대조된다. 이것은 앞서 지시된 규례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준수해야할 제사 규례이고, 본 절부터 지시되는 규례들은 직접 제사를 담당할 제사장들이 삼가 준수해야 할 규례들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 각 제사를 드릴 때, 제물 고르는 일, 제물에 안수하는 일 등은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이었지만 직접 제사드리는 일 및 번제단의 불을 관리하는 일 등은 제사장들이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같은 제사에 대하여 이처럼 대상에 따라 다시 언급하고 있다.

번제물은 아침까지 제단 위에 있는 석쇠 위에 두고. 여기서 아침까지 두는 번제물은 전날 해 질 무렵에 드린 제물 곧 상번제물(常燔祭物)를 가리킨다. ‘상번제’는 ‘늘 드리는 번제’라고도 하는데(출 29:42) 이는 하나님께 대한 끊임없는 충성과 헌신의 상징으로서 전 이스라엘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드리는 번제를 가리킨다. 한편, 히브리인들의 시간 개념은 저녁 해질 무렵을 한날의 시작으로 삼는다(Lange). 따라서 상번제는 저녁에 한 마리의 양을 드려 아침까지 그 번제물을 타도록 하고, 또 아침에 한 마리를 더 드려 저녁 무렵까지 타도록 했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희생제물은 이처럼 항상 번제단 석쇠 위에서 타고 있는 번제물 위에 드려졌다. 그리고 특별히 안식일과 월삭과 종교적 축제일에는 ‘특별 번제’로서 상번제 이외에 더 많은 수의 어린 양이 드려졌다(민 28:9-31). 한편 본 절 중 ‘석쇠’(모케드)란 말은 ‘불타다’란 뜻의 ‘야카드’에서 파생된 말로 곧 번제물을 올려놓는 기구를 말한다.

꺼지지 않게 할 것이요. 이것은 번제물이 매일 조석(朝夕)으로 연이어계속 태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상징적으로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헌신이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6:10 세마포 긴 옷. 구약 시대에 제사장들이 입었던 ‘세마포’는 일반적으로 바둑판 모양으로 짜여진 흰색의 천을 말하는데, 세마포 긴 옷(robe)은 전신을 덮을 수 있도록 통으로 만들어진 긴 속옷을 가리킨다(Kalisch). 공동번역은 ‘모시 속두루마기’로 번역하였다. 이처럼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이 입었던 흰 세마포 옷은 장차 영원한 중보자로 오실 그리스도의 거룩함과 성결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던 것이었다.

세마포 속바지. ‘속바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크네사임’은 ‘함께 모이다’란 뜻의 ‘카남’에서 파생된 말로, 곧 제사장들이 속에 입는 홑 바지를 가리킨다. 아마 이 말은 제사장들이 이 옷을 입고 서 있을때 두 다리가 함께 모아지는 모습에서 유래된 듯하다. 공동번역은 이 말을 ‘모시 잠방이’란 말로 번역했다.

단 위에서 불태운 번제의 재. 제사장이 제단 위에서 불태운 번제물의 재(ash)를 처리하는 방법 및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먼저 제사장은 제사장의 공식 복장 즉 세마포 긴옷과 속바지를 입은 다음, 제단 곁으로 가서 번제물의 재를 긁어 모은다. (2) 긁어 모은 재를 재 버리는 곳에 버리기 전, 그것을 일단 제단 곁에 잠시 두고 제사장은 공식 복장을 벗고 평상 복장으로 갈아 입는다. 왜냐하면 어떠한 경우에도 제사장은 제사장의 공식 복장을 입은 채로는 진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3) 그런 후 제사장은 긁어 모은 재를 제단 동편 진(陣) 밖 재 버리는 곳으로 가지고 가 그곳에다 버린다. (4) 그 후에 제사장은 다시 나무를 가져다가 제단 위에 벌여놓고, 그 위에 또 다른 번제물을 올려 놓는다.

제단 곁에 두고. 즉 번제단 동편 재 버리는 곳에다 잠시 두는 것을 말한다(1:16).

 

6:11 그 옷을 벗고 다른 옷을 입고. 즉 제사장의 공식 복장을 벗고 평상 복장을 입으라는 뜻이다. 여기서 제사장이 제사장의 공식 복장을 입은 채 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이유는, 성막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하는데 입도록 지음 받은 거룩한 옷(출 28:4)이 진 밖 부정한 것과 접촉하여 더러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진영 바깥 정결한 곳. 4:12 주석을 참조하라.

 

6:12 제단 위에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이 상번제 규례 속에 들어있는 법 정신은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헌신과 충성이 항상 뜨겁게 타오르도록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비록 오늘날에는 이러한 상번제 규례가 폐기되었지만, 그 법 정신만은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승화되어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날마다 쳐 복종시켜(고전 9:27)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요구하고 있다.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 태우고. 상번제는 저녁에 한 마리의 양을 드려아침까지 태우고, 또 아침에 한 마리의 또 다른 양으로써 저녁까지 태움으로써, 항상 번제단 위에 번제물이 끊이지 않도록 해야 했다. 이때 그 번제물(양)을 태울 나무도 양과 더불어 새로 갈아야 했다. 그런데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번제물을 태울 나무의 모양이 심히 뒤틀렸다거나, 벌레가 먹은 나무가 있다면 그러한 것들은 골라내었다고 한다(Lange).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서 불사를지며. 만일 화목제를 드릴 경우 그 화목제물의 기름(fat) 부위를 항시 불타고 있는 상번제물 위에 올려놓아 함께 불사르라는 명령이다. 제사 규례상 화목제물 뿐만 아니라, 모든 다른 제사 제물들도 화제(火祭)로 드릴 경우에는 언제나 이 상번제물과 더불어 드려졌다.

 

6:13 불은 …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번제단 위에서 끊임없이 타오르는 불은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끊임없는 헌신과 충성, 그리고 예배를 나타내는 상징과 표징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번제단 위에서 끊임없이 타오르는 그 불을 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헌신과 충성을 확인하시며, 또한 그 언약 백성을 향해 당신의 은총을 베푸시는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처럼 귀한 언약 관계를 상징하고 있는 번제단의 불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잘 보존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광야 여행 중 이동할 때는 특별히 불 담는 그릇을 만들어 그곳에 번제단의 불을 담아 이동하였다(민 4:13-14). 한편 유대 전승에 의하면, 번제단 위의 불은 바벨론 포로시까지는 꺼지지 않고 보존되었다고 한다(Matthew Henry).

 

6:14 여기서는 2:1-16에 언급된 소제 규례를 다시 요약하여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자세한 내용은 2:1-16의 관련 주석 부분을 참조하라.

아론의 자손.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의 자격 조건으로서 무엇보다 혈통이 중요시 되었다. 즉 제사장이 될 수 있는 자는 이스라엘 중 (1) 먼저 레위 지파에 속한 자라야 했으며, (2) 레위 지파 중에서도 아론의 자손이어야 했고, (3) 아론의 자손 중에서도 육체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자라야 했다.

 

6:15 고운 가루 한 움큼과 기름. 즉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은 것(2:1) ‘한 움큼’(handful)이란 뜻이다. 자세한 내용은 2:2 주석을 참조하라.

소제물 위의 유향을 다 가져다가. 소제물(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은 것)에 유향을 첨가하여(2:1)란 뜻이다. 자세한 내용은 2:1 주석을 참조하라.

기념물. 소제물 중 여호와의 몫으로 구분되어 번제단 위에서 화제로 불살라지는 제물을 가리킨다(2:2).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 1:9 주석 참조.

 

6:16 그 나머지. 소제물 중 기념물로 취해져 제단 위에서 화제로 드려지고 남은 ‘지극히 거룩한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기념물로 취해져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양은 단지 한 움큼 뿐이었다(2:2).

아론과 그의 자손이 먹되. 소제물 중 기념물로 드리고 남은 부분은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간주되어(2:3), 규례를 따라 신중히 처리해야 했다. 즉 그것은 제사장 가족의 남자들만이 먹어야 했는데, 오직 거룩한 성막 내 뜰에서 먹어야 했다. 비록 그것이 제사장의 몫으로 주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하나님께 바쳐진 거룩한 제물이기 때문에 함부로 다루어지는 것이 엄격히 금지 되었다.

누룩을 넣지 말고. 소제 예물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누룩을 넣지 말아야했다(2:1). 반면 소금은 반드시 넣어야 했다(2:11). 그러나 화목제 감사 예물로서는 누룩이 든 유교병이 사용될 수 있었다. 한편 ‘누룩’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메츠’는 ‘날카롭게 쏘다’, ‘흥분시키다’란 뜻이다. 따라서 이러한 속성으로 인해, 성경에서 누룩은 종종 죄나 거짓 교훈 및 부패 등을 상징한다(고전 5:7, 8, 갈 5:9). 그러므로 종교 의식상, 누룩은 그 사용이 많이 제한되었다.

거룩한 곳 회막 뜰에서 먹을지니라. 회막 뜰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만나는 곳, 즉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이 미치는 장소로서 거룩한 곳이었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친 소제물 중 하나님께 기념물로 드려지고 남은 성물(聖物)을 오직 이 ‘회막 뜰에서만’ 먹어야 했다. 이것은 제사장들이 그 성물을 먹는 행위도 제사 내용에 포함되어 있으며, 먹는 행위 자체도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는 행위임을 나타내 준다. 한편 여기서 제사장들이 회막 뜰에서 먹을 수 있었던 소제물은 일반인이 드리는 소제물의 경우로 제한하였다. 따라서 제사장 위임식 때 제사장이 드리는 소제물의 경우(23절)에는 제사장의 몫이 없었으므로 이 규례가 적용되지 않았다.

 

6:17 누룩을 넣어 굽지 맡라. 여기서 ‘누룩’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메츠’의 기본 의미는 ‘흥분시키다’, ‘날카롭게 쏘다’란 뜻이다. 따라서 누룩은 그 속성상 성경에서 종종 전염성이 강한 ‘죄’나 ‘거짓 교훈’ 등을 상징한다(고전 5:6, 갈 5:9). 이런 뜻에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번제 때나 절기 때 사용하는 빵에는 누룩을 넣지 말라고 지시하셨다.

내가 그들에게 주어. 곧 성막에서 봉사하는 제사장들의 몫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는 자들에게 때와 필요를 따라 적절하게 합당한 은혜로 들보아 주신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신약 시대 그리스도께서도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나머지 필요한 모든 육체적 소용은 하나님께서 능히 알아 채워 주신다는 진리를 설파하셨다(마 6:33).

소득이 되게 하는 것이라. 제사장들은 성막에서 오직 하나님의 일만을 돌봐야 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직접적인 생계를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치는 제사 예물 중 일부를 그들의 몫으로 허락하셨다.

속죄제와 속건제 같이 지극히 거룩한즉. 속죄제와 속건제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해 지은 죄를 속함 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로서 이스라엘 백성 중 죄 지은 자는 누구나 드려야 하는 의무제였다. 따라서 그 의식 절차나 분위기가 사뭇 엄격하고 엄숙했다. 반면 소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원하여 드리는 제사였기 때문에, 자칫 속죄제나 속건제에 비해 그 제사나 제사 예물이 가볍게 취급될 우려가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소제 예물도 속죄제나 속건제의 예물에 못지 않게 지극히 거룩한 것임을 강조하여 신중히 다루도록 하셨던 것이다. 한편 ‘지극히 거룩하다’는 의미에 대해서는 2:3 주석을 참조하라.

 

6:18 아론 자손의 남자는 모두 이를 먹을지니. 아론 자손의 남자는 현재 제사장이거나 혹은 앞으로 제사장직을 맡을 자들이었기 때문에, 소제 중 여호와께 드려지고 남은 것 곧 지성물(至聖物)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첫 소산물이나 화목제물 등은 제사장의 아내나 딸들도 먹을수 있었다(Matthew Henry).

대대로 그들의 영원한 소득이 됨이라. 즉 제사 제도가 존속되고, 성막에서 제사장의 임무가 계속 집행되는 한, 여호와께서 제사장에게 주기로 한 그 몫은 변치 않고 그들의 자녀손 대대로 주어질 것이라는 의미이다. 달리 말하면, 이것은 하나님께 헌신하여 오직 성막에서 여호와의 일에만 전념해야 하는 제사장들의 생계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책임지겠다는 뜻이다. 이 원리는 오늘날 영적 제사장 된(벧전 2:9) 우리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義)를 구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의식주 문제를 책임지시겠다고 밝히 말씀하셨던 것이다(마 6:25-34).

이를 만지는 자마다 거룩하리라. 이 말은 지성물을 만지는 자마다 누구든지 거룩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이는 지성물을 만지고 취급하며 먹는 자는 오직 아론 자손의 제사장들 뿐이었기 때문에, 곧 그들이 하나님께 구별된 거룩한 자들로 여겨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만일 일반인이 이러한 지성물을 만질 경우 그는 죽음을 면치 못했다.

 

6:19 여호와께서 … 이르시되. 이 표현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 들거나, 혹은 계시 내용의 성격이 바뀔 때 종종 사용되어지는 관용적 표현이다. 여기서는 일반인이드리는 소제 규례(14-18절)에 이어 제사장이 드리는 소제 규례(19-23절)를 언급하고자 사용되었다.

 

6:20 기름 부음을 받는 날. 이는 곧 아론과 그의 자손이 제사장으로 공식 임명되는 위임식 날을 가리킨다(출 29:1-46). 구약 시대에 왕이나 제사장은 기름부음을 받음으로 공식 임명되었는데, 특별히 제사장 위임식은 7일 동안 거행되었으며(8:1-36), 그 위임식이 끝난 후 곧 기름 부음을 받았다. 따라서 유대 랍비들은 제사장의 소제는 7일간의 위임식이 끝난 후 제8일째 되는날, 즉 제사장이 처음으로 그 임무를 수행하는 바로 그 날에 드렸다고 한다(Keil, Matthew Henry).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 십분의 일 에바는 약 2.3리터 가량 되는 곡물의 양이다. 이 양은 속죄 예물을 위하여 극빈자에게 요구되었던 곡물의 양과 동일하다(5:11). 한편, ‘고운 가루’에 대해서는 2:1 주석을 참조하라.

항상 드리는 소제물로 삼아. 이 말은 항상 드려지는 상번제에 함께 드려지는 소제와 똑같은 방식대로 드리라는 뜻이다. 따라서 제사장은 소제물(십분의 일 에바)을 반분하여, 절반은 아침에 드려지는 상번제와 아울러 드리고, 나머지 절반은 저녁에 드려지는 상번제와 함께 드려야 했다.

 

6:21 철판에 굽고. 철판은 쇠로 만든 큰 남비형 철판(Plate)을 가리킨다. 여기에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부치는 것은 일반 소제물을 만드는 것과 동일하다(2:5).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라.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는 뜻은 여호와께서 당신의 규례를 따라 화제로 정성껏 바쳐지는 소제물의 연기를 기쁘게 여기신다는 뜻이다(1:13, 2:9). 보다 자세한 내용은 1:9 주석의 하반부를 참조하라.

 

6:22 그를 이어 제사장 된 자. 대대로 아론의 자손 중 하나가 선임 대제사장을 이어 기름 부음을 받아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었다. 한편, 아론 사후(死後) 그 뒤를 이어 대제사장 된 자는 그의 셋째 아들 엘르아살이었다(민 20:22-29).

 

6:23 제사장의 모든 소제물은 온전히 불사르고. 일반 백성이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물의 경우, 하나님께 화제로 드린 기념물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제사장들이 회막뜰에서 먹을 수 있었다(16절). 그러나 제사장 위임식 때 제사장이 드리는 소제물의 경우에는 남김없이 불태워 드려야 했다.

 

6:24 24-30절. 속죄제는 제사 절차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제사장과 온 회중을 위한 속죄제이며(4:3-21), 다른 하나는 족장과 평민을 위한 속죄제이다(4:22-35). 이 부분은 이러한 속죄제를 드릴 때, 제사장이 해야 할 여러 가지 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6:25 속죄제의 규례. 본 절에서 30절까지는 특별히 속죄제에서 제사장들이 지켜야할 규례를 그들에게 국한시켜 언급하고 있다. 일반 백성들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속죄 규례 및 속죄제물에 대해서는 4:1-5:13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속죄제 제물은 지극히 거룩하니. 속죄제 희생제물이 대속 제물로서 하나님께 구별되어 바쳐졌다는 의미에서 거룩하다는 뜻이다(민 18:9). 이처럼 여호와께 구별되어 번제단 위에 바쳐진 제물들은 모두 ‘거룩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번제물을 잡는 곳. 즉 번제단 북편 뜰을 가리킨다. 여기서 어떤 이들은, 후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갈보리 산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북단 북쪽’에 있으므로 이것과 연관시키기도 한다(Matthew Henry).

속죄제 제물. 속죄제로 드려야할 제물은 범죄자의 지위에 따라 각기 달랐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4:3 주석의 하반부를 참조하라.

 

6:26 제사장이 그것을 먹되. 속죄제물 중 제사장의 몫이 되어 제사장이 먹을 수 있었던 제물은, 족장과 평민이 드린 속죄제물(숫염소, 암염소, 암양) 중 여러 부위의 기름(fat)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었다. 그러나 제사장과 온 회중이 드린 속죄제물(수송아지)은 온전히 불살라야 했고 제사장이 먹을 수 없었다.

회막 뜰 거룩한 곳에서 먹을 것이며. 6:16 주석의 하반부를 참조하라.

 

6:27 그 고기에 접촉하는 자는 거룩할 것이며. 이 말은 속죄제 희생 고기를 취급하는 자는 오직 아론과 그 아들들로서, 이들은 성소에 속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위해 구별된 자들이기 때문에 곧 거룩한 자들이란 뜻이다(18절).

그 피가 어떤 옷에든지 묻었으면 … 빨 것이요.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은 피 있는 제물의 고기를 다룰 때, 제물의 피가 옷에 묻을 수 있다. 이때 제사 후 제사장은 면밀히 옷을 검사하여 피 묻은 것이 발견되면, 그 피를 성막 내 거룩한 곳에서 말끔히 씻어내야 했다. 그 이유는 (1) 피는 생명을 상징하는 대성물(大聖物)로서 오직 여호와께만 드려져야 했다. 또한 예표적인 의미에서, 이 희생제물의 피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을 상징하는 보혈(寶血)이었다. 따라서 이처럼 귀중한 피를 옷에 묻힌채 그대로 방치한다는 것은 여호와의 거룩성을 훼손시키는 일이 되기 때문에 옷에 묻은 피는 깨끗이 씻음 받아야 했다. (2) 하나님께 구별되어 바쳐진 모든 성물(星物)은 거룩한 곳, 즉 성막을 벗어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성물이 성막 밖으로 나갈 시, 그것이 성막 밖의 부정한 것들과 접촉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거룩성이 파괴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대성물(大聖物)로 간주된 희생제물의 피는 어떤 경우에도 성막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옷에 묻은 피는 깨끗이 씻어져야 했다.

 

6:28 토기에 삶았으면 … 깨뜨릴 것이요. 제사장들은 족장이나 일반 평민이 드린 속죄제물(4:23, 28, 32) 중 여호와께 화제로 드린 기름(fat)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고기는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졌기 때문에 그것을 얼마든지 삶아 먹을 수 있었다. 이때 만일 제사장이 그 고기를 토기에 삶았을 경우, 식사 후 그 토기는 반드시 깨뜨려야 했다. 왜냐하면 토기 그릇은 흡수성(吸水性)이 있으므로 희생제물의 기름기나 냄새가 그 속으로 깊숙이 배어들기 때문에, 만일 그 토기 그릇에 일반 음식물을 담을 경우 하나님의 거룩한 제물이 세상적인 것들과 혼합되어 하나님의 거룩성이 훼손 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Keil, Lange).

유기에 삶았으면 … 닦고 물에 씻을 것이며.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진 제물의 고기를 만일 유기 그릇에 삶아 먹었을 경우, 그 고기 그릇은 토기 그릇처럼 깨뜨리지 않아도 되었다. 왜냐하면 유기 그릇은 토기 그릇과는 달리 흡수성이 없으므로, 철저히 씻는다면 제물의 찌거기나 냄새를 완전히 제거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토기 그릇과 유기 그릇에 관한 규례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은 결코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며. 아울러 하나님의 거룩성은 철저히 그리고 온전히 보존 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신약 시대에 이러한 사상을 반영하고 있는 메시지는 고후 6:14-18로서, 여기서 사도 바울은 성결과 부정, 하나님과 우상, 신자와 비신자, 빛과 어둠의 구별과 분리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구별된 거룩한 백성, 곧 성도의 생활에서도 이처럼 끊을 것은 끊고, 버릴 것은 버림으로써 보다 나은 성화(sanctification)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6:29 제사장인 남자는 모두 그것을 먹을지니. 이들은 현재 제사장이거나 혹 장차 제사장직을 맡을 자들이었기 때문에 지극히 거룩한 ‘성물’(聖物)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속죄제의 희생제물에 비해 보다 화해적인 성격의 제물, 즉 화목제물이나 첫 소산물 등은 제사장의 아내나 딸들도 함께 먹을 수 있었다.

 

6:30 피를 가지고 … 성소에서 속죄하게 한 속죄제 제물의 고기. 여러 제사 중 속죄제는 특이하게도 등급에 따라 제물의 종류나 피 처리 방법이 달랐다. 여기서 등급은 네 등급으로 나뉘어졌는데, 곧 (1) 제사장 (2) 온 회중 (3) 족장 (4) 일반 평민 등이다. 이 등급 중 그 속죄제 희생제물의 피를 가지고 성소(the holy place)에 들어가야 하는 경우는 제사장과 온 회중을 위한 속죄제의 경우이다(4:5, 16). 이때 제사장은 그 희생제물의 피를 성소 내 지성소와 성소를 가르고 있는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리고, 그 휘장 전면에 위치한 향단의 뿔에 발랐다(4:5-7). 한편 이러한 제사장과 온 회중을 위한 속죄제 희생제물의 고기는 족장이나 평민을 위한 속죄제 희생제물의 고기와는 달리, 제사장이 결코 먹을 수 없었고 번제단 위에서나 혹은 진 밖에서 완전히 불살라야 했다. 이러한 규례는 속죄제의 대상이 된 제사장과 온 회중의 죄가 족장이나 평민의 경우와는 달리 그만큼 더 위중(危重)하다는 사실을 강력히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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