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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여호와께서 … 이르시되. 6장 이후 본 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은 ‘하나님이 … 말씀하셨다’라는 문장으로 서두를 장식하고 있다. 이는 출애굽 사건이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4:2 돌이켜. [히, 슈브] ‘뒤로 돌이키다’(turn back), ‘옆으로 틀다’(turn aside)는 뜻으로, 자연스런 회유가 아니라 긴박하고 급작스런 방향 전환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까지 숙곳에서 에담까지 줄곧 행군해 왔던 동북쪽 방향으로부터 갑자기 돌이켜서 다른 방향 즉 남쪽이나 남동쪽 방향으로 행군하도록 하셨다. 이와 같이 갑자기 진로를 바꾸어 이스라엘 백성을 막다른 홍해 길로 인도하신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에담 근방에 있던 애굽의 국경 수비대와 충돌을 피하도록 하기 위함이다(J. Simons). (2) 막다른 지역에 이른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바로로 하여금 그들을 추격하도록 유인하기 위함이다. (3) 그리하여 홍해가 갈라지는 대이적 사건을 경험토록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믿음을, 바로에게는 심판을, 열방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을 밝히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바다와 믹돌 사이의 … 맞은편 바닷가에. 이 구절과 같은 내용의 민 33:7은 ‘에담을 떠나 바알스본 앞 비하히롯으로 돌아가서 믹돌 앞에 진을 치고’ 라고 묘사하고 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담을 떠나 바알스본 앞에 진을 쳤다. 한편 믹돌과 비하히롯은 모두 애굽 비문에는 나와 있는 이름이지만 그 정확한 위치는 아직 판명되지 않았다(L. Wood).

 

14:3 멀리 떠나. [히, 네부킴] ‘당황하여’, ‘혼돈하여’ 라는 뜻이다. 광야에서 길을 잃고 목적없이 이리저리 방황하는 모습을 묘사한 말이다. 그러나 이는 바로가 이해한 이스라엘의 모습일 뿐, 실상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목적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는 길로 당당하게 여행을 하고 있었다.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앞은 바다요, 양 옆은 산이며, 뒤는 사막인 그러한 사면 초가의 상황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를 보고 바로가 오합 지졸인 노예 민족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줄로 오판하여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군대를 몰고 뒤에서 추격해 올 것이라는 뜻이다.

 

14:4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이 말은 원래부터 선한 바로의 마음을 고의로 악하게 만드셨다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 완악해지는 그의 마음을 방임하사 멸망으로 치닫는 그의 고집을 꺾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4:21의 주석을 참고하라.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당신의 대적들을 통해서도 영광을 받으신다. 전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후자는 하나님의 공의를 각각 드러내기 때문이다. 한편 본 장에서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사, 그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추격하게 하심으로써 당신의 전능하심을 드러낼 기회를 만드셨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애굽인들의 어리석은 행동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과 열방 앞에 당신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신 것이다.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여기에서 여호와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란 뜻이다(3:14). 즉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영원히 계시는 완전하고 무궁한 하나님이심을 뜻한다. 또 이 이름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언약 관계를 강조한 이름이다. 즉 여호와인 줄 알게 하겠다는 말 속엔 이스라엘의 출애굽이 그들의 어떤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언약에 따라 행동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은혜의 결과로서, 그처럼 당신께서는 약속을 필히 지키시는 하나님이란 것을 알게 하시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말미암아 당시 많은 신들을 섬긴 애굽 사람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만이 천상 천하에 오직 유일하신 참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셨다.

 

14:5 그 백성이 도망한 사실이 … 알려지매. 아마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후 3일이 지난 뒤, 즉 4일째 되는 날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구절은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것을 이전까지 전혀 몰랐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완전히 출애굽 하지 않고 전날 모세가 요구했던대로 3일간만 나가 있다가 다시 돌아와 종노룻 해주기를 은근히 바랬던 것같다(5:3, 12:31). 그런데 3일이 지난 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행군해 나간다는 보고를 듣자 그의 마음이 급변했던 것이다.

마음이 변하여.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이기심과 교만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가증한 것인지 새삼 느낄 수 있다. 즉 그들은 열 가지 재앙 끝에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이스라엘에게 행한 압제를 풀 수밖에 없었으나, 숨돌릴 만한 여유가 생기자 곧 그 하나님의 무서운 손길을 잊어버리고 또 다시 이스라엘을 노예화 하고자 혈안이 되었다.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고. 60만(부녀와 아이, 노인을 제외한 장정)의 노동력을 상실했다는 것은 애굽인들에게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그 노동력의 유익에 대한 그들의 애착과 탐욕이 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놓아 보낸 것을 곧 후회하게 하였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 ‘놓아 보내었다’라는 말의 허구성에 유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죽지 못하여 할 수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압제를 풀었을 뿐이지, 자기들이 선심을 베풀어 놓아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60만 노동력에 대한 바로의 탐욕과 또한 이스라엘의 진행로가 막다른 골목으로 향하고 있다는 정보로 인해 바로는 곧 바로 추격대를 조직하였다.

 

14:6 병거를 갖추고. 병거(兵車)란 말이 끄는 바퀴달린 수레를 말한다. 이 당시의 병거는 마모가 심한 부위의 청동, 철을 제외하고는 신속한 이동을 위해 나무와 가죽으로 만들어졌으며 뒷 부분은 개방되어 있고, 앞면과 양면을 둘러 약 80cm 가량의 반원형 보호벽이 쳐져 있었다고 한다. 주로 2인용, 4인용이 있었으며 그리스, 앗시리아 때의 전차와 그 모습과 용도가 비슷했다고 한다. 당시 바로는 애굽 제19왕조의 아멘호텝 2세(Amenhotep II, B.C. 1448-1424)로서 그는 병거와 마병의 대 부대를 거느리고 있었다.

 

14:7 선발된 병거. 많은 병거 중 특별히 선발된 일종의 정예화된 특공대이다. B.C. 926년 유다 왕 르호보암 당시(대하 12:1-3) 애굽 통치자 시삭(Sishak)이 병거 1,200승을 거느리고 멀리 예루살렘까지 원정간 사실을 볼 때, 이때의 병거 600승 정도는 쉽게 소집할 수 있었을 것이다.

 

14:8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4:21의 주석을 보라.

담대히. [히, 베야드 라마] 문자적 의미는 ‘높은 손으로’ 인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적을 베푸시는 ‘여호와의 손’을 따라(사 26:11) 출애굽 했음을 뜻한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할 때에 도망하는 자들처럼 초라하거나 비겁하게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의하여 담대하고도 자신만만한 태도로 나왔었다.

 

14:9 바로의 말들, 병거들. 원문에는 ‘모든’(콜)이라는 단어가 이 말 앞에 나온다. 이것은 바로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였음을 뜻한다.

그 장막 친 데에 미치리라. 바로와 그의 군대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같이 추격해와 드디어 그들에게 미칠 수 있었다. 이때는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지 약 6일쯤 되는 것 같다. 그 근거는 유대인의 전승에 따르면 홍해를 건넌 것이 니산(아빕)월 21일 밤이라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한편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오지 않고 계속 가나안을 향해 나아간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4일 후였기 때문에(5절) 그가 추적하여 따라잡은 날은 불과 2일 밖에 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4:10 심히 두려워하여. 여기서 ‘심히’(메오드)란 문자적으로 ‘열렬한’, ‘더 이상 비교할 것이 없을 정도로 큰’이란 뜻이다. 따라서 이때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얼마나 큰 공포에 빠졌는지를 짐작케 한다. 한편 그들이 그토록 두려워한 데는 그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 첫째, 비록 숫자는 많지만 그들 가운데에는 싸울 수 있는 장정보다 보호받아야 할 아녀자와 노인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둘째, 싸울 수 있는 장비나 전력면에서 상대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셋째, 한때 자기들을 부리던 애굽인들이 창, 칼, 갑옷, 투구, 방패, 전차 등 완전한 전투 장비를 갖춘 채 뽀얗게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자 오래된 노예 근성으로 말미암아 금방 사기가 저하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은 10대 재앙을 애굽 땅위에 베풀어 그들로 하여금 출애굽을 가능케 하셨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극심한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여호와께 부르짖고. 여기서의 호소는 참믿음에 근거한 기도가 아니라, 위경에 처한 자들이 자연 발생적으로 부르짖는 외침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이 곧이어 모세를 원망하여 여호와의 출애굽 사역을 불평한 데서 확인할 수 있다.

 

14:11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시 애굽에는 각 성읍 주변에 ‘사자(死者)들의 처소’라하여 공동 묘지와 묘비들이 많았다고 한다.

어찌하여 … 이끌어 내어. 본 구절을 필두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구속의 은혜를 욕되게 하는 불신과 원망섞인 불평 서슴없이 내뱉는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 백성이 자신을 ‘열 번이나’ 시험했다고 했다(민 14:22). 한편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신 분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므로 자신들의 믿음이 얼마나 뿌리없는 것인지를 잘 드러내었다. 실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된 원인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14: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때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선포한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고(5:21), 또 불신하였었다(6:9).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자유를 위한 역경보다는, 안일을 위한 굴종을 쉽사리 택하는 이스라엘의 노예 근성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이나 은혜와는 상관없이 일시적인 편리나 안락을 위하여 노예 근성에 젖은 말을 서슴지 않았다. 이는 사탄의 예속하에 있던 옛 성도의 모습과 같다(갈 4:8, 딛 3:3, 히 2:15).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강권적이요, 택한 백성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불가항력적이다.

 

14:13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사랑과 신앙을 회복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요일 4:18). 왜냐하면 지금과 같은 상황하에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첫 반응은 두려움이기 때문이다(10절).

가만히 서서. 문자적으로 ‘너희 자리를 지키라’, ‘그 자리에 꿋꿋이 서있으라’는 뜻으로 비록 현상황이 절박하다 하더라도 다급해하거나 결코 좌절치 말고 조용히 그 상황을 맞이하라는 명령이다. 결국 이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앙하라는 준엄하신 지시이다.

구원을 보라. 넘실대는 홍해의 바닷물이나 중무장한 애굽 군대를 바라보지 말고 위로부터 오시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소망하라는 뜻이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것은 장차 신자들이 죄에서 구원 받을 것을 예표한다.

 

14: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여기서 보듯 여호와의 종교(그리스도교)는 결코 죽은 우상을 섬기는 헛되고 무능한 종교가 아니라, 구체적인 성도의 삶의 정황 속에서 능동적으로 역사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구원의 종교이다.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히, 타하리순] ‘혀를 물다’, ‘침묵을 지키다’는 뜻이다. 즉 더 이상 불평하는 말을 하지 말고 조용히 기다리라는 뜻이다. 이는 곧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단독 사역을 묘사한 표현이다. 최선을 다한 후 인간으로서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 마지막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은 그 상황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믿음’이다.

 

14:15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부르짖다’의 히브리어 ‘차아크’는 ‘소리를 질러 간청하다’, ‘큰 소리로 기원하다’를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너는 어찌하여 소리질러 내게 기도만 하느냐’고 꾸짖는 말투다. 즉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더 이상 심령안에서 부르짖는 애원으로 기도만 하지 말고, 믿음의 행동을 담대히 취하라고 명하시는 것이다.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하나님은 마음의 신뢰뿐 아니라 행동을 통한 그 믿음의 실천을 요구하신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된 것이기 때문이다(약 2:17). 한편 여기서 ‘앞으로 나아가게’의 히브리어 ‘이사우’는 ‘장막 말뚝을 뽑아 챙긴 후 곧장 전진해 가다’는 뜻이다. 즉 장막에 머물러 있으면서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기다리지 말고, 비록 위험스러우나 하나님의 명려에 순종하여 홍해 쪽으로 발길을 옮기라는 뜻이다.

 

14:16 지팡이. 모세는 하나님의 소명에 의해 지팡이를 잡은 후(4:20) 그 지팡이로 무수한 이적을 행했으며(8:5 이하), 이제 홍해를 갈라지게 하는 데 그 지팡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모세의 이 지팡이는 실로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을 대변하는 것이었다(4:2).

손을 … 내밀어 … 갈라지게 하라. 이 명령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을 실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다.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 바다와 육지 등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의 운행과 질서를 주관하시며 또한 필요에 따라 변화도 가하신다(롬 11:36).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이적’이라 부른다(4:21).

 

14:17 내가 … 완악하게 할 것인즉. 4:21의 주석을 보라.

내가 … 영광을 얻으리니.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은 곧 그들에 대한 당신의 주권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는 당신의 이름이 더욱 높이 빛나는(영광을 얻는) 계기가 될 것이다. 실제로 하나님은 이 홍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로 부터 큰 찬송을 받으셨다(15:1-18, 21).

 

14:18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4절의 반복이다. 자세한 내용은 4절 주석 참조하라. 곧 애굽의 파멸은 여호와를 대적하는 세력의 허무함과 여호와만이 참신이라는 사실을 온 세상에 전파하게 될 것이다.

 

14:19 하나님의 사자. 구약에서 ‘여호와의 사자’ 혹은 ‘하나님의 사자’란 말은 대체적으로 일반 천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제2위의 하나님(3:2), 즉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창 16:7).

구름 기둥도 … 뒤로 옮겨. 구름 기둥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다. 따라서 이것이 옮겨다니는 것은 영이시요(요 4:24)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서(15:3) 가시적 상징물로써 자신을 나타내신 특별한 경우이다(13:21). 이는 성경 계시가 완료되기 전, 특히 구약 시대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이다.

 

14:20 이쪽에는 … 밝으므로. 분리되어질 수 없는 하나의 실체로서 2중성을 지닌 구름 기둥과 불기둥은 하나님의 능력을 이중적으로 나타내었다. 즉 그 기둥은 애굽 군대에게는 심판을 상징하는 흑암을,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원을 상징하는 광명을 동시에 드러내었다. 이는 흑암 재앙시 애굽 땅과 고센 땅을 가른 빛과 어둠을 연상시킨다(10:23).

 

14:21 손을 내밀매. 순종과 믿음으로 내민 모세의 손에는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4:17)가 잡혀져 있었다. 결국 이번의 이적도 하나님의 지시와 더불어 그분의 능력에 의해 성취될 것이었다.

큰 동풍이 … 물러가게 하시니. 70인역(LXX)에는 ‘큰 남풍’으로 보고있으나 히브리 원문에는 ‘루아흐 카딤 아즈’ 곧 ‘맹렬한(강한) 동풍’으로 분명히 기록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정방향에서 불어오는 것이라기 보다 동쪽 모든 방향(남동, 동북쪽)을 가리키며 특히 건조한 사막의 바람을 포함한 것으로 보인다.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여기서 ‘마른 땅’ 이란 ‘하라바’로 사막과 같이 건조한 땅을 가리킨다. 수많은 남녀 노소 및 짐승까지 별 어려움 없이 건너가기 위해서는 갈라진 바다밑이 건조한 땅이 되어야만 했다(시 106:9). 이러한 사실은 애굽의 병거까지 그 가운데로 진입한 사실로 보아 분명해진다.

 

14:22 육지. ‘육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바샤’는 완전히 ‘마른 땅’(NIV, dry ground)을 가리킨다.

좌우에 벽이 되니. 여기서 ‘벽’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호마’는 ‘담이나 뚝’을 가리킨다. 이것은 보호나 방어를 의미하는 말로써 곧 바닷물의 좌우 벽은 이스라엘이 지나갈 수 있도록 그들의 보호 벽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처럼 흉융한 파도가 오히려 이스라엘을 감싸주는 보호벽이 되었다는 사실은 사나운 물결도(시 78:13), 그리고 맹렬한 불꽃도(단 3:19-27)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택한 자의 머리털 하나 침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마 10:29-31).

본 절의 쟁점. 본 절과 관련된 쟁점은 다음과 같다. (1) 성경 본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가 장정만 약 60만 명이었다고 일관되게 말한다(출 12:37, 민 1:46, 26:51).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어림잡아 200만 명쯤은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양 떼와 함께 하룻밤 사이에 홍해를 건널 수 있었을까? (2) 애굽의 병거가 천천히 이동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쉽게 따라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울러 일반적으로 주의를 요하는 다른 가정(假定)들이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양 떼와 소 떼를 데리고 애굽에서 무작정 나온 무질서한 남녀노소로 구성되었고, 애굽 군대의 위협이 눈앞에 닥쳤을 때 훨씬 더 무질서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일렬 종대로 행군해 갔을 것이고, 홍해를 건너는 통로는 매우 좁아서 모두 건너려면 족히 며칠은 걸렸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은 성경의 지지받지 못한다.

홍해를 건넌 것은 기적이었음: 구약 전체를 통해 홍해를 건넌 것은 하나님의 개입으로 이뤄진 기적의 사건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애굽의 군대가 접근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출 14:10)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재차 보증을 주셨고, 홍해가 갈라지고 그들이 건널 준비를 하는 동안 구름 기둥이 이스라엘과 애굽 군대 사이를 가로막아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는 데 필요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람이 건너기를 끝냈을 때, 구름이 이스라엘의 뒤에서 바다 안까지 따라옴으로써 애굽 군대가 바다로 들어오도록 유도했다.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바다 가운데로 들어”(출 14:23) 왔고,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출 14:24)셨다.

건넌 지점: 어떤 학자들은 아카바 만을 통과하여 사우디아라비아 쪽으로 건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근자의 연구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반도 쪽으로 건넜음을 보여 준다. 엘렌 지 화잇은 “히브리 사람들은 해변에 진을 쳤는데, 그들 앞에는 바닷물이 전혀 건널 수 없는 장벽처럼 넘실거리고 있었으며, 한편 남쪽에는 험준한 산이 그들의 진로를 가로막고 있었다.”(부조와 선지자, 283-284)라고 썼다.
어떤 학자들은 히브리어 ‘얌 쑤프’를 ‘홍해’가 아니라 ‘갈대 바다’로 해석한다. 언어학적인 증거와 근자의 지리적 연구에 기초하여, 고고학자들은 수에즈의 이스트무스(Isthmus)에 있는 쓴 호수(Bitter Lakes)로 알려진 일련의 호수들을 통과하여 홍해를 건넌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에는 산들이 없다. 그러므로 성경과 엘렌 지 화잇의 묘사에 들어맞을 가능성이 높은 유일한 장소는 수에즈만의 북단인데, 그곳에 있는 ‘제벨 아타카’(Jebel ‘Ataqa)라는 산이 수에즈 만까지 뻗어 내려오기 때문이다.

건넌 방식: 성경에는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출 13:18)왔다고 진술한다. 여기서 “대열을 지어”(in martial array)는 군대식 대열을 가리키며, 출애굽이 군대식 대형의 질서 있는 행군으로 진행되었음을 알려준다. 이 표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분사]는 ‘다섯’을 의미하는 히브리어에서 파생되었고, 따라서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다섯[조, 편대]로 나왔다’고 번역할 수 있다. 성경은 이 편대들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그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조직되었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세는 애굽에 있었을 때 군사 훈련을 받았고, 어떻게 큰 무리를 군대식 대형으로 조직하는지를 알았을 것이다. 같은 용어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 요단 강을 건너기 직전에 진영을 정비하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여호수아 1:14과 4:12에 사용되었다(이 두 구절에서 개역개정판 성경에는 “무장하고”라고 번역하였으나 원문은 ‘[다섯 편대의] 군대식 대열을 지어’의 뜻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와 홍해를 건널 때 한 줄로 나왔다거나 무질서하게 걸어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또한 성경은 갈라진 바다의 마른 땅이 얼마나 넓었는지도 말하지 않는다. 20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이 다섯 편대로 나뉘었다면 이스라엘은 약 600 명씩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을 것이며, 각 편대의 폭이 0.8 km도 안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각 편대는 약 40만으로 이뤄졌고(횡대는 약 600 명, 종대는 약 670 명), 편대들의 총 길이는 소 떼와 양 떼를 위해 1.6 km 정도를 더한다 해도 8 km가 안 됐을 것이다. 바다의 갈라진 곳의 폭이 1.6 km 정도 되었다면, 편대의 폭이 0.8 km 정도 되었을 것으로 가정할 때 넉넉하게 행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보행 속도는 1.6 km 당 30 분 이상을 초과하지 않고, 바다에서 건너야 할 거리가 약 16 km이었다면 5-6 시간이나 하룻밤 사이면 건너기를 마칠 수 있었을 것이다.

 

14:23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 히브리서 저자는 이 사실에 대하여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히 11:29)라고 기록하였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를 통과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명령)이며 또한 그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었다. 그러나 애굽 사람들이 바다 속에 뛰어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나 그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 없는 그야말로 무모한 행동이었다. 이런 과욕에 찬 무모한 행동은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었으며, 그 결과 그들에게는 파멸이 따랐다.

 

14:24 새벽에. 구약 시대의 히브리식 시간 계산법에 의하면 새벽이란 삼경에 해당되는 시간으로서 오늘날의 오전 2시에서 동틀 무렵까지를 말한다.

여호와께서 … 보시고. 영(靈)이신 하나님(요 4:24)의 초자연적 행위를 인간의 신체행위에 비교하여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성경에는 종종 하나님의 비가시적이며 추상적인 실체를 인간의 눈이나 손, 귀 등과 같은 가시적인 실체로 형상화시켜 그 의미를 강조하고 실제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는 신인동형론(神人同形論)적 관점에서 나온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군대 진영을 교란시켜 바로의 병사들을 공포에 떨게했을 뿐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게 정신을 빼놓았다는 뜻이다. 특별히 여기서 ‘어지럽게’(야함)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그 대적들을 물리쳐 주실 때 종종 사용되는 독특한 어법이다(삼상 7:10).

 

14:25 병거 바퀴를 벗겨서. 여기서 ‘벗기다’는 ‘야살’로서 (손으로) ‘징계하다’, ‘벌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께서 애굽 군대를 벌하사(친히 당신의 손으로) 전차 바퀴를 훼손하거나 빼놓음으로써 기동력을 완전히 제거하셨음을 가리킨다.

어렵게. [히, 비크베두트] ‘무겁다’란 뜻의 ‘카바드’에서 온 말로서 병거가 무거운 짐을 실은 듯 힘겹게 움직이는 것을 묘사한 말이다.

여호와가 … 치는도다. 4절 말씀의 성취이다. 즉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을 어렵게 하시니 그 때야 애굽 사람들이 비로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전능하신 여호와임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바로의 병사들은 그들 자신의 입으로 ‘여호와’란 말을 발설하게 되었다.

 

14:26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하나님의 능력은 다시 한번 모세의 순종의 손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은 반드시 인간의 순종을 통해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14:27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 모세가 바닷물을 갈랐던 그 지팡이를 든 손을 다시 내어밀자 바닷물은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즉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바닷물을 갈라놓았던 동풍(14:21)이 그치고 이제는 북쪽과 남쪽으로 벽을 이루며 갈라졌던 바닷물이 제 위치를 찾아 힘차게 흘렀다. 그러므로 카일(Keil)은 ‘바람이 이제는 서쪽에서 불어 바닷 물결로 도망가는 애굽의 정면을 덮치게 하였다’고 말한다.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하나님께서 여덟 번째 재앙을 거두실 때 강렬한 서풍을 불게 하여 메뚜기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홍해에 수장시키셨듯이(10:19), 이제 그 서풍으로 애굽 사람들을 홍해 속에 집어 넣으셨다. 한편 이 홍해 사건에 대한 역사적 근거로서 우리는 기독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가 아르타파누스(Artapanus)의 책에서 인용한 바, 다음과 같은 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즉 홍해 사건 후 애굽 멤피스(Memphis)의 제사장들이 모세를 가리켜 ‘그는 간조(干潮)와 만조(滿潮)에 대하여 능통한 자’라 했다 한다(Eusebius, preparatio Evangelion).

 

14:28 병거들과 기병들. 여기서 병거들과 기병들은 각각의 전투 기능을 구분한 것이 아니다. ‘기병들’은 ‘병거들’을 모는 자들을 가리킨다(9절).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들은 한 사람도 죽지 않았지만, 애굽 사람들은 빠짐없이 모두 죽었다. 이것은 애굽에 대한 이스라엘의 완전한 승리인 동시에 애굽 신들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한 승리였다.

 

14:29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행하였고. 바다 가운데의 육지는 걷기에 아무런 불편이 없는 건조한 상태였다(22절). 그런데 이곳을 약 200만 가량의 남녀 노소 및 각종 짐승들이 무사히 밤 사이에 건너가기 위해서는 갈라진 통로의 폭이 적어도 1.6 km 정도는 족히 되었을 것이다(L. Wood).

 

14:30 애굽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더라. 유대사가 요세푸스(Josehpus)는 이스라엘 진영이 모두 바다를 건넌 후 서쪽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와 애굽인들의 군장과 시신이 홍해 동쪽 해변으로 수없이 밀려 떠내려 왔다고 한다. 한편, 그러나 이 당시 애굽 왕 바로(아멘호텝 2세, B.C. 1448-1424)는 같이 죽은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출애굽(B.C. 1446) 후의 애굽 역사에 그의 사적이 20년 가량 더 기록되어 있고, 그리고 A.D. 1898년 성경 고고학자 로렛(Loret)에 의하여 그의 미이라가 애굽의 ‘왕묘 골짜기’(The Valley of the Tombs of the Kings)에서 발굴되었기 때문이다(Leon Wood, N. J. Westwood, F. H. Revell).

 

14:31 여호와께서 … 행하신 그 큰 능력. 이것은 홍해 사건을 가리킨다. 홍해 사건과 출애굽의 10대 재앙 사건들을 비롯하여 신구약에 나타난 모든 이적 사건들은 단순히 인간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성경의 모든 이적(miracle)은 일종의 표적(sign)으로서 믿는 자들의 신앙을 확고히 하고, 하나님의 신성을 증명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자들의 권위를 보증하기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의 기적과 홍해 기적을 보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모세를 믿은 것도 바로 이와 같은 목적에 부합되는 것이었다.

종 모세. 이 표현은 민 12:7, 8, 신 34:5, 수 1:1, 2, 7, 13, 15, 8:31, 33 등에서도 나타난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여호수아(수 24:29), 사무엘(삼상 3:9), 다윗(삼하 3:8, 7:5), 엘리야(왕상 17:1), 욥(욥 1:8), 이사야(사 20:3), 다니엘(단 9:17), 스룹바벨(학 2:23) 등도 하나님의 종으로 지칭되었다. 한편, 히 3:5에는 모세가 하나님의 집에서 종으로 신실하였다고 했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집은 구약 시대의 성도 곧 이스라엘 백성을 뜻하는데, 진정 모세는 이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종으로서 충실하게 일한 인물이었다.

모세를 믿었더라. 뒤쫓아 온 애굽 군대를 보고 겁에 질려 모세를 원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홍해 사건을 경험하고 난 후에는 그를 하나님의 종으로 전폭 신뢰하게 된다. 그러나 이 신뢰는 얼마가지 않았다. 그것은 곧이어 또 다른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한 사실에서 알 수 있다(15:24,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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