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주석, 출애굽기 0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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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이제. 히브리어로 ‘아타’인데, ‘곧장’이란 뜻도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이 말 속에는 큰 격려의 뜻이 들어 있다. 즉 모세의 불평은 하나님께서 약속 이행을 지체하신다는 점을 골자로 하였거니와,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 즉시 당신의 권능을 나타내시겠다는 결의를 표하신 것이다.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여기서 ‘강한 손’이란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하는 신인 동형동성론(Anthropomorphism)적 표현이다.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을 크게 나타내시겠다는 뜻이다. 한편 이처럼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 대상과 연결시켜 간결하고 평이하게 표현하는 것은 히브리 문학의 주요 특성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동일한 말(‘강한 손으로 말미암아’)을 중첩 사용하는 것은 그것의 명확성과 불변함을 나타내는 강조법적 기교이다.

보내리라. [히, 샬라흐] ‘포기하다’, ‘내던지다’는 의미로서 여기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마지못해 가게 내버려둔다는 뜻이다.

쫓아내리라. [히, 가라쉬] ‘축출하다’, ‘추방하다’로서 전술(前述)한 ‘샬라흐’보다 훨씬 강한 의미를 지닌다. 즉 이 말은 자의로 추방한다는 의미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내어준다는 의미가 강하다. 즉 이는 여호와의 이적적 징벌로 말미암아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도리어 쫓아내듯 황급하게 내어보내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임을 예시한 말이다(12:33).

 

6:2 여호와. [יְהוָה 야훼] 이 이름(3:15)은 이중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즉 (1)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계시는 절대자란 뜻이다. (2) 선민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반드시 성취시키시는 구속주란 뜻이다. 본문에서는 특히 (2)의 의미가 강하게 표출되어있다. 낙담 중 탄원하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계시하신 이유는 출애굽 사건이 당신의 언약과 성취라는 차원에서 반드시 이루어질 수밖에 없음을 모세에게 주지시키기 위함이었다.

 

6:3 전능의 하나님. [히, 엘 샷다이] ‘샷다이’는 ‘공략 불가능한’이란 뜻의 ‘사다드’에서 온 말로 ‘전능자’(Almighty)를 가리킨다. 그리고 ‘엘’은 ‘힘’ 혹은 ‘힘센 자’란 의미의 ‘아일’에서 유래한 말로 ‘샷다이’와 비슷하게 ‘강하고 능력있는 자’란 뜻이다(창 17:1, 49:25).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본 구절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등과 같은 부족장들은 알지 못했던 것처럼 말하는 것 같다. 정말 부족장들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알지 못했는가?

오경에 나오는 여호와라는 이름: ‘여호와’라는 이름이 143회 나오는 창세기에 의하면, 부족장들도 그 이름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창 4:1, 26에서 이미 그 이름은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었고 부족장들의 이야기에서 자주 등장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창 15:7)과 야곱(창 28:13)에게 “나는 … 여호와니라”는 구절로써 자신을 알리셨고, 그 때마다 그들과 그들의 후손들에게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출애굽기에서 ‘여호와’라는 이름은 3:15에서 다시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고 하셨다. 여호와가 부족장들의 하나님으로도 알려졌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본 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품성이 계시됨: 본 절의 앞뒤 문맥에 비춰 면밀히 읽어보면, 이 구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성경의 이름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אֲדֹנָי 아도나이’에서 ‘יְהוָה 야훼’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여러 이름들은 그분의 다각적이며 위대한 품성을 묘사한다. 본 절에는 그분의 이름 중 두 개가 나오는데, 두 이름이 결합되어 신비스럽게 보이는 이 구절을 설명해 준다. 본 절은 하나님의 새로운 이름을 계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과 어떤 이름이 그분의 행동들에 적합한지를 말하고 있다.
이 성경구절의 상단은 하나님께서 부족장들에게 ‘엘 샷다이’(전능하신 하나님)로 나타났음을 진술하고 있다. 이 이름은 부족장들에게 분명하게 알려졌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엘 샷다이’로 계시하셨기 때문이다(창 17:1, 35:11, 참조 28:3, 43:14, 48:3). 이 이름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낸다. 출애굽기는 이런 특성을 지닌 하나님을 부족장들의 시대와 분명하게 연결시킨다. 부족장들의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다.
본 절의 후반부는 하나님께서 부족장들에게는 자신을 여호와로 알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여호와는 단순한 이름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을 위하시는 분께서 그들에게 돌이켜 그들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역사하신다는 계획 곧 약속된 보증을 의미한다. 분명 여호와는 부족장들에게 하나님이셨고, 그들과 언약을 맺은 분이셨지만, 자비로운 구속의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는 것 그리고 온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과 땅에 대한 약속의 성취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그들에게 맡겨졌다. 부족장들의 언약을 경험하는 것은 약속된 땅을 취할 때까지 온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호와를 아는 것: 더욱이 본 절은 ‘여호와’라는 이름이 부족장들에게 낯선 것이었다고 말하지 않고, 경험을 통해 ‘알려지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알다’(to know)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야다)는 지적인 앎을 넘어서서 경험적인 앎을 말하며, 언약한 자들 혹은 배우자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가리키기도 한다(창 4:1). 즉 여호와의 이름을 아는 것은 곧 그분을 여호와로 경험함을 의미한다. 이런 이해는 다른 성경구절에도 나타난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렘 16:21, 참조 사 52:6, 출 7:5, 출 5:2). 이 말은 심판의 문맥에서도 나온다(출 6:3, 사 19:21, 겔 20:5, 9, 35:11, 38:23, 시 9:16, 48:3, 76:1-3). 심판과 구원은 함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참조 사 19:21-22), ‘여호와를 안다’는 것은 구원 혹은 심판을 가져오는 심판자로 그분을 안다는 것도 포함한다.

본 절은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의 의미가 이제 충분하게 이해될 것이라고 말한다. ‘여호와’는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실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나타낸다. 출애굽 사건을 경험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족장들이 경험하지(‘알지’) 못했던 방식으로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었다. 즉 ‘전능하신 하나님’(엘 샷다이) 자신이 서약했던 대로의 그분 곧 그분의 백성과 함께 계시고 언약을 지키며 약속의 땅을 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으로 자신을 계시하려 하신다. 이제 이스라엘은 단지 여호와라는 이름만으로 부족장들에게 알려진 하나님을 출애굽이라는 구원을 통해 경험적으로 알게 될 것이다.

 

6:4 가나안 땅. 요단 서쪽 팔레스타인을 가리킨다. 남쪽 경계는 가사로부터 사해까지(창 10:19)이고, 동쪽 경계는 요단 강이고, 북쪽 경계는 성경에 시돈(창 10:19), 레바논과 유프라테스(신 11:24), 유프라테스(창 15:18), 헤르몬 산 아래 바알갓(수 11:17), 하맛 어귀 르홉(민 13:21) 등과 같이 다양하게 언급된다.

거류하는. [히, 구르] (손님으로서) ‘체류하다’, ‘숙박하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애굽에 들어가기 전까지 대부분 가나안 땅에서 살았다(창 12:6, 13:7, 23:7, 27:46). 그러나 그들은 가나안 땅을 두루 다니며 그저 나그네로서의 삶을 살았을 뿐이다. 따라서 훗날 여호수아의 인솔 하에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차지하게 된 것은 결코 자연적 기득권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인적 은총에 근거한 것임을 알 수 있다(수 1:2).

언약하였더니. [히, 쿰 에트-베리트] ‘쿰’은 ‘설립(제정)하다’, ‘선포하다’의 뜻이고, ‘베리트’는 ‘자르다’의 뜻인 ‘바라’에서 온 말로 곧 ‘언약’을 가리킨다. 특히 여기서 언약은 상호간의 협의에 의해 이뤄진 언약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은혜에 근거하고 있는 언약이다. 한편 하나님과 족장들간에 체결된 언약에 대해서는 창 15:18-21, 17:7, 8, 26:3, 28:13 등에 기록된 바, 이들 언약에서는 가나안 땅에 관한 약속이 한결같이 등장한다.

 

6:5 신음. [히, 네아카] 이 말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신음하다’란 뜻의 ‘나아크’(욥 24:12, 겔 30:24)에서 온 말로 2:24에서는 ‘고통 소리’로 번역되었다. 이렇듯 이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고통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다. 그럼에도 본 절에 이 말씀이 반복된 것은 (1) 당신의 약속을 다시 한번 강하게 확신시키며 (2) 아울러 모세의 탄원에 대한 응답을 보이시기 위함이었다(5:22, 23).

기억하노라. [히, 자카르] 본래 의미는 (알아 볼 수 있도록) ‘표시하다’이다. 그리고 여기서 ‘회상하다’란 뜻이 파생되었다. 그러나 본 절에서는, 과거에 잊고 있다가 돌연 생각났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확정된 언약을 성취할 때가 비로소 도래하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때에 당신의 경륜을 따라 역사를 운행해 가신다(엡 1:9, 딤후 1:9).

 

6:6 무거운 짐.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겪은 모든 압제를 통칭한 말이다(Modern Language Bible: Egypt’s burdens). 한편 이에 비해 다음의 ‘노역’은 이런 저런 이유로(1:12-14, 5:7-9) 더욱 가중된 고난을 특별히 암시하는 말인 듯하다.

빼내며. 이 말은 (댓가를 지불하고) ‘사다’, ‘택하다’(신 4:20), ‘빼앗다’(삼상 2:16), (원수를) ‘갚다’(렘 20:10) 등 다양한 뜻을 내포한 말이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출해 내시기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 하셨는가를 잘보여 주는 말이다. 한편 이를 통해 우리는 성도를 피로 사시사(계 5:8),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건져내신 구속주의 무한하신 은총을 연상할 수 있게 된다(골 1:13).

건지며. 곧 ‘탈취하다’(대하 20:25), ‘구원하다’(겔 14:14), ‘탈출하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구원 활동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준다(3:8).

편 팔. 팔을 편다는 것은 어떤 행동을 본격적으로 개시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편 팔’은 ‘강한 손’(1절)과 더불어 하나님의 적극적이고도 강력한 활동을 의미하는 신인동형동성론적 표현이다(신 11:2, 왕상 8:42, 겔 20:33).

심판. [히, 쉐파팀] ‘미쉐파트’와 동의어로서(신 32:41, 욥 8:3) ‘심판’(잠 9:29)이란 뜻이다(KJV, RSV: judgement). 이는 애굽에 임하게 될 심판이 단순한 이적 사건이 아니라(3:20),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시사한다.

속량하여. [히, 가알] ‘무르다’, ‘복수하다’, (가장 가까운) ‘친척이 되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에는 누가 살해 당했을 때 그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 대신 복수하고(수 20:5), 땅을 팔았을 때는 대신 물어주고(룻 3:13), 또한 무자(無子)한 채 죽었을 때는 그 아내와 혼인하여 자손을 잇게 해주는 ‘고엘 제도’라는 관습이 있었다(룻 4:10).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바로 그 일을 담당하는 가까운 혈족 곧 ‘גֹּאֵל 고엘’(구속자, 갚는 자)이 되어 주시겠다는 뜻이다. 한편 이러한 구속자 고엘의 개념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완연히 드러났으니, 곧 그분은 성도의 복수자요(딤후 4:14), 신랑이요(마 9:15), 잃었던 유업을 되찾아 주신 분이다(롬 8:17).

“출애굽기 6:6에 나오는 ‘속량’이라는 말은 가족 중의 한 사람이 빚으로 노예가 되었거나 노예가 될 형편에 처한 다른 가족을 위해 속전을 지불하고 되찾아 오는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을 구속할 친족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친족이 되셔서 그들을 구속해 주셨다”(Bernard L. Ramm, His Way Out (Regal Books Division, G/L Publication, 1974), p. 50).

출 3:8에서 하나님은 “내려가서” 이스라엘을 구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יָרַד 야라드)은 하나님께서 인류와 교통하시는 것을 묘사하는 일반적인 히브리 동사이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땅으로 내려오셔야만 우리를 구속하실 수 있다. 진정한 의미로서 예수께서 내려오셔서 우리를 위해 생애하시고 고난 당하시며 죽음 당하시고 부활하셨을 때 우리를 구속하실 수 있으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라는 말씀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내려오셨음을 말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막 10:45, 딤전 2:6, 계 5:9 참조.

 

6:7 삼고. 기본 동사 ‘라카흐’는 ‘지정하다’, ‘인정하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뽑힌 것이 결코 그들의 민족적 우월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당신의 은총에 근거한 주권적 선택으로 말미암았음을 시사한다(신 7:6-8). 한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공식적으로 당신의 백성 삼으신 것은 시내 산 언약 사건에서이다(19:5). 즉 이 사건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를 구체화한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족장들과 맺어왔던 구속의 언약이 이제는 한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과 맺은 구속의 언약으로 발전, 구체화되었던 것이다.

 

6:8 맹세한. [히, 나사 야드] 문자적으로는 ‘손을 들어 올리다’는 뜻이다(Modern Language Bible: I raised my hand). 이는 고대 근동의 맹세 습관을 반영하는 말이다(느 9:15). 실로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초라한 일개 노예 족속과 더불어 손을 들어 엄숙히 맹세하였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택함받은 자를 향한 하나님의놀라운 은총과 크신 사랑을 엿볼 수 있다(계 15:3, 4).

기업. [히, 모라샤] (원주민을 쫓아내고) ‘점유하다’, ‘유산으로 이어받다’의 뜻인 ‘야레쉬’에서 온 말로 향후 가나안 정복 전쟁을 통해 이루어질 기업분배를 암시한다. 우상에 물든 가나안 원주민들을 무찌르고 가나안 정복이 일단락 된 후, 이스라엘은 제비 뽑기와 인구 수효 형평의 원칙에 따라 기업을 분배하였다(민 26:52-56).

 

6:9 마음. [히, 루아흐] ‘바람이 불다’, ‘숨쉬다’란 뜻의 동사에서 유래한 말로 개역개정판 성경에서는 자주 ‘영’(靈)이라 번역되었다(28:3, 왕상 22:21, 시 31:5). 여기서는 단순한 기분 정도가 아니라 전인격을 나타낸다. 한편 이와 유사한 단어인 ‘네페쉬’는 주로 ‘혼’(魂)으로 옮겨졌고(창 35:18, 삼하 11:11), 또한 보통 ‘마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레브’로 표현된 예가 많다(창 6:5, 수 11:20, 왕상 3:9).

상함. [히, 코체르] ‘토막으로 자르다’란 뜻의 ‘카차르’에서 유래된 말로 ‘참을 길 없는 마음의 고통’ 혹은 ‘조급하여 안달하는 심경’을 뜻한다. 모세로부터 출애굽에 관한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기뻐 경배하던 모습과는 현저하게 대조된다(4:31). 이러한 이스라엘의 감탄고토(甘呑苦吐)의 심리는 출애굽 후 광야 여정을 통해서도 줄곧 재현되었었다(민 14:1-4, 20:2-5).

가혹한. [히, 카쉐] ‘호되다’, ‘잔인하다’란 뜻의 동사 ‘카사’에서 온 형용사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극심한 고역에 시달린 것도 그들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었음을 뜻한다. 그러나 근본적 원인은 역시 전술한 바, 고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영적 무지’에 있었다.

듣지 아니하였더라. 민족 해방이란 대전제에는 찬동하였으나, 그에 수반되는 고통은 마다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기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마치 복음이 돌짝밭에 뿌리워진 것과 같다(마 13:20).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들이 모세를 무시한 것이라기보다 모세를 그들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게획과 권위를 우습게 여긴 어리석음이다. 야고보는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약 1:20)고 경고한 바 있다.

 

6:10 없음.

 

6:11 들어가서. 기본 동사 ‘보’는 (전쟁터로) ‘가다’, ‘침투하다’는 의미로서 마치 전투에 임하듯 비장한 각오와 담대한 심령으로 바로와 더불어 담판하라는 뜻이다.

내보내게. 사흘만 애굽을 떠났다 돌아오겠다던 처음 요구(3:18, 5:3)보다 훨씬 더 진전되어, 이제 적나라하게 민족 대탈출을 선포하라는 뜻이 담긴 말이다. 이는 곧 출애굽의 때가 박두했음을 암시한다.

 

6:12 어찌 들으리이까. [히, 이쉐마니] ‘사마’(3:18)의 3인칭 단순완료형으로서, 더욱 노기 등등한 상태에 있는 바로가 이러한 노골적 요구 사항을 들어줄 리 만무하지 않겠느냐고 하는 인간적 의구심의 표현이다. 그러나 모세의 이러한 의구심 속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를 기대하는 강한 열망 또한 역설적으로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입이 둔한. 문자적 해석은 ‘할례받지 못한 입술’(KJV, RSV: uncircumcised lips)이다. 이는 허다한 인간적 실수를 저지를 우려가 있는 미천한 입술, 혹은 맡은 바 사명을 수행하지 못하는 무능한 입술을 의미한다(4:10).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 ‘할례받지 못한 귀’(렘 6:10), ‘할례받지 못한 마음’(레 26:41, 렘 9:26) 등이 있다. 한편 모세의 이러한 고백은 겸양의 차원을 넘어 동족 이스라엘도 설복시키지 못하는 무능한 자가 어찌 바로 앞에 서겠느냐는 의미의 탄식이자 깊은 좌절감의 표출이다. 따라서 모세는 이 순간 자신이 얼마나 하잘 것 없는 존재인가를 처절하게 통감하였을 것이다. 결국 출애굽 사건은 지극히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 하나님의 단독 사역의 전형이라 하겠다(고전 1:27-29).

 

6:13 본 절은 지금까지 전개된 사건의 요약인 동시에 미구에 성취될 출애굽 사건을 과거화함으로써 그 사건이 필연코 이뤄질 것을 확신하는 내용이다. 한편 본 절에는 출애굽 사건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다음과 같다.

구분 / 명단 / 참조구절
입안자 / 여호와 / 창 15:13, 14, 출 2:24, 25
실행자 / 여호와 / 6:7, 8, 14:30
특사 / 모세와 아론 / 3:10, 4:14, 15
대상 / 이스라엘 자손 / 3:7, 8, 16, 17
장애물 / 애굽 왕 바로 / 5:2, 4-9

 

6:14 본 절부터 27절까지에서 모세와 아론의 소명 이후, 출애굽 운동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 갑자기 이들 두 지도자의 족보가 소개되고 있다. 그것은 두 지도자의 혈통을 추적하여 이스라엘 12 지파 내에서의 그들의 역사성 및 위치를 밝히는 동시에, 그들의 지도자적 권위의 출처가 혈통에 의해서가 아닌 신적 언약과 배려에 의한 것임을 밝히기 위함이다.

어른. [히, 로쉬] ‘흔들다’는 동사에서 유래한 말로 ‘꼭대기’(창 8:5), ‘머리’(창 40:16, 17), ‘우두머리’(삿 10:18) 등의 뜻으로 쓰인다. 여기서는 당시 이스라엘 내에 연령적으로나 역량 면에서 한 가문의 지도자 격에 해당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르우벤. [히, 레우벤] ‘보다’란 뜻의 ‘라아’와 ‘아들’이란 뜻의 ‘벤’이 결합하여 ‘보라! 아들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는 야곱의 장자였으나 아비의 첩 빌하와 통간함으로(창 35:22) 장자권을 상실하고 말았다(창 29:32, 대상 5:1). 한편 본 장에서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레위 지파의 족보 서술에 앞서 본 절과 15절에서 먼저 르우벤과 시므온의 족보를 서론식으로 언급한 것은 레위의 위치가 이스라엘 12 지파 서열상 어디에 머무는가를 분명히 밝히기 위함이다.

족장. [히, 로쉬] 앞에 언급된 ‘어른’과 동일한 말이다.

 

6:15 시므온. 야곱의 둘째 아들로서 레아의 소생이다(창 29:33). 유별나게 요셉을 미워했던 점이나(창 37:20), 레위와 더불어 세겜인을 과도하게 학살하였던 사실(창 34:25-30) 등으로 미루어, 매우 잔인한 성품의 소유자였음을 알 수 있다.

가나안 여인의 아들. 창 46:10의 반복 기록이다. 한편 본 절의 재언급은 장차 들어갈 가나안 복지에서 가나안 여인과의 통혼(通婚)으로 말미암아 우상 숭배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나마 시사해 준다고 할 것이다(삿 3:6).

 

6:16 레위. ‘연합’이란 뜻이다. 야곱의 3남이며 레아의 소생으로서 시므온과 더불어 세겜인을 잔인하게 살육한 장본인이다(창 34:25, 26). 애굽 이주시 게르손, 고핫, 므라리 등 세 아들을 데리고 갔다(창 46:11).

족보대로. ‘나이의 순서에 따라’란 뜻이다. 성경의 족보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나이의 서열을 존중하고 있다.

나이. [히, 쉐네 하예] ‘삶의 연수’(KJV, RSV: the years of the life)란 의미이다. 본문에는 출애굽의 두 영도자 모세와 아론의 직계조상 레위, 고핫, 그리고 아므람 등에 한해서 나이를 소개하고 있으며(4절, 18절, 20절), 7:7에는 모세와 아론의 나이도 아울러 언급하고 있다. 이는 애굽 정착 이후 4대(레위, 고핫, 아므람, 모세) 만에 가나안으로 돌아올 것이라던 창 15:16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어갔는가를 분명히 밝혀 주기 위함이다(Keil). 한편 레위의 나이가 ‘137세’라는 사실은 이때의 상황이 애굽으로 내려간지 수십년이 지난 때이자, 그가 세 아들을 얻은 이후라는 점(창 46:8-11)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6:17 게르손. ‘쫓아내다’, ‘추방하다’란의 동사 ‘가라쉬’에서 유래한 말로 ‘피난처’라는 의미이다. 레위의 장자이며 그 자손은 후일 제사 제도가 정비된 이후 성막과 장막 그리고 그 부속물들을 관리하는 직무를 맡았다(민 3:25, 26).

 

6:18 고핫. ‘모임’, ‘집회’라는 뜻이다. 레위의 둘째 아들이며 후일 그 자손은 성막의 가장 신성한 기구들을 보관, 운반하는 일을 맡았다(민 3:31). 모세와 아론이 바로 레위의 둘째 아들 고핫 계열에서 나왔다.

 

6:19 므라리. ‘쓰다’는 뜻이다. 레위의 셋째 아들이며 그 자손은 성막의 널판과 그 부속품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으며(민 3:36), 포로 귀환 후 예루살렘 재건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스 8:19).

 

6:20 아므람. 2:1에서 ‘레위 족속 중 한사람’으로 언급된 바로 그 인물이다. 그런데 많은 학자들(Keil, Kurtz, Cook, Lange, Tiele)은 이 사람이 18절에 나오는 고핫의 아들이라는데 이견을 제시한다. 즉 그들은 출애굽 후 시내 산 출발 직전의 상황(출애굽 2년 2월 1일)에서 계수한 고핫 가족의 수가 8,000명이었다는 사실(민 3:27, 28)을 들어 모세의 부친 아므람이 고핫의 아들 아므람과는 다른 동명이인(同名異人)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1) 아브라함 이후 레위(137세)→고핫(130세)→아므람(137세)→모세(120세)로 이어지는 4대를 제시하여 일찍이 하나님께서 횃불 언약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하신 당신의 예언(창 15:13-17)이 역사 속에서 그대로 성취됨을 보여 주고자 했다는 점과 (2)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번식력이 하나님의 특별 섭리로 인하여 급속히 신장했다는 점 (3) 그리고 본문(16-27절)의 문맥과 그 기술 순서의 체계성으로 미루어 보아 본 절의 아므람은 18절의 아므람과 동일 인물로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

그들의 아버지의 누이 요게벳.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심’이란 뜻의 이름으로서 미리암, 아론, 모세의 모친이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와 더불어 성경상의 3대 현모(賢母)라 일컬어진다(히 11:23). 한편 다른 성구에서 요게벳은 단순히 레위 여자(2:1) 혹은 레위의 딸(민 26:59) 등으로 언급되었으나, 본 절을 통해 그녀는 아므람의 고모이자 아내였음이 드러난다. 모세 율법에서는 이러한 근친혼이 엄금되고 있으나(레 18:12) 율법 제정 전에는 크게 문제시되지 않은 듯하다.

맞이하였고. [히, 라카흐] ‘받아들이다’, ‘사다’는 의미로서 특히 ‘아내를 취한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된 말이다(창 4:19, 신 20:7, 호 1:4). 이는 남존여비(男尊女卑)의 경향이 농후한 고대 가부장제 사회의 일면을 반영한다.

 

6:21 고라. ‘대머리’란 뜻으로 모세의 종형(從兄)이다. 출애굽 후 광야 행진시 명예욕에 사로잡혀 이스라엘 지도권을 넘보아 모세를 대적하다 그 추종자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했다(민 16:1-3, 28-35).

 

6:22 없음.

 

6:23 본 절부터 25절까지는 시내 산 언약 이후 제사장 가문이 된 아론 가문을 집중 소개하고 있다. 특별히 성경 족보에서는 드문 여인들(아론과 엘르아살의 아내)까지 언급함으로써 성경 역사에서 이 가문이 차지하는 비중의 크기를 짐작케 한다.

나답과 아비후. 훗날 성막에서 하나님의 뜻을 무시한 채 다른 불로 분향을 드리다가 죽음을 당한 자들이다(레 10:1, 2). 그런데 그들은 여전히 대제사장 아론 가문의 족보에 등재된다. 이는 인간 제사장의 한계를 깨우쳐 줌으로써 인간 구속을 위해서는 레위의 반차를 초월한 또 다른 제사장의 출현이 필연적임을 암시한다.

엘르아살. 그의 형 나답과 아비후 사후에 아론 가문의 상속자로 성실히 일하다가 아론이 죽자 아론을 이어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직을 계승하게 된다(민 20:25-28).

이다말. 아론의 넷째 아들로 후일 이다말 자손의 조상이 된 자이며(대상 24:4-6), 광야 행진시에 제사장으로서 그 직분을 충실히 수행한 자이다(28:1, 38:21, 민 4:28, 33).

 

6:24 없음.

 

6:25 비느하스. 거룩한 의분(義憤)으로 이스라엘 내에 만연한 음행을 척결함으로써 여호와로부터 ‘비느하스 언약’을 얻었던 정의의 사람이다(민 25:10-13). 부친 엘르아살 사후 대제사장직을 계승하였다(삿 20:28).

 

6:26 군대대로. [히, 알-치베오탐] ‘차바’는 동사로 쓰이면 ‘집결(소집)하다’, ‘싸우다’는 뜻이고, 명사로 쓰이면 ‘군대’ 혹은 ‘전투 행위’를 가리킨다. 한편 이 말은 이스라엘이 정처없이 방황하는 약소 노예 민족에 불과함이 아니라, 가나안이라는 확고한 정복 목표를 지닌 채 하나님의 성전을 수행해 나가는 위대한 군대임을 강조하기 위한 말이다. 민수기는 바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군대라는 측면에서 기술한 책이다.

인도하라 하신. [히, 호치우] ‘이끌다’, ‘노예를 품어주다’는 뜻의 ‘야차’에서 유래하였다. 따라서 이 말 속에는 압제로 인해 허덕이던 백성을 해방시켜 더 이상의 핍박이 없는 곳으로 인도한다는 뜻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6:27 모세와 아론. 바로 앞 절(26절)에는 ‘아론과 모세’로 기록되었으나 지금은 순서를 달리한다. 그처럼 표기하고 있는 이유는 앞 절의 순서는 나이 서열상으로, 본 절의 순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임무의 중요한 순으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경은 종종 구속사적 관점에서 그 임무의 중요도에 따라 영적 장자권을 부여하기도 한다. 성경의 역사는 항상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과 개인을 중심으로 엮어져 가고 있다(창 5:32, 11:26, 25:9).

 

6:28 본 절부터 30절까지는 10-12절의 반복 기사이다. 이는 14-27절에 갑작스레 거론된 레위가문의 족보로 인해 단절되었던 앞 부분과 역사를 무리없이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비록 일꾼으로 선택되었으나 여전히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설 수 없었던 모세의 나약함을 강조함으로써 출애굽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주권적 단독 사역이었음을 거듭 확증하고 있다.

 

6:29 말하라. 기본 동사 ‘다바르’는 ‘대변자가 되다’, ‘선포하다’, ‘정복하다’ 뜻이다. 이제 모세는 바로에게 간청하거나 타협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는 대언자로서의 권위와 담대함을 지녀야 했다.

 

6:30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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