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주석, 출애굽기 0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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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출애굽기 서론

(1) 제목
히브리인들이 책의 제목을 정할 때 관례상 책의 첫 글자나 어구를 채택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에 따라 본 책의 제목은 ‘웨엘레 쉐모트’이다. 이 말의 뜻은 ‘그리고 이것들은 … 의 이름들(이니라)’이다. 그런데 70인역(LXX)에서 이 책의 제목을 ‘엑소도스’로 표기하였는데 그 뜻은 ‘나감’, ‘출발’, ‘탈출’이란 뜻이다. ‘출애굽기’란 개역성경의 제목은 70인역에 근거한 것이다.

(2) 저자
본 책의 저자는 모세이다. 특히 본 책은 신구약성경 자체와 모든 고대 문헌 및 전승, 그리고 교회 교부들이 모세의 책으로 인정하는 오경 중 둘째 책이다.

(3) 기록 연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한 시점인 B.C. 1446년 이후와 모세가 느보 산상에서 임종을 맞이한 B.C. 1406년 사이의 어느 시기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본다.

(4) 주제
이스라엘이 율법과 성막을 갖춘 어엿한 신정 국가로써 역사 속에서 공식 출범하게 된 것은 바로 애굽의 노예 상태로부터 그들을 피로 사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근거한다. 따라서 본 책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속 사역을 주제로 삼아 기록되어 있다. 즉 이 구속 사역을 통해 계시된 ‘이스라엘의 구속자(גֹּאֵל 고엘)로서의 하나님’이 본 책의 주제이다.


1-7절. 출애굽기 서두를 장식하는 이 부분은 주로 족장들의 역사가 기술된 창세기와 그리고 구속사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본 책을 잇는 교량 역할을 한다. 즉 창세기에 기록된 야곱의 12아들을 여기서 재론함으로써 이후 출애굽을 감행할 이스라엘 12 지파의 근원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아울러 일찍이 족장들에게 전달되었던 하나님의 언약이 그들의 후손들에게 어떻게 구체적으로 성취되어 가는지를 나타내기 위해 이처럼 본 책 초두에 야곱의 12아들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 [히, 바이트] 본래 ‘집’을 뜻하나 여기서는 한 집 안에 거하는 가족(창 50:22), 식구(12:4)를 지칭한다. 이 말은 5절에 언급된 대가족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혈속(야레크)과는 상대되는 개념으로 통칭 2대(代)가 한 가정을 이루는 핵가족을 가리킨다. 따라서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 23:6)라고 했던 다윗의 찬양은 자신이 하나님의 가족으로 살게 된 사실에 감격하여 부른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요 1:12)를 가리켜 ‘하나님의 권속’(엡 2:19)이라 부른다.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의 출(出) 애굽에 앞서 그들 조상의 입(入) 애굽을 다룸으로써 본 책이 창세기에 이어지는 내용임을 밝히고 있다. 아울러 이 짧은 문구를 통해 야곱의 애굽 이주에 얽힌 몇몇 사건들을 회상케 하여 그 애굽행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 진행된 구속 역사의 한 과정임을 암시한다. 하나님께서는 진작부터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하기 전에 먼저 이방 땅에 내려가 400년간의 고통기간을 맞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신 바 있다(창 15:13).

이스라엘. 본 절은 야곱에게 두 가지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야곱 가족의 애굽행이 한 족장(야곱) 가문의 이주인 동시에 나아가 언약 가계(이스라엘)의 이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족장 야곱의 애굽행은 한 국가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전조(前兆)한다. 여기서 특히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언약에 근거하는 이름으로써 야곱과 그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과 사랑을 반영하는 말이다(창 32:28).

이름은 이러하니. 히브리 원문에는 이 말 앞에 ‘그리고’(웨)라는 접속사가 첨가됨으로써 본 책이 창세기와 직접 연결됨을 보여 준다. 대략적으로 1-4절은 창 35:22-26, 5절은 창 46:27, 그리고 6절은 창 50:26과 관련된 구절이다. 한편 ‘이름’을 뜻하는 히브리어 ‘쉠’은 ‘지명하다’, ‘표시하다’란 뜻인 동사 ‘숨’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이는 ‘성격’, ‘평판’, ‘명예’ 등의 의미를 동시에 내포한다. 따라서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이름은 단순한 호칭 이상의 의미, 즉 한 사람의 인격과 생애를 특징지우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 특별한 인생의 전기를 맞을 때 이름이 바뀌는 예가 왕왕 있었다(창 17:5, 32:28).

 

1:2 2-4절. 야곱 아들들의 이름이 출생 순서를 따라서가 아니라, 그들 어머니의 지위에 따라 창 35:23-26에서와 같은 순서로 기록되었다. 즉 정식 부인인 레아의 소생(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과 라헬의 소생(요셉, 베냐민)이 먼저 언급된 후 두 여종 빌하의 소생(단, 납달리)과 실바의 소생(갓, 아셀)이 언급되었다. 이는 정식 부인에 대한 예우를 분명히 했던 본 책 기록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편 이 명단에서 요셉이 생략된 것은 5절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이미 애굽에 내려와 있었기 때문이다(창 37:28).

 

1:3 없음.

 

1:4 없음.

 

1:5 요셉은 애굽에 있었더라. 원문에는 이 구절이 제일 후미에 있다. 그리고 이 말 앞에 접속사 ‘웨’가 첨가되어 있는데 문맥의 흐름으로 보아 순접이 아닌 역접 곧 ‘그러나’로 봄이 좋다. 따라서 본 절 전체를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가나안에서 나온 야곱의 가족(요셉 포함)은 70명이다. 그러나 그중 요셉은 먼저 와 있었다’가 된다. 이처럼 저자가 특별히 요셉의 행적을 부각시킨 이유는 요셉이 언약 가계 보존을 위해 하나님의 오묘하신 경륜으로 애굽에 미리 내려와 기반을 닦아 두고 있었다는 점과 따라서 그로 인해 400년 애굽 생활 및 출애굽이 준비되고 있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요셉도 이러한 자신의 막중한 사명에 대해 깊이 인지하고 있었다(창 45:7, 8, 50:20).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 [히, 네페쉬 요츠에 예레크 야아콥] 직역하면 ‘야곱의 허리로부터 나온 영혼들’이다. 이처럼 후손을 ‘허리에서 난 자’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허리에 후손을 얻을 생명력이 보존되어 있다고 믿는 히브리인들의 관용적 표현이다(히 7:5). 한편 여기서 사람을 ‘영혼’(네페쉬)으로 서술한 것은(창 12:5) 영혼을 인격의 대표격으로 여긴 히브리인의 사고(시 42:1, 2, 5)를 반영한다. 그리고 이는 가장을 중심으로 몇 대(代)가 함께 기거하는 이른바 대가족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는 1절의 ‘권속’과 비교되는 혈연 집단이다.

모두 칠십.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 일가의 전 인원으로 요셉에게서 낳은 다섯 후손을 제외한(행 7:14) 숫자이다(창 46:26, 27). 한편 여기서 ‘70’이란 숫자는 ‘7’(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10’(완전한 성취) ‘70’(하나님의 특별한 성취와 완전한 성취)를 상징하는 히브리적 숫자 표기법이다. 이런 점에서 기록자 모세가 이 부분에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70’이라는 소수의 사람들이 객지인 애굽에서 400년후에 장정만 60만 명(출 12:37)이라는 대민족으로 성장한 사실, 곧 하나님의 기적적인 보호와 번성의 은총을 밝히 드러내고자 하는 데 있었다.

 

1:6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야곱과 더불어 애굽에 이주해 온 무리들과 이미 애굽에 있었던 요셉 등 애굽 정착 제1, 2세대가 모두 죽었음을 가리킨다. 여기서 야곱 일행이 애굽에 이주한 때를 대략 B.C. 1876년 경으로 보고 애굽정착 기간을 430년간(12:40)으로 본다면(Delitzsch, Ewald), 이 당시는(모세의 궁중 생활 40년과, 도피 생활 40년을 제외) 애굽 거주 350여년째인 B.C. 1526년 경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성경 기록상 선민의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의 시작과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의 새로운 전환기로 이해한다(창 11:32, 25:8, 9).

 

1:7 본 절에서는 거의 동일한 동사가 네 번이나 연이어 나타나는데 이를 수사학적으로 ‘완전 강조’라 한다. 특히 여기서 이러한 중첩된 표현은 이스라엘의 번성이 하나님의 약속(창 12:2, 13:16, 22:17, 26:4, 28:14, 46:3)에 기초한 신적 축복의 결과임을 분명히 암시한다(12:37). 네 동사는 다음과 같다.

생육하고. [히, 파루] 건강한 나무처럼 ‘풍성하게 결실하다’의 뜻이다. 이 말은 생명체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나타낸다(창 1:22, 28, 9:1).

불어나. [히, 이쉬래추] 물고기처럼 ‘꿈틀거리며 우글거린다’는 뜻이다. 결국 이 말은 꾸준하고 생기있게 ‘번성하’(창 1:20)는 것을 가리킨다. 한편 에스겔은 성전 안에서 흘러나오는 물(복음)로 인해 생물들이 번성하는 환상(겔 47:1-12)을 소개함으로써 성도들의 생기있는 삶이 오직 하나님의 축복으로만 가능함을 보여 주었다.

번성하고. [히, 이르부] 기하급수적으로 ‘늘다’(Multiply)를 뜻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자손 창대의 언약(창 13:14-16, 15:5)이 풍성히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매우 강하여. [히, 와야아츠무 비모드 메오드] ‘그리고 측량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다’란 뜻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될 정도로(9, 10절) 강성해진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사실은 미구에 애굽의 탄압을 초래하게 되고, 또한 그것은 결국 출애굽의 전주가 된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온 땅에 가득. 여기서 ‘온 땅’은 애굽 전역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의 정착지인 ‘고센’땅을 가리킨다(창 47:6). 한편 고대 문헌들에 따르면, 애굽에서는 사람과 짐승의 번식력이 왕성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 민족의 번성에 대한 역사적 자료인 동시에, 또한 이러한 자연 현상들을 동원하여 초자연적 역사를 이뤄가시는 하나님의 지혜의 오묘함을 말해준다.

 

1:8 알지 못하는. 여기서 ‘알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다’는 단순한 지식적 앎이나 정보 획득 차원의 앎 이상, 어떤 체험적 이해를 뜻하는 동사이다. 애굽 역사상 요셉은 7년에 걸친 대흉년을 미리 예방케 한 애굽의 일등 공신이었다(창 41:25- 57). 따라서 새로 왕좌에 오른 바로가 위의 기념비적 사건을 몰랐을 리 없다. 따라서 이 표현은 바로가 과거의 사실을 몰랐었다는 말이 아니라, 그 사실을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정책적으로 왜곡했다는 뜻이다(델리취, 랑게).

새 왕. [히, 멜레크 하다쉬] ‘하다쉬’는 ‘다른’(70인역, 헤테로스)의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말은 요셉이 활동하던 시기의 힉소스(Hyksos) 왕조가 붕괴되고 이미 애굽 제18왕조(B.C. 1580-1314)가 시작된 사실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학자들은 이곳에서 말하는 ‘새 왕’을 18왕조의 두 번째 왕인 아멘호텝 1세(Amenhotep I, B.C. 1560-1539). 혹은 세 번째 왕인 투트모세 1세(Thutmose I, B.C. 1539-1514 )로 본다. 그런데 성경 기록(12:40, 창 11:27, 21:5, 25:26, 47:9, 왕상 6:1)과 애굽 왕조사에 의하면, 이 새 왕은 힉소스 왕조(수리아와 아시아에서 나일 강 지역으로 이주해 북 애굽을 정복한 후 B.C. 1674-1567년까지 애굽의 제15-17 왕조를 형성한 이방 왕조)를 축출하고 애굽의 ‘신 왕국시대’(New Kingdom period, 제18-20 왕조)의 문을 연 제18 왕조의 첫 왕 아모세(Ahmose, 1584-1560)의 손자인 투트모세 1세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M. F. Unger).

일어나. 이 말도 선왕조(先王朝)의 정책에 ‘반대하여 일어났다’는 뜻을 지니므로(Lange), 분명 다른 왕조의 발생을 뒷받침해 준다.

 

1:9 백성에게. 즉 ‘그의 백성을 향하여’란 뜻이다. 이는 절대 군주제 형태를 취하고 있던 애굽 왕조 시대에서 바로가 백성들에게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한편 본 절 이하에 나오는 바로의 말은 포고령(布告令) 형식으로 애굽 전역의 애굽인들에게 전달된 듯하다. 특히 원문에는 ‘보라’(힌네)라는 감탄사가 문장 초두에 있어 각별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이는 바로가 애굽인에게 히브리인들을 단단히 경계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이는 히브리인들이 애굽인보다 숫자적으로 많다는 뜻이 아니라, 애굽 사회내에서 히브리인들이 차지하는 잠재적 역량과 또한 번식의 속도 및 체력의 강건함이 상대적으로 급속히 신장되었음을 밝히는 것이다. 더욱이 이 말은 히브리인들을 착취하고 탄압하기 위한 예비 조치로써 애굽인들에게 민족 감정을 고조시켜 반(反) 히브리 정책을 수월하게 시행키 위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1:10 자. [히, 하바] ‘오라’ 혹은 ‘가자’(RSV, come)란 뜻. 히브리인들을 규제하며 탄압하기 위해 애굽인들의 단합과 분발을 호소하는 말이다.

지혜롭게 하자. [히, 니트하크마] ‘기민하게 대하자’(RSV, let us deal shrewdly)라는 뜻이다. 이는 히브리인들에게 더욱 학정을 베플어 그들의 번성을 억제시키자는 사악한 제안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을 해하려는 악인들의 꾀는 모두 허사로 돌아갈 뿐이다(에 9:24, 25, 시 140:8).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이민족(異民族) 힉소스의 침략을 받아 그들의 통치하에 놓인 바 있었던 애굽 왕조는 전략 요충지인 고센 땅에 역시 이민족인 히브리인들이 거주하는 것을 몹시 꺼려했다. 더구나 그 족속이 급속히 번성하자, 만일 전쟁시 그들이 침략족에 협조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나갈까. ‘탈출할까’(living Bible, escape out), ‘빠져나갈까’(KJV, get up out) 등이 정확한 번역이다. 본래 히브리인들은 천성적으로 근면, 성실했기 때문에, 애굽은 그들을 강제 노역시킴으로써 막대한 이득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애굽 통치자에게 있어서 히브리인들의 노동력 보존은 제일 큰 과제 중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본 절에서 애굽 왕조가 히브리인 압제 정책을 꾀한 두 가지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즉 그것은 (1) 애굽에 동화되지 않을 뿐 아니라 날로 이민족 히브리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으며 (2) 히브리인의 거주지가 곡창지대이자, 외세와 접촉할 수 있는 변방 지대라는 점에서 그늘의 이국에로의 탈주 가능성 또는 외세와 결탁하여 애굽에 항거할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1:11 감독들. [히, 사레 밋심] 소수의 고위층 ‘노예 관리자들’(Slavemasters)을 가리킨다. 당시 감독자들 밑에서 히브리인들의 노역을 관할한 자들은 두 부류였다. 하나는 애굽 출신 관리로 ‘간역자’라 불리웠고, 다른 하나는 히브리 출신 하급 관리로 ‘패장’이라고 불리웠다(5:6, 14). 이러한 조직적인 관리로 인해 히브리인들의 고통은 가중되었다.

괴롭게 하여. 이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아나’는 (위협적인 눈으로) ‘감시하다’, ‘강탈하다’, ‘고통을 가하다’란 뜻이다. 이는 일찍이 아브람에게 하신 여호와의 예언 중에 등장하는 말과 동일한 표현이다(창 15:13). 이처럼 바로는 대규모 건축 사업을 일으켜 돌, 진흙, 물 등의 무거운 짐을 져야하는 고된 사역만을 골라 히브리인들에게 부과함으로써 인구 증가를 억제하고 그들의 번성에 제동을 걸고자 하였다.

국고성. 이는 다음과 같은 용도를 가진 성(城)이다. (1) 변방에 설치되어 유사시 군량이나 병기를 현지에서 신속히 조달할 수 있도록 미리 비축해 두는 창고이다. (2) 타작한 곡식을 보관하는 창고로써 무역 또는 기근을 대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3) 세금을 거둬들여 일차적으로 보관했던 곳이다.

비돔. ‘좁은 장소’란 뜻의 지명으로 그 위치는 나일 강과 아라비아만을 연결하는 운하 연안지역으로 추정된다. 그 이상에 대해선 알려진 바 없다.

라암셋. 애굽의 태양신 ‘라’(Ra)와 관련된 지명인 듯하며, 고센 지역내에 위치한 비돔 북방의 어느 지점으로 추정된다. 이 지명은 ‘라암셋’이라는 왕의 명칭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Fürst).

바로. [히, 파르오] 애굽어로 ‘큰 집’(great house)이라는 뜻으로 애굽 왕에 대한 공식 명칭이다. 아마도 왕이 큰 궁궐에 거처했기 때문에 이 호칭이 사용된 듯하다(창 12:15).

 

1:12 학대를 받을수록. [히, 웨카아쉐르 예안누 오토] ‘그들이 그를 학대할수록’이란 뜻이다. 여기서 ‘그’(오토)는 이스라엘 자손을 가리키는 남성 단수 3인칭 대명사이다. 이처럼 성경에는 이스라엘을 남성 단수로 호칭한 경우가 많다(20:1-17, 신 6:2-13). 이러한 표현 속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일대일로 만나시며 인격적 교제를 나누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이 내포되어 있다. 아울러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12 지파로 형성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의 신앙 공동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다.

근심하여. 원뜻은 ‘ … 에서 분리되다’ 인데 여기서 ‘원망하다’(민21:5), ‘미워하다’(왕상 11:25), ‘두려워하다’ 등의 뜻이 파생되었다. 결국 이것을 종합하면, 애굽인들은 히브리인에 대하여 크게 경멸한 동시에 극한 공포를 느꼈던 것이다. 한편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조롱과 멸시의 눈총을 던지는 동시에 또한 두려움을 느낀다(에 8:17, 9:3).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을 두려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 합당한 자세가 아니다(민 13:25-14:10).

 

1:13 엄하게. [히, 베파레크] 이는 가루가 될 정도로 무자비하게 빻고 짓이기는 상태를 가리키는 갈대아어 ‘페렉’에서 유래하였다. 결국 이 말은 ‘가혹함으로’(with harshness)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이것은 애굽의 작렬하는 태양과 매서운 채찍 아래서 고된 노역을 했던 히브리인들의 기진한 모습을 연상케 한다.

 

1:14 어려운 노동으로. ‘괴로운 굴레로’(KJV, with hard bondage)라는 뜻이다. 이는 애굽인이 이스라엘 백성을 굴레 씌운 것처럼 취급하여 중노동시켰다는 뜻이다.

괴롭게 하니. [히, 마라르] ‘맛이 쓰다’는 뜻의 ‘마라’에서 유래하였다. 이는 육체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극심한 고통을 가하는 상태를 가리킨다(룻 1:13, 슥 12:10). 결국 이스라엘은 이미 사람다운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후일 출애굽 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지고 한 사실(민 14:3, 4)로 보아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무지 몽매함 또한 짐작할 만하다.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 애굽인들은 큰 구조물들(피라밋, 궁궐 등)을 주로 돌로 건축한 반면, 일반 건축물들(성벽, 울타리, 무덤, 가옥 등)에는 흙 벽돌을 사용하였다고 한다(Herodotus).

농사의 여러 가지 일. 정지된 농토에서의 농사라기 보다 새로 수로(水路)를 파고 개간하는 등의 중노동을 일컫는다(Josephus). 본래 유목민이었던(창 47:6)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 왕 바로가 이 같은 노역을 하게 한 것은 단순한 노동 착취 이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곧 일종의 민족 정신과 기질을 변화시키려는 문화 식민 정책이었다.

 

1:15 산파. [히, 얄라드] ‘얄라드’는 ‘해산하다’, ‘출산을 돕다’란 의미의 동사로도 사용된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와 그리고 주석가 칼리쉬(Kalisch)는 여기 산파들을 히브리 여인의 해산을 돕는 애굽인들이라 보았으나, 맛소라 본문에는 분명 히브리 산파라 기록되어 있으며 문맥상으로도 이것이 훨씬 타당하다. 그리고 산파들의 이름인 ‘십브라’(아름답다는 뜻)와 ‘부아’(소리치는 자란 뜻)가 함족이 아닌 셈족 계통의 이름이라는 점에서 이를 뒷받침한다(G. Rawlinson).

 

1:16 해산을 도울 때에 … 살펴서. ‘그녀들이 조산대 위에 있는 것을 볼 때에’(RSV, when you … see them on the birthstool)를 가리킨다. 요즈음도 애굽에서는 분만 예정 2, 3일 전에 출산부의 집에 조산대를 비치해 놓는다. 이 조산대는 산모의 출산 고통을 덜기 위해 고안된 특수 의자이다. 한편 조산대를 ‘산아 목욕통’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Lange). 이는 남자 아이를 구별하여 죽이라는 바로의 명령에 근거할 때 조산대를 산아의 성별 구분이 용이한 목욕통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이다.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바로의 이 유아 살해 명령은 히브리인들을 생육, 번성케하신(7절) 절대자 여호와께 대한 정면 도전이다. 인간의 생명은 오직 여호와만 관할할 수 있는 고귀한 것이다. 따라서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할 때는 반드시 그에 준하는 하나님의 징계가 따랐다. 율법서에 나오는 살인자 사형 제도가 그 한 조치이다. 한편 하나님은 80여 년 후 이스라엘의 출애굽시 애굽 장자들을 몰살시킴으로써(12:29, 30), 생명의 존엄성을 파괴한 애굽인들에게 당신의 준엄한 심판을 집행하셨다.

 

1:17 두려워하여. [히, 티레나] 기본 동사 ‘야레’라는 말은 ‘놀라다’는 의미 외에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상급자 혹은 하나님에 대해 ‘경외심을 갖는다’는 뜻이다(레 19:3, 14). 성경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요(잠 1:7, 9:10), 참신앙의 자세라고 교훈한다(히 11:27).

어기고. 고대 전제 군주 국가에서 왕의 명(命)은 곧 국법과 같았다. 따라서 그것을 어긴 자에게는 죽음의 형벌이 주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군주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할 줄 알았던(마 10:28) 이들 히브리 산파들에게서 우리는 위대한 신앙의 일면을 보게 된다.

 

1:18 불러.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라’의 기본 개념은 ‘외치다’(부르짖다)란 의미이다. 바로의 노발대발하는 모습을 선연히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경황에서도 심문대 앞에 선 히브리 산파는 침착하게 합리적 변명을 고할 수 있었다(19절). 한편 기생 라합의 경우(수 2:5, 6)와 마찬가지로 이들 히브리 산파들의 백색 거짓 변명을 우리는 제9 계명을 어긴 것이라고 우길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역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오직 절대 선(summum bonum)을 추구하시며 또한 당신의 백성에게도 그것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1:19 건장하여. ‘강한’, ‘활기찬’, ‘정정한’이란 뜻이다. 산파들의 이러한 변명은 결코 거짓말만은 아니었다. 실제 히브리 여인들은 혼자서도 별 무리없이 해산하고 뒷처리까지 할 수 있는 체력을 지니고 있었다.

 

1:20 은혜를 베푸시니. ‘잘해 주셨다’(deal well), ‘선대하셨다’(욥 24:21)란 의미이다. 실로 하나님의 백성을 선대한 자는 하나님께서 선대하신다(룻 1:8).

 

1:21 집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히, 와야아스 라헴 바팀] 여기서 ‘흥왕하게 하다’란 뜻의 ‘아사’는 ‘일으키다’, ‘만들다’, ‘제공하다’는 뜻이다(삼하 7:11). 그러므로 위의 구절은 ‘그가 그들을 위하여 집들을 만드셨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집을 만들다’ 또는 ‘집을 세우다’(바나 바이트)라는 말은 ‘가정을 이룬다’는 의미를 지닌다(창 30:30, 시 127:1).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산파들의 가정을 측복하셔서 가업을 번영케 하셨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가정은 흥왕할 수밖에 없다(삼하 7:11).

 

1:22 나일 강. [히, 하예오라] ‘수로’를 뜻하는 ‘예오르’에 정관사 ‘하’가 붙은 말로써 곧 익히 알고 있거나 특정한 수로를 뜻한다. 여기서는 애굽인들이 신성시했던 ‘나일 강’을 가리킨다. 나일 강에는 목욕을 할 만한 안전 지대도 있었지만(2:5), 악어가 많이 서식하고 있었으므로(겔 29:3) 하수에 던져진 남자 아이들은 익사하지 않더라도 악어의 밥이 될 위험이 컸다. 이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바로는 인간의 고귀한 생명을 멸시하는 만행을 서슴없이 자행하였다.

딸이거든 살려두라. 여자는 고대 사회에서 노동력과 출산력을 겸비한 값진 재산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소중히 다뤄졌다. 더욱이 그들은 신체 특성상 연약하여 반란의 위험이 없었을 뿐 아니라, 결혼을 통해 충분히 흡수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졌기에 죽이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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