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주석, 창세기 4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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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 요셉이 …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요셉은 지금까지 마음 속에 일어나는 벅찬 감정을 감추기 위하여 노력하였다(42:24, 43:30). 왜냐하면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번 형제들의 진심을 시험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거의 형제들이 회개하고 있음을 확인하였고(42:21, 44:16) 또한 아버지 야곱과 동생 베냐민에 대한 그들의 사랑이 순수하다는 것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감정을 억제할 필요가 없었다(44:33, 34). 따라서 그는 드디어 자신이 누구인 것을 형제들에게 알리게 된다.

소리질러. [히, 카라] 격한 감정으로 부르짖듯(시 34:15) ‘선언하는 것’(렘 34:15)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이 요셉의 총리로서의 품위를 손상시켰다고 볼 수 없다.

 

45:2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당시 요셉이 하나님의 은혜와 형제들의 사랑에 얼마나 감격했는지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억제되었던 감정이 폭발하자 요셉에게서 막을 수 없는 울음이 터져나왔다. 이는 대국의 실권자 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전히 순수한 인간미를 잃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동시에 그가 엄격한 애굽의 총리에서 양치던(37:2)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로 돌아갔음을 뜻한다.

궁중에 들리더라. 이에 대하여 랑게(Lange)는 요셉의 사저(私邸)가 궁중과 가까운 곳에 있었던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의 주장처럼 요셉의 하인(하급 관리) 중 하나가 요셉의 울음 소리를 듣고 바로에게 보고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다.

 

45:3 나는 요셉이라. 얼마나 드라마틱한 말인가. 먼 이국에 노예로 팔았던 동생이 이제는 자신들의 구주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보복을 위한 심판자로서가 아니라 화해를 위해 용서하는 자로 나타났는데 그것은 저들이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죄인을 용서하시는 예수의 사랑을 연상할 수 있다(요 3:17).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요셉은 이미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안부를 확인한 바 있다(시 43:27, 28, 44:17-34). 따라서 여기에 나오는 질문은 아버지의 생존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친에 대한 애정의 자연스런 발로로 봐야 한다. 특히 이전에는 ‘그 노인’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으나(43:27) 이 구절에서는 ‘내 아버지’란 말을 씀으로써 더욱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Alford).

형들이 … 대답하지 못하는지라.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이 살아있다는 것과 그것도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는 현재 모습에 놀랐을 뿐만 아니라, 이전에 그에게 범한 죄로 인하여 두려워하였을 것이다(37:18-28).

 

45:4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요셉은 자신들의 죄로 인하여 당황하는 형제들을 따뜻한 말로 위로하였다. 지금까지는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서 그들을 대하였으나 여기서는 그들의 동생으로 처신한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라는 말은 요셉이 그들을 여전히 형으로 모시는 겸손을 보인 것이다.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요셉은 형제들이 지은 죄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언급하였다. 왜냐하면 형제들이 이 문제를 가장 부담스럽게 생각하였으므로(42:22, 44:16). 속히 해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요셉의 이 말은 그들의 잘못을 추궁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에서 나온 말이다.

 

45:5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한탄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라’의 원뜻은 ‘불타다’로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심히 애태우며 안타까워 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요셉은 형제들의 걱정을 해소시켜 줄 뿐만 아니라 위로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은혜로 역경을 이긴 자가 갖는 넓은 자비심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마 18:21-35). 우리는 요셉의 이러한 행동에서 형제 사랑에 대한 전형을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이 …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자신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로 되어진 일임을 거듭 증거한다. 그러나 요셉의 형들은 먼 후일까지도 그 불안감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본다(50:15).

 

45:6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당시에 가뭄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보여 준다. 이와 같이 밭을 갈지도 못낼 흉년이 칠 년간 계속된다면 많은 사람이 죽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5절에 나오는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라는 요셉의 말은 적절한 표현이다.

 

45: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이것은 야곱 가족의 육체적 구원만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장차 야곱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통한 영적 구원까지도 내포한 말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후손’으로 번역된 ‘쉐에리트’는 ‘남은 자’(a remnant)를 뜻하는데, 이 남은 자는 어떠한 환란과 어려움 중에서도 결코 멸망당하지 않고(사 1:9, 6:13, 렘 23:3) (1) 이스라엘의 민족적 존재를 유지하여 (2) 그리스도의 족보를 형성하게 될 언약으로 인침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후손, 즉 남은 자는 거룩한 성도의 무리 곧 ‘교회’로 승화되었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피로 사신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결코 멸망당함 없이 구원받을 수 있다(요 6:39).

 

45:8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 하나님이시라. 이 말은 요셉을 종으로 팔아 넘긴 죄가 하나님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비록 형제들이 악한 마음으로 범죄하였으나 하나님이 형제들의 범죄를 이용해서 선한 목적을 이루셨다는 의미이다. 동일한 문제가 ‘하나님이 바로를 완악하게 하였다’라는 표현에서도 제기된다(출 4:21).

하나님이 나를 바로의 아버지로 … 삼으셨나이다. 요셉은 또 다시 하나님의 섭리를 강조한다. 그가 애굽에 와서 갑자기 지도자가 된 배후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여기서 ‘바로의 아버지’라는 말은 ‘바로가 가장 신임하는 상담자요 친구’라는 의미이다(Kalisch).

 

45:9 하나님이 … 세우셨으니. 요셉은 계속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철저한 요셉의 신앙이자 역사관이다. 즉 이미 아브라함에게 예언된 바 있는 히브리인들의 애굽 생활(15:13, 14)의 계기가 되는 시점에서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자신의 아버지에게 이해시키려 하고 있다.

지체말고 … 내게로 내려오사. 요셉이 바로와 의논하지 않고 그의 가족들을 초대한 것은 애굽에서 그의 지위가 확고함을 보여 준다. 이 구절에서 요셉은 형제들을 재촉하여 가족들로 하여금 ‘지체말고’ 내려오라고 부탁한다. 요셉이 이와 같이 서두른 것은 야곱의 가족들이 가나안에서 고생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그들이 속히 내려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15:13-16).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신속히 움직이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자세이다.

 

45:10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요셉은 고센 땅을 야곱의 가족들에게 주어 애굽에 정착하게 하겠다는 뜻를 밝혔다. 특히 그가 고센 땅을 택한 이유는 현재 자기가 살고있는 곳과 가깝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편 고센은 나일 강 북부에 있는 하(下)애굽 지역으로 수에즈의 이스드무스(Isthmus)와 인접해 있는데 매우 비옥한 곳이었다(47:6). 한편 70인역에서는 고센과 라암셋이 동일한 지역의 명칭으로 사용되기도 했다(46:28). 그리고 출 1:11에 의하면 비돔과 라암셋이라는 국고성이 이 지역에 건축되었음도 알 수 있다(Josephus).

 

45:11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하나님 앞에 신실했던 요셉은 인간의 도리도 다하고 있다. 이 구절은 성경에서 강조되는 효도(출 20:12, 레 19:3, 신 27:16, 잠 30:17, 마 15:4 등)의 실례 가운데 하나이다. 성경에는 요셉 이외에도 다윗(삼상 22:3), 솔로몬(왕상 2:19), 엘리사(왕상 19:20), 요나단의 자손들(렘 25:8), 예수(눅 2:51, 요 19:25, 26) 등의 훌륭한 효도의 모범을 보여 주고 있다.

 

45:12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입이라. 자신의 말을 확신시키는 히브리어의 문학적 표현이다. 즉 요셉은 아버지와 그의 가족들을 애굽에 이주시키려는 계획이 형제들을 통하여 분명히 야곱에게 전달되기를 원한 것이다. 이에는 아버지 야곱이 요셉 자신의 말은 믿지 않더라도 그 형제들이 본 바를 말하며 또한 베냐민이 본 것을 말하면 믿으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다.

 

45:13 속히 모시고 내려오소서. 요셉은 거듭해서 이미 늙은 야곱을 모시고 내려올 것을 형제들에게 당부한다. 뿐만 아니라 야곱을 설득시킬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즉 그들이 애굽에서 목격한 모든 사실들을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라는 것이다. 특히 여기서 사용된 ‘속히’라는 단어는 9절에서도 쓰인 말인데, 일을 급히 진행시키려는 요셉의 마음을 잘 보여 주는 표현이다.

 

45:14 목을 안고 우니라. 요셉과 베냐민의 만남이 감동적이다. 둘은 베냐민이 아주 어렸을 때 헤어졌다. 따라서 죽은 줄 알았던 형과 동생의 상봉은 감격적일 수 밖에 없었다.

 

45:15 또 형들과 입맞추며 안고 우니. 이제 요셉은 어린 베냐민 뿐만 아니라 모든 형제들과도 포옹을 한다. 이러한 요셉의 행동은 이전에 그의 형제들이 그에게 범하였던 모든 잘못들에 대한 용서를 직접 몸으로 체현해 보인 것이다. 이것을 통하여 그의 형제들은 비로소 죄책감에서 해방되고 마음에 평안을 얻어서 말할 수 있었다.

형들이 그제서야 요셉과 말하니라. 요셉은 그의 모든 회포를 진실된 울음으로 표현하였다. 그의 친절한 행동과 울음이 있은 후 형제들은 긴장을 풀고 요셉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드디어 요셉의 진실함이 그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죄인된 인간과 화해한 것과 같이(고후 5:18, 엡 2:16, 골 1:20) 인간이 그 형제와 화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마 5:24).

 

45:16 바로와 … 기뻐하고. 요셉의 형제 상봉은 애굽인에게도 기쁨을 주었다. 바로가 기뻐하였다는 것은 요셉이 바로의 완전한 신뢰와 사랑을 받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며, 그의 신복들조차 기뻐한 것은 그가 아랫 사람들에게도 존경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는 이 구절에서 당시 요셉이 애굽에서 어떠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성도들은 그 신앙과 인격의 향기를 주위 사람들에게 풍겨야 한다(마 5:16, 고후 2:15).

 

45:17 없음.

 

45:18 너희 아버지와 너희 가족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이 말은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한 약속(9, 10절)과 일치한다. 즉 이제 그 나라의 최고 통치자인 바로가 요셉의 약속을 재가하여 보증한 것이다.

애굽의 좋은 땅. 애굽 영토 중에서도 가장 비옥하고 수려한 곳 중의 하나인 고센을 가리킨다(Lange).

 

45:19 애굽 땅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애굽에는 평지와 광야가 많았으므로 일찍이 말과 수레가 발달되었다(50:9, 출 14:6, 7). 여기서 요셉 가족에게 왕실 수레 사용이 허가된 것은 그들을 귀빈으로 모신다는 증거다. 이처럼 애굽 최고 통치자의 관대한 배려는 야곱 가족이 애굽 이주를 결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너희 아버지를 모셔오라. 바로는 야곱의 가족들이 요셉의 초청(9절)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입국 허가를 내렸음을 밝히고 그 증거로 왕실 수레 사용을 허가하고 있다.

 

45:20 너희의 기구를 아끼지 말라. 야곱의 가족들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들은 애굽에 모두 다 있으므로 그들이 지금까지 사용한 기구들을 가나안에 그대로 두고 오는데 주저하지 말라는 뜻이다.

 

45:21 요셉은 그의 가족들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다. 그 가운데서도 베냐민과 야곱에게는 더 많은 선물을 주었다. 이것은 요셉의 사랑이 이 두 사람에게는 더 크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은혜도 어떤 사람에게는 특별히 더 많이 주시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받는 입장에는 값없이 주시는 것이므로 불평없이 감사함으로 받아야 한다(마 25:14, 15, 요 21:21, 22).

 

45:22 없음.

 

45:23 없음.

 

45:24 길에서 다투지 말라. ‘다투다’에 해당하는 ‘라간’은 ‘원망하다’, ‘불평하다’, ‘반역하다’는 뜻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응어리진 감정으로 인하여 투덜대거나 대드는 것을 가리킨다. 혹자는 이 말에 대하여 요셉이 그들을 해칠까 걱정하지 말라는 충고로 이해했다(Gesenius, Kalisch). 그러나 이 말은 형제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요셉을 팔았던 사건에 대해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싸울까 염려해서 하였던 충고라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미 르우벤이 그랬듯이(42:22) 그들 가운데 비교적 죄가 가벼운 자들이 다른 이들을 쉽게 책망할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45:25 없음.

 

45:26 믿지 못하여. 혹자는 야곱이 너무 기쁜 나머지 반신 반의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Bush). 그러나 (1) 이미 야곱은 요셉의 죽음을 굳게 믿고 있었고(37:33, 42:38, 44:28) (2) 애굽 총리에 대하여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으며(43:6, 14) (3) 세겜 사건 이후 그의 아들들을 불신하였기 때문에(34:30, 42:39) 그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어리둥절하더니. 이 말에 해당하는 ‘야팍’은 ‘힘이 빠지다’란 뜻이다. 야곱은 요셉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힘이 빠져 쇠약해진 것 같다. 아마도 예상하지 못한 소식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맥이 풀렸을 것이다.

 

45:27 수레를 보고서야 기운이 소생한지라. 믿지 아니하는 야곱에 대하여 아들들은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설명하며 여러 가지 정황을 알려 주었을 것이다. 이에 야곱은 점차 그들의 말을 믿게 되고 따라서 쇠잔했던 기운도 다시 회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요셉이 보낸 수레는 야곱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큰 역할을 하였음에 틀림없다.

 

45:28 이스라엘이 이르되 족하도다. 본문에서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표기된 것은 매우 의미 심장하다. 그가 아들이 없어진 것을 슬퍼했던 기간 중에는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제 그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소망이 가득차 있으므로 이러한 이름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하나님과 싸워 이김’이란 승리의 뜻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삶의 승리자가 된 그의 이름으로 적당한 것이다(32:28). 한편 여기서 ‘족하도다’는 말은 새롭게 솟구치는 소망과 기쁨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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