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 그 후에. 문자적으로 ‘이 말씀들 후에’란 뜻으로 39장에 기록된 요셉의 투옥 사건 이후를 말한다. 즉 요셉이 보디발 아내의 무고(誣告)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투옥된 후를 가리키는데 이때는 요셉의 나이 약 27세 가량으로 애굽으로 팔려온 지 10년쯤 된 때이다(37:2, 41:1, 46).
술 맡은 자.[히, 마쉬케] ‘마시게 하다’, ‘물을 대다’란 동사 ‘샤카’의 사역형 분사로써 ‘다른 사람에게 술을 마시게 하는 자’를 뜻한다. 이는 단순히 술을 따라 주며 시중 드는 일 이상으로 왕의 자문(諮問)과 국정(國政)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자로서 오늘날의 비서실장직에 해당되는 자이다. 한때 느헤미야도 페르시아 왕실에서 이런 관직을 맡은 일이 있었다(느 1:11, 2:1).
떡 굽는 자. [히, 오페] ‘떡을 굽다’란 ‘아파’에서 유래한 말로 이 직책은 제례 의식을 중요시하는 고대 근동의 신정국가에서 제의(祭儀) 음식(14:18, 레 24:5)과 관련되어 신성시 여겨졌다. 특히 앗수르에는 떡 굽는 관원장의 이름을 딴 지명도 있었다고 한다.
40:3 친위대장의 집 안에. 보디발의 집을 가리키며 요셉이 갇혀 있는 곳이다(37:36, 39:20). 따라서 보디발은 친위대장으로서 관저(官邸)에 살았던 것 같다.
옥. [히, 미쉬마르] ‘지키다’ 혹은 ‘보호하다’란 뜻을 가진 동사 ‘샤마르’에서 파생된 말로 ‘보호소’를 의미한다. 이처럼 전직 고위 관리들이 갇힌 옥을 ‘보호소’라 칭한 점으로 보아 그들은 일반 죄수들보다 훨씬 더 나은 대우를 받은 것 같다.
40:4 친위대장이.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던 친위대장이 등장한 것은 관원장들의 신분의 중요성을 나타낸다. 즉 그 두 사람은 국가의 고위직에 있었던 관계로 저들이 복직될 경우 친위대장에게 정치적 특혜를 베풀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문자적으로 ‘그들과 함께 있도록 (요셉을) 임명하였다’란 뜻이다. 이것은 비록 보디발이 요셉을 옥에 보내었지만 아직도 그에 대한 정리(情理)와 오히려 전보다 더 깊어진 신뢰를 갖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섬겼더라. [히, 샤라트] 중요한 인물이나 하나님을 최대한의 봉사와 충성으로 섬기는 것을 뜻한다. 즉 여호수아가 충심(忠心)으로 모세를 섬기듯(출 24:13, 33:11, 수 1:1), 엘리사가 진심으로 엘리야를 수종들듯(왕상 19:21), 천사들이 뜻을 받들어 여호와를 섬기듯(시 103:21) 요셉이 두 관원장을 섬기기를 마치 하나님을 섬기듯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여 섬겼음을 보여 준다.
40:5 꿈을 꾸니. 일반적인 꿈이 질병이나 일상사에 대한 심리적 혹은 정신적 반응 현상인 것에 비해 두 관원장은 자신들의 꿈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두 관원장 모두 똑같이 같은 날, 같은 밤에 비슷하면서도 내용이 상이한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 꿈의 사건은 요셉의 생애에 발생한 3대 사건 중 두 번째에 해당된다(37:6).
그 내용이 다르더라. [히, 이쉬 케피트론 할로모] ‘사람’을 뜻하는 ‘이쉬’와 ‘해석’ 혹은 ‘해몽’의 뜻을 지닌 ‘피트론’에 ‘ … 을 따라서’라는 전치사 ‘케’가 붙고 ‘꿈’을 의미하는 ‘할롬’에 3인칭 접미어가 합쳐져 ‘각기 의미를 지닌 꿈’(RSV, each dream with its own meaning)을 꾸었다란 말이다. 이처럼 두 관원장이 같은 날 밤 똑같이 꿈을 꾸었지만 그 내용과 해석에 있어서는 전혀 달랐던 이유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1) 그들의 꿈이 우연적이거나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한 섭리적 현상임을 보여 주기 위함과 (2) 하나님께서 그 꿈 해석의 열쇠를 요셉에게 주어 그의 예언자적 능력을 분명히 입증시킴으로써 그를 바로 앞으로 이끌어(41:9-13) 애굽의 총리로 등용시키기 위한 것이다.
40:6 아침에 … 들어가 보니. 같은 감옥 안에서도 두 관원장은 전직 고관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일반 죄수와 달리 특별 처소를 사용하였다. 따라서 여느 날처럼 요셉은 수종들기 위해 저들의 감옥으로 들어간 것이다.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옥에 갇힌 상태에서 꾼 범상치 않은 꿈으로 두 관원장은 자신들의 운명에 관한 불길한 예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이것은 고대 근동 지방에서 꿈은 특별한 뜻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고, 적절한 해석을 통해 미래의 사건을 예견할 수 있다고 믿어졌으나 해석할 수 없는 데서 기인된 불안의 빛이었다.
40:7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문자적으로 ‘오늘 어찌하여 당신들의 얼굴들이 악합니까’란 뜻이다(Pulpit). 이처럼 자신이 섬기는 자의 얼굴 빛까지도 살리는 요셉의 깊은 관심 표명은 그의 충실성을 나타낸다. 만일 그러한 질문이 없었더라면 그를 영광의 길로 인도한 일련의 사건들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깊은 관심과 존경심을 가지고 무엇인가 돕고자하는 이 봉사 정신은 요셉의 성공의 비결이었다.
40:8 해석할 자가 없도다. 당시 애굽에는 신탁(神託) 임무와 꿈 해석 등을 전문으로 하는 박사와 술객 등이 있었다(41:8). 그러나 지금은 갇힌 몸이라 그들을 면회할 길이 없다는 두 관원장의 하소연이다.
해석은 하나님께. 일찍이 하나님이 주신 꿈(37:5-9)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요셉은 두 관원장의 꿈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기인한 초자연적 성격의 꿈이라는 것을 신앙의 내적 확신을 통해 분명히 믿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주장은 다신론자인 애굽인들에게도 꿈을 주관하는 어떤 신을 의미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당시 애굽에서 꿈 해석은 고도의 학문적 기술을 요하는 난해한 분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일개 비천한 외국인 종의 입에서 이처럼 확신에 찬 질문이 나왔다는 사실은 화려한 경력과 학식을 가졌을 관원장들에게 분명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40:9 포도나무. 혹자(Plutarch)에 의하면 요셉 당시 애굽에는 아직 포도가 재배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애굽인들이 포도나무를 경작하고 포도주를 만들어 마셨다는 기록은 고대의 기록 및 당시대의 기념비에 나타난 그림 등의 외증(外證)과 성경 자체의 내증(內證)을 통하여 볼 때(민 20:5, 시 78:47)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40:10 본문은 매우 빠른 속도로 어떠한 상태를 목표로 하여 질주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장면이다. 즉 포도나무의 상태가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으로 싹이 트자마자 꽃이 피고 바로 그 직후 포도송이가 익는다. 성경에서 포도나무 자체가 좋은 결실을 상징하듯(시 128:3, 호 2:15) 이것은 어떤 커다란 성취를 향해 촉박하고 신비스러운 힘이 그 계획한 일을 바쁘게 전개시키고 있다는 인상을 새겨 준다.
세 가지가 있고. 사흘을 암시하는 상징이다(12절). 즉 삼 일 후는 바로의 생일인데 그 날에는 전례에 따라 죄수를 석방하기도 하고 처형하기도 하였다.
40:11 내가 … 따서 … 짜서 … 드렸노라. 매우 빠른 속도로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즉 원래의 영광스러운 자리에로의 복귀가 멀지 아니했다는 소망을 마치 화면을 비춰주듯 보여준다.
즙. 히브리어로 ‘야인’이라 불리우는 포도주(Wine)을 뜻한다.
40:12 그 해석이 이러하니. 머뭇거림도 없이 곧 바로 해몽을 하였다는 사실은 요셉이 하나님의 지혜의 영으로 충만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40:13 머리를 들고. 수치스런 상태에서 영예로운 지위로 올리움을 받는 것을 뜻한다. 즉 사면(赦免)과 복권(復權) 및 은택 받음을 뜻하는 히브리인들의 관용적 표현이다(왕하 25:27, 렘 52:31).
40:14 잘 되시거든. 꿈 해석대로 ‘일이 잘되어 형통하게 되면’(RSV, when it well with you)이란 뜻이다.
40:15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히브리인의 문자적인 뜻은 ‘건너온 자’란 뜻으로 아브라함에게 맨 처음 적용되었다(14:13). 히브리(Hebrew)란 명칭이 사용된 경우는 (1) 이스라엘 민족이 타(他)민족에게 자신들을 소개할 때(43: 32, 욘 1:9). (2) 타(他)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을 부를 때(출 2:6) 사용되었다. 한편 여기서 요셉이 자신을 히브리인으로 소개한 이유는 셈과 에벨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10:21, 11:26)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언약의 백성임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렘 34:14).
40:16 그 해석이 좋은 것을 보고. 미덥지 않게 생각하던 떡 굽는 관원장이 요셉의 희망적인 해몽을 듣자, 자신의 꿈도 길할 것이라는 기대를 걸게 된 까닭은 두 관원장의 꿈 사이에 현저한 유사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세 광주리도 역시 삼 일을 의미한다(18절). 당시 애굽의 남자들은 물건을 머리에 이어 나르고 여자들은 어깨에 메어 날랐다. 그런데 삼 일을 나타내기 위하여 각각 그 사람과 관련이 깊은 사물이 이용된 점이 매우 흥미롭다.
40:17 각종 구운 음식. 빵 굽는 자가 만든 여러 가지의 과자류와 빵 종류를 가리킨다.
새들이 … 먹더라. 그가 새를 쫓아 버리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흉조의 원인이었다. 결국 관원장은 바로의 생일날에 참수형을 당하여 새들에게 먹힘으로 이 꿈은 실현되었다.
40:18 그 해석은 이러하니. 비록 부드러운 음성의 해석이나 그 이면(裏面)에는 하나님 뜻에 대한 한 치의 틀림도 없는 계시가 담겨 있었다(19절).
당신의 머리를 들고. [히, 이사 에트 로쉬카 메알레카] ‘당신의 머리를 당신 위로 들어 올릴 것이다’(RSV, [pharaoh] will lift up your head from you)란 말. 즉 ‘(바로가) 너를 교수형에 처할 것이다’라는 뜻이다. 이처럼 요셉은 그 표현 양식에 있어서는 정중하였지만 그 전하는 메시지에 있어서는 가혹하리만큼 단호하였다(딤전 4:12, 계 22:18, 19).
40:19 나무에 달리니 … 먹으리이다. 죽임당한 죄수의 시신을 땅에 묻지 않고 나무 기둥에 붙들어 매어 죽음에 수치를 더하는 극형 집행 방법이다(신 25:1-3, 수 10:26). 이러한 제도는 페르시아와 카르타고인(Carthaginians)들에게서도 전해진다.
40:20 바로의 생일. 이날은 하나님께서 꿈 해석의 성취를 위한 날로 이미 예비한 날이었다. 왜냐하면 이날에는 거대한 잔치와 함께 각종 죄수들이 왕의 특별사면을 받기도 하고 처형당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편 이와 비슷한 예(例)는 신약 시대 헤롯의 생일에 침례 요한이 처형당했던 사실을 들 수 있다(마 14:6-11).
40:21 바로의 손에. [히, 알카프 파르오] ‘ … 위에’(upon)를 뜻하는 전치사 ‘알’이 ‘손바닥’(출 9:29, 사 1:15)을 나타내는 ‘카프’에 붙고 ‘바로’인 ‘파르오’가 합쳐져 ‘바로의 손바닥 위에’란 뜻이다. 이것은 본래 애굽의 잔은 손잡이가 없기 때문에 손바닥 위에 올려 놓았던 당시의 관습을 반영한다.
40:22 매달리니. [히, 탈라] ‘매달다’, ‘걸다’란 뜻으로 ‘그가 말뚝에 찔려 꿰어졌다’(41:3, 신 21:22, 삼하 4:12)란 말이다. 이러한 처형법은 히브리 왕조시대의 앗수르 부조(浮彫)에 종종 나타난다. 이처럼 시신들을 나무에 매달거나 말뚝에 매다는 행위는 저들을 신에게 저주받은 자들로 간주하기 때문에 그러한 자들로 신의 축복이 깃든 땅을 더럽히지 않기 위한 의도에서였다(신 21, 22장).
40:23 요셉을 기억하지 않고 잊었더라. 꿈이 길조(吉兆)로 풀이 되었을 때(12, 13절) 아마 술 관원장은 기쁜 마음으로 요셉의 부탁(14, 15절)을 반드시 들어주겠노라고 거듭 맹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형편이 바뀌자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요셉은 인간의 기억 속에선 사라졌을지라도 하나님의 기억 속에는 뚜렷이 남아 있었다(시 27:10, 사 49:14-16). 이 사건 이후 요셉에게 닥쳐온 2년이란 세월은 사랑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연단 기간이었다(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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