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주석, 창세기 3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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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 요셉이 … 애굽에 내려가매. 겉으로 보기에는 요셉이 대상들에 이끌려 애굽까지 온 것 같으나 사실은 하나님의 섭리에 이끌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15:12-15). 한편 이 시기는 애굽의 중왕국(B.C. 2000-1800) 말기, 즉 12왕조 시대인 B.C. 1898년 경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22년 후 야곱이 애굽으로 옮겨간 때도 이 왕조에 해당되는 B.C. 1876년경으로 추측된다.

 

39:2 여호와께서. 이후 애굽에서의 요셉의 성공은 족장들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언약(15:13-16, 26:4, 28:14)이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성취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언약의 신을 강조하는 여호와 명칭이 사용되고 있다(Quarry).

형통한 자. [히, 이쉬 마츠리아흐] ‘사람’을 뜻하는 ‘이쉬’와 ‘번성하다’란 뜻을 지닌 동사 ‘찰레아흐’의 사역형 분사가 합쳐져 ‘번영의 사람’이란 의미이다. 이것은 요셉이 하는 일마다 눈에 띄도록 현저하게 나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현상은 그 주위 사람들에게 분명히 요셉과 함께 하는 어떤 신적 축복과 가호가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감지케 했다.

 

39:3 그의 범사에. 문자적으로 ‘그가 하는 모든 일에’란 뜻. 이는 요셉이 모든 일에 신실하였음과 그 위에 하나님의 특별하신 축복이 따랐음을 보여 준다. 이처럼 성도는 어디서든, 또한 어떤 형편에 처하든 진실된 삶을 통해(골 3:22, 23, 딤전 6:1) 이방인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어 그들이 그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한다(마 5:13-16, 롬 14:18, 벧전 2:12).

 

39:4 섬기매. [히, 샤라트] ‘섬기다’, ‘봉사하다’란 뜻의 이 말은 (1) 중요한 인물, 주로 통치자에게 드려지는 개인적인 봉사나, (2)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 즉 제사장과 같은 사람들의 예배 사역에 사용되었다(출 28:35, 대상 6:17). 여기서는 전자에 해당되는데 특히 이 동사는 모세와 여호수아(출 24:13, 수 1:1), 엘리야와 엘리사(왕상 19:21)의 관계처럼 종과 주인과의 특별한 관계를 암시하고 있다.

가정 총무. 집안 전체 일을 관리하는 집사장(執事長)을 말한다. 애굽에서 발굴된 계산서, 문서 및 기타 자료 등은 당시 부잣집에 그러한 직책이 있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한편 이 직책은 엘리에셀이 아브라함의 집에서 봉사했던 지위와 같은 것이다(24:2). 이로써 하나님은 요셉으로 하여금 일하는 법을 익히게 하여 장차 애굽의 곡물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섭리하신 것이다.

 

39:5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마치 야곱으로 인해 라반의 집이 축복받은 것과 같다(30:27). 이것은 일찍이 아브라함과 체결한 언약에(12:3) 근거한 축복으로써, 은혜받은 자의 영적 영향력은 그가 몸담고 있는 현실의 모든 부분과 모든 사람에게 미친다는 사실을 잘 보여 주고 있다.

 

39:6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특별히 식사 문제를 간섭한 이유는 의식상 애굽인과 히브리인 간의 식사 규정이 달랐기 때문이다.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히, 로야다] 부정사 ‘로’와 ‘알다’란 동사가 합쳐진 말로 ‘알지 아니하였다’란 뜻. 즉 보디발이 요셉을 신임하여 자신이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것에도 관여를 하지 않을 만큼 요셉을 전적으로 신임하였다는 뜻이다.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문자적으로 ‘몸매가 좋고 얼굴이 미남이었다’는 뜻이다. 아마 미모였던 어머니 라헬을 닮았기(29:17) 때문인 것으로 이해되는데 원래 선조 아브라함의 가문은 아리따운 여인들을 처로 둔 집안이었다.

 

39:7 그 후에. 요셉이 보디발에게 팔린 지 약 10년 후, 즉 그의 나이 27세 되던 때이다(41:1, 46).

눈짓하다가. [히, 티사에트 에네이하] ‘들어 올리다’란 뜻을 지닌 동사 ‘나사’의 과거형과 ‘ … 를’ 의미하는 전치사 ‘에트’가 2인칭 여성 접미어가 붙은 ‘눈’인 ‘아인’과 합쳐져 ‘그녀가 (요셉을 향해) 눈을 들었다’란 뜻이다. 이것은 관심의 표명(表明)으로써 여기에 욕망이 개재될 때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3:6),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삼하 11:2) 비참한 결국을 초래한 것처럼 안목의 정욕으로(요일 2:16) 바뀜을 성경은 경고한다. 따라서 성도는 욥처럼 자신의 눈과 정결 언약을 세워야 한다(욥 31:1).

동침하기를. [히, 쉬크바] ‘눕다’란 뜻을 지닌 ‘샤카브’의 강의형 명령법으로 집요한 강요를 의미한다. 이는 이 요청이 한두 번에 그친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것이었음을 암시한다.

 

39:8 요셉은 세 가지 면에서 보디발 아내의 죄를 지적하며 그녀의 양심을 일깨우려 노력했다. (1) 상전과 종의 관점에서 주인의 신뢰를 저버리는 것이 얼마나 큰 악행인가를 인식시켜 주었고, (2) 윤리적 관점에서 그녀의 남편의 존재를 인식시켜 주었고, (3) 신앙의 관점에서 하나님 앞에서의 순결을 역설했다. 여기서 대인(對人)관계와 대신(對神)관계가 뚜렷이 정립된 요셉의 아름다운 신앙 인격을 엿볼 수 있다.

 

39:9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이 보디발이나 세상의 안목만을 두려워했다면, 그는 오히려 은밀한 가운데 이 죄에 동참했을 것이다(삼하 11:4-5). 그러나 그는 모든 은밀한 것까지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시 90:8, 렘 23:24, 롬 2:16). 이 제안을 단호히 물리쳤다.

 

39:10 날마다. [히, 욤 욤] ‘날’을 뜻하는 ‘욤’을 두 번 쓴 것은 반복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다. 보디발의 처는 안주인이라는 특권을 악용하여 유혹과 협박으로 계속 요셉을 괴롭힌 것 같다.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으로부터 멀리 달아나는 것이다. 즉 시험을 받을 때 그것을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유혹의 장소 및 대상을 멀리하는 것은 더욱 지혜로운 처신이다(시 1:1).

 

39:11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어느 정도 신분이 보장된 요셉은 보디발의 집과 떨어진 곳에 따로 거처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따라서 요셉은 공식적인 직무를 위해서만 그 집에 출입하였을 것이다.

 

39:12 그의 옷을 잡고. 이는 결사적인 유혹으로써 마치 순결한 성도의 영혼을 사냥하기 위해 우는 사자처럼 달려드는 사탄의 필사적인 공격 수법과 같다(벧전 5:8).

밖으로 나가매. 안주인에게도 복종할 의무가 있는 요셉의 처지에서 유혹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그녀로부터의 도망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이처럼 성도에게는 유혹 앞에서 도망할 때와 싸워야 할 때를 분별하는 지혜가 절실히 요구된다(전 3:7, 8, 엡 6:13, 약 4:7). 그러나 우선 원리를 정한다면 일단 죄의 유혹 앞에서 저항하고 그리고나서 다른 방도를 찾아도 늦지 않다(벧전 5:9).

 

39:13 자기 손에. ‘나의 장중(掌中)에’란 말로 마치 요셉의 운명이 그녀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는 것처럼 암시한 말이다.

나감을 보고. 성적 열망으로 불타오르던 보디발 아내의 사랑은 자신의 과감한 유혹이 실패로 끝나게 되자 여자로서 느꼈던 치욕적인 부끄러움이 증오심으로 변하여 요셉을 모함하게 된다. 이러한 죄악된 사랑의 예(例)는 다말을 향한 암논의 사랑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삼하 13:15-19). 악의 속성상 죄악된 정욕은 그 욕심을 채우면 일정기간 계속되는 쾌락의 광기가 되지만, 억제되어 이루지 못하면 무서운 증오의 광기로 돌변한다. 따라서 진실되고 순결한 사랑만이 오래도록 그 사랑의 본질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고전 13:4-7).

 

39:14 주인이 … 데려다가. [히, 헤비] ‘가져오다’란 동사 ‘보’의 사역형(Hiphil) 3인칭 남성 단수로써 ‘그가 데려왔다’란 뜻이다. 즉 보디발의 아내는 자기 남편을 약간 경멸적인 어투인 ‘그’라고 칭함으로써 은연 중 자기의 위치를 과시하며 책임의 일부분을 남편에게 돌리려 하고 있다.

히브리. [히, 이브리] ‘낯선 자들’, 혹은 ‘저쪽으로부터 온 자들’이란 뜻으로 구약에서 비이스라엘인들에 의해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43:32, 46:34). 그런데 여기서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민족을 들먹인 이유는 아마 (1) 문제의 핵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 자신의 혐의를 피하고 (2) 히브리인에게 좋지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던 애굽인들에게 극도의 반감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3) 평소 요셉의 신속한 출세에 시기심을 품고 있던 여타(餘他)의 종들에게 동조감을 형성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음부(淫婦)의 간악성(奸惡性)이 잘 나타나 있다.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희롱받는 대상에 ‘우리’란 복수를 사용하여 그 집안의 모든 여인을 포함시킴으로써 저들로 일의 정황(情況)을 살필 수 있는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모두를 심정적 피해자로 만들려는 간부(奸婦)의 교묘한 술책을 보여 준다.

 

39:15 없음.

 

39:16 그 옷을 곁에 두고. 이로써 요셉의 옷은 두 번씩이나 거짓 증거물로 이용당하였다(37:31, 32).

 

39:17 이 말로 … 말하여. 집안 사람들에게(14, 15절) 했던 똑 같은 말에 약간의 변형을 주어 전혀 자연스럽지 않게 고자질하고 있는 모습이다.

 

39:18 애굽 19왕조(B.C.1500년경) 시대에 속한 것으로 추측되는 한 파피루스에서는 상형 문자로 본문에 나타난 보디발 아내의 유혹 및 무고(誣告)사건과 비슷한 사건, 즉 두 형제와 음탕한 형수의 유혹 및 모함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당시 애굽인들의 전반적인 방탕한 생활과 부도덕한 사회성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39:19 없음.

 

39:20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 정치범들과 같은 중대한 죄를 지은 자나 신분이 높은 죄수들만이 갇히는 곳이다. 고대에는 범죄 발생시 그 자리에서 즉형에 처하거나 상해(傷害) 배상을 물리는 것이 관례였고 옥에 가두어 두는 형벌은 거의 실시되지 않았다. 따라서 보디발은 요셉을 미결수처럼 대우하려 했던 것이 틀림없다. 즉 보디발은 평소 요셉의 성실한 품행과 가정에 끼친 공로를 기억하고서 평소 품행이 단정치 않은 아내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았음이 분명하다(Havernick).

 

39:21 여호와께서 … 인자를 더하사. 요셉이 감옥 안에서 자신의 무죄함과 억울함을 항변치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롬 8:28)을 믿고 인내로써 기다리며 주어진 고난을 감수하였음을 나타낸다.

간수장. 친위대장 보디발의 휘하에서 감옥을 주관하고 간수들을 감독하는 관리이다.

 

39:22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점진적인 과정을 거쳐서 되어진 일로써 처음에는 간수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고 이것이 점차 계속됨에 따라 완전한 신임을 받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처럼 어떠한 처지에서든 낙심치 않고 신실한 청지기로서 최선의 삶을 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곳이 비록 감옥이라 할지라도 그의 통치 영역을 확장시켜 주신다(시 106:46, 빌 1:12, 13).

 

39:23 간수장은 …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하나님의 신뢰를 받는 자가 대개 사람의 신뢰와 인정도 받는다.

여호와께서 …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성도가 당하는 고통과 괴로움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의 보호 역시 더 깊고 세밀한 곳까지 미친다. 따라서 성도에게 임하는 모든 일은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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