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주석, 창세기 3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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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 야곱이 가나안 땅 … 거주하였으니. 에서가 세일 산에 거주하였다는(36:8) 사실과 대조하기 위해서 기록되었다. 이것은 언약의 상속자와 분리자가 약속의 땅 가나안(12:7, 17:8, 28:13)을 중심으로 완전히 구별되었다는 뜻이다. 한편 여기서 가나안 땅은 헤브론 골짜기를 가리킨다(14절).

 

37: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히브리인들의 관용적 표현이다. 그런데 여기서 정작 야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대신 요셉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이유는 (1) 야곱 생애의 중반 이후가 요셉을 비롯한 12 아들들과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하며 전개되기 때문이며 (2)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사에서 결정적인 무대가 되는 입(入)애굽 사건의 배경을 설명하는 도입부가 되기 때문이다.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 밧단 아람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 가나안 땅에 들어온지 약 11년째 되던 해(33:7)이다. 이때 야곱의 나이는 108세, 이삭의 나이는 그가 주기 12년 전(35:28)인 168세 가량이었다. 요셉은 이 나이에 애굽으로 팔려가 30세에 애굽 총리가 되었으므로(41:46) 그의 수난 기간은 13년이 되는 셈이다.

소년으로서. [히, 후 나아르] 문자적으로 ‘그는 소년(KJV, lad)이다’란 뜻이다. 어떤 학자(Leupold)는 ‘나아르’를 ‘종’(삼하 16:1)으로 번역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후 문맥상 ‘소년’, ‘젊은이’가 타당성이 있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로 더불어. 과거 레아와 라헬 사이의 반목을 고려하여 요셉의 생모 라헬이 죽은 후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배려로 첩의 소생들과 함께 지내게 된 것 같다(29:31-30:24).

그들의 잘못. [히, 디바탐 라아] ‘천천히 움직이다’란 뜻을 지닌 동사 ‘다바브’의 연계형에 3인칭 복수 접미어가 붙고 ‘악한 행실’을 뜻하는 ‘라아’가 합쳐져 ‘그들에 관한 나쁜 보고’란 의미이다. 즉 요셉은 ‘형들에 관한 추문(醜聞)’을 직접 확인하고 그 사실을 아버지에게 솔직하게 전한 것 같다.

 

37:3 노년에 얻은 아들. 요셉이 태어날 때 야곱의 나이는 91세였다. 바로 앞에 섰을 때 야곱의 나이가 130세였고(47:9) 당시 요셉은 30세의 나이로 총리에 취임한(41:46) 이후 7년의 풍년(41:47)과 2년의 흉년(45:6)을 겪었기 때문에 39세가 된다. 따라서 야곱의 나이 130세에서 요셉의 나이 39세를 빼면 91세란 계산이 나온다.

더 사랑하므로. [히, 아하브] 선택적 사랑(말 1:2, 3)을 뜻하는 완료 시제로 어느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 행위를 의미한다. 즉 오랜 세월을 두고 같이 지낸 결과 형제 중 가장 신앙적이고 효성스러웠던 요셉을 아비 야곱이 ‘사랑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외에도 야곱이 요셉을 특별히 사랑한 이유는 가장 사랑했던 아내 라헬에게서 뒤늦게 본 아들인데다(30:22-24) 그나마 지금은 그 생모(生母)마저 죽고 없었기 때문이었다(35:19, 20).

채색 옷. [히, 케토넷 파심] ‘긴 웃옷’을 뜻하는 ‘케토넷’과 ‘손’ 혹은 ‘발’ 을 뜻하는 ‘파스’의 복수형으로써 ‘손이나 발까지 내려오는 겉옷’(삼하 13:18, 19)을 의미하는 ‘파심’이 합쳐져 ‘소매 달린 긴 겉옷’을 나타낸다. 대체로 이 옷은 아마포로 만들어졌는데 제사장들이 입던 옷(출 28:4, 레 8:7, 스 2:69)과 흡사했던 것 같다.

지었더니. [히, 웨아사] ‘만들다’란 동사 ‘아사’에 ‘와우’가 붙어 습관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즉 요셉의 옷이 낡아질 때마다 그 옷을 ‘만들어 주곤 하였다’란 뜻이다. 이것은 야곱이 요셉을 편애하였음을 보여준다.

 

37:4 그 형들이 … 보고. 문두에 위치하여 이스라엘이 강조된 3절과 대조를 이룸으로써 요셉을 가운데 두고 편애하는 이스라엘과 이에 맞서는 형제들 사이의 고조된 긴장감을 암시하고 있다.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문자적으로 ‘그들이 그에게 샬롬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란 말로 히브리인들 사이에 가장 평범한 인사인 ‘샬롬’(평안하기를!)이란 말조차 건네지 않았다는 뜻이다.

 

37:5 꿈. 이것은 특히 구약 시대에 있어서 환상과 더불어 종종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인간들에게 나타내시는 계시 전달의 방법으로 이용되곤 하였다(31:11-13, 40:5-22, 41:1-32, 왕상 3:5, 렘 23:28, 단 4:4-28). 오늘날에 있어서도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하에서 개별적으로 이같은 꿈을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으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수록되어 있는 성경이 완성된 이상 그 같은 꿈은 더 이상 특별 계시로써의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더욱 미워하였더라. [히, 요시푸 오드 세노] ‘더하다’, ‘증가하다’란 뜻을 가진 동사 ‘야사프’에 2인칭 접미어가 붙고 ‘미워하다’란 동사 ‘사네’의 부정사와 ‘대우’를 뜻하는 부사 ‘오드’가 합쳐져 ‘(그를) 더욱 미워하는 것이 증거되었다’란 말이다.

 

37:6 내가 꾼 꿈. 다른 형제들에 대한 요셉의 우월성을 계시한 꿈이다. 이것은 요셉의 형들이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앞에 양식을 구하기 위해 엎드려 절함으로써 그대로 성취되었다(42:6, 43:26, 44:14). 한편 요셉의 생애에 걸쳐 모든 일들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세 번에 걸친 꿈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첫 번째는 본문 중의 두 개의 꿈이다(7, 9절). 그리고 두 번째는 애굽 감옥에 갇혔을 때 두 관원이 꾼 꿈이다(40:1-23). 마지막은 바로가 꾼 두 개의 꿈이다(41:1-32).

 

37:7 히브리어 성경에는 뜻 밖의 광경을 묘사하는 말인 ‘볼지어다’(히네)가 본 절 안에 세 번이나 나타난다. 즉 ‘우리가’, ‘내 단은’, ‘당신들의’ 앞에 나옴으로써 자기 형제들보다 더 뛰어나리란 기대로 충분히 고조된 요셉의 모습을 강조해 준다.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족장들은 물론 유목민이었지만(47:3) 이삭의 경우처럼(26:21) 정착한 곳에서 부업으로 농사도 지었음을 보여 준다.

일어서고. [히, 니차바] ‘일어서다’란 동사 ‘야차브’의 단순형 재귀태(Niphal)의 분사로써 ‘선채로 계속 있었다’란 뜻이다. 이는 한번 확립된 형들에 대한 요셉의 우위 신분이 계속 지속될 것을 상징한다.

 

37:8 네가 참으로 … 다스리게 되겠느냐. 문자적으로 ‘왕이 되어 네가 왕이 되겠느냐? 다스림을 네가 다스리겠느냐’란 말로 ‘네가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는 왕이 되리라 기대하느냐?’란 뜻. 이는 요셉에 대한 형들의 분노와 모욕감으로 뒤엉킨 비소(鼻笑)이다.

 

37:9 다시 꿈을 꾸고. 원문은 ‘다른 꿈을 다시 꾸었다’라고 표현함으로써 그 꿈이 전의 꿈(8절)과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재차 요셉에게 꿈을 주신 것은 꿈의 확실성(41:32)과 내용의 점진성을 계시하기 위해서였다.

절하더이다. [히, 미스타하윔] ‘구부리다’, ‘절하다’란 뜻을 가진 동사 ‘샤하’의 강의형 재귀태(Hithpael) 복수 분사로써 ‘그들이 계속 절하고 있었다’란 뜻이다. 한편 본문에서 별의 숫자와 요셉의 형제들 수가 일치하는 것을 보아 해와 달은 각각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상징하는 것(10절)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꿈은 이스라엘 전체 가문에 대한 요셉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되어진다. 그런데 이런 류의 상징은 당시 천막 생활을 하던 근동의 유목민들에게는 친근한 것이었다.

 

37:10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지난번 꿈(7절)은 그의 아버지에게 알리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두 번째 꿈은 야곱(해)과도 관계된 계시였으므로 그에게 고하였을 것이다.

꾸짖고. [히, 가아르] ‘비명을 지를 정도로 엄하게 책망하다’란 뜻이다. 이처럼 야곱이 요셉을 꾸짖은 이유는 (1) 동양식 가부장적 제도하에서는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형이 동생들에게, 특히 부모가 자식에게 엎드려 절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2) 또한 이 꿈에 대한 발설로 인하여 야기될 형제간의 불화를 방지하기 위함과 요셉의 자만심을 없애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네 어머니. 요셉의 생모 라헬은 이미 죽은 후이기 때문에(35:19, 20) 네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즉 (1) 대신 역할을 하는 이모 레아를 가리키거나(Hugher), (2) 비록 죽었지만 여전히 생각 속에 살아 있는 어머니 라헬을 의미할 수 있고(Calvin), (3) 또는 라헬 사후 요셉의 어머니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는 여종 빌하(30:3, 4)를 가리키거나(Grotius), (4) 요셉의 꿈이 상징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일깨워 주기 위한 말일 수 있다(Kurtz). 이 중 본문의 문맥에 가장 잘 부합되는 견해는 두 번째로 보인다.

 

37:11 시기하되. [히, 카나] 마음속의 분노로 인하여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가인이 아벨에 대하여(4:5), 에서가 야곱에 대하여(27:41),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예수에 대하여(마 27:18) 가졌던 것과 같은 감정이다.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문자적으로는 ‘그 말을 지키었다’란 뜻으로 마음에 새겨 놓고 두고두고 생각하였다는 뜻(단 7:28, 눅 2:51)이다. 이것은 (1) 야곱 자신도 꿈에 의해 계시를 받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며(28:12, 31:11) (2) 채색 옷을 지어 입힐 만큼 요셉을 사랑하는 자신의 기대와 일치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3절).

 

37:12 세겜. 당시 야곱의 가족이 거하던 헤브론 계곡(35:27, 37:1)에서부터 북쪽으로 약 100 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37:13 네 형들이 세겜에서. 야곱이 양을 치는 자식들을 염려한 것은 얼마전(34장) 그곳에서 불상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의 아들들이 다시 세겜으로 간 것은 아마도 (1) 하나님이 주신 두려움(35:5)이 여전히 그 땅을 덮고 있었기 때문이거나 (2) 아니면 그들이 위험을 무릅 쓸 만큼 대담한 자들이었음을 의미한다.

 

37:14 그를 … 보내니. 야곱은 사랑하는 아들 요셉에 대한 형들의 미움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몰랐던 것 같다. 그 이유는 (1) 간악한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는 자신들의 속마음을 아비는 물론 요셉에게까지 교묘히 숨겼기 때문일 것이다. (2) 또한 이것은 장차 이루어질 구속사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야곱의 눈을 가리웠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들에서 양치는 다른 아들들과는 달리 요셉만은 집에 있도록 허용한 것은 다시 한번 요셉에 대한 야곱의 편애를 보여 주고 있다.

 

37:15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당시 유목민들은 풀과 물을 찾아 양 떼를 곳곳으로 몰고 다니면서 먹여야 했다. 따라서 헤브론에서 이곳까지 하루가 더 걸리는 100 km 정도의 거리를 걸어 온 요셉은 이미 세겜을 떠난 형들의 행방을 몰라 이곳 저곳을 찾아다녀야 했을 것이다.

네가 무엇을 찾느냐. ‘누구를 찾느냐’ 라고 묻지 않고 이처럼 물은 것은 요셉이 아마 가축을 잃어서 헤매는 것으로 추측했기 때문일 것이다.

 

37:16 형들을 찾으오니. 형제들을 애타게 찾는 요셉의 모습에서 (1) 맡은 사명에 충실하며(15-17절) (2) 진정한 형제 우애를 지닌 그의 충직하고 따스한 인간미를 엿볼 수 있다.

 

37:17 도단. [히, 도타인] ‘우물’을 뜻하는 ‘도트’의 쌍수로써 ‘두 우물’이란 뜻이다. 위치는 세겜 북방 약 30 km 지점으로 도보로 4시간 가량 걸리는 거리이다. 한편 고고학자들은 그 당시 사람들의 거주지를 이 지역에서 발견함으로써 이곳에 세겜보다 더 좋은 목초지가 있었음을 입증했다. 지금은 폐허가 되었으나 이곳은 아직도 옛 이름 그대로 불리워지고 있다.

 

37:18 죽이기를 꾀하여. 중혼(29:16-30)과 편애로 인한 이복 형제들간의 시기와 갈등은 결국 형제 살인이라는 극한 상황까지 치닫고야 말았다(잠 29:10).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일부 일처제란 건전한 결혼 윤리와 그로 인한 차별 없는 자녀 사랑만이 가정의 평화를 존속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37:19 서로 이르되. 여기서 절제하지 못한 말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의 발단이 되었음을 보여 준다.

꿈 꾸는 자. [히, 바알 하할로모트] ‘소유하다’, ‘자기의 것으로 하다’란 뜻을 지닌 동사 ‘바알’에서 유래한 ‘임자’(소유주) 혹은 ‘명수’(名手, master)란 ‘바알’과 ‘꿈’이란 명사 ‘할롬’의 복수형이 합쳐져 ‘꿈들의 주인’ 혹은 ‘꿈들의 명수’란 뜻. 즉 조롱과 경멸 그리고 증오심을 나타내는 말로 ‘꿈장이’ 또는 ‘몽상가’란 뜻이다. 이것이 형들의 미움을 사서 요셉이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동기이며 요인이었다.

 

37:20 뿌리 깊은 야곱 집안의 거짓과 간사성이 또 한번 번뜩거린다(27:19, 20, 34:13). 이처럼 야곱은 속임에 대한 대가를 외삼촌 라반(29:25)과 자식들에게서 되돌려 받은 것이다.

 

37:21 구원하려 하여. 장자로서 르우벤은 동생 요셉의 안전에 대하여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요셉을 죽이려는 그 음모에 대해서 르우벤이 즉시로 반대하며 저지하지 않았던 이유는, (1) 근친 상간의 죄를 범한(35:22) 이후 장자로서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거나 (2) 다른 형제들의 분노가 가라앉은 후에 지혜롭게 요셉을 구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37:22 또 … 이르되. [히, 와요멜] ‘말하다’란 뜻의 동사 ‘아마르’의 과거형에 ‘그리고’란 접속어가 붙어 뜻이 강조되었다. 즉 요셉을 구하자는 르우벤의 처음 발언이(21절) 설득력을 갖지 못했지만, 두 번째 제안에서는 강력한 자기 주장이 제시되고 있다.

 

37:23 채색옷을 벗기고. 아버지의 편애를 상징하는 이 옷은(3, 4절) 요셉의 형들에게 질투와 혐오의 대상이 되어 왔었다.

 

37:24 구덩이에 던지니. 이때 요셉은 눈물로 형들의 동정을 애걸했는데 이 장면이 어찌나 애달펐던지 20여년이 지난 후에도 형들의 뇌리에 생생히 남아 있었음을 볼 수 있다(42:21, 22). 훗날 선지자 아모스는 이 비정함을 심판 직전의 타락한 이스라엘의 모습에 비유했다(암 6:6).

 

37:25 음식을 먹다가. 이 음식 중에는 요셉이 형들을 위해 가져온 것도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선을 악으로 갚는 저들의 비정함과 잔혹성이 한층 더 부각되고 있다.

이스마엘 사람. 아브라함과 애굽 여종 하갈 사이에서 난 이스마엘의 후예들이다(25:12).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당시 애굽은 세계 무역의 중심지였으므로 항상 각국의 대상(隊商)들이 들끓었다. 그러나 때 맞추어 나타난 이스마엘 대상들은 요셉을 애굽으로 데려가기 위해 보내신 하나님의 사자(使者)로 이해하여야 한다.

몰약. 팔레스타인이나 시리아, 아라비아 등지에서 자라는 관목에서 추출한 향기로운 진액인데 방부제와 마취제로 사용된다(마 2:11).

 

37:26 유다는 증오심에 불타 살의를 띤 형제들의 마음을 돌이키고자 세 가지 면을 들어 호소하였다. (1) 아무리 미워도 다름아닌 동생을 죽일 수 있겠느냐 - 혈육의 정에 호소함, (2) 여러 방법 중 구태여 살인까지 할 필요가 있겠느냐 - 죄책의 극소화로 설득함, (3) 남의 손을 빌어 처리함으로써 수고를 덜 뿐만 아니라 뜻밖의 소득도 얻지 않겠느냐 -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함.

 

37:27 없음.

 

37:28 미디안 사람. 아브라함과 그의 후처 그두라 사이에서 난 넷째 아들 미디안의 후손들이다(25:1, 2). 그런데 이들이 다른 종족인 이스마엘인들과 함께 언급된 이유는 (1) 무역상으로 여러 나라를 순례해야 하는 대상으로써 피차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동행하였기 때문이거나 (2) 아브라함의 혈통을 가진 한 조상의 후예들로서 함께 무역업에 종사하는 대상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Keil).

은 이십. 은 이십 세겔을 가리킨다. 당시 노예 장정의 몸값은 30세겔(출 21:32), 20세 이하는 20세겔이었는데(레 17:5) 요셉은 이때 17세의 소년이었기 때문에 20세겔에 팔렸을 것이다.

 

37:29 르우벤이 돌아와 … 없는지라. 요셉을 판 거래는 맏형 르우벤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하여 그의 부재 중에 이루어졌음을 보여 준다. 한편 르우벤은 아마도 요셉을 구출하여 무사히 아버지에게로 돌려 보내려는 계획을 가지고 식사 후 서둘러 형제들 틈을 벗어나 우회로를 택하여 구덩이로 다시 찾아왔을 것이다(Pulpit).

옷을 찢고. 큰 슬픔이나 괴로움 또는 통회하는 마음을 나타낼 때 히브리인들은 이처럼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찢거나 머리에 재를 뒤집어 썼다(44:13, 민 14:6, 삼하 13:19).

 

37:30 나는 나는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가서 찾을까’ 혹은 ‘그가 없어진 것을 아버지께 어떻게 설명할까’란 뜻이다. 이것은 자신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당혹감과 죄책감에 어찌할 바 모르는 맏형으로서의 괴로운 심정의 고백이다.

 

37:31 숫염소를 죽여. 이 행위는 야곱과 리브가가 연합하여 이삭을 속이기 위해 거짓으로 계교를 부렸던 30년 전의 장면을 생생히 연상시킨다(27:9-16).

 

37:32 가지고 가서. [히, 야비우] ‘가져가다’란 뜻을 지닌 ‘보’의 사역형(hiphil) 3인칭 복수로써 ‘그들로 그것을 가져가 전달하게 했다’는 뜻이다. 즉 이는 형제들이 직접 야곱에게 찾아가 해명하지 않고, 사람을 통하여 피묻은 옷을 보냄으로써 야곱 스스로 사건의 전말을 판단하도록 고도의 술책을 부린 것을 의미한다.

 

37:33 없음.

 

37:34 애통하니. 야곱이 이처럼 비통히 슬퍼했던 이유는 (1) 가장 사랑했던 아내 라헬이 죽었는데 또 다시 그녀의 아들이며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기 때문이며 (2) 짐승에게 찢겨 죽어 시체조차 찾을 수 없게 된 그 비참한 상황을 감당하기 힐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 이 모습은 그가 이삭을 속여 축복을 가로챘을 때 에서가 슬퍼하며 울던 모습을 연상시킨다(27:34).

 

37:35 스올. ‘무덤’(KJV, the grave)이나 ‘지옥’ 혹은 말 그대로 ‘스올’(RSV, sheol)로 번역되는 이 말의 어원에 대하여서는 크게 두 가지로 추측되고 있다. (1) ‘요구하다’(욥 31:30)란 뜻의 ‘샤알’에서 유래한 말로 죽은 시신(屍身)을 무조건 호출하여 한곳에 모아 두는 장소를 가리킨다(잠 30:15, 16, 사 5:14, 합 2:15)는 견해(Lange). (2) ‘공동’(空洞)이라는 뜻의 ‘세오르’에서 유래한 말로 땅 밑에 있는 지하계의 심연(深淵)을 가리킨다(민 16:30, 33, 신 32:22)는 견해(Fürst). 일반적으로 스올은 단순히 죽은 자들이 가는 장소를 가리킨다.

 

37:36 친위대장. [히, 사르하타바힘] ‘다스리다’란 뜻의 ‘사마르’에서 파생되어 ‘우두머리’ 혹은 ‘대장’을 의미하는 ‘사르’와 ‘살해하다’란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 ‘타바흐’의 복수형이 합쳐진 말로 ‘호위대 대장’, ‘형 집행관들의 대장’을 뜻한다. 이는 바로(왕)의 측근에 있던 요직으로써, 요셉이 이러한 보디발의 집에 팔린 것은, 훗날 그가 애굽의 정치 무대에 등장할 수 있는 배경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섭리하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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