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주석, 창세기 3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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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아들을 낳지 못함. 사람 수(數)로 가세(家勢)를 가늠하던 고대에 있어서 다산(多産)은 여인의 행복이자(시 127:3) 남편에겐 최대의 선물로써 하나님이 베푸신 축복으로 여겼다(15:5, 22:17, 룻 4:11, 시 128:3, 잠 17:6). 반면 불임은 최대 수치며(삼상 1:6, 사 4:1) 시험으로써(16:2, 삼상 1:5) 하나님께서 내리신 징계로(20:18) 이해되었다.

시기하여. [히, 테케네] ‘열성적이다’, ‘붉다’ 등의 뜻인 ‘카나’에서 유래한 말로써 얼굴에 핏발이 서릴 정도로 흥분한 모습으로 질투했음을 보여준다.

내가 죽겠노라. 원문에는 ‘죽겠노라’는 말이 문두(文頭)에 나와 비탄에 잠긴 나머지 오히려 안달복달하고 있는 라헬의 모습을 강조해준다. 이처럼 죽겠다고 남편을 졸라대는 라헬의 천박한 행동은, 같은 여자로서 아이를 낳지못해 성전에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매달린 한나의 모습(삼상 1:10, 11)과는 대조적이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시 127:3)이란 근원적인 사실을 망각하고 창조주 하나님께 간구하기 보다 한낱 나약한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에게(시 78:39, 90:5, 103:14, 15) 매달리는 라헬의 처사는 분명 불신의 행위에서 비롯되었음이 확연(確然)하다(시 146:3-5).

 

30:2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직역하면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있느냐’로 라헬의 불신에 대한 책망이다. 여기서 우리는 라헬과 달리 야곱은 인간이 자신의 문제를 위해 간청해야할 대상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유대 랍비들에 의하면, 하나님은 네 개의 열쇠를 갖고 계시는데 그것은 구름과 마음과 무덤과 태를 여닫을 수 있는 열쇠라고 한다(욥 11:10, 12:14, 시 127:3, 계 3:7). 이러한 전통이 보여 주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통제하시는바 인간은 마땅히 하나님을 의뢰하여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30:3 들어가라. ‘동침하라’는 의미의 은유적 표현이다.

내 무릎에 두리니. 양자(養子)에 대한 상징적 언급으로(50:23, 욥 3:12) 당시에 종은 주인의 소유였기 때문에 그 종의 소생도 당연히 주인에게 돌려졌다. 그런데 라헬이 하나님의 뜻을 인내로써 조용히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계획대로 일을 처리한 것은 아브라함 가문에 두고두고 분쟁의 불씨가 되었던 과거 사라의 잘못과 동일한 잘못이다(16:2-6).

 

30:4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비록 야곱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했지만(2절), 실상 그의 마음은 무자(無子)한 아내 라헬을 향한 동정(同情)과 그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인간적 수단에 골몰했음을 보여 준다. 결국 그는 레아와 라헬과의 중혼(重婚)에 이어 세 번째 아내를 얻음으로 하나님의 창조 규례(2:23)를 거스리는 죄를 범하고 만다. 이 같은 사실은 하나님의 규례에 대한 한번의 소홀함이 계속적인 범죄 행위를 유발시키게 됨을 경고해 준다(약 1:15).

 

30:5 임신하여 … 낳은지라. 빌하는 동양의 옛 풍습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씨받이’에 불과했고 그의 아이는 여주인 라헬의 자식으로 입적되었다. 한편 비신앙적인 경우의 동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빌하에게 수태케 해주셨는데 이는 인간의 죄악을 초월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와 능력의 결과였다(Calvin).

 

30:6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히, 다나니] ‘공평하다’, ‘심판하다’란 듯을 가진 동사 ‘딘’의 과거형과 일인칭 접미어가 합쳐진 말로 ‘그가 나에게 공의를 베푸셨다’는 뜻이다. 즉 라헬은 자신의 그릇된 방법에도 불구하고 출산케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정을 명확히 변호해 주셨다고 믿은 것이다(Leupold).

내 호소를 들으사. 직역하면 ‘내 음성도 역시 들으셨다’란 말이다. 여기서 ‘역시’란 말은 두 자매 모두가 절실한 바램으로 아이 갖는 문제를 놓고 기도해 왔음을 암시한다(29:32).

단. [히, 단] ‘판단하다’, ‘판결하다’란 뜻으로써 억울한 처지에 있는 자에게 공의로운 판단을 함으로써 그 사정을 명쾌히 해결해 주셨다는 긍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라헬의 지나온 마음의 상처와 회복된 지금의 심경을 잘 반영해 주는 이름이다.

 

30:7 없음.

 

30:8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문자적으로 ‘내가 내 언니와 경쟁하고 하나님과의 경쟁을 경쟁하였다’란 말로, 여기서 ‘하나님과의 경쟁’은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은택을 요청하는 기도를 뜻한다. 또한 이는 라헬과 언니 레아가 서로 경쟁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음을 의미한다.

이겼다. 레아에 대하여 승리했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하여 이겼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레아는 라헬보다 많은 네 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즉 레아가 받은 하나님의 은택을 자신도 받았다는 뜻이다.

납달리. [히, 나프탈리] ‘싸움’, ‘경쟁’을 뜻하는 이름으로 하나님과 경쟁하여 이겼음을, 은근히 자랑하는 말이다.

 

30:9 실바를 … 아내로 삼게. 레아는 라헬의 교만하고 도전적인 경쟁에 자극되어 자신도 실바를 통해 새로운 경쟁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이 세운 일부 일처제의 결혼법이 무너진 가정에서는 갈등과 시기가 그치지 않는다(16:6, 21:9-11). 훗날 야곱이 바로 앞에서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한 그의 고백(47:9)의 큰 원인 중 하나는 이 같은 가정 불화였다(잠 19:13, 21:9).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것을 당시의 선으로 승화시켜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과 맺은 언약(17:4, 5, 26:4, 28:14)을 역사 속에 꾸준히 실현시켜 나가셨다.

 

30:10 없음.

 

30:11 복되도다. [히, 바가드] ‘행운이 있으라’는 의미로 미래의 번영과 축복에 대한 기원을 담고 있다(Keil, Rosenmüller). 이는 ‘갓’이란 이름의 배경이 된다.

 

30:12 없음.

 

30:13 아셀. [히, 아쉐르] ‘기쁨’, ‘복됨’ 이란 뜻으로써 레아의 현재적인 만족을 대변하는 이름이다. 그녀가 거느린 많은 아들들로 인해 주위의 뭇 여인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 ‘복되고 기쁜 자’라는 칭송을 받았을 것이다.

 

30:14 밀 거둘 때. 5월 초순경을 가리킨다. 이 시기는 10월-4월에 걸친 긴 우기가 끝나는 때로 보리 수확으로 시작하여 밀 추수로 마쳐지는 때이자 합환채 열매가 무르익는 때이다.

르우벤. 이때 그의 나이는 5, 6세 가량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그 이후로 각각 동복 동생이 3명, 이복 동생이 3명 태어났으므로 중복 기간을 제하고 약 일 년씩 가산하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합환채. [히, 두다임] 냄새가 향긋하고 꽃도 아름다운 희귀 식물인 ‘멘드레이크’(mandrake)의 열매로써, 당시 근동에 사는 여인들에게 최음제(催淫劑)와 강장제로 여겨져 ‘사랑의 과실’로도 불리웠다. 어린 르우벤이 추수하는(26:12) 집안 사람들을 따라 들판에 나갔다가 영문도 모른 채 따옴으로써 발단이 된 이 합환채 사건은 자식을 많이 낳아 남편의 사랑을 서로 독차지하고자 했던 레아와 라헬의 경쟁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30:15 남편을 빼앗은 것. 즉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한 것을 말한다. 이러한 레아의 말은 자신이 많은 아들을 낳으면 야곱이 자기를 사랑하리라 기대했던 소망이(29:32) 빗나갔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레아는 라헬이 이 합환채를 통해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 한다면 큰 낭패일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언니와 동침하리라. 이와 같이 남편을 두고 부인들 사이에 합환채 흥정을 벌일 정도로 야곱의 집안은 성적으로 무질서 했던 것 같다. 결국 이런 것이 철부지 어린 자식들의 눈에 잘못 비추어져, 훗날 맏아들 르우벤이 서모(庶母)인 빌하와 통간까지 하는 불상사를 낳았던 것이다(35:22). 이 모두 중혼이 빚어낸 파상(破傷)적 결과이다.

 

30:16 샀노라. [히, 사코르] ‘고용하다’(hire), ‘세내고 빌리다’란 뜻의 ‘사카르’에서 파생된 기본형 부정사로써 ‘사는 것’, ‘치르는 것’을 의미한다. 즉 대가를 치르고 사람을 고용했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내에서 레아가 야곱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의미한다.

 

30:17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은 불운한 처지에 있는 자의 기도를 들으신다. 그래서 약한 자를 택하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 이것은 그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서이다(고전 1:26-29).

 

30:18 내게 그 값을 주셨다. 레아는 다섯째 아들 잇사갈의 출생을, 자신의 몸종 실바를 남편에게 허락할 만큼 자신을 억제한 데 대한 하나님의 보상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지 결코 레아의 행위에 대한 대가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결코 일부다처제와 극렬한 투기를 인정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잇사갈. ‘보상’, ‘삯’이란 의미로써 합환채를 포기하고 그 대가로 동침하여 얻은 아들이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이 이름 속에는 여인의 불타는 시기심과 그릇된 욕망이 들어 있다.

 

30:19 없음.

 

30:20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 여기서 ‘살리라’(히, 자발)는 말은 누구와 ‘동거하다’란 의미이다. 합법적 결혼에서 태어난 자녀는 부모의 마음을 연합시켜 주고 애정을 돈독히 해주는 이음 고리로 작용하기에 충분하다. 스불론의 탄생으로 인해 레아는 이러한 결과를 기대한 것 같다.

 

30:21 딸을 낳고. 야곱에겐 분명 다른 딸들도 있었겠지만(37:35, 46:7) 여기서 디나 한 명만 기록된 것은 훗날 그녀의 불행한 사건을 미리 암시하기 위해서이다(34장). 이처럼 성경에서 여자의 이름을 기록하는 경우는 대개 (1) 특별한 인물의 부인이거나 (2) 특별한 사건과 관련될 경우이다.

 

30:22 하나님께서는 장구(長久)한 세월 동안 라헬에게 무자(無子)의 서러움을 체험케 함으로써 그녀에게 엄숙한 교훈을 베푸셨다. 그것은 곧 인간의 모든 소원 성취는 사람의 능력이나 수단 여하에 의한 것이 아니라(1-3) 오직 하나님의 섭리와 뜻에 달려있으므로 소원자는 믿음과 인내로써 그분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전 3:1-11, 요 2:4).

 

30:23 내 부끄러움. 자식을 얻지 못하는 여인의 본능적인 수치를 가리킨다.

 

30:24 요셉. 이 이름은 발음상 두가지 상반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즉 (1) ‘제거하다’란 동사 ‘아사프’와 관련지어 결혼한 지 7년이 지나도록 수태치 못한 라헬의 수치를 하나님께서 완전히 제거해 주셨다는 뜻과 (2) ‘증가하다’란 동사 ‘야사프’의 파생어로 보아 다른 아들도 ‘더하소서’란 의미이다. 라헬의 이 소원은 후에 베냐민을 낳음으로써 성취되었다(35:17).

 

30:25 요셉을 낳았을 때. 라헬을 위한 7년의 계약 기간(29:27)이 완료된 직후로 야곱의 나이 91세 때이며, 고향 집이 있는 가나안 땅을 떠나온 지는 14년이 흐른 뒤였다(28:1-5).

나를 보내어. [히, 샬르헤니] ‘보내다’란 뜻을 지닌 동사 ‘샬라흐’에 일인칭 접미어가 합쳐진 말로써 ‘나를 해방시키어’ 혹은 ‘나를 자유케하여’란 의미이다. 이는 라반의 속임수로 속박당했던 세월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떠나온 고향을 향한 야곱의 귀소(歸巢) 심리의 표출이다.

나를 … 가게 하시되. 문자적으로 ‘내가 가리이다’란 말로 결단을 나타낸다. 야곱에게 있어서 (1) 라반의 밑에서 일한 14년 동안 부양할 대가족이 생겼지만 아직까지 무일푼 신세인데다 (2) 돌아와도 좋다는 어머니의 전갈(27:45)은 아직도 없는 상태이며 (3) 돌아갈 가나안 땅은 형의 보복만이 기다릴 따름이어서 객관적으로 볼 때 아직은 그가 귀향할 시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1) 고향을 향한 열망과 (2) 분가가 절대 요청되는 대가족으로 인해 야곱은 늦게나마 벧엘의 언약을(28:13-15) 상기하며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안일한 예속으로부터의 독립을 담대히 선언한 것이다.

 

30:26 처자를 내게 주시어. 훗날 모세 율법에 의하면(출 21:4-6) 주인이 주어 아내를 얻은 히브리 종은 종살이 기간이 만료되어 해방될 때라도 처자는 주인에게 남겨 두어야만 했다. 그러나 처자들과 헤어지기를 원치 않으면 그는 계속 종의 상태로 머물도록 규정되어 있다. 비록 본문은 율법전 시대로 이 문제와 직결시키기는 어려우나 후에 라반이 한 말, 즉 ‘딸들은 내 딸이요 … 내 자식이요’(31:43)란 그의 주장에서 어느 정도 이런 사상이 비치고 있어 이런 불투명한 상태에서 야곱은 자신의 견해와 요구를 관철시키려 쐐기를 박고 있는 것이다.

 

30:27 깨달았노니. [히, 니하쉐티] ‘점치다’, ‘징조를 보다’란 뜻의 동사 ‘나하쉬’에 일인칭 접미어가 붙은 강의형 과거로써 자세히 관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야곱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라반 자신에게 축복이 된다는 사실을 ‘여러 징조들을 세밀하게 살펴봄으로써 알게 되었다’란 말이다.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직역하면 ‘내가 너 보기에 호감을 살 만했거든’이다. 즉 라반은 야곱에게 자기가 할 도리를 다했다는 투의 말로 설득했다. 한편 라반은 야곱 한 개인으로서의 능력이나 수완이 필요해서 뿐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축복을 감지(感知)하고 그를 다시 붙잡아 두려 한 것이다. 이처럼 성도는 그 어느 곳에 처하든지 이웃들로 복을 받게 하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된다(39:5, 21, 갈 3:14).

 

30:28 네 품삯을 … 주리라. 임기응변과 처세술에 능란한 라반의 모습이 다시 확인된다(29:26, 27). 한낱 종에 불과한 자리에서 자신의 요구 사항을 부담없이 개진(開陣)하며 또한 사유재산도 축적할 수 있는 동업자로의 전격적인 제안은 가히 야곱에게는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야곱을 붙잡아 두기 위한 라반의 책략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후에도 품삯을 열 번이나 속였기 때문이다(31:7). 한편 여기서 ‘정하라’(나카프)는 원래 ‘구멍뚫다’는 뜻인데(학 1:6) 이것이 발전하여 ‘확실히 정하다’라는 뜻이 되었다. 즉 품삯을 구체적으로 정하라는 의미이다.

 

30:29 어떻게 … 섬겼는지 … 쳤는지. 단순한 계약 이행 여부를 떠나서 외삼촌 라반에 대해 손아래 사람으로서의 예(禮)를 다하여 목자로서 성실히 일했음을 고백하는 야곱의 양심적인 항변이다.

 

30:30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히, 레라글리] ‘발’을 뜻하는 ‘레겔’과 ‘ … 에게’를 의미하는 전치사 ‘레’와 일인칭 접미어의 합성어로 ‘내 발에’란 뜻이다. 영역본은 ‘내가 온 이래로’(KJV, Since my coming) 혹은 ‘내 발길을 돌이키는 곳마다’(NASB, Wherever I tumed)로 번역하여 더욱 뜻을 명확히 했다. 이는 여호와께서 야곱의 걸음걸음 머무는 곳마다 축복과 번영을 허락 하셨다는 뜻이다.

내 집을 세우리이까. 남의 식솔(食率)로 안일하게 지내기 보다는 한 가장으로 독립하여 약속된 땅에서(28:4, 15)축복된 언약의 가문을 일으키기를 바라는 말이다(히 11:24-26).

 

30:31 아무것도 주시지 않아도. 더 이상 인간으로서의 라반을 신뢰하지 않겠다는 야곱의 강한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품삯을 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야곱의 기지(機智)가 다시 한번 드러난 부분이기도 하다. 즉 라반의 탐심과 간교성을 익히 알고 있었던 야곱은 자신에게 절대 불리한 듯한 조건부 비율 분배 방식을 제안함으로써 즉시 일정한 액수를 지불치 않게 된 라반을 계약에 끌어들인 뒤 가축의 생식(生殖) 습성에 대한 자신의 목자적 재질을 십분 활용하려 했다(37-39절).

 

30:32 양 떼. [히, 촌] 양이나 염소로 이루어진 작은 무리를 의미한다. 그런데 양은 대부분 흰색(시 147:16, 아 4:2), 염소는 몸 전체가 암갈색을 띠기 마련이다. 따라서 검은 양 새끼와 얼룩진 점박이 양이나 염소 새끼를 달라는 야곱의 제안은 실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은 셈이 된다.

 

30:33 나의 의가 나의 대답이 되리이다. 즉 나의 정직함이 조만간에 나의 정당함을 증언하고 대답해 준다는 뜻이다. ‘의’를 뜻하는 ‘차데카’는 인간 관계의 세가지 양상인 윤리적(신 24:13, 욥 29:12-15), 법률적(출 23:7, 신 25:1), 신정적(대하 12:6, 시 119:144) 관계를 나타낸다. 따라서 야곱 자신은 이 계약을 윤리적으로나 법적 관계에서도 하자(瑕疵)가 없도록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당당히 지키겠다는 뜻이다.

 

30:34 네 말대로 하리라. 라반은 이 희귀한 계약을 흔쾌히 수락했으나 몇가지 조치를 취함으로써 만약의 경우에 철저히 대비했다.즉 전에 야곱에게 약속한 바와는(31-34절) 달리 (1) 라반이 친히 양 떼를 둘로 구분했으며 (2) 검은 양을 자기 아들들에게 지키게 하고 (3) 야곱을 멀리 떨어지게 함으로써 행여 손해 끼칠 만한 조그만 가능성이라도 사전에 봉쇄했던 것이다(35, 36절).

 

30:35 가리고 … 가려. 유전 법칙상 점박이 동물이 단색(單色) 동물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여 야곱의 몫이 생길 기회를 가능한 더욱 줄이려는 라반의 약삭빠른 방책이다.

 

30:36 사흘 길. 두 양 떼가 서로 만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격리된 거리를 말한다. 이 거리 만큼이나 라반은 가까운 혈족 야곱에게 불신과 의혹의 골짜기를 두고 있었다.

 

30:37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 버드나무는 포플라 나무이며(LXX), 살구나무는 아몬드 나무(Almond tree) 또는 개암나무를 말하며(출 25:33, 34), 신풍나무는 플라타너스(platanus)를 일컫는다. 이 나무들은 겉껍질이 잘 벗겨지고 푸르스름하거나 갈색인 반면, 속 껍질은 매우 희고 윤기가 있어 껍질을 드문드문 벗겼을 경우 알록달록한 형채로 금방 눈에 띤다.

 

30:38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여기서 ‘개천’(리하팀)이란 ‘수로(水路)’란 뜻으로 물살이 세지 않은 작은 하천을 가르킨다. 이 ‘개천’옆에 물통(물구유)을 마련하여 양들이 목을 축일 수 있게 했다. 양 떼가 물을 먹으러 왔다가 교미를 할 때 알록달록한 가지를 봄으로써 새끼에게 그 무늬의 영상이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암양은 수태시 자극을 받으면 그 여파(餘波)를 새끼에게 전하는 감응력이 강한 동물이라 한다.

새끼를 배니. [히, 하맘] ‘뜨겁다’란 뜻으로 여기서는 양들이 서로 교미하는 것을 기리킨다(39, 41절, 31:10). 한편 오늘날의 과학적 안목으로 보면 동물의 생식 행위를 자극하여 의도한 종자를 얻으려 한 야곱의 방법은 생물학적인 근거가 불명확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런 비과학적인 행위에도 불구하고 벧엘 언약에 근거하여 그를 축복해 주셨다(31:10-13). 이는 훗날 자신이 많은 양 떼를 얻게된 원인을 하나님의 초자연적 섭리로 돌린 야곱의 고백에서도 명백해진다.

 

30:39 없음.

 

30:40 새끼 양을 구분하고. 점박이 양을 낳으면 어미 양으로부터 가능한 빨리 분리하여 단색 양과 섞음으로써 그들간의 교미에 의해 점박이 새끼의 출생율을 높이려는 야곱의 또 다른 계책이다.

서로 마주보게 하며.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서로 만나 교미하게 하며’라고 말할 수 있다.

 

30:41 튼튼한 양이 새끼 밸 때. 양은 일 년에 두 번 배태하는데 대체적으로 봄산(産)보다 가을산(産)이 더 튼튼하다. 야곱은 경험을 통해 이 사실을 익히 알기 때문에 ‘튼튼한 양’, 즉 가을 분만형(型) 양에만 나뭇가지를 사용했다.

 

30:42 이 같은 방법을 라반의 아들들이 똑같이 사용했더라면 틀림없이 실패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결과를 가능케한 것은 가지의 효능 때문이 아니라, 모든 것의 제1원인이 되시는 하나님의 특별 섭리가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약한. [히, 아타프] ‘덮다’, ‘옷입다’(시 73:6)는 뜻에서 유래한 말로 털이 많고 유약한(애 2:11) 봄산(産) 양을 가리키는 것 같다.

 

30:43 매우 번창하여. [히, 파라츠 메오드 메오드] ‘터뜨리다’, ‘증가하다’란 뜻을 지닌 동사 ‘파라츠’와 ‘매우’를 뜻하는 부사 ‘메오드’가 두 번 반복되어 불과 6년 만에 야곱의 재물이 기하 급수적으로 크게 증가했음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파라츠’는 부(富)의 근원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드러낼 때 많이 사용되는 단어로써(출 1:12, 사 54:3)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이나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 하늘의 축복과 아울러 세상의 부요도 함께 허락하신다는 구약 축복 사상의 일부를 나타낸다(13:2, 26:12-14). 그러나 이 계시가 더욱 발전된 신약 사상에서는 가난이 결코 죄가 아니며 부(富) 역시 신앙의 척도가 될 수 없음을 보여 줌으로써 신앙과 세상의 부가 반드시 일치되는 것만도 아니란 사실을 일깨워 준다(고후 6:10, 8:9). 따라서 중요한 것은 세상적 부와 가난이 아니라 믿음의 부와 가난임을 알 수 있다(마 6:20, 빌 3:8, 히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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