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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아브라함이 … 늙었고. 사라의 죽음(23장)에 이어 아브라함이 늙었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서서히 한 세대는 물러가고 이삭이라는 또 한 세대가 구속사의 전면에 등장할 시점이 되었음을 예고해 준다. 또한 이삭의 아내를 구하는 일과 관련하여 아브라함이 나이 많다는 점이 언급되고 있는 것은 그 일이 아브라함 노년(老年)의 마지막 중대사이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촉급한 일임을 의미한다.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래(12:4) 175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25:7) 험난한 나그네 생활을 하며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런데도 그의 생을 가리켜 범사에 하나님께 축복받은 삶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아브라함을 찾아 오셔서 그의 삶 전체가 의로운 것이 되게 하시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해주신 것(17:5)을 의미하는 것이지 단순히 때마다 물질과 권력, 건강 등과 같은 축복을 내려 주신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4:2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 여기서 ‘늙은’으로 번역된 원어’자켄’ 은 ‘장로’(elder)로도 번역된 말로(50:7, 룻 4:2) 존경을 나타내는 칭호이다. 이 노종은 약 60년전에 아브라함의 상속자로 지명되기도 한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15:2)로 추정 되는데 이스마엘과 이삭 탄생 후 아브라함의 집사장(執事長)으로 최선을 다하였기에 존경을 받았던 것 같다.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맹세의 신성함과 신실성을 나타내는 표시로 고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널리 행해졌던 의식인데, 성경에는 이곳 외에 야곱의 경우(47:29)에만 나온다. 허벅지(개역한글판에는 ‘환도뼈’로 번역됨) 부분은 엉덩이와 무릎 사이의 넓적다리 부분을 가리키는데, 허벅지 아래 손을 넣고 맹세하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추정해 볼 수 있다.

(1) 허벅지가 있는 허리 부분은 후손을 임신케 할 수 있는 정력의 근원지로써 자손의 계승을 의미한다(35:11, 46:26, 히 7:10). 따라서 자신의 후손도 자신이 서약한 맹세를 지킬 의무와 권한이 있음을 나타내 보이는 상징적 행동이라 할 수 있다. (2) 허벅지란 남지 생식기의 완곡어법으로 사타구니를 뜻한다. 그곳에 손을 넣는 것은 할례를 명령하신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엄숙한 서약을 한다는 의미가 내포된 것이다. (3) 허벅지란 권위와 주권을 상징한다. 따라서 거기에 손을 넣는 것은 주인에 대한 절대 복종과 충성을 맹세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4) 허벅지는 사람의 가장 은밀한 부분으로써 이곳에 손을 넣는 것은 가장 절친한 관계임을 증명하는 표시이다.
위의 견해들을 종합해 볼 때 허벅지 맹세는 서약의 절대성과 영원성 및 거룩성 그리고 신실성과 합일성 등을 강조한 상징적 의식 행위라고 할 수 있다.

 

24:3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주 만물의 절대 주권자이심을 의미한다(느 9:6). 이는 인간의 운명도 하나님의 주관하에 있음을 인정하는 말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삭의 결혼까지도 직접적으로 섭리하여 주실 것이라는 아브라함의 확신을 드러내 준다(7절). 또한 이삭의 결혼은 단순한 혼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건설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대사(大事)이므로(Keil) 전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이름 아래 진행되어야만 했다.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 택하지 말고. 이삭을 자기 혈통과 결혼시켜 순수성을 보존할 뿐 아니라 가나안 족속의 방종한 생활에 물들지 않도록 구별하기 위함이다. 즉 가나안 족속의 도덕적 문란을 익히 알고 있던 아브라함(18:16-33, 19:27, 28)은 이삭이 그들의 딸과 결혼함으로 말미암아 악에 물들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 하였던 것이다. 한편 훗날 모세의 율법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 행위에 탐닉해 있는 가나안인과 혼인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데(출 34:16, 신 7:3) 이는 믿는 자와 함께 멍에를 같이 함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임을 알 수 있다(고후 6:14).

 

24:4 내 고향 내 족속. 갈대아 우르(11:28)가 아닌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의 하란 지역을 가리킨다(10절, 11:31, 32, 12:4). 이지역 주민들은 가나안 주민들보다 덜 문란할 뿐 아니라 여호와에 대한 지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들은 완전한 여호와 종교의 추종자로 볼 수는 없고 라반(31장) 집안의 경우처럼 몇몇 이방신과 더불어 여호와를 경배했던 혼합종교주의자로 여겨진다. 한편 아브라함이 에벨의 후손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주민들(11:15-26)을 ‘내 족속’ 이라고 부른 것은 당시 아직 이스라엘 민족이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이러한 근친 결혼은 순수한 신앙전수와 셈족의 언약적 혈통을 보존하기 위한 데라 가문의 오래된 전통이었다(11:29).

 

24:5 여자가 … 오려고 아니하거든. 문명의 도시 하란에 비해 가나안은 척박한 곳이었으며 하란과 가나안은 20여일이 훨씬 더 소요되는 먼 길(약 800 km)이었고 여인의 몸으로 일가 친척과 친구들이 있는 정든 고향을 떠나 낯 모르는 사람을 따라 낯선 땅으로 따라 나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으며 더구나 신부 될 여인이 신랑 될 사람의 얼굴이나 직접적인 정보도 알지 못하는 상태였으니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주인의 아들을 …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작은 출애굽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아브라함의 출본토(出本土) 사건(12:4)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인간적인 대안(代案)이다.

 

24:6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본토를 나온 것은 자신과 자신의 후손이 함께 받은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또 다른 지시가 없이는 가나안을 떠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기 전에 인간적인 생각을 좇아 행동했던 아브라함의 지난 날의 태도와는 대조되는 것으로(12:10-20, 20:1:7) 말씀만을 좇아 행동하는 그의 성숙된 신앙 인격을 보여 준다.

‘아니하도록 하라’에서 ‘하라’(히, 샤마르)는 본분을 지켜 온전히 행하라는 뜻이다(18:19). 여기서는 ‘너 자신을 조심하여’라는 의미가 강하다. 이는 아브라함이 그 종에게 매우 간곡히 당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24:7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 보내실지라. 여기서 ‘씨’ 는 이삭을 포함한 아브라함의 전 후손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후손을 얻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이삭에게 아내가 있어야 하니 하나님께선 반드시 그러한 처녀를 예비하시어 가나안 땅 이삭에게로 보내 주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은 언약을 반드시 성취시켜 주시는 분으로 굳게 믿고 있음을 잘 드러내 준다(신 7:9).

 

24:8 만일 여자가 …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오려는 여자가 없으면 하나님께서 다른 곳에서 이삭의 아내 될 자를 예비하려는 것이 분명하므로 그에 순응하는 도리밖에 없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는 마음의 소원과 일의 계획은 인간에게 있을지라도 그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아는 자만이 고백할 수 있는 말이다(잠 16:1).

 

24:9 이에 … 맹세하였더라. 고향에서 이삭의 아내 될 자를 구하고 못 구하고는 하나님의 뜻에 달려있을 뿐 종은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된다는 제의는 종이 쾌히 응락할 만큼 지극히 만족스런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24:10 낙타 중 열 필. 이렇게 많은 낙타는 신부될 자와 그의 가족에게 줄 예물을 운반하는데 필요한 것이었기도 하겠지만(52절) 여행 목적이 성공할 줄로 굳게 믿고 돌아올 때 신부와 그 일행을 태워 오기 위한 준비물이었을 것이다(61절).

메소포타미아. [히, 아람 나하라임] ‘두 강’(나하라임)과 ‘아람’이 합쳐진 말로 ‘두 강들의 아람’ 이란 뜻이다. 여기서 두 강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을 가리키고 ‘아람’은 ‘고지’ 또는 ‘산지’란 뜻이다. 이는 곧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사이의 고원 지대를 가리키는데 세계 3대 문명 발상지 중의 하나로 히브리와 헬라 문명에 크게 영향을 준 근원지이다.

나홀의 성에 이르러.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15절, 11:26)이 거주하던 성읍 곧 메소포타미아의 하란에 도착하였음을 가리킨다(28:10). 나홀은 아마 우르에서 아버지 데라를 따라 함께 왔다가 하란에서 정주했거나 아니면 데라가 떠난 후 얼마 안 있어 이곳으로 이주해 왔을 것이다(11:31).

 

24:11 성밖 우물 곁. 물은 생활의 필수요소이기 때문에 자연히 우물이나 샘, 개울을 중심으로 부락이 형성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많은 경우에 있어 우물이 성밖에 위치하는 까닭은 아마 먼지가 적게 일어나고 수질 오염을 예방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올 때. 팔레스타인의 낮은 매우 무덥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대개 서늘한 아침과 저녁 두 차례에 걸쳐 공동으로 물을 길었다(요 4:6, 7). 그리고 이때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여자들은 고유 의무로 우물에 물을 길으러 나왔으며 그곳에서 각종 정보 교환과 남자들이 물을 길어 나귀로 나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여자들이 물을 길어 어깨나 머리에 이고 나르는 것이 보통이었다.

 

24:12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히, 하크레 나] 직역하면 ‘만나는 일이 일어나게 해주소서’이다(27:20). 이 말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걸음을 순탄하게 인도해 주실 것을 신뢰하는 믿음에 찬 간구이다.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경건 생활을 몸에 익힌 엘리에셀이 인간적인 수단을 강구(講究)하기에 앞서 기도로써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장면이다. 즉 그는 매사에 기도하는 자세로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만이 참된 지혜이자 문제 해결의 지름길임을 깨달았는데 그의 기도는 뒤이어 알 수 있듯이 그 즉시로 응답받은 기도(사 65:24)였다(삿 6:36-40, 사 38:1-8).

 

24:13 우물. [히, 아인] 원래의 뜻은 ‘눈’(eye)이다. 이는 아마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나오는 현상이 샘에서 물이 솟아나는 현상과 유사성을 지니기 때문인 듯하다.

 

24:14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낙타는 긴 여행 끝에 상당히 많은 물을 섭취해야 하는 짐승이다. 따라서 여행자 뿐 아니라 그와 동행하는 낙타에게까지 자원해서 물을 길어 먹일 정도의 여자라면 상냥하고 친절한 마음씨와 함께 센스(sense)까지 겸비한 여자라는 좋은 증거가 된다. 이처럼 순수한 사랑과 봉사 정신, 지혜를 갖춘 여인을 이삭의 아내로 택정해 달라고 기도한 엘리에셀은 그 역시 인간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지혜를 갖춘 자였음에 분명하다.

 

24:15 리브가. ‘끈’, ‘고리’라는 뜻이다. 이삭과는 오촌간이면서 그의 아내가 되었는데 이로써 하나님의 언약 혈통을 잇는 자가 되었다는 데 그 이름의 뜻이 있는 것 같다(22:23).

물동이. [히, 카드] 일반적으로는 물을 길어 나르는 조그마한 항아리나 양동이(bucket)를 가리키는데 예외적으로 저장용 큰 항아리나 통을 의미하기도 한다(왕상 17:12).

 

24:16 심히 아리땁고. 마음씨 뿐 아니라 외모도 아름다운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아내들의 공통점이다(12:11, 26:7, 29:17). 즉 그녀들의 아름다움은 외모와 행실이 어긋나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 생활과 밀착된 아름다움으로 사랑과 총명이 겸비된 아름다움이었다. 행실과는 동떨어진 채 퇴폐한 목적과 허영에서 겉으로만 다듬는 아름다움은 오래 가지 못할 뿐더러 주위 사람들에게 순결하고 참된 기쁨도 주지 못한다. 따라서 성도들은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기에 앞서 신앙으로 다듬어진 인격과 행실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움을 먼저 추구해야 할 것이다(딤전 2:9, 10).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 남자와 성 관계(sexual intercourse)를 갖지 아니한 숫처녀를 뜻한다. 즉 순결함을 강조한 표현이다. 이에 비해 ‘소녀’(나아라)란 ‘젊음’을 강조한 말이다(사 21:12). 당시 리브가가 얼마나 미모가 출중하며 생기 발랄했는가를 짐작케 해준다. 한편 성 윤리가 혼탁해 있는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혼전(婚前) 성 관계가 비일 비재하며 간음 죄에 대한 법규까지도 철폐하고 있지만 모든 남녀가 혼전 순결을 지키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성(性)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축복 중의 하나이며(아 5:18, 19, 전 9:9) 결혼을 통하여서만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도록 하나님께서 질서를 세우셨기 때문이다.

 

24:17 없음.

 

24:18 급히 그 물동이를. 처음 보는 나그네의 요구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물을 마시게 한 것은 마지 못해 응한 선대(善待)가 아니라 진실된 친절로써 리브가의 상냥한 마음씨와 열심으로 선을 행하는 모습을 잘 드러내준다. 이러한 선행은 비록 보상을 바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성경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고 가르치고 있다.

 

24:19 배불리 마시게 … 모든 낙타를 위하여 긷는지라. 낙타는 항상 위(胃)에 물을 저장해 두는 덕에 장기간 동안 물을 마시지 않고도 견딜 수 있는 반면 한번 물을 마시기 시작하면 엄청난 양을 마신다. 따라서 여행 끝에 지친 열 마리의 낙타들(10절)이 충분히 마실 수 있을 만큼 구유에 물을 가득 채우려면 리브가가 우물에 여러 차례 왕래해야만 했음에 틀림없다.

 

24:20 없음.

 

24:21 묵묵히 주목하며. 비록 자원한 일이긴 하나 리브가가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물동이를 이고 우물을 여러번 왕래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으니 엘리에셀이 이를 만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아마 그 까닭은 (1)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그렇게 신속히 응답해 주신 데 대한 놀라움과 기쁨에 사로잡혔으며 (2) 좀더 신중하고도 안전하게 리브가를 관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여부를 알고자. 친절한 마음씨와 태도, 아름다운 용모에 있어서는 이삭의 아내감으로 부족함이 없으나 과연 그녀가 참으로 아브라함의 일가 친족인가 하는 여부를 알기 위함이다.

 

24:22 금 코걸이 한 개와 … 금 손목고리 한 쌍. 신부에게 주는 예물(53절)이 아니라 리브가의 친절한 행동에 대한 감사 표시로 준 선물이다. 결혼 예물은 여자 집안의 가장(家長)의 허락없이는 제공될 수 없다(50-53절). 한편 여기서 ‘금 코걸이’는 원어로 ‘네젬’인데 귀고리(35:4, 삿 8:24)나 코걸이(47절, 겔 16:12)를 가리킨다.

 

24:23 없음.

 

24:24 밀가가 … 브두엘의 딸. 성(姓)과 이름의 문화가 별로 발달되지 않았던 고대 근동에서는 자신을 소개할 때 이처럼 친족 관계를 밝히는 것이 통례였다. 이 소개로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혈족임이 밝혀졌다.

 

24:25 짚과 사료가 족하며. 사람 뿐 아니라 여전히 낙타에 대하여서도 관심을 멈추지 않는 리브가의 세심한 배려이다. 이처럼 짐승과 하찮은 풀 한 포기라도 귀히 여길 수 있는 자세는 천지 만물과 그 모든 것들의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깨닫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태도이다(욥 12:10).

 

24:26 여호와께 경배하고.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와 인도에 깊은 감사를 드리는 엘리에셀의 경건한 신앙 자세이다. 즉 그는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도록 기도한 표징(14절)이 그 당장에 나타나자 하나님이 자신의 사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여 주셨음을 깨닫고 즉시 무릎을 꿇고 감사 기도를 드린 것이다.

 

24:27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엘리에셀의 찬송 중에 나타난 하나님은 (1) 성도에게 언제나 신실하신 하나님, (2) 성도의 발걸음을 친히 인도시는 하나님(시 5:8, 23:2, 27:11, 48:14)이시다.

인자. [히, 헤세드] ‘은혜’, ‘자비’, ‘긍휼’ 등으로 번역되는 단어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은총을 의미한다(20:13).

 

24:28 어머니 집에 알렸더니. ‘ 아버지 집’이란 말 대신 ‘어머니 집’(mother’s house)이 사용된 데 대하여 혹자는 이것이 리브가의 집에서는 여자가 가장(家長)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리브가의 오라비인 라반이 가족의 대변자로 나타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타당성이 없다(31-33, 50절). 아마 이러한 말은 당시 여자들이 남자들의 장막과는 따로 구분된 장막(18:10)에서 생활한데서 나온 표현으로 아버지나 다른 형제들에 앞서 먼저 어머니에게 달려간 것을 가리킬 것이다.

 

24:29 라반. ‘하얀’, ‘백색’이라는 뜻이다. 표리 부동하며(29:26) 물욕(物慾)이 많은 자(31:6, 7)였는데 집안 일에 아버지 브두엘(50절)보다 그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볼 때 장자로서 당시 연로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집안의 대소사(大小事)를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은 것 같다.

 

24:30 코걸이와 그 손의 손목고리를 보고. 이러한 선물은 라반으로 하여금 엘리에셀 일행을 환대하게 한 동기로 작용하였을 것이다(31-33절).

 

24:31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여. 뒷날의 행적을 살펴보면 라반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앙하지 않은 자였음을 알 수 있다(31:30). 따라서 이러한 인사말은 라반이 누이 동생으로부터 엘리에셀의 행동을 전해 듣고(28절) 그가 부른 하나님의 명칭(27절)에 의거해 갖춘 예우에 불과한 것이지 결코 라반이 여호와 제일주의의 신앙자였음을 보여 주는 말이 아니다.

 

24:32 동행자. [히, 에노쉬] 일반적인 ‘남자’, ‘사람’을 뜻한다. 여기서는 나이 든 엘리에셀을 도와 함께 여행 길을 떠나 온 아브라함 집의 종들을 가리킨다. 이처럼 라반은 ‘종’들 조차도 자기 집에 찾아온 ‘남자’ 곧 ’손님’으로 극진히 대접했던 것이다.

발 씻을 물을 주고. 사막 지방의 경우 손님이 자기 집을 방문하였을 때 가장 먼저 행하던 접대 풍습이다(18:4).

 

24:33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주인과 손님이 음식을 들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니면 식사 후에 담소(談笑)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엘리에셀은 오랜 여행 끝에 지칠 대로 지쳤으면서도 여독을 풀 수 있는 식사 시간을 갖기에 앞서 자신의 여행 목적을 밝히려 들었는데 이는 (1) 자신이 아브라함의 명령을 받고 파송된 종이라는 점과 (2) 주인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허벅지 언약(9절)을 잊지 않은 그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맡은 바 사명을 다하려 한 아름다운 모습이다.

 

24:34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 자신을 아브라함 집의 집사장(2절)으로 소개하지 않고 그저 종이라고만 소개한 것은 자신이 주인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자일 뿐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자신을 감추고 주인만을 내세우는 겸손한 태도는 오늘날 하나님의 일꾼인 모든 성도들이 필히 견지해야할 태도이다(고전 1:31, 15:10).

 

24:35 창성하게 하시되. 리브가를 시집보내도 좋을 만큼 아브라함의 재력(財力)과 기반이 튼튼함만을 강조하는 말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는 한 그가 패배자적인 삶을 살게 되지는 않을 것임을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1절).

 

24:36 그의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나이다. 아브라함 집안에서의 이삭의 위치를 설명해 준다. 즉 그는 하나님의 언약 자손(17:21)으로서 아브라함의 혈통(15:4)과 기업(21:10)을 이어받을 유일한 상속자였던 것이다.

 

24:37 37-41절: 자신의 친족 중에서 며느리를 얻기 원한 아브라함의 소원과 이 일에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실 것을 믿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증거되고 있다. 이는 엘리에셀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가나안에서 하란까지 여행한 동기와 목적을 밝힌 것으로 리브가를 보내 달라는 간접적인 요구이다.

 

24:38 없음.

 

24:39 없음.

 

24:40 섬기는. [히, 할라크] ‘함께 가다’(19:2), ‘따라가다’(삼하 16:13), ’걷다’(렘 10:23)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곧 그분과 함께 동행하며 그분의 명령을 따라(왕상 14:8) 더불어 왕래하는 것(삼상 30:30)임을 시사해 준다.

 

24:41 없음.

 

24:42 42-48절: 리브가는 하나님께서 이삭을 위해 택정해 놓은 배필(配匹)임을 열변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엘리에셀의 이러한 열변은 추상적인 사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과 그로 말미암은 확신에서 나온 구체적인 것이었으니 라반을 공감시키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24:43 없음.

 

24:44 없음.

 

24:45 없음.

 

24:46 없음.

 

24:47 없음.

 

24:48 없음.

 

24:49 내가 우로든지 좌로든지 행하게 하소서. 리브가에 대한 청혼의 수락 여부를 분명히 해주어야 자신이 주인과 맺은 약속, 즉 본토 친족 중에서 신부를 구하는 일을 차질없이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공동번역). 이는 라반이 청혼을 거절한다 하여도 낙심치 않고 속히 다른 곳에 가서 신부를 찾아보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명이다.

 

24:50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에 라반과 브두엘이 굴복하는 장면이다. 즉 라반이 여호와를 온전히 경외하는 자가 아니었음에도 순순히 청혼에 응한 것은 (1)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와 (2) 아브라함의 확고한 신앙심(7절) (3) 엘리에셀의 불타는 사명감(33절)과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는 겸손한 자세 등에 굴복당했기 때문이다.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청혼에 대하여 수락 여부를 말해 줄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일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는데 어찌 인간이 이에 대해 좋다, 나쁘다 할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공동번역).

 

24:51 데리고 가서 … 되게 하라. 자녀에 관한 모든 일, 그 중에서 특히 결혼 문제에 있어서 당사자의 의견보다 부모와 가문의 의견이 더 중요시 되었던 것은 비단 옛날의 우리 나라 뿐 아니라 고대 근동 지방의 관습이었다. 또한 여기서처럼 아버지를 도와 오라비가 누이 동생의 결혼 문제에 적극 개입하는 것도 당시의 관습이었는데(34:5, 13, 25, 삿 21:22, 삼하 13:22), 때문에 라반과 브두엘의 결정에 따라 이제 리브가는 이삭의 아내로 확정되었다.

 

24:52 없음.

 

24:53 은금 패물과 의복 … 보물. 22절과 같이 단순한 감사 선물이 아니라 결혼 성립을 뜻하는 공식적인 예물이다. 즉 이는 고대의 관습을 따라 여러 증인들이 있는 자리에서 신랑과 신랑측의 이름으로 신부와 신부 가족들에게 준 결혼 빙폐(聘幣)인 것이다.

 

24:54 아침에 일어나서 … 돌아가게 하소서. 엘리에셀이 이처럼 서두른 이유는 아마 (1) 자신을 보낸 후 그 결과를 고대하고 있을 아브라함에게 한시 바삐 기쁜 소식을 전해 드리고 싶은 충정과 (2) 일의 결과를 보고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사명이 종결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 투철한 사명 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24:55 며칠 또는 열흘을. 갑작스러운 혼인에 대하여 여러 준비를 갖출 뿐 아니라 리브가와의 이별에 대비하여 마음 정리를 하는 데는 적어도 며칠간의 시간적 여유가 필요함이 자명하다.

 

24:56 없음.

 

24:57 그에게 물으리라. 결혼의 수락 여부를 묻겠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 당장 떠나느냐 아니면 며칠 후에 떠나느냐의 결정권을 리브가에게 일임하겠다는 뜻이다.

 

24:58 가겠나이다. 하나님의 뜻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믿음과 용기 있는 대답이다. 아마도 리브가는 엘리에셀이 자신의 여행 목적을 밝힐 때부터 이미 하나님의 거역할 수 없는 뜻을 깨닫고 믿음을 굳힌 것 같다. 아무튼 이러한 결단으로 말미암아 그녀는 속히 족장의 아내의 길에 들어섬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까지 이어지는 언약 백성의 족보(마 1:1-16)로 이적(移籍)하게 되었다. 이는 비록 우리의 한 순간적 신앙 결단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잘 가르쳐 준다.

 

24:59 그의 유모와. 이름은 드보라이다(35:8). 유아 시절부터 신부를 계속하여 돌보아온 유모를 신부의 시중을 위해 함께 시집에 보내던 일은 당시 부유층과 저명 인사들 사이에서 행해지던 관례적인 일인데 지금도 아라비아의 일부 나라들에서는 행하여지고 있다.

 

24:60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 얻게 할지어다. 자손 번성과 장막의 터를 넓히기를 기원하는 이러한 축복은 고대 근동 여인들에게 주어지던 최대의 축복이긴 하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약속(22:17)을 알리 없는 리브가의 가족들이 그녀에게 그것과 한치 틀림 없는 동일한 축복을 기원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한 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입을 빌어 재확인한 자신의 약속이자 예언으로 이해해야 한다.

 

24:61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 아브라함의 신실한 종인 엘리에셀이 신부 리브가를 신랑 이삭에게로 인도해 가는 모습은 성도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인도하려 한 바울의 열심을 연상시켜 준다(고후 11:2).

 

24:62 브엘라해로이. ‘나를 아시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우물’이란 뜻이다. 하갈이 여호와의 사자를 만났던 곳으로 가데스와 베렛 사이의 술(Shur) 길가 샘물이다 (16:7-14).

네게브 지역에 거주하였음이라. 사라가 사망했던 당시 아브라함은 헤브론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23:2). 그런데 아직도 여전히 아브라함의 거주지가 그곳이었다면 엘리에셀 일행은 네게브 지역 브엘라해로이에 오기 전 먼저 그곳에 들렀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에셀이 그러지 아니한 것으로 보아 사라의 죽음 이후 아브라함은 이삭과 함께 헤브론을 떠나 이미 네게브에 이주하여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4:63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묵상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수아흐’는 상념에 젖거나 슬픔에 잠기는 것 또는 기도하는 것을 가리킨다. 아마 이삭은 모친 사후(死後), 고요한 저녁 무렵 들판에 나가 사라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던 것 같다. 또한 이때는 결혼 문제가 눈 앞에 닥친 때였으므로 이 일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드리곤 하였을 것이다.

 

24:64 낙타에서 내려. 상대방에 대한 겸양의 표시이다. 특별히 여자가 낙타를 타고가는 경우 남자를 만났을 때 신속히 내려 상대에게 예를 갖추는 것이 보편적인 예법이었다고 한다.

 

24:65 너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더라. ‘너울’(차이프)은 보통의 수건이나 베일(veil)보다는 훨씬 큰 너울을 가리킨다. 리브가가 이러한 너울로 자신을 가리운 것은 결혼하기 전의 신랑이 신부의 얼굴을 보아서는 안 되던 당시의 관습에 따른 것인데 신랑에 대한 신부의 겸양(謙讓)과 복종, 순결을 나타내 준다(고전 11:10).

 

24:66 없음.

 

24:67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당시 족장이나 부유층의 사람들은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장막을 갖고 있어 가족의 신분에 따라 적당한 장막을 분배해 주었다. 따라서 족장의 부인인 사라가 생전에 기거하였던 장막은 아브라함 집의 소중한 유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삭이 리브가를 이곳으로 인도하였다 함은 이제 리브가가 실질적인 새 안주인으로서 아브라함 집의 모든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존귀한 위치가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러한 이삭과 리브가의 모습은 일부다처주의가 팽배했던 시대에 세상 풍속을 좇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창조 질서인 일부 일처제를 좇은 아름다운 장면이다. 한편 타락한 세대일수록 사랑은 결혼의 목적과 조건에서 밀려나기 십상인데 그럴수록 우리는 사랑이 참된 결혼의 본질적인 요소로,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자 예수께서 원하시는 바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의 만남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거룩한 결합을 상징한 징표가 되기 때문이다(엡 5:31-33).

어머니를 창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학자들간에 상당한 논란을 일으키는 구절이다. 왜냐하면 이삭 탄생시 사라의 나이는 90세였고(17:17, 21:5) 사라 운명시 이삭의 나이는 37세였으며(23:1),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한 것은 그의 나이 40세때였으니(25:20) 이삭이 3년 동안이나 사라를 위해 애도했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위대한 인물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공식적 애도 기간은 보통 30일 내지는 70일이었다(50:3, 민 20:29, 신 34:8). 그러나 이러한 의문점은 이삭이 노년에 자신을 낳고 기뻐하던 어머니의 모습과 각별히 자신을 사랑해 준 어머니의 정을 못 잊어 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충분히 해소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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