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주석, 창세기 07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7:1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여기서 ‘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רָאָה 라아’는 ‘인정하다’는 뜻이다(왕상 21:29). 즉 비록 불완전한 존재이긴 하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했기 때문에 이를 그의 의(義)로 인정해 주셨다는 뜻이다(6:9). 한편, 죄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을 우리는 신학 용어로 ‘칭의’(稱義)라 한다. 그런데 구원에 이르는 칭의는 오직 그리스도의 피 공로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따라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인해 죄 사함을 받은 성도들은 모두 이러한 하나님의 칭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다(롬 5:1-9).

 

7:2 얼핏보아 6:19-20과 모순되는 듯한 구절이다. 그러나 이는 앞의 것이 개괄적인 지시였던데 반해 본 절의 것은 세부적인 지시인데서 나타난 차이일 뿐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홍수 심판을 일주일 앞둔 시점(4절)에서 보다 구체적이고도 세부적인 지시를 내릴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정결한 짐승 … 부정한 것. 부정한 짐승들보다 정결한 짐승들을 방주에 더 많이 취해 들이라는 분부로 보아서, 노아가 이미 그것을 구분하는 방법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구분은 모세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홍수 후에 정결한 짐승을 희생제물로 사용하라는 하나님의 지시가 있었던 것을 보면 더 확실해진다(창 8:20).

암수 일곱씩. 창 6:19에는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본 절의 내용과는 다르다. 그러나 이는 6:19의 것이 개괄적인 지시였던데 비해 본 절의 것은 세부적인 지시라고 이해할 수 있다. 홍수가 나기 120년 전인 그 당시에는 그러한 상세한 지시 사항들이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암수 일곱씩’은 이견을 보이고 있는 구절이다. 히브리어 본문은 문자적으로, “너는 수컷을 암컷과 함께 일곱씩 일곱을 네게로 취할지니”인데, ‘일곱 쌍’ 또는 동물의 ‘각 종류대로 일곱씩’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70인역, 불가타역, 그리고 많은 고대와 현대의 학자들은 ‘암수 일곱씩’이라는 번역을 옳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교부들이나 개혁자들, 어떤 학자들은 ‘일곱 마리’(세 쌍 + 한 마리)가 옳다는 생각을 표명했다(칼뱅, 랑게). 만일 후자가 맞다면 여분의 한 마리는 후일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리기 위한 것이었을 수 있다(8:20).

모든 종의 동물을 수용 가능할 만큼 방주는 컸는가? 이 의문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노아 홍수는 범세계적 홍수가 아니라 고대 근동의 어떤 지역에서 일어난 지엽적인 홍수라고 생각하다. 그러나 성경 본문에 의하면, 홍수는 범세계적이었으며(창 7:19 주석 참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육지 동물의 각기 다른 종들이 방주에 들어가 보존되었다고 한다.

(1) 방주의 크기: 성경의 자료에 의하면 방주의 규모가 대단히 컸다. 창 6:15에 의하면, 방주는 길이가 300 규빗, 너비가 50 규빗, 높이가 30 규빗이었으며, 3 층으로 되어 있었다. 1 규빗을 17.5 인치(44.45 cm)로 본다면(이보다 더 길 수도 있으나, 이는 이스라엘과 애굽 사람들에게 전반적으로 인정된 표준 규빗 길이였음), 방주의 크기는 길이가 약 133 미터, 너비가 약 22 미터, 높이가 약 13 미터나 되었다. 존 휘트콤(John Whitcomb)과 헨리 모리스(Henry Morris)의 계산에 의하면, 총 갑판 면적은 약 8,891 제곱미터이고, 총 부피가 39,530 세제곱미터이며, 총 무게는 약 13,960 톤이나 되었다. 이것은 오늘날 현대식 대형 선박의 크기에 필적한다.
그리고 노아에게 땅의 모든 짐승의 대표들을 방주 안으로 들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창 7:3)고 성경 본문은 말하고 있지만, 현대의 동물 분류학적 용어의 의미로 볼 때, 오늘날 현존하는 모든 종류의 대표 동물이 방주 안으로 들어갔다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창 2:19은 창조 당시에는 오늘날보다 훨씬 적은 종류의 들짐승이나 새들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는데, 여섯째 날 아담이 모든 동물을 보고 각각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홍수 때까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동물의 기본적인 종(種)들이 여러 하위 종들로 조금씩 다양화되었을 수도 있지만, 창조 때의 기본적인 종들과는 다르게 변형된 오늘날의 셀 수 없이 많은 종과 하위 종들에는 미치진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동물들의 기본적인 종들뿐 아니라 그것들을 위한 먹이까지 들어갈 충분한 공간이 방주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2) 공룡은 어떻게 했는가: ‘공룡’으로 번역될 수 있는 특정한 히브리어가 없지만, 성경의 창조 기사는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תַּנִּינִם 탄니님, 창 1:21)과 오늘날 소위 공룡이라는 것을 가리킬 만한 ‘힘센 동물’(בְּהֵמָה 브헤마, 창 1:24. 개역개정판에는 ‘가축’으로 번역됨)을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동물들이 종류대로 방주에 들어갈 때, 거대한 동물들의 경우에는 아직 크기가 작은 새끼들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조하시지 않았으나 타락 후에 일어난 변화의 결과로, 그리고 사탄의 직접적인 조작을 통해 거대한 맹수의 변종들이 존재하게 되었고, 공룡 등과 같은 동물을 포함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시지 않은 이런 동물들은 방주에 들이지 않았고, 그 결과 홍수에 멸종되었을 것이다.

위와 같은 내용은 엘렌 지 화잇에 의해 명백하게 밝혀진다. 하나님은 “가시와 엉겅퀴와 가라지 등을 결코 만들지 않으셨다. 이것들은 사탄의 작품이요 타락의 결과로 귀한 사물들 가운데 사탄이 들여온 것이다”(교회증언 6권, 186). “가라지는 모두 악한 자가 뿌린 것이다. 모든 종류의 독초도 그가 뿌린 것이며, 그는 교묘한 혼종법(混種法)으로 온 땅을 가라지로 더렵혔다”(가려뽑은 기별 2권, 288).

동물들에 관련해서도 이렇게 적고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동물의 종[현대의 전문적인 동물 분류법에 따른 ‘종’이 아니라 창세기 1장의 ‘종류’를 가리킴]이 방주 안에 보존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조하시지 않고 혼종법으로 생긴 잡종은 홍수로 멸절되었다”(Spiritual Gift, 3:75).

또한 공룡을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 기록도 있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홍수 전에 매우 거대하고 힘센 동물들이 존재했다는 것이 내게 보였다”(Spiritual Gift, 3:92). “매우 거대한 종류의 동물들이 있었는데, 홍수 때 멸종되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힘이 쇠해지고, 이 거대한 동물들을 약한 사람들이 통제할 수 없을 것을 아셨다”(Spiritual Gift, 4a:121).

 

7:3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 70인역이나 사마리아역 등은 ‘정한 새는 암수 일곱씩, 부정한 새는 암수 둘씩’으로 번역하였다. 이러한 번역은 비록 2절과 호응을 이루긴 하지만 그러나 이처럼 번역할 원문상의 근거는 없다.

유전케 하라. 하나나님께 있어선 심판보다 보존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는 생태계의 온전한 보존이란 측면(9:9-12)과 함께 홍수 이후 인간 생활을 돕기 위한 배려라는 의의(9:1-4)를 지니고 있다.

 

7:4 지금부터 칠 일이면. 심판을 위한 준비가 최종 완료된 상태에서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최후 통첩이다. 하나님께서는 지은 죄로 인해 마땅히 심판당하여야 할 타락한 인간들에게 120년이란 긴 회개의 기간을 허락하시고서도(6:3) 이처럼 마지막 한 주간을 특별히 구별지어 인간을 경성시키셨다. 이는 그 어떠한 경우에라도 인간이 심판을 당하는 것은 인간 자신의 완악함 때문이지 결코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지 않으셨기 때문이 아님을 확실히 증언해 준다(욘 1:2). 아마도 노아는 이 7일 동안 더욱더 간곡히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품인 방주 안으로 들어오라고 외쳤을 것이다.

사십 주야. 성경에 나오는 숫자들은 때때로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데 그중 40은 특별히 ‘시련’과 ‘연단’의 의미를 지닌다. 대표적인 예로는 모세의 40년간 광야 생활(행 7:30), 이스라엘의 광야 40년간의 방황(민 14:33), 예수의 40일간 금식 기도(눅4:1-2) 등이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련과 연단의 끝은 승리와 기쁨인데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을 행하는 성도들이 세상과의 싸움에서 궁극적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라는 심오한 진리를 보여 준다(요 16:33).

생물. [יְקוּם 예쿰] ‘쿰’(일어나다, 일어서다)에서 파생된 말로써 ‘호흡하는 생명체’란 점을 강조하는 ‘네페쉬 하야’(생물, 1:20)와는 달리 생물의 ‘활동성’을 강조해 주는 단어이다(신 11:6).

 

7:5 명하신 대로 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한 치도 벗어남이 없이 철저히 순종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순종은 참된 믿음에서 나오는 신앙의 열매이니(갈 5:22-23) 이에 히브리서 기자는 노아를 가리켜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히 11:7)라고 칭하였다.

 

7:6 홍수가 땅이 있을 때에. ‘있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הָיָה 하야’는 ‘존재하다’(31:5)는 뜻과 함께 ‘발생하다’(왕상 12:24)는 뜻도 갖고 있다. 따라서 본 절은 ‘홍수가 땅에 발생했을 때에’로 번역함이 보다 적절하다.

육백 세. 4절에 나온 ‘40’과 더불어 성경상에서 ‘6’이란 숫자가 갖는 상징적 의미도 대체적으로 ‘혹독한 시련’과 ‘엄청난 고난’이다(계 6:12-17, 9:13-21, 16:12-16). 사실 노년에 이른 노아가 1년 동안이나 제한된 공간과 물 위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같은 시련을 통과한 노아에게 새 인류의 원조로서 번성할 수 있는 축복이 주어진 점(9:1)은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라는 진리를 확신케 해준다.

 

7:7 노아가 아들들과 … 함께. 본 절은 6:18의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이 말 속에는 두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1) 라멕(4:19)과는 달리 노아 및 그의 아들들은 일부 일처제의 혼인을 준수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방주 안에 들어간 자의 수가 8명이었다는 베드로의 증거(벧전 3:20)에 의해 분명히 드러난다. 즉 그들은 중혼, 축첩등 당시의 타락한 사회상을 본받지 않았던 것이다. (2) 8명이 모두 방주에 들어갔다는 것은 가족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는 후일 롯의 처와 사위들이 보여준 불신의 행동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19:14, 26).

 

7:8 없음.

 

7:9 방주로 들어갔으며. 노아의 가족들이 홍수 심판이 이르기 전에 충분하고도 안전하게 구원을 얻었음을 보여 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최후 심판시에 있어서도 성도들은 머리털 하나 상치 아니하고 다 구원받게 될 것인데(눅 21:18) 예수께서 성육신(成肉身)하신 목적은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 중 한 명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함이었다(요 18:9).

 

7:10 없음.

 

7:11 노아가 육백 세 … 그 달 열이렛날. 이스라엘의 종교력은 훗날 출애굽 사건과 관련되어 제정되었으니(출 12:1, 2) 이 당시는 단순히 민간력으로 계산된 것일 것이다. 아무튼 이처럼 홍수가 일어난 날짜를 분명하게 명기한 것은 그 사건이 분명한 역사적 사건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인데, 이는 오늘날 많은 고고학적 자료에 의해서도 입증되고 있다.

큰 깊음의 샘들. 여기서 ‘깊음’에 해당하는 ‘תְּהוֹם 테홈’은 원래 지하수의 근원을 가리킨다. 그런데 시 104:6, 욘 2:5 에서는 ‘큰 바다’를, 창 49:25에서는 ‘아래 원천’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본 절은 대홍수 때 폭우와 함께 해일(海溢), 지하수의 범람까지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터지며. 본래 땅은 물로 뒤덮여 있었으나(1:20) 창조 둘째 날 궁창으로 말미암아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구분되었다(1:7). 이어 창조 셋째 날 궁창 아래의 물로부터 뭍(육지)이 융기되어 나왔다(1:9). 따라서 지구는 물 가운데, 그리고 물 위에 이룩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대 히브인들은 이 모든 물들이 언제든지 땅을 덮치려하고 있으나 하나님의 제어로 말미암아 그 경계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였다(욥 26:10, 시 104:9). 그러나 마침내 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그 제어의 재갈을 풀어주자 일시에 엄청난 양의 물이 위 아래 할 것 없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현상을 묘사한다. 그리고 지질학적으로 이 말은 깊은 바다 내에서나 혹은 지각에서 급격한 변화 현상이 일어났음을 가리킨다(Lange).

하늘의 창들이 열려. 여기서 ‘하늘의 창’이란 말은 고대인들의 우주관을 반영하고 있는 말인데, 즉 그들은 대기권 너머 2층천에는 비, 우박, 눈 등을 엄청나게 보관하고 있는 하늘 창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들은 하늘 창문을 통해 지상에 내려진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대홍수는 이러한 하늘 창문들이 한꺼번에 열려진 것으로 생각했고 또 그렇게 묘사했다. 여하튼 본 절은 댐의 열린 갑문을 통해 물이 갑자기 쏟아져 내리듯 엄청난 양의 비가 한꺼번에 땅에 쏟아진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하늘과 지상의 모든 물을 모두 동원, 일시에 지구를 물로 덮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이다(사 51:10).

 

7:12 비. [גֶּשֶׁם 게솀] ‘גָּשַׁם 가샴’(격렬하게 퍼붓다)에서 파생된 말로 보통의 비를 가리키는 ‘מָטָר 마타르’(신 11:14)와는 달리 세차게 쏟아지는 폭우를 의미한다(왕상 18:41). 그런데 광야에서 만나가 내리는 것을 묘사할 때도 이 단어가 사용된 점(출 16:4)으로 보아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 이루어지는 이적적인 현상을 강조하는 말인 것 같다.

 

7:13 들어갔고. [בָּא 바] ‘בּוֹא 보’(가다, 오다, 들어가다)의 과거 완료형으로 노아의 가족들이 ‘그 날’ 곧 홍수가 시작되던 날(11절) 이전에 이미 방주에 들어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 이처럼 구름 한 점 없던 맑은 날에 노아의 가족들이 방주 안에 들어가 있은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미친 짓으로 보였을 것이다(마 24:38, 39).

 

7:14 모든 새가 그 종류대로 . 원문에는 각기 다른 세 개의 단어가 사용되어 모든 종류의 새를 나타내고 있다. (1) עוֹף 오프 : 날개를 지니고 있는 모든 생물을 뜻하는 포괄적 단어이다(6:7). (2) צִפּוֹר 치포르 : 주로 참새와 같이 몸집이 작은 들새를 가리킨다(시 84:3, 잠 26:2). (3) כָּנָף 카나프 : ‘오프’와 교환적으로 사용되긴 하나 주로 날개 달린 조그마한 곤충을 의미한다.

 

7:15 둘씩. 정결한 짐승이든 부정한 짐승이든 둘씩만을 방주 안에 들여보냈다는 뜻이 아니다(2절). 이는 각종 짐승들이 ‘한 쌍씩’(공동번역) 짝을 이루어 방주로 나아오는 모습을 묘사한 것일 뿐이다.

 

7:16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원문에 충실하게 직역하면 ‘그 뒤에서 닫으셨다’이다. 즉 여호와께서 노아 및 그 가족, 생물들이 방주 안으로 들어간 후 그 뒤에서 문을 닫으셨다는 뜻이다. 이는 (1) 하나님이 전적으로 방주를 주관하시며 그 속에 있는 생명들을 보호하시겠다는 의지를 표명해 준다. (2) 또한 이는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은혜와 구원을 받을수 있는 시기(고후 6:2)가 지나고 일단 문이 닫히고 나면 밖에 있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 기회가 없음을 교훈해 준다.

 

7:17 없음.

 

7:18 40일간 계속되는 비로 말미암아 물이 점점 불어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특히 "넘치매"(גָּבַר 가바르)의 원뜻은 ‘확립하다’, ‘강하게 되다’, ‘승(勝)하다’ 등으로(출 17:11, 삼하 11:23) 온 세상을 뒤덮을 때까지 물이 점점 더 불어나도록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강한 능력을 시사해 준다(시 147:17, 18).

 

7:19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노아 당시의 대홍수가 일부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사건이었음을 증언해 준다. 9:11, 15은 이를 뒷받침하는 구절이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Poole, Murphy)의 주장처럼 본 절을 목격자의 관점에서 기술한 수사학적 표현으로 이해하여 홍수의 부분 침수설을 내세우는 것은 불합리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분명 노아와의 언약(6:17, 7:4, 9:11, 15)을 통해 거룩한 씨의 보존을 노아와 그의 가족들에게만 국한시켰기 때문이다.

창세기 6-9장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창세기 홍수의 범세계적 범위를 지지했으나 근자에 와서 지역적 홍수를 지지하는 다양한 이론들이 제안되어, 메소포타미아나 흑해 연안 혹은 그 밖의 특정 지역으로 홍수의 범위를 좁히고 있다. 지역적 홍수 이론은 주로 범세계적 홍수를 지지하는데 지질학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과학적 논증에 의존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논증은 지구 지질의 역사에서 균일설을 가정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근자의 많은 과학적 연구로 인해, 균일설 대신 대격변설(홍수로 인한 격변)을 지지하는 증거가 증가하고 있다.

범세계적 홍수를 지지하는 증거들: 창세기 6-9장을 범세계적 홍수를 묘사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전통적인 견해는 전적으로 성경적 자료에 의존한다. 다방면의 성경적 증거는 홍수의 범세계적 범위를 지지하는 데 모아지고 있다. (1) 창세기 1-11장에 나오는 주요 주제들(창조, 타락, 구속의 계획, 죄의 만연 등)은 모두 세계적인 범위를 다루고 있고, 따라서 그에 맞는 홍수의 범세계적 심판을 요구한다. (2) 아담과 노아의 족보는 서로 전혀 다른 성격을 띠는데, 이는 아담이 홍수 이전 인류의 시조였던 것처럼 노아는 홍수 이후 인류의 시조였다. 따라서 이것은 방주 밖에 있던 땅의 모든 인류는 홍수로 멸절되었음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3)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동일한 축복이 아담과 노아 모두에게 주어졌는데, 이것은 첫 아담이 그랬듯이 노아가 세상을 다시 사람으로 채우는 ‘새로운 아담’임을 가리킨다. (4) 하나님의 언약과 그것의 징표인 무지개(창 9:9-18)는 홍수의 범위와 관련돼 있다. 단순히 지역적인 홍수가 있었더라면 언약도 단순히 제한적인 언약이어야 했을 것이다. (5)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 가능성이 범세계적 홍수로 위태롭게 되었다. 단순히 지역적인 홍수가 일어났었다면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지역적인 홍수가 일어날 때마다 자신의 약속을 깨뜨려야 할 것이다. (6) 범세계적 홍수는 방주의 거대한 크기에 의해 강조되며(창 6:14-15), 또한 방주 안에 모든 동물의 종과 식물(食物)을 반드시 보존하라는 명에 의해서도 강조된다(창 6:16-21, 7:2-3). 단순히 지역적인 홍수였더라면 인류의 대표자들과 모든 종의 육지 짐승 및 식물로 가득한 거대한 방주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아와 그의 가족과 동물들이 그저 지구의 다른 지역으로 피해도 되었을 것이다. (7) 홍수 이전 시대의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다는 말(홍수 전에는 오늘날의 높은 산맥들만큼 높진 않았을 것임)은 단순히 지역적인 홍수를 가리키는 말이 될 수 없다. 물이 지표 전체를 덮어야 그 수위를 말할 수 있다. (8) 홍수가 오래 동안 계속되었다는 사실(노아가 방주에 1 년 정도 머물렀음, 창 7:11-8:14)은 범세계적 홍수에 맞다. (9) 홍수에 관한 신약의 구절들은 모두 범세계적 홍수를 시사하는 표현들을 사용한다. “ 멸하기 까지”(마 24:39), “저희를 멸망시켰으며”(눅 17:27),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벧후 2:5), “노아는 … 세상을 정죄하고”(히 11:7), (10) 신약의 홍수 표상은 홍수의 세계적인 범위를 전제로, 온 세상에 임박한 불 심판을 신학적으로 주장한다(벧후 3:6-7).

홍수와 관련된 용어들: 범세계적 홍수를 지지하는 가장 중요한 성경적 증거들 가운데, 창 6-9장에 나오는 홍수의 세계적인 범위를 나타내는 다수의 용어 또는 표현들이 있다. (1) 창세기에 12 번(6:17, 7:6, 7, 10, 17, 9:11[2회], 15, 28, 10:1, 32, 11:10). 시편에 한 번(29:10) 나오는 히브리어 ‘מַבּוּל 맙불’(대홍수)은 구약에서 창세기의 홍수만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 말로, 창세기 홍수를 기타 지역적인 홍수들과 구분지어 주고 그것에 범세계적인 상황을 부여한다. (2) 아무런 형용사 없이 나온 “땅”(창 6:12, 13, 17)이라는 말은 지구 창조(창 1:1, 2, 10)에 사용된 것과 같은 표현을 상기시킨다. (3) “온 지면”(창 7:3, 8:9)이라는 표현도 지구 창조의 문맥에서 사용된 같은 구절을 반향한다(창 1:29). (4) “온 지면”(8:9)과 평행구절로 나온 “지면”(창 7:4, 23, 8:8)이라는 말도 지구 창조의 문맥에서 사용된 용례와 관련된다(창 2:6). (5) “모든 육체”라는 표현(창 6-9장에 열세 번 나옴)에는 지구 창조에서 동물과 사람의 창조(창 1:24, 30, 2:7)를 상기시키는 구절들이 덧붙여 있다. 예를 들면,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창 6:17, 참조 7:15).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창 7:21, 22) 등이다. (6) “혈육 있는 모든 생물”(창 7:4)은 지구 창조를 구체적으로 가리킨다. (7) “모든 생물”(כָּל־הַיְקוּם 콜 하이쿰, ‘모든 존재’, 창 7:4, 23)이라는 말은 생물 전체를 표현하는 데 히브리인 저자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포괄적인 용어 중 하나이다. (8)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창 7:22)라는 표현은 홍수의 범세계적 범위를 가리키지만, 이러한 범세계적 파멸이 육지 생물에만 국한되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9) “천하의”(창 7:19)라는 표현은 성경 다른 곳에서도 항상 세계 전체를 가리키는 구절(참조 출 17:14, 신 4:19 등)로, ‘하늘’만 단독으로 나와 지엽적인 의미를 갖는 것(참조 왕상 18:45)과 대조를 이룬다. (10) “큰 깊음(תְּהֹום 트홈)의 샘들”(창 7:11, 8:2)은 창 1:2의 ‘트홈’(깊음)을 상기시킨다.창세기 1-2장의 세계 창조와 연결되는 이러한 많은 용어적인 고리는 홍수가 종말론적인 면을 갖고 있으며 창조된 세상을 단계적으로 파괴한 다음, 다시 단계적으로 세상을 재창조하는 일이 뒤따라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경의 기자가 창세기 홍수의 범세계적 범위를 나타내기 위해 이보다 더 강한 표현을 사용할 수 없었다고 생각된다.

 

7:20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무엇을 기준으로 한 말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아마 가장 높은 산을 덮고서도 물이 15규빗(약 6.84m)이나 더 불어났다는 뜻인 듯하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철저성을 강조해 주는데, 실제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그분의 진노의 낯을 피해 숨을 곳이라곤 아무데에도 없다(시 139:7-12).

 

7:21 홍수로 말미암아 땅 위의 사람들과 짐승들이 모두 멸절되었음을 간명하면서도 분명하게 증언해 준다. 그러나 세상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멸절되어 가는 절박한 순간에서도 노아 가족만은 하나님의 보호의 날개(신 32:11, 12) 아래에서 편해 쉴 수 있었는데(23절). 이는 성도가 어떠한 환난 중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이다(시 23:4-6).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에서 결코 의인은 악인과 함께 멸망당하지 않기 때문이다(18:25).

 

7:22 없음.

 

7:23 오직 노아와 … 자들만 남았더라. 사도 베드로는 이처럼 심판의 물만이 온 대지를 뒤덮고 있는 상황 가운데서 노아 가족이 구원받은 것을 ‘침례’에 비유하였는데(벧전 3:20, 21), 이는 바울이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사건을 가리켜 바다에서 침례받았다고 묘사한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전 10:1, 2).

 

7:24 백오십 일. 혹자(Murphy)는 이 기간을 비가 내렸던 40일을 제외한 그 이후의 기간으로만 본다. 그렇다면 물이 땅에 창일해 있던 기간은 총 190일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Lange, Bush, Knobel)은 150일이란 기간안에 폭우가 쏟아졌던 40일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이는 8:3과도 조화를 잘 이룬다.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