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주석, 창세기 0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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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זֶה סֵפֶר תֹּולְדֹת 제 세페르 톨도트] 직역하면 ‘이것은 계보 책이다’이다. 이 중 ‘תֹּולְדֹת 톨도트’(계보, 역사)는 2:4에 나온 ‘내력’과 같은 단어이므로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סֵפֶר 세페르’(책, 조서, 두루마리, 편지, 증서)는 비록 낱장으로 이루어져 있을지라도 그 자체가 하나의 완성된 기록물인 ‘문서’나 ‘책’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신 24:1에서는 ‘이혼 증서’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모양. 원어 ‘דְּמוּת 데무트’는 3절에 나오는 ‘형상’(צֶלֶם 첼렘)과는 달리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유사성’, ‘닮은 꼴’(겔 10:10, 단10:16)을 가리킨다.

지으시되. [עָשָׂה 아사] 인간 창조와 관련하여 앞서 나오는(1:27) ‘בָּרָא 바라’(창조하다)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절대적, 단독적 ‘창조사역’을 강조한 단어라면(사 40:26, 렘 31:22) 이것은 하나님께서 온갖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 손수 창조하셨다는 애정적 측면을 강조한 단어이다(6:7, 신 32:6, 욥 10:9).

 

5:2 남자. [זָכָר 자카르] 단순히 ‘אִשָּׁה 이샤’(여자, 2:23)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써의 명칭인 ‘אִישׁ 이쉬’(2:23)와는 달리 남성과 여성이란 양성 중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성(性)으로써의 남자를 뜻한다(17:10, 신 4:16).

복을 주시고. ‘복’에 해당하는 원어 ‘בָּרַךְ 바라크’의 원뜻은 ‘무릎 꿇다’(시95:6)로 여기서부터 ‘찬양하다’(왕상 1:48), ‘축복하다’(28:6), ‘문안하다’(왕하 10:15)등의 뜻이 파생됐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축복하셨다는 것은 곧 그에게 감사와 찬양을 돌릴 수 있는 존재로 이끄셨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일컬으셨더라. 하나님께서 각종 짐승의 이름은 아담에게 전권을 위임하사 그가 짓도록 하셨으나(2:20) 인간의 이름만큼은 직접 지어 주신 까닭은 그들이 만물의 영장이긴 하나 역시 하나님의 주권하에 놓인 피조물에 불과할 뿐임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었다.

 

5:3 세. ‘שָׁנָה 샤나’(돌아오다, 반복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태양의 일 주기’를 가리킨다. 따라서 아담의 나이 ‘백삼십 세’는 오늘날의 연령 계산법에 의거한 나이와 똑같은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형상. 원어 ‘צֶלֶם 첼렘’은 원래 성질이나 성격상에 있어서의 유사성 또는 환영(幻影), 그림자, 착각 등을 뜻하는 말이나(시 39:6) 여기선 ‘모양’(דְּמוּת 데무트)이란 말과 교호적(交互的)으로 사용되었다(1:26). 한편 아담은 타락 후 필연적 죽음을 선고받은 존재이니(2:19) 그가 자기 모양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곧 죽음이란 죄책(罪責)이 후손에게 전가되었다는 의미가 된다(롬 5:12).

낳아. 원뜻은 ‘해산의 고통을 겪다’(사 21:3, 렘 22:23)로 아담이 아들을 얻는 데에는 그 아내의 해산하는 고통이 반드시 수반됨을 기억시켜 준다(3:16).

 

5:4 없음.

 

5:5 없음.

 

5:6 여기서부터 계속해서 나오는 족장들의 계보는 (1) 이름 (2) 장자를 낳은 아이 (3) 그 후의 여생 (4) 죽었을 때의 나이 순(順)의 일정한 틀에 따라 기록되었는데 이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과 함께 그 가운데서도 중단없이 이루어져 가고 있는 ‘여자의 후손’(3:15)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켜 준다.

 

5:7 없음.

 

5:8 없음.

 

5:9 없음.

 

5:10 없음.

 

5:11 없음.

 

5:12 없음.

 

5:13 없음.

 

5:14 없음.

 

5:15 없음.

 

5:16 없음.

 

5:17 없음.

 

5:18 없음.

 

5:19 없음.

 

5:20 없음.

 

5:21 므두셀라.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홍수에 관한 예언을 들었다. “거룩한 천사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에녹에게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킬 그분의 의도를 나타내셨다. 그분은 또 구속의 경륜을 그에게 더 완전하게 나타내셨다. 예언의 영을 통하여 그분은 그에게 홍수 후의 대대(代代)의 사람들과 그리스도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에 관계된 큰 사건들을 보여 주셨다”(부조와 선지자, 85).
홍수가 있은 해는 A.M. 1656년이고, 노아의 증조부인 에녹이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은 해는 A.M. 687년이며, 그 때로부터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늘로 올라간 해는 A.M. 987년이다.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은 해(A.M. 687)에 홍수에 관한 예고를 들었다면 그것은 홍수가 나기 969년 전이고, 그가 승천하던 해(A.M. 987)에 그 기별을 받았다면 그것은 홍수가 나기 669년 전이다. 그러므로 홍수에 대한 예고는 적어도 700-900년 동안 계속되었다.
한편,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을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의미심장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이름의 히브리어 ‘מְתוּשֶׁלחַ 므투셸라흐’는 ‘그가 죽을 때 [홍수를] 보낸다’는 뜻이다. 그는 A.M. 687년에 태어나서 969년을 향수하고 A.M. 1656년에 죽었다. 그런데 노아는 A.M. 1056년에 출생했고 그가 600세 되던 해에 홍수가 났으므로(창 6:6, 11), 홍수가 난 해는 A.M. 1656년이다. 그러므로 므두셀라가 사망한 해와 홍수가 난 해는 같은 해이다. “노아의 조부 므두셀라는 홍수가 나던 바로 그 해까지 살았다.”(살아남는 이들, 63)라고 엘렌 지 화잇은 기록하였다. 홍수가 그해의 2월 17일에 시작되었으므로(창 6:11), 므두셀라는 그 직적인 A.M. 1656년 1월에 사망한 것이 확실시 된다. ‘므두셀라’라는 이름에는 중대한 예언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 예언은 한치의 착오도 없이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 에녹에게 처음으로 말씀하신 홍수에 관한 예고는 그의 아들 므두셀라라는 이름을 통하여 계속 반복되다가 그의 손자 라멕을 거치고 마침내 그의 증손자 노아에게까지 전승되어 그의 성취를 보게 되었다.
노아는 1056년에 태아났다. 그가 출생했을 때 그의 증조부 에녹은 이미 승천하고 없었지만 그의 조부 므두셀라는 369세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노아는 필경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홍수에 대한 예언을 들었고, 그에 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는 중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셨다(창 6:13-14). 처음 에녹에게 예고하신 후로 4대만에, 적어도 700년 이상이 지난 후에 비로소 홍수를 대비하여 방주를 짓게 되었다.

 

5:22 동행하며. 원어 ‘הָלַךְ 할라크’의 문자적 뜻은 ‘걷다’(레 11:42), ‘산책하다’(삼하 11:2)이나 여기서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인격적 교제’를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미 6:8). 이처럼 죄악이 관영한 가운데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그의 뜻을 따라 산 자로는 또한 노아가 있는데 그 역시 ‘하나님과 동행한 자’라 칭함을 받았다(6:9).

 

5:23 없음.

 

5:24 데려가시므로. 원어 ‘לָקחַ 라카흐’는 ‘취하다’, ‘받아들이다’, ‘택하다’는 뜻이다. 엘리야의 승천을 가리킬 때도 사용된 말로 에녹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낙원(눅 23:43)으로 옮겨졌음을 의미한다(히 11:5).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직역하면 ‘그리고서 그가 없어졌다’, ‘없어졌다’의 기본 어근은 ‘אַיִן 아인’으로 ‘헛됨’, ‘무’란 뜻이긴 하나(사 58:9, 슥 10:2) 여기서는 ‘에녹이 죽었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에녹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공동번역)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5:25 인류 역사상 이 땅에서 가장 오래 산 자인 므드셀라의 계보이다. 비록 그가 죽음을 면치 못하였긴 하나 1000여 년 가까운 세월을 살았다는 것은 장차 회복될 인간의 영원한 생명(딛 1:2)을 기대케 해준다. 한편 그의 아들 라멕은 경건치 못한 가인의 후예 라멕(4:19, 23)과는 동명이인(同名異人)으로 하나님을 경외한 대조적인 인물이다.

 

5:26 없음.

 

5:27 없음.

 

5:28 없음.

 

5:29 노아. 노아는 므두셀라의 아들 라멕이 182세에 낳은 아들이다(28절). 라멕은 아들의 이름을 ‘노아’라고 지으면서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고 말했다. 여기서 ‘안위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נָחַם 나함’이다. 그런데 ‘노아’는 히브리어로 ‘נֹחַ 노아흐’이고 ‘노아흐’는 ‘נוּחַ 누아흐(쉬다, 안식하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이므로 그 뜻은 ‘쉼, 안식’이다. 라멕이 ‘노아흐’라는 이름과 ‘나함(안위하다, 위로하다)’라는 동사를 연결시켜 말한 까닭은 그 두 낱말의 발음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라멕은 여기서 일종의 언어유희(word play)를 사용한 것이다.
‘노아(쉼, 안식)’라는 이름은, 온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하고 소란스럽던 때(창 6:5), 홀로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고(8절)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9절)이던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이름이었다. 즉 노아는 전 지구가 강풍과 폭우로 뒤흔들리고 있던 때에도 방주 안의 ‘안식’과 ‘안위’를 제공하고 누리리라는 암시가 들어 있는 이름이다.

땅. [אֲדָמָה 아다마] ‘אָדָם 아담’(붉다)에서 파생된 말로 땅의 견고성을 강조하는 ‘에레츠’와는 달리 땅이 붉은 색을 띠고 있음을 강조하는 단어이다. ‘אֶרֶץ 에레츠’가 ‘온 세상’을 가리키기도 하는 것임에 반해(2:1) 이는 주로 ‘토지’를 가리키는 단어이다(3:23, 출 23:19, 잠 12:11).

저주하시므로. [אֵרְרָהּ 에르라] ‘אָרַר 아라르’(심히 저주하다)의 강의형(强意形)동사로 하나님께서 한번 내리신 저주는 그분께서 스스로 철회하시지 않는 한, 계속해서 그 효력이 발휘됨을 강조해 준다.

수고롭게 일하는. 직역하면 ‘우리 손의 일과 노고로부터’이다. 이는 땅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이후 인간이 그것을 경작하는 일은 대단히 힘들고 고통스런 수고거리가 되었음을 상기시켜 준다(3:17).

 

5:30 없음.

 

5:31 없음.

 

5:32 셋을 시조(始祖)로 한 족보(6-31절)는 일단락되고 노아의 세 아들이 새로운 족속의 시조로 역사 전면에 등장, 향후 전개될 구속사를 이끌어 가게 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노아에게는 “셈과 함과 야벳”이라는 세 아들이 있었다(창 5:32, 10:1). 그런데 그들의 이름이 언급된 순서가 그들의 출생 순서인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שֵׁם 셈’은 ‘이름, 명성, 명예’라는 뜻이고, ‘חָם 함’은 ‘검다, 뜨겁다, 따뜻하다’라는 뜻이며, ‘יֶפֶת 야벳’은 ‘열다, 널리 퍼지다’라는 의미의 동사 ‘파타’에서 유래된 이름으로써 ‘열린, 널리 확장하는’이라는 뜻이다.
셈족은 주로 페르시아, 앗시리아, 아람 그리고 아랍의 지역들을 차지하여 여러 민족을 이루었고, 마침내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를 탄생시킴으로 그 조상의 이름의 의미처럼 ‘이름(명예, 명성)’을 떨치는 종족이 되었다. 함족은 아프리카 대륙으로 내려와서, 그 조상의 이름처럼 ‘뜨거운’ 열대 기후에서 ‘검게’ 살게 되었다. 야벳족은 소아시아와 지중해의 북쪽 및 유럽의 전지역으로 진출하여 여러 민족과 국가를 이루었다. 이것은 ‘야벳’이란 이름의 의미, 즉 ‘열린, 널리 확장하는’이란 뜻과 매우 잘 어울리는 일이었다. 이와 같이 성경에 등장하는 이름들은 때로는 예언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때로는 그 이름의 주인공이 감당해야 할 사명 또는 운명을 함축하기도 한다.

이제 그들의 출생 순서를 살펴보자. 셈, 함, 야벳 중에서 누가 맏이이고 누가 막내인가? 창 9:24을 보면 노아의 ‘작은 아들’ 즉 막내아들은 함인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셈과 야벳 중 누가 형인가?
개역개정판 성경 창 10:21에는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여기서 “야벳의 형”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아히 예페트 학가돌”이다. ‘아히’는 ‘~의 형제’라는 뜻이고, ‘예페트’는 ‘야벳’이며, ‘학가돌’은 ‘큰 자, 맏이’를 의미한다. 따라서 ‘아히 예페트’는 ‘야벳의 형제’라는 뜻이다. 그런데 마지막 단어 ‘학가돌’(큰 자, 맏이)이 바로 앞에 있는 ‘예페트’(야벳)을 수식하는지 아니면 ‘아히 예페트’(야벳의 형제 즉 셈)을 수식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히브리어 문법상으로 둘 다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자를 지지하는 사람은 야벳을 형으로 생각하고, 후자를 선호하는 이들은 셈을 형으로 간주한다.
그리하여 창 10:21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뜻의 번역을 낳게 되었다.
(1) 개역개정판: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2) 킹제임스 흠정역: “셈은 에벨의 모든 자손의 조상이요, 그 형 야벳의 동생이라.”
이러한 현상은 영어를 비롯하여 다른 언어로 된 역본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개역개정판처럼 셈을 형으로 번역한 역본에는 불가타역(Vulgate), 영어 표준역(ESV), 유대 출판협회역(JPS, Tanakh), 새 미국 표준 성경(NASB), 개정 표준역(RSV) 등이 있고, 야벳을 형으로 번역한 역본들에는 70인역(LXX), 루터성경(Luthers Bibel), 제임스왕역(KJV), 영의 문자적 번역(YLT), 새 국제역(NIV) 등이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창 5:32은 “노아가 500세 된 후[때]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고 한다. 노아의 세 아들이 세쌍둥이가 아니었으므로(참고 9:24, 10:21), 노아가 500세 때에 첫 아들을 낳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11:10을 보면 “홍수 후 이 년에” 셈의 나이가 100세였다고 한다. 홍수는 노아가 600세 되던 해에 났으므로(7:6), “홍수 후 이 년”에 노아는 602세였다. 그리고 그 해에 셈이 100세였다면 그는 노아가 502세 되던 해에 태어났다. 한편 노아가 500세 때에 아들을 낳기 시작했으므로, 셈보다 2년 앞서 한 아들이 태어났으며, 이 아들은 야벳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노아의 아들들을 나이 순으로 나열하면, ‘야벳, 셈, 함’이 된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노아의 세 아들을 열거할 때마다 셈을 맨 먼저 언급했고(창 5:32, 10:1, 대상 1:4), 셈과 야벳만을 일컬을 때도 셈을 먼저 말한 것(창 5:23, 26-27)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필경 홍수 후에 성경 역사의 주인공이 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이 셈의 자손이고, 또한 장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를 탄생시킬 언약의 백성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막내인 함이 야벳보다 먼저 언급된 것은 그의 후손이 지리적으로 셈의 후손과 가까운 곳에 살면서 많은 거래와 왕래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반면에 야벳의 후손들은 멀리 유럽 쪽으로 진출함으로 구원의 역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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